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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캐나다법회 설법

 

李洪志
2006년 5월 28일, 토론토 시에서

 

여러분 수고하였다. (뭇 제자 열렬한 박수. 일제히 응답.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사부님 노고가 크셨습니다!)

몇 차례 대형 법회는 모두 중국대륙 이외 대법제자들의 성대한 모임이었다. 매번 대형 법회에는 모두 많은 신수련생과 아주 편벽하고 먼 지역의 일부 수련생들이 참가하러 왔다. 그러므로 매번 법회에서 해야 할 다른 항목을 제외하고, 법회는 진정하게 수련 제고에 실제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럼으로써 일부 신수련생들과 천리를 마다치 않고 온 수련생들의 걸음이 보람 있었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들의 법회는 매년 반드시 개최하는 형식이 아니라, 진정하게 착실히 수련하기 위하여 비로소 여는 것이다. 이 역시 그 해에 내가 여러분에게 남겨 준, 대법제자들이 광범위하게 함께 토의할 수 있는 유일한 일종의 환경이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수련제고에 정말 이롭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의의(意義)가 있다.

여러분은 현재 이런 수련방식을 알고 있으며,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미 아주 명확하다. 대법제자의 수련형식 요구는 내가 생각하건대 이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모두 기본적으로 할 수 있었다. 대법수련방식은 속인 속에서, 역사상 유례가 없는 속인 사회에서의 수련을 창립하였다. 이는 내가 법을 전한 그날부터 시작하여 이미 정해 놓은 이런 일종의 형식이다. 이런 방식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여태껏 있어 본 적이 없다.

나의 설법은 낮은 데서부터 높은 데로, 기초에서부터 이야기해야만 많은 사람들이 모두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첫 시작에는 높게 말하지 않는다. 사실 전반 삼계의 창립은 바로 오늘날 대법을 전하는 이 일을 위해 세워진 것이다. 과거의 우주 중에는 삼계가 없었고 또한 인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는 신이 만든 것으로 이는 아주 틀림이 없다. 외계인들은 왜 빈번하게 지구로 오는가? 그것들은 아주 많은 목적이 있다. 그 외에, 그것들이 인체에 대해 느끼는 경탄은, 그것들이 여태껏 본 적이 없었던 것에 대한 것으로서 크게 견문을 넓혔다. 왜냐하면, 과거 우주의 이런 환경 속에서, 다시 말해서 현재 삼계가 존재하는 이러한 공간 속에서, 과거에는 소위 외계인을 포함해 모두 각종 저급한 생물이 여기에 생존한 것이었다. 사실 그것들은 기술을 장악한 낮은 류(低類)의 생물이었다. 갑자기 천체에 거대한 변화가 발생하여 세상이 열리(創世)는 가운데 사람이 나타났으며, 사람이란 이런 생명이 나타났다. 게다가 이 인체(人體)의 구조는, 그러한 생물들이 그것들의 기술적 각도에서 보더라도 인체의 전반 기제(機制)는 너무나 완벽하게 느껴졌다. 당연하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왜냐하면, 신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그러한 간단한 생물, 과거 이 공간의 저급한 생명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신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의 외형(外形)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신의 내재적 구조가 있다. 다만, 표현상 신의 능력이 없을 뿐이다. 게다가 이 공간 자체가 생명이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이 공간의 생물로 하여금 일종 특정적이고 특별히 만든, 사람의 생존을 유지하도록 뭇 신들이 종합적으로 구성한 이런 하나의 환경 속에 있게 하였다. 이 환경은 이 공간 사람으로 하여금 다만, 이 공간의 물체만을 볼 수 있게 하였고, 이 공간 외의 물체를 보지 못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이 공간에서 특수한 방식으로 존재하는 물체까지도 보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소수 근기가 좋은 사람은 볼 수 있거나 접촉할 수 있었다. 더구나 다수 사람으로 하여금 이 우주에는 오로지 사람, 이런 생명만 존재한다고 확신하게 하였으며, 심지어 여기의 생존 조건은 모든 생명이 우주 중에서 존재하는 유일한 조건이라고 여기게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사람은 자신을 더욱 봉폐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연구하든지, 사람이 어떻게 인식하든지 간에, 모두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했다. 사실 이런 상태 역시 정상적이다. 왜냐하면, 이는 신이 제한한 것으로 사람은 바로 이 층차 속에, 바로 이런 하나의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방법으로 어떻게 우주를 탐측하든지 간에 역시 영원토록 우주의 진상을 볼 수 없다. 이 역시 신이 정(定)한 것이다.

그럼 이 일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대법이 전해지기 전에 사람으로 하여금 이런 하나의 상태, 안정한 상태를 유지하고, 줄곧 대법이 전해지는 그날까지 기다리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의 과정 중에서, 삼계를 만들고 인류를 만든 다음, 세간에서 역사적으로 발생한 각종 사건은 인류가 출현한 후의 초기 상태를 포함해, 줄곧 수천 년간 인류 정통문화가 출현한 후의 표현을 포함하는데, 예컨대 역사상 나타난 모든 명인(名人)과 큰 사건은, 사실 이 모두는 인류에게 문화를 다져주고 사상을 다져주고 사람의 이념을 다져주어, 대법이 전해지는 그날 사람이 법을 인식하고 진정한 수련문화를 인식하도록 한 것이다. 만약 이처럼 역사의 다져주기가 없었다면, 오늘 여기에 앉아 있는 대법제자들이 모두 신이 갓 만든 사람, 그런 종류의 원시적 상태이고, 일종의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면, 그럼 법을 전할 방법이 없고, 법을 이해한다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무엇이 수련인가? 알지 못한다. 가장 간단하게 말하자면, 만약 현재 사람에게 문화가 없다면 오늘날 이 법을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가? 이야기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 일체는 모두 대법이 전해지는 이 일을 위해 문화를 다져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일을 또 두 단계로 나누어 하고 있다. 한 단계는 바로 정법 중에, 정법수련에 따라 걸어온 이 한 무리 대법제자들로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에 속하게 된다. 그럼 이후에 또 있는데, 바로 다음 단계 법정인간(法正人間) 시기의 수련인이다. 그때에 전반 우주는 인류를 제외하고는 이미 모두 마무리 지었다. 나는 늘 이야기한다. 구(舊) 우주의 요소, 구세력, 각종 다른 좋지 않은 고층생명의 정법에 대한 교란은, 그때에 가서 낮은 층에서 미래 수련인의 제고에 사용할 것을 남겨 놓는 것 외에, 모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고층 구(舊) 요소의 교란이 없어진 이후, 그 법정인간은 어떠한 모습인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능력 있는 고층 구(舊) 요소의 어떠한 저항도 없다면, 사람은 본래 아주 취약한 것이며 우주의 낮은 공간의 생명과 삼계 내 공간의 생명은 본래 무슨 큰 능력이 없는 것으로, 그때에 법정인간은 긍정하고 다른 하나의 상태이다. 현재 사람들은 가상해 본다. ‘사악한 당이 없어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건 어떤 모양일까? 미래의 중국 정부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할 필요도 없고 또 상관할 필요도 없다. 물론 여러분은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진상을 알리는 중에서, 현재의 인식으로 추리할 수 있으며 이건 모두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정상적인 사람의 사유에 따라, 정상적인 사람의 이해에 따라 추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대관절 어떻게 될 것인가는 사람이 말해서 될 일이 아니며 또한 현재 사람이 상상하는 것처럼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때에는 인류사회가 전부 변하며 상태가 모두 변하고 사회구조도 모두 변한다.

그럼 이 시기에 특히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과 정법이 함께하는 기간에, 그렇다면 이 한 무리 수련인에 대해 말한다면 요구가 특별히 높은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법과 함께 있으며 감당하는 것이 많고 책임이 크기 때문이다. 사부의 법신이 얼마나 있던지, 우주 중에서 얼마나 큰 능력이 있든지 간에, 층층의 구(舊) 우주 간격 중의 주체(主體)는 세간에서 정법 중의 일체를 지휘하고 있다. 인류와 삼계는 원래 바로 정법의 수요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사부의 주체 또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사악의 정법에 대한 교란의 초점 역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대법제자는 여기에서 법을 실증하고 법을 수호하는 동시에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책임은 필연 중대한 것이다. 아울러 또한 여기의 중생을 구도해야 하므로 이 책임은 대법제자로 말하면 역시 매우 중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법시기의 대법제자들은 더욱 대단하다.

나는 역사상 이런 수련, 저런 수련이 있었든지 막론하고 다만 문화를 다져주었을 따름이라고 이야기하였다. 무엇이 수련인가? 오늘날이야말로 비로소 사람의 진정한 수련이다. (박수) 오늘날의 이 형식이야말로 비로소 우주의 모든 신으로부터 진정한 수련으로 승인받았다. (박수) 과거의 그 모든 것은 바로 문화를 다져준 것이다. 사람은 삼계에 들어와서 여태껏 나가본 적이 없다. 우주에서 사람 여기로 온 어떠한 생명이든 하늘로 되돌아 갈 수 없었으며 여태껏 모두 없었다. 과거에 수련, 수련했지만 누구도 수련 성취하지 못했고, 하늘로 올라간다, 하늘로 올라간다 했지만, 누구도 올라가지 못했다. 여러분은 副元神(푸왠선)이 있음을 아는데 사람을 운반체로 삼아 수련한 副元神(푸왠선)이 하늘로 올라갔다. 왜냐하면, 사람을 운반체로 삼은 후 副元神(푸왠선)은 사람의 외형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과거 수련방식 중에 누구누구가 승천한 것을 보았고, 이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승천한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승천한 그것은 그의 主元神(주왠선)이 아니며 진정한 이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과거 삼계에 온 생명은 되돌아간 것이 없으며 모두 副元神(푸왠선)이었다. 그리고 副元神(푸왠선)은 주체가 어떠한지를 여태껏 중시하지 않았다. 어떠한 신이든지 사람에 대하여 여태껏 중시하지 않았다.

나는 이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다. 신 역시 같지 않은 시기에 육성된 것이며, 성취된 것이라고 말했다. 우주의 진상, 심지어 삼계의 역사와 존재하는 목적에 대한, 이런 것은 이곳에 접근할 수 있는 신 그들마저도 똑똑하지 않다. 특히 사람과 접촉할 수 있는 신은 모두 낮은 층이므로 그들은 이러한 것에 대하여 전혀 똑똑하지 못하며 사람이 존재하는 의의마저도 그들은 다 모르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람을 전혀 중시하지 않음을 조성한 것이다. 그 해에 내가 대법을 전할 때, 많은 신들은 “사람이 다 이 지경인데도 당신은 아직도 대법을 전하는가, 또한 사람에게 이처럼 좋은 법을 전하는가.”라고 말했다. 그가 어찌 사람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물론 현재는 모두 다 명백해졌고 또한 다 알게 되었다. 정법 중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걸어왔다. 진상이 끊임없이 나타날 때 일부 부(負)의 작용을 일으킨 신들도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진상을 보게 되었고 다 명백해졌다. 아직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데, 구세력을 근본적으로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 이 한 점을 그것들은 아직 완전히 최후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도 이 진상을 보아내지 못하고 있다. 최후 일보에 이르러 그것들이 진상을 보게 될 때면 그럼 역시 끝장이며 그것들에 대해 말하자면 두려운 것이다.

이 일을 두 단계로 나누어 하기 때문이다. 인류사회가 대법제자들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 어떻게 무감각하든지 막론하고, 인류사회의 각종 표현이 마치 속인 사회에 그렇게 큰 충격이 없는 것 같고, 각 업종은 모두 순서에 따라 규정대로 운행되고 있으며, 인류 사회란 이 한 대의 기계가 아직 가고 있고 아직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이것은, 법정인간 때에 가서야 비로소 사람의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현재 기본적으로 사람의 일을 하지 않고 여러분도 세인들을 구도하는 가운데 역시 사람의 양지(良知)와 선근(善根)을 일깨워줄 뿐이다. 사악이 대법제자들을 박해하는 기간에, 사악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논법이 있고, 세인들에게 모두 대법제자와 대법을 반대하고, 세간에서 대법제자가 설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인류사회에 아주 많은 거짓말을 만들어 냈다. 전국의 일체 선전 도구를 이용해 떠들어 댔으며,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사악한 자들의 거짓말을 믿고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참여하게 하려고 망상했다. 이런 정황에서 진상을 알지 못하는 많은 중생과 많은 세인이 독해를 받았다.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들이 이 기간에 진상을 알리는 목적은 바로 사람을 구하기 위한 것이며 그러한 구(舊) 요소와 악당사령(惡黨邪靈)의 사람에 대한 독해를 타파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정법 중에서 이런 구세력은 도태하게 되고, 악당과 사령 역시 반드시 도태되며, 그것들과 한 무리가 된 사람들도 모두 도태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법 중에서 정한 원칙으로 반드시 이처럼 되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 사람을 구원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곧 사악을 따라 역사에 따라 함께 도태될 것이다.

생명이 정말로 도태되는 것 그것은 두려운 것이다. 사람들이 본 사람이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그것은 생명의 사망이 아니다. 사람이 죽으면 단지 한 층 가장 표면적인 물질공간으로 구성된 껍질이 벗겨진 데 불과하며 마치 옷을 한 꺼풀 벗은 것과 같다. 그러나 진정한 생명은 이미 또 육도에 들어가 윤회하게 된다. 물론 수련 중에 사람이 일생을 마친 후 그 중의 일부 잘 수련된 副元神(푸왠선)은 데려가게 된다. 그러나 그것 역시 이 사람이 아니다. 이는 사람이 일생을 마친 후의 이런 한 가지 표현이다. 오직 대법이 창립한 수련만이 비로소 진정하게 사람을 성취하게 할 수 있다. 사람이 온 목적, 사람이 존재하는 목적, 이는 역사상 여태껏 모두 미혹이었다. 바로 그것이 미혹이기 때문에 모든 신이 다 모르고 있었고 또한 인류의 안정, 삼계의 안정과 사람의 안전을 유력하게 보장해 주었다.

이러한 미혹의 밑바닥이 현재에 이르러 잇따라 모두 드러나게 되었고, 신·천상의 생명도 잇따라 역시 모두 명백해졌으며 진상을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대법을 전하는가? 왜 인류에게 이처럼 큰 법을 전하는가? 사람은 어찌하여 그렇게 큰 복이 있는가? 그러한 신들은 늘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사람을 중히 여긴다고. 말 밖의 뜻이란 당신은 우리를 중시하지 않으며 정법 중에서 우리에 대해선 그처럼 엄격하나, 사람에 대해선 당신이 그처럼 너그럽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그것이 이런 말을 하지 않았고 이런 말을 하는 신이 없다. 다시 말해서 삼계·세간·인류, 이 일체는 전반 우주에 관련되며 전반 우주의 무량무계한 중생들이 구도 받는데 관련된다. 그 속에 그 고급생명, 극히 높은 층차의 생명도 다 무량무계하다. 이 일이 중대하지 않단 말인가? 그러나 사람으로 말하면 장기간 미혹 상태에 처해 있었고 삼계 자체는 진상을 볼 수 없다. 진상을 보지 못하므로 삼계 중에 틀림없이 사람이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종의 상태를 마련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미혹 중에서 필히 이런 상태 속으로 빠지게 되며, 생존을 위하여 서로 상해하고 서로의 이익을 위하여 다투고 싸운다. 표현이 평화롭든 강렬하든, 모두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이며 모두 이기적인 목적이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사람에게 이런 상태를 배치해 주었으므로 오직 제한된 상태라면 사람의 잘못으로 여기지 않는다. 장기간 이런 환경 속에서, 이 미혹된 상태에 처하여, 일단 대법이 전해지면 역시 결국 사람에게 법을 인식할 수 있는지 없는지, 오랫동안 사람 속에서 봉폐된 이 껍데기를 타파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문제를 가져왔다. 이는 사람으로 말하면 지극히 중요한 문제로 되었다. 이는 사람에 대해 말하자면 보기에는 공평하지 않은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공평한 것이다.

사람이 사람 속에 와서 이 환경에서 누가 제한된 상태를 벗어나 생존하면서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상해하고 나쁜 짓을 한다면, 그가 바로 이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고 그가 바로 이 중대한 일 자체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럼 대법이 전해지는 중에, 대법제자가 수련하는 이 과정 중에서, 법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사람이 역사상 빚은 업력의 다소(多少)가 필히 사람과 수련인에게 같지 않은 정도(成度)의 어려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법을 얻을 수 있는지 없는지, 끝까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같지 않은 사람에 따라 교란도 같지 않다. 번거로움은 모두 자신이 과거에 빚은 것이며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누가 법을 얻을 수 있는가? 누가 이 껍데기를 타파할 수 있는가? 누가 진정하게 이지적으로 이 법을 인식할 수 있는가? 그것을 중생으로 말하자면, 이 한 점으로부터 본다면 그것은 곧 공평한 것이다.

이처럼 큰 한 가지 중대한 일, 그것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가 하는 이것은 사람으로 말한다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미혹 그것은 사람에게 이런 일종의 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진리를 볼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이 진상을 볼 수 있는지 없는지, 당신이 이 한 부의 법을 접촉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이것은, 중생으로 말하면 미혹 중에서 확실하게 모두 아주 큰 어려움을 구성하였다. 그러므로 오늘 이 자리에 앉은 대법제자들이 전 인류의 모든 사람은 아니다. 물론 내가 이야기하였다. 대법을 전함에서 중생에 대하여 모두 평등하며, 계층을 보지 않고 직위를 보지 않고 오직 사람의 마음만을 볼 뿐이며, 오직 대법에 대한 태도만 볼 뿐이라고. 사실 전반 정법 중에서 모두 이런 일종의 가장 너그럽고 가장 자비로운 방식으로 하였다. 생명이 역사상 저지른 잘못을 탓하지 않는다. 당신이 역사상 얼마나 큰 죄를 범했고 얼마나 큰 잘못이 있든지 전부 다 보지 않고 바로 오늘날 정법에 대한 태도를 보는데, 바로 대법에 대한 태도를 본다. 바로 이런 한 조항이다. 나는 대법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건 당신이 기회와 인연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대법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당신이 대법을 승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곧 미래를 승인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는 바로 이 한 부의 법이 창설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법 중에서 전반 우주는 이미 기본적으로 곧 마무리 짓게 되었다. 나는 이전에, 마치 천칭(天平)처럼 구 우주와 새로운 우주 사이에, 새로운 우주의 비중이 갈수록 더욱 크고 정법을 끝마친 것이 갈수록 많아져서 마치 천칭처럼 눌려 내려갔다고 말했다. 현재는 이런 문제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새로운 우주는 이미 아주 완전하게 곧 성취될 것이다. (열렬한 박수) 남은 일은 모두 최후의 요소이다. 이런 것들을 다 해결한 후에는 최후의 정법은 곧 결속 짓게 된다. 정법이 결속되면 새로운 우주 역사가 곧 시작되며 최후에는 단지 인간세상만 남는다. 인류의 이 지구·삼계의 범위를 포위하고 봉폐시키며, 아울러 새로운 우주로부터 그것을 이탈시킴으로써 대우주와 이탈되게 한다. 현재 과학자들도 발견하지 않았는가. 은하계와 우주는 갈수록 멀어지고 있고 급속하게 이탈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는 걸어간 하나의 과정이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우주가 정법을 마친 후, 삼계 내의 모든 생명이 일으킨 작용은 새로운 우주에 오염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이탈시켜야 한다. 봉폐하여 단독으로 하는데, 그것이 바로 법정인간시기이다.

대법제자가 이 기간 수련에서 감당한 책임은 곧 이처럼 크고, 곧 이처럼 큰 것이다. 여러분은 알아들었는가. 원래 인류가 존재한 목적과 대법제자의 수련상태는 이러한 것이다. 그럼 여러분은 세간에서 수련하는 이런 형식에 대하여 마땅히 더욱 명확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비로소 수련이며, 이것이 비로소 진정하게 삼계 생명에게 배치한 수련이기 때문이다. 이전에 출현한 일체 그것은 모두 인류에게 문화를 다져주기 위한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비로소 사람이 진정하게 되돌아 승화하는 최후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수련 중의 수련자에 대한 요구 역시 다르다. 사부는 법을 전하는 중에서 여러분더러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정진하고 정진하지 않는 것이 모두 그 속에 있으며, 어떤 과위를 성취하는가도 모두 그 속에 있다. 대법은 속인 사회 속에서 창립한 것으로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이런 수련형식에 부합되어야 한다. 많은 사람은 이것을 모두 우리 수련의 너그러움과 편리함으로 이해하고 있지만, 정진하는 그런 수련생들은 이렇게 이해하지 않는다. 이는 대법제자가 수련 중에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한 매 한 가지 일은, 가령 당신이 속인 중에서 가정 관계를 잘 평형 시키고 사회적인 관계를 잘 평형 시키려고 하면, 당신의 직장에서의 표현, 사회에서의 표현은 간단하고 간단하게 적당히 얼버무려서 될 일이 아니다. 이 일체는 바로 당신의 수련형식이며 이는 엄숙한 것이다.

많은 수련생은 다만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 것을 수련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그것은 직접 법의 일면을 접촉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착실히 자신을 수련하고 있을 때에 당신이 접촉하는 사회가 바로 당신의 수련환경이다. 당신이 접촉하는 직장환경, 가정환경 그건 모두 당신의 수련환경이며, 모두 당신이 반드시 걸어야 할 길로써, 반드시 대면해야 하고 반드시 정확히 대면해야 하는 것으로, 어느 한 가지도 적당히 얼버무릴 수 없다. 최후까지 걸어왔는데, 사부가 당신들에게 배치해 준 이런 한 갈래 길을 당신들은 어떻게 걸어온 것인가? 이 일체는 최후에 보지 않을 수 없다. 수련과정 중에서도 이런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어느 한 가지 일도 홀시해서는 안 된다. 편리한 데 대하여 말한다면, 사람이 수련함에 있어 출가하지 않고 깊은 산으로 들어가지 않고 세속을 이탈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른 한 방면으로 말한다면, 이 일체는 다른 하나의 어려움을 조성하는바, 당신은 그 일체를 잘해야 하며 어느 방면이든 모두 잘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다.

물론 내가 이야기했듯이 서로 다른 사람은 법에 대한 인식의 높고 낮음도 모두 다르며, 또한 신수련생이 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내가 가정 일을 잘하는 것이 바로 수련이다. 부모·형제랑 우리가 더욱 친밀하면 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또 새로운 집착으로 들어갔고, 극단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을 다 잘해야 하지만 오히려 지나치면 안 된다. 지나치기만 하면 또 집착이다. 아울러 대법에 대한 태도는 바로 잡아야 하며 자신을 진정한 수련인으로 여겨야 한다. 어떻게 정진하고 어떻게 법을 대하고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는 당신이 책을 보는 시간의 길고 짧음을 포함해서 모두 홀시할 수 없으며 따라서 더욱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당신들의 길이며 당신들이 걸어야 할 길이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속인 사회 중에서 나와야 하며 당신들은 바로 정법과 함께 있어야 하며 중생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 그러므로 비로소 이렇게 수련하는 것이다.

나는 이전에 말한 적이 있다. 모두 깊은 산으로 들어가고 모두 절에서 수련한다면, 당신은 광범위하게 사회를 접촉할 수 없으며, 당신은 더욱 광범위하고 그처럼 유력하게 중생을 구도하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이러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는 의도적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하라고 한 것이 아닌가? 이래야만 더욱 편리한 조건으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수련 과정 중에서, 당신이 제고해 올라오려 하므로 틀림없이 당신에게는, 수련인에게는 고험이 있고, 잘하지 못하면 끊임없이 번거로움이 나타날 것이며, 잘했어도 끊임없이 수련 중의 고험이 나타날 것이다. 당신들이 그것을 모두 교란으로 보고, 이 번거로움을 해결하기 위해 번거로움을 해결하려 한다면, 당신은 해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을 제고시키기 위해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번거로움을 통하여 내가 어떻게 교란과 관련된 일체를 정확하게 대할 수 있고 중생을 구도하는 목적에 입각하여 잘 평형 시킬 수 있는가, 내가 어떻게 중생들을 위하여 책임지며 이런 일이 나타남을 마침 진상을 알리는 계기, 마침 진상을 알리는 좋은 기회로 여길 것인가.’하며 정념으로 그것을 대해야 한다. 당신이 평소 남들에게 찾아가 진상을 알리려면 이유 없이, 아무런 연고 없이 누군가를 찾아가면 그는 당신을 만나려 하지 않는데, 이 교란은 바로 당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당신은 바로 가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는 자신의 수련 외에, 당신들의 가장 큰 책임은 바로 중생을 구도해야 한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되겠는가? 잘하지 못하면 되겠는가? 그러므로 나타난 모든 문제를 당신이 바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교란이라고 간주하지 말아야 하며, 자신이 법 공부하는 것에 대한 교란, 자신이 진상을 알리는 것에 대한 교란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문제가 나타나면 바로 진상을 알릴 기회이다.

삼계에서 문제를 보는 것은 모두 거꾸로 된 것이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인류가 보건대 좋지 않은 것은 흔히 모두 좋은 것이다. 인류가 보건대 좋은 것은 흔히 모두 좋지 못한 것이다. 세간의 이치는 거꾸로 된 것이 아닌가? 사람은 자신이 고생하면 좋지 않다고 여기는데, 속인으로 말하자면 고생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업력을 감소시키고 죄를 감소시킬 수 있는 것으로, 한평생 아주 많은 고생을 하면 다음 생에 복보(福報)를 얻는다. 다음 생에 돈이 있고 큰 관리가 된다. 왜냐하면, 당신이 전생에 좋은 일을 하여 복을 쌓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온갖 나쁜 짓을 하여 복덕이 조금도 없고 아주 많은 업력을 쌓는다면, 내세에는 복보(福報)가 없고 누릴 복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 업력을 갚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생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는가 하면, 또 사람한테 멸시당하며, 심지어 이 사회가 그에게 어떻게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것인데, 사실 모두 전생에 빚진 것을 갚고 있다. 이는 사람 여기로부터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자로 말하면 이 환경은 바로 수련인에게 제고하는 기회를 준 것이 아닌가? 대법제자 모두가 고생하는 그것을 소업이라 여기고, 동시에 또 자신의 제고에 기회를 창조한 것으로 여기며, 그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면, 업을 갚는 것 외에 또 이런 기회를 이용하여 마땅히 해야 할 것을 잘할 수 있다. 비록 어려움은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넘어야 할 고비이다.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고 자신과 이 모순의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다면 정확하게 걸어 나갈 수 있다. 그럼 당신은 이 한고비를 넘은 것이고 당신의 층차는 제고되었고 경지는 제고되었으며, 당신의 공(功)도 올라갔다. 그렇지 않은가? 정법 수련의 전반 수련과정이 바로 이러하지 않는가?

기억하라, 사람의 이치는 거꾸로 된 것이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서 부딪힌 번거로운 일, 그것을 모두 자신의 올바른 일에 대한 교란이자 자신의 올바른 일에 대한 충격, 즉 모순이 온 것으로 보지 말고, 나의 이 일이 주요하고 그 일이 주요하다고 여기지 마라. 사실 많은 일은 반드시 당신이 본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당신들의 진정한 제고 이는 영원히 모두 제1위이며, 당신들 자신의 수련원만 이것은 영원히 모두 제1위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렇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데, 당신이 나의 이 수련 제고가 가장 중요하므로 누구도 교란할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럼 당신은 또 틀렸다. 교란은 제고할 기회가 아닌가? 사부인 나로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당신의 제고가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제고할 때 오히려 당신으로 하여금 평탄한 길을 걷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온몸에 업력을 가득 지니고 하늘에 올라간다면, 한 꾸러미 짐을 끌고 하늘로 올라간다면, (모두 웃음) 이 어찌 되겠는가? 나는 당신에게 일부 고비를 설치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그 마음들을 내려놓게 하고, 그 짐을 내려놓게 해야 한다. 하나하나의 관(關)마다 당신은 끊임없이 집착과 사람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 것으로, 그런 것을 모두 지닌 채로는 부동(不同)한 관을 넘어갈 수 없다. 그러므로 관이 오기만 하면 당신은 번거로움이 왔다고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곳곳마다 사부를 찾는다. ‘아이고, 내가 어떻게 해결하겠는가?’ 내가 어찌 당신에게 해결해줄 수 있겠는가? 내가 해결해주면 당신은 이 관을 넘기지 못한 것이다. 이 관이 허물어졌으니 당신은 다시 큰 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그러므로 나는 그 한 관을 없애줄 수 없다. (웃음) 이러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나는 수련이란, 여러분은 무엇이 수련인지 진정하게 알아야 하고, 진정하게 이지적으로 자신의 수련에 책임져야 하며, 정말로 정념으로 당신들이 부딪히는 일체 일들을 대해야 하며, 정념이 강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지난번 미국서부법회에서 대법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모두 남의 말을 듣는 것을 두려워함에 대해 말하지 않았는가. 말해서는 안 되고, 말하기만 하면 폭발하고 언짢아하며 남들과 충돌이 발생하는데,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고 한다. 당신은 바로 평탄한 길을 걸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당신의 큰 짐을 끌고 하늘에 올라간단 말인가? 바로 이 뜻이 아닌가? 속인의 모든 좋지 않은 마음, 당신의 각종 집착을 당신은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남이 말함을 두려워하는 것은 집착이 아닌가?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고 하는데, 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바로 당신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하여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는가 안 움직이는가를 본다. 사람이 신에게 뭐라고 말해도 신은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며 당신은 그를 움직일 수 없다. 그는 아예 당신이 하는 일이 그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그를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신은 오로지 사람 마음을 통제하여 사람을 이끌어 어떻게 할 뿐이다. 사람이 신을 이끌려고 하는 것이 어찌 가능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이 신이 되고자 한다면 바로 이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 집착을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람한테 이끌릴 수 있는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설령 대법제자가 당신에게 만들어 준 번거로움이라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은 이것은 속인이 내게 만들어 준 번거로움이 아니기에 넘기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건 당연하다. 대법제자는 신이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사람이 수련하고 있다. 사람이 수련하기에 각종 사람 마음이 돌아 나온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는 이 수련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생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뿐, 이 환경 속에서 모두 신과 같이 순정(純淨)하게 되는 이것은 해낼 수 없는 것이다. 이 환경은 속인의 환경보다 더 많이 좋아야 한다. 단지 이러할 따름이고 아울러 갈수록 더 좋아질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 이 환경 속에서 또한 각종 사람 마음의 표현이 나타날 수 있고 심지어 아주 좋지 못한 표현이 나타날 수 있다. 당신들은 줄곧 걸어오면서 이런 것들을 다 보지 않았는가? 이는 모두 정상적이다.

그렇다. 아주 많은 사람이 대법이 좋지 못한 영향을 받음에 대해 아주 조급해하고 있다. ‘이 동수가 어찌하여 이렇게 좋지 않게 할 수 있는가?’라고 여긴다. 그렇다. 여러분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면 이 환경을 수호할 수 있으며 이 환경은 끊임없이 순정해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나타날 것이고 사람 마음은 여전히 표현될 것이다. 나는 전체적으로 보고 있으며 나는 그것이 수련환경 속에서 반드시 나타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수련과정 중에서 반드시 점차 제거될 것임을 알고 있다. 수련이라 최후에 여러분은 모두 제고될 것이다. 이것 또한 나는 알고 있다. 이 환경 속에서 수련은 이러할 것이다. 그러나 매 개인마다 모두 자신을 느슨히 해서는 안 되며 또한 남이 대법의 명성에 손실을 조성하는 것을 보고도 무관심하면 안 된다. 이는 당신들에 대한 요구이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여러분은 모두 법을 수호하고 법을 실증하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당신들의 책임이다. 그러므로 수련과정 중에서 단지 당신이 상상한 것과 같이 수련을 제외하고 이것이 주요하다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다른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예를 들면 가정이 중요하지 않고 사회가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선 안 된다. 그러한 관계를 잘 평형 시켜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당신이 걸어야 할 길이다. 나는 최대한도로 속인 사회의 형식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다. 그렇다, 어떠한 사람이든 다 있다. 법을 파괴하는 것들은 아직도 수련생을 전향시키는 노동교양소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부님께서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하지 않았는가? 당신은 속인 속에 돌아가서 더는 배우지 마라, 책을 바쳐라.” 그렇다. 어떠한 사람이든 모두 있다. 물론 가장 근본적으로는 당신이 수련인인가 아닌가? 이다. 당신이 법마저 이탈했는데, 당신은 무엇을 수련한단 말인가? 속인 역시 많은 사람이 나를 사부라고 부르지만, 그는 수련인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나를 사부라고 불렀다고 하여 모두 수련인인 것은 아니다. 당신이 진정하게 실질적으로 수련해야 하고 진정하게 자신을 한 수련인으로 여기고 대해야 한다.

방금 이만큼 말했다. 여러분의 이 법회는 여전히 실질적인 효과가 있게 열려야 한다. 조금 전에 수련생의 발언을 들으니 여러분은 회의를 모두 아주 열렬하게 열고 있으며 아주 좋다. 그러므로 나는 아주 기쁘다. 여러분의 시간을 많이 점유하지 않을 것이며, 여러분을 만나보고자 왔다. 매번 올 때마다 하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이고, 또 하나는 여러분과 만나기 위해서이다. 어떤 사람은 사부가 있고 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그 일체를 잘하도록 하라, 여러분 감사하다. (장시간 열렬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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