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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법회 설법

 

李 洪 志
1996년

 

나를 소개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여러분은 모두 나를 알고 있는바 내가 바로 리훙쯔(李洪志)이다. 줄곧 여러분과 만나려고 했으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말미암아 이런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여러분을 좀 만나 보려고 특별히 온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이 지방은 과거 이 대법을 인식하는 사람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많지 않았고 또 많은 배우는 사람은 법 공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으며, 인식 역시 비교적 얕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여러분이 내가 전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을 때라고 느껴 다시 와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다. 왜냐하면, 당신이 알고자 하는 많고도 많은 것을 모두 책에다 써놓았기 때문이다. 나, 이 사람은 이런 한 가지 습관이 있는데, 나는 다른 사람이 나에게 수련 중의 명백하지 않은 일을 묻는 것을 좋아한다. 이 법에 대하여 말한다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채 와서 나에게 이 법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주 얕은 인식으로 이야기한다 해도 당신에게 단번에 알게 하기는 몹시 어렵다. 만약 당신이 책을 볼 수 있고 법을 배울 수 있어 일정한 이해가 있는 다음 당신이 다시 와서 나에게 당신의 제고에 의의가 있는 일부 일들을 묻는다면, 학습이든 혹은 수련이든 당신에게 유익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오늘 기회와 인연이 성숙하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왔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일부분은 아직 배우지 못했고 일부분은 아직도 동작만 연마할 뿐 법 공부를 중시하지 못하며, 일부분 사람은 비교적 좀 잘 배웠음을 알고 있다. 나는 왜 여러분에게 반드시 법 공부를 할 것을 요구하는가? 이 속에는 이런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 이 지방에서 기공이 광범위하게 속인사회에 보급된 지 이미 20여 년의 역사가 있는데, ‘문화대혁명’의 중기・후기에 고조로 진입했다. 그러나 이 기공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말하는 사람이 여태껏 없었고, 기공에 나타난 일부 공능이라든가, 현대 과학이 해석할 수 없는 일부 현상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지 말하는 사람 역시 없었다. 그렇다면 기공이 나타나게 된 목적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역사상 여태껏 기공이라고는 출현한 적이 없는데, 왜 오늘날 이 기공이 출현했는가? 게다가 하나의 수련으로 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다. 왜 이런가? 무엇 때문인지 아는 사람이 아주 적다. 물론 이 기공이 초기에 중국에서 보급될 때 많고도 많은 아주 좋은 기공사가 나왔는데, 그들은, 이 일을 하는 목적이 단지 바로 국민의 신체건강을 위하여 좀 좋은 일을 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바로 이렇듯 간단한 생각과 인식이었다.

비록 이 기공, 그것이 아주 긴 시간 보급되었고 몇 십 년이 되었지만, 기공의 진실한 함의가 무엇인지를 줄곧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전법륜(轉法輪)』 이 책에 기공계의 일부 현상과 왜 기공이 속인사회에서 유전하고 있는지, 기공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지를 모두 이 책에 써넣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체계적으로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끔 한, 이런 한 부의 저작(著作)이다. 많은 사람이 책을 반복하여 읽음으로써 이런 특점이 있는 것을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는데, 이 책은 당신이 몇 번을 보든 당신은 모두 마치 일종의 신선한 감이 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당신이 몇 번을 보든 같은 한 구절의 말에 당신은 모두 같지 않은 인식이 있을 것이며, 당신이 몇 번을 보든 모두 그 속의 많고도 많은 내포는 아직 보아내지 못한 느낌일 것이다. 왜 이럴 수 있는가? 바로 내가, 사람이 수련할 수 있는지, 사람은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지, 이 우주의 특성 등등 많고도 많은 천기(天機)라고 여기는 것을 모두 체계적으로 귀납하여 이 책에 써넣었기 때문이다.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로 하여금 원만(圓滿)을 이루게끔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보고 많은 것이 천기(天機)이며 많은 것이 비밀 중의 비밀이라고 느낀다. 인류로 하여금 여태껏 알지 못하게 한 것, 여태껏 인류가 알 수 없었던 것을 나는 모두 이 책에다 노출했다. 물론 내가 이렇게 하는 데는 목적이 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함부로 천기를 누설하고 무책임하게 이런 일을 하며, 아주 높은 층차의 이치를 일반적인 이론으로 삼아 매우 평범한 사람에게 이야기하여 함부로 듣게 한다면 그는 천기누설하는 것과 같으며 나쁜 짓을 하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그는 반드시 응보를 받을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함은 목적이 있다. 하나는 아주 낮은 층차에서 말하면, 나는, 많은 사람이 이 다년간의 기공 연마를 통해 이 기공에 아주 높은 내포(內涵)가 있음을 알고 또 사람에게 아주 높은 경지로 수련하게끔 하며, 나아가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런 진정한 수련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했는데, 일반적인 기공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히 하는 것에 속하기에 수련할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절로 가서 거사가 되었고 화상(和尙)을 사부로 모셨다. 물론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내가 알려주는데, 석가모니 부처는 그의 법이 말법 시기에는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했다. 이것은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것인데, 이 일은 각종 원인으로 인하여 촉성(促成)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은, 당신이 사원 중에서나 혹은 기공 중에서 어떻게 수련했던지 간에 당신 자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승화하지도 못했으며 또 진정으로 제고되지도 못했음을 느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이 이렇게 향상하려는 마음이 있지만, 출로를 찾지 못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여러분이 아주 고생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법을 얻으려는 사람을 진정으로 높은 층차로 이끌려 했다. 이것이 주요한 원인이다.

하지만 일단 정법(正法)이 전해 나오면 인심, 도덕이 되돌아 올라옴을 요구하고, 사람에게는 착함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수련인에 대한 요구는 일반 속인의 도덕수준을 초월하게 되므로, 그는 인류사회에 대해서 유익한 것이다. 물론 많은 사람이 이 책을 본 후 꼭 진정으로 수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사람이 되는 도리를 알게 된다. 그는 이후 아마 좋은 사람이 될 것인데, 그가 비록 수련하지는 못해도 그 역시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사회에 대해 유익한 것이다. 정법(正法)이 일단 전해 나오면 필연 이러하다. 사실 역대로 세상에 출현한 정교(正教), 예컨대 기독교・천주교・불교・도교, 유태교를 포함하여 그는 모두 인심(人心)을 착하게 할 수 있고, 동시에 진정으로 수련하여 올라가려는 사람에게 법을 얻게 하고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게끔 하는가 하면, 잠시 수련하여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을 또 속인사회 중에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게끔 하고, 기회와 인연을 창조하여 장래 다시금 수련하게끔 하는데, 그는 이렇게 할 수 있다.

우리는 비록 종교가 아니지만, 내가 전하고 있는 기공은 높은 층차의 것으로서, 일반적인 기공이 아니다. 명백하게 말하면 기공, 그것 역시 속인 중의 것이 아니다. 기공은 무엇인가? 기공은 바로 수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태극권(太極拳)을 포함하여 가장 낮은 층차에서 수련하는 것들이다. 여러분은 태극권이 아주 좋음을 모두 알고 있는데 50년대 중국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유행했다. 이는 명나라 시대 장삼풍(張三豐)이 전한 것이다. 하지만 유전하여 온 것은 다만 품세나, 동작뿐이고 심법(心法)은 전해지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그는 그것의 그 수련 지도와 매 한 층차에서는 어떻게 제고하는가 하는 이런 법을 사람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태극권도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이런 경지로 국한될 수밖에 없었으며 높은 층차로 수련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비록 아주 좋은 것이긴 하나 심법(心法)을 전하지 않았다. 당시 심법(心法)이 있었지만, 남겨놓지 않았으며 후세사람에게 남겨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날 전하는 이 법은 체계적으로 이런 일을 했다.

물론 우리 여기에는 적지 않은 신(新) 수련생이 있으므로 아마 어떤 사람은 내가 한 이야기가 너무 높다고 느낄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각종 종교가 모두 사람에게 착해지라고 하고 또 사람에게 천국으로 가라고 한다. 불교라면 당연히 극락세계인데 역시 천국이다. 역사상 어떤 대각자(大覺者)이든, 어느 성인(聖人)이든 모두 사람이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를 말했고, 더욱 높은 경지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 그 중의 이치를 말하지 않았다. 이런 대각자, 예컨대 예수, 석가모니 부처, 노자 등등은 모두 2천 년 전후 이 시대에 나타났다. 그런데 그때의 사람과 오늘날의 사람은 같지 않다. 그때 사람들의 사상은 비교적 단일하고, 비교적 순박하며, 비교적 선량하고 사상이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의 사유상태는 지금과 다르므로 그들이 그때 말한 그 법은 그때에는 작용을 일으켰으며, 말한 것이 그때에는 완전히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지금 사람들의 사상은 더욱더 복잡하게 변했으며 사유방법에도 변화가 발생했다. 그러므로 과거 이런 대각자가 전한 이런 것들을 현대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런 경서를 봐도 모두 그 중의 진정한 함의는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오늘 내가 법을 전함에 비록 기공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지만, 모두 내가 불법(佛法)을 전하고 있음을 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불법을 전한다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가 이야기한 말과 같지 않은 것 같은데?’라고 생각한다. 만약 내가 석가모니 부처가 이야기한 말로 이야기한다면 오늘날의 사람은 누구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언어는 그 당시 인류의 언어였으므로 그 당시 사람은 다 알았다. 그러면 오늘 불법을 말함에 오늘날의 언어로 여러분에게 이야기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또 ‘당신이 말한 것은 불교 중의 경문(經文)이 아니잖은가?’라고 생각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원시육불(原始六佛)이 이야기한 법을 말했는가? 만약 미륵(彌勒)이 세상에 내려온다면 석가모니 부처가 이야기한 말을 반복할 것인가? 사람을 제도하는 각자가 이야기한 일체는 모두 자신이 증오(證悟)한 바의 법으로, 사람에게 전하여 제도하는 것이다.

나는 이 책 속에다 아주 많은 수련에 관한 것을 써넣었다. 사람의 수련은 속인에서 시작하여 발걸음을 떼는데, 원만(圓滿)에 이를 때까지 모두 법이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것이다. 나는 확실히 앞사람이 여태껏 하지 못했던 일을 했으며 더욱 큰 우주의 근본 대법을 전했다. 당신이 동서고금의 책을 다 뒤져보아도 이런 것은 없다. 내가 말한 이치는 우주의 특성이고 불법의 근본임을 진실하게 나의 언어로 그를 표현했다. 많은 사람이 책을 보고 나면 모두 하나의 생각이 있는데,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리(李)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큰 학문이 있는가?”라고 한다. 그이는 동서고금의 천문・지리・역사・화학・물리・천체물리・고에너지 물리・철학, 마치 아주 많은 범주를 다 개괄해 넣은 것 같다고 한다. 사람들은 선생님의 지식이 매우 해박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속인 중의 학문으로 말하면 나는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되어 부끄럽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당신이 세상의 모든 책을 다 뒤져보아도, 세상의 모든 학과를 배운다 해도 배우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배웠어도 당신은 여전히 속인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바로 인간 이 한 층차 중의 사람으로 단지 일부 속인의 지식을 좀 더 장악했을 뿐, 여전히 속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이치, 내가 말한 것은 속인 이 층차 면의 것이 아닌, 속인 이 층차 면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속의 이치는 속인의 지식에서 온 것이 아니다. 법은 우주에서 속인사회에 이르기까지의 일체 지식을 포함한다.

나는 매우 알기 쉽고 통속적인 속인의 언어와 기공이라는 이런 가장 낮은 수련형식으로, 가장 낮은 데서부터 가장 높은 데까지 우주의 일체 법리(法理)를 표현했다. 이 책을 한 번 보면 당신은 그가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가르치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만약 당신이 이 책을 다시 한 번 보면 그가 논술하는 것은 속인의 이치가 아니며 그는 한 부의 속인 지식을 초월한 책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으며, 만약 당신이 세 번 볼 수 있다면 당신은 그가 한 부의 천서(天書)임을 발견할 수 있고, 만약 당신이 다시 본다면 당신은 아쉬워 손을 떼지 못할 것이다. 중국에 지금 어떤 사람은 이미 백여 번을 보았지만, 여전히 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예 내려놓지를 못하는데, 그 속의 내포가 너무나도 커서 볼수록 더욱 많고 볼수록 더욱 많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비록 천기를 아주 많이 누설했지만, 수련하지 않는 사람은 표면밖에 보아내지 못한다. 오로지 수련하는 사람이 끊임없이 책을 볼 때에만 비로소 그 중의 내포를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은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승화되기 때문이다. 왜 당신은 이 책을 처음 볼 때, 당신은 왜 그가 어떻게 하나의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는가? 두 번째로 보면 그것이 아니며 그는 승화하게 되는가? 왜냐하면, 사람이 수련하려면 우선 속인의 이 기점(基點) 위에서 수련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차 그의 心性(씬씽)을 제고하여 더욱 높은 표준에 도달한다. 당신이 제1층차의 표준에 도달하면, 그 한 층차의 법으로 당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하며, 당신이 제2층차에 도달했다면 제2층차의 그러한 법으로 그 한 경지 중에서 당신의 수련을 지도해야 한다. 당신이 끊임없이 승화하면 이 법은 그 경지 중에서 여전히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어느 경지까지 수련했든 여전히 그 한 층의 법이 당신의 수련을 지도해야만 최후에 비로소 원만에 이르게 된다. 나의 이 책 속에는 이러한 모든 것을 관통시켰다. 그러므로 당신이 진정으로 수련한다면 당신은 이러한 것을 볼 수 있으며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가게끔 지도할 수 있다. 이 책 속의 내포는 상당히 큰 것으로 당신이 만 번을 보더라도 모두 당신의 수련을 지도할 수 있는바, 줄곧 당신이 원만(圓滿)에 이를 때까지이다.

원만의 문제를 담론하자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는, 너희가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했고, 불교에서도 부처 수련을 하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들은 모두 아주 간단하게 말했으며 사람은 실제적인 수련을 통해서만 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종교 역시 수련이다. 다만 석가모니 부처든 예수든 모두 이런 하나의 상황을 보게 되었다. 우리 수련계에 한마디 말이 있는데, 즉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있다(修在自己, 功在師父).”는 것이다. 이 역시 속인은 모르는 것이다. 속인은 동작을 통하여 좀 연마하면 얼마만큼 높은 공이 자랄 수 있다고 여긴다. 우리가 볼 때 이것은 웃음거리이며 전혀 불가능하다. 물론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사부가 진정하게 당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며 신체에 많고도 많은 이런 기제(機制)를 넣어 주고 또 당신에게 마치 씨앗과도 같이 많고도 많은 것을 심어주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수련과정 중에 또 사부가 당신을 돌봐 주고 보살펴 주고 업력(業力)을 제거하고 당신을 도와 공을 연화해 주어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다. 종교에서는 수련을 말하지 않는데, 왜 그런가? 예수는, 당신이 나를 믿으면 수련되어 올라올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현재의 종교로는 수련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이야기한 말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나는 예수를 믿으니 사후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가 천국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한 다발의 속인 마음을 지니고 있는데, 당신의 칠정육욕(七情六慾), 당신의 각종 집착심・쟁투심・과시심, 그야말로 이 속인의 좋지 못한 마음이 너무나도 많다. 만약 당신을 부처의 그곳에 가게 한다면 당신은 부처와 다투고 싸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당신이 속인의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신은 이 대보살이 이처럼 예쁘게 생긴 것을 본다면 나쁜 생각을 할지도 모르는데, 이를 허용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허용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속인사회에서 당신의 이런 집착하는 것・더러운 것・좋지 않은 마음을 제거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이 경지로 승화될 수 있다. 수련해서 버릴 수 있고 믿어서도 버릴 수 있는데, 하지만 참회한 후에는 다시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면 갈수록 더욱 좋게 되는데 천인(天人)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어떤 사람은, 나는 예수를 믿기에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왜 가지 못한다고 하는가? 지금의 사람은 예수가 한 말의 진정한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예수는 여래 이 층차 중에 있으며, 역시 부처 이 경지 중의 각자(覺者)이다. 그가 말한 함의를 속인은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당신이 그의 방법에 따라 끊임없이 수련해야만 비로소 그가 말한 함의를 점차 체험하고 느낄 수 있다. 예컨대 예수는 너희가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실은, 당신은 내가 가르친 좋은 사람이 되는 이치에 따라 해야 만이 비로소 정말로 나를 믿는 것이며, 비로소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해서 뭘 하겠는가?! 당신은 참회할 때에 당신이 참으로 잘했고 심태(心態)가 참으로 좋아졌다고 느낀다. 그러나 당신이 이 교회당의 문을 나서기만 하면 제멋대로인지라, 속인 중에서 당신은 속인보다 더 좋지 못한데 어떻게 천국으로 가겠는가? 당신의 그 마음은 전혀 제고되지 못했다. 예수는 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갈 수 있다고 말했는데, 당신이 그를 믿는다면 그가 말한 것에 따라 해야만 진정한 믿음이다. 그렇지 않은가? 기타 종교에서도 역시 이 이치이다.

석가모니 부처가 한 일부 말을 후세사람들이 귀납하여 경서로 써냈다. 그 이후 사람들은 경서를 얼마만큼 보고 불교 지식을 얼마만큼 장악했는지를 수련으로 삼았다. 사실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에는 경서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경서는 500년 이후에야 비로소 체계적으로 귀납해 낸 것으로서 석가모니 부처가 당시 이야기한 말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났다. 하지만 그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단지 고만큼 알게 했을 뿐 너무 많이 알아도 안 되었는데, 이 역시 필연적이었다. 석가모니 부처는 만년에 최후로, 나는 일생에 어떤 법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석가모니 부처는 확실히 이 우주의 법을 말하지 않았으며, 眞(쩐)・善(싼)・忍(런) 이 특성의 속인사회 중에서 표현 또는 여래 그 한 층차 중에서의 표현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럼 여래 부처가 말한 것은 무엇인가? 그가 말한 것은, 그가 이전 세(世)에서 수련하여 증오(證悟)한 것과 이전 세(世)의 전생(轉生) 중에서 일부 수련한 상황, 수련이야기와 일부 법의 구체적인 표현에 대한 인식이었다. 경서는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정리해 나온 것이므로 체계적이지 않다. 그럼 후세사람들은 왜 석가모니 부처가 한 말을 불법으로 간주했는가? 한 면으로 이것은 사람들의 인식이고, 다른 한 면으로는 석가모니는 부처이므로 그가 한 말은 불성(佛性)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성을 가진 말이라면 사람에 대해서는 바로 한 층의 불리(佛理)이며 바로 불법(佛法)이다. 하지만 그는 확실히 수련의 원리, 우주의 특성, 사람은 무엇 때문에 제고하여 올라갈 수 있는가 하는 등등에 대해서는 체계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정말로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앞사람이 하지 않은 일을 했으며 하나의 큰문을 열어 놓았고, 내가 하나의 더 큰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내가 모든 수련의 이치, 원만(圓滿)의 요소를 다 말했으며 아울러 아주 체계적으로 말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대단히 높은 신(神)이 당신은 사람에게 하늘로 올라가는 한 부의 사다리 『전법륜(轉法輪)』을 남겨 놓았다고 말한 까닭이다.

여기에서 내가 석가모니 부처보다 어떠어떠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런 마음이 없다. 나는 속인의 정(情) 속에 있지 않으며 세간(世間) 명리에 대한 집착이 없다. 기왕 내가 이것을 전한 바에, 나는 당신을 위해 책임지며 이 이치를 당신에게 똑똑히 알려주려 한다. 나는 당신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며 당신에게 한 푼도 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다만 당신에게 착해지라고 가르칠 따름이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기를, ‘스승님, 스승님은 우리에게 이렇듯 많은 것을 가르치고 우리에게 이렇듯 많은 것을 주었는데 스승님은 뭘 바랍니까?’라고 한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당신을 제도하려고 온 것으로 나는 당신의 그 착해지려는 마음을 제고하여 올라갈 수 있도록 할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보기에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사람은 모두 속인사회의 가짜 현실에 미혹되었으며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다. 특히 지금 인류사회의 도덕관념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감이 대단히 심하다. 사람들은 모두 이 물결 속에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으며 사회는 전체적으로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누구도 자신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음을 모른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에 비하여 좀 좋다고 생각하여 자신은 좋은 사람이라고 여긴다. 사실 당신은 미끄러져 내려간 이 표준으로 자신을 가늠하는데, 모두 좋지 못한 중에서 다른 사람에 비하여 좀 나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수련할 수 있어 당신이 원래 인류사회의 이 경지 속으로 되돌아가서, 그리 높지 않은 데에서라도 당신이 머리를 돌려 사람과 오늘날의 인류사회를 본다면, 대단히 두려운 것을 발견할 것이다! 정말로 대단히 두렵다! 당신이 보라. 지금 이 인류에게는 정말로 십악(十惡)이 모두 있다.

하늘의 대각자(大覺者)들, 부처(佛)나, 도(道)나, 신(神), 그들은 이미 오늘날의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이 말은 좀 단정적으로 한 것 같다. 물론 아직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가리킨 것은 인류 전반의 광범위한 것으로, 정말로 이러하다. 예전에는 사람이 절이나 교회에 가서 참회할 때면 예수나, 천국의 사람이 정말로 듣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고 또한, 머릿속에 이런 감응(感應)의 메아리가 있어 그의 문제에 해답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오늘의 사람은 이러한 감각이 없으며 부처를 모시는 사람도 부처의 존재를 보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인류사회의 사람은 갈수록 더욱더 깨닫지 못하고, 인류사회의 사람은 갈수록 더욱 부패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신(神)도 상관하지 않는다. 현대의 사람은 업력이 너무나 커서 갈수록 더욱 깨닫지 못한다. 그는 나쁜 일을 하여 보응(報應)을 받으면 우연한 것이라고 여긴다. 비록 인류의 도덕표준이 대단히 심하게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지만, 사람들이 모두 자신도 모르게 이 흐름에 따라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을 나는 보았다. 일부 사람의 불성・본성이 아직도 있기에 이 몇 년간 나의 공을 전수받아 많은 사람이 수련하여 올라왔으며 게다가 수련의 층차도 아주 높다. 개오(開悟)한 사람이 있고 점오(漸悟) 중에 있는 사람이 있으며 어떤 사람은 이미 과위(果位) 중에서 수련하고 있다. 나는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이 일을 헛되게 하지 않았다. 나는 사람에 대하여 책임지며 사회에 대하여 책임지는 것으로, 이 천기 역시 헛되게 누설하지 않았는바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올라오게끔 했다.

내가 방금 말한 문제는 사람이 사는 목적은 사람이 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마 많은 사람이 잘 이해하지 못하고 사람이란 당연히 이렇게 생활하게 마련이라고 여길 것이다. 그렇다. 당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여러분은 모두 마찬가지로서 또 다른 공간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렇다면 역시 믿지 않게 된다. 또한, 지금의 사람은 현대 과학을 지나치게 믿고 있으나 현대 과학은 원만하지 못하고 완벽하지 못하다. 이 우주 중에서 그의 인식 정도는 아주 낮다. 다시 말해서 아주 낮은 바로 이런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람이 그것을 지나치게 믿으면 사람으로 하여금 가장 큰 위험에 직면하게 할 수 있다. 즉 사람의 도덕이 철저하게 붕괴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세계에서는 도덕관념이 없는 사람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인류의 외형이 있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기 때문인데, 귀신, 원숭이, 침팬지 등도 모두 두뇌가 있고 사지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사는 사람으로서의 도덕규범이 있어야 하고, 사람의 도덕 표준이 있어야 하며, 사람의 생존 형식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을 떠났다면 신(神)은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람은 모두 자신이 어떻게 생활해야 하고, 어떻게 발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류사회는 고층(高層)생명에게 통제되는 것으로 인류는 기술을 통해서는 영원히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성구대전(星球大戰)이 발생할 것이다! 그러므로 쟁투심・질투심・칠정육욕(七情六慾)을 두루 갖춘 인류의 기술이 더욱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게끔 한다.

사람은 대뇌의 70% 이상을 써먹지 못한다. 현대 의학도 이 점을 인식했다. 무엇 때문인가? 인류의 지혜는 억제되었는데, 부처는 왜 대지혜(大智慧), 대신통(大神通)인가? 왜 그는 무엇이든 모두 알 수 있는가? 대지대혜(大智大慧)한가? 바로 내가 방금 말한 이 이치이다. 어떤 사람은, ‘나의 이 책은 관련된 과학지식 면이 대단히 넓다!’라고 말한다. ‘선생님께서는 아주 많은 지식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러 대학을 다니지 않았는가?’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나와 여러분의 차이는 바로 나의 머리는 전부 열려 있지만, 당신들은 아니다. 이 세간(世間)의 것은 철학이요・천문학이요・물리・화학・인류의 역사 등등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매우 복잡하다고 여기지만, 사실 그것은 아주 간단한바, 모두 불법의 범위 내에 있는 가장 낮은 인류의 고만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모두 하나의 이치로서 바로 이 우주의 특성과 물질 존재의 이 한 층차의 형식이 조성한 것이며 요만한 한 점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류의 지혜는 그것을 수용하지 못한다. 사람의 대뇌가 봉폐되었기 때문인데, 수용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더욱 많이 알려고 하여도 사람의 대뇌가 담지 못하지 않는가. 그래서 당신은 가서 물리를 배우고・화학을 배우고・천문학을 배우고・고에너지물리를 배우고・철학을 배우고・역사를 배우는데, 이 사람은 이것을 배우고 저 사람은 저것을 배운다. 바로 이렇게 이 한 문(門)의 지식도 사람 자신은 일생 중 전부 터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류의 지식은 아주 보잘것없다.

내가 방금 말했지만, 당신이 배운 지식이 아무리 많고 당신이 대학에서 교수・지도교수가 되고 명망이 아무리 높다 해도 역시 속인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지식이 속인 이 층차 면을 벗어나지 못했고, 또한, 우리 현재 인류의 이 실증과학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현재 이 과학, 그것은 신(神)의 존재를 실증하지 못하고 다른 공간의 존재를 실증하지 못한다. 그는 다른 공간의 생명과 물질존재의 형식을 보아내지 못하고, 그는 또 인류 도덕이란 이런 물질이 사람 신체에서 체현되고 있음을 모르며, 그는 또 인류 업력(業力)이란 이런 물질이 인체주위에서 표현되고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현대 과학을 믿고 있으나 현대 과학은 이런 것을 실증하지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도덕이라든가 착하고 악한 일 등 과학 이외의 것을 담론하기만 하면 모두 미신이라고 여기는데, 실제로 현대 과학이라는 이 몽둥이를 휘둘러 우리 인류의 가장 본질적인 것 - 인류의 도덕을 타격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것이 아닌가? 과학은 德(더)의 존재를 인정하지 못하고 또 실증하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미신이라고 했다. 인류의 도덕관념이 정말로 부서져 없어진다면 사람은 심법(心法)의 구속이 없어지고 도덕의 규범이 없어져서 사람은 무엇이든지 감히 하고 어떤 나쁜 짓이든지 감히 하여 인류의 도덕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학의 가장 부족한 면이 일으킨 작용이다.

내가 말한 적이 있지만, 조예가 있는 과학자라면, 그는 감정으로 이지를 대체하는 많은 사람처럼 고집스러운 인식으로 현대의 과학을 굳어진 틀에 고정하고, 실증과학 이외의 것은 모두 과학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가 인식하지 못한 것을 우리가 과학적 방법으로 인식했을 때, 그것은 과학이 아닌가? 그것도 과학으로 된 것이 아닌가. 인류는 끊임없이 자신을 완벽히 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과학이 비로소 발전할 수 있으며 최후에는 진정하게 우주를 인식할 수 있게 된다. 현재 실증과학의 발전 형식은 대단히 우둔하고 대단히 느리다. 정말로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으로, 그는 전반 우주의 물질 존재 형식을 인식하지 못하며 우주 특성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조금 만지고도 전부라고 여긴다. 그들은 단지 이 코끼리의 다리만 만지고는 “오, 과학은 이러하다. 이것이 진정으로 생명・물질을 인식하는 과학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이 코끼리의 전체가 어떤 모양인지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주가 무수한 같지 않은 시공으로 구성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다른 공간과 다른 생명 및 물질형식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리하여 두뇌가 단순하고 또 완고한 그런 사람들은 전부 미신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이 우리 인류 도덕을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한 가장 관건적인 원인이다. 많은 사람이 과학이라는 몽둥이를 휘둘러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본질적인 사람의 덕성(德性)을 타격하고 있다. 위험하다! 사람에게 德(더)가 없으면 신(神)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만약 하늘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면 그 사람은 도태(淘汰)되고 새롭게 발전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우리 인류는 진보한 것으로 원인(猿人)에서부터 오늘날로 발전하기까지 이미 아주 휘황하다! 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역사적으로 사전시기(史前時期), 십 만년 이전 혹은 더욱 멀고 더욱 먼 예전, 일억 년도 넘는 예전에 이르기까지 이 지구에는 줄곧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지만, 부동한 시기에 훼멸되었을 뿐이다. 왜 훼멸되었는가? 이는 문명이 물질적으로 아주 빨리 발전되고 기술적으로 아주 빨리 발전되어 도덕이 따라가지 못했거나 혹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것이 더 존재해 내려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훼멸되었다. 현대과학의 인식에 의하면 물질운동에는 법칙이 있는데, 그것이 운동하여 일정한 형식에 이르면 필연적으로 다른 형식이 나타날 수 있다. 예컨대 지구는 이 우주의 운행 중에서 어느 한 별과 부딪쳐 파괴될 수도 있다. 아무튼, 어떤 원인이든지 현재 과학자들은 우리의 별에 많고도 많은 오래된 문명유적이 존재했으며 게다가 이런 문명유적은 현재로부터 모두 비교적 먼 것으로, 어떤 것은 몇십만 년 이전의 것이고 몇백만 년 이전의 것이고 또 몇천만 년 이전의 것이었음을 확실하게 발견했다. 매 한 시기에 존재한 문명, 남겨 놓은 유적은 다 같지 않으며 모두 한 시기의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떤 과학자는 이 문제를 사고하고 있다. 어떤 과학자는 이미 이런 하나의 논점을 제출했는데, 사전문명(史前文明)이 존재하고 사전문화(史前文化)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자가 말한 것이다. 우리 수련계에서는 더욱 똑똑하게 보았다. 우리 이번 시기 인류문명 이전에 아주 많은 여러 차례의 인류문명이 존재한 것은 아주 확실하다. 도덕이 부패함으로 말미암아, 물론 우리가 본 것은 이러한 것으로, 나중에 이 문명은 없어졌다. 훼멸된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 당시 인류의 부패, 타락한 흔적을 보아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 사람은 원인(猿人)에서 진화해 온 것이라고 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은 원인(猿人)에서 진화해 온 것이 전혀 아니다. 다윈의 이론은, 사람은 원인(猿人)에서 진화해 온 것이라고 한다. 당초 이 한 세트의 이론을 내놓을 때 그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내놨다. 그의 이론은 허점투성이로 완벽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제출한 원인(猿人)에서 사람으로 진화되었다고 하는 그 진화과정, 천백만 년의 이렇게 긴 과정을 찾아볼 수가 없다. 왜 사람과 원숭이 사이의 이런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가? 다른 생물체, 사람뿐만이 아니라 이른바 그가 말하는 진화된 동물도 중간 과정이 없다. 또한,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존재하는 종과 다른 대륙에 존재하는 종은 왜 같지 않은가? 그는 모두 해석하지 못했다. 이 허점투성이인 진화론이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이것이야말로 기괴한 것이다!

사실 우리가 보기에 사람은 원인(猿人)에서 진화해 온 것이 전혀 아니며 매 한 시기마다 다른 생물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인류가 생존하는 지구의 대륙판은 이동을 거쳐 위치가 변경된 것이다. 지질학자는 아시아 주・유럽 주・미주・남아메리카・북아메리카의 육지를 대륙판이라고 부른다. 대륙판은 늘 변경되는 것으로서 이 위의 문명이 물밑으로 가라앉을 수 있다. 그러면 다른 대양 속에서 육지가 올라오게 되는데 바로 이렇듯 끊임없이 변경되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도 태평양이라든가, 대서양이라든가, 인도양이라든가, 많은 대양의 밑에 오래된 거대한 건축물이 있고 문명이 존재했던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조사에 의하면 모두 몇십만 년, 몇백만 년, 더욱 오래고 먼 연대에 존재했던 것들이다. 우리 현재의 인류는 최소한 이 몇십만 년 사이 대륙판에 변동이 발생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느 때에 물밑으로 가라앉은 것인가? 그것은 분명 아주 오래 전 몇십만 년 전 혹은 더욱 오래전에 가라앉은 것이다. 그러므로 부동한 대륙판이 변경될 때, 위의 종(物種)은 같지 않은 것으로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다. 비슷한 것이 있지만, 같은 종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물론 나는 불법을 말하기 때문에 속인 중의 이론과는 같지 않다. 우리는 더욱 높은 인식이며 진정하게 인류를 인식하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은 원인(猿人)에서 진화해 온 것이 아니며, 우주 중에서 생긴 것이다. 여러분은 중국에 도가(道家)의 태극학설이 있음을 알고 있다. 이 태극학설은 음양 양기(陰陽兩氣)를 말한다. 음양 양기가 생기지 않았을 때는 혼돈 상태로, 그것을 무극(無極)이라고 부른다. 그런 다음 그것이 태극을 낳게 되어 음양 양기가 있게 되고, 그다음 태극이 만사만물을 낳았다. 이것은 도가의 이론이다. 나는 이것이 아주 과학적 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한 가지 상황을 발견했는데, 물론 이는 또 나만 발견한 것이 아니지만, 이 우주 중의 방대한 물질의 운동 하에서 생명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이 물질을 보아내지 못하지만,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이 공기를 사람의 눈이 그것을 보지 못한다고 하여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가? 그것은 존재하는 것이다. 공기보다 더욱 미시적인 물질이 있는가, 없는가? 많고도 많다. 더욱 미시적인 물질보다도 더 미시적인 물질도 많고도 많다. 이런 방대한 물질, 그것이 왜 이렇게 생존할 수 있는가? 사실 모두가 생명의 존재이다. 어떠한 물체이든지 모두 생명이 있는 것으로 다만 우리 속인 이 공간에 표현되지 않아 그의 생명 존재를 보지 못할 따름이다. 잠시 후 내가 무엇 때문인지를 말하겠다. 어떠한 물체든 모두 생명이 있다. 이런 방대한 물질의 운동 하에서 생명이 생겼고, 이런 생명은 더욱 높은 층차 중에서 다수는 무형적이며 소수는 인류의 형태거나 혹은 동물의 형태거나 혹은 물질의 형태거나 혹은 식물의 형태이다.

그렇다면 왜 사람 여기로 왔는가? 왜냐하면, 최초에는 사람이라는 이 단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우주 물질의 운동 하에서 생긴 생명은 모두 우주의 특성에 동화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우주 중의 이 법리(法理)에 동화되었으며 眞(쩐)・善(싼)・忍(런)에 동화된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眞(쩐)・善(싼)・忍(런) 중에서 생겨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 생명이 고층공간에 많이 생기면 그의 생존환경은 복잡하게 변하며 그들 사회의 생존형식이 있게 된다. 마치 우리 인류사회가 사람이 어떻게 생존해야 한다는 것이 있는 것처럼 그에게는 그의 사회형식이 존재한다. 그에게 그의 사회형식이 있게 되자 이런 생명은 점차 변화가 발생해 복잡하게 변해 갔다. 어떤 생명은 이기적인 생각이 생겨 그 한 층의 생명에 대한 우주특성의 요구에서 빗나감으로써 이 한 경지 중에 남아 있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낮은 층차로 떨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가 낮은 층에서 또 더욱 좋지 않게 변하게 되면 그는 또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렇듯 생명은 오랜 역사의 세월 속에서 끊임없이 좋지 않게 변하여 점차 한 층 공간, 한 층 공간씩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으며 인류 이 한 층 공간으로 떨어지게 되었다. 이리하여 저급한 생활을 하고 저급한 방식으로 후대를 번식, 육성하고 있다.

그러나 당초에는 인류 이 층 공간이 없었다. 그리하여 이런 각자, 고급 생명은 사람에게 다시 하나의 공간을 만들고 하나의 가장 미혹된 공간을 만들어 사람의 요만한 본성을 잃을 수 있는지 없는지, 그가 되돌아올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려 했다. 이렇게 하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당시 사람에게, 생명에 최후의 기회를 주고자 했을 뿐 더 많은 문제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와서는 이 공간이 너무나도 특수한 것을 발견했다. 왜냐하면, 이 공간 중의 생물은 모두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하고 다른 공간의 생명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다른 공간 중에서는 모두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다. 다른 공간의 생명, 그의 신체는 모두 공간 중에서 날 수 있고 떠다닐 수 있으며 모두 신체를 크게 변화시키거나 작게 변화시킬 수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의 사유는 물질이며 마치 전파와 같은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당신은 전파가 물질이라는 것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공간에서는 그것이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사상은 상상한 것을 실제로 생기게 할 수 있으며 당신이 생각한 것을 현실로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사람은 에너지가 없으므로 그것은 생겨서 잠시 후에 흩어져 버린다. 그러나 에너지가 있는 대각자・천인(天人)・고급 생명이 생각해 낸 것은 확실히 존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고 생각하면, 생각과 동시에 그것이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예전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부처는 무엇을 가지려고 하면 무엇이 있다고 하는데 대단히 자유롭지 않은가. 그러한 생명은 모두 이렇게 존재한다. 그러나 인류는 이 공간으로 밀려와서는 이런 존재로 변했다.

여러분은 모두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것으로서 자신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장사를 아주 잘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벼슬을 아주 크게 했고, 어떤 사람은 아주 편안하게 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 비하여 낫다고 생각한다. 사실 당신도 아주 고생스럽다! 당신은 당신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교에서는 사람은 사는 것이 곧 고생이라고 한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올 때 당신은 분자로 구성된 이런 하나의 물질 신체가 있게 된다. 다른 공간 속의 그는 분자로 구성된 이 한 층 신체가 없으며 가장 표면적인 신체는 원자로 구성됐다. 분자로 구성된 표면물질이 이 공간을 조성했다. 사람의 육체를 포함하여 역시 이 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이 한 층 물질로 구성된 이 신체, 당신은 태어나자마자 이 육체가 있게 되었다. 당신에게 이런 한 쌍의 분자로 구성된 눈을 줌으로써 당신은 다른 공간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이 미혹 속에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미혹 속에서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산다는 것은 마치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보는 것과 같은데 사는 자체가 이미 아주 가련한 것이 아닌가. 게다가 사람은 이 신체가 있게 된 후, 신체는 괴로움을 두려워하므로 추워도 안 되고, 더워도 안 되며, 갈증이 나도 안 되고, 길을 걷다 지쳐도 안 된다. 아무튼, 당신에게 아주 많은 불편을 가져왔으며 아주 많은 고통을 가져왔다. 그뿐만 아니라 또한,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존재하고 늘 병이 있게 된다. 당신은 아주 편안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당신 역시 그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에 비하여 좀 낫고 고통이 좀 적은 것 같음에 불과한데, 당신은 자신이 아주 편안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바로 이렇게 살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런 생존 환경 속에서 점차 사람의 본성을 잃어 가는데, 갈수록 신(神)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게다가 실증과학이 완벽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또 사람의 도덕 표준을 잃었으며 가장 위험한 경지로 미끄러져 왔다.

하지만 인류사회는 또 하나 매우 크고 좋은 점이 있다. 즉, 고생스럽기 때문에 수련할 수 있다. 왜 부처는 늘 그런 부처 경지 중에만 있는가? 왜 그는 더욱 높이 제고하지 못하는가? 왜 보살은 부처로 수련하지 못하는가? 당신이 고생을 좀 겪으려 해도 찾을 곳이 없다. 그는 미혹 속에서 불성(佛性)을 확고히 해야만 비로소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거기에서 전혀 미혹됨이 없어 무엇이든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무엇이든 다 보면서 하는 수련은 수련으로 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수련이 선차적이고 깨달음이 선차적이며 보는 것은 후차적이다. 어떤 사람은, 보면 수련하고 보지 못하면 수련하지 않겠다고 한다. 만약 여러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보게 한다면 속인 사회는 인류사회가 아니며 바로 신(神)의 사회이다. 이러면 백이면 백,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누구나 모두 수련할 것인즉 십악불사(十惡不赦)하고 더없이 나쁜 사람마저도 수련하려고 할 것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그것이 여전히 인류사회인가? 사람이 좋지 못하게 변했기 때문에 이 환경으로 떨어져 온 것이다. 만약 당신이 되돌아가려면 이 두 가지 요소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 즉, 하나는 고생을 겪는 것이고 하나는 깨달음이다. 깨달음이란, 예수는 믿음을 말하고 동방에서는 깨달음을 말한다. 당신이 이러한 것을 잃어버리면 수련하지 못한다. 하지만 흔히 사람들이 수련하고자 하지만, 왜 수련하기가 몹시 어렵다고 생각하는가? 사실 수련은 그다지 어렵지 않으며 어려운 것은 속인의 마음을 내려놓기가 어렵다. 역사적으로 무엇이 불법(佛法)인지를 모두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것을 체계적인 불법으로 여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방대한 우주, 그는 무척 완비하고 무척 지혜롭다. 석가모니 부처는 다만 부처 이치(佛理)의 한 자그마한 부분을 말했을 뿐이며 게다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부 말해 주지도 않았다. 그는 다만 사람이 응당 알아야 할 것만 말했다. 그러므로 지금 인류사회에 남겨진 불법은 다만 불법 중의 조그마한 한 점, 조그마한 한 점일 뿐이다. 내가 방금 말했지만, 나는 인류사회에 아주 많은 것을 남겨 놓았으며 나는 앞사람이 여태껏 하지 못한 일을 했다. 내가 쓴 이 『전법륜』은 언어가 규범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현재의 규범적인 언어로서는 더욱 높은 층차, 더욱 큰 내포를 포함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구어체로 썼다.

이렇게 많이 말했다. 오늘 시간이 아주 많은 것 같아 나는 여러분에게 좀 더 말해 주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앉은 어떤 사람은 아마 내가 너무 높게 말함으로써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전혀 배우지 못했으나 아주 좋다고 여겨 좀 들어보려고 온 것이며, 일부 사람은 아마 어떤 것을 좀 얻으려 하거나 혹은 내가 무엇을 연출하는지를 좀 보려고 온 것으로, 여러 가지 심태(心態)를 품고 왔다. 만약 오늘 내가 여기에서 당신에게 연출한다면 당신은 허허 하고 웃으며 마치 마술을 보고 요술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할 것이며 당신은 나와 법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불법을 전함에도 이렇게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나는 당신에게 다만 이 불법을 말했을 뿐이며 믿고 안 믿고는 당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그의 위력은 아주 큰 것으로 나는 내가 사람에게 주어야 할 것과 사람에게 주어 능히 수련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그 한 부의 법(法) 속에 담았다. 나의 비디오테이프, 녹음테이프와 내가 쓴 이 책을 보기만 한다면 당신은 느끼게 될 것이고, 보기만 한다면 당신은 신체가 정화(淨化)되며 당신으로 하여금 병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끔 할 것이고,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속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속인이 체험하고 깨닫지 못하는 것을 체험하고 깨닫게 될 것이다. 갈수록 경지가 높아지고 더욱더 미묘할 것인데, 모두 그 책 속에 들어 있다. 그러나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보아내지 못한다. 당신이 한 번 읽고 다 보려 한다면 불가능하다! 당신은 다만 당신의 이 경지 중에서 당신이 이해하는 이 정도만 볼 수 있다. 더욱 미묘한 것은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가고 끊임없이 깊이 배우고 깊이 수련하며 깊이 봐야만 비로소 체험하고 깨달을 수 있고, 비로소 보아 낼 수 있으며, 비로소 알 수 있다.

내가 말한 것이 너무나 높아서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이렇게 하려고 한다. 나는 이미 2년간이나 체계적으로 설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사람에게 남겨 놓아야 할 법을 이미 전부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심지어 강의할 때 사람들이 녹음하지 못하게 했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이 신기함을 추구하고 있다. 스승님께서 또 무엇을 말씀하셨다, 또 무엇을 말씀하셨다고 하며 그는 이런 것을 추구하면서 그리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에게 수련하라고 준 것은 바로 『전법륜(轉法輪)』으로 이 책은 체계적인 법이다. 내가 말한 여타의 것은 모두 『전법륜』을 해석한 것에 불과하며 모두 보조적이다. 녹음한 후에 사회에서 전하게 되면 실속 있게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교란을 조성한다. 그 한 부의 『전법륜』은 낮은 데서 높은 데에 이르기까지 모두 체계적이고 내가 지금 말하는 것은 다만 지금의 사람을 상대하여 말한 것이다.

나는 또 한 가지 문제를 강조하겠다. 즉,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전일(專一)을 중시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여러 가(家)의 장점을 취한다는 이 한마디 말은 속인 중의 언어이지 수련계의 언어가 아니다. 기술을 배움에 누구의 기술이 좋으면 그의 기술을 배우는 이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고층공간에서 볼 때 인류의 이치는 거꾸로 되어 있다. 인류가 좋다고 여기는 것이 좋지 않을 수 있는 것으로, 전부 반대로 된다. 당신이 보라, 우리 이쪽은 대낮이나 저쪽은 밤이며 당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도 옳지 않을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간단한 이치를 말하겠다. 여러분 다 알다시피 사람들은 고통스러우면 좋지 않다고 여기거나 혹은 누가 당신을 업신여겼다면 불편함을 느끼고 좋지 않다고 느낄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사람이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당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당신이 보라. 내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은 같지 않다. 무엇 때문인가? 고층공간에 이르면 이 이치는 다 거꾸로 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이 사람으로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본다. 당신이 인류사회에서 고통을 좀 겪음으로써 전세에 빚진 업력을 갚아 버린다면 당신은 더 높은 고층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으며 심지어 당신은 당신이 생겨난 곳,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설령 제고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다음 한 생에 업력이 작아져 마난(魔難)이 적어진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빚진 업력을 갚지 않는다면 당신은 고층세계로 갈 수 없다. 바로 내가 이 이치를 말한 것처럼, 병 속에 더러운 것을 가득 채워 넣고 병마개를 꽉 틀어막고서 물속에 던지면 쿵 하고 대번에 가라앉는다. 만약 당신이 이 속의 더러운 것을 좀 쏟아내면 그것은 조금 떠올라 오고, 좀 쏟아버리면 좀 떠올라 오며, 더욱 많이 쏟아버리고 마개를 막은 후에 보면 내리눌러도 내려가지 않으며 저절로 떠오른다. 마치 우리 사람들이 수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당신의 신체는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다시 말해서 당신은 아마 매 일생, 매 일세(一世)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거나 다른 사람을 속였거나 혹은 다른 사람을 해쳤거나 살생을 했다던가 하는 등등 일이 있을 수 있으며 더욱 나쁜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런 빚진 업력을 갚아야 한다. 이 우주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한다.”는 것이다. 빚진 것은 갚아야 하며 금생에 갚지 않으면 내세에라도 갚아야 하는데, 확실히 이러하다. 지금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면 우연한 것이고 다른 사람이 그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은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모두 우연한 것이 아니며 모두 예전에 빚진 업력이 조성한 것이다. 만약 한 사람이 업력이 없다면 거리에서 걸어가도 누구든지 모두 당신을 보고 웃을 것이며 알지도 못하는 사람마저도 주동적으로 당신을 위해 봉사할 것인즉 당신은 그야말로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람, 그는 보증하고 인류 공간에서 생활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야 할 것이다.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사람은 업력이 있기 때문에 사상이 정화되지 못하면 영원히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 바로 내가 방금 말한 이치와 마찬가지이다.

사람이 고생을 좀 겪고 고통을 좀 당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당신이 고생을 좀 당하면 업력을 갚아버릴 수 있고 진정하게 아름다운 곳으로 갈 수 있으며 영원히 다시 고통을 받지 않게 된다. 당신이 인류사회에서 아무리 행복하게 생활하고, 당신 집에 억만 원이 있으며, 당신의 벼슬이 아무리 높다 해도 몇십 년에 불과함이라, 아주 빨리 지나간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전생(轉生)할 때, 당신은 빈손으로 왔으며 갈 때도 빈손이다. 당신이 무엇을 갖고 갈 수 있는가? 아무것도 갖고 가지 못한다. 당신은 누구에게 물려줄 것인가? 당신은 당신의 후손에게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다음번에 다시 전생(轉生)할 때에 그는 당신이 누구인지를 알아보지 못하므로 당신이 그한테 가서 품팔이하고 청소부가 되어도 그는 좋은 낯으로 대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당신에게 한 푼도 더 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정말로 이러하다! 사람은 바로 이 속에 미혹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인생의 본질적 이치를 말하고 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특히 우리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 다른 사람이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했을 때, 당신이 어떤 물질 이익에서 손해를 봤을 때, 내가 보기에는 그 무슨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 중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며 얻으려면 곧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특점이 있다. 당신이 얻고 잃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것이 잃게끔 강화(强化)하는데, 이것이 우주의 특성이다. 방대한 우주의 일체 물질은 모두 생명이며 일체 물질은 모두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돌・강철・공기 같은 어떠한 물체든지, 인류가 만들어 낸 어떤 제품, 물질도 미시적인 구성은 모두 眞(쩐)・善(싼)・忍(런) 이런 특성으로 구성된 물질이다. 이 방대한 우주는 바로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며 그가 우주 중의 일체에 균형을 잡아 준다. 어떤 사람은 사람을 때리고, 욕하며,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아주 기뻐하며 그가 얻은 일방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속인은 그에게 말한다. 당신은 정말로 능력이 있고, 대단하다! 당신은 손해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손해를 보아도 아주 크게 보았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인가? 그가 좋지 못한 일을 했을 때, 그는 얻은 일방에 속하며 그가 다른 사람을 업신여겼기에 그는 얻은 셈이므로 잃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이 고통을 얻었기 때문인데, 이는 그가 행복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이므로 그렇다면 상대방은 응당 얻어야 한다. 어떻게 얻는가? 당신이 그를 한 방 치고 그에게 한마디 욕을 하는데, 당신이 얼마나 심하게 욕을 하고 얼마나 세게 치느냐에 따라 한 덩이 희고도 흰, 상등 하는 수량의 물질이 당신 신체 주위에서 날아가게 된다. 이런 물질을 德(더)라고 하는데 상대방에 떨어트려 준다. 상대방의 몸에 떨어트려 준다. 상대방, 그 역시 사람인지라 그도 이런 이치를 모를 수 있다. 당신이 나를 쳤지 하며 화가 나서 야단이다. 그가 화를 내면 그는 이 德(더)를 되돌려 밀어주는 것과 같다. 그가 다시 그를 맞받아 한 방 치고, 그에게 한마디 욕을 할 때 그는 이 德(더)를 되돌려 던져 준다. 두 사람은 모두 잃지도 않고 얻지도 않았으며 누구도 얻지 못했다. 우주의 법리(法理)는 공정하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마음속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 즉, ‘당신이 나를 때리고 욕하지만, 내 마음속은 아주 태연한바, 나는 아무 일로도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이기에 나는 당신과 견해를 같이할 수 없다.’라고 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의 도덕표준이 올라온 것은 이미 일반사람을 초월한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이 그를 때릴 때, 그에게 德(더)를 주는 것이 아닌가? 德(더)란 이런 물질은 공(功)으로 연화(演化)될 수 있다. 당신의 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바로 德(더)가 연화(演化)되어 오는 것으로, 우주 중에서 채집한 일부 물질에 당신의 德(더)를 더해야만 비로소 당신의 공으로 연화(演化)해 낼 수 있다. 당신에게 이 德(더)가 없으면 당신은 공을 수련해 내지 못한다. 그렇다면 그가 당신을 때릴 때에 그가 그의 德(더)를 당신에게 줌으로써 당신은 德(더)가 증가하여 더 높이 수련할 수도 있는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당신이 얻은 것은 이 속인이 당신에게 고통을 만들어 주어 얻은 보상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아닌가? 그가 당신을 때리거나 혹은 당신을 욕하거나 당신에게 어떤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었기 때문에, 당신은 고통을 당했다. 당신은 고통 중에서 당신 자신의 몸에 가진 업력, 전세(前世)에 빚진 그런 업력이라고 하는 시커먼 물질, 그것 또한 德(더)로 전화될 것이며, 그것은 또 상응하는 한 몫의 德(더)를 주게 될 것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속인에게는 일거양득(一舉兩得)이다. 당신이 나에게 고통을 좀 만들었지만, 나는 오히려 두 몫의 보상을 받게 된 셈이다.

그러나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네 가지를 얻을 수 있다. 이 일체를 당했을 때, 당신은 그와 견해를 같이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아주 태연한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마음속으로 아주 태연할 때, 당신의 心性(씬씽)은 수련하여 올라온 것이 아닌가? 만약 그가 당신에게 이 번거로움을 만들어 주지 않고 고통을 만들어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당신이 거기에 편안히 앉아서 차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수련되어 올라오고 원하는 대로 높게 수련되는 이것은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바로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고난을 겪는 중에서, 마난 속에서라야 당신은 그 마음을 제고할 수 있으며, 당신은 높은 표준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그와 같지 않다면, 당신의 心性(씬씽)은 수련되어 올라온 것이 아닌가. 당신은 일거삼득(一舉三得)이다! 그렇다면 연공인으로서 당신은 층차를 제고하여 하루빨리 원만해야 하지 않는가? 당신의 心性(씬씽)이 수련되어 올라왔다면 당신의 공도 올라온 것이 아닌가? 틀림없다! 이런 하나의 이치가 있다. 즉 心性(씬씽)이 얼마나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다고 한다. 이 사람의 心性(씬씽)이 고만큼뿐인데 공만 자랄 수 있는가? 그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으며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어떤 수련하는 사람은 心性(씬씽)이 나보다도 못한데 어찌하여 공이 있는가? 그가 이 방면에는 당신만 못하지만, 아마 다른 방면은 당신보다 나을 수 있다. 사람은 수련 중에서 마음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이기에 버리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오면 여전히 속인과 같다. 그러나 제거해 없어진 마음은 물론 표현되지 않는다. 수련인으로서 당신이 고통을 받으면 당신은 일거사득(一舉四得)이다. 농담을 한마디 하자면, 당신이 어디 가서 이런 좋은 일을 찾겠는가?

어떤 사람은 누구에게 매를 맞고 욕을 먹었다 하여 화가 나서 야단이며 마음속으로 격분하여 평형을 이루지 못하고, 또는 다른 사람이 그의 이익을 차지하고 그의 돈을 벌어 갔다 하여 그야말로 참지 못한다! 사람은 이런 것을 아주 중하게 여기며 심지어는 파리 대가리만 한 작은 이익마저도 잃으려 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사람이 사는 것이 얼마나 가련한가! 그는 그런 조그마한 공짜를 위해, 공짜를 조금만 얻어도 정말로 기뻐서 난리인데. 지금 사람은 이러하다. 그는 그가 진정으로 잃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는데, 이는 가장 두려운 것이다! 이 德(더)는 왜 이렇듯 진귀한 것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동양의 노인들은 모두 德(더)가 있어야만 복이 있다고 한다. 이 복은 몇 개 면을 포함한다. 즉 큰 벼슬을 하거나, 큰돈을 벌거나, 집이 있고 땅이 있거나, 행복이 있는 등등으로서 모두 그 德(더)로 바꾸어 온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에 따라 가며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元神(왠선)을 따라가고 당신이 전생(轉生)하면 그것은 또 당신이 전생함에 따라간다. 德(더)뿐만이 아니라 흑색물질, 바로 내가 방금 말한 업력, 이런 업력도 사람의 생명을 따라간다. 이 두 가지 물질은 모두 사람을 따라간다. 과거에 노인들이 말하기를 나쁜 일을 하면 응보를 받는다고 했다. 누가 당신을 응보 받게 하는가? 누가 당신의 그 빚을 기록해 주는가? 당신에게 이런 일을 상관해 주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그러나 이 德(더), 그것은 당신의 몸에 있으며 그것이 당신에게 단단히 붙어 있는 것으로 내세는 이 德(더)에 달려 있다. 업력이 많으면 당신의 이 일생은 고생이 많고 병이 많고 재난이 많으며, 德(더)가 많으면 당신 이 일생에 돈이 많고 복이 많으며 벼슬을 크게 한다. 바로 이렇게 조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연공인에게는 이 德(더)가 더욱 진귀하다. 그것은 공(功)으로 전화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현대 과학이 이 점을 보아내지 못함은 현대 과학이 이 한층 공간을 돌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인류는 어떤 공간형식 중에서 생존하고 있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이 한층 공간은 두 가지 물질 입자(粒子)의 중간에 있다. 입자란, 물리를 배운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는바, 분자・원자・무슨 원자핵・쿼크・중성미자 그것들은 모두 한 층의 입자이며 그것은 더욱 큰 입자를 구성하는 물질원소이다. 우리 사람들은 어느 한 층의 입자 속에 생존하고 있는가? 우리 사람들이 눈으로 본 가장 큰 것은 별이며 가장 작은 것은 현미경 하에서 볼 수 있는 분자이다. 사실 우리 사람은 별과 분자 사이의 이 한층 공간 중에 생존하고 있다. 우리가 이 공간을 매우 광활하고, 가없이 넓으며, 더없이 크다고 여긴다. 나는 현대의 과학이 발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주선이 아무리 높게 난다 해도 그 역시 우리 이 물질공간을 벗어나지 못하고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했다 하여도 사람의 두뇌를 따르지 못한다. 사람의 두뇌는 지금도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과학은 여전히 아주 천박한 것이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 인류는 별과 분자 이 두 가지 입자의 중간에 생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분자는 원자로 구성된 것인데, 원자와 분자 사이의 공간은 어떠한 것인가? 현대의 과학자는 다만 원자라는 한 점, 그것의 작은 구조만 인식할 뿐이다. 사실 원자가 존재하는 곳, 그것 역시 한 면(面)이며 이 면(面)으로 구성된 물질 공간 역시 무척 방대하다. 다만 당신이 발견한 것은 한 점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것의 이 한 층차면 중에서 이 공간은 얼마나 큰가? 우리가 거리를 가늠하는 표준은 늘 인류 자신의 현대과학의 이 각도에서 일체를 가늠한다. 당신은 실증과학의 틀과 개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신이 그 공간에 들어가려면 그 공간의 형식에 부합되어야 만이 비로소 들어갈 수 있다. 원자에서 분자에 이르기까지의 거리는, 과학이 아는 것은 대략 200만 개 원자를 배열해야 비로소 원자에서 분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바로 그가 능히 인식하는 이 거리는 이미 상당히 광활한 것으로 당신은 현존 인류의 실증과학의 틀 안에서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 원자에서 원자핵에 이르는 중간, 그것은 한 층 공간이 아닌가? 그렇다면 원자핵과 쿼크 사이, 그것은 얼마나 큰 공간적 거리가 있는가? 그렇다면 쿼크에서 중성미자까지는? 물론 우리 현재 인류의 과학은 단지 중성미자까지 인식했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라, 오직 계기로 관찰하여 그것의 존재형식을 알고 있을 뿐이다. 사실 물질의 본원(本源) 물질과는 그 거리가 얼마나 먼지 모른다!

내가 말한 이것은 가장 간단한 공간의 존재형식이다. 우리 인류의 일체 물질, 당신이 보지 못하는 이 공기 중에 존재하는 일체 물질과 우리가 능히 볼 수 있는 물질, 예를 들어 철이라든가・시멘트라든가・동물・식물・물질, 또한, 사람의 신체를 포함하여 모두 분자로 구성(組成)된 것이다. 인류는 바로 분자라는 이 면(面)에서 생존하고 있으며 마치 한 장의 입체화(立體畵)와도 같이 당신은 이 면에서 생존하면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류의 과학도 요만한 공간 내로 국한되어 그것마저도 돌파하지 못하는데, 과학이 어떻게 발달했다고 하면서 일체 학설을 배척한다. 인류의 기술은 더욱 높은 우주를 인식할 수 없다. 그가 만약 정말로 이 한 층 공간을 돌파할 수 있다면 그는 다른 공간의 생명이 존재하는 형식, 물질이 존재하는 형식, 그 속의 시공(時空) 구조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수련하는 사람은 볼 수 있는바, 부처만이 비로소 최고의 과학자이다.

나는 천목열기를 이야기하면서 이 문제를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이 눈을 피하여 물건을 보는데, 우리 이 천목으로 본다. 바로 양미간 혹은 도가에서 말하는 산근(山根), 코 뿌리 이곳에 한 갈래 통로를 열어서 직접 당신의 송과체(松果體)로 통하게 한다. 의학에서는 송과체라고 부르고, 도가의 연공인은 그것을 니환궁(泥丸宮)이라고 부르는데, 바로 그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런데 이 송과체의 전반부에 사람 눈의 모든 조직 구조가 이미 갖춰져 있음을 의학자들은 발견했다. 현대 의학자들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왜 이 속에 눈이 있는가? 그들은 퇴화한 눈이라고 여기며 여전히 진화론으로 이런 것을 해석한다. 사실 그것은 바로 이렇게 존재하는 것으로서 전혀 퇴화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육안을 피하여 물건을 볼 때, 물론 이 육안이 잘 수련되었을 때는 육안으로도 꿰뚫을 수 있으며, 또 이러한 공능을 갖춘 것으로 불법은 끝이 없다. 일반적으로 눈을 피하여, 분자로 구성된 눈을 피하여 본다면 이 공간을 꿰뚫고 다른 공간의 광경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 이치이다. 그러므로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이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어떤 속인은 그의 일생 중에서 우연히 어렴풋하게 일부 불명확한 현상을 보게 된다. 예컨대 한 사람이 눈앞에서 어른거리고는 없어졌거나 혹은 어떤 것을 보았거나 어떤 소리를 들었다. 그럼 아마 어렴풋이 다른 공간의 상황을 정말로 보았을 수 있고 들었을 수도 있다. 사람의 천목이 그다지 심하게 봉폐되지 않았거나 혹은 귀가 심하게 봉폐되지 않았으면 우연히 다른 공간의 소리를 듣거나 혹은 다른 공간의 일부 현상을 볼 수 있다.

나는 방금 인류가 생존하는 이 공간을 이야기했다. 사실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이 별은 가장 큰 입자, 가장 큰 물질이 아니다. 별 외에도 더욱 큰 물질이 있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의 눈은 극 미시적으로 이미 상당히 미시적인 물질을 보아낼 수 있고 거시적으로 이미 상당히 크고 거시적인 물질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는 마지막까지도 이 우주가 도대체 얼마나 큰지를 보아내지 못했다. 그리하여 그는 말하기를,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라고 했다. 이 우주는 얼마나 방대한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얼마나 복잡하겠는가, 우리 인류가 알고 있는 것과는 같지 않은바, 우리의 이 공간, 이 형식만 해도 그것은 무척 복잡한 것이다! 이런 공간형식 외에 또 종향(縱向)으로 존재하는 공간형식이 있으며 게다가 종향 공간 속에는 또 아주 많은 단원세계(單元世界)가 있는 것으로 대단히 복잡하다. 내가 말하는 이 단원세계는 바로 천국 등등을 가리킨 것으로 매 공간에는 또 부동한 시공이 존재하고 있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원자로 구성된 이 공간, 그것의 시간이 우리 이쪽의 분자로 구성된 공간의 시간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의 공간개념, 그것의 거리는 우리의 것과 역시 같지 않으며 일체는 모두 변화가 발생했다. 그 외계인의 비행접시(UFO), 그것은 어찌하여 오감에, 종적을 남기지 않고 이처럼 빨리 나는가? 바로 그것이 다른 공간에서 가기 때문인데 이렇게 간단하다. 인류가 현재 자신의 과학 각도에서 우주 중의 불분명한 현상을 인식하거나 이 방법으로 수련, 혹은 종교를 연구한다면 영원히 명확하게 연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사유방법을 개변해야 하며 다른 각도에서 인식해야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은 오로지 지금의 유럽 사람이 발견하고 발명한 이른바 이 실증과학뿐만이 아니며 단지 이 한 갈래의 길뿐만이 아닌 것으로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지구에서 발견되고 역사에 이미 있었던 오랜 문명이 발전했던 과정은 모두 생명물질과 우주에 대한 다른 인식의 길이었다. 중국 옛적의 과학은 다른 길을 걸었다. 물론 중국의 이 문화, 그것은 관련된 층차가 아주 높았으나 사람의 도덕이 떨어짐에 따라 억제되었다. 그리하여 그것이 유전되어 내려오지 못했다. 그러나 서양의 가장 낮은 이런 과학형식은 오히려 사람에게 남겨졌다. 그러므로 그것은 상당히 부족한 것이다.

방금 말했지만, 사람은 우리 이 물질공간 속에서 생긴 것이 아니며 사람이 됨이 목적이 아니다. 만약 사람이 더 미끄러져 내려간다면 훼멸, 철저한 훼멸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을 형신전멸(形神全滅)이라고 하는데, 대단히 두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가 사람을 제도하려고 함은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이러한 막다른 지경에 직면하지 않도록 하고, 당신을 사람의 고통 속에서 천국으로 제도해 가려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의 고통 문제를 진정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람이 부처를 믿는 기점(基點)과 과거 옛날 사람이 부처를 믿는 기점은 같지 않다. 과거의 사람이 부처를 믿음은, 부처를 모시고 부처를 수련하며 부처를 공경하는 것이었으며 다른 어떤 마음도 없었다. 지금의 사람이 부처를 믿는 것은 부처에게 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구하는 그 마음은 부처로 말한다면 가장 더럽고 가장 더러운 마음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 부처는 당신을 제도하려 하지만, 당신은 속인 중의 안일과 행복을 구한다. 당신을, 속인 중에서 정말로 당신으로 하여금 아주 행복하고도 편안하게 살게끔 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부처가 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지금 바로 부처인데, 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사람이 생생세세에 나쁜 짓을 하여 빚진 업력을 갚지 않고 행복하기만 비는데, 그것이 어찌 빌어서 되겠는가? 당신은 오로지 하나의 방법밖에 없다. 수련해야만 비로소 빚진 업력을 없앨 수 있다. 당신이 부처가 되고 싶지 않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며,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악한 일을 적게 해야만 장래에 비로소 행복할 수 있으며, 당신의 진정한 자아 생명이 더욱 길게 연속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이 전생(轉生)할 때 뇌를 씻은 후, 하나의 좋지 못한 환경으로 전생하여 물결 따라 흐르듯이 휩쓸린다면 훼멸의 끝자락에 이를지도 모른다.

방금 나는, 석가모니 부처가 이야기한 “이 우주는 크기로는 밖이 없고 작기로는 안이 없다.”라는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석가모니 부처, 그는 어떤 한 가지 문제를 보았는가? 그는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 학설을 말했다. 석가모니 부처가 말하기를, 우리 사람과 같은 물질신체를 가진 사람, 다른 공간 중에 생존하는 사람 말고도 우리 인류사회와 같은 이런 세계가 3천 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은하계 중에 이런 별이 3천 개 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또 한마디 말을 했는데, 그는 한 알의 모래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들어 있다고 했다. 그는 한 알의 모래 속에 3천 개의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이러한 것과 같은 공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곳 사람의 크기 비례를 당신은 현대과학의 개념으로 인식할 수 없으며 그는 다른 하나의 시공(時空)형식 중에 생존하고 있다.

방금 내가 한 이 말을 어떤 사람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 지구는 아주 규칙적으로 운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전자가 원자핵을 둘러싸고 운행하는 것이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도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똑같은 형식이다. 만약 당신이 전자를 지구만큼 이렇게 크게 확대하여 볼 수 있다면, 당신이 보라. 그 위에 생명이 있는가, 없는가? 그 위에 어떠한 물질이 존재하는가? 석가모니 부처는 작기에는 안이 없다고 했다. 그는 어느 정도로 보았는가? 물질의 미시적인 부분에 대해 그는 이미 아주 미시적으로 보았다. 그는 한 알의 모래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한 알의 작은 모래 속에 삼천대천세계가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라. 만약 석가모니 부처가 말한 것이 정말이라면, 그 한 알 모래 속의 그 세계 속에 또 강・하천・호수・바다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 강・하천・호수・바닷가에 역시 모래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 한 알 모래 속에 또 삼천대천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럼 그 모래알의 모래 속에 또 삼천대천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래로 캐내려 감에, 석가모니 부처는 끝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그는 작기로는 안이 없다고 했다. 그는 물질의 가장 본원(本源)이 무엇인지를 보지 못했다. 물론 이 물질의 가장 본원적인 것을 이전에 우리가 말한 적이 있으므로 나는 여기에서 더 말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너무 높고 너무 깊게 말하면, 더욱이 많은 사람이 중국말을 그다지 잘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인데, 나는 이 면의 것을 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이만큼만 말하겠다. 다음으로 여러분이 수련 중에, 법을 배우는 중에 생긴 일부 문제를 제출하면 내가 해답해 주겠다.

제자: 우리는 『전법륜』 1, 2권을 보았는데 그 속에 있는 한마디 말을 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예전에 밀종(密宗)의 제자였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보살과 여래 부처의 층차가 지금 겁난을 당하고 있다는 문제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아주 높게 물었다. 당신이 더욱 높은 데로 수련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다. 당신에게 간단하고 개괄적으로만 말해 주겠다. 사람의 이 한 층 법이 영험하지 않음은, 인류사회의 도덕이 모두 떨어지고 사람 마음속의 도덕관념이 부패했기 때문이다. 정념(正念)이 없으면 법이 영험하지 않게 된다. 인류의 사회법이 영험하지 않으면 인류는 곧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게 된다. 만약 이 법이 인류 사회에서만 영험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주 높은 층 공간에서도 빗나갔다면, 물질생명은 곧 아래로 떨어진다. 그가 좋지 못하므로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매우 광범위하게 문제가 나타난다면 단지 인류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예컨대 대법이 관통하여 내려오는데 위에서 약간 빗나가기만 하면 아래에서는 이미 모습이 전혀 달라진다. 마치 총을 쏘는 것과 같이 당신이 약간만 삐뚤게 겨냥해도 그 탄알은 어디로 날아갈지 모른다. 왜 아래에서는 이렇게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가? 인류사회는 몹시 두렵게 변했다! 무슨 마약을 피운다던가, 마약을 판다던가, 사람은 악한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적지 않은 사람이 매우 많은 나쁜 짓을 했다. 무슨 마피아라든가, 동성애라든가, 성 문란 등등은 모두 인간의 표준이 아니다. 부처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 당신의 정부가 허용하고 법률이 허용하나, 그것은 사람 자신이 허용하는 것이지 천리(天理)는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것이 인류가 추구하는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당신이 보라. 파는 장난감이랑 그린 그림들은 모두 제멋대로 만들고 제멋대로 칠해 놓는데, 이것이 곧 작품이다. 무엇인가? 누구도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일체 사람의 관념은 모두 역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한 무더기 쓰레기를 거기에 쌓아 놓으면 바로 대 조각가의 작품이 된다. 전반 사회의 현상이 모두 이러하다. 백화점의 장난감은 심지어 대변모양까지도 장난감으로 만들어 팔고 있다. 예전에는 그 인형 아기도 아주 예쁘게 만들어야만 사람들이 잘 샀는데 지금은 해골이라든가 아주 흉악한 사람이라든가 요귀 악마까지도 장난감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아주 잘 팔리는데 착한 마음이 없는 사람이 사기 좋아한다. 이는 어떤 문제를 설명하는가. 사람의 관념은 심하게 미끄러져 내려갔다! 예전에 노래 부르는 사람은 목소리가 아름답고 음악대학을 졸업한 사람이었으며, 몸매라든가 자세가 멋질수록 좋다고 여겼다. 왜냐하면, 음악은 사람에게 아름다운 감수를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른 사람이 아, 아, 하고 힘껏 고함치는데, TV에서 추어올리기만 하면 곧 인기가수가 된다. 일체는 모두 부패하고 있으며 인류의 무엇이든 모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다. 이 외에 또 아주 많은 현상이 있는데, 두렵기 그지없다!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보아내지 못한다. 인류가 종교를 대하는 인식도 달라졌다. 그는 정치로 되어 버렸으며 어떤 사람은 입만 벌리면 부처를 욕한다. 그 요리 메뉴에는 또 무슨 “불도장(佛跳牆)”이 있다. 이것은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다! 현재 인류사회는 어찌 되어 버린 것인가?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당신은 모르지만, 수련하여 뒤돌아보면 깜짝 놀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인류가 이런 정도로 부패하였는데, 그것은 단독적인 것이 아니고, 이 법이 일정한 공간 중에서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많은 물질, 많은 생명이 법에서 빗나감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너무 깊게 말하면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이 알리라 생각한다.

제자: 말씀드리기 매우 죄송스럽지만,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놓쳐버릴까 봐 정말로 걱정스럽습니다. 많은 사람이 모두 이 문제를 저에게 대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오늘 스승님께서 오셨는데 이런 기회는 실로 만나기 어려운 것입니다. 몇 년 전 어느 하루 밤 12시가 넘었을 때, 저는 밀종(密宗)의 방법에 따라 가부좌를 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밀종을 수련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행기가 선회하듯 회전하고 있었는데,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재빨리 이렇게 공중에 날아올랐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높게 뜬 후, 머리 정수리로 나왔습니다. 정수리로 나올 때 좀 심하게 아팠고, 아픔을 느낄 때 저는 더욱 높이 상승했는데, 그때 저는 몹시 두려웠습니다. 저는 아마 나의 영혼이 떠나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으며, 저는 저의 신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튿날 괴상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대낮에 제가 방안에 앉아 있었는데 은색 광환, 은색의 빛을 보았습니다. 그런 다음 5분 후에 없어졌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저는 法輪(파룬)을 보았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비록 당신이 예전에 밀종을 연마했지만,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왜 당신이 法輪(파룬)을 볼 수 있었는가? 우리는 당신이 수련하기 전부터 이미 당신을 책임졌기 때문이다. 연공인이 뜨려면 아주 쉬운 것이나 현재의 과학자는 해석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 신체의 모든 맥이 전부 통하면 그는 곧 뜰 수 있다. 그가 뜨지 않았지만, 그가 길을 걸어도 나는 것 같고 산에 오르거나 계단을 올라가도 모두 힘들지 않다. 이것이 바로 맥이 통한 것인데, 바로 이러하다. 元神(왠선)이 나왔다고 말하는데, 어떤 사람은 元神(왠선)이 쉽게 몸을 떠나며 어떤 사람은 나오기가 쉽지 않다. 몸을 떠난 후 法輪(파룬)이 당신의 몸을 뜨게끔 이끌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것이 아주 빨랐다. 당신이 감히 그렇게 높게 올라가지 못하겠다고 했는데, 바로 당신에게 당시 다만 그만큼의 높은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처음 이런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두려워할 수 있는데, 누구든지 다 그럴 수 있다. 사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는 사람이 뜨는 것은 아주 많은데 아주 정상적이다. 수련하는 사람이 수련에 들어가기만 하면 곧 맥이 통하기 시작하고, 그런 다음 대주천이 통하기만 하면 그때 사람은 뜰 수 있다.

내가 말했지만, 또 여러분에게 당부하고 당부하는데, 누구도 ‘내가 뜬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는 생각을 하지 말라. 당신에게 추구하는 관념이 생기기만 하면 당신은 뜰 수 있어도 뜨지 못하게 된다. 연공은 무위(無爲)를 말하고 공(空)을 말하기에 유심(有心) 수련하여 무심(無心)으로 얻어야 하는데, 유심수련(有心修煉) 무심득공(無心得功)이다. 모두 이런 하나의 상태를 품고 수련한다. 날마다 늘 부처가 될 생각만 한다면 그것은 강대한 집착이다. 이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영원히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다. 당신이 속인 중에서 집착하는 그 어떤 것이든지 모두 집착심이다. 이것을 추구하고 저것을 추구하는데, 당신이 추구할수록 그것은 더욱 없게 된다. 오로지 당신이 이러한 마음을 버려야만 그것이 비로소 있게 되므로 여러분은 이 이치를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속인 중에서 당신이 어떤 것을 얻으려고 한다면 당신은 추구할 수 있고 당신은 배울 수 있어 노력 후에는 얻을 수도 있겠지만, 속인을 초월한 것은 오로지 버려야만 비로소 얻을 수 있다. 무엇이라고 하는가? 바로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無求而自得).’고 한다.

당신이 말한 두려워하는 이 문제는 사실 두려울 것이 없다. 떴다면 그만이다. 당시 당신에게 알려줄 사람이 없었고 가르칠 속인 중의 사부가 없었을 뿐이다. 뜨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현상이다. 그것은 사람의 의념의 통제를 받는다. 당신이 나는 내려가야겠다고 하면서 오로지 이렇게 생각만 하면 곧 내려오게 되며, 당신이 일어나겠다고 하면 곧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더욱 두려워할 때는 또 집착심이므로 떨어지기가 쉽다. 그러므로 절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예전에 한 사람이 나한으로 수련 성취하여 기뻐하자 그는 떨어졌다. 왜 그런가? 기쁨이란, 사람의 이런 기뻐하는 것 역시 정(情)의 체현이고 역시 집착이다. 한 수련 성취한 사람으로서는 당신이 나를 욕하고 듣기 거북한 말을 해도 나는 끄떡하지 않고, 당신이 나를 좋다고 해도 나는 역시 마음이 동하지 않으며, 당신이 나를 나쁘다고 해도 나는 역시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가 기뻐하자 그는 떨어졌다. 나한으로 수련성취 되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나중에 이 사람은 다시 이어서 수련하자고 다짐했다! 몇 년이 지나 그는 또 나한으로 수련성취 되었다. 이번에 그는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나는 기뻐해서는 안 된다. 내가 기뻐하기만 하면 또 떨어지게 된다.’ 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기뻐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그가 두려워하자 그는 또 떨어져 내려왔다. 이 두려워하는 것 역시 집착심이기 때문이다. 부처 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로서 아이들 장난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이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여러분이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나는 문제 하나를 더 말하겠다. 우리의 연공은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한다. 나는 이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 중에 일부는 이전에 밀종(密宗)을 배웠으며, 일부 사람들은 불교를 믿거나, 또 일부 사람들은 기독교, 천주교를 믿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는 수련은 반드시 전일(專一)해야 한다고 본다! 왜 전일해야 하는가? 이것은 천만 지당한 진리이다! 지금은 말법 시기로 사람이 수련 성취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것이 하나의 주된 원인이다. 몇 가지 원인으로 촉성된 것인데, 법을 이해하지 못한 것과 다른 것을 뒤섞어 수련한 것이다. 뒤섞어 수련하는 것이 한 가지 주된 원인이다. 당신이 이 공을 연마한다면 당신은 다른 공을 연마할 수 없다. 왜 이렇게 당신에게 알려주는가? “여러 가(家)의 장점을 가져온다.”라는 이 설은 속인이 말한 것이며 속인의 기술지식을 구하는 데에서는 이 이치이다. 그러나 수련의 이치는 전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교 중에서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이라고 한다. 당신이 부처 수련도 하고 도(道)도 닦는다면 아무것도 수련해 내지 못하며 누구도 당신에게 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수련은 자신이 하나 공은 사부에게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기공 단련을 좀 한다고 해서 부처로 수련 성취될 수 있겠는가? 밀종에서 주문을 외우고 의념을 넣고 수인(手印) 몇 개를 한다고 해서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사람의 의념(意念)은 아무것도 아니며 단지 소망일 뿐이다. 진정하게 역할을 하는 것은 사부이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모두 불가의 것인데, 우리가 염불하고 밀종을 배우면서 또 불가 기공도 배운다면 이는 좋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것은 사람의 인식이지 신(神)은 이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여래 부처(如來佛), 아미타불(阿彌陀佛)은 어떻게 수련성취 했는가? 그는 자신의 수련방법에 따라 원만(圓滿)을 이룬 것이고 그의 공(功) 역시 자신의 연화(演化) 형식에 따라 그의 세계를 원만하게 했으며, 그 자신이 수련 성취한 것이다. 그의 일체는 모두 그가 수련과정 중에서 형성해 낸 그 자신의 그런 수련형식의 요소로 이루어진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의 원만(圓滿) 방법을 ‘계(戒)・정(定)・혜(慧)’라고 한다. 4선8정(四禪八定) 등등을 닦으려면 그의 그 수련방법에 따라야 한다. 이 한 문(門)을 수련한다면 당신의 공(功) 역시 석가모니 부처가 수련한 공이여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의 거기로 수련되어 갈 수 있다. 당신이 밀종을 수련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밀종의 신(身)・구(口)・의(意)의 요구에 따라야만 당신은 비로소 대일여래(大日如來)가 주지하는 천국, 그곳으로 수련되어 갈 수 있다. 무엇이든 다 연마하면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당신이 정토(淨土)를 수련하면서 아미타불을 외우고 되돌아서 또 선종(禪宗)의 이론을 배운다면 당신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의 신체는 하나뿐인데, 신체를 불체(佛體)로, 부처의 신체로 개변하려면,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당신 자신은 하지 못한다. 그것은 부처가 해야 한다. 당신의 신체를 불체로 개변하려면 그것은 대단히 복잡한 일로서 인류의 가장 정밀한 계기보다도 더 복잡하다. 그가 당신의 신체에 넣어 준 한 세트의 것을 기제(機制)라고 한다. 또 당신에게 많고도 많은 원만에 이르게 하는 각종 불법신통(佛法神通) 종자를 넣어주는데, 단전(丹田)의 전(田)에다 묻어 준다. 이 일체는 모두 그 자신의 이 한 문(門)의 것인데, 이래야만 당신은 비로소 그의 이 한 문(門) 중에서 수련할 수 있으며 비로소 그의 불국세계(佛國世界)로 수련되어 갈 수 있다. 만일 전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신체는 하나뿐인데, 두개의 부처 세계에 하나인 당신이 어떻게 수련 성취하겠는가? 어떻게 둘을 수련해 낼 수 있겠는가? 부처는 당신이 이러한 것을 보고 당신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을 것이고 그는 당신의 心性(씬씽)이 좋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사람인 당신이 불법에 화란(禍亂)을 일으키려고 한다. 여래 부처가 여래 부처로 수련성취 함에 얼마나 간고하고 얼마나 어려웠겠는가! 한 여래 부처가 여래로 수련성취 함에 그는 얼마나 큰 고통을 겪고서야 여래로 수련성취 되었겠는가! 한 속인으로서 당신이 그의 것을 개변하고 그의 것에 화란(禍亂)을 일으키며, 두 가지를 한데 섞어 두 부처가 증오(證悟)한 것을 난잡하게 하려 하는데, 이것이 그래 불법(佛法)에 화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란 말인가?! 이렇게 심각하다! 그러나 지금의 화상(和尙)과 지금의 인류는 불법을 파괴하면서도 그는 오히려 모르고 있다. 물론 당신이 모른다면 온전히 당신만을 탓할 수는 없다. 당신을 탓하지 않고 당신을 탓하지 않지만, 당신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다. 사람이 제멋대로 불법에 화란(禍亂)을 일으키게 할 수 없다. 두 문(門)의 불법, 두 여래 부처의 법에 당신이 모두 화란을 일으켰다. 이것은 절대 안 된다! 그러므로 당신이 섞어서 수련하기만 하면 얻을 수 없다. 불가의 것만 수련하고 도가의 것은 수련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불가의 것이면 다 수련해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당신이 불가의 선종(禪宗)도 수련하고 밀종도 수련하며 정토(淨土)・화엄종(華嚴宗)・천태종(天台宗)을 모두 수련한다면 당신은 함부로 하는 것이고 제멋대로 하는 것으로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정말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한 문(門)을 틀어쥐고 수련해야만 비로소 원만을 이룰 수 있다.

여기에서 내가 말한 것은 하나의 이치이다. 당신이 반드시 나 리훙쯔(李洪志)의 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워야 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사전(史前) 한 시기에 석가모니 부처의 불교와 마찬가지로 인류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사람을 제도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 인류문명시기에는 여태껏 전한 적이 없다. 이번 인류가 출현한 후 우리가 이를 처음으로 내놓는데, 아마도 최후 한 차례로 내놓아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영원히 훼손되지 않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法輪世界(파룬쓰제)가 있는 것으로 원만을 이룬 제자는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갈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반드시 나의 법을 수련하라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은 어떠한 법이든 수련할 수 있다. 오로지 그가 정법이고 당신이 그 한 법문(法門)을 진짜로 전수 받을 수 있고 당신이 그 한 법문 중에서 능히 원만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당신은 수련하도록 하라. 하지만 나는 당신이 전일할 것을 권고한다.

나는 또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부처는 부처의 그런 진정한 모습으로 직접 와서 당신을 제도할 수 없다. 신통을 크게 나타내며 부처가 여기에 앉아서 당신에게 설법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법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면 십악불사(十惡不赦)한 사람도 모두 배울 것인즉 깨달을 것이 없게 된다. 보면 진짜 부처가 여기에 있는데 누가 배우지 않겠는가? 전 인류가 모두 배울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오로지 속인 중으로 전생(轉生)한 사부만이 비로소 가르칠 수 있으며 비로소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 이 속에는 깨달음이란 문제가 있으며 믿고 믿지 않고는 당신에게 달렸다. 하지만 법에 대하여 당신 스스로 가늠해 볼 수는 있다. 아무튼, 당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므로 나는 비로소 이 이치를 말했다.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므로 내가 당신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이런 기회와 인연이 있어 여기에 앉아 있으므로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지금 어떠한 문(門)도 수련 성취하기가 몹시 어렵게 되었고 상관하는 사람이 없는데 관건은 모두 난잡하게 수련하기 때문이다. 물론 당신이 만약 자신을 파악할 수 있다면 당신은 스스로 수련할 것이다. 당신이 수련하여 원만을 이룰 수 있다고 여긴다면 어느 한 문(門)에서 수련해도 다 좋은 것으로 바로 이런 이치이다. 왜냐하면, 부처는 바로 사람을 잘 되게 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수련하려고 한다면 당신은 곧 전일해야 한다. 단지 동작만 다른 것을 연마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또 다른 문(門)의 경(經)을 읽을 수 없으며 당신의 사상 중에도 그 한 문(門)의 것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의념마저도 제거해 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연공의 많은 것이 의념에 의한 것이기 때문인데, 당신의 의념이 나옴은 바로 추구인지라 당신이 그것을 가지려고 생각하면 그것은 바로 오게 마련이다. 그럼 당신 몸의 공(功)은 난잡하게 되고 法輪(파룬)은 변형되어 효력을 잃게 되므로 당신은 곧 헛되이 수련하게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法輪(파룬)은 너무나도 진귀하다. 당신은 내가 그를 당신에게 주었다고만 보지 말라. 내가 이것을 전하기 전에는 천 년 수도(修道)하는 사람마저도 그를 얻으려고 했지만, 얻지 못했다. 얻었으면 이 사람은 이미 절반을 수련 성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공(功)은 자동으로 法輪(파룬)에 의하여 연화(演化)되므로, 오로지 당신의 마음을 닦기만 하면 공이 자라 오를 수 있고, 제고되어 올라올 수 있다. 그는 고급 생명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당신의 생명보다도 더 고급이다. 당신은 내가 당신에게 주었다고만 보지 말라. 당신이 수련하려고 했기에 불성(佛性)이 표현되어 나온 것이다. 이 한 생각이 나왔기에 당신을 제도하는 것이며 이렇게 한 것으로, 당신이 얻은 것은 매우 진귀하다. 부처 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로서 우리도 당신이 그에게 화란을 일으키고 그를 망치게 하도록 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다른 것을 섞어서 수련한다면 우리는 회수하는 수밖에 없다. 당신으로 하여금 이 생명 - 고급 생명을 망치게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생각하기를 ‘내가 다른 것을 배웠는데 이 法輪(파룬)은 이렇듯 큰 위력이 있으면서 그는 왜 상관하지 않았는가?’ 한다. 왜냐하면, 이 우주 중에는 또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바로 자신이 구한 것은 자신이 치러야 하는 것으로서, 당신 자신이 가지려 한 것이고, 당신이 사악한 것을 가지려 했기 때문이다. 그 사악한 것은 틈만 있으면 파고드는데, 당신이 갖지 않으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뚫고 들어온다! 당신이 그것을 가지려고 하면 그는 즉시 오며 일 초도 안 되어 그것은 곧 온다. 그럼 法輪(파룬)은 왜 상관하지 않는가? 당신이 가지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점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사람이 수련함은 매우 엄숙하며 매우 엄숙한 일이다.

내가 중국에서 공을 전할 때, 많은 사람이 천목이 열린 층차가 비교적 높았다. 천목이 열려도 수련하기가 힘들다. 높고 큰 신선들을 보게 되는데, 다른 공간의 생명체는 아주 크게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시 노란색 옷을 입고 있으며 높고 커 인류는 그를 신통광대(神通廣大)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당신에게 말하기를, “내가 당신을 제자로 삼을 테니 나를 따라 배우도록 하라.”라고 한다. 사람의 그 마음이 일어나 곧 그를 따라 배우면 바로 망치게 된다. 당신은 그가 더없이 높다고만 보지 말라. 그 역시 삼계(三界)를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아무것도 아니다. 그는 다만 이 공간에 있지 않음으로 그는 신체를 변화시킬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런 일을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또한, 마(魔)가 와서 당신을 교란하는데, 나를 따라 배우라, 내가 당신에게 뭘 좀 가르치겠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거기에 앉기만 하면, 특히 다른 공(功)을 연마했던 사람은 무슨 자발공이라는 것이 나타나기 쉬운데 수인(手印)을 아주 멋있게 하는 것 같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마(魔) 역시 이렇게 할 수 있다. 당신은 누가 당신에게 준 것인지도 모르므로 당신이 그를 따라 연마하기만 하면 그는 당신의 몸에 그의 것을 넣는데, 당신의 몸은 곧 난잡해진다. 나는 일부 사람들을 보았는데, 보니 이것을 배우고 저것을 배운 것처럼 그 신체 속이 난잡하기 그지없이 무엇이든 다 있어 전혀 수련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연분을 중시한다. 당신이 나를 만나게 된 것 역시 당신의 연분(緣份)이다. 당신이 진짜로 수련하려고 하면 우리는 당신을 철저하게 청리(淸理)해 준다. 좋은 것은 남겨두고 나쁜 것은 제거하여 당신의 신체를 바로잡고 정화해 주어 유백체(奶白體)상태에 도달하게 하는데, 그런 후에라야 당신은 비로소 진정으로 공이 나오고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

제자: 스승님은 많은 법신이 있으므로 사람을 지도하여 수련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호주에 있는데 누가 우리를 인도해 줄 수 있습니까? 누구를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까?

사부: 이 속에 그가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여러분 알다시피 한 사람의 수련, 이것은 매우 엄숙한 문제이다. 사람은 생생세세(生生世世)에 업력이 있으며 전생전세(前生前世)에 좋지 않은 일을 했으므로 다른 공간에 원수와 채권자가 있을 수 있다. 그가 당신이 수련하려는 것을 안다면 와서 당신한테 원수를 갚으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수련을 시작한 사람은 생명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말했다. 만일 사부가 없다면 당신은 수련 성취하기가 전혀 불가능한 것이며 절대로 수련 성취할 수가 없다. 오로지 사부가 당신을 돌봐주고 당신을 보호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 당신에게 어떠한 큰 문제도 발생하지 않게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 수련하는 사람은 이전에 세계 각지에 다 있었으며 중국에 비교적 많았다. 많은 수도(修道)하는 사람이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당신은 후에 도교가 출현해 제자가 많다고만 보지 말라. 그는 한 사람에게만 진짜로 전해 주는데, 그래야만 그에게 문제가 없도록 보증할 수 있다. 그는 다만 한 사람만 돌볼 수 있다. 왜냐하면, 도가는 중생을 제도하는 소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왜 이렇듯 많은 사람을 능히 전수하고 제도할 수 있는가? 지금 중국에 천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배우고 있는데, 국외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 이러하다. 왜 여러 사람이 모두 문제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어떤 사람은 자동차에 부딪혔는데, 자동차는 망가졌으나 그는 확실하게 아무 일도 없이 아프지도 않고 두렵지도 않았으며 아무 데도 다친 데가 없다. 왜 이러할 수 있는가? 바로 그런 채권자가 당신을 찾아와 빚을 받아 가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에게 정말로 위험이 발생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빚은 여전히 갚아야 한다. 만일 사부의 보호가 없다면 단번에 죽을 것이다. 죽는다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나에게는 무수한 법신이 있는데 생김새가 나와 같다. 그는 다른 공간에서 당연히 크게도 변하고 작게도 변할 수 있다. 대단히 크게 변할 수도 있고 대단히 작게 변할 수도 있다. 그의 지혜는 완전히 열려있고 법력(法力)은 부처와 같으며 주체는 나 여기에 있다. 그들 자신은 독립적으로 처사하는 능력이 있으며 당신을 돌보고 보호하며 당신을 도와 공(功)을 연화하는 일부 일들을 한다. 사실 그는 바로 나의 지혜의 화신(化身)이므로 나는 당신을 보호할 수 있다. 나는 호주에 있지 않지만, 대법을 이미 당신들에게 전했으므로 법을 스승으로 모실 수 있다.

제자: 법신은 우리의 수련을 지도하고 우리를 보호할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하는 사람이 번거로운 일에 부딪혔을 때 나의 법신은 당신에게 이런 것들을 풀어주거나 나타나지 못하게 하고 또 당신에게 점화해 줄 수도 있다. 당신이 참으로 깨닫지 못할 때, 당신이 또 수련함이 괜찮다면 그는 당신의 눈앞에 나타나 당신에게 무엇을 알려줄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소리를 듣게끔 할 수도 있다. 당신의 수련층차가 모자라서 당신에게 그를 보게끔 할 수는 없지만, 그는 당신에게 소리로 알려줄 수 있다. 하지만 대개 당신이 잠을 잘 때에 그가 당신으로 하여금 보게 한다. 이러므로 당신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는 깨달음의 문제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다수가 꿈속에서 볼 수 있다. 만약 당신의 정력(定力)이 아주 높으면 가부좌 중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늘 나를 보려고 생각한다면 역시 일종 추구, 집착이므로 역시 당신으로 하여금 볼 수 없게 한다. 당신이 상관하지 않을 때, 장래에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하지만, 저는 업장(業障)이 아주 심한데 어떻게 보호합니까?

사부: 이 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오늘날의 인류사회 사람은 모두 업이 구르고 굴러서 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업력이 이미 매우 크다. 또 사람만이 이렇게 큰 업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생명은 전생(轉生)할 수 있기에, 동물・물질・식물・고층 공간의 생물・저층(低層)공간의 생물로 전생할 수 있다. 육도윤회(六道輪迴)라, 모두 전생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은 德(더)와 업력을 갖고 간다. 지금의 사람은 德(더)의 성분이 작고 업력이 크다. 그렇다면 사람만이 업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멘트, 흙까지도 모두 업력이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이전에 중국에서 농민들이 밭에서 일할 때, 손을 다치면 흙가루를 집어 뿌리기만 해도 나았는데, 흙가루를 조금만 뿌려도 나았다. 지금은 당신이 감히 흙을 만질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만지지 않아도 파상풍(破傷風)에 걸린다! 도처에 다 업력이다. 물질에 업력이 있고 식물에 업력이 있으며 동물・사람, 도처에 다 업력이다. 그러므로 고층공간에서 볼 때, 인류사회는 검은 물결이 파도친다. 왜 전염병이 있게 되는가? 아주 심한 전염병은 바로 그 검은 물결로서 밀집도가 대단히 큰 그 업력덩이가 굴러다닌다. 이 지방에 굴러오면 그것은 곧 전염병으로 나타난다. 지금 인류의 업력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수련하려고 생각한다면, 방금 내가 말했지만, 빚진 몇 개의 목숨을 깨끗이 갚고 다시 수련하려고 한다면, 아마 때를 놓쳐 당신은 나를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우주 중의 사람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련하여 돌아가려 함인데, 진정으로 당신을 생기게 한 그곳으로 돌아간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속인사회에서 속인의 정(情)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수련한다면 나의 아내 자식・부모 형제는 어떻게 하는가? 그럼 내가 살아도 의미가 없다.’라고 한다. 그것은 당신이 사람의 각도에서 인식한 것이며 현존의 기초에서 생각한 것이다. 당신이 새로운 기초 위에서 제고되고 층차가 제고된 이후에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다른 하나의 경지 중에 있으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이치를 알려주겠다. 누가 당신의 진정한 육친인가? 내가 여기에서 당신들의 가정 관계를 교란하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육도윤회(六道輪迴)할 때, 당신이 금생에는 사람이지만, 내세에는 동물이고 식물이며, 한 생 또 한 생 이러했기 때문인데, 매 한 생, 매 일세(一世), 당신은 부모가 얼마이며 아내 자식・자매 형제가 얼마인가? 당신은 당신의 기나긴 생명의 흐름 속에 당신은 다 셀 수도 없다. 또 사람인 것이 있고 사람이 아닌 것도 있는데, 어느 것이 진짜인가. 바로 사람은 너무나도 깊이 미혹되었다! 당신의 진짜 부모는 우주에, 당신이 생긴 그곳에 있으며 거기에 비로소 당신의 부모가 있다. 생명은 두 가지 내원(來源)이 있다. 하나는 방대한 물질운동 하에서 생긴 생명이고, 하나는 우주의 물질운동 하에서 생긴 유형적인 생명으로서 그 자신은 마치 사람이 임신한 것과도 같이 생명을 낳는다. 이러한 생명이라면 그는 곧 부모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진정한 부모는 지금 바로 거기에서 당신을 보며 당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신은 되돌아가지 않고 여기에 미혹되어 있으면서 또 육친이 모두 여기 있는 줄로 생각한다.

사람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반본귀진(返本歸眞) 하는 것이 바로 목적이다. 한 사람이 부처수련을 하려는 이 일념(一念)이 나오게 되면 비록 그가 수련할 기연(機緣)이 없다 해도 그 또한 부처수련의 선과(善果)를 심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바로 그에게서 나타난 이 일념(一念)이 너무나도 진귀해서다! 사람이 이렇게 고생스런 환경 중에서, 이런 미혹된 환경 중에서, 여전히 되돌아가려는 마음이 있고, 여전히 부처 수련을 하여 착해지려는 마음이 있어서다. 그럼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모두 당신을 돕고 방법을 내어 당신에게 길을 열어 줄 것이다. 사람에게 이 일념(一念)이 있으면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금처럼 빛나 누구나 다 보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수련하려고 하면 바로 이러하다. 업력이 이렇게 큰데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방법을 취하여 당신을 소업(消業)해 주어야 한다. 소업에도 무조건 없애줄 수는 없으며 당신에게 전부 없애 줄 수도 없다. 다른 사람은 어느 정도로 해줄 수 있는가?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불교 중에서 말하기를, 당신은 한 생으로는 수련 성취할 수 없고, 몇 생을 윤회해야만 비로소 수련 성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단번에 그렇게 많은 업을 없애버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진짜로 수련하려 한다면 우리는 방법을 내어 당신으로 하여금 금생금세에 수련 성취하게 하며, 곧 이 한 세(一世)에 원만(圓滿)을 이루게끔 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나이가 특별히 많거나 혹은 수명이 아주 짧아 늦었다면, 당신은 法輪(파룬)을 갖고 천수를 다한 후 전생하게 될 것이다. 태어나자마자, 곧 이것을 지녔으므로 다음 한 차례 인연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정법을 수련하면 나는, 당신의 업력을 당신이 수련할 수 있고, 당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없애주는데, 당신에게 이런 정도로 없애준다. 다 없애주어서는 안 되며 조금도 갚지 않아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갚는 이 부분은 어떻게 갚는 것인가? 우리는 그것을 당신의 수련하는 길에 안배해 놓는데 모두 당신 자신의 업력으로서 바로 당신의 수련 중에서 제고가 필요한 부동한 층차에 안배해 놓는다. 그것은 당신이 心性(씬씽)을 제고할 때 생기는 한 고비와 한 난(難)으로 된다. 층차 제고가 필요할 때, 당신은 일부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거나 혹은 신체의 어느 곳이 아프다. 그렇다면 이는 모두 당신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때에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할 수 있는지를 본다. 이런 문제를 속인과 마찬가지로 대하지 않는지,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그것을 담담하게 볼 수 있는지 하는 것이다. 당신이 이 한 고비, 이 한 난(難)을 제고하는 좋은 기회로 간주하여 내려놓으면 당신은 이 한 고비를 넘길 수 있다. 일부 사람은 수련함에 그는 난이 너무나 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리 큰 것이 아니다. 당신이 그것을 크다고 느낄수록 그것은 더욱 높고 크게 변하며 당신은 더욱 작아진다. 당신이 그것을 개의치 않고 마음에 두지 않으며 ‘청산(青山)을 남겨 두었거니 땔나무 없을까 봐 걱정이랴,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 그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라고 하면서 내려놓기만 하면 당신의 난(難)은 작게 변하고, 당신은 크게 변해 한걸음에 넘길 수 있게 되는바, 그 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변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보증하고 이러하다. 넘기지 못함은 실질적으로 그가 집착심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혹은 법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대다수는 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거나, 저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으로서, 다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넘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사람의 그 한 발자국에서 물러서지 못하기 때문에 그는 넘기지 못한다.

제자: 저는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저는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처럼 사부님의 책을 읽고 사부님의 비디오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한마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法輪(파룬)은 당신들 스스로는 연마해 내지 못하는 것으로 사부가 친히 당신들에게 法輪(파룬)을 넣어주어야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중국에 가서 사부님께 法輪(파룬)을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 가지 문제입니다. 그밖에 하나는, 만약 法輪(파룬)이 있다면 어떻게 자신이 法輪(파룬)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이 두 가지 문제입니다.

사부: 많은 사람이 한 가지 문제를 걱정한다. ‘우리는 이 법을 배우려고 하지만, 사부의 강의를 듣지 못하고 사부의 얼굴을 보지 못했는데 우리에게 法輪(파룬)이 있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은, ‘아무 감각도 없는데 사부님이 우리를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고 한다. 많은 사람에게 모두 이 문제가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미 책에 써넣었다. 당신은 法輪(파룬)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왔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당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면 당신이 이런 것을 보기만 해도 당신에게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반드시 책임질 것이다. 당신이 진짜로 수련하는데 내가 당신을 책임지지 않는다면 나는 사람을 해치며 사람을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것과 같다. 그럼 나는 응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렇게 할 수 없다. 기왕 내가 이렇게 한바, 나는 당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많은, 근기(根基)가 아주 좋은 사람은 이 책의 매 한 글자가 모두 法輪(파룬)임을 보아낼 수 있다. 공간은 같지 않기 때문에 심층(深層) 공간으로 더 내려가서 본다면 매 한 글자가 모두 나의 법신이고 모두 부처의 형상이며, 편방부수(偏旁部首)마저도 모두 단일한 부처이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한 부처의 위력은 아주 큰 것이다. 당신이 이 책을 들고 보면 왜 병이 나을 수 있는가? 당신의 눈이 나쁘지만, 왜 이 책을 보면 글자가 더욱더 커지고 눈도 피로하지 않는가? 왜 당신이 이 책을 보면 기적적인 변화가 발생하는가? 왜냐하면, 그 글자는 법으로 구성된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일체 일을 해줄 수 있으며 그는 당신에게 法輪(파룬)을 넣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법신이 있어 당신을 책임져 주는데, 이 모든 일을 그들은 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 본인을 만나지 않아도 역시 얻을 수 있다.

감각을 말한다면 어떤 사람 그는 아마 민감하여 아랫배가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또 한 곳만 도는 것이 아니라 온몸 곳곳에서 다 돌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어떤 사람은 잘못된 말을 했는데, 이후에는 주의하도록 하라.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가 아홉 개 法輪(파룬)을 연마한다고 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진정으로 당신에게 넣어 준 法輪(파룬)은 곧 하나이다. 이 法輪(파룬)은 위력이 비할 바 없으며 그는 무한하게 분체(分體)할 수 있다. 수련의 초기에 당신의 신체를 조절하기 위해 내가 당신 체외에 넣어 준 法輪(파룬)은 몇 백 개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도처에서 모두 돌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여기에서 돌고 저기에서 돌고, 아이고, 온몸에서 모두 돌고 있으며 도처에서 모두 돌고 있다고 한다. 당신의 신체를 정화해 주고 동화해 주어야 하므로 나는 우리 이런 공의 특성으로 당신을 조절해 준다. 그러므로 당신은 곳곳에서 모두 法輪(파룬)이 돌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많아서 다 셀 수 없다. 당신은 아마 아홉 개가 있다고 느껴, 아홉 개가 있다고 했을 것이다. 나는 아주 많은, 밖에서 사용하는 法輪(파룬)으로 당신의 신체를 조절해 주는데, 어떤 사람은 민감하고 어떤 사람은 민감하지 않다. 민감하지 않은 사람은 느끼지 못하고 민감한 사람은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느끼든지 느끼지 못하든지 이것은 모두 초기의 것이다. 느끼는 사람은 그가 순응하여 당신 신체의 일부분으로 되면 감각이 없어진다. 당신의 심장이 뛴다고 하여 당신은 평소에 그것이 뛰고 있음을 아는가? 당신은 손으로 만져서야 알 수 있다. 당신의 위가 꿈틀거리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이 움직이는 것을 아는가? 당신의 혈액이 흐르며 돌고 있는데 당신은 아는가? 그가 당신 신체의 일부분으로 되면 감각이 없으며 느껴지지도 않는다. 초기에는 감각이 없을 때도 있으며 초기에 아주 많은 일부 사람은 감각이 없다. 하지만 이후 수련 중 당신은 아주 많은 감각이 있을 수 있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만 하면 나는 반드시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가장 뚜렷한 것은 당신 신체가 아주 빨리 정화된다는 것이다. 중국 대륙의 아주 많은 사람이 다 알고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면 너무나도 신기하다! 연마하기만 하면 병이 없어진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사람, 그는 병을 치료하려고 한 것이 아니며 그는 대법이 좋다고 생각하여 연마했다! 결국, 병이 나았다. 그러나 일부 효과가 좋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다. 왜 좋지 않은가? 그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면 병을 없앨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그는 병을 제거하려는 목적을 품고 와서 연마했다. 그러므로 그의 병은 제거될 수 없다.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 당신이 병을 없애려고 하는 것도 역시 구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신체는 마땅히 업을 갚아야 하기에 마땅히 병이 있어야 한다. 당신은 수련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당신의 병을 없애려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 오로지 당신이 병을 없애려고 생각하지 않고 이런 일을 상관하지 않으며 당신이 연마만 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든 다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당신이 병을 고치려는 마음을 품는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게 된다. 예전에 우리는 줄곧 정신병 환자와 병이 위독한 사람을 입장하지 못하도록 했다. 다시 말해서 이 병이 위독한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아무리 그 마음을 내려놓으라고 말해도 그는 내려놓지 못한다. 그의 생명이 거의 끝나게 되었는데 그가 그의 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가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도 모두 병 때문이므로 당신이 그에게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는 역시 내려놓지 못한다. 어떤 때 그는 입으로는 내려놓았다고 말하지만,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아주 강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 할 수 없는가? 왜냐하면, 정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함은 요구가 있기 때문인데, 아주 엄격한 요구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바로 사법(邪法)을 전하는 것이다. 당신은 반드시 이 일념(一念)을 개변해야만 우리는 당신에게 해줄 수 있으며, 이 일념을 개변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 일념을 개변하면 그는 곧 속인이 아니고 이 일념을 개변하지 못하면 곧 속인이다.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오로지 구함이 없어야만 스스로 얻을 수 있다. 일부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온 것이 아니며 아주 좋다고 여겨 한번 연마해 봐야겠다고 온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기공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 그 역시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와서 연마했는데 그는 오히려 무엇이든 다 좋아졌다. 물론 우리는 사람들이 단번에 아주 높아질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나의 인식과정이 있는 이것은 괜찮다. 하지만 그 어떠한 구하려는 마음을 품고 와서 수련해서는 안 된다.

제자: 스승님, 대단히 죄송하지만, 저는 세 가지 문제를 여쭤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문제는, 『전법륜』에서 보면 그 기문공(奇門功)은 연마한 공을 꺾지 않는다고 했고, 어떤 공은 연마한 후에 10분의 8을 꺾어서 그 세계를 충실히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대법을 연마해도 역시 꺾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사람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에 장래 부처가 됨에 갖춰야 할 모든 것들을 모두 연마해 내야 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부처는 그가 무엇을 가지려 하면 그것이 있다. 아울러 신통력이 무궁무진하며 그의 분복은 비할 바 없다. 그는 어디에서 온 것인가? 그가 얼마만 한 고생을 겪으면 그는 그만한 복을 얻는다. 그렇다면 그에게서 자라난 이 공이 상당히 높은 정도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부처로 수련될 수 있다. 예전에 이것은 우리 수련계에서 대단히 높게 수련된 사람 사이에서만 하는 말이며 속인 중에서는 하지 않은 말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확실히 아주 높게 수련되어야만 비로소 원만을 이룰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당신이 공만 가지고 올라갔는데, 당신이 뭘 가지려 해도 아무것도 없고 당신의 일체 분복이 다 없다면 이는 안 된다. 당신은 수련과정에서 그것을 모두 수련해 내야 한다. 전반 수련과정 중에서 겪은 고생은 바로 당신의 위덕(威德)이다. 고생을 겪으면 공이 자라며 心性(씬씽)이 제고되면 공(功)이 자란다. 그러므로 장래에 아주 높고 깊은 층차로 수련된 후에 역시 공의 10분의 8을 꺾어내려 당신의 그 과위의 끝없는 분복을 원만에 이르게 한다. 당신 자신의 작은 세계 속을 충실하게 하는데 그것은 당신이 고생을 겪어 수련해 온 것이다. 당신이 수련한 그 心性(씬씽)의 표준까지도 다 꺾어서 그 속을 충실하게 해야만 비로소 당신의 분복이다. 그것은 당신이 고생을 겪어서 온 것이다. 남은 그 10분의 2, 그것이야말로 당신의 과위(果位)이다. 보살의 표준에 도달했다면 곧 보살이고 부처의 표준에 도달했다면 곧 부처이며, 나한의 표준에 도달했다면 곧 나한이고,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했다면 당신은 바로 더욱 큰부처이다. 기문(奇門)수련방법은 비교적 복잡하지만, 역시 그 자신의 공으로써 복덕(福德)을 원만에 이르게 한다.

제자: 두 번째 문제를 여쭤보려고 합니다. 저희는 心性(씬씽)이 높지 못하므로 다른 사람이 저를 욕하거나 저를 업신여기면 마음속으로 화가 나서 견디지 못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데 의하면 다른 사람이 때리고 욕하며 업신여김은 모두 德(더)를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음속으로 화를 내서는 안 되는데, 화가 났다면 공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속인 때문에 화를 낼 때면 이미 속인과 같은 것이다. 당신이 화를 낼 적에 밖으로 내민 것으로 다만 당신이 돌려보내지 않았을 뿐이다. 돌려보내지 않음은, 당신이 필경 잃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그와 같게 대한다면 곧 그것을 돌려보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이 자식이 나를 형편없이 업신여기고 나의 많은 돈을 사기 쳤는데 그래도 나는 기뻐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당신이 나를 한바탕 때렸고 나는 또 욕을 먹어야 했는데, 나는 욕하기는커녕 그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는가. 사람들은 당신 이것은 아Q가 아닌가? 너무 연약하지 않은가? 라고 말한다. 그런 것이 아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이 그렇게 높은 心性(씬씽)이 없다면 당신은 해내지도 못한다. 그것은 수련자의 굳센 의지의 표현인데, 속인이 할 수 있겠는가? 그에게 그렇듯 굳센 의지가 없다면 그는 해내지 못하는데, 그것은 연약한 것이 아니다. 당신은 당연히 기뻐해야 한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만약 당신을 업신여기지 않았다면 당신은 그 한 덩이 德(더)를 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한 덩이 德(더)를 더 얻으면 당신은 한 덩이 공(功)을 수련해 내게 된다. 그가 당신을 업신여길 때 당신 자신의 업력도 없어지는 것이다! 당신 자신이 업력을 갖고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당신은 깨끗이 없애버려야 한다. 그가 당신을 업신여겨 당신에게 德(더)를 주었고 당신은 또 업을 없애버렸다. 당신이 그와 같게 대하지 않았고 마음속이 아주 조용한바, 당신의 心性(씬씽) 표준이 높아졌다. 머리 위에 心性(씬씽)의 척도가 있는데, 머리 위의 이 척도가 얼마만큼 높으면 공도 그만큼 높다. 당신은 心性(씬씽)이 높아졌고 공도 높아졌으며 당신의 업도 德(더)로 전화되었고 그는 또 당신에게 德(더)를 주었다. 당신은 일거사득(一擧四得)이다. 당신은 그래도 그에게 감사드리지 않겠는가. 정말로 내심에서 우러나와 그에게 감사드려야 한다. 내가 방금 말했다. 인류사회가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이치는 거꾸로 된 것이다. 높은 층차에 이르면 사람이 집착하는 것은 모두 좋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제자: 세 번째 문제는 바로 책에서 말한 살생문제입니다. 살생이 아주 큰 죄업(罪業)이라면, 한 사람의 자살을 죄로 칩니까?

사부: 죄로 친다. 지금 이 인류사회는 좋지 않게 되었고 어떤 기괴망측한 일도 다 나타났다. 무슨 안락사(安樂死)를 주장하면서 주사를 놓아 그 사람으로 하여금 죽게 한다. 여러분이 알지만, 왜 주사를 놓아 그를 죽게 하는가? 그가 고통스럽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그의 고통을 소업(消業)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가 내세(來世)에 전생(轉生)하면 몸이 가뿐하고 업력도 없어 아주 큰 행복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 그가 고통 속에서 한창 소업하고 있을 때, 그는 물론 아프지만, 당신이 그로 하여금 소업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죽여 버린다면 그것은 살인이 아닌가? 그는 업력을 가지고 가게 되며 내세에 그는 업을 모두 갚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어느 것이 옳은가? 자살은 또 하나의 죄가 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안배된 것인데, 당신이 신(神)의 총체적인 전체국면의 순서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회에 대해 의무를 다하는 것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이러한 관계가 연대된다. 죽었다면 전반, 이 순서가 신(神)의 안배를 혼란하게 한 것이 아닌가? 당신이 그를 혼란케 했다면 그는 당신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살은 죄가 있는 것이다.

제자: 부처는 뭘 하려고 생각하면 뭘 한다는데, 부처는 마음이 깨끗하고 욕망이 아주 적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는 역시 향수할 줄 압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부처는 밥을 먹지 않고 사람의 신체도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모두 부처는 이러하다고 여기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수련계의 사람이 한 말을 속인의 사유방식으로 인식할 수 없다. 부처는 사람의 신체가 없다. 분자 이 한 층의 입자 물질로 구성된 사람의 이런 더러운 신체가 없다. 그의 신체의 가장 굵은 과립(顆粒)은 표면이 원자지만, 가장 미시적인 과립은 우주 중의 더욱 미시적인 물질이다. 그의 물질이 미시적일수록 그의 방사성 에너지는 더욱 크다. 불광(佛光)이 널리 비춘다고 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은 부처는 밥을 먹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부처는 사람의 밥을 먹지 않으며 그는 자기의 그 층차 중의 물질을 먹는다. 그는 또 ‘밥’이라고, 인류의 언어로 부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은 부처 경지 중의 언어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은 곧 사람의 생각이다.

어떤 속인은, 부처가 된다면 얼마나 멋이 없겠는가, 아무것도 없고 거기에 앉으면 마치 나무토막과도 같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부처는 그의 그 천국 세계의 법왕(法王)이다. 우리가 여래라고 부름은 그의 心性(씬씽) 표준 층차의 체현을 가리킨 호칭이다. 그는 실제로 그의 천국의 법왕(法王)이다. 그는 그 세계 속의 무수한 중생을 관리하고 있다. 물론 우리 속인들처럼 법률로써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완전히 자비롭고 선량한 마음으로 관리한다, 모두 그 경지의 표준인지라 아름답기가 비할 바 없다. 그에게는 속인 중의 정(情)이 없다. 그러나 그는 자비(慈悲)가 있으며 더욱 높은 경지, 더 순결한 것이 있고, 그에게는 일체 속인이 가진 것이 다 없다. 그는 더욱 높은 경지에 상응하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갖추고 있다. 이것이 바로 고급 생명이다. 또 더욱 고급이고 더욱 고급이며 더욱 고급인 생명이 있다. 다 무료하면 죽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그는 더욱 아름다운바, 그 세계에 가야만이 비로소 무엇이 행복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더욱 아름답다. 하지만 당신이 속인의 이런 것들을 내려놓지 못하고 없애버리지 못하면 당신은 얻지 못한다.

제자: 왜 기문공(奇門功)은 그 공을 꺾어 내리지 않습니까?

사부: 기문공(奇門功)이 꺾어 내리지 않는다고 누가 말했는가? 모두 수련해 낸 공으로써 그들의 과위(果位)를 원만에 이르게 한다. 기문수련도 한 가지뿐이 아니다. 기이하고 다양한데 아주 특이하다. 수련과정 중에서, 어떤 사람은 수련하는 한편, 이것을 원만에 이르게 하는데,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그는 이 방면에서 자라지 않으므로 그는 꺾을 필요가 없다. 꺾어야 할 사람은 그의 공이 자람이 빠르다. 그가 꺾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수련하는 한편, 복덕(福德)을 원만에 이르게 하므로 그는 자라는 것이 아주 느리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마찬가지다.

제자: 두 가지 문제입니다. 첫째 문제는, 제가 첫날 가부좌를 했을 때 사부님의 법신이 저의 곁에, 저의 왼쪽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입은 옷은 검은색이었고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자료에서 말한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보았기 때문에 오늘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색깔이 아닙니다.

사부: 이 역시 부동한 공간에는 대비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 도(道)가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가? 자색(紫色)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동래(紫氣東來)라고 말하는데, 그는 자주 빛이 가장 높다고 인정한다. 불가는 노란색, 황금색을 좋아한다. 그러나 한 가지 색깔이다. 그것이 이 공간에서는 자색이지만, 저 공간에서는 황금색이다. 그렇다면 우리 공간에서 본 검은 것은 다른 공간에서 보면 흰 것이며, 이쪽에서 본 것이 하얀 것이라도 저쪽에서 보면 시커멓고 이쪽에서는 푸른색이지만, 저쪽에서는 붉은색이다. 전반 색깔은 모두 이렇게 부동한 공간에 부동한 나타남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이 마침 그런 상태 중에서 본 것은 바로 그런 색깔이다. 여러분은 좀 주의해야겠다. 왜냐하면, 어떤 때에 이 마(魔)가 아주 심하게 교란하기 때문이다. 나의 법신 대다수는 부처의 가사(袈裟)를 입고 있으며 남색 머리칼인데, 고슬고슬한 남색 머리로서 매우 짙은 청남색이다. 어떤 때 극히 특수한 상황에서 이런 옷을 입고 있는 법신을 볼 수 있는데, 극히 특수하고 극히 특수한 것으로 아주 드물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일을 잘 분별하도록 해야 한다. 그가 만약 나라고 한다면 당신 마음속으로 나라고 여겨질 것이며 마음이 놓일 것이다. 그가 만약 내가 아니라면 당신은 마음속으로 물음표를 찍게 될 것이다.

제자: 저는 이 법을 배운 지 이미 두 달 되었습니다. 이 두 달 사이에 저는 몇 십 년의 병이 다 없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대법을 배운 목적은 바로 저의 업장(業障)을 없애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두 달 동안 저는 참으로 편안했으며 약을 조금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입니다. 그 밖에 하나는, 가부좌 중에서 본 그것이 法輪(파룬)인지 아닌지 사부님께 여쭙고자 합니다. 저는 나선식으로 돌고 도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색깔은 역시 일종 흙의 색깔로, 진흙 색깔과 같았으며 전반적으로 도는 것이 그야말로 아주 오묘했습니다. 하지만 이 속의 구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부: 그 法輪(파룬)은 부호를 제외한 외에 그 바탕 색깔은 변할 수 있다. 적・등・황・녹・청・남・자・유색(有色)・무색(無色)으로서 그것은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法輪(파룬)은 모두 이런 색깔이 아닐 수도 있다. 또 法輪(파룬)이 당신들의 신체를 조절할 때에는 몹시 빨리 돌며 보면 마치 그 선풍기의 날개와 같고, 마치 돌개바람과도 같다. 어떤 때에는 아주 천천히 돌기 때문에 그 속의 구조를 똑똑히 볼 수 있다. 아주 빨리 돌 때에는 보기가 쉽지 않다. 초기에 신체를 조절할 때, 그 자신이 빨라야 하는지 늦어야 하는지, 어떻게 돌아야 하는지를 안다. 이것은 모두 상관없으며 모두 정상적이다.

제자: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을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 그것은 하나의 정인(定印)으로서 바로 고정적인 인(印)이다. 이것이 대연화수인(大蓮花手印)이다(손 자세를 함). 우리가 연공할 때는 할 필요가 없다. 집에 있는 이 불상 또는 도가의 노자, 원시천존(元始天尊), 기타 불상을 사부에게 청하여 개광(開光)하려 할 때, 가장 좋기로는 당신이 나의 그 책을 들고 하는 것이다. 책에 나의 사진이 있잖은가? 당신은 나에게 말하는 것처럼 “사부님, 사부님께서 개광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하면 된다. 손으로 대연화인(大蓮花印)을 하여 이 책을 받쳐 들고 3초간이면 끝난다. 나의 법신은 불상과 같은 신(神)의 법신을 청해 올 것이다. 당신이 만일 아미타불에게 개광한다면 나의 법신은 한 아미타불 법신을 이 불상으로 청해올 수 있다. 이것을 진정한 개광이라고 한다. 지금 종교 중에서 실속 있게 수련하지 않는 화상(和尙), 또 많은 가짜 기공사, 그는 개광을 하지 못한다. 그는 부처를 청해 올 그런 위덕(威德)이 없다. 그는 부처인데, 누가 부른다고 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물론 거울을 들고 불상을 비추며 개광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불상의 눈에 주사(朱砂)를 바르는 사람도 있다. 눈이 빨갛게 되는데, 그는 역시 개광이라고 말한다. 모두 난잡하게 하는 짓이다!

제자: 방금 사람 자체가 부동한 천국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이며 부동한 층차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치에 따라 말하면 그는 마땅히 그가 떨어진 원래의 그 천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 이 층차에서 그는 어느 것이 그가 있었던, 떨어진 천국인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럼 수련할 때 그가 선택하는 방법도 아마 같지 않을 것이며 그가 아마 인연이 있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우는 것 같습니다.

사부: 당신은 당신의 생명이 생긴 그곳, 당신 원래의 그 세계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는데, 소원은 좋은 것이다. 당신이 지금 우선으로 해결해야 할 것은 당신이 어떻게 되돌아가고, 어떻게 수련하여 돌아가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관건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바, 다른 것은 다 없어졌기 때문이다. 모두 거기에 배열해 놓고 그 부처가 거기에 앉아 있으며 당신이 누구를 선택한다 하여 당신에게 그를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수련하여 올라감을 말하자면, 당신이 정말로 높이 수련되어 원래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당신은 그 세계에서 당신의 그 세계의 육친을 만날 수 있으며 여기저기 유람도 할 수 있다. 당신이 어느 세계에 있는지는 상관없으며 당신이 시드니에 있든, 혹은 브리즈번에 있든, 모두 상관없다.

제자: 동남아 지역에서 천도(天道)라고 하는 것을 아주 광범위하게 전하고 있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지금은 말겁(末劫)시기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말법시기에 만마(萬魔)가 세상에 나온다고 말했다. 그때 석가모니 부처가 세상에 있을 때 마(魔)가 말하기를, ‘내가 지금은 당신의 법을 어지럽히지 못하지만, 당신의 법이 말법시기에 들어갔을 때를 기다려, 나는 나의 제자, 제자와 손제자를 파견하여 당신의 절로 출가토록 할 것인즉, 나는 당신이 어떻게 하는가를 보겠다!’라고 하자, 석가모니 부처는 당시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석가모니 부처, 그는 물론 방법이 없었다. 말법에 이르면 난잡할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한 말법시기는 단지 사람뿐만이 아니고, 단지 절(廟)뿐만이 아니라, 인류사회 곳곳이 모두 인류 사업을 파괴하는 일이 존재하고 이러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교(邪教)가 종횡(縱橫)한다! 겉으로는 그 역시 사람에게 착해지라고 하지만 그의 뼛속은 오히려 이런 것을 위하지 않는다. 그는 명(名)을 위해서가 아니면 돈을 위해서고, 그렇지 않으면 한 무리 비합법적인 세력(黑色勢力)을 위해서인데, 모두 이러한 것들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보라. 그가 추구하고 있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불법을 전함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이다. 만약 그것으로 돈을 번다면 그는 극악무도한 것이다! 물론 마(魔)는 이런 것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종교의 기치를 치켜들거나 혹은 사람으로 하여금 착해지라는 기치를 치켜들고 인류를 파괴하며 사람의 마음을 파괴하고 사람의 심법(心法)을 파괴하는데, 이는 가장 악독한 것이다. 그러므로 내 생각에 물론 어떤 말은 꺼내고 싶지 않다. 바른(正) 것과 사(邪)한 것을 당신은 분별해 낼 수 있으니 스스로 분별하도록 하라. 나는 누가 사(邪)하고, 누가 사(邪)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당신에게, 다만 이렇게 알려줄 뿐이다. 한 사람이 속인사회에 와서 사람을 제도하려고 한다면 이 일은 너무나도 큰 것이므로, 전체 우주의 신(神)들이 모두 찬성하고 동의를 표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면에 관련되고, 상하(上下)에 대응되는 인류사회의 매 하나 민족에 관련되며, 많고 많은 문제에 관련되기 때문인데, 누군가의 머리가 뜨거워져서, 하려고 한다 해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왜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는가를 나는 알고 있다. 왜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涅槃)의 길을 걸었는가?! 정법(正法)을 전함은 쉽지 않으나 사법(邪法)을 전함은 오히려 상관하는 사람이 없다. 상관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아니며 흔히 정법(正法)을 전할 때면 사법(邪法)이 많은데, 당신이 어느 문에 들어가는가를 본다. 만약 모두 한 문(一門)이고 전하는 것이 모두 정법(正法)이며, 세상에 사법(邪法)이 없이 모두 처리해 버렸다면 사람은 수련하기가 너무나도 쉬울 것이다. 이 법을 어떻게 얻든지 누구나 다 당신 것을 수련하는데, 당신의 이 한 문(一門)뿐이라면, 제자가 당신의 법에 대하여 확고한지 확고하지 않은지 어떻게 검증하겠는가? 그러므로 흔히 정법(正法)을 전할 때면 사법(邪法)도 전하게 되며, 사람이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지를 본다. 사람의 오성(悟性)을 가늠함에, 당신의 수련과정 중 어떤 사람이 찾아와 자, 나를 따라 이것을 연마하자, 나를 따라 저것을 연마하자, 자, 나는 지금 어떤 좋은 공을 배웠다고 하는 등등, 당신을 끌어내어 당신을 검증할 수 있는데, 보증하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수련과정 중 당신을 끌어내는 이런 현상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있을 수 있다. 왜 우리는 이런 일을 상관하지 않는가? 법신은 무엇이든 다 책임질 수 있는데, 왜 이것을 상관하지 않는가? 바로 마(魔)를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검증하려 하기 때문인데, 당신이 이 법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확고한지를 본다. 부처수련은 바로 이렇듯 엄숙하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존재할 수 있다.

아무튼, 좋고 나쁨을 나는 모두 말했다. 지금 정교(正教)도 사람을 제도하기가 모두 어려운데 하물며 사교(邪教)이랴! 어떤 사람은 모델처럼 분장하여 사람들에게 떠받들리고 곳곳에서 떠받들려 돈을 받는데, 사람들은 모두 여전히 그를 믿고 있다. 사람은 아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는가! 법을 얻지 못하면 속기 쉽다.

제자: 사상업은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머릿속에서 무의식중에 좋지 않은 생각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정법(正法)수련이므로 나는 사회에 대해 책임지고 인류에 대해 책임지며 사람에 대해 책임지는 이러한 원칙에 근거하여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도 좋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의 머릿속에서 나를 욕할 수 있고, 게다가 또 그에게 믿지 말라며 이것은 모두 가짜다 하며 알려준다. 왜 이런가? 왜냐하면, 사람은 그 자신의 신체에 존재하는 업력 외에 그에게는 또 사상업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물체이든 모두 산 것으로 사상업 역시 살아있는 것이다. 당신이 연공을 하려면 당신의 사상을 정화(淨化)해야 하는데, 생생세세에 생긴, 사람을 욕하는 이런 좋지 않은 생각이라든가, 형성된 관념, 각종 업력을 모두 제거해야 한다. 그것을 제거해버려야만 비로소 당신의 본성이 나올 수 있다. 당신이 수련하여 그것을 없애버리려 하고, 사람을 욕하는 이런 사상개념을 없애버리려 하면 그것은 말을 듣지 않는다. 그것이 죽게 되는데 말을 듣겠는가? 그것은 곧 당신의 머리에서 반응하는데, ‘이 모두가 가짜이다, 그를 욕하라, 사람을 욕하라.’라고 한다. 당신이 연공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사람을 더욱 욕하는데, 머릿속에서 사람을 욕하는 말, 아주 더러운 말을 산생한다. 내가 실제적인 것을 알려주는데, 그것은 당신이 아니다. 그것은 업력이고 그것은 사상업이다. 반드시 그것을 배제해야 한다. 우리 이 한 세트 공법은 바로 당신에게 주어 당신 본인이 수련하게끔 한 것으로서, 만약 당신 자신의 사상의식이 명석하지 못해 사람을 욕하는 말이 생기어 마음속이 확고하지 못할 때면,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마저도 그것을 따라가서 연마도 못 하고, 확고하지도 않게 되는데, 그렇다면 우리도 당신을 책임질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제도하는 것은 바로 당신인데, 당신이 안 된다면 우리 역시 제도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이 예전에는 아주 많았다. 중국에서 어떤 사람의 사상반응은 아주 격렬했다. 아주 격렬하게 욕을 했는데 그가 배척하려 해도 배척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나는 사부님께 죄송하다! 사부님을 욕하기까지 하다니, 나의 업력은 너무나 크기에 차라리 나는 살지 않겠다고 하면서 칼로 목을 베었다. 물론, 당신은 시험하려 하지 말라. 그는 어떻게 해도 베어지지 않았으며 아프지도 않았고 베었지만, 출혈도 없었다. 화가 난 김에 그는 뛰쳐나가 보도원을 찾아 물어보았다. 그는 ‘나의 이 머릿속에서 늘 사부님을 욕하는데, 나 이것을 어찌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보도원이 보고 나서 그를 마주하고 법을 읽자 그는 아주 좋음을 느꼈다. 나중에 나에게 물어와 내가 그에게 알려주었다. 사실 당신의 업력이 욕하고 있는 것이지 당신이 욕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은 어떠한 심리적 부담도 갖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나를 욕하는 것이 아니라 업력이 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主意識(주이스)를 분명히 하여 그것을 배척하고, 깨끗이 배척하여 그것이 욕하지 말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배척하고 억제하면 나의 법신은 곧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그는 다 알고 있으며 당신이 욕하기 전에 벌써 알고 있다. 이 역시 당신에 대한 검증이며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확고한지 확고하지 않은지에 대한 검증이다. 당신이 확고하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나의 법신은 당신에게 이 업(業)을 없애 줄 것이다. 이런 사상업력은 당신의 수련을 직접 교란하며 당신의 깨달음에 직접 영향 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없애버릴 것이다. 이 문제를 여러분은 기억해야 하며 이런 문제가 나타날 때면 잘 분별해야 한다.

제자: 연공 문제인데, 동작과 心性(씬씽)의 관계에서 동작을 강화하면 心性(씬씽)을 제고시킬 수 있습니까?

사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하지만 동작 역시 원만(圓滿)을 이루는 하나의 관건적인 면이며 역시 아주 주요한 것이다. 우리 이 공은 법이 사람을 연마하는 것으로 당신이 연공하지 않고 당신이 잠을 자거나, 일하거나, 밥을 먹어도 법은 모두 당신을 연마하며 24시간 끊임없이 당신을 연마하여 당신의 남은 생의 연공시간을 단축하게 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가급적 빨리 원만에 이르도록 한다. 만약 이렇지 않다면 금방 어떻게 당신을 금생에 원만에 이르게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연공하는 동작은 실제로 다른 공법에서 연마하면 공이 자라고 연마하지 않으면 곧 멎는 것과는 같지 않다. 우리가 연마하는 것은 내가 당신에게 넣어 준 일체 기제(機制), 체내의 것과 체외의 기제를 강화하는 것이며 당신은 이 기제를 강화하고 있다. 왜 나는, 이 손은 관정(灌頂)을 하는 형식이 아니고, 내보내고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며, 손바닥이 신체를 마주 보게 하여 움직이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내가 당신의 체외에 넣어준 그러한 氣機(치지)를 당신이 도와 움직일 때, 당신의 손은 연공하는 동안 에너지가 아주 커서 氣機(치지)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바로 당신이 기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疊扣小腹(데커우샤오푸)는 단전의 기제를 강화하는 것이고, 당신이 쭉 늘일 때는 운동의 기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연공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장기적으로 연공할 수 있는, 24시간 멈추지 않는, 이런 기제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그것을 강화하고 있는데, 연공은 원만(圓滿)을 이루는 수단이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적이 아니며 원만(圓滿)을 이루는 한 가지 보조적 수단이다. 그러나 연공 역시 아주 중요하다. 이 한 문(門)에서 수련해 낸 것인 그것의 모양이 변치 않음은, 당신 이 한 세트의 것과 당신의 동작과 또한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우리는 또 한 세트의 술류(術類)의 것이 있고, 또 생명을 연화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장생수명(長生修命)하게 하는 것이 그 속에 들어 있으며, 공능을 가지(加持)하는 등등이 있는바, 동작은 일정한 역할을 한다. 닦는(修) 것이 선차적이고 연마(煉)하는 것은 후차적이며, 닦는(修) 것이 제1위이고 연마(煉)가 제2위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한 문(門)에서 원만에 이르려면 모두 닦아야(修) 하고 연마(煉)해야 한다.

제자: 저는 연공할 때 어떠한 현상도 보지 못했고 다만 흰 빛만 보았는데, 사부님의 모습을 보겠다고 생각하자 보였는데 환상이 아닙니까?

사부: 나는 두 가지 문제로 나눠 말하겠다. 천목(天目)으로 보지 못하는 사람은 또 아마 더욱 높은 층차로 돌파하는 이런 하나의 요소가 존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오성이 아주 높고 대단히 높게 수련될 수 있는 사람일수록 그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더욱 빨리 수련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고생 중에 미혹되어 있고 미혹 속에서 깨닫는 것이기 때문에 똑같이 고생해도 그는 곱절로 제고될 수 있다. 이것은 같지 않은 것으로 높게 수련하는 것일 수 있다.

또 하나는, 당신은 당신이 보지 못했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당신은 이미 보았다. 당신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흰빛이 물체를 비추는 것을 보았다. 또한, 당신이 때로는 보려고 하면 곧 보게 되는데, 실제로 당신은 정말로 보았지만, 당신은 그것을 환각으로 여긴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지만, 그는 상상이라고 여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의 눈이 물건을 볼 때 당신은 이미 습관이 되어 이것은 눈이 본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생각을 해보았는가. 당신이 본 어떤 것도 시신경(視神經)을 거쳐 당신의 대뇌(大腦)로 전도되어 영상으로 반영된 것이고, 대뇌에 반영되어 어떤 물체를 보게 된 것이다. 당신의 눈은 단지 사진기의 렌즈 이러한 것일 따름이며 그것 자체로는 물체를 분석, 반영할 수 없고 대뇌가 영상을 반영한다. 기왕 대뇌가 영상을 반영한다고 하니, 우리가 천목을 통하여 본 것과 사람의 생각인 상상은 모두 대뇌에 반영되는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든 두뇌가 생각하는 것이고 본 물건도 대뇌에서 영상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볼 수 있으면 그것을 상상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하지만 같지 않다. 왜냐하면, 당신이 상상하여 보게 되는 그것은 그처럼 똑똑할 수 없고 그것은 움직이지 않으며 그것은 고정된 화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하게 본 것은 움직인다. 당신이 이런 데에 익숙해졌을 때 당신이 천천히 이렇게 보아 내려가고 차츰 습관이 되어 시간이 길어지면, 당신은 점차 당신이 정말로 보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또한, 잘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과거 어떤 도가에서는 제자를 훈련할 때 특별히 그로 하여금 생각하게 했다. 그는 이 관계를 알기 때문에 그의 공능을 훈련했다. 눈앞에 사과가 없지만, 사부가 그에게 거짓으로 당신 눈앞에 사과 한 알을 놓고는 어떤 사과라고 말해 준다. 실제로는 사과가 없지만, 당신이 냄새를 맡도록 훈련한다. 그런 다음 다시 사과가 어떤 모양인지 느껴 보도록 한다. 바로 이렇게 그를 훈련했다. 모두 대뇌 속에서 영상이 이뤄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 문제를 똑똑히 말하지 못한다. 아무튼, 당신이 생각한 그것은 움직이지 않으나, 당신이 본 그것은 움직인다.

제자: 어느 한차례 저녁에 꿈을 꾸었는데, 아주 두려운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생각하지 못했고 제가 생각한 것은 밀종(密宗)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주 경건하게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습니다. 혹시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겨 제가 끝장나는 것이 아닙니까, 元神(왠선)마저도 버리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사부: 당신이 책을 얼마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대법을 수련하지만, 밀종(密宗)의 것이 당신의 머릿속에 아직도 있다. 그러므로 꿈속에서 생각한 것은 밀종이지 대법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묻는다. 생명위험에 부딪히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말한다. 당신의 수련과 관계없는 일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부딪히지 않게 할 것인즉 보증하고 부딪히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수련과 관련된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부딪히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오늘 정말로 생명을 잃었다면 어떤 문(一門)에서도 모두 당신을 상관하지 않았고 전혀 수련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종교로 말하면 그것은 명을 갚을 것을 주장한다. 일생에 수련 성취를 못 하면 명을 갚은 후 다음 생에 이어서 수련한다고 하는데 그것은 이것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 여기에서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 여기에서는 당신으로 하여금 이런 문제가 나타나지 않게 한다는 말이다. 진정한 나의 제자라면 절대적으로 생명위험에 부딪히게 할 수 없다.

제자: 당시 저 자신은 꿈인 줄 모르고 있었습니다.

사부: 그때 당신은 밀종(密宗)을 연습했으며 진정하게 수련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작용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므로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꿈을 꿀 때 땅 위에 돈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집어넣었다고 말한다. 사실 이러한 꿈은 모두 사람에 대한 검증으로서 당신의 心性(씬씽)이 착실한지, 착실하지 않은지를 본다. 어떤 수련인은 낮에는 괜찮게 할 수 있으나 꿈속에서는 잘못한다고 한다. 그가 사상 깊은 곳에서 아직 착실하지 않기 때문에 꿈속에서 그가 착실한지, 착실하지 않은지를 검증해 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잘하지 못함이 나타나도 속상해하지 말고 반드시 잘하겠다며 중시하면 장래에는 좋아질 것이다.

제자: 리(李) 선생님께서 국내에서 수련반을 꾸릴 때 그들에게 모두 法輪(파룬)을 넣어 주었습니다. 오늘 제가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法輪(파룬)을 넣어 줍니까? 또 한 가지 문제는, 정신이 비정상인 사람은 수련에 받아들이지 않지만, 머리에 가벼운 문제가 있는 사람은 무슨 방법이 없습니까?

사부: 나는 먼저 첫 번째 문제를 말하겠다. 나는 말했다. 이 책 속의 매 한 글자에 모두 나의 법신이 있고 매 한 글자가 모두 나의 법신 형상이다. 매 한 글자가 모두 부처의 형상이다. 나는 무수한 법신이 있으며 나의 법신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는, 아미타불은 2백만 법신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의 법신은 얼마나 많은지 숫자로 계산할 수 없으며 셀 수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든지 나는 다 책임질 수 있으며 전 인류라 해도 나는 다 책임질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다만 수련인에 대해서만 작용을 일으킨다. 수련하지 않는 사람, 사회적인 일을 우리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련하며 염(念)을 움직이기만 하면 나의 법신은 곧 알게 된다. 또 한 문제가 있다. 당신이, 나 지금의 이 신체를 보면 속인의 육체로서 곧 이만큼 크다. 그러나 한 엇갈린(錯開) 공간에서 당신이 나의 신체를 보면 나보다 훨씬 높다. 매 한 공간에서 나의 신체는 하나가 하나보다 높으며, 하나가 하나보다 크며, 하나가 하나보다 큰바, 나의 가장 큰 신체는 크기가 그야말로 말할 방법이 없다. 많은 수련생이 순간적으로 나의 무척 큰 신체를 보았다. 그는, 사부님, 저는 사부님의 발가락 아래에 서서 사부님의 발가락 위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렇게 큰 신체이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전체 지구가 모두 여기에 있기에 당신이 어디에 있든지 모두 책임질 수 있다. 그 法輪(파룬)을 내가 반드시 곁에 있어야만 넣어 줄 수 있는가? 내가 곁에 있지 않아도 마찬가지로 넣어 줄 수 있다. 내가 당신 여기에 있지 않아도 역시 당신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당신의 두 번째 문제는 정신분열증이다. 가벼운 것이나 심한 것이나 우리는 모두 명확하게 규정했다. 그가 연공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 이 공법은 다른 공법과 같지 않다. 우리는 본인을 제도한다. 본인을 제도하지 못하면 다른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 우리 공은 본인의 몸에 주어 바로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하며 바로 당신 자신을 제도하는바, 역사적으로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이 여태껏 없었다. 역사적으로 밀종이든, 다른 종교든 모두 당신의 副元神(푸왠선)을 제도했다. 이것은 내가 밝혀 놓은 한 가지 천고의 수수께끼이다. 당시 이 수수께끼를 밝혀낼 때 정말로 방해가 대단히 컸다. 하지만 장래에 세계가 다 아름답게 변한 후, 많은 부처가 다시금 세상에 나와서 사람을 제도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때에는 그들 역시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할 것이다. 내가 이 방면의 것을 변하게 했으며 돌려세워 놓았다. 왜냐하면,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함으로써 인류 사회의 도덕 안정에 직접적인 좋은 점이 있기 때문이다. 副元神(푸왠선)을 제도하면 본인이 수련하지 못하고 수련할 수도 없어 당신이 종교로 들어갔다 하더라도 사회는 여전히 이러하기에 사회에 큰 역할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하면 그가 수련해서 좋고 수련하지 않더라도 그는 사회에서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있을 것인즉 사회에 유익한 것이다. 정신병자는 그 자신의 의식이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제도할 수 없다. 우리는 의식이 똑똑한 사람을 제도하며 똑똑하지 않은 사람은 우리가 준다 해도 내일 다른 사람이 가져가 버리게 된다. 그가 연마하든지 연마하지 않든지, 그는 더욱이 우리의 규정인 불이법문(不二法門), 이것저것을 섞어 연마하지 않는 것을 준수하지 못한다. 부처수련은 아주 엄숙한 일인데 그가 조건에 미흡하다면 제도할 방법이 없다. 어떤 사람은 그에게 꼭 배우라고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당신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그가 공을 연마하다가 문제가 생기게 되면 그때에 가서 그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연마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정신병이 있는 사람을 아예 가르치지 않는데 이것은 확실하다. 그는 속인이기에 병을 얻을 수 있고 문제가 생길 수 있으며, 그는 어쩌면 연공장에서 연공하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은 연공을 하여 연마된 것이 아니고, 그것은 그에게 때가 된 것으로 응당 지병이 발작하게 마련이다.

제자: 전 인류의 사람은 모두 같으나 동양에는 불교, 서양에는 기독교가 보급되어 차이가 그렇게 큽니다. 불교는 서양에서 아주 미약한데 두 개 체계입니까?

사부: 왜 서양은 기독교이고 동양은 불교인가? 동양 종교 혹은 서양 종교는 왜 같지 않고 차이가 대단히 큰가? 사실은 기독교 역시 불가체계 범주 내의 것이다. 다만 인류의 차이, 문화적인 차이와 천체문화(天體文化)의 차이가 인류의 외관 형상을 같지 않게, 사유형식을 같지 않게 만들었는데, 바로 사람의 표준 특점이 같지 않다. 곧 구성된 그의 부처수련 방법이라든가, 고층차의 신(神)에 대한 인식 개념이라든가, 이해하는 것이 같지 않다. 실제로는 같은 것으로 모두 부처 이 경지에 속한다. 실제로 예수는 바로 여래 이 층차 중에 있다. 하지만 문화적으로 같지 않고 사유 개념이 같지 않으며 형상의 차이로 말미암아 그를 부처라고 부르지 않는다. 동양에서는 부처라고 부른다. 당연히, 형상이 같지 않음과 형상의 차이로 예수 그의 천국 사람은 모두 흰 천을 두른 옷을 입고 있다. 그러나 불국(佛國)세계의 사람은 모두 누런 천으로 감싸는 옷을 입고 있다. 두발(頭髮)도 같지 않다. 가장 큰 차이가 두발이다. 도가는 머리를 빗어 틀어 올리고 불가 나한은 대머리이며 보살은 중국 고대 여인의 그런 머리 양식이다. 무엇 때문인가? 중국 고대의 이런 옷차림과 천인(天人)의 옷차림은 같다. 실제로 천국(天國) 하늘 세계 사람이 입는 차림새와 같다. 서양 역시 이러하다. 그것은 바로 그 천국 세계의 이런 차림새이다. 사람은 바로 이러하다. 물론 지금 이 유행하는 옷은 모두 새로운 디자인이다. 사실 현대인이 입은 옷은 가장 좋지 못하고 아름답지 못하다.

왜 백인 세계에는 불교가 없는가? 동양인의 세계에는 기독교가 없는가? 엄격하게 말하면 없다. 나의 기억으로는 『성경』 혹은 이런 유의 책에서 당시 여호와(耶和華)와 예수는 모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즉 너희는 동쪽으로 가지 말라. 말이 더 있는데, 나는 이 한 구절만 기억한다. 너희는 동쪽으로 가지 말라. 그의 제자들에게 동쪽으로 전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그의 제자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원정군(遠征軍)을 따라 동양으로 왔다. 이 때문에 한 가지 문제가 나타났다. 인종(人種), 세계의 인종을 뒤섞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지금 인종이 뒤섞이면서 한 가지 아주 심각한 문제를 가져왔다. 뒤섞인 후 위와의 대응관계가 없어졌으며 그는 뿌리를 잃어버렸다. 뒤섞인 인종은 뿌리를 잃는다. 그렇다면 천국 세계에 그를 책임질 사람이 없는 것과 같은데,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며 어디에서도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당신이 보라. 이 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연결된 곳은 과거 사막이고 무인(無人) 지역으로, 교통 도구가 발달하지 않았을 때에는 건너오기가 아주 어려웠다. 현대화 도구의 진보에 따라 이는 모두 타파되었다. 그러므로 인종(人種)은 갈수록 더욱 뒤섞일 것으로, 이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더 말하지 않겠다. 즉, 말하자면, 위에서는 이런 인종을 승인하지 않는다.

내가 방금 말한 문제는 인종과 위의 대응관계인데, 위에 있는 이 백인(白人)으로 말하자면, 이 세계에서, 이 우주에서, 백인이 차지한 것은 이 우주의 한 작은 부분, 아주 작은 한 부분으로서, 그것이 바로 그의 천국 세계이다. 그러나 이 황인종과 이 부처의 세계, 도(道)의 세계는 대단히 많은 것으로 전반 우주 중에 거의 모두 가득 차 있다. 이 여래 부처는 갠지스 강의 모래와도 같이 많으며 대단히 많고 대단히 크다. 황인종과 같은 이런 사람의 형상이 이 우주 중에는 특별하게 많다. 그러므로 상하(上下)의 인종은 대응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너희는 동쪽을 향하여 전하지 말라고 한 뜻은, 그들은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예수는 동쪽으로 전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나 역시 예수의 천국 속에는 동양인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아주 슬프다! 근대에 와서 사람들은 모두 그의 주(主)의 말씀마저도 듣지 않는다. 동양사람 역시 부처의 말씀을 듣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러한 일을 난잡하게 하였다. 나는 또 부처의 세계 속에 이전에는 백인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전하는 이것을 왜 서양 사람에게 전하고 있는가? 왜냐하면, 내가 전하고 있는 것은 우주의 이치이며 전반 우주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무릇 나의 이 대법에서 수련하는 백인이 장래에 수련 성취 하면 그의 신체 형태와 그의 수련형식은 모두 예수 천국 사람의 그러한 형태와 같게 되는 것으로, 그가 수련 성취하면 그렇게 된다. 그러나 황인종이 수련 성취 하면 부처 이쪽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양쪽 사람을 모두 제도할 수 있다. 왜냐하면, 전하는 이 법이 대단히 크기 때문이다. 내가 또 당신에게 알려주지만,…… 여태껏 이렇게 큰 문을 열어놓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역시 원인이 있다.

제자: 사부님, 혼혈아는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방금 나는 혼혈아의 일을 말했는데 천기(天機)를 인류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찌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한 가지 더욱 큰일을 했는데 혼혈한 사람도 제도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한 시기에서만 내가 그를 제도할 수 있다. 비록 동양인과 서양인이 모두 지구에 있으나 동서양은 격리된 것으로 사람은 모르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동양인이 말하는 무슨 ‘구(九)’는 이 음이 좋은바, 지구(持久)적이라는 것이고, ‘팔(八)’이란 이 음은 ‘발(發)’로, 부자가 된다는 것인데, 확실히 조그마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동양에서 사용되고 있는 무슨 풍수를 본다든가, 지리를 본다든가 하는 등등 이런 것을 서양에 가져가면 맞지 않고 소용없으며 백인에게는 소용이 없다. 또 백인이 말하는 그 무슨 별자리라든가, 무슨 현상이라든가 하는 것이 동양인에게는 역시 소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소용이 있다고 여기는데 그것은 당신이 소용이 있다고 여긴 것이지, 사실은 소용이 없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백인의 생물권, 그 속에는 그들 공간을 구성하는 특수물질 요소가 존재하며, 동양인의 생물권 속에는 동양인의 이 생명을 구성하는 특수한 물질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명구성 중에는 이러한 것이 관통되고 있다. 그러므로 양쪽은 같지 않다. 사람이 혼혈한 후에 당신은 그가 낳은 아이가 혼혈아임을 보는데, 그러나 이 아이의 생명 중간에는 틈이 있으며, 갈라놓으면 그는 신체(機體)와 이지(理智)가 온전하지 못하고 몸이 온전하지 못한 사람으로 된다. 현대의 과학은 모두 알고 있는바 세대가 내려갈수록 못해진다. 그러므로 그는 이런 상태를 조성하게 된다. 물론 이 사람이 수련하면 나는 해줄 수 있으며 처리할 수 있다. 수련하지 않는 속인은 함부로 해줄 수 없다.

제자: 연공하면서 충(沖)을 할 때, 손바닥이 더워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어떠한 공법도 다 이러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공할 때 저는 마치 보살인 것처럼 유아독존(唯我獨尊)하다고 느끼는데 맞습니까?

사부: 연공할 때 어떤 의념도 가하지 말아야 한다. 밀종은 자신이 바로 부처라고 하면서 수련한다. 그는 본래 아닌데, 그의 육체가 변했는가? 변하지 않았다. 수련 성취되어 장래에 변하는 것은 누구인가? 副元神(푸왠선)이다. 나는 이 법을 전할 때 내가 제도하는 것은 主元神(주왠선)이라고 이미 당신에게 알려주었다. 그렇다면 당신의 副元神(푸왠선)이 수련 성취되었어도 당신은 마찬가지로 육도(六道) 중에서 윤회(輪迴)하게 된다. 두 생명이 갈라질 때 당신은 아무것도 모른다. 손바닥이 더워짐은 정상이다.

제자: 대법(大法)을 수련함에 조금도 의념을 가하지 말아야 합니까?

사부: 어떠한 의념활동도 없다. 어떠한 의념도 다 집착이다.

제자: 두 가지 문제입니다. 하나는 사부님께서 방금 말씀하신 동양인과 서양인의 문제인데, 가령 이전에 많은 사람이 원래 동양인이었으나 전세(轉世)하여 다시 태어날 때 서양인으로 되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그건 상관없다. 여기에 두 가지 상황이 있다. 만약 그가 목적이 있게 온 것이 아니라면 그는 이 신체의 변화에 따라야 한다. 우리가 변화시키는 사람은 이 사람이다. 만약 목적 있게 온 사람이라면 그것은 별도로 말해야 하며 그것은 다른 상황이다.

그 밖에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법을 선전할 때에도 방법에 주의해야 한다. 그가 흥미를 느껴 배운다면 당신 역시 공덕을 쌓는 것이며 이 역시 공덕무량(功德無量)한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다른 사람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데 당신이 꼭 배우라고 권하며 다른 사람을 끌고 와서 배우게 한다면 나는 좋지 않다고 말한다. 그가 부처수련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부처도 그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사람이 무엇을 얻으려 하고 무엇을 구하려 하는 것은 사람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착하도록 권하고 착하도록 권하는 것이라, 당신은 그에게 알려줄 수 있지만, 억지로 잡아끌어서는 안 된다. 이 점을 여러분에게 알려준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배울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밖에 우리 장래의 보도원, 혹은 책임자는 일할 때 행정적인 수단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이므로 법으로 설득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모두 법을 배우고 있으므로 보도원이 어느 점을 잘하지 못했고 어느 점에 맞지 않게 했다면, 수련생은 보고 나서 당신의 心性(씬씽)에 어떠어떠한 문제가 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잘못한 일을 여러분은 따라 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 사람이 모두 법을 배우고 있기 때문에 당신 자신의 관념에 근거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법의 요구에 따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당신에 대해서도 역시 이렇게 대한다. 당신이 배우려면 배우고 배우지 않으려면 가도록 하라. 우리는 어떤 사람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나는 그만 배우겠다고 한다면,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고 당신이 배우려 하고 수련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당신에 대해 책임지며 보증하고 할 수 있다. 형식은 느슨하지만, 부처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렇게 크고 엄숙한 법에 조그마한 편차라도 생기게 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큰 것을 사람에게 전해 준 적이 여태껏 없었다. 당신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오게 되었으며 마치 다른 사람이 알려줘서 오게 된 것으로 여길 것이다.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인연이 있는 것이며 어느 때에 이런 기회와 연분을 이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런 까닭 없이 온 사람은 아주 적다. 나는 여러분이 문제를 더 제기해도 별다른 것이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묻고자 하는 것은 법 안에서 모두 해답을 얻을 수 있다.

제자: 수련의 불이법문(不二法門) 문제입니다. 제 생각에 어떤 사람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운다면 다른 것을 섞어서 배울 수도 있고, 또 다른 일부 전통적인 수술(數術)의 것도 있을 것입니다만…….

사부: 부처수련은 하나의 엄숙한 문제다. 당신이 주역(周易), 팔괘(八卦)를 연구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다. 내 생각에는 수련시간이 제한돼 있으므로 만일 당신이 그 시간에 이 法輪(파룬)을 명백하게 연구한다면 너무나도 대단하다. 그 무엇도 그보다 크지 못하다. 바로 지금의 속인사회가 알고 있는 팔괘의 이치와 많은 수술(數術)의 것들은 은하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이 우주가 크기로 얼마만큼이나 큰지 당신은 모르고 있다. 3천 개의 우리 이러한 우주가 한 개의 더욱 큰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3천 개의 더욱 큰 범위의 우주가 한 개의 더욱 큰 범위의 우주를 구성하고 있다. 그 속의 신(神), 부처는 많기가 부지기수이다. 그 은하계가 다 무엇인가? 아주 작다. 대법을 배우는 사람,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렇듯 큰 법을 당신에게 전해 주었기에 나는 수련인이 그런 일에 정력을 소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그것을 전공으로 배우는 사람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속인 중의 학문이므로, 그럼 당신은 배우도록 하라. 당신이 취미로 배우겠다면 내 생각에 가장 좋기는 이 마음을 거두도록 하라! 나는 당신을 위해 책임져야 하는바, 부처수련은 엄숙하다. 그렇다면 당신은 가장 좋기에는 당신의 정력을 법을 연구하는 데에 쓰도록 하라. 당신은 끝없는 득을 얻을 텐데 어떤 학문도 모두 비교할 바가 못 된다.

속인 중에서 신(神)이요, 귀신(鬼)이요 하는 짓을 한다면 그것은 더욱 마땅치 않다고 나는 말한다. 왜냐하면, 그런 저령(低靈)적인 것은 모두 귀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이러한 것을 구하는데, 우리 이 불법과 그야말로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또한, 그것은 모두 사(邪)한 것으로 귀신이지 않은가. 또한, 이 점치는 것에 대해 나는 책에서 이미 이 문제를 상세하게 말한 적이 있다. 수련이란 엄숙한 문제이다. 한 사람에게 에너지가 있을 때 그가 한 말은 그 일을 고정할 수 있다. 속인의 일은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당신이 남에게 이렇다고 봐주며, 당신이 말을 하고, 말한 대로 되었다면, 당신은 나쁜 일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더욱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하는데 나쁜 일을 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니다. 내가 신체를 청리해 줌은 당신이 수련하려는 것을 보았기에 해준 것이다. 만일 당신이 수련하려 한다면 당신은 이러한 것을 내려놓고 아주 순정(純淨)하게, 아주 깨끗하게 수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제자: 저는 사상부담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이렇듯 좋은 연분이 있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배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2권에서 말한 것을 보았는데 이 한 세(一世)에 수련 성취하지 못하면 제2세에 이어서 수련하겠다고 맹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진정한 목적은 수련하여 원만(圓滿)함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나이가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비록 우리 이 공이 수련됨이 아주 빠르다 하더라도 그의 남은 생이 수련함에 넉넉한가, 넉넉하지 않은가? 엄격히 말해서 어떤 사람이든지 다 넉넉하다. 연령이 얼마나 많아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는데, 우리 일반 사람은 잘 파악하지 못한다. 당신은 입으로는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당신이 그렇게 높은 경지로 수련되지 못했고 마음이 그렇게 높은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당신은 파악하지 못한다. 우리 이 공은 성명쌍수(性命雙修)로서 한편으로는 수련하고, 한편으로는 당신의 신체를 개변시키며 당신의 생명을 연장한다. 성명쌍수라, 연마하는 한편 연장하고, 연마하는 한편 연장하는 것으로, 이론적으로 연령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라도 엄격히 말하면 모두 시간이 넉넉하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는데, 무릇 연장하여 온 생명은 백 분의 백 수련하는 데에 써야 하는 것으로 속인 중의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럼 그가 또 자신의 생명이 연장되어 온 것임을 모르고 그가 또 파악하지 못해 백 분의 백 연공인의 요구에 따라 하지 못할 경우, 그는 수시로 이 세상을 뜰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이 직면한 문제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정말로 수련 성취하지 못하고 정진(精進)하지 못했다면 세 가지 길뿐이다. 하나는 내세(來世)에 이어서 수련하는 것이다. 나의 법신이 지켜볼 것인데, 전생(轉生)하는 것마저 지켜보며 어느 집에 전생해야만 법을 얻을 수 있는지도 모두 배치해 준다. 또 하나는, 당신이 더는 수련하고 싶지 않고 또한, 인류가 너무나도 고생스럽기에 인류에 머무르고 싶지도 않다면 어느 한 층으로 수련된 그 층으로 간다. 당신이 삼계(三界)를 벗어났다면 삼계 밖의 어느 한 층 하늘에서 중생이 될 것이고 당신이 삼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삼계 내의 어느 한 층 하늘에서 천인(天人)으로 된다. 하지만 삼계 내에서는 500년, 300년 같지 않은 시간을 거쳐 또 내려와 윤회해야 하는 것으로, 다만 거기에서 몇 백 년 복을 누림에 불과할 뿐이다. 이것이 한 가지 문제이다.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은 확실히 아주 괜찮게 수련했다. 하지만 법에 대한 이해로 말미암아 아직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혹은 일부 특수한 공헌을 한 이런 사람은 法輪世界(파룬쓰제)에가서 法輪世界(파룬쓰제)의 중생이 될 수 있다. 역시 삼계 밖이라 윤회할 필요가 없다. 그건 물론 좋은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이 비교적 적으며 요구도 비교적 엄격하다. 하지만 그는 부처가 아니며 또 나한도 아니고 또 보살도 아닌 것으로, 그는 法輪世界(파룬쓰제)의 중생이며 백성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바로 이러하다. 사실 법을 얻었으므로 부처 수련의 기회와 인연은 이미 심어졌다.

제자: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의 층차(層次)를 어떻게 분별합니까?

사부: 나는 이렇게 말했다. 상사(上士)가 도(道)를 들으매 근면히 행한다고 한 것은 내가 노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중사(中士)가 도(道)를 들으매 있는 듯 없는 듯하며, 하사(下士)가 도(道)를 들으매 대소(大笑)하도다. 무슨 뜻인가? 상사(上士)가 도를 듣는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이 수련에 대한 것을 듣기만 하면 즉시 수련하려고 하며 또 믿는데, 이러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박차고 일어나서 끝까지 수련하는데 이는 상사(上士)에 속하며 상사가 도를 들으매 근면히 행하는 것이다. 중사가 도를 들으매 있는 듯 없는 듯하다. 무슨 뜻인가? 모두 와서 배우니 우리도 따라서 배우자. 아무튼, 아주 좋다고 느낀다. 그러나 바쁘거나 속인 중의 골치 아픈 일들이 생기면 잊어버린다. 어쨌든 다른 사람들도 배우지 않으니 우리도 배우지 말자. 배워도 되고 배우지 않아도 되는 이것을 중사(中士)가 도(道)를 들으매 있는 듯, 없는 듯하다 한다. 아마 수련 성취할 수도 있고 수련 성취 못 할 수도 있다. 수련 성취하든, 수련 성취하지 못하든 모두 자신이 결정한다. 하사(下士)가 도를 들으매 대소(大笑)하도다. 이 하사가 도(道)를 들으면, 수련은 무슨, 하하 웃으며 모두 미신이라고 하면서 믿지 않는다. 물론 그는 더욱 수련할 수 없으며 바로 이러하다. 매 사람이 얼마나 높게 수련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면, 내 생각에는 자신의 그 마음이 얼마나 크게 감당해 낼 수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 이 문을 나서서, 조그마한 번거로움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당신은 견뎌내지 못한다. 내가 여기에서 말하면 여러분은 모두 이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정법(正法)수련이라, 가진 에너지는 모두 자비롭고 상화하므로 여러분은 여기에 앉아서 모두 아주 편안함을 느끼며 내가 말하는 것을 듣기 원한다. 장래에 당신들이 수련해도 이러하다. 정법수련은 역시 이러하다. 그러나 당신이 이 문만 나서면 당신이 아니며 머릿속에는 속인이 집착하는 것들이 다 올라온다. 또한, 아주 강렬하여 수련이고 뭐고 다 잊어버린다면 내 생각에는 안 된다.

제자: 혼혈아의 상황을 한 번 더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이 혼혈아를 나는 이미 말했다. 나는 다만 이 말법 시기에 나타난 현상을 말했을 뿐이다. 만약 당신이 혼혈아라면 물론 이것은 당신을 원망할 것이 아니며 당신 부모를 원망할 수도 없다. 아무튼, 인류가 이러한 혼란한 현상을 조성하여 이러한 상태가 나타나게 되었다. 황인종과 백인종, 또 흑인종도 있는데 하늘에는 대응되는 민족이 있다. 그렇다면 그의 그 민족이 아니고 그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는 확실히 상관하지 않는데 이것은 진짜 사실이다. 내가 여기서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은 모두 천기(天機)이다. 혼혈아는 모두 말법 시기에 나타난 것으로 사람을 원망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모두 물결에 따라 흐르는 것이며 누구도 진상을 모르고 이렇게 지나왔다. 당신이 수련하려 하면 나는 방법이 있다. 당신이 어느 천국에 가는지를 말하자면, 우리는 당신의 상황을 보아야 하며 어느 한 부분이 남겨진 것이 많다면 나는 당신에게 더 많이 동화(同化)되도록 해준다. 아무튼, 당신은 수련만 하도록 하고 이러한 일을 상관하지 말라. 법을 얻었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예전에 설법하면서 이것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일을 조만간 사람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제자: 인류가 모두 소식(吃素)한다면 그것은 아주 좋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 안 된다. 그것은 당신이 생각한 것이다. 하늘에서 사람에게 사람이 생활하는 표준을 규정했는데 오직 이래야만 비로소 사람이다. 왜냐하면, 육식은 사람 신체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데에 채소보다 낫기 때문인데, 이 한 점은 확실하다. 하지만 수련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제자: 한 가지 여쭙겠습니다. 우리가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정(靜)에 대한 구체적 표준이 있습니까?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이 늘 자신을 생각한다면 수련에서 입정(入定)에 영향을 줍니까?

사부: 主元神(주왠선)과 당신의 입정(入定), 이것은 별개의 일이다. 처음에는 조용해질 수 없다. 사람은 왜 조용해지지 못하는가? 사람의 집착심이 너무나도 많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의 장사라든가, 당신의 공부라든가, 당신의 사업이라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이라든가, 당신의 아이가 병이 있다든가, 당신의 부모를 돌볼 사람이 없다든가, 세간(世間)의 일을 당신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없으며 어느 것이든 당신 머릿속에서 차지한 비중이 모두 크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은 당신이 조용해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거기에 앉아서 당신은 당신이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스스로 뒤집혀 나온다. 그러므로 어떤 방법으로든 다 조용해질 수 없다. 내가 책에서 말한 것처럼, 당신은 입으로 불호(佛號)를 외우면 조용해질 수 있고, 마음을 지켜보고 있으면 조용해질 수 있고, 혹은 셈을 세게 되면 조용해질 수 있다고 하지만, 모두 조용해지지 못한다. 그것은 일종 수단으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오직 당신이 집착심, 속인 중의 집착심을 점차 담담하게 내려놓아야만 한다. 담담하게 내려놓았을 때 당신은 자연히 조용해질 수 있다. 당신이 정말로 조용해질 수 있을 때 당신은 이미 아주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면 화상(和尙)들처럼 아무것도 다 가지지 않으며 물질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아니다. 우리는 최대한 속인에 부합하여 수련한다. 당신이 속인사회 중에 있기 때문에 당신은 특수할 수 없으며 표면적으로 당신은 정상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최대한 속인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 결혼해야 한다면 젊은 사람은 결혼해야 하고, 당신이 무슨 장사를 하든지, 벼슬을 하든지, 이는 모두 영향이 없다. 우리 한 가지 이치를 말해 보자. 사람은 속인사회 중의 매 한 계층에 모두 그것의 모순이 있다. 우리는 종교의 틀을 던져버린다. 도가는 그의 태극을 벗어나지 못하고 불교 역시 그의 이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적 설법을 버리며 우리는 전반 우주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당신이 어느 한 계층의 사람이든지, 당신이 어떠한 일, 어떠한 사업을 하든지 모두 수련할 수 있음을 발견했다. 무엇 때문인가? 매우 평범한 노동자인 그는 먹고사는 것을 위하여, 일부 사람과 사람 사이, 그와 사업 사이에서 모순이 발생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모순 중에서 그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사무직 근로자, 즉 말해서 회사원인 그는 자기의 계층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또 이익적인 쟁탈이 생기는 일이 있을 것이다. 여러 면으로 되는 이 모순 속에서 그가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다. 사장이 된 그는 어떻게 그의 이 계층에서 장사를 하며 사장과 사장 사이, 사람과 사람의 마찰 중에서 그가 어떻게 좋은 사람으로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역시 그의 모순이 있다. 대통령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도 그는 이 나라를 위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데 그에게는 뜻대로 되는 것이 있고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으며, 일을 성사한 것이 있는가 하면 성사하지 못한 것도 있으며 나라와 나라 사이에 역시 모순이 있다. 그러므로 그는 노심초사할 일이 있다. 사람이 사는 것이 바로 이러하다. 그러므로 매 하나의 경지 중에서 당신은 모두 속세를 벗어날 수 없고 사람을 떠날 수 없으며 사회를 떠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모두 모순이 존재하게 된다. 당신이 이런 모순 속에서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당신이 좋은 사람으로 될 수 있다면 당신은 속인을 초월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이 이치이다. 물질적으로 당신의 어떤 것을 제거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그 마음을 제거해 버린다. 당신이 장사를 크게 해도 상관없으며 수련에 영향 주지도 않는다. 당신이 장사를 크게 한다면 물론 돈은 많이 벌겠지만, 마음속으로는 금전을 목숨으로 여기지 않는다. 당신은 파리대가리만 한 작은 이익을 위해 집착하기 그지없는 이러한 것이 없다. 당신의 집을 금으로 지었다 해도 당신은 마음에 두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여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수련인에게 요구하는 표준이다. 당신이 얼마나 큰 벼슬을 하든지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요구하는 수련인의 표준이다. 이렇지 않은가? 우리는 종교를 벗어나 이것을 말하며 우리는 그것의 실질을 말한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모두 수련할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속인 중의 수련은 바로 직접 사람의 마음을 다스려 연마(魔煉)하는 것이다. 왜 내가 진정으로 당신을 제도한다고 말하는가? 바로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이 자신을 제고하고, 진정으로 사회의 압력을 감당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자신이 자신을 제고하기 때문에 이 공은 마땅히 당신에게 주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당신을 제도하는 것이다.

副元神(푸왠선)도 공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당신의 호법(護法)이며 그도 수련 성취되어 당신을 따라다닐 수 있다. 당신은 내가 오늘 이런 일을 말했다고만 보지 말라. 당신들은 아직 그렇듯 높게 인식하지 못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다른 수련법을 말하며, 이 공(功)이 어떻고 저 공이 어떻다고 하는데, 그는 아직도 내가 방금 한 이 말의 함의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체 수련법은 모두 당신의 副元神(푸왠선)을 제도했지 당신을 제도하지 않았다. 당신을 제도하지 않았다! 나는 한 가지 천고의 수수께끼를 밝혀줬다! 나는 무척 큰 곤란을 거쳐서야 비로소 이 일을 말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당신이 아무리 수련해도 당신을 제도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수련한 것은 누구인가? 당신이 한평생 수련했어도 당신은 여전히 육도윤회(六道輪迴)로 들어가야 하며 당신은 내세에 무엇으로 전생 될지 모른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가련하지 않은가! 왜 그런가? 과거에 종교든 다른 수련법이든, 이 主元神(주왠선)을 제도하지 않았다. 그들은 主元神(주왠선)은 제도하기가 너무나도 힘들고 너무나도 미혹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명백해졌다고 느끼겠지만, 문만 나서면 또 제멋대로인지라, 그는 또 속인의 현실이익 중에 빠져들어 서로 쟁탈하는데 보증하고 이러하다. 그러므로 신(神)들은 사람을 제도하기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제도하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의 副元神(푸왠선) 역시 당신과 같은 이름을 부르며 동시에 어머니 뱃속에서 나왔고 모두 이 신체를 좌우지하고 있다. 다만 당신은 그의 존재를 모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이 제도한 것은 副元神(푸왠선)이며, 당신에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副元神(푸왠선)에게 말해 준 것이다. 당신은 때로 무의식중에 어떤 말을 하지만, 당신의 대뇌가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가부좌하고 있는데 가부좌만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채 앉기만 하면 몇 시간씩 앉는다. 그는 출정(出定)하면서 매우 기뻐한다. 나는 참말로 잘 연마했다. 앉기만 하면 몇 시간이고 정(定)한 채로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슬프다! 당신이 연공했는가? 당신은 알고 있는가? 연마한 것은 모두 다른 사람이다.

과거 어떤 도가는 당신의 主元神(주왠선)을 마취하고 副元神(푸왠선)이 수련할 수 있게 하려고 당신에게 술을 마시게 했다. 도가에는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매우 많다. 자신을 마취시킬 정도로 마셔서 아무것도 모르고 쿨쿨 잠을 자는데 副元神(푸왠선)을 데리고 연공했다. 내가 말한 것은 천고의 수수께끼이므로 내가 여기에서 이렇게 간단히 말했다고만 보지 말라. 그들은 무슨 이런 방법 저런 방법을 다 써 봐도 사람은 수련 성취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았다. 당신의 몸에서 하나를 수련해 냈기에 당신 역시 德(더)를 쌓은 것이 되고 고생을 겪었으며 필경 당신의 청춘을 종교에 던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내세(來世)에 당신으로 하여금 하나의 副元神(푸왠선)으로 전생하게 하는가? 아마 그는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할 수 있으나 내가 보기에는 이 기회가 아주 적다. 그런 다음 다시금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하게 한다? 이런 경우 역시 너무나도 적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있다. 어떻게 복을 받는가? 큰 벼슬을 얻고 큰 부자가 되며 큰 장사를 한다. 내세(來世)는 바로 이렇게 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필경 그의 일생에 德(더)를 쌓았고 복을 쌓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자리에 앉은 누구도 이렇게 되려고 생각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매번 내가 이 일을 말한 다음에도 사람들은 나에게 이 공(功)이 어떠한가, 저 공이 어떠한가, 저 교(教)가 어떠한가, 이 교가 어떠한가 묻는데, 나는 그의 깨달음이 너무나도 낮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은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의 그 특점을 보라. 그 위에 모두 있으나 사람들은 주의하지 않으며 그를 아주 평범한 한마디 말로 삼아 말하고 지나쳐 버린다. 그것은 우주의 규칙인바 이전에는 바로 그러했다.

아마 당신은 이 장(場)에서 나간 후 신체가 아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가 있다. 당신이 수련함에 따라 당신의 신체는 다시 불편해질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이 생생세세(生生世世)에 모두 업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생일세(一生一世)의 것을 일시에 밀어낼 수 없다. 일시에 밀어낸다면 사람은 즉시 죽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업력을 점차 밖으로 배출하며 신체 안에서 배출시킨다. 그러므로 당신은 한동안 지나서 신체가 아주 불편함을 느끼며 병을 얻은 것이 아닌가?! 라고 여길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은 병이 아니다. 하지만 표현됨은 몹시 아프며 어떤 것은 아주 심하여 겉보기에 아주 심각하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알고 있어 불편하면 기뻐한다. 사부님께서 나를 책임져주고 나의 병을 없애주며 나의 업을 제거해 주고 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불편하지 않고 신체적으로 감각이 없으면 그는 도리어 대단히 조급해한다. 사부님께서 나를 책임지지 않는 것이 아닌가, 왜 업을 없애지 않는가? 하지만 흔히 일부 신(新) 수련생은 신체가 불편하기만 하면 그는 이것이 병이라고 생각하여 약을 먹어야 하겠다고 한다. 그는 연공하는 한편 약을 먹으면 더욱 좋다고 여긴다. 우리는 한 가지 이치를 보았는데, 병원은 업을 소멸할 수 없으며 의사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 위덕(威德)이 없으며 그는 속인 중의 기술자로서 그는 당신에게, 다만 이 표면적인 고통을 없애주고, 이 병을 당신 심층(深層) 중에 남겨줄 따름이다. 약을 먹는 것은 신체 속으로 내리누르는 것으로 쌓아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고통스럽지 않지만, 신체의 심층에 누적된다. 수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종양이 생겼으면 이 종양을 떼어버린다. 그는 다만 표면적인 물질을 떼어버렸을 뿐이며 병이 생기는 진정한 원인은 다른 공간 속에 있기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주 심한 업력병(業力病), 그것은 또 재발할 수 있다. 어떤 것은 치료하여 나은 것 같고 금생에 재발하지 않는다 해도 내세(來世)에 그것이 다시 찾아온다. 그것은 심층(深層) 속에 눌려 있다가도 조만간 되돌아 나오게 마련이다. 한 사람의 업력은 어쨌든 갚아야 하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우리가 여기서 하는 것은 당신 생명의 본원(本源)에서부터 당신의 더러운 것을 모두 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었다. 오로지 수련해야만 해줄 수 있으며 우리는 당신에게 이 일을 해준다. 하지만 여러분은 반드시 心性(씬씽)을 파악해야 하며 신체가 불편하기만 하면 ‘아이고, 나는 또 병에 걸렸구나.’라고 해서는 안 된다. 당신이 병에 걸렸다면 약을 먹도록 하고 우리도 책임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련은 깨달음에 달린 것이기 때문인데, 어떠한 강제적인 규정도 없다. 우리는 당신이 아플 때 약을 먹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으며 그런 적이 없다.

일부 사람은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하고 연공만 할 뿐 법을 배우지도 않으며 어떤 짓이든 다 한다. 그가 연공을 했다고만 보지 말라. 나의 법신은 그를 책임지지 않는다. 책임지지 않으면 그는 바로 속인이고 병을 얻게 된다. 만약 우리가 당신에게 약을 먹지 못하게 정한다면, 당신은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대할 줄 모르고, 아직도 속인이라 때가 되면 병을 얻게 되는데, 당신은 리훙쯔(李洪志)가 나보고 약을 먹지 말라 했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약을 먹고, 먹지 않음을 말하지 않는다. 당신 자신이 파악해야 한다. 이는 당신에 대한 검증인데 당신이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병이 있게 마련이다. 바로 이런 이치이다. 우리는 다만 이치를 말할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후 당신이 수련하려고 하면 당신의 신체가 편치 않을 수 있는데, 아마 당신 전생전세(前生前世)의 업을 밀어내는 것일 수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은 전생할 때 몇 십 생, 몇 십 세(世)라든가, 백여 세(世)를 전생했고, 매생매세(每生每世)에 모두 아주 많은 병이 있었음을 보았는데, 당신에게서 모두 제거해 주어야 한다. 어쨌든 당신에게서 다 제거해 주어야 한다. 다른 공간에서 당신에게서 없애 버리는 것이 더욱 많으며 반드시 당신에게서 일부분을 없애줘야 한다. 하지만 다른 공간 속에서 전부 다 없애버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신으로 하여금 고통을 좀 겪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감당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이 나쁜 일을 하고 갚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당신이 수련 성취된 그 날 당신이 부처의 위치에 놓였다 해도, 당신은 여기에 있을 자격이 없음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남도 역시 당신이 어떻게 올라온 것인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러므로 당신은 일부분 고통을 감당해야 한다. 감당하는 동시에 당신의 오성(悟性)은 제고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병으로 여기겠는가? 아니면 수련인이 업을 없애는 것으로 여기겠는가?

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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