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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춘(長春) 法輪大法(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설법

 

李 洪 志
1994년 9월 18일

 

여기에 앉은 여러분은 모두 보도원과 골간(骨幹)으로서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설립, 특히 창춘(長春)의 法輪大法(파룬따파) 설립에서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러 연공장의 수련생들이 매우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다. 우리 보도원이나 골간은 일부 문제에 대해 해답하기 어려워하거나 해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다. 한 가지는 법에 대한 이해가 투철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전수반(傳授班)에서 모든 것을 다 알려 주었기에 오로지 법을 투철하게 이해하기만 하면 무엇이나 다 해답할 수 있다. 이것이 한 가지 원인이며 또한 가장 주요한 원인이기도 하다. 또 한 가지는 수련생들이 제기한 일부 구체적인 문제들은 해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보도원이 직접 수련생과 접촉할 때 많은 구체적인 문제는 해답하기가 그리 쉽지 않다.

나는 줄곧 이런 한 가지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내가 법을 이미 보편적이고도 개괄적으로 말하였으므로 당신 자신의 수련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이 법에 따라 하면 된다. 만약 무엇이나 다 말해 준다면 당신 자신은 수련할 것이 없으므로 나는 더 많이 말할 수 없다. 더 말한다면 내가 당신을 끌어서 올려놓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은 것은 일부 실제적인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수련생들은 여전히 묻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는 나에게 묻지 못하므로 또 우리 보도원이나 연공 시간이 비교적 긴 노(老) 제자에게 묻고자 한다. 그러나 보도원이나 노 제자들도 자신이 직접 부딪쳐보지 못한 문제는 역시 해답하기가 쉽지 않다.

내가 왜 여러분들에게 함께 단체 연공을 하라고 하는가? 문제에 부딪혀 서로 연구 토론하고 공동으로 탐구하면 이러한 문제 역시 해결할 수 있다. 자기 혼자서 연공하다가 문제에 부딪히면 알 수가 없어 매우 곤혹스럽지만, 연공장에서 여러분들이 공동으로 연구하고 토론하면 많은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사실 한 문제를 파악함에 心性(씬씽)에서 찾는다면 어떠한 문제든 모두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또 일부 실제적인 문제는 보도원들도 해결하기가 확실히 아주 까다로우므로, 이런 문제들을 위해 내가 여러분에게 한 차례 모임을 갖게 한 것이다. 이 역시 창춘 보도원들의 남다른 소득으로서 다른 지역에는 아직 이런 기회가 없었다. 내가 이번에 돌아와서 많은 문제를 처리해야 함을 수련생들이 모두 알고 있기에 되도록 나를 방해하지 않았다. 전화벨이 한 번 울려도 나를 몹시 교란할 수 있다고 여겨 많은 수련생은 전화조차 걸지 않는데, 나는 이 점을 알고 있다. 여러분을 소집함은 여러분에게 일부 문제를 해답해 주려는 데 있다. 총보도소에서 일부 수련생의 심득체험, 그리고 일부 귀납(歸納)한 문제도 보내왔지만 나는 미처 보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세 번째 책-『전법륜(轉法輪)』을 수정하고 있으며 또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함은 주로 여러분이 앞으로 일함에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말해야겠다. 이 자리에 앉은 보도원들은 책임을 져야 하는데, 동작을 보도(輔導)하는 것만 책임져서는 안 되며, 마땅히 법(法)을 투철히 이해하고 진정으로 파악해야 한다. 책을 많이 읽고 녹음을 많이 들어야 한다. 최저한도로 일반 수련생보다 많이 알아야만 비로소 진정하게 보도원을 잘할 수 있으므로 법에 대한 이해는 반드시 명확해야 한다. 수련생이 무슨 문제가 있다면 최저한도로 일반적인 해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비록 지도적 역할을 한다고는 말할 수 없더라도 대체적으로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하게 고층차로 공을 전(傳)하는 그것은 바로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며, 바로 진정한 수련이다. 만약 이렇게 본다면, 그것은 절에서나 혹은 심산(深山) 수림 속에서 전문적으로 수련하는 것과 무슨 구별이 없다.

우리 이 법은 주로 속인사회 중에 열어놓았으며 대부분은 속인 중에서 수련한다. 그래서 우리는 속인 속에서 수련하는 수련인의 표현이 마땅히 속인과 기본적으로 일치할 것을 요구한다. 간단히 말해서 우리 한 연공장의 책임자는 곧 절에서 수련하는 주지(住持)나 방장(方丈)과 같다. 나는 다만 비유를 했을 뿐이고 우리에게 관직을 주거나 요구조건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우리는 바로 이런 일종의 수련형식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은 그래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 무리의 수련인을 잘 이끌면 공덕(功德)이 무량(無量)한 일이다. 잘 이끌지 못했다면 바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곧 이런 하나의 목적에서 여러분을 소집하였다. 총보도소의 책임자가 나에게 이런 문제를 말했다. 다시 한 번 수련반을 열지는 않으십니까? 내 생각에 이 법을 너무 명료(明瞭)하게 말해도 여러분의 수련에 불리하다. 그렇게 되면 속인 중의 이치가 되어버리기에 우리는 속인 속에서 어떠어떠하게 수련하는 문제를 말할 필요가 없다. 잠시 후 나는 쪽지로 올린 이런 문제들에 대해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겠다. 나머지 시간에 여러분이 무슨 문제가 있으면 더 제출하라. 그 무슨 지식 탐구에 관한 것은 제출하지 말고, 국가 정책에 관련된 문제도 제출하지 말라. 우리가 수련과정 중에 부딪히는 비교적 전형적인 문제, 주로 이런 문제들을 해답하겠으니 여러분은 제출하라.

우리가 회의에 참석하라고 통지한 것은 다만 보도원과 대법 일꾼들이다. 앞으로 통지를 받지 못한 사람을 절대 데리고 오지 말아야 한다. 사람이 많이 오면 어떤 일들은 처리하기가 어렵다. 모두 보도원이기 때문에 본래 좀 높게, 좀 구체적으로 말하여 앞으로 보도원 업무에 편리하도록 하고자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신수련생으로서 수련반에 한 번밖에 참가하지 못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아직 수련반에 참가한 적도 없는데 단번에 이렇게 고심(高深)한 것을 들으면 받아들이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에 그에게 좋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며, 또한 쉽게 그의 사상에 저촉(抵觸)하는 정서를 생기게 하여 이 사람을 망칠 수도 있다.

보도원은 책임을 지고 신수련생들의 동작이 정확하지 않으면 바로잡아 주어야 한다. 일부 노수련생들의 동작은 이미 괜찮다. 약간 차이가 있는 것은 연공이 끝난 다음 알려 주라. 입정(入靜)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연공 중일 때는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신수련생은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고, 일부 사람이 문의하면 인내심 있게 잘 해석해 주어야 한다. 우리 연공장의 모든 수련생은 중생을 널리 제도해야 하는 이런 책임이 있다. 무엇을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이라고 하는가? 중생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하게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와서 묻는데 당신이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되겠는가?

보도원의 연공은 반드시 전일(專一) 해야 한다. 전일 하게 연공하지 못하는 그런 수련생들에 대해 그에게 알려주고 그를 도와주어야 한다. 확실하게 전일 하지 않고 그가 그의 그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한다면, 그에게 여기를 떠나 다른 공(功)을 연마(練)하라고 권고하여 우리 수련생을 교란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만약 그가 정말로 가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는 연마(練)해도 얻지 못할 것인바, 이것은 오성(悟性)이 좋지 못해서다. 우리 불가(佛家)는 자비를 출발점으로 하기 때문에 그를 한번 혼내주겠다고 하는 그것은 안 되며, 심하게 정법(正法)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함부로 내쫓을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남에게 병을 봐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우리 연공장에 와서 병을 보게 하는데 이는 모두 대법을 파괴하는 짓이다. 이것은 하나의 매우 엄숙한 문제로서 누구도 이렇게 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만약 이렇게 했다면 곧 나의 제자가 아니다. 만약 보도원이 이렇게 했다면 즉시 사람을 바꿔야 하는데, 이 두 가지 현상은 확실하게 근절시켜야 한다.

보도원은 일에 대해, 되도록 책임을 져야 하며 번거로운 일이라도 주동적으로 해야 한다. 어떤 보도원은 아마 나이가 많아서 법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할 수 있는데, 자신의 감각은 좋지만, 설명이 분명치 않다면 조수(助手)를 찾아서 보도원 일을 협조하도록 할 수 있다. 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 당신 개인의 득실(得失)에 따를 것이 아니다. 당신 개인의 득실이라 하더라도 법과 서로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보도사업을 함에 개인적인 각종 염두를 섞어 넣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개인과 단체 수련에 모두 영향을 줄 수 있다. 보도원의 동작은 되도록 정확해야 하며 되도록 비디오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아야 하는바 대체로 같아야 한다. 사소한 차이마저 없게 하기는 어렵다. 절대적으로 일치하여 모두 하나의 목판으로 찍어낸 것처럼 같아야 한다면, 그렇게는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일치하면 되지만, 단 차이가 너무 크면 안 된다. 특히 보도원인 당신이 그런 상태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면 곧 빗나가게 된다.

다음으로 문제해답을 시작하겠다.

제자: 형신구멸(形神俱滅)은 어떤 상태입니까?

사부: 형신구멸(形神俱滅)은 하나의 오랜 용어로서 우리는 그것을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고 한다. 구(俱) 자의 발음이 좋지 않다. 멸(滅)은 곧 흩어져버린다는 것인데, 구(俱)와 취(聚)는 음이 같고, 취(聚)는 곧 그에게 합한다는 것이므로 우리는 앞으로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고 부른다. 물론 책에는 여전히 형신구멸이라고 씌어있기도 하다. 이 책은 아직도 과도기의 도서에 속한다. 우리가 첫 번째 책, 『파룬궁』을 써냈을 때는 저층차의 기공과 일부 방면에서 아주 유사했다. 두 번째 책 『파룬궁』(수정본)은 기공보다 훨씬 높아졌다. 나는 지금 내가 강의한 전체 법을 정리하고 있다. 장차 써내면 곧 우리를 지도하는 진정한 수련대법으로 될 것이다. 새 책에서는 많은 어휘가 다 바로잡힐 것이다.

형(形)이란 곧 유형(有形)의 신체(身體)를 가리키는데 그것은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이 물질공간의 신체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각 공간에는 모두 당신의 신체가 존재하는데, 모두 유형적이며 모두 물질 존재이다. 줄곧 극히 미시적인 데에 이르기까지 모두 신체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얼마나 많은 공간이 있으면, 곧 사람은 그만큼 많은 신체가 있다. 형신전멸이란 곧 이런 신체들이 모두 존재하지 않음을 가리킨다.

신(神)이란 곧 사람의 元神(왠선)을 가리킨다. 主元神(주왠선)이거나, 副元神(푸왠선)이거나, 각종 생명체를 막론하고, 형신전멸 할 때면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다! 전체 우주 중에서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은 없는바, 전멸해 아무것도 없다. 물론 무한히 미시적인 물질은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진공(眞空) 역시 물질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현대 물리학의 연구는 겨우 중성미자 이 층차에 도달했을 뿐인바, 그 최소의 물질은 중성미자이다. 이는 물질의 근원인 본원 물질(本源物質), 최소의 생명인 본원 물질과는 아직 그 거리가 상당히 멀고 상당히 멀다. 극(極)미시하의 물질이 훼멸(銷毁)되어 가장 원시의 상태로 될 때 우리는 형신전멸 한다고 말한다. 다시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물질은 곧 존재하지 않으며, 아주 높은 층차에 있는 대각자(大覺者)마저도 볼 수 없다. 또한 사유(思維)가 없고 완전히 흩어진 가장 미시적인 형식인데, 과거에는 고층차에서 대법(大法)을 위반했을 때만 이렇게 처리하였다. 인류의 훼멸 역시 이런 것으로, 그가 이미 가장 낮은 층차에 떨어졌기 때문에 나쁜 짓을 하면 곧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우주 중에서 철저하게 그를 제거해 버리는데, 사유가 없고, 거의 물질이라고는 없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훼멸된다.

제자: 남불(男佛), 여불(女佛)의 성별은 수련인(修煉人) 육신의 성별입니까, 아니면 主元神(주왠선)의 성별입니까?

사부: 사람이 수련하여 出世間法(추쓰젠파) 수련에 이르면 이미 나한과위(羅漢果位) 수련에 진입한 것으로서 곧 초과나한(初果羅漢)이다. 그러면 부처라고 말할 수 있는데, 사실 당신은 이미 불체수련(佛體修煉)을 하는 것이다. 나한은 초과나한(初果羅漢), 정과나한(正果羅漢)과 대나한(大羅漢)으로 나눈다. 매 층차의 거리는 모두 아주 크다. 대보살은 가히 불타(佛陀)라고 말할 수 있다. 나한과위에 도달하여 수련할 때 개오(開悟)하면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남자 몸(男身像)으로 나타난다.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에 당신 육신의 성별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육신이 잠시는 남자로 잠시는 여자로 된다면 무슨 모양이겠는가! 과거에 어떤 사람은 수련하여 나한과위에 도달해 원만(圓滿)에 이르렀다. 원만은 또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과는 같지 않다. 만약 사람이 단지 나한과위로 수련하여 원만하고 그가 더는 높은 데로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한다면 정(定)해지기 시작한다. 그가 일단 개공(開功)한 다음에는 원래 남자든 여자든 불문하고 모두 남자 몸으로 나타난다. 그의 신체는 그가 수련해 낸 불체(佛體)이기 때문에 나한과위에서는 모두 남체(男體)로 나타난다.

진정한 元神(왠선)은 남자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다. 그의 그 신체가 고에너지물질로 전화(轉化)된 것이든, 그가 수련해 낸 그 금강불괴지체(金剛不壞之體)이든, 열반(涅槃)할 때 부처가 그에게 준 그 불체이든, 나한과위에서는 모두 남자 몸(男身像)으로 나타난다. 보살 경지에 도달하면 모두 여자 몸(女身像)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元神(왠선)의 성별은 변하지 않는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그는 여전히 신체(身體)를 가지고 있지만 이런 신체는 고에너지물질로 구성된 것일 뿐이다. 더 높아도 신체를 갖고 있는데 바로 부동한 공간의 신체[불체(佛體)]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했을 때 성별은 主元神(주왠선)의 성별로 회복되어 남자 부처(男佛)는 곧 남자 부처이고, 여자 부처(女佛)는 곧 여자 부처이다.

제자: 本體(번티)와 불체(佛體)를 수련한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사부: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本體(번티)는 저층차 수련 중의 한 개괄적인 용어로서 당신의 각개 공간의 신체를 가리키는데 당신의 육체도 포함한다.

제자: 정법(正法)을 얻고 정과(正果)를 이루면 원만(圓滿)으로 여기는데, 그러면 저희가 어느 정도까지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한 것입니까?

사부: 원만과 우리 과위(果位)의 높고 낮음은 별도의 일이다. 당신이 나한과위까지 수련하면 당신은 이미 불체수련이다. 과거에는 오로지 여래(如來)만 부처라고 하였다. 지금은 부처가 비교적 많다. 구별하자면 여래 역시 일부 부처를 관할하는데 그런 일부 부처는 여래의 층차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보살을 초과하면 곧 부처라고 부른다. 대보살 또한 부처라고 부르며 심지어 나한과 보살까지도 부처라 불러 준다. 왜냐하면, 모두 불가(佛家)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나한과위로 수련되었으면 곧 불체수련 중에 있는바,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나 비록 당신이 불체 상태에서 수련하고 있지만, 당신이 꼭 원만 한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의 근기(根基)는 같지 않으며 감당능력 역시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보살과위로 수련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부처과위로 수련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더욱 높이 수련하여 여래의 과위를 능가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다만 나한과위로 수련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층차에 도달하든지 모두 이미 삼계(三界)를 벗어났고 모두 과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이미 정과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만했다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당신에게 보살과위(菩薩果位)에서 개오(開悟)하고 원만으로 수련성취 하게끔 배치하였다면, 설령 당신이 나한과위에 도달하였다 해도 당신이 아직 수련하는 최종목적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원만했다고는 할 수 없다. 바로 이런 한 층의 관계이다. 당신이 대가를 얼마나 치르고 수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한 만큼 얻게 마련이다. 당신이 비록 원만으로 수련되지 않았지만, 당신은 이미 과위를 얻었다. 그러나 어쨌든 아직 원만으로 수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또 하나의 층차문제가 존재하는바, 아직 수련의 최종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제자: 반본귀진(返本歸眞)은 정과를 얻는 것과 어떤 관계입니까? 본(本)과 진(眞)의 함의는 무엇입니까?

사부: 반본귀진(返本歸眞)과 속인들이 말하는 반박귀진(返樸歸眞)은 별도의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반본귀진은 곧 당신의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며 당신의 본성, 당신의 본질, 당신의 본래 면목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당신이 속인사회 속으로 떨어져 옴으로써 이미 당신의 본래 면목은 덮어 감춰져 버렸다. 속인사회 중에서는 흑백이 전도(顚倒)되고 시비(是非)가 전도되니 당신은 되돌아가야 한다. 귀진(歸眞)이란 도가의 용어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이것은 아주 커 이미 불가 자신의 범위를 벗어났는바, 일부는 도가의 설이다. 도가에서 수련성취 하면 바로 진인(眞人)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로 수련된 것인데 그들을 진인, 진정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제자: 저는 영원히 수련하고자 발원(發願)하는데 스승님께서 저희에게 배치하신 길과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영원히 수련하겠다고 발원하는데 이 영원 역시 절대적인 것이 아니지 않은가. 정과를 얻지 않고 원만하지 않으며 늘 수련한다고? 수련에는 목표가 있어야 한다. 수련해서 고층차에 이르는 것은, 당신 자신이 발한 소원과 실제로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에 근거하여 사부가 비로소 당신에게 배치하는 것인데, 모두 매우 과학적이다. 당신은 본래 한 덩이 강철(鋼)인데 당신을 철(鐵)로 배치한다면 그건 안 된다. 당신이 보살과위로 수련할 수 있는데 당신을 나한과위에 배치한다면 이 역시 안 된다. 매우 정확하게 보는 것으로 그곳에서는 조금도 잘못 보지 않는다.

제자: 우주 중에는 완전히 같은 것이 있습니까?

사부: 어느 수련방법이든 한 대불(大佛)이 한 법문(法門)을 주재하는 것은 같다. 그러나 수련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오늘 우리의 이 法輪(파룬)과 같은 것은 없다. 하지만 또 일부 회전(旋轉)하는 것이 있는데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잖은가. 밀종(密宗)에서는 의념(意念)으로 일종의 바퀴를 밀어 돌리고 있다. 이러한 유형의 것이 또 있는데 창춘(長春)의 모모(某某) 기공사 또한 태극 회전(太極旋轉)을 연마하지만 우리 이것과는 같지 않다. 그의 그것은 안으로 거둬들일 뿐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으로 우리의 것과 같지 않다. 행성(行星)은 항성(恒星)을 둘러싸고 돌고, 전자는 원자핵을 둘러싸고 돈다. 모두 선기(旋機)가 존재하지만, 내포는 천양지차다. 아마 두 가지 같은 것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극히 적고 적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해 주겠는데, 대각자들이 오늘의 이 일을 배치하였다면 우주 연화(演化) 과정 중의 일체 일은 모두 이 일을 위해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우주 형성의 초기에 이미 최후의 대사(大事)를 위해 배치하였다면 많은 일이 확실히 모두 오늘날 말겁시기에 최후의 한 차례 정법을 전하기 위한 배치일 것이다. 왜 본 세기(本世紀) 이 연대에 역사상 여태껏 없었던 기공 열조가 나타났는가.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왜 각종 각양의 공법이 나타나는가. 이것 역시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이는 속인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치 않다.

제자: 法輪(파룬)과 法輪世界(파룬쓰제)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부: 法輪世界(파룬쓰제)는 法輪世界(파룬쓰제)의 여래가 주재하는 대단히 방대하고 미묘(美妙)한 세계이다. 法輪(파룬)은 법(法)이 체현한 공(功)의 일면이기도 하고, 또 법 일면의 체현이기도 하다. 법의 한 면의 체현으로는 내가 강의한 법(法) 이외에 더욱 높은 법과 형태가 있지만 우리는 공개하지 않았으며, 또 공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공의 이 면을 나는 모두 도형으로 그려냈지만, 그는 또 법의 일면도 있다. 공의 일면은 바로 도형과 같은 이런 형식이다. 우리 수련생들은 수련하여 장래 정과를 얻어 과위(果位)가 있게 되면 스스로 法輪(파룬)을 수련해 낼 수 있는바, 단지 하나만 수련해 낼 수 있다. 당신이 아주 높은 층차에 도달해도 法輪(파룬)은 단지 하나일 뿐으로, 그것은 당신 자신의 체현으로서 내가 당신에게 준, 아랫배 부위에 있는 그 法輪(파룬)을 대체하는데, 그것이 당신의 진정한 과실(果實)이다. 그러나 法輪(파룬) 또한 법의 체현으로서 그는 분체(分體)할 수 있다. 당신이 신통(神通)을 조금 쓰면 그는 분체(分體) 될 수 있다. 당신 역시 얼마간의 法輪(파룬)을 내보낼 수 있지만 내가 오늘날 수련해 낸 그런 형식의 그렇게 많은 독립체는 있을 수 없다.

여러분 알다시피 이 法輪(파룬)은 그렇게 크고 진귀한 것으로서 수많은 세대의 사람들이 창조해 낸 것이다. 당신이 한 수련과정을 거쳐 내가 수련한 바의 이렇게 큰 것을 수련해 내기는 불가능하며 절대 불가능하다. 여러분이 하나의 法輪(파룬)을 수련해 낼 수 있다는 이 점은 틀림없다. 이 法輪(파룬)의 위력은 대단히 크다. 정말 이 공간으로 가져와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며 아주 굉장한 것이다. 당신이 장래에 수련해 낼 그 法輪(파룬)이 이 공간에서 돈다면, 내가 보건대 거대한 회오리 바람(龍捲風)이 휘몰아칠 것이다. 그의 위력은 대단히 크다. 왜 그로 하여금 속인사회에 나타나지 못하게 하는가? 왜 그로 하여금 이 공간을 뚫고 나와 작용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가? 바로 그의 위력이 실로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설령 그가 다른 공간에서 작용한다 하더라도 당신을 돌봐주기에는 충분하며,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제자: 法輪(파룬)이 우주의 축소판이라면 法輪世界(파룬쓰제)는 우주와 마찬가지로 큽니까?

사부: 아니다. 法輪世界(파룬쓰제)는 우리 이 우주에 있는 아주 높은 층차상의 한 단원(單元)세계이다. 우주는 매우 방대한 것이다. 일부는 신수련생이기 때문에 어떤 말은 내가 하기 어려운데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이 방대한 우주 중에는 무수한 소우주(小宇宙)가 있다. 인류는 하나의 소우주 속에 존재한다. 이런 소우주 중에는 무수한 은하계가 있다. 여래 층차의 부처는 소우주를 봄에 있어 변두리를 보아내지 못한다. 대우주(大宇宙)가 얼마나 큰지를 과거에는 인류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했는데 그것은 그야말로 너무나 방대하다. 사람은 수련과정 중에서 신체가 밖을 향해 확장될 수 있다. 즉 신체의 용량이 증대(增大)되는데 신체의 용량이 점차 크게 변하고 마음도 크게 변하며, 사상이 승화되고, 층차가 제고된다. 그러나 속인 이쪽의 신체는 변화를 보이지 않고 속인과 마찬가지로 있다가 오직 원만에 도달할 때에야 그는 비로소 합쳐진다. 그리하여 합하는 순간, 심지어 당신이 속인 중에서 법력을 체득하지도 못했는데, 당신을 데려간다. 왜냐하면, 그의 속인에 대한 교란이 너무 크기 때문인데 모두 이러하다. 나는 늘 말했다. 어떤 도사(老道)는 심산 속에서 다년간 수련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재주가 대단히 클 것이라고 여기지만, 사실 그들의 재간이 아주 작으므로 그들이 세간(世間)에서 신통을 열어놓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이 매우 적다. 그들도 속인사회를 파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자신도 끝장이게 마련이다.

제자: 학습반에 참가하지 않아도 法輪(파룬)을 수련해 낼 수 있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여러 차례 말했는데, 책을 보아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대법에 따라 수련한다면 당신이 가장 외진 곳에 혼자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모두 문제가 없다. 나의 책 속에는 나의 법신(法身)이 있고, 매 하나의 글자는 얕은 층차에서 보아도 모두 法輪(파룬)만큼 큰 것으로서, 당신이 의념(意念)을 굴리기만 해도 그는 무엇이나 다 안다. 진정하게 수련할 수 있다면 마찬가지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혼자서 책을 보고 연마(煉)하거나 연공장에서 노수련생과 함께 연마(煉)해도 다 된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수련하기만 하면 모두 얻을 수 있다. 다들 알다시피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지 않은 지 이미 이천여 년이 지났지만, 말법(末法)시기 이전에 아주 많은 승려가 수련해 나왔으며 어떤 사람은 수련한 층차가 아주 높았다. 당신이 반드시 사부 앞에서 친히 전수를 받아야만 수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자: 이 공간에 있는 제가 수련하여 法輪世界(파룬쓰제)에 가면 다른 공간에 있는 수많은 저도 수련하여 法輪世界(파룬쓰제)에 갈 수 있습니까?

사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만약 그들이 수련을 잘하여 당신과 전체적으로 일체(一體)가 된다면 당신의 호법(護法)으로 존재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좌우한다. 그를 호법이라 할 수 있는데 副元神(푸왠선)과 큰 차이가 없다. 만약 그가 잘 수련하지 못했다면 그는 안 되는 것으로 그 역시 독립적인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수련했으면 오로지 당신이 얻는 것으로, 수련하는 자가 얻는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점오(漸悟)하는 것인데 저희는 언제 점오상태에 들어갑니까?

사부: 우리 많은 수련생이 이미 점오상태에 들어갔다. 많은 수련생이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인데, 소리소문없이 괜찮게 수련했다. 내가 하얼빈(哈爾濱)에서 수련반을 열 때 말했다. 지금 사천여 명의 사람이 여기에 앉아 있지만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수련해 낼 수 있고, 장래에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도를 얻을지 나는 아직 낙관적이 못한데, 이는 여러분이 어떻게 수련하는지에 달렸다. 어찌 이 사천여 명이 단번에 성불(成佛)하고 사천여 명이 모두 점오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연공장에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는 사람 중 얼마나 되는 사람이 점오상태에 들어갔는가? 진정으로 실속 있게 수련(實修)했는가? 진입하는 점오상태가 같지 않은데, 당신이 점오상태에 들어간다 해서 곧바로 신통(神通)이 크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서 나는 말한 김에 한 가지 더 말하겠다. 우리 많은 사람이 이미 점오(漸悟)상태에 들어갔지만, 그는 늘 두려워한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가? 지금 인류사회에는 너무나 많은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방면을 나는 더욱 강조하는데, 공능이 나와도 상관하지 말고 천목이 열려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의 천목이 정말로 열렸고 또 아무런 추구하는 마음이 없다면 당신이 봐도 상관없다. 당신의 신통이 나왔다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는 좀 운용(運用)해도 문제가 없다. 이 점을 여러분에게 분명히 알려주는데, 그것을 집착심으로 간주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 자신의 법이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법을 좀 운용하는 이것은 집착심과는 별개의 일이다. 지금 어떤 사람은 이미 점오(漸悟) 상태에 들어갔지만, 그 자신이 두려워하고 늘 정색하며 사용하지 않는데, 사용하지 않아도 안 된다. 많은 사람은 천목이 열렸지만, 그는 늘 환각(幻覺)이라고 여기는데 이러면 안 된다. 열려서 볼 수 있으면 보도록 하라. 이는 상관없다. 집착과 체험은 별도의 일이다.

제자: 현재 삼화취정(三花聚頂)에 도달한 사람이 있습니까? 정과를 얻은 사람이 있습니까?

사부: 현재 많은 사람이 이미 삼화취정을 초과하였다. 원만에 도달한 사람은 아직 없다. 모두 과위(果位)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부동한 층차의 과위에서 수련하고 있다.

제자: 저희가 지금부터 각고(刻苦)의 노력으로 연공하고 心性(씬씽)을 닦는다면 일년 반의 시간에 出世間法(추쓰젠파) 수련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사부: 시간적 제한이 없다. 수련하고 안 하고는 당신 개인의 문제이다. 얼마만 한 높이로 수련하고 인내력이 얼마나 크며 감당 능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 역시 당신 개인의 문제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사부가 당신에게 시간을 정해 놓고 수련하도록 한다면 당신의 心性(씬씽)이 그 한 점에 도달할 수 있는가? 心性(씬씽)이 승화되어 올라갈 수 있는가? 법에 대한 인식이 그렇게 높은 데로 도달할 수 있는가? 속인 중의 집착심을 당신은 내려놓을 수 있는가? 개인의 이익 앞에서, 남과 다투는 일에서 당신은 내려놓을 수 있는가? 모두 자신이 수련해야 하는 것으로서 당신에게 규정해 줄 사람이 없고 시간적 제한이 없다. 다른 사람은 나한(羅漢)과위로 수련해 올라감이 아주 빠를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한평생 수련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당신 자신의 감당 능력에 달렸으며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한지 엄격하지 않은지에 달린 것으로, 이는 모두 자신의 문제이다.

제자: 저희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데까지 수련했지만 저희가 여전히 더 높은 데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방금 말하였다. 석가모니는 이미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의 제자들은 여전히 위로 수련할 수 있었다. 설령 사부가 정말로 세상에 있지 않는다 해도 나의 법신이 여전히 있잖은가. 나 또한 정말로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 형신전멸(形神全滅)되는 것도 아니다.

제자: 일부 사람들은 난(難)을 피하고자 연공하는데 그들의 결말은 어떠합니까?

사부: 그 어떤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연공한다면 모두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이 법을 대하는 인식 면에서, 사람에게는 하나의 인식과정이 있음을 당신은 용인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연공을 시작하는데, 나중에 점차적인 인식과정을 거쳐서야 고층차의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지금 고층차에서 법을 전하고 있는바, 사람들이 막 학습반에 들어왔을 때는 아직 어떤 일인지 모르다가 뜻밖에 고층차로 공을 전한다는 말을 듣는데, 우리의 설법을 통해 그는 점차 인식하게 된다. 당신은 그에게 이런 하나의 과정이 존재함을 용인해야 하는데 이는 확실하다. 그가 병을 치료하려는 마음, 난을 피하려는 마음, 그가 어떤 마음을 품고 왔든, 그는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만 비로소 수련의 목적에 도달할 수 있다. 설령 병을 치료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목적에 도달하고자 할지라도 그가 난을 피하려는 생각을 품고서는 역시 안 된다.

난(難)이란 사람 자신이 조성한 것으로 자신이 생생세세에 일부 좋지 못한 일을 해서 빚진 것이므로 갚아야 한다. 당신이 볼 때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 겪는 고통,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이 조성한 업력이 당신을 가로막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 또한 좋은 일로서 우리가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데에 이용하는데 그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부처로 수련될 수도 있고 또 마(魔)가 될 수도 있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업력이 존재하고 미혹 속에 있으므로 비로소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한다.

제자: 다른 공간의 많고 많은 저는 육신(肉身)의 층차 공간에 있습니까?

사부: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다른 층차 공간에 있다. 우리 인류가 가지고 있는 이 신체가 있는 공간 외에 동등한 층차 공간에 역시 사람의 신체가 있는 다른 공간이 있다. 그 공간의 사람은 우리 여기의 사람보다 훨씬 낫다. 그들은 명(名)과 이(利)가 없으며 단지 정(情)이 있다. 그러므로 그도 색신(色身)을 갖고 있다. 생김새는 우리 사람과 큰 차이가 없는데 우리보다는 잘 생겼다. 그러나 그들의 그 신체는 날아다닐 수 있으므로 그들은 길을 걷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리는 기본적으로 보이지 않고 날아서 오가는데, 이런 하나의 공간이 있다. 이는 동등한 층차 공간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공간에 관한 문제를 더 해석해 주겠다. 우리 지금의 과학자들은 전자가 원자를 에워싸고 돌고 있음을 연구해 발견하였는데, 그것의 운행은 우리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돌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닌가? 우리는 지금 그 전자 위에 무엇이 있는지 보아낼 수 있는 이런 현미경이 없다. 만약 당신이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위에 생명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말했지만,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오늘날 물리학의 인식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우리 현재의 과학수단은 아직도 극히 제한되어 있다.

제자: 많은 수련생이 주위환경, 병기(病氣), 흑기(黑氣)에 모두 지극히 민감해하는데 이는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이런 유형의 수련생은 모두 공이 나오는 것에 근접했으나 아직 기(氣)를 연마하는 낮은 층차를 벗어나지 못했다. 기를 연마하는 최고형식에서 유백체(奶白體) 상태로 들어갔을 경우 이러한 체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짧은 과정이므로 당신은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 두라. 당신이 지나치게 두려워하는 것 역시 일종 집착심이므로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일체를 모두 필연으로 간주하고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도록 하라. 이 층차를 지나가면 당신은 더는 체험하고 관찰할 수 없다. 공이 나온 후 당신의 신체는 공으로 둘러싸이게 된다. 이런 흑기, 병기는 당신의 신체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 감각이 없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心性(씬씽)이 끊임없이 제고되지만, 가부좌를 할 때 결가부좌를 하지 못해 억지로 무거운 물건으로 내리누르고 끈으로 묶는데 됩니까?

사부: 내가 알기로, 과거에 어떤 스님이 가부좌할 때 연자매・맷돌로 짓눌렀다. 하지만 연자매거나 맷돌이거나 모두 자원(自願)해서 한 것으로 다른 사람을 시켜 짓누른 것이다. 그러나 도사(道士)는 안된다. 도가(道家)가 도제(徒弟)를 거느림에 단지 한두 사람을 거느릴 따름인데, 그중에 다만 한 사람에게만 진짜로 전한다. 도제에 대한 단속도 아주 엄해 툭 하면 도제를 때렸다. 그는 제자가 감당해 낼 수 있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제자로 하여금 넘어가도록 한다. 그러므로 그는 일반적으로 다 강경한 방법을 취했다. 제자의 다리를 묶어놓고 손을 몸 뒤로 묶어 스스로 풀지 못하도록 하는데, 눕는다 해도 풀지 못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아파서 까무러친다. 과거에는 이렇게 한 것이 있었다. 그때의 수련은 대단히 고생스러웠다.

우리는 오늘날 이렇게 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 이 한 문(門)은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의 心性(씬씽) 제고를 지극히 중요하게 여기며 형체(形體) 상의 수련은 제2위로 여긴다. 당신은 될 수 있는 한 참고 견디어 당신이 다리를 트는 시간을 점차 늘리도록 하라. 하지만 엄격하게 규정하지 않는데,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석가모니 시대에는 계율(戒律)이 있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는 경서가 없었고, 어떠한 문자도 남기지 않았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난 후, 후인(後人)들이 석가모니가 한 말, 그것을 정리하여 경서로 만들었다.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많은 수련규정을 제정하여 계규(戒規)로 삼았는데 이는 문자로 남아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법이 있기 때문에 계율이 없다. 수련하는지 안 하는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두 법으로 가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수련함에 천편일률(千篇一律)로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말겁(末劫)시기에 이르러 어떤 사람은 아예 안 되는 것으로서 도화(度化) 내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훼멸(銷毁) 내에 속한다. 학습반을 열 때 아마 이러한 사람이 들어왔을 텐데 이끌려 왔을 것이다. 당신이 그에게 그렇게 하라고 했을 경우, 골절(骨折)될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격한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 자원적인 방법을 취하므로 당신이 참아낼 수 있다면 되도록 참고 견뎌야 한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정말 수련하고자 한다면, 정말 법의 위력을 느낀 사람이라면 모두 수련할 수 있는 것으로, 당신이 공력을 들여 한번 시험해 보는 것도 무방하다.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제자: 우주는 변두리가 있습니까?

사부: 우주는 변두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탐구하지 말라. 이 변두리는 너무나 크다. 여래 이 층차에서 가리킨 우주의 변두리는 모두 소우주의 변두리이다. 이 소우주는 인류는 물론, 여래 부처가 보아도 끝없이 넓어 탐측(探測)할 수 없는 것으로 그는 너무나도 방대하다.

제자: 『문예지창(文藝之窗)』 중에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리훙쯔(李洪志) 스승님께 길을 안내했다고 씌어 있는데 정말입니까?

사부: 이는 『문예지창』이 문예작품의 각도에서 쓴 것이다. 그 수련생은 강의를 두 번 들었는데 이해가 깊지 못했다. 첫 번 강의를 들을 때 그는 쓰기 시작하였다. 그는 아주 격동되었고 그는 이 대법이 너무나도 좋다고 여겨 쓰게 되었다. 두 번째로 강의를 들을 때 그는 글을 쓰려는 생각을 품고 들었다. 여러분 알다시피 오로지 아주 조용하게 들어야만 비로소 깨달을(領會)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는 여전히 잘 깨닫지 못한 채 우리 여러분이 보게 된 이 문예작품 형식으로 써냈다. 어떤 일은 예술적으로 각색한 것으로서 그 큰 구렁이에 대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관음보살이 나의 사부라고 하는데 그 역시 존재하지 않는 예술적 각색이다. 하지만 그의 목적은 좋다. 우리 이 법을 널리 선양(宣揚)하고자 한 것으로 동기는 좋은 것이다. 이 한 점은 반드시 인정해야 한다. 그의 이해가 제한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작품을 써내게 되었다. 문예작품인 만큼 그는 본래 문예란 이 각도에서 쓴 것이다. 왜냐하면, 소설은 가히 과장할 수 있는 것으로 신축성이 아주 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우리 학습의 지도적인 것으로 삼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중 오계(五戒), 십악십선(十惡十善)에 대한 것은 모두 원시불교 중의 것이다. 우리는 계(戒)를 말하지 않으며 수련하고 수련하지 않고의 표준을 우리는 법 중에서 모두 여러분에게 말하였다.

제자: ‘현법지극(玄法至極)’과 ‘선법지허(旋法至虛)’의 구별은 무엇입니까?

사부: 우리가 말한 현법지극(玄法至極)이란 하나의 개괄적인 용어이다. 이는 법을 전하는 초기의 이해문제이다. 이 ‘현(玄)’이 아니라 마땅히 돌 선(旋)자여야 한다. 우리의 법은 본래 원용(圓容)한 법이기 때문에 그는 회전(旋轉)하고 있는 것이며 法輪(파룬)은 바로 바퀴와도 같은 표현형식이다. 선법지극(旋法至極)이란 틀리지 않다. 가히 대단히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으며 극점(極點)에 도달할 수 있다는 바로 이 뜻이다. 선법지허(旋法至虛), 이것은 우리 수련과정 중의 하나의 용어이며 또한 우리 이 공(功) 중의 주결(咒訣)이기도 하다.

여러분 알다시피 그 주결이란 그것은 각자(覺者), 또는 이 한 법문 중에서 수련된 각자, 또는 이 한 법문 중에서 성취가 있는 각자를 불러와서 당신에게 호법(護法)해 주며 당신을 가지(加持)해 주는 이런 작용을 할 수 있다. 종교 중의 주문 역시 이 작용을 한다. 결(訣)을 외우면 공이 자란다고 하는데,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서, 그것은 단지 이런 작용을 할 뿐이다. 지허(至虛)란 역시 아주 높은 층차를 가리킨 것이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경지를 허계(虛界)라고 하는데 바로 이 뜻이잖은가. 도교 중에 늘 이 용어가 나타나는데 태극이 아직 형성되기 전을 태허(太虛)라고 한다. 바로 그것이 아주 높고 아주 원시적이라는 말이다.

제자: 가부좌할 때에 시간을 연장하기 위해 구결을 반복적으로 묵념(黙念)하며 천여 번 외우는데 法輪(파룬)이 변형될 수 있습니까?

사부: 구결을 외우는 것은 좋은 점이 있는 것으로 천여 번 외운다 하여 法輪(파룬)이 변형될 수 없다. 물론 당신이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에 당신은 알게 되는데, 대단히 높은 층차에 이르면 당신은 구결을 외울 수 없다. 당신이 외우는 진동력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당신이 늘 외운다면 윙윙거려 남을 진동하여 괴롭히기 때문이다.

제자: 왜 어떤 수련생은 연공(煉功) 후에 머리가 갈라지는 듯합니까?

사부: ‘갈라졌다(裂開)’면 맞다. 우리는 정수리를 열어줌을 말하는데 ‘갈라졌다’면 맞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갈라질 때 ‘팍’ 하는데 그리 큰 감각이 없다. 어떤 사람은 갈라질 때 천천히 열리는데, 아주 괴롭다. 하지만 일이란 두 방면에서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해 좋지 못한 것을 초래하고도 버리기 싫어한다. 그러므로 연공(煉功)할 때 법이 그 좋지 못한 것을 청리(淸理)하려 하기에 그 좋지 못한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머리가 아프게 하고 당신이 정법을 수련하지 못하게 하는데, 또 이런 상황이 나타날 수도 있다. 관건문제는 당신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법으로 가늠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러한 것을 버릴 수 있는지에 있다.

제자: 어떤 사람은 연공(煉功)할 때 머리에 식은땀이 나고 쇼크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우리 이번 학습반에 바로 이런 사람이 있으며 어느 학습반에서나 모두 있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신체를 청리(淸理)하여 병을 제거할 때면 모두 아주 강렬한 반응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공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병을 천천히 제거하기 때문에 반응이 그리 강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괜찮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그래도 정상적일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며, 때로는 이 공을 연마하고 때로는 저 공을 연마하며, 안정적이지도 못하고 心性(씬씽)도 높지 않다면, 아마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당분간 휴식하도록 권할 수 있으며 그에게 어떤 공을 연마한 적이 있는지, 또는 어떤 일을 잘못했는지를 물어보도록 하라. 그 상태가 지나간 다음 다시 연마하도록 해 보라. 왜냐하면, 지금 와서 연공하는 사람이 모두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고 보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 혈위(穴位) 안마를 해도 됩니까?

사부: 우린 무슨 혈위 안마를 하지 않는다. 世間法(쓰젠파) 수련에서 다른 사람에게 병 치료를 하지 못하도록 하므로 이런 것이 없다. 진짜로 수련하는 사람은 병이 없다. 나의 법신이 모두 제거해 버렸다. 마땅히 해야 할 것이라면 모두 해주는 것으로 무슨 혈위 안마의 일이 없다. 수련자의 업력을 안마로 제거할 수 있는가? 당신이 공을 갖고 다른 사람에게 안마를 해주게 되므로, 우리 역시 이렇게 하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만약 의사라면 그건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 속인 중의 직업이기 때문이다.

제자: 사람의 副意識(푸이스)는 사람의 일생을 동반하는데 그는 어떤 작용을 합니까?

사부: 사람의 副意識(푸이스)가 하는 역할은 주로 사람에게 무의식적인 상태에서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있다. 사람의 主意識(주이스)가 대단히 강할 때에는 그도 막아내지 못한다.

제자: 저는 가부좌할 때 어떤 때는 오랜 시간 다리를 틀 수 있으나 어떤 때는 단지 십 분밖에 틀지 못하는데 무슨 원인입니까?

사부: 그것은 정상적이다. 다리를 트는 것 역시 소업(消業)이므로 심적인 고통(苦其心志)과 신체적인 고생(勞其筋骨)을 겪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신체적인 고생(勞其筋骨)을 겪는가? 그것은 바로 연공 시간을 좀 길게 하고 다리를 튼 것이 좀 괴로워야 하는데 주로 이 두 방면에서 체현된다. 신체적인 고생 자체가 바로 소업과 제고의 과정이다. 다리를 트는 것이 소업이 아닌가? 그러나 이 업은 단번에 모두 다리로 몰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 덩이 한 덩이로 된 것으로, 한 덩이가 나오면 아파서 못 견딜 정도이지만 없어져 버리면 가뿐하다. 다리를 트는 것은 흔히 한동안 괴롭고 한동안 홀가분해졌다가 다시 괴로운데 모두 이러하다. 당신이 이 한 덩이 업을 없애버렸다면 이번에 다리를 트는 시간이 길 수 있다. 그러나 업이 막 나올 때에 당신이 다리를 바로 올려놓으면 아마 아주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참을 수 있을 때에는 가부좌한 시간이 마찬가지로 원래 얼마를 틀었다면 여전히 그만큼 틀 수 있는데 다만 아파서 견디기 어려울 뿐이다.

제자: 술을 마시면 연공인이 연마해 낸 생명체가 몸에서 떠나게 됩니까?

사부: 그렇다. 담배를 피워도 그렇게 될 수 있다. 당신 그것이 그을리기만 하면 그는 당신의 몸에 있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당신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다른 사람이 보기에 당신의 몸에는 공이 없다. 우리가 말했지만, 만약 진정하게 수련하려고 한다면 이까짓 것 집착심 하나 내려놓지 못하겠는가? 수련은 아이들 장난으로 간주할 수 없는바, 이것은 대단히 엄숙한 문제이다. 우리는 인류가 어떤 큰 번거로움에 부딪혀 명을 보존하기 위해 수련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것을 말하지 않으며 또한 이것을 일종의 동력으로 삼아 당신의 수련을 추동하지 않는다. 우리가 말하는바, 진정한 수련은 당신 개인의 영원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닌가?

불교에서, 사람들이 육도윤회(六道輪廻)를 말하는데, 속인사회 중에서 사람은 시간이 대단히 길다고 느끼지만, 시간이 더욱 긴 공간에서 보면 인류의 시간은 굉장히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두 사람이 거기에서 이야기하면서 한 번 머리를 돌려보니 당신이 출생했고, 두어 마디 이야기를 더 나누다가 머리를 돌려보니 당신은 이미 일생을 끝마치고 땅속에 들어갔다. 사람은 왜 인체(人體)를 가진 이 단계에서 다그쳐 수련하여 인체를 보존하지 않는가? 불교 중에서는, 일단 육도윤회에 들어가면 당신이 무엇으로 전생(轉生)될지 모른다고 말한다. 동물로 전생된다면 몇백 년, 몇천 년 만에야 비로소 다시 한 번 인신(人身)을 얻을 수 있다. 만약 돌로 전생되어 그 돌이 부서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올 수도 없는데 만(萬) 년이 지나도 나올 수 없다. 동물, 그것은 수련하지 못하게끔 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은 자체가 수련할 수 있는 선천적 조건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은 자연환경이 조성한 것이다. 그러나 동물이 높은 공이 나오게 되면 마(魔)가 되기 때문에 높은 공이 나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람의 본성을 갖추지 않았기 때문인데, 그것을 죽여 버려야 한다. 동물이 높게 수련되었다면 그것을 죽여 버려야 하기에 벼락으로 그것을 친다. 동물이 왜 사람 몸에 붙으려 하는가? 목적은 인체(人體)를 얻으려는 것이다. 인체를 얻는다면 정정당당하게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이러했는데, 동물이 인체를 가지고 있으면 수련하는 것을 허용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체가 있다 해도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려 하고 법을 얻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머리를 씻고 속인 중에 와서 얻어야 하는데, 지금 이것은 이미 고정불변의 규정으로 되었다. 아주 명백한 상태로 속인 중에 왔다 해도 다 안 되며, 머리를 씻은 다음 깨달음 속에서 수련해야 한다. 무엇이든 다 안다면 누가 수련하지 않겠는가? 그 부처도 층차를 제고하려고 속인 중에 와서 고생을 겪자면 역시 머리를 씻어야 한다. 그처럼 명명백백하게 무엇이나 다 보았고 무엇이나 다 안다면 누가 수련하지 않겠는가? 제고의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여러분에게 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로서 그 어떤 집착이든지 모두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바이다.

제자: 갱년기를 지난 노년 부녀가 생리가 오지 않았다면 수련할 수 있습니까?

사부: 갱년기를 지난 노년 부녀가 생리가 오지 않았다면 아마 수련에서 늦어질 것이다. 어떤 노년 부녀는 확실히 다그쳐야 하며 그녀들 중 일부 사람은 다그치지 않으면 역시 안 된다. 다그치라고 말하면 줄곧 동작만 연마하는데 마땅히 心性(씬씽) 수련이 가장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극소수의 사람은 이 방면에서 좀 늦게 오지만 정상적으로 가는 사람은 마땅히 모두 있어야 한다.

제자: 왜 수련생의 어떤 부위가 아픕니까. 머리가 아프고 배가 아픈 것은…….

사부: 연공(煉功) 중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반응은 모두 정상적이다. 소업(消業)에 괴롭지 않은 것이 없다. 병을 제거하려 해도 또 괴로워야 하지 않는가. 어떤 수련생은 공이 나오게 되는데, 그의 몸에 있는 이 공은 만여 가지도 넘는다. 매 하나의 공은 모두 에너지가 대단히 크고 밀집도가 아주 높으며, 위력이 아주 강한 하나의 고에너지물질 덩어리라, 당신 몸속에서 움직이기만 하면 당신은 온통 괴로울 것이다. 또한, 부동한 형태의 공, 부동한 형태의 공능, 부동한 형태의 술류(術類)들이 당신의 몸속에서 체현되어 나오는데, 그것이 움쩍거리기만 해도 당신은 괴롭게 마련이다. 당신은 그것을 병이라고 하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이래서야 어찌 수련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진정하게 법에 따라 수련하면 일체가 모두 정상적임을 발견할 것이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몸에 부체(附體)가 있었다. 한 기공사가 그에게, 그의 몸에 큰 구렁이 부체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 후부터 그는 늘 큰 구렁이 부체가 있다고 느꼈다. 내가 그에게 지금은 없다고 알려주었지만, 그는 여전히 믿지 않고, 그의 몸속에서 여전히 꿈틀거린다고 여겼다. 그래 당신이 늘 부체가 있다고 여기면, 그 큰 구렁이가 있을 때의 상태가 당신 몸에 반응되어 나오게 마련이다. 그가 언제까지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멈추지 않을 것인즉,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을 제거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만약 그것이 일종 집착으로 된다면 제거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아주 긴 시간이 걸려야만 그 사람은 비로소 제거할 수 있다.

제자: 어떻게 공능을 대해야 합니까? 예컨대 천목이 어떤 것과 빛을 보았다면 보아야 합니까, 보지 말아야 합니까?

사부: 볼 수 있다면 보아도 된다. 연공할 때 조용히 관찰하라. 이는 집착에 속하지 않는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천목이 열려 일부 광경을 보았으나 보도원은 공능이 없어서 보지 못 합니다.

사부: 부동(不同)한 사람이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수련하는바 그 점오한 상태에 따라 보이고 안 보이고 한다. 즉 점오 도달도, 당신의 공이 대단히 높다고 하여 꼭 당신에게 대단히 높게 열어주고, 그의 공이 아주 낮다고 하여 꼭 아주 낮게 열어주는 것이 아니므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천목 층차의 높이는 사람의 공의 층차 높이를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요소, 조건, 여러 방면의 원인에 근거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똑똑히 볼 수 있게 하거나 똑똑히 보지 못하게 하고, 또는 볼 수 있게 하거나 볼 수 없게 하는 것을 결정하는바, 이는 여러 방면의 원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천목 층차의 높이로는 사람의 수련이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는 설명할 수 없으므로 이 점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내가 천목이 열렸다고 하여 내가 다른 사람의 공보다 더 높다고 하는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우리 창춘(長春)에 이런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는가? 그는 천목이 열려 누구보다도 모두 낫다고 느꼈다. 이 사람의 몸에는 부체가 있고 저 사람에게는 또 무엇이 있다고 말했는데 모두 그 자신이 생각해 낸 것이다. 우리 연공장에서 난잡한 짓을 하였는데, 최후에 그는 누구에게도 불복하며, 그는 나보다도 더 높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목이 열린 것으로 누가 얼마나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는지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상보상성(相輔相成)하면서 따라가는 것이다. 우리 가운데는 특수하게 잘 수련된 사람이 있는데 그조차도 보지 못하게끔 하며 무척 높게 수련되어야만 비로소 그에게 보게끔 한다. 그러므로 이것으로 수련이 잘되고 잘못되고를 가늠하지 말아야 한다.

방금 어떤 사람이 제기한 것처럼, 앞으로 여러분이 나를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 스승님께서 계시지 않는다면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한다. 당시 석가모니가 세상에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물었다. 사존(師尊)님, 당신께서 계시지 않으면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석가모니는 계율을 스승으로 모셔라(以戒為師)라고 했다. 우리는 법을 스승으로 모셔야(以法為師) 한다. 心性(씬씽)의 고저로 수련의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아야 하며 공능의 대소(大小)를 표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모두 공능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공능이란 당신의 수련과정 중에서 부수로 나오는 것이다. 世間法(쓰젠파) 에서 수련해 낸 공능은 모두 사람의 본능인데, 사람의 사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점차 퇴화하였다.

당신이 수련함에 따라 공능은 자연히 나오게 된다. 당신이 반본귀진(返本歸眞)하여 되돌아갈 때라야만 비로소 사람의 본성이 되돌아 나오게 된다. 그가 아무리 똑똑히 본다 해도 내가 본 층차를 보아내지 못한다. 그가 아무리 똑똑히 본다 해도 우주의 최고 진리와는 거리가 너무나도 멀다. 그가 본 것은 다만 그 한 층차의 체현일 따름이니, 공능을 진리로 간주하지 말라. 수련과정 중에 있는 사람을, 어느 한 층차를 가늠하는 표준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법무정법(法無定法)’을 말함이 바로 이 이치인즉, 어느 한 층차의 체현을 진리로 삼지 말아야 한다. 법무정법이라, 어느 한 층차의 법이든 단지 그 한 층차에서 작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그가 본 어느 한 층차의 것은 그 한 층차의 상태이다. 만약 아주 똑똑하게 보았다고 우쭐거린다면 그것은 아주 얕은 층차의 것이다. 이 점을 반드시 기억하라.

제자: 어린아이가 수련하는데, 다섯 가지 공법을 반드시 다 해야 합니까?

사부: 어린이는 많이 연마할 수 있다면 많이 연마하고 적게 연마할 수 있다면 적게 연마하도록 하라. 수련의 주요 목적은 사람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心性(씬씽) 방면에 연관되는 것을 많이 말해 주면 그에게 좋은 점이 있다. 내 나이가 아주 어릴 적에는 외형(外形)적인 것은 전혀 연마할 수 없어 주로 心性(씬씽) 상의 수련을 했다. 지금의 일부 어린이들, 당신이 그를 일반적인 어린이로 여기지 말라. 어떤 어린이는 아주 대단하다. 왜냐하면, 당초에 우리가 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을 때 대단히 높은 층차의 사람이 따라 내려왔기 때문이다. 내가 올 적에 각 층차 중에서 모두 사람들이 따라 내려왔는데 그들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예측할 수 있었다. 특히 근래 이 시기에 이르러 우리 이 소우주와 은하계에서 온 사람이 특별히 많다. 왜냐하면, 좀 더 일찍이는 그들이 예측해 내지 못하고, 바로 내가 출산하기 전 그 한 기간에서야 그들은 알게 되었고, 어떤 일이 나타날 것인지를 보게 되어 적지 않게 따라 내려왔기 때문이다. 무엇을 하려고 내려왔는가? 법을 얻으러 왔다. 그는 예전의 법이 이미 부패(敗壞)한 것을 알고 새롭게 단련(錘煉)하고자 온 것이다. 당신은 그들을 일반적인 사람으로 보지 말라. 그들은 모두 아주 훌륭하다. 하지만 어느 집 어린이든지 다 이런 것은 아니다. 일부 어린이는 아주 훌륭하다.

제자: 자신이 어떤 층차로 연마되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부: 우리 어떤 수련생은 이미 점오상태(漸悟狀態)에 도달하였고 어떤 수련생은 점차 점오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도달했거나 도달하지 못했거나, 혹은 똑똑히 볼 수 있거나 똑똑히 보지 못하거나 하는 것을, 연공장에서 연공을 끝마친 후 서로 토론할 때 여러분에게 말해도 상관없다. 당신이 과시 심리를 품지 않고 말한다면 우리의 전반 수련에 좋은 점이 있다. 어떤 사람은, 천목으로 본 것을 말할 수 없으며 말하기만 하면 천목이 닫힌다고 하는데, 이는 과거의 연공에서 이미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인식된 일이다. 그가 천목을 말했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기공을 보급하는 그때에 연공하는 사람 중 어디에 德(더)를 아주 중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는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 아주 적었고, 그는 德(더)를 중시해야 함을 몰라 무엇을 보게 되면 바로 말하는데, 그 자신에게 집착이 있고, 과시하는 심리가 있으면 천목은 당연히 닫히게 마련이다.

또 어떤 사람은 해야 할 말이든 하지 말아야 할 말이든 모두 말하기 때문에 그의 천목이 닫히게 되는데, 바로 이 원인이다. 만약 법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서로 탐구하고 토론한다면 어떤 문제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이 점을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 만약 그의 천목이 닫혔고 훼손되었다면 그가 속인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거나 혹은 과시 심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연공인의 과시심이란 그것은 집착심의 체현이 아닌가? 그래서 닫히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의 천목이 닫힐 때는 먼저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 그가 똑똑히 보거나 똑똑히 보지 못하는, 즉 때로는 볼 수 있고 때로는 볼 수 없는 때가 바로 그를 일깨워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결국 깨닫지 못하고 철저히 닫혀버린다. 어떤 사람은 아예 훼손되는데, 대단히 심하게 훼손된다.

제자: 정과를 얻는 것과 원만(圓滿)은 어떤 층차입니까?

사부: 이 문제를 나는 이미 말하였다. 정과를 얻는 것이란 나한과위(羅漢果位)에 도달하면 바로 정과를 얻은 것이다. 원만이란 그것은 수련의 결속을 말하는데 통상적으로 정과를 얻고 또 공(功)이 열린 것을 가리킨다. 즉 양자(二者)가 동시에 수련이 결속된 것을 원만이라고 한다.

제자: 앞으로 어떻게 수련해야 합니까? 속인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부: 여전히 속인 중에서 속인과 마찬가지로 고생을 겪어야 한다. 당신이 이미 나한과위를 얻었다 하더라도 속인 중에서 하찮은 어린아이마저 당신을 욕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여전히 당신의 마음을 계속 제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 그 근기가 높은 사람은 그의 마음이 이미 괜찮게 제거되었지만, 여전히 당신에게 또 하나의 반복을 거치게 한다. 일반적인 수련, 정상적인 수련은 한 개 과정이면 곧 원만할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거듭 나타나게 하는데 두 번 반복하도록 한다. 당신이 높이 수련하려고 하면 세 번 반복하고, 모두 수련해 냈다면 또 되돌아와 당신에게 수련하도록 한다. 더욱 높은 데로 수련하고자 한다면 곧 이 반복문제가 나타날 수 있으므로 당신은 여전히 속인 중에서 수련해야 한다. 가령 당신이 나한과위로 수련되었는데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줄 사람이 없고, 속인 중에서 누구도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지 않아, 속인 이 환경을 이탈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계속 수련할 수 있겠는가! 만약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는 것이 속인이 아니고, 속인 중에서 일부 무슨 부처요, 보살, 나한이 나타나서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만들어 주어 당신의 집착심을 제거하게 한다면, 그 어찌 가능하겠는가. 바로 사부가 당신에게 이러한 일을 만들어 주거나 이러한 일을 배치하며 일체 난(難)을 배치할 때도, 모두 속인을 이용하여서 하며 속인이 당신을 교란하게 하여 속인 환경 중에서 제고하게끔 한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수련반에 참가한 후, 또 다른 공법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계속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이런 사람, 그는 흔히 오성(悟性)이 비교적 부족하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이란 인연에 따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가 얻고자 하는 생각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웠지 그에게 배우라고 한 사람이 없다. 그가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배우지 않을 것이다. 그가 나중에 또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다고 생각하여 또 배우려 한다면, 배울 수 있는바 와서 배우도록 하라. 수련을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개인의 문제이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 테두리에 들어와서 진수제자(眞修弟子)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정중(鄭重)하게 그에게 말해야 한다. 당신이 우리 여기에서 수련한다면 반드시 전일 하게 수련을 해야 하며 전심(專心)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며 당신이 여기에서 전일(專一) 하지 않고 난잡하게 연마한다면 역시 소용이 없다. 우리는 선의(善意)로 그에게 말할 수 있지만, 당신은 우리 여기에서 연공할 수 없다고 이렇게 말하지는 말라. 우리에게는 이렇게 할 권한이 없으며 남에게 명령할 자격이 없다. 단지 남에게 권(勸)할 수 있을 뿐으로서, 선(善)을 권하고, 선(善)을 권할 따름이다.

제자: 각지의 수련반 상황과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전국적인 형세는 어떻습니까?

사부: 현재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반을 여는 것을 잠시 모두 뒤로 미루었다. 뒤로 미룬 원인은 지금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많고 또 각 방면의 일을 모두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말하자면 지금은 아직 계획이 없다. 하는 일이 끝난 다음, 일이 마무리되는 상황을 봐서 결정할 것이다. 法輪大法(파룬따파)의 발전상황에 대해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줄 수 있다. 현재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하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는 수련생 숫자가 이미 상당히 많아졌는데, 내가 보기에 몇십만은 된다. 내가 매 도시에 가서 수련반을 열 때 주변의 각 시(市), 현(縣)에서 온 사람들도 있으며 거의 한 현도 빠지지 않았다. 이리하여 그들이 돌아가서 전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전했기 때문에 발전이 아주 빨랐으며 수련하는 사람 숫자가 아주 많아졌다. 호북(湖北)의 어느 현성(縣城)에서는 처음에 두 사람이 배웠는데 지금은 천여 명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사례가 아주 많다. 어떤 사람은 연공장에 가서 연마하고, 어떤 사람은 연공장에 가지 않고 연마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숫자는 통계(統計) 내기가 몹시 어렵다.

제자: 이전에 정신병을 앓았거나 간질병을 앓았던 사람이 연공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권하는데, 이러한 사람을 우리 연공장이나 혹은 우리 학습반에 끌어들이지 말라. 당신이 잘못하면 우리의 법을 파괴하게 된다. 만약 학습반이나 또는 우리 연공장에서 병이 발작된다면 남들은 모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여 그렇게 되었다고 할 텐데, 이는 당신이 우리의 법을 파괴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우리에게는 사람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없다는 한 가지 전제(前提)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또 하나의 조건이 있는바,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은 병은 즉석에서 해결해 줄 수 있다. 큰 병을 얻은 사람, 신체에 좋지 않은 것을 너무나 많이 가진 사람은, 오로지 그가 생각을 개변해야만 비로소 그에게 움직여줄 수 있으며 그가 수련하려고 해야만 비로소 그의 업을 제거해 줄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아직 수련하려는 생각이 없는데도 그에게 움직여 주는데, 책을 보기만 해도 그에게 움직여 준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그는 근기가 아주 좋아 그가 마땅히 얻어야 하기 때문인데, 이런 것은 천편일률로 볼 수 없다. 집에 있는 이런 환자가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면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할 수 있는바, 당신은 그가 집에서 배우도록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말해 두겠다. 나 역시 이러한 속인의 문제를 함부로 해결해 줄 수 없다. 그가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 자신에게 달렸다. 그가 수련할 수 없다면 당신도 그에게 수련하라고 하지 말라. 일단 문제가 생기면 대법을 파괴하게 되는데 내가 어찌 이런 속인의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내가 그를 치료해 주지 않으면 그는 곳곳에 가서 선동(煽動)한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여 정신병에 걸렸는데 사부님이 치료도 해주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그는 또 나의 명예까지도 손상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미리 말한다. 학습반에서는 받지 않으며 연공장에도 그가 오지 못하도록 한다. 간질병 환자는 일반적으로 문제가 없다. 우리는 학습반에서 간질병 환자가 학습반에 참가할 수 없다고 명확히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우리 사업일꾼은 그가 들어오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사상을 개변하기 전까지는 병이 쉽게 발작하기 때문이다. 병이 발작하면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간질병 환자는 정신병 환자와 같지 않다. 왜냐하면, 그는 단일한 원인으로 단지 그의 머리 안에 어떤 것이 들어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좋지 못한 것을 꺼내버리면 괜찮은데 일반적으로 이러하다.

제자: 정체(整體) 제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정체(整體)제고란 바로 완정(完整)한 제고이다. 우리가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 신체의 모든 생명체와 당신이 수련한 생명체는 모두 당신과 함께 제고한다. 우리는 정체적인 조절을 말하며 정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수련생들에게 신체를 조절해 준다. 정체제고란 주로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가면 당신의 공(功)도 따라 올라가는 것을 가리키는데 방금 내가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제기한다. 왜 생리가 오지 않습니까? 당신의 心性(씬씽)이 올라간다면 공 역시 따라 올라갈 것이다. 업력이 아주 큰 사람의 신체를 조절할 때면 일부분은 따라 올라올 수 없어 아마 뒤떨어질 수도 있는데, 정체적으로 제고해 올라오려면 그 선결 조건으로 반드시 먼저 心性(씬씽)을 제고해야 한다. 신체만 개변하려 하거나, 난(難)만 피하고자 한다면 그건 여전히 안 된다. 왜냐하면, 수련하여 자신을 개변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心性(씬씽)수련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층차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공, 다시 말해서 당신의 心性(씬씽) 제고 이런 것이 없다면 그것이 무엇이든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제자: 어떤 수련생이 제기했습니다. 대법에 대한 마(魔)의 교란을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여러분에게 말해 주는데, 우리가 정법을 전함에 만약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이상한 일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내가 오늘날 이 일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가장 편안할 것이다.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이 일을 해줌으로써, 나 여기에서 부딪힌 번거로움과 당신들이 부딪힌 번거로움은 모두 이 법에 대한 장애로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지 못하게 하고 있다. 사람이 이 일보(一步)에 이르러 법을 얻고자 하면 그 마(魔)는 가만있지 않고 당신을 방해하려 한다. 마는 생각한다. 당신은 나에게 빚을 지지 않았는가, 나는 당신을 찾아 갚으라고 해야 할 텐데 당신이 법을 얻는다면 나에게 진 빚은 어떻게 할 것인가? 마는 또 당신을 미워한다! 각 방면의 요소가 모두 방해 작용을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이는 모두 사람에게 업력이 있어서 스스로 조성한 것이다. 과거에 예수가 말했다. 사람이여! 당신은 죄(罪)가 있다. 그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고 업(業)을 죄라고 했는데 사실 이러하다. 바로 사람 자신이 좋지 못한 일을 하여 지은 업력이므로 그것은 죄가 아닌가? 그것이 여러 방면에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은 정법을 얻었기에 물론 당신을 교란하게 마련인데 바로 이런 원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일에 부딪힘은 모두 우리의 心性(씬씽)을 고험(考驗)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말할 것이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면 여하 여하하게 좋지 않다거나 혹은 어떠어떠하다고 할 것이다. 바로 당신의 의지가 확고한지 하지 않은지, 본질상에서부터 이 법을 인식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당신이 본질에서 이 법을 아직 인식하지 못하면서 또 어떻게 수련할 것인가? 당신이 개오(開悟)하기 전까지 모두 줄곧 법에 대해 확고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이런 문제가 존재하는데, 어느 한 문(門)에서든지 모두 이러하다. 당신이 본질적인 것에서 아직도 견정하지 않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수련하겠는가? 그러므로 당신에게는 이 면의 고험과 교란이 있게 마련이다.

당신이 보라. 내가 학습반을 열기만 하면 보증하고 많은 기공학습반이 동시에 열린다. 만약 내가 거기에서 학습반을 열지 않는다면 이렇게 많은 일이 없지만, 내가 학습반을 열기만 하면 많은 사이비 공(邪功)이 우르르 모여 모두 학습반을 연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하므로 상보상성(相輔相成)으로 일부 마(魔)가 따르게 마련인데, 역시 이렇게 배치된 것이다. 즉 이 사람이 어느 문(門)으로 들어가는지, 정법(正法)을 얻는지 아니면 사법(邪法)을 얻는지를 본다. 당신이 어느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지는 당신에게 달렸다. 사람이 수련하기란 몹시 어렵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바로 마땅히 이러해야 하며 아주 어려운 것 역시 마땅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체는 모두 자신이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난(難)은 그 와중에서 또 사람의 心性(씬씽)과 깨달음(悟)을 표현하고, 제고할 수 있는지 없는지 등등 여러 방면의 요소를 표현하는데 이 역시 상보상성 하는 것으로서 변증법적으로 이러한 일을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이러한 교란이 있을 수 있다.

우리 창춘(長春)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내가 바로 부처이니, 당신은 다른 사람을 따라 배울 필요가 없다고 하며, 자신은 어떠어떠하다고 하는데, 여러 방면의 교란, 심지어는 나 개인의 명예에 대한 파괴도 모두 있을 수 있는 것으로, 당신이 듣는지 듣지 않는지, 당신이 믿는지 믿지 않는지, 당신이 어떻게 하는지를 본다. 그것은 갖가지 수단으로 파괴할 것인데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을 동요시키는 것이라, 당신이 안정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어떤 사람은, 나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한마음으로 정법을 수련할 것인즉 나는 당신의 그런 것을 믿지 않겠다고 말한다. 사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이미 법의 위력을 체험하였으며 또한 자신의 변화 역시 아주 큰 것으로 내가 말한 이 이치를 알고 있다. 그가 아직도 안정적이지 못하다면 그것은 오성(悟性) 문제가 아닌가. 오성이 너무 낮기 때문인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그러므로 이런 교란은, 내가 말한다면, 역시 정상적이다. 수련이란 바로 큰 파도가 모래를 이는 것과 같은데, 모래를 말끔히 쳐내면 남아 있는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금(金子)이다. 얼마나 많은 금이 남을 수 있는지, 그것은 여러분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지에 달렸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에 관한 선전자료를 좀 많이 제작하여 연공장에서 선전하면 어떻습니까?

사부: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선전과 공을 전하는 전반 방법은 모두 오늘날 기공을 선전하는 방법과 같지 않다. 여러분은 아마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과대평가하지 않았으며 또한 무슨 일을 내놓고 자랑하지 않는바, 무슨 이러한 일이 없다. 다른 기공사는 환자 하나를 치료했다면 그는 선전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며 더 듣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줄곧 널리 선전한다. 우리는 이러한 일이 없다. 우리는 수련생이 수천수만 명이 되고, 그들 모두 병이 없지만 우리는 무엇을 말한 적이 없으며 이런 일을 자랑하지 않았다. 물론 초기에 여러분은 보도에서부터 일부 소식을 보았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초기에 우리는 통상적인 기공형식으로 나온 것으로 시작하자마자 그렇게 높게 말한다면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 이런 첫 단계에서부터 점차 인식하게 하는 이런 과정을 거쳐 왔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가 창춘(長春)에서 초기에 학습반을 열 때 내가 말한 것 역시 대단히 높았다. 하지만 늘 기공을 입에 담고 있었다. 우리는 오늘날 고층차로 공을 전하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말하지 않는다. 이것 역시 사람으로 하여금 점차 인식하게 하는 하나의 과정이었다.

제자: 자동차성(汽車城)은 십여 만의 직원을 거느린 기업체인데 잘 전개하지 못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우리 이 法輪大法(파룬따파)는 본래 자동차 공장에서 비교적 잘 전개했었다. 여러분은 아마 그러한 마(魔)를 알 것이다. 그것들의 교란이 아주 대단했는데 그 역시 마이다. 하지만 우리는 말하였다. 이러한 일은 모두 상보상성(相輔相成) 하는 것으로 얼마나 되는 사람이 수련할 수 있고 얼마나 되는 사람이 수련할 수 없는지는 그 개인에게 달렸다. 교란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 어찌 가능하겠는가. 교란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면 그러면 당신은 너무 쉽게 수련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대도(大道)가 이처럼 평탄하고, 위를 향해 수련함에 어떠한 난(難)도 없다면, 이 어디 수련인가. 그렇지 않은가? 마난(魔難)이 있어야만, 비로소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아낼 수 있고, 비로소 사람의 각종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는 정말 대단히 커서 상당히 큰 파괴작용(破壞作用)을 했으며 많은 사람을 망가뜨린 것으로서, 일으킨 작용은 이미 일반 마의 범주를 벗어났다. 이런 일은 아주 높은 층차에서도 다 알고 있으며 고급 생명도 다 알고 있다.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어떤 일은 나의 동의를 거쳐야 하는데 나는 사람들에게 한 차례의 기회를 남겨주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보아하니 이 기회를 남길 수 없을 것 같다. 장래에 자동차 공장에서 대법을 배우는 사람들이 틀림없이 많아질 것이다.

제자: 일부 수련생은 학습반에 참가하려고 준비했으나 시종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아침저녁 연공장의 수련생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일부 수련생은 학습반에 참가하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나의 이 학습반을 계속 연다면 십 년을 더 연다 해도 여전히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많은 노수련생들이 있고 또 나의 책, 녹음테이프와 비디오테이프가 있으므로, 모두 법을 전파하고 사람을 도화(度化)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여러분은 이미 주력군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특히 이 기간에 당신은 확실하게 주력(主力)이 되었다. 내가 직접 전하지 않아도 얻을 수 있는데 이런 것이 아닌가? 기왕 이러하다면, 내 생각에는 우리 여러분이 이 방면의 일을 좀 더 많이 하여 다른 사람을 돕도록 해야 한다. 더욱이 사람들이 연공장에 와서 배울 때면 보도원은 더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말한다. 당신의 책임은 작지 않은 것으로서 간단하게 사람을 소집하는 것으로만 보지 말라. 되도록 법을 많이 깨닫고 법을 많이 배우며 더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

나는 특별히 또 한 가지 점을 말하겠다. 우리 연공장에 무릇 번거로운 일과 편차가 생겨 제정신이 아닌 사람이 나타난 것은 모두 다른 공(功)을 연마(練)하며, 기타 추구함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틀림없으며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 무릇 이러한 사람은 백이면 백 다 다른 것을 연마(練)했거나 혹은 그의 집에서 다른 것을 공양하며 버리지 않았는바, 이것이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法輪(파룬)이 변형되는 것인데, 역시 다른 공법을 섞어서 연마했거나 의식 중에 섞어 넣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상황은 틀림없이 이런 원인이 조성한 것이라고 나는 말하는바, 이 두 가지 상황에서만은 나의 법신이 일반적으로 상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공을 연마(練)하고 그가 섞어서 연마(練)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는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사람이 아니므로, 나의 법신은 그를 상관하지 않으며 법도 주지 않는다. 그런 난잡한 마들이 그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는 것을 보면 당연히 그를 희롱하고 그를 해치려 한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라서 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파괴할 수 있는데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한마음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지만 그는 의념 중에서나 동작 중에서 늘 자신이 감수하고자 다른 것을 좀 가해 넣는다. 과거에 다른 공을 연마(練)할 때는 감각이 좀 있었으나 이번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煉)하자 그런 감각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느껴보려 하는데, 그것은 집착하여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그의 원래의 것을 섞기만 하면 法輪(파룬)은 변형되게 마련이며 법은 문제가 생기게 마련인데 보증하고 이러할 것이다.

제자: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더욱 잘살기 위한 것이 아닙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또 이러한 생각이 있다. 내가 부처로 수련되어서 뭘 하겠는가 하고 말한다. 이는 부처에 대한 인식이 아주 부족함을 말한다. 부처를 수련하여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다. 당신은 웃지 말라. 그는 확실히 모르고 있다. 왜 부처수련을 하는가? 첫째는 사람의 신체를 영원히 보존할 수 있고, 둘째는 고생을 영원히 겪지 않으며 영원히 아름답다. 사람의 일생이란 아주 짧은 것인데, 사람의 신체를 보존하는 이것이 한 면이며, 그 외에 그는 고생을 겪지 않는 것인데, 당신의 생명이 생긴 곳은 대단히 높은 우주 공간에 있다. 우주 공간에서 온 것인 만큼, 성품(性)은 본래 선량한 것이다. 바로 자신이 좋지 않게 변해 한 걸음 한 걸음 여기까지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훼멸이라는 이런 과정이다. 되돌아가서는 뭘 하는가라고 하는데, 진정 당신이 생긴 곳은 고층공간이며 그곳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서 당신이 마땅히 머물러야 할 곳이다.

대각자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모두 진흙탕 속에 빠진 것과 같고, 모두 여기에서 흙장난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이 올 때는 모두 이러하기에 아주 좋다고 여긴다. 사람은 모두 아주 좋다고 여기고, 진흙탕 속에서 뒹굴면서도 그는 아주 편안하고 아주 좋다고 여긴다. 우리 예를 들어 보자. 사람을 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돼지를 말하자면, 돼지우리 안에서 자며, 똥오줌이 뒤섞인 흙 속에 있지만, 그의 경지로는 대단히 좋다고 느낀다. 사람이 그 경지 중에서 일단 승화되어 올라와 되돌아본다면 정말 보아줄 수 없을 정도로 말이 아니다. 바로 그런 이치이지 않은가. 남들이, 사람은 속인 중에서 진흙을 이기고 있으며, 곳곳마다 모두 아주 더럽다고 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이 깨끗하지 못한 환경 중에서 그는 그래도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좀 깨끗하다면 괜찮다고 여기는데, 실제로는 흙 범벅이 된 신체를 흙물로 씻는 데 불과하다. 말하자면 얼마 더 깨끗하지도 못하다.

제자: 인생의 진정한 의의는 수련을 잘하여 부처가 되는 것입니까?

사부: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하는 것이다. 수련을 잘하여 되돌아가는 이것이 진정한 의의(意義)이다. 고급 생명이 볼 때 이러하다. 그러나 당신이 속인 속에서 당신의 속인 중의 학교 선생님에게 물어본다면 그는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속인은 우주의 그런 진상을 보지 못하고, 속인 중의 일을 너무나 중히 보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금 서방(西方)에서부터 전해 온 이러한 지식으로 충만해져 너무 절대화되었기에 도리어 사람으로 하여금 갈수록 더욱 물질적으로 변하게 하였다. 현재의 이론으로 일체를 가늠하기 때문에 인류는 갈수록 이 속인 중으로 더욱 심하게 빠져든다.

제자: 꿈속에서 사방으로 화장실을 찾다가 겨우 한 곳을 찾았는데 깨어나 보니 이미 배설하였는데요?

사부: 여러분에게 예를 하나 들어주겠다. 무당산(武當山)은 진무(眞武), 다시 말해서 현무(玄武), 도가에서 말하는 현무대제(玄武大帝)가 수련한 곳이다. 무당산에는 현무(玄武)가 수련한 이야기 하나가 있는데 그의 수련 과정을 이야기한 것으로 그 속에는 이런 사연이 적혀 있다. 그는 여러 해 동안 수련했는데, 아마 사십여 년이 될 것이다. 그는 이미 대단히 높은 층차로 수련되었다. 어느 하루,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마(魔)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미녀로 변해 진무를 교란하였다. 결국, 그는 혼미해져 단단히 지켜내지 못하고, 정(情)을 움직이고 말았다. 그런 후 그는 화가 치밀었고, 대단히 후회스러워하며 생각했다. 내 이 수련이 아직도 희망이 있단 말인가? 이처럼 여러 해 수련했으나 이룬 일이 없는 데다 또 자신의 마음마저 지켜내지 못하다니, 안 되겠다고 생각한 나머지 홧김에 하산(下山)해 버렸다. 산을 절반쯤 내려왔을 때 한 노파가 거기에서 바늘을 갈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쇠막대기로 바늘을 갈고 있었다. 아마 당시 고대인들은 모두 이런 방법으로 바늘을 갈았을 것이다.

여보세요, 하고 그는 이 노파에게 물었다. 당신께선 어찌하여 이렇게 굵은 쇠막대기로 바늘을 갈고 있습니까? 노파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시간이 길어지면 반드시 바늘로 갈 수 있다네. 진무(眞武)는 마음이 움찔했다. 노파는 바늘을 갈면서 사발에 물을 부었는데, 물이 넘치는데도 그녀는 계속해서 물을 부었다. 이에 그는 노파에게 말했다. 물이 넘칩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찼으면 자연히 흘러나오게 마련이라네. 그녀는 사실상 그를 점화해 준 것이다. 그녀가 그에게 알려준 뜻은, 수련과정에 있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그런 일을 너무 중하게 보지 말라. 한 번 잘하지 못했다면 다음번에 잘할 수 있다. 바로 인체에는 모두 본능이 있기 때문에 차면 그것은 배설되게 마련이다. 그녀는 진무에게 이런 뜻을 점화해 준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야기한 것은 한마디 고사(故事)일 뿐이고, 그리 완전하지도 않으며 또 그리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일 역시 아마 그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금 쪽지에 쓴 것처럼 아마 이런 일일 것이다.

제자: 매번 참장(站樁)을 하거나 혹은 가부좌를 하고 연공상태에 들어가기만 하면 즉시 연마하기 싫어 중단했다가 나중에 후회하게 되는데요?

사부: 그것은 바로 사람이 자심생마(自心生魔)의 교란을 받는 것인데, 속인의 마음은 마(사상업력의 교란)를 생기게 할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이 마음속에서, 사상 속에서 생긴 과거의 그런 좋지 못한 사상물질이 모두 저촉(抵觸)하는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당신이 잘 수련하면 이런 나쁜 물질은 소멸하게 마련이므로 그것이 가만히 있지 않고 당신을 연마하지 못하게 한다. 왜 당신은 연공을 하면서 늘 동요(動搖)하는가? 의식 중에서 생각한다. 이렇게 고생스러운데 연마하지 말자.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그 사상은 원인이 있다. 외부적인 마의 교란이 없다 해도 또 자신의 마(魔)로부터 교란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런 좋지 못한 물질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어떠한 물질이든 다른 공간에서는 모두 영체(靈體)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았는가. 당신이 잘 수련하려면 그것을 소멸해야 하고, 그것을 소멸해야만 당신이 비로소 잘 수련할 수 있으며 비로소 그 나쁜 사상을 제거할 수 있다고. 어떤 사람은 가부좌할 때 자꾸 잡생각이 일어나 조용함(靜)에 들지 못하는데, 이는 바로 당신에게 그러한 물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 역시 살아있는 것이며 과거에 당신 사상 중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이 교란작용을 한다. 당신이 잘 수련하면 그것은 소멸하며, 소멸할수록 더욱 적어져 최후에는 전부 소멸한다. 그러니 그것이 가만히 있겠는가?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그것은 교란하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사상 중에서 또 사부를 욕하고 우리의 대법을 욕한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욕하는 것이 아니고 사상업이란 이런 나쁜 물질이 당신의 사상 중에 반영되어 조성된 것임을 반드시 똑똑히 분간해야 한다. 일단 이 문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그것을 즉시 배척하라! 主意識(주이스)는 반드시 강해야 한다. 수련하지 못하게 해도 나는 수련하겠다면서 그것을 배척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나의 법신이 당신의 사상이 아주 견정(堅定)한 것을 보고 당신을 도와 대부분을 없애 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러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제자: 연공의 층차는 이미 정해졌지만, 대법은 끝없는 것으로 또 가히 고심(高深)한 큰 부처로 수련할 수 있다는데 자신이 수련된 층차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예컨대 나한에 도달한 후에 다시 새롭게 수련하고자 다시 발원(發願)한다면?

사부: 한 사람이 나한과위로 수련되었다. 원래는 나한과위에서 원만하기로 정해졌지만, 안 된다, 나는 아직도 더 높이 수련하겠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고 당신이 다시금 발원(發願)한다면 여전히 높은 데로 수련할 수 있다. 과거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지만 많지는 않았다. 왜 많지 않았는가? 흔히 사람의 수련을 배치할 때에 배치한 그 층차는 이미 그 자신의 상황에 근거하여 배치한 것이며 각종 물질의 많고 적음은 자신의 감당 능력에 의해 정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으로 그리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개별적으로는 특수하게 좋은 사람도 있다. 그의 어떤 것은 숨겨졌기 때문에 일정 층차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발견하기에는, 일정한 층차로 수련되면 그 사부가 책임질 수 없어 자동으로 물러나게 되고 또 다른 사람이 이어서 책임지는 이런 상황도 있다. 더욱 높은 층차로 이끎은 자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 사부가 높은 층차로 이끌 것이다.

제자: 어느 날 꿈속에서 리(李) 스승님을 뵈었습니다. 스승님께서 저의 상황은 좀 특수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뜻은 마치 제가 어느 방면에 안 된다는 뜻인 것 같았습니다. 나중에 스승님께서 저의 신체를 조절해 주셨는데 저는 아랫배와 발바닥이 쏴 하는 감각을 느꼈습니다.

사부: 이는 아주 간단한 것으로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수련 과정 중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기 때문인데, 일반적으로 법신(法身)이 해결할 수 있다. 이런 상태는 꿈이 아니며 진실하고도 확실하게 모두 접촉할 수 있다. 낮에는 당신의 정력(定力)이 부족하여 당신이 입정 중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꿈속에서 보게 한 것인데 괜찮다. 꿈속에서 나를 만나는 것은 정상이다.

제자: 수련을 더욱 잘하기 위해 일상생활 중에서 眞(쩐)・善(싼)・忍(런)을 속으로 묵념(黙念)해도 됩니까?

사부: 일상생활 중에서 眞(쩐)・善(싼)・忍(런)을 묵념하는 이것은 좋지 않을 것이 없으며 상관이 없다. 그러나 연공할 때는 의념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제자: 창춘완바오(長春晩報)가 보도하기를, 올해 여름 티베트 모모모(某某某) 대사가 경을 강의하는데 크고 작은 2백여 활불(活佛)이 참석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일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사부: 화상・라마 역시 사람이라, 그들이 뭘 하려고 하든 상관할 것이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은 부처가 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부처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다. 속인은 이러한 것을 대단히 중하게 본다.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분명해야 한다. 경을 강의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로 수행인의 일종 종교 활동에 불과하다. 더 말하자면 말법시기라 무슨 말 할 것이 없다. 그 외 한 가지 문제를 말하겠다. 여러분 알다시피 화상(和尙)이든 라마든 간에, 국가 정치, 법령을 간섭할 수 없으며 속인 중의 일을 간섭하지 않는다. 그 무슨 시위를 하고, 무슨 독립을 한다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이런 일을 하는가? 이것은 속인 중의 집착심이 아닌가? 속인의 일을 너무 중하게 본 것이 아닌가? 이런 일로 말하자면 그것은 수련인으로서 제거해야 할 집착심이 아닌가?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이곳은 정토(淨土)라고 나는 말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수련생들의 心性(씬씽)이 대단히 높을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수련생들이 心性(씬씽) 수련을 중시할 것을 요구한다. 영웅, 모범인물이라 해도 그는 아직도 필경 속인중의 영웅, 모범인물이라고 나는 말한다. 우리는 당신이 완전히 속인을 초월한 한 사람으로 되며, 완전히 개인의 이익을 버리고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한다. 그 대각자(大覺者), 그는 무엇을 위하는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련생에 대한 나의 요구 역시 대단히 높으며 수련생이 제고되는 것 역시 아주 빠르다.

내가 방금 한 이 말은 지나치지 않다. 우리 예를 들어 말해 보자. 전국 각지 어떠한 업종에서든지 대형회의를 열 때 분실한 물건을 되찾는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 물론 개별적으로는 좋은 사람이 아직도 있으나 아주 적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학습반에서는 분실한 물건을 모두 찾을 수 있으며, 매 수련반이 모두 이러하다. 몇천 명의 학습반인데 매 학습반에서 주운 시계, 금목걸이, 반지, 그리고 돈, 큰 금액에서 소액에 이르기까지 웬만큼 큰돈도 다 있다. 천여 원까지도 있었지만 주우면 가져왔다. 내가 거기에서 공표하면 잃어버린 사람이 와서 찾아갔다. 다른 수련생들도 말했다. 이런 일은 레이펑(雷鋒)을 따라 배우던 그 시대에 본 적이 있을 뿐 지금은 여러 해 동안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학습반이 결속된 후 수련생들은 모두 자각하여 남을 위하고 사회를 위해 책임지는 心性(씬씽)이 필요한바,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다. 그래서 우리 이곳은 정토라고 말하는데 그래 옳지 않단 말인가?

제자: 어떤 수련생이 무슨 자연(自然)의 무슨 공이라는 책을 펼치자, 책 속에는 다른 사람을 논박하고 자신의 공을 자랑하며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깎아내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 수련생이 두 페이지를 본 후에 공(功) 속에 그 공(功)의 동물 그림자가 어른거려 입정(入靜)에 영향을 주었는데요?

사부: 이런 것은 볼 수 없다고 우리는 늘 말했다. 당신이 그것을 봐서는 뭘 하는가! 진수(眞修) 제자는 이런 가짜, 사악한 것을 모두 불태워버렸는데 당신은 아직도 보고 있으니 이 격차가 크지 않은가? 당신이 그것을 보는 것은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닌가? 난잡한 것은 어떤 것도 보지 말라. 기공을 보급하는 기공사들은 공을 전하는 일을 끝냈기에 진정한 공법(功法)은 나와서 전하는 이가 없으며, 당신의 그런 일을 상관하지도 않는다. 현재, 오늘은 이런 공이 뛰쳐나오고 내일 저런 공이 뛰쳐나오는데, 그러한 기공은 거의 모두 가짜다. 바깥에는 정법을 전하는 것을 화란(禍亂)하고 파괴하는 것뿐이다.

올바른 기공사는 모두 전하지 않는다. 당신이 계속 전한다면 당신은 법을 교란하는 것이 아닌가? 해야 할 일을 했으므로 큰 공(功)을 세운 셈이지만 당신이 계속 한다면 바로 교란이다. 그러므로 돈을 위하고 명예를 위하며 이익을 위하는 가짜 기공사들은 거의 다 마(魔)이지만, 그 본인은 자신이 마인 줄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학습반에서 절대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주된 원인은 어떤 사람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기본적으로 모두 마가 교란하고 있다.

제자: 수련생이 입정(入靜)하여 연공할 때 늘 사악한 염두가 나타나는 것은?

사부: 그렇다. 이 역시 내가 방금 말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에 자신이 좋지 못한 일을 하여 생긴 각종 사상물질이 모두 존재하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모두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연공할 때 나오는 그런 좋지 못한 생각은 아마, 남을 욕하려 하고, 또 나쁜 짓을 하려 하는 것들이 당신을 강박하여 나오게 한 생각으로, 바로 과거의 사상 중에서 생긴 그 나쁜 물질이 아직도 작용하기 때문인데, 심지어 또 사부까지도 욕할 수 있다. 당신은 걱정하지 말라. 당신이 되도록 그것을 억제하고 배척한다면 곧 없어질 것이므로, 반드시 이런 좋지 못한 생각을 배척해야 한다. 일단 나타났다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당신이 사부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사상업력이 당신 대뇌에 반영된 것이다.

제자: 수련생이 입정(入靜)하여 연공할 때 종종 모모(某某) 공(功)은 족제비 부체의 공이라고 다른 사람과 말하는 수련생이 있습니다. 그 수련생이 저녁에 꿈을 꾸자 어떤 사람이 그에게 향을 피우라고 가르쳤다고 하는데요?

사부: 앞으로는 그런 난잡한 공을 연마했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일부 수련생에게는 그런 부체 공을 연마(練)하는 친한 친구가 있는데 당신이 그에게 말해주어도 괜찮으나 가장 좋기에는 둘러서 말하는 것이다. 당신이 안면이 없는, 부체의 공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곳에 가서 그런 공이 어떻게 나쁘다고 말한다면, 그는 당연히 당신을 공격할 것이며 여럿이 당신을 둘러싸고 공격할 것이다. 심지어 듣기 거북한 말까지 할 텐데 우리는 이런 번거로운 일들을 피해야 한다. 우리는 선(善)을 권할 것을 주장하며 그가 인식할 수 있다면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되도록 이러한 일을 피해야 한다. 진정으로 그런 공(功), 그런 문(門)에 들어갔고 그 속에서 또 나오기 싫어하는 그러한 사람, 그는 이미 왜문사도(歪門邪道)에 들어간 것이다. 그의 본성은 이미 방향을 잃었으며 기본상 오성(悟性)이 좋지 않다. 그런 사람들이 뉘우친다면 물론 좋지만 뉘우치지 않는데 당신이 억지로 권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책략과 방법에 주의해야 하고 이러한 일에 주의하면 되는 것으로, 사악한 것이 당신을 해치지 못할 것이다.

제자: 어떤 사람이 벽에 거는 달력을 찍어서 원가대로 수련생들에게 나눠주면서 한 푼도 벌지 않으려고 하는데 되는지요?

사부: 이런 일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 이 수련생이 참으로 좋고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을 해주려고 한다면 원칙상 또 아무것에도 위배(違背)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속에는 금전교환의 문제가 있기에 원가라 해도 돈을 만진 것이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이러한 일을 피하고 돈을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당신이 돈을 만지기 때문인데, 시간이 길어져 자칫 잘못하면 마음속 평형을 잃을 수 있다. 늘 이러한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이 있을 수 있다. 내 이건 밑지는 장사구나. 나의 교통비도 여기에서 뽑아야 하지 않는가, 내가 여기에서 손해를 좀 보았는데 마땅히 추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리하여 그것은 사람의 각종 마음을 조장할 수 있다. 점차 이런 데서 파악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왜 여러분에게 돈을 만지지 못하게 하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석가모니는 이천오백 년 전에 그들이 돈과 재물을 만지지 못하게 하려고 사람들을 거느리고 심산 수림에 가서 수련하였다. 오로지 동냥하는 사발 하나만 있었을 뿐인데, 또 이 동냥 사발에 대해 한 차례 설법하였다. 동냥 사발마저도 집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잘못하면 사람을 심하게 교란할 수 있으며 사람의 수련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런 일에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 해 예수 역시 사람들을 거느리고 어디에 가면 어디에서 먹으면서 돈을 만지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나는 이 일을 말하면서 이 사례를 들 뿐이다. 당신들은 아마 이렇게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반드시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 나 역시 당신이 이렇게 하도록 가르칠 수 없다. 수많은 해가 지난 후에 사람들은 리훙쯔(李洪志) 시기에 어떤 사람은 이렇게 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법을 또 전해갈 수 있겠는가? 벌써 끝장이다. 그리 오래가지 않아 끝장나고 만다. 어떤 사람은 사진을 갖고자 하는데 가지려면 당신 자신이 가서 찍고 당신 자신이 가서 사진을 뽑도록 하라. 하지만 우리는 되도록 수련생 내부에 한해서만 해야 한다. 장래에 이러한 것은 우리가 아마 사회적으로 공개 발행할 것인데, 나의 달력마저 책 번호가 있기 때문이다. 장래에 우리는 이러한 일을 통일적으로 관리할 것이므로 절대 자기 나름대로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잘못하면 또 대법을 더럽힐 수도 있다.

어떻게 파는가, 원가대로 받아도 안 된다. 이 면에서 어떠한 마음이든 일지 말아야 하는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신이 수련하여 제고하면서 다른 사람을 돕는데, 반드시 이런 형식을 이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법을 얻게 하기 위해 법을 좀 말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낫다. 사람 心性(씬씽) 상의 제고는 외형적인 것에 비해 훨씬 더 낫다. 이런 것은 法輪功(파룬궁) 연구회에서 통일적으로 관리할 것이다. 총보도소, 분보도소, 보도소에서 모두 돈을 만져서는 안 된다. 우리 法輪功(파룬궁) 연구회는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나의 동의를 거쳐서 한다. 각종 명목으로 사사로이 한 것은 모두 안 되며 권리 침해이므로 사회의 법률 역시 허용하지 않는다.

제자: 어떤 사람은 心性(씬씽) 수련을 잘 하려고 하지만 일상생활 속에서 그의 심령(心靈)을 건드리는 일이 없으며 또 꿈을 꾼 적도 없습니다. 스승님께서 그를 책임지지 않을까 봐 걱정하는데요?

사부: 이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그 자신이 지닌 것과 그 본인의 상태가 다 같지 않기 때문인데, 지닌 것이 복잡할 수 있다. 물론 나는 또 여러분에게 예를 들겠다. 어느 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 사람은 온 층차가 비교적 높으므로 고생을 겪을 필요가 없다. 그는 이 법에 동화(同化)하러 왔기 때문에 동화가 끝나면 그는 일을 끝낸 것으로 친다. 또 일부 사람이 있는데 이런 사람은 극소수이지만 당신이 말하는 이런 상황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다만 이 뜻을 말할 뿐이다. 많은 사람이 각종 요인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고생을 겪든 겪지 않든 이 법에 동화되고 이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제자: 적지 않은 수련생이 꿈에 사부님께서 공을 가르치시는 것을 보았는데 다섯 가지 공법 중의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다섯 가지 공법 중의 동작이 아니라면, 그것은 바로 마가 와서 당신을 가르친 것으로 그것은 다 가짜이다. 틀림없이 내가 당신을 가르친 것이 아니다. 내가 오늘날 여러분에게 전한 것은 바로 이 다섯 가지 공법이다. 이것은 당신의 신체를 개변시키고 모든 술류(術類)와 유형적인 것을 연마해 내기에 충분하다. 진정하게 당신 층차 고저를 결정하는 그 공은 연마해 내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이면 쓰기에 충분하다. 꿈속에서 연공하는 것을 느꼈다면 연마하지 말라. 이에 따라 연마한다는 것은 心性(씬씽)이 아직 그리 확고하지 않다는 것이다. 만약 확고하다면 생각이 조금만 움직여도 곧 알아차릴 것이다.

제자: 일단 어떤 사람이 원만으로 수련되지 못하고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원만으로 수련되지 못하고 원만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그가 있는 그 위치에서 과위를 얻었다면 그 역시 수련성취 한 것이다. 하지만 世間法(쓰젠파)마저도 벗어나지 못했다면 곤란하다. 그러나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는 삼계 내의 다른 층차의 공간 중으로 갈 곳이 있다. 그가 어느 한 층차로 수련되었으면 바로 그 층차에 있게 마련인데 이 역시 좋은 점이 있다. 만약 그가 그건 안 된다 하며, 나는 잘 수련하지 못했기에 나는 한마음으로 내세에 이어서 수련하기를 발원한다면, 그렇다면 그는 내세에 또 정말로 수련하는 그 상태로 들어가게 될 것이며 또 이어서 수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만약 잘 파악하지 못한다면 아주 위험하다. 계속하여 잘 수련하지 못하면 여전히 아래로 떨어질 것인즉 원래보다도 못할 것이다. 만약 잘 수련했다면 그건 원래보다 낫게 되는데 그에게는 이와 같은 이해관계가 있다.

제자: 心性(씬씽) 수련 과정에서 때때로 자신이 잘못을 저지를까 봐 두려워하며 늘 법으로 가늠하지만, 여전히 일이 생기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지요?

사부: 매 한 가지 일을 그렇게 걱정하다니 내 생각에도 그렇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 관계는 바로잡기가 어렵다. 생각을 많이 하면 집착이 되고 생각을 적게 하면 우리가 어떤 일을 잘못하게 될까 봐 걱정인 것 같다. 내가 생각하건대 마음을 그렇게 긴장하게 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매 한 가지 일을 할 때, 일반적인 일이라면 하자마자 곧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신도 이 일을 내려놓으면 또 저 일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많은 일이 있지 말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속인 중의 일은 생각하지 않아도 그것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를 알 수 있다. 일부 갑자기 나타난 일에 대해서 우리는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나쁜 일인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매 한 가지 일을 할 때마다 모두 그렇게 생각하며 작디작은 일마저도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너무나 집착한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대범하게 수련하고 큰일에 눈을 두어야 한다. 물론 이 점에서 수련과정 중에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일을 잘 파악하지 못해 잘못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건대 그것은 당신이 아직도 거기까지 수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떤 일은 아직 당신에게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당신은 너무 집착하지 말라. 이 마음을 제거할 때가 되면 그것은 자연히 반영되어 나올 것이다.

제자: 성명쌍수(性命雙修)와 원영(元嬰)은 중합(重合)되는 것이 맞습니까?

사부: 당신이 성명쌍수 한다는 것은 本體(번티) 개변과 수련한 원영(元嬰)이 때가 되면 모두 당신의 元神(왠선)과 합하며, 합하여 일체(一體)가 되는 것이다.

제자: 고기를 먹으면 업력이 있습니까?

사부: 고기를 먹는 그 자체는 업력이 없으며 또 살생의 개념이 없다. 고기를 먹는 자체는 집착이 아니지만 고기를 먹음으로써 고기 맛에 대한 사람의 집착심을 조장할 수 있다.

제자: 매 사람의 몸에 있는 德(더)는 제한되어 있고 높은 공으로 수련되는 것은 정해진 것인데, 개공개오(開功開悟)한 후에도 여전히 德(더)를 쌓고 제고할 수 있습니까?

사부: 德(더)는 제한되어 있다. 개공개오 한 후에는 절대로 더 제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개공한 후에 이 사람은 무엇이나 다 보았고 무엇이나 다 접촉했으며 무엇이나 다 명백해졌기 때문에 오성(悟性)이 존재하지 않는다.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고생을 겪어서 높이 수련할 수 있다면 그럼 누가 하지 않겠는가? 그 부처도 여전히 이어서 위로 수련할 텐데 그는 왜 수련하는 것이 아주 늦는가. 바로 그는 이미 고생을 겪을 방법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오로지 특수한 공헌을 해야만 그는 비로소 조금이나마 제고하는데 이 속에는 이런 한 층의 관계가 있다. 德(더)가 모자란다고 하는데 德(더)가 모자라면 또 업력이 있지 않은가. 고생을 겪은 후에 업력은 또 전화될 수 있는 것으로 德(더)로 전화(轉化)될 수 있지 않은가. 만약 정말로 여전히 이어서 수련할 수 있다면, 자신이 계속해서 수련할 수 있고, 계속해서 수련하고자 한다면 친지, 친우의 업력을 당신이 가져다 없애버림으로써 德(더)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대단히 어렵다. 왜냐하면, 德(더)는 사람의 心性(씬씽) 그리고 마음의 용량과 상보상성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德(더)는 그 한 경지에 이르면 가득 차서 더는 담을 수 없는 이러한 특징이 있다. 고생을 더 겪는다면 사람은 아마 용량이 모자라 나쁘게 변해 떨어져 내려가고 헛되게 수련할 수 있다.

제자: 석가모니는 이미 개공했는데 왜 법을 전한 지 49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여래에 도달하게 되었습니까?

사부: 대단히 높고 대단히 높은 층차에서 온 한 사람, 여래를 몇 배나 능가한 그가 수련한다면 아마 개공한 후 49년이 필요 없으며 그의 절반 과정을 거치거나 혹은 더욱 짧은 과정을 거쳐 대단히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근기와 관계가 있고 또한 그가 있는 층차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며, 그가 전세(前世)에 있었던 층차와 아주 큰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사람마다 모두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인 것이 아니다.

제자: 석가모니는 49년이란 시간에 여래 층차에 도달했는데 누가 그에게 공을 연화(演化)해 준 것입니까? 그는 돈오(頓悟)에 속합니까, 아니면 점오(漸悟)에 속합니까?

사부: 그는 돈오에 속한다. 그는 사람을 제도하러 온 것이지 수련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누가 그에게 공을 연화(演化)해 주었는가? 누구도 그에게 공을 연화해 주지 않았다. 무릇 내려와서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은 내려오기 전에 많은 대각자와 공동으로 이 일을 토론하며 그 자신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자신이 봐서 정한다. 정해졌다면 바로 계획에 따라 하는데, 어느 때 가서 개공하고, 어느 때 가서 원만하며, 어느 때에 일을 마무리하는가 하는 이것은 모두 정해 놓은 것이다. 그는 또 우리가 말하는 개공・개오에 속하지 않는다. 당신은 아마 그리 이해하지 못할 텐데 그는 단번에 기억이 열렸고 그가 예전에 자신이 수련하던 것을 상기(想起)하게 되어 그는 그것을 내놓아 사람에게 전하였다. 내가 말하자면 석가모니가 당시에 전한 법, 종교 중의 법, 불교 중의 법은 높지 않다. 여기에서 석가모니가 높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도 자신의 것을 완전히 다 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2500년 전 원시사회에서 갓 벗어난 이런 사람들에게 전한 것으로, 그것은 그의 법 전부(全部)가 아니다.

제자: 오로지 가부좌하는 중에서만 비로소 공이 연화됩니까? 아니면 心性(씬씽)이 제고되는 동시입니까?

사부: 가부좌하는 중에서, 연공 중에서, 고생을 겪는 중에서, 난(難)을 겪는 중에서 모두 공이 연화된다. 心性(씬씽)이 제고되는 과정에서도 층차의 높낮이를 결정하는 공이 자란다.

제자: 어떤 사람은 관세음이 또 성불(成佛)했다고 말하는데요?

사부: 남이 함부로 하는 말을 듣고 믿지 말라.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말법시기에 이르러 인류사회는 각자(覺者)들이 모두 손을 떼고 상관하지 않으며 또 그들이 상관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인류사회에서 모두 손을 떼고 상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겁 중에서 그들의 처지 역시 아주 곤란한 것으로 자신을 돌보기에도 모두 바쁘다.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그들이 있는 그런 층차 중에서도 문제가 나타났다. 나는 예전에 여러분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은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고 나는 말했는데, 나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런 일은 엄연한 사실이다. 당신이 부처에게 빌어도 좋고 당신이 여러 가지 종교의 상(像)에 빌어도 좋은데,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매우 드물게 한 그림자가 거기에 있을 수도 있는데 그는 말을 할 수 있는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는 말겁을 의미하며 이때에 이르러서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지금 사람들이 인식하는 관음보살(觀音菩薩)은 바로 몇 년 전 사람들이 모신 관음보살이다. 공은 실제로 여래불보다 높고, 아미타불(阿彌陀佛)보다도 좀 높다. 왜냐하면, 대보살 자체가 바로 부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여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일부 공은 여래를 능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수련한 것이 바로 보살이기 때문인데, 그 자신은 하는 일이 따로 있다. 이 속에는 아주 많은 고심(高深)한 이치가 있고 이런 것은 인류가 알아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이 역시 속인의 그런 상하급(上下級) 관계가 아니며, 이는 별도의 일이다.

제자: 어떤 사람은 法輪世界(파룬쓰제) 중의 나한과 보살, 심지어 다른 일부까지도 다른 세계의 부처보다도 높다고 말하는데 그렇습니까?

사부: 그렇게 말할 수 있다. 일부 세계의 부처는 다른 세계의 부처보다 높다는 이것은 맞다. 왜냐하면, 층차 역시 부처가 있는 세계의 위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여래 층차의 부처라 하더라도 만약 부처 과위 중에 도달한 많은 사람을 거느린다면 이러한 사람 역시 높고 낮음이 있다. 전반 法輪世界(파룬쓰제) 역시 모두 이런 현상이 존재한다. 法輪世界(파룬쓰제)의 나한, 보살은 다른 세계의 부처보다 높고 法輪世界(파룬쓰제)의 층차는 대단히 높다고 말한다. 우리가 오늘날 전한 법은 아주 큰 것으로 法輪世界(파룬쓰제)에만 국한하여 전하지 않았다. 내가 사람들에게 알게끔 한 것이 法輪世界(파룬쓰제)이다. 하지만 法輪世界(파룬쓰제)의 것을 벗어난 것은 사람이 알 수 없게 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많은 사람은 이미 감수하였다. 이 법은 아주 커서 그렇게 많은 대각자가 모두 와서 이 법에 동화하고 있는바, 이 법은 일반적인 법이 아니며 사람을 이끌어 아주 높은 데로 수련시키는데, 이 점은 확실하다. 매 개인의 수련이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이것 역시 확실하다. 석가모니, 아미타불도 누가 그 한 문에서 수련한다고 하여 모두 그의 그곳으로 간다거나 혹은 다른 어디로 간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의 범위를 벗어났다면 아마 다른 곳으로 갈 것이다.

제자: 나한에 도달하였을 때, 공의 높이는 표준이 있는 것입니까? 초과(初果)나한은 心性(씬씽)과 공의 높이로 결정된 것입니까?

사부: 나한의 층차는 부동한 부처의 세계가 확정한 불변의 표준이다.

수련생의 心性(씬씽) 고저(高低)와 공의 연화 형식 전반은 같은 것으로서 전부 다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되는 이 단계에 도달해야 하는바, 그것은 상보상성(相輔相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것을 모두 아주 중하게 강조했는데 보도원은 이러한 문제를 마땅히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世間法(쓰젠파) 수련을 벗어났다면 바로 불체(佛體)수련이 아닌가? 出世間法(추쓰젠파) 수련에서 당신은 불체가 있게 되는데 불체는 고에너지물질로 완전히 대체된 신체이다.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나 정백체(淨白體)로 진입함은 전신이 고에너지물질로 대체된 투명체(透明體)가 아닌가? 더 앞으로 수련한다면 그것은 바로 불체가 아닌가. 초과나한에 진입한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러하다.

제자: 신체에서 나온 생명체, 예를 들어 용(龍) 등은 육도윤회(六道輪廻) 중에 있습니까?

사부: 육도윤회 중에도 일부 생물이 있고 육도윤회 밖에도 동물이 존재한다. 더욱 높은 층차 중에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그것은 수련하여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그 자연환경 중에서 생겨난 것이다. 고층차에서 수련하는 사람의 신체에서 나온 용(龍) 등의 생명체는 물론 당신의 것이며 또한 당신이 원만함에 따라 고층으로 간다.

제자: 신체에서 나온 생명체는 반드시 어느 한 도(道)를 수련해야 한다는 것이 있습니까? 만약 수도인(修道人)이 전일(專一) 하다면 부처 수련을 해도 됩니까?

사부: 이 문제에는 엄격한 규정이 없다. 부처 수련을 하든 당신이 또 그처럼 도를 닦든 이는 상관없다. 다만 그 한 문(門)의 사부가 시작할 때에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안 될 때에는 그 역시 당신을 상관하지 않는다. 당신이 확고하여 기어이 수련하겠다고 한다면 그 역시 상관하지 않는다. 만약 두 척의 배에 발을 딛고 수련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어느 쪽의 사부도 당신을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心性(씬씽) 문제로서 두 법문(法門)을 파괴하는 것이다.

제자: 꼭 사도(邪道)를 수련하도록 운명적으로 결정된 것이 있습니까?

사부: 있다. 전문적으로 말법시기에 나와 법을 파괴하는 것이 있는데 각종 형식을 채용한 것이 다 있다. 겉으로 드러나게 공개적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공격하고 나를 공격하는 것은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쉽게 변별(辨別)해 낼 수 있다. 이런 마(魔), 그것은 두려울 것이 없고 가짜 기공사 역시 두렵지 않으며 우리 수련생들이 감별(鑒別)할 수 있다. 지금 여러분은 최소한 그것이 정말인지 아니면 가짜인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명백해진 후에는 이전처럼 그렇게 맹목적으로 가서 배우지 않을 것이다.

가장 변별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런 마(魔)인데, 파괴력이 아주 크다. 그 마도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러 오고 역시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좋다고 말하며 다른 사람보다 더욱 격동되게 말하고 감수 역시 다른 사람보다 낫고 또 일부 무슨 형상을 보았다. 그런 후에 그가 단번에 죽어버리거나 혹은 단번에 반면으로 나아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파괴한다. 바로 이런 사람을 변별하기가 가장 어렵고, 변별하기 어려우므로 파괴력 또한 가장 크다. 그것의 파괴형식은 바로 그가 운명적으로 이렇게 하게끔 잘 배치해 놓은 것으로서, 어떻게 번거로움이 크다면 그는 바로 당신에게 그렇게 해준다. 내가 방금 파괴력이 크다고 말한 마는 바로 이 한 부류에 속한다.

제자: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부처로 수련성취 될 수 있습니까?

사부: 대보살은 이미 부처라고 호칭할 수 있다. 대보살이라고 하는데 당신은 지장왕을 말한 것인가? 지장보살은 다른 사람들도 그를 부처라고 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의 그런 일을 하고 있다.

제자: 사람의 元神(왠선)은 어떻게 온 것입니까?

사부: 이것을 나는 모두 말했다. 원시 생명이란 바로 우주 중의 각종 방대한 물질운동의 작용 하에서 생겨나온 것이다.

제자: 어떤 사람은 골목 소식을 말하는데요?

사부: 다른 사람이 이런 골목소식을 전하는 것을 듣지 말라. 특히 나의 법에 영향을 주거나 우리 법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여러분은 전하지 말라. 골목 소식이 당신 거기에까지 전해지면 무시해 버려라. 사람마다 모두 이렇게 한다면 그것도 전할 곳이 없게 된다.

제자: 타인의 공과(功過)를 평론함은 업을 짓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속인 중의 좋고 나쁨, 공로(功)와 과오(過)는 내가 생각하건대 연공인으로서 마땅히 좀 담담히 여겨야 한다. 당신은 속인 중의 일을 그렇게 흥미진진하게 담론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속인 중의 일에 흥취를 갖고 이러한 것에 집착하는가, 아니면 당신은 수련하려고 하는가? 속인 중에서는 고만한 일일 뿐이다. 내가 말하지 않았는가. 속인 중의 일은 별것이 아니라고. 이러쿵저러쿵 말해봤자 그것은 모두 그냥 속인이 속인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제자: 사람이 개오한 후에는 위로 수련할 방법이 없는지, 석가모니는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개오하고도 왜 여전히 위로 수련할 수 있었습니까?

사부: 사람이 원만하면 위로 수련할 수 없다. 개오란 즉 원만이다. 석가모니는 당시에 반 개오(半開悟) 상태에 처했지만, 그의 기억의 부분은 이미 열려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많고 많은 것이 열리지 않았으며 그가 아직도 많은 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는 비로소 위로 수련할 수 있었다. 석가모니가 무엇이나 다 알았다면 그는 위로 수련하기 어렵다. 그가 49년간 법을 전하면서 수련이 여래 층차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도달한 반 개오 상태가 아주 높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는 사람을 제도하러 온 것이기 때문인데, 우리의 반 개오는 그렇게 높게 도달할 수 없다. 하지만 극소수의 사람은, 나는 여전히 극소수 사람을 강조하는데 아마 대단히 높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개인의 상황이 모두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제자: 사람이 죽은 후에 친족관계가 존재하지 않으며 元神(왠선)은 제각기 갈 곳으로 간다는데, 왜 조상의 德(더)와 업력이 자손에게 아래로 내려 쌓입니까?

사부: 그렇다. 이 우주에는 바로 이런 이치가 있다. 그것 역시 사람을 단속하는 하나의 이치이다. 당신이 업을 짓고 죽었다면 당신의 후대는 업을 갚아야 한다. 그래서 후대에 복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돈을 아주 많이 벌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얼마 쓰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후대에 남겨서 복을 누리게 하려고 한다. 그는 세간의 일을 아주 중하게 보며 그의 후대를 아주 중하게 본다. 심지어 그가 떠난 다음의 명예마저도 대단히 중하게 보며 존재하지 않는 이름마저도 그는 모두 중하게 본다. 그는 이런 요소가 있기 때문에 업을 쌓을 수 있고 후대에 업을 쌓아줄 수 있다.

제자: 듣기로는, 한 사람이 성불(成佛)하면 구조승천(九祖昇天) 한다는데요?

사부: 우리 어떤 사람이 크게 착한 일(大善事)을 했거나 혹은 괜찮게 수련되었다면 아마 부모는 덕분에 모두 초도(超度)되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층차로 초도되는가 하는 것은, 그의 부모 자신의 원래 상황에 근거해야 하며 또한 우리의 수련상황은 그들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조상이 德(더)를 쌓았으면 자연히 복이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한 사람이 연공한다면 조상이 德(더)를 쌓았다고 말하고, 당신이 부처로 수련되었다면 당신의 부모는 그야말로 큰 德(더)를 쌓은 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삼계를 벗어난 사람이 아주 적다. 그는 다만 德(더)를 쌓았고 좋은 일을 했을 뿐이다. 당신과 같은 이런 아들이 있고 당신과 같은 이런 딸이 있는 이런 연유로 말미암아 조상 역시 德(더)를 쌓은 셈이 된다. 그러나 이로써 부모도 성불(成佛)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안 된다. 그러려면 수련을 해야 한다. 그는 다만 다른 층차의 천인(天人)이 되어 복을 누릴 따름이다. 무슨 구조승천(九祖昇天)이란 없으며 이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제자: 어느 날 밤, 꿈에 부모님이 수련하면서 집에서 공양하는 그런 종이를 찢으니 저절로 불이 붙는 것을 보았습니다. 가족들이 권고를 듣지 않기에 저는 사부님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부님께서 오셔서 상황을 말씀하시니 부모님이 즉시 종이 한 장에 불을 붙였는데 그 종이도 불에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사람은 또 사부님이 아니셨고 백정 옷을 입고 장터에서 마이크를 잡고 고기를 팔고 있었는데 저는 덩달아 울기 시작했는데요?

사부: 이는 틀림없이 마(魔)이며 이것은 사람을 욕하는 것을 암시한다. 이 마의 위패를 태웠고 죽여 버렸는바, 그 뜻은 바로 백정이 살인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뜻이다. 그것도 능력이 조금 있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연화(演化)하여 사람을 미혹시키고 있다. 왜 오늘날 이러한 마를 이처럼 깨끗이 청리(淸理)하려고 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내가 사과에 대한 예를 든 것처럼, 인류사회는 이 지경에 이르렀다. 또 인류뿐만이 아니라 물질과 그러한 동물도 모두 업을 갖고 윤회하고 있는데, 모두 업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대단히 크다. 당신은 동물이 수련 등을 안다고만 보지 말라. 인류의 일을 절대 이러한 동물들이 교란하고 주재(主宰)하도록 할 수 없다. 그것들이 이미 이런 작용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이미 하늘의 이치를 위배한 것이다. 대역지마(大逆之魔)는 마땅히 죽여야 한다. 이 역시 말법, 말겁시기의 필연이다. 동물이 좀 높은 공으로 수련되면 마땅히 죽여 버려야 한다. 지금은 그야말로 난잡하기 그지없다.

나는 사람들이 옳다고 여기는 이치를 고층차에 가서 보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고층차의 대각자가 보기에 인류사회의 이러한 요마귀괴(妖魔鬼怪)들이 모두 뛰쳐나왔는데, 누가 사람 몸(人身)의 것을 갖고자 하면 갖고, 사람을 단속하고자 하면 곧 단속한다. 요마귀괴는 그래도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에게 병을 봐주었다고 하는데 무슨 병을 보았는가? 요마귀괴가 병을 본다는 것은 그것의 그러한 것을 사람 몸에 넣는 것이 아닌가? 이는 이미 나쁜 짓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제자: 과거에 우리가 발견한 그런 원고(遠古) 시기의 동물에 대해 말한다면?

사부: 오늘날의 동물은 진화해 온 것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대륙판이 이동하고 부동한 시기의 주기적인 연화(演化)로 인해 물종(物種)이 바뀐 것이다. 만약 우리 오늘의 대륙판이 가라앉고 다시 태평양・인도양・대서양에서 대륙판이 올라온다면 새로운 물종이 존재할 것이며 새로운 물종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므로 대륙판이 다시 가라앉는다면 또 새로운 물종이 생길 것이다. 만약 이 지판(地板)과 저 지판이 다시 새롭게 바뀌어 수많은 해를 지나 다시 이 지판이 또 바뀐다면, 그럼 그 물종 역시 원래의 물종이 아닌, 더욱 새로운 물종으로 생겨날 것이다. 물종이 이러한 과정을 거쳐 왔기에, 사람들은 진화(進化)하여 온 것이라고 말하는데 전혀 그런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왜 진화 과정 중 그 과도기의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가? 모두 두 개 물종이 각각 달리 존재하는 형식만을 보았을 뿐, 중간의 과도형식의 것은 없다.

제자: 수련하는 사람이 성불(成佛)한 후 어느 신체가 부처로 됩니까? 眞體(쩐티)입니까? 아니면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까?

사부: 과거에 정토종(淨土宗)에서 수련하는 사람, 그는 신체수련을 강구하지 않으며 다만 心性(씬씽) 수행을 중시했다. 특히 가부좌하지 않고 수련하는 그러한 법문이 이러했다. 그러면 그의 불체(佛體)는 그를 인도하는 부처가 연화(演化)해 준다. 그를 인도할 때 직접 하나의 불체를 준다. 그러나 진정하게 가부좌하고 착실히 수련하는 그러한 사람들은 그 자신이 원영(元嬰)을 수련해 낼 수 있다. 또한, 도가와 불가의 일부 특수한 수련방법 중에는 자신을 개변하여 성명쌍수에 도달하고 또 기타 일부 것들을 수련해 낼 수 있으며, 자신의 主元神(주왠선)이 일체를 주재할 수 있다.

제자: 元神(왠선)은 고에너지물질입니까?

사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다. 당신의 元神(왠선)은 가장 미시적(最微觀)이고 가장 미소(最微小)한 물질로, 가장 본원적인 물질로 구성되었다. 당신의 성격, 당신의 특성은 물질의 본원에서 이미 운명적으로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시간과 생생세세를 거쳐서도 개변하기가 몹시 어렵다. 하지만 본성은 선량한 것이다.

제자: 그리스도는 그의 그 천국에서 온 사람들을 제도(度化)하러 온 것입니까?

사부: 이 말도 틀리지 않다. 왜냐하면, 유럽 인종, 가장 원시적인 인종은 모두 그들의 그 특정한 공간에서 왔기 때문인데, 그의 거기에는 그의 그곳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제자: 제가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기 전에 꿈속에서 스승님을 뵌 적이 있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대법을 배우기 전에 나를 본 사람이 아주 많다. 어떤 사람은 수년 전, 몇십 년 전에 나를 알았고, 또 어떤 사람은 꿈속에서 나를 보았다는데, 이런 사람이 아주 많다. 또 점쟁이가 수년 전에 알려주었다는 등등, 이러한 것은 부동한 시공(時空)의 반영이다.

제자: 제 아이가 스승님을 뵌 적이 있으며 또 스승님을 안다고 하는데요?

사부: 이 아이의 근기 역시 괜찮은 것으로 아이가 잘못 말하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내력(來頭)이 있는 것으로 법을 얻기 위해 온 것이다.

제자: 德(더)・공(功)과 眞(쩐)・善(싼)・忍(런)은 같은 부류의 물질입니까? 아닙니까?

사부: 眞(쩐)・善(싼)・忍(런)은 일반적인 물질로 인식할 수 없으며 같은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어떤 물체든 모두 물질로 구성된 것이지만 그는 이런 개념이 아니다. 그는 마치 우리 사람의 元神(왠선)과도 같은데, 당신이 그와 우리 사람의 신체가 무슨 물질로 구성된 것인지 말해 보라. 마치 방금 내가 제기한 그 문제처럼 그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어떠한 물질이든 모두 물체이며 이런 특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역시 법의 체현이다. 그러나 德(더)와 공(功)은 물질형식으로 체현된 것이다. 하지만 모두 같은 부류의 물질이 아니면서도 또한 모두 우주 특성 眞(쩐)・善(싼)・忍(런)에 동화된 것이다.

제자: 파・생강・마늘을 먹을 수 있습니까?

사부: 우리가 오늘날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제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의 전업수련 중에서 장래의 승려는 이것을 계(戒)할 것을 요구한다. 진정하게 여러분과 단체적으로 가부좌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는 사람은 역시 먹을 수 없다. 과거에는 그것이 사람의 수련을 교란하기 때문에 비로소 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파・생강・마늘은 사람의 신경을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늘 먹고 많이 먹으면 인이 박이게 마련이다. 먹지 않으면 생각나게 되는데 집착심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이런 것들, 그것을 담담하게 내려놓아야 한다. 익힌 것이라면 그건 문제가 없다. 그것은 냄새가 없으며 파 양념을 한 것은 괜찮다. 우리는 실제적인 의의에서 보아야 한다. 그 해 석가모니가 먹지 못하게 한 것은 바로 사람의 수련을 교란하고 방출하는 냄새가 아주 코를 찔러 입정(入靜)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열 명, 여덟 명의 승려가 둥그렇게 모여 앉아 입정(入靜)하여 가부좌했는데, 이 냄새가 풍기면 여러 사람은 누구도 입정할 수가 없었다. 가부좌하고 실속 있게 수련하는 것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여겼기에 이러한 것을 끊음을 아주 엄숙하게 여겼다.

제자: 德(더)・공(功)과 眞(쩐)・善(싼)・忍(런)은 같은 부류의 물질입니까?

사부: 德(더)는 일종 백색 물질이며 일종 특수한 물질이다. 업력 역시 일종 특수한 물질이다. 공을 말한다면 그것은 일종 승화된 德(더)의 물질로서 또 우주의 기타 물질과 섞여 형성된 것이다. 眞(쩐)・善(싼)・忍(런)은 법이고 일종 특성으로서 일반적인 물질개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이는 초물질(超物質)이다.

제자: 불괴지체(不壞之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나면 곧 불괴지체다. 불체(佛體)가 나쁘게(壞) 될 수 있겠는가? 그는 우주 중에서 가장 풍부하고 가장 좋은 물질로 구성된 것으로 우주가 나쁘게 되지 않는다면 그도 나빠지지 않는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최종에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 겁니까?

사부: 나의 法輪世界(파룬쓰제)는 다 받아들여 놓지 못할 것이다! 오로지 진정하게 정과를 얻고 원만에 이른 사람만이 비로소 갈 수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은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간다고 한다면, 현재 사람이 몇억이나 되지 않는가! 장래에는 대법을 배우는 사람이 더욱 많아질 것이며, 생생세세 사람들이 이어가면서 계속하여 수련할 텐데, 모두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간다면 그건 받아들여 놓지 못할 것이다. 수련은 하였으나 원만하지 못해 가게 되는 고층공간 역시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 수련생 대부분은 서로 다른 고층차에서 온 것으로 법을 얻은 후 자신의 원래 세계로 간다.

제자: 제 외손녀는 다섯 살인데 학습반에 두 번 참가했습니다. 꿈속에서 늘 일어나 연공하며 어른이 말을 걸어도 대꾸하지 않는 데 정상입니까? 그 아이는 또 늘 스승님께서 글자를 가르치시고 회화를 가르치시는 것을 보며 스승님께서 창공과 꽃구름 위에 계시는 것을 본다고 하는데요?

사부: 연마하는 것이 法輪大法(파룬따파)라면 정상적이다. 근기가 괜찮은 어린이가 아닌가. 절대 아이에게 난잡한 공을 배우지 말도록 해야 하며 아이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 이런 아이는 모두 법을 얻으러 온 것으로 절대 아이에게 좋지 못한 일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전국적으로 이런 아이들이 많다.

제자: 신수련생을 받아들이는 표준은 무엇입니까?

사부: 없다. 연마할 수 있으면 연마하도록 하라. 물론 두 가지 병은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을 응당 지적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제출한 것인데, 위중한 환자는 업력이 너무 커서 수련할 수 없고, 정신병 환자는 사상업력이 너무나 커서 主元神(주왠선)이 똑똑하지 못하므로 수련할 수 없다.

제자: 속인 중에서 하는 수련은 체내 분자구조를 개변시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저희의 出世間法(추쓰젠파)는 체내 분자구조를 개변시키는 것입니까?

사부: 당신이 수련 중에서 개변되지 않고 出世間法(추쓰젠파) 후라면 당신은 또 어떻게 개변될 수 있겠는가? 世間法(쓰젠파) 중에서부터 시작하여 한 걸음 한 걸음씩 개변되고 있으며 제고되고 있다. 世間法(쓰젠파) 를 벗어날 때 기본적으로 이미 개변이 전부 끝난다.

제자: 텔레비전 연속극 ‘달마 이야기’를 수련생이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맞습니까?

사부: 이건 괜찮다. 수련생은 그것을 이야기로 삼아 볼 것이며 따라 배우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그는 틀림없이 배우지 않을 것이다. 바로 불교의 어느 화상(和尙)이 지금 여기 앉아 있다면, 어떻게 설(說)하든 그 또한 배우지 않을 것이다. 이건 괜찮다. 왜냐하면, 우리가 수련반을 열 때 이미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선종(禪宗) 법문은 이미 존재하지 않으며 또 단지 지금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6조(六祖) 혜능 거기까지 와서 없어졌다. 몇백 년 가지 않아 그것은 진작 없어졌으며 남겨놓은 것은 역사뿐이다. 당신이 보라. 그 선종의 화상은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는 무슨 아미타불경도 꺼내보는데, 그에게는 선종의 것이 없다. 선종의 법은 세간에서 이미 없어졌다. 사실 말법시기에는 단지 선종의 법만이 아니라 어떤 법이든 모두 없어진다.

제자: 어떤 사람은 학습반에 참가한 적이 없는데도 연공을 하고, 책과 法輪(파룬) 배지를 샀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또 연마하지 않는데 책과 배지를 회수해야 합니까?

사부: 그가 사갔으면 그만인 것으로 고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그가 돈으로 샀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무슨 행정관리 방법이 없다. 당초에 나는 이런 것들을 내놓는 것을 주장하지 않았는데, 수련생과 제자들의 요구로 내 놓았는바, 이럴 수밖에 없다.

제자: ‘터우딩빠오룬(頭頂抱輪)’을 할 때면 늘 머리에 무거운 감이 있고 들지 못하겠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 머리가 무겁다고 하여 꼭 나쁜 일은 아니다. 공기둥을 수련해 냈어도 역시 무거운 감각이 있다. 만약 위에 빛으로 된 큰 구(大光球)가 나왔다면 그것도 당신을 짓누를 것이며, 만약 그 위에 부처가 앉아 있다면 당신을 더욱 짓누를 것이다. 위에 무엇이 있든지 상관하지 말라. 그 연공이란 바로 이런 것이며 모두 좋은 일이다. 사람의 정수리(頭頂)에는 아주 많은 것이 나올 수 있다. 기를 연마하는데도 또 하나의 큰 기의 기둥이 나타날 수 있잖은가.

제자: 꿈속에서 고험을 겪을 때의 대응이 청성(淸醒)할 때보다 더 좋았는데 副元神(푸왠선)이 아닙니까?

사부: 그건 물론 아주 괜찮다. 副元神(푸왠선)이 아니다. 副元神(푸왠선)이 하는 일은 당신이 보지 못하게 하므로 당신은 알 수가 없다.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제자: 정백체(淨白體) 이상의 층차로 수련되었을 때, 몸에는 차고, 덥고, 저리고 부풀어나는 등의 반응이 있습니까?

사부: 역시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부동(不同)한 층차의 부동(不同)한 것이 당신 몸에 체현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병이 있는 것 같은 그런 괴로운 상태가 갈수록 적어지긴 하지만 무엇이나 다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주겠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은 이런 한마디 말을 했고, 도가 서적 중에도 이런 한마디 말이 있다. 수련이 얼마나 높은지에 상관없이 왜 이렇게 괴로운가? 이는 속인 중에 있기 때문이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와 종교는 모순되지 않습니까?

사부: 역사상 우리는 종교로 들어간 적이 없다. 지금 우리는 대부분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고 있는바,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종교가 아니다. 종교의 목적이란, 한 면은 수련하는 것이고, 한 면은 사람을 도화(度化)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좋은 일을 하게끔 하며 인간 세상에 도덕이 오래 존재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것이 종교가 하는 두 가지 일이다. 우리가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 역시 이러한 작용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종교형식이 없다. 장래에는 전업으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제자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아직 이 한 걸음까지 나아가지 않았다.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지금 이미 대법을 수련하는 화상이 있다. 어쨌든 우리 이 법은 사회에 유익하며 사람에게 유익하다. 우리는 사회정치에 간섭하지 않으며 정부정책을 위반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다. 국가에 대해서나 속인사회에 대해서나 어떠한 일에 대해서, 모두 해로운 점이 없으며 다만 좋은 점만이 있을 뿐이다.

제자: 저는 가부좌할 때 늘 엘리베이터를 타듯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와 자신이 아주 작게 변하는데 무엇 때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부: 이것도 정상적이다. 이는 元神(왠선)이 아주 작기 때문인데 또 아주 크게 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연공할 때 신체는 밖으로 확장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하늘을 떠받치고 땅 위에 우뚝 선(頂天立地) 것 같은 감을 느끼며, 어떤 사람은 아주 작게 변한 것처럼 느끼기도 하는데 모두 정상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수련하는 사람이 만약 좋지 않은 일을 하면 아래로 떨어지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층차가 떨어져 내린 것으로서, 신체의 용량도 축소된다.

제자: 근 몇 개월간, 저는 꿈속에서 늘 주위의 일부 친지들과 함께 아주 미끄러운 진창 속에서 바삐 보냈습니다.

사부: 이것이 바로 사람은 속인 중에 있다는 것이며 남이 보건대 인류는 바로 흙장난을 하고 있다.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여 정과를 얻었다면 반드시 本體(번티)를 갖고 가는 것입니까?

사부: 우리 이 법문이 요구하는 원만은 本體(번티)를 갖고 가는 것이다. 本體(번티)를 가지지 못하고, 이 신체가 이런 형식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은 안 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진정으로 수련하면 거의 다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오로지 과위(果位)에 진입하여 世間法(쓰젠파) 수련을 벗어나기만 하면 당신의 신체는 이미 성취된 것인데, 많은 사람이 이미 여기까지 도달하였지만, 자신은 모르고 있다. 이는 신체 일부분이 잠겨 있어 일부 속박을 받으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수련함에 따라 더욱더 뚜렷해질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를 설명해야겠다. 아마 어떤 사람은 여러 가지 원인의 제한으로 말미암아 원만에 도달하지 못하고 다만 다른 층차 중에서 천인[天人(神仙-신선)]이 될 뿐이다. 그러므로 신체적인 변화가 아주 적다. 사실 이것도 일반 사람에서 보면 역시 더없이 높고 더없이 아름다운 큰 복이다. 일반 기공 중에서나 부체 공, 사법(邪法) 중에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다.

쪽지를 다 전했다. 내가 오늘 해답한 이런 문제들은, 주로 우리 보도원과 골간(骨幹)이 제출한 것을 말한 것이다. 물론 우리 어떤 수련생은 더욱이 학습반에 참가하지 못했거나 혹은 학습반에 단 한 차례 참가한 것으로 오지 말아야 할 사람인데도 왔다. 이는 당신이 이 법을 듣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고 당신이 수련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즉 당신은 아직도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말인데 그것은 아주 큰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당신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니 당신은 아마 생각이 있을 것이고 아직 心性(씬씽)이 높지 못한 탓으로 아마 이러쿵저러쿵할 것이며, 왔지만 또 당신이 받아들이지 못할까 걱정인데 회의(懷疑)가 생기면 당신의 장래를 망치게 된다. 어쨌든, 들은 후에 믿기지 않으면 그것을 이야기로 삼아 듣도록 하고 절대 어떤 저촉(抵觸)하는 정서가 생기지 말아야 한다.

내가 말한 이러한 법은 주로 우리 이런 보도원, 골간에 한 것으로, 장래에 당신들이 대법 일을 할 때 좋은 점이 있을 것이다. 어떤 문제는 공통성이 있는 것으로 수련생이 제기하면 해답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최소한의 일부 사정을 알 수 있다. 사실 내가 말했듯이, 이 보도원회의를 열지 않아도 할 수가 있다. 예컨대 내가 제남학습반에서 강의를 끝마치고 가려고 할 때 많은 각자(覺者)들이 모두 나에게 말했다. “이 수련반에서 이미 모든 것을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 뜻인즉 속인이 알아야 할 것은 모두 말했다는 것이다. 내 말은, 이 법에 따라 배우고 오로지 투철하게 이해하기만 한다면 해결하지 못할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내가 말한 이 법은 또 단지 나의 이 한 문(門) 중의 것만이 아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아주 큰 것이다. 물론 우리가 오늘날 하는 일은 과거의 공(功)을 전하던 일과는 하는 일이 같지 않다. 사람들은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하는데 석가모니는 동물마저도 그 속에 포함했다. 석가모니는 중생을 널리 제도함을 말했는데, 그가 중생을 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일체 생명에 대해 자비를 베풀고자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왜 이렇게 하지 않는가? 사람을 제도함에 우리는 왜 여전히 선택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학습반에 들어오는 데도 선택조건이 있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이 일체 일은 당초와 모두 같지 않고, 어떤 사람은 끝도 없이 나쁘게 변해 청리(淸理)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은 남겨야 하고 어떤 사람은 수련하여 올라가게 될 것이므로 이러한 문제가 나타났다.

됐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이 회의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앞으로 돌아가서 어떤 말을 해야 하고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할지? 우리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 문제를 더 강조하지 않겠다. 한 마디 말하자면 우리 이 법에 대해 책임지며 당신 개인에 대해 책임지는 데 입각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곧 이만큼 말하겠다.

…… 우리는 토론을 거쳐, 대법에 대한 인식이 한층 더 깊어졌을 테고 또 우리의 인식이 일치되었을 것이므로 내 생각에 장래에 수련생에게 일부 일을 해답해 줄 때 훨씬 나을 것이다. 이것이 한 가지이다. 또 한 가지는, 나는 아직 우리 몇몇 책임자와 이 일을 말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단지 단체 연공만 하지 말고 특정한 시간을 찾아 단체로 법 공부를 할 수 없겠는가. 우리가 나의 고향에서 선두로 나서서 좀 조직하면 좋겠다. 매 장(章) 매 절(節) 여러분이 읽고 토론해 보라. 학습시간의 안배는 단체연공처럼 고정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건대 이렇게 하면 좋은 점이 더욱 많고 겨냥성이 있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장래에 실제 문제에 부딪히면 의지할 법(法)이 있게 된다. 우리가 선두에 선다면 전국 각지 보도소에서 아주 좋은 선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후에 전국 각지에서 본받을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인식제고에 많은 좋은 점이 있기에 이러한 건의를 제기하는 바이다.

法輪大法(파룬따파) 창춘(長春) 총보도소 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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