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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법회설법

 

李 洪 志
(1998년 9월 4~5일, 제네바에서)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 이 자리에는 방금 싱가포르 법회에서 바삐 온 이들이 있고 또 다른 국가와 지역에서 온 이들도 있으며, 또 어떤 이는 신(新)수련생이다. 우리가 법회를 여는 주목적은 법회를 통해 여러분이 수련 중에서 서로 살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찾아내도록 함으로써 여러분이 공동으로 제고되게 하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일 자체가 또한 법을 널리 알리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체 일들은 모두 우리 여러분의 수련과 제고를 위한 것이지 절대 형식을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장래에 어떠한 시기에 법회를 열든지 간에 모두 이런 원칙에 따라 진정으로 수련생들이 제고할 수 있게, 실속 있게 해야 만이 비로소 이런 모임을 열 수 있다. 법회를 자주 열고 많이 열면 일종의 서로 비교하는 마음이 일어나기 쉬워, 당신이 이렇게 열면, 나는 저렇게 여는 사람의 심리가 작용할 수 있는데 이러면 안 된다. 우리는 모두 법에서부터 출발하여 완전히 수련생의 수련을 위해 개최하는 이런 모임이어야 한다.

우리 이 자리에는 노수련생들이 비교적 많은데, 여러분을 만나보니 아주 기쁘다. 우리는 확실히 수련이라는 이 길에서 돌비맹진(突飛猛進)하며 자신을 제고하고 있다. 당신들의 변화를 당신들 자신이 지금은 잠시 볼 수 없지만, 가져온 변화는 아주 크다. 이 점은 머지않은 장래에 곧 실증되어 당신들이 볼 수 있을 것이므로 나는 아주 기쁘다.

당신들은 이 기간 동안 수련과 내가 법회에서 말한 법을 듣고, 또 『전법륜』에 대한 끊임없고 깊은 학습을 통하여 매우 다양한 진상이 나타남을 볼 수 있었으며 법에 대하여 다양하고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시에 나는 또 여러분에게 당신들의 수련 과정과는 다른 우주구조에 대한 인식을 진일보로 말하려 한다. 먼저 우주의 또 다른 일종 구조를 말하겠다. 한 가지 문제를 먼저 말하겠는데, 우주는 사실 바로 법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우주를 말하는 목적은 절대 지금의 과학을 얼마나 높은 경지에 도달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며, 또한 당신들에게 일종의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여러분이 수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법과 상보상성(相輔相成)하기 때문인데, 당신들로 하여금 수련하여 부동한 경지(境界)로 가게 하기 위한 목적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당신이 태어난 부동한 경지로 돌아가야 하며, 우주의 부동한 층차, 부동한 경지로 돌아가야 한다. 이 우주가 얼마만큼 크다면 이 법도 그만큼 크다. 당신들의 사상으로는 아직 알 수 없는 개념이다. 나는 오늘 다른 각도에서 말하겠는데, 당신들의 사상이 따라올 수 있는지 좀 보겠다.

나는 먼저 이 우주를 말하겠다. 다시 말해서 우주를 말하는 것은 실은 바로 물질을 말하는 것으로서, 물질에 대한 인식이다. 현대 과학의 물질에 대한 인식정도가 얼마나 높든지, 그것은 여전히 극히 천박한 것으로서 전체 우주와 전혀 비교가 안 되며, 비교할 방법이 없다.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나는 이 우주가 기본 입자로 구성(組成)되었다고 말한다. 기본 입자는 무엇으로 구성되었는가? 이것을 구체적으로 말해야겠다. 부동한 천체(天體)의 층차 이 개념에서(부동한 우주 층차를 말하는 것이 아님) 이 천체는 얼마나 큰가? 그중 한 층 천체의 범위는 바로 아주 넓다. 그러나 그것은 또 규칙적으로 평균 몇 개 층의 우주가 모여 구성된 한 층의 천체가 아니다. 대략 만여 개 층 또는 일 억여 개 층의 우주가 한 층의 천체를 구성하였다. 이 개념은 아주 큰 것이다. 그렇다면 매 한 층의 천체 그것은 불가사의하고 방대한 우주 범위이다.

사람이 우주의 개념을 말할 때는, 기본적으로 모두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몇몇 성계(星系)의 존재범위에서 말한다. 지금 과학이 관찰할 수 있는 이 범위가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소우주(小宇宙)이다. 나는 지구라는 이 기점에서 말하겠다. 이 소우주는, 우리 것과 같은 이렇게 큰 소우주 3천 개로, 제2층 우주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또 제2층 우주만큼 큰 범위의 우주 3천 개로 제3층 우주를 구성하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배수는 상당히 큰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 기점에서 발전시켜 말한 것이다. 그러나 지구처럼 이렇게 큰 입자는 이 우주 속에서 한 개에 그치지 않으며 우리 지구와 비슷하고 동등한 크기의 이런 입자는 우주 중 일체에 깔려 있어서 그 숫자를 계산할 방법이 없다. 내가 방금 말한 이 우주를 확대한 배수는 한 개 입자의 기점에 서서 말한 것으로 그렇다면 사실상 그것은 전반 천체에 깔려 있는바 일체의 일체 속에는 모두 이렇게 큰 입자가 있다. 그것은 모두 이렇게 전개된 체계가 있는바,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이 소우주 이 한 층은 인류로 놓고 말할 때는 이미 상당히, 상당히 큰 것이며 그 속의 부동한 크기의 성구(星球)의 입자가 얼마나 많은지는 계산할 방법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매우 높은 층차 중의 불(佛)・신(神)・도(道)는 일체를 통찰할 수 있지만, 그러나 누구도 먼지가 얼마나 많은지를 조사해 보는 이런 사상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성구는 방대한 천체 중에서 그것은 한 개 먼지처럼 우주 천체 속에 흩어져 떠돌고 있다.

이렇게 큰 우주 3천 개가 끊임없이 그것의 범위를 확대 전개하고 있는데, 그것의 체계가 끊임없이 확대 전개되어 대략 천여 개 층 부근에 이르면 제1층 천체, 이 체계 범위를 벗어난다. 그러나 이런 범위도 하나에 그치지 않고, 방대한 광우(曠宇) 속의 한 입자로 망망한 천체에 가득 널려 있다. 이 범위를 벗어나면 그것은 정체(整個)적으로 공(空) 상태를 형성한다. 어느 정도의 공(空)인가? 이 체계 이내의 어떠한 물질이든 들어오려고만 하면 그것은 바로 스스로 해체되는 것과 같다. 이 체계 범위 이내의 어떠한 물질이든, 그것은 모두 생명이 있고 특성이 있으며 사상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미시적인 공(空) 속에 들어가면 마치 이 입자는 이미 사상과 생명을 감당할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삽시간에 바로 해체된다. 다시 말해서 바로 어떠한 것이든 떨어져 내려가면 모두 해체된다. 이 개념을 이렇게 말하면 우리는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 공(空) 범위를 초월한 후 사실 또 다른 천체인 더욱 큰 범위의 천체가 있다. 그러나 이 경지 중의 생명은 한 걸음도 그곳으로 이동하여 갈 수 없는데, 더욱 미시적이고 더욱 미시적이며 또 더욱 미시적인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큰 범위 그곳에 이르면 그 천체의 물질과 생명의 개념은 전부 다르며, 물질의 개념도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이 천체 범위의 우주 층수는 부동(不同)하지만, 매 한 층의 천체는 모두 가장 미시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한 기본입자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우주 특성으로 조합되어 생긴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개념이 아주 복잡하고, 인간의 언어로써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당신들은 주의하여 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어느 한 층 천체의 가장 큰 과립 물질 역시 그 자체 체계의 무한한 미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이렇게 큰 한 층의 입자로 구성되는데, 이것을 횡향(橫向) 입자조합체계라고 한다. 즉 물질의 입자, 그것은 종향(縱向) 미시체계로 조합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그것 자신 또한 스스로 이루어진 한 체계로서 미시적인 것에서 더욱 큰 것으로, 더더욱 큰 물질로 조성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체계 매 한 층 크기가 다른 입자 자체도 모두 미시적인 물질로 조성된 한 체계이다. 하지만 이 체계 매 한 층, 크기가 다른 입자 역시 일체에 가득 깔려 있으므로, 그 크기가 다른 입자 사이 또한 수평적인 조합체계를 구성한다. 그렇다면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입자와 그것의 가장 큰 층의 입자 사이의 거리는 아주 멀고 먼 것이다.

그렇다면 최후의 가장 본원적인 물질은 무엇인가? 바로 물이다. 내가 말한 이 물은 우리 속인사회 중의 이 물이 아니다. 또한, 부동한 층차 중에 존재하는 강・하천・호수・바다의 물도 아니다. 이 물은 그 층차 천체(天體)의 일체 물질과 생명을 만든 것으로서 그것을 본원이라 말할 수도 있는데, 단지 그것을 본원이라 부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물은 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속인 공간의 이런 종류의 물과는 다른 개념이다. 정확히는 그것을 사수(死水)라고 불러야 하는데, 그것은 움직이지 않으며 완전히 정지부동(靜止不動)한 것으로 당신이 물건 하나를 던져 넣어도 그것은 어떠한 잔잔한 물결도 일지 않으며 물거품도 생기지 않는다.

이 물을 말함에 우선 인간 세상의 물을 말해 보자. 우리는 인류의 과학으로 예를 들 수 있다. 우리 속인사회 중에서, 여러분 알다시피 지금 과학자가 말한 유기물과 무기물은 사실상 단지 이 공간의 인식에 불과할 뿐이다. 물질은 보통 과학자가 말하는 나무・꽃・풀・식물・동물・사람을 포함한 표면, 이 공간의 물질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다. 이 공간 속의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이면 유기물로 간주한다. 사실 이것들은 모두 이 공간의 물로 조성된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 신체는 물이 90% 이상을 차지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 사람도 이 공간의 물로 구성되었다. 예전에 나는 물은 만사만물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단지 지금의 과학자들이 이 점까지 연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물질공간의 물로 채소를 길러 낼 수 있다. 그 채소를, 당신이 손으로 짜고, 짜고, 짜면 최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엽록소만 남는다. 그 엽록소를 특수 처리하면 최후에는 그 아무것도 없는, 모두 물이다. 바로 이 공간의 일체, 사람들이 생각하는 유기물질은 사실 모두 이 공간의 물에서 온 것으로 바로 물로 일체를 형성하였고 일체를 만들었다.

무기물질도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그것은 더욱 높은 층의 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과학자는 인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그것은 생명이 있다. 그것의 생명 존재형식과 지금의 과학이 인식하고 있는 것에는 실제로 상당히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은, 지금의 관념에 따라 발전해 나가면, 영원히 인식할 수 없다. 중국의 옛 수련이야기 중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그 신선은 능력이 아주 커서 돌덩이 하나를 가마 안에 던져 넣고 그것에서 물을 짜냈다고 한다. 듣기에는 우스갯소리 같지만 사실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이 우주가 구성한 전반 천체 범위 이내의 어떠한 물체든지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기점(基點)은 모두 물에서 온 것이다. 더욱 미시적인 물은 어떤 모양인가? 그렇다면 더더욱 미시적인 물 그것은 또 어떤 모양인가? 그것은 불가사의한 것으로 상상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말한 것은 여러분에게는 한 가지 개념에 불과하다.

내가 방금 말한 것은 부동한 층차의 입자에는 모두 가장 본원적이고 가장 본원적인 요소(因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입자 정체(整體)에는 종(縱向)적이고, 또 횡(橫向)적인 순서가 있다. 마치 우리가 지구 위에 있고, 얼마 얼마의 은하수가 한 우주를 구성하고, 얼마 얼마의 우주가 또 하나 더욱 큰 범위의 우주를 구성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우리는 지구가 기점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우리 사람이 여기에 있고 내가 여기에서 설법하기 때문에 나는 지구를 기점으로 하였다. 그러나 지구는 결코 이 우주 일체 물질의 기점이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보는 이 일체 물질을, 우리는 이것을 가장 물질적이라고 여긴다. 예전에 나는 설법할 때 여러분의 사상을 흩뜨리지 않기 위해 나도 그것을 가장 낮은 물질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사실 그것은 유일한 물질이라 할 수 없는 것으로서 당신은 그것을 가장 기본적인 물질이라 해도 되고, 우리가 이름을 바꿔서 불러도 되는바, 또 초물질(超物質)이 있고, 또 더욱 초물질, 더더욱 초물질이 있다…….

지구는 이 삼계(三界) 공간 중의 중심에 위치하는데, 종향과 횡향, 크고 작은 과립을 막론하고 그것은 중심에 있다. 그렇다면 그것에는 또 우리 이 지구보다 질량이 더욱 큰 이러한 물질이 존재하는데, 과거에 내가 말한 그런 질량이 아니다. 무슨 원자라거나, 무슨 원자핵을 구성한 그 질량은 아주 크다고 하는 이런 개념이 아니며 이런 것은 모두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 물질이다. 내가 말하는 것은 초물질이고, 전혀 인류 공간의 물질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과립에서나 표면구조 상태에서나 모두 이 공간의 물질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가장 큰 초물질의 기점은 바로 삼계의 변두리다. 그러면 가장 작은 물질의 기점 역시 마찬가지로 삼계의 변두리에 있다. 인류의 공간은 크고 작은 물질의 중간에 있는 것으로, 바로 인류가 인식하고 있는 물질의 기점이다. 그럼 만약 사람 이 층 공간의 일체를 물질이라고 부른다면, 삼계 내에서 인간 세상 물질보다 작은 것은 비물질(非物質)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고, 더욱 작으면 비비물질(非非物質)이 되는데, 삼계의 가장 작은 입자에 이르기까지이다. 예전에 내가 우주 중의 크고 작은 개념은 우리 속인이 인식하고 있는 것처럼 이런 크고 작은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천체우주 정체(整個) 역시 이러하다. 입자 그것은 모두 살아있고 생명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 우주 그것이 아무리 큰 범위일지라도 그것 역시 살아있다. 그러나 천체 범위 속에는 무수하고 무수한 입자가 있는데, 역시 하나하나가 모두 생명체로 존재한다. 이 우주에는 얼마나 많은 층의 하늘이 있겠는가? 그것은 얼마나 많은 층의 우주로 되어 있겠는가? 얼마나 많은 층의 천체가 있겠는가? 그 속의 어떤 생명이든 모두 이 우주가 얼마나 방대하고 복잡한지를 가늠할 수 없다. 내가 말한 천체 이 개념은 천만 층 이상의 우주로 구성된 것이지만 그것도 단지 이 무한한 우주 방대한 광체(曠體) 중에서 한 개 먼지에 불과하며, 또 아주 작은 한 입자에 불과하다. 만약 당신이 아주 멀고 먼 곳에 올라가 뒤돌아본다면 그것은 사람이 모래를 보는 것보다도 더욱 작을 것이고, 더욱 먼 곳에서 본다면 먼지보다 더욱 작을 것이며, 더욱 멀면 보이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방금 여러분에게 말하고 말하다 보니, 전반 우주는 마치 다 입자가 입자를 조성(組成)하고 입자가 입자를 조성하여 이렇게 구성(構成)된 것 같다. 사실 다시 더욱 광활한 데서 보면, 입자가 구성한 것이 아니다. 표현할 말이 없으므로 또 사람에게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나 사람의 사상은 언제나 한계가 있어 내가 입자가 입자를 조성했다고 이렇게 말하면 또 당신을 어떤 간단한 논리 속으로 인도하게 되는데, 사실 그런 것이 아니다. 우주의 구조, 그 복잡함은 사람의 언어로 정확히 말할 수 없고, 또 우리 공간을 떠나면 사상・시간・공간・생명형태, 일체가 모두 변하는데, 특히 시공이 다르다. 입자와 입자 사이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성구(星球)와 성구 사이에는 우리가 알기로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는 상당히 멀다. 그러나 우리 여러분은 아는가, 우리 신체・나무・공기・물 등등 이 일체는 모두 분자로 조성된 것임을. 그리고 분자도 한 층의 입자이지만, 이 층 입자는 별 바로 다음이다. 즉 별보다 낮은 가장 큰 입자가 바로 분자이다. 분자보다 낮은 가장 큰 입자는 바로 원자이다. 그렇다면 이 분자와 원자 사이의 거리를 우리 인간의 개념으로 보면, 그것의 거리는 상당히 가까워 거의 거리가 없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그 환경으로 들어간다면, 당신은 그것에게도 마찬가지로 그 공간의 시간이 있고 그 공간의 환경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데, 그것 역시 극히 광활(廣闊)하고 요활(遼闊)한 공간으로 매 한 층이 모두 이러하다. 우리는 분자와 별 사이에 서서 천체가 매우 크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이 만약 원자와 분자 사이에 서면, 당신은 그 천체가 이보다 더 크다고 생각할 것이다. 바로 당신이 그것의 시간과 공간 상태에 부합되어야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내가 방금 이 문제를 말한 것은 당신이 성구와 성구 사이는 거리가 아주 멀다고 보지만, 분자와 분자 사이는 우리 인간의 개념으로 아주 가깝다고 보는데, 실제로는 아주 먼 거리라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입자는 무수한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데, 우리 사람이나 각종 동물이나 각종 식물이나 나무를 포함하고, 시멘트나 강철이나 또 우리가 생존하는 이 공기를 포함한다. 나는 예전에 이 사람은 사실 바로 흙더미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 여러분이 알다시피 그 벌레는 흙더미 속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기어 다닌다.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신(神)은 우리 사람을 이렇게 본다. 사람도 흙더미 속을 기면서 왔다 갔다 한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 사람이 보는 흙은 흙이지만, 신이 보는 모든 분자는, 즉 삼계 이내의 분자는 모두 흙으로서, 가장 투박한 물질이고, 가장 더러운 물질이다. 그는 그것을 바로 흙이라고 생각하는데, 확실히 흙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생각해 보라. 그 신이 이 우주를 볼 때 이 세계를 볼 때 어떻게 보겠는가? 공기는 분자로 조성되었고 당신 주위에서 생존하는 일체 환경은 분자로 조성되었으며 당신, 이 공간의 물도 분자로 조성되었는바, 공기마저 모두 그러하다. 신이 분자를 보면 바로 흙이므로 당신 전체는 바로 흙에 묻혀 있고, 사람은 흙 속을 기면서 왔다 갔다 하는바, 사람은 바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아마 여러분은 왜 서양 종교에서 여호와나 예수(Jesus)가 하나님이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하였는가를 알 것이다! 사실 동양인도 여와(女媧)가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었다고 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당신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사실 신은 이 공간의 물질로 구성된 일체 입자를 모두 흙가루, 흙으로 보는데, 사실상 바로 이러하다.

나는 방금 입자는 공간의 일체를 구성할 수 있고 부동한 천체는 모두 다 광활하고 대단히 번창하다고 했다. 더욱 미시적인 입자로 조성된 세계일수록 더욱 예쁘고 더욱 아름답다. 사실 더욱 큰 입자는 또 더욱 큰 천체 범위 혹은 더욱 큰 생명을 조성할 수 있다. 만약 이 성구를 우리 사람들이 보면 거리가 아주 멀지만, 더욱 큰 생명이 보면 그는 아주 가까운 거리라고 생각할 것인데, 마치 사람이 분자와 분자 사이의 거리를 볼 때와 같다. 그렇다면 사람이 본 성구와 성구 사이는 어떤 생명의 신체 일부분일 수 있지 않은가? 바꾸어 말하면 그는 더욱 큰 생명을 조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그것은 똑같은 것이다. 예전에는 거인이 있었고 또 난쟁이도 있었다고 한다. 속인이 있다고 하든 없다고 하든 내가 이치상에서 말하자면 단지 시대가 변했을 뿐이다. 역사가 이 단계에 이르러 이 시기 역사와 문화의 요구에 부합되어야 하므로 지금의 사회로 하여금 이 모양으로 변하게 하였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고 접촉할 수 없는 것을 더는 믿지 않고, 더욱 믿지 않을수록 사람은 더욱 진상을 알지 못하게 되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우둔하게 변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믿지 않음도 사실 또한 배치된 것이다. 내가 늘 말하는바, 사람이 제 뜻대로 하려 하지만 여태껏 모두 제 뜻대로 된 적이 없다.

사람 자신의 뜻대로 하려고 생각하는 문제에 관하여, 사람은 민주(民主)화를 실시하려 했지만, 사실 사람은 여태껏 모두 진정하게 뜻대로 된 적이 없다. 그것은 신(神)이 세계를 조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복(福份)이 많은 사람이나 능력이 큰 사람은 반드시 그에게 높은 관리가 되게 배치했으며, 복이 적은 사람이나 능력이 적은 사람 그는 절대로 높은 관리가 될 수 없다. 파리 코뮌이 군주제를 뒤집었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프랑스에서 역대로 선출된 대통령 역시 모두 과거의 황제였는데, 단지 또 다른 일종의 변화된 배치일 뿐이다. 내가 말한 이 뜻은 바로 일체가 모두 신이 배치한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속인사회에서 표현되어 나온 당파 사이의 투쟁도 바로 오늘날 인류가 생존하는 상태이다. 나는 당신들이 모두 이 점을 믿으리라고 생각하는데, 고대에는 이런 일이 없었다. 오늘날의 인류는 사실상 변이된 사회의 한 변이(變異)된 인류이다. 이 문제를 나는 우선 여기까지 말하겠다.

방금 우주의 부동한 입자는 부동한 크기의 생명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매 하나의 성구에는 모두 생명이 존재하고 있지만 단지 그가 인간의 이 공간으로 체현해 나오지 않으므로, 우리 인간은 그를 인식할 수가 없을 뿐이다. 오늘날의 과학은 발전하지 못했기에 이 공간에서만 기어 다닐 수 있을 뿐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사실 다른 공간을 여는 것 역시 아주 쉬운 것으로서, 당신에게 거대한 미시적인 것을 관찰하는 체계가 있다면 당신은 분자 아래의 그 입자로 조성된 물체의 존재 형식을 볼 수 있다. 사람은 각종 장애, 사상 장애가 있어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행할 용기가 없고, 의미가 없다고 여기므로 그것의 진실한 존재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당신이 보려 하든 보려 하지 않든 그것은 가끔 참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사람은, 물질이 운동 중 음차양착(陰差陽錯)으로 갑자기 노출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런 일이 간간이 발생한다. 사람들은 모두 신기루를 일종 대기의 굴절 반사라고 하는데, 그것은 현재 과학이 해석하지 못해서 그럴듯하게 꾸며댄 말로서 아무런 근거도 없다. 사실 바로 다른 공간의 진실한 체현이다. 내가 방금 말한 이 우주의 개념을 여러분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박수)

이 우주 중의 일체 물질은 모두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되었다. 眞(쩐)・善(싼)・忍(런)은 부동(不同)한 층차에서 부동한 체현이 있고, 부동(不同)한 층차 중의 표현 형식이 있으며, 부동(不同)한 층차의 생명에게 부동한 생존 환경을 창립하였다. 인간이라는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이 법의 체현은 아주 크고 아주 방대하고 복잡하며 수련형식도 아주 많으며 깨달은 이치도 아주 많다. 좋은 사람이 되려 할 때 이 공간 중에 존재하는 요구는 바로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등등이다. 그것도 모두 眞(쩐)・善(싼)・忍(런) 중에서 분화(分化)되어 나온 것으로 아주 많은바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여인을 구성하는 요소는 부드럽고 남자는 강직해야 하는 등등인데, 이 모두가 법 속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이며 물질이 생존하는 형태와 물질이 존재하는 방식을 포함하여 모두 법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으로서, 법이 일체를 만들었다.

다음으로 나는 수련에 대해 말하겠다. 수련은 왜 경지(境界)의 표준에 도달해야만 그곳에 갈 수 있는가? 그 층차에는 그 층차의 법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 경지의 생명에 대한 요구와 환경표준이 있다. 신체가 업력을 가지고 있어 그 공간의 환경에 부합되지 못하면 안 되는데, 더러운 신체는 절대 그처럼 높은 공간 속으로 갈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그처럼 높은 경지가 요구하는 신체 상태에 부합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업력이 없어야 한다. 업력이 없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 신체 물질이 그렇게 미시적이고 부드러워야 한다. 이것은 착실하게 수련하지 않은 사람은 구하고자 하거나 얻고자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오로지 수련할 수밖에 없다. 고생을 겪으며 간고(艱苦)하게 수련해야만 얻어올 수 있다.

그리고 또, 바로 당신 생명의 그 일면도 그 경지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의 마음, 사상, 당신의 생명이 존재하는 일체 영성(靈性) 역시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물론 그 공간의 생명이 존재하는 형태에는 또 한 가지 표준이 있다. 사람 이런 모양으로는 당신이 갈 수가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만을 이루려 한다면 반드시 그 공간 생명의 형상이어야 한다. 높을수록 그 생명의 형상은 더욱 젊고 아름답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아름답지 않다. 올라갈수록 이 형상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상 역시 순정하고 아름다우며, 존재하는 방식, 언행, 행동거지에 다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들이 한 말은 시(詩)와 같은데, 이것 역시 일정한 층차 중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더욱 높은 층차는 더욱 아름답다. 그 경지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으면 그것은 절대 안 된다. 나는 늘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고 했다. 바로 당신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려 하는데, 당신은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도달하겠는가? 당신이 어떻게 해낼 수 있겠는가? 혼자서는 해낼 수가 없다. 나는 오로지 당신의 그 수련하는 마음만 보는데, 당신이 결심을 내리고 수련해 나간다면 다른 면에서는 사부가 해준다. 당신이 확고할 수 있는가, 끝까지 수련할 수 있는가 하는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功)의 구체적인 연화(演化) 방식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에게 말하지 않았고 또 여러분이 마음을 여기에 집중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렇게 하면 집착을 쉽게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허망한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위로 올라갈수록 사상은 더욱 고요해진다. 그러나 心性(씬씽)을 제고하지 않고 고요해지려고만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어떤 사람은 연공할 때 줄곧 고요해지려고만 하고 무조건 고요해지려고만 하여 일종 집착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소도(小道)에서 말할 때 이것은 한 가지 방법이지만 높은 층차에서 말하자면 이것은 일종 유위(有爲)이다. 무엇 때문인가? 고요함은 수련을 통해 점차 집착심을 제거하고서야 비로소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완전히 고요해지고 단번에 모두 내려놓을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는 것은(물론 특수한 정황이 있지만, 이것을 우리는 말하지 않겠다), 일반적으로는 해낼 수 없다. 당신이 그 고요함에 도달할 수 있을 때 당신의 사상은 이미 그 정도로 순정(純正)해졌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른바 특수한 정황이란 副元神(푸왠선)을 수련하는 수련방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처음 시작부터 인위적으로 입정하는 정도에 도달할 수 있지만, 이것은 우리 대법의 수련방법이 아니다. 이는 정말 작은 문제가 아니다.

내가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목적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말로 개변시키려 하거나, 그를 설득하려 할 때, 당신이 한 말에 아무리 이치가 있어도, 다른 사람이 온전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며 또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이 한 말 속에는 당신의 모든 사유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속인 중의 각종 칠정육욕, 나아가 당신이 집착하는 것이 너무 많아, 당신이 한 이 말 속에는 모두 복잡한 사상이 들어 있어, 당신의 말로 하여금 그리 큰 힘이 없게 했으며 아주 분산되게 했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말할 때 흔히 자신의 관점에 섰고, 그것은 우주의 법에 꼭 부합하지 않을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말하자면 또 진리의 힘이 없다. 남에게 무엇을 말할 때, 또 자신의 것을 보호하고, 자신이 상처받지 않을 것을 더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이 하는 말은 목적이 있고 또 불순해지면, 한 말이 아주 가벼워진다. 그러나 당신이 진정으로 사상이 청정해질 수 있을 때, 혹은 당신이 집착하는 마음이 갈수록 적어져 잡념이 더욱 적어졌을 때, 당신이 한 말에 힘이 실리는 것을 당신은 발견하게 된다. 내가 무위(無爲)를 말할 때 왜 내가 여러분에게 상관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함부로 상관하지 말라고 했는가? 바로 당신이 한 말은 이미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힘이 실린 말은 다른 사람을 개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맞든, 틀리든 당신이 다른 사람을 개변했다면 당신은 아마 어떤 일을 잘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눈으로 본 것은 표면일 뿐, 과거의 인연관계를 볼 수 없으므로 당신은 진상을 모른다. 그렇다면 더욱 높은 층차에 이르렀을 때 당신의 사상은 갈수록 순정해져서 당신 사상이 내보낸 것이나 해낸 말은 아주 깨끗하다. 더욱 깨끗할수록 더욱 단순하며 우주의 이 층 이치에 더욱 부합된다. 한 말은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관통할 것이고, 사람 의식의 깊은 곳까지 미칠 것이며, 그의 생명의 더욱 미시적인 곳에까지 미칠 것인데,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겠는가? 그러므로 고요해질 수 있는 것은 하나의 경지(境界)의 체현이다.

우리의 수련은 그 한 층의 표준에 부합해야 그 한 경지에까지 수련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갈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수련이, 왜 사람의 집착심을 없애야 하며, 왜 소업해야 하고, 왜 법의 요구에 부합해야 하며, 왜 당신들에게 항상 책을 보고 법을 이해하라 하는지, 그 이유이다.

방금 나는 간단하게 이 문제를 좀 말했다. 오늘은 법회이다. 여러분은 나를 만날 기회가 아주 적어, 늘 기회를 찾아 많은 문제를 나에게 물어보려 하는바, 다음 시간을 이용하여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그러나 한 가지는 여러분이 주의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물론 역시 모두 신수련생) 문제를 제기하는 어투가 아주 거세고, 사부에 대해 존경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가 사도존엄(師道尊嚴)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나는 필경 당신들의 사부로서 당신들을 그런 경지 속으로 제도해 갈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준 것은, 당신들 영원한 생명으로도 나에게 다 보답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이 제자다운 어투를 지켜주기 바란다.

자, 이제 여러분은 쪽지를 전해 올릴 수 있다.

제자: 석가・노자・예수 이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래 정과를 수련성취 했습니까?

사부: 종합하면 아주 많다. 석가 이후 아주 많은 사람이 득도하였고 모두 불교 중에서 수련해 내었다. 또 예수 이후 제자 수도사 중에서도 수련해 낸 이가 있다. 물론 중국은 수도하는 방식도 아주 많은데, 수련하는 방법 그것은 지역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대 서양사회에서도 수도하는 이가 있었으며 수련해 낸 이도 적지 않은데, 모두 종교 중에서 수련한 것만이 아니다. 그러나 근대에는 원만을 이룬 이가 아주 적으며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는 없다.

제자: 『전법륜』에서 달은 고대 인류가 만들어냈다고 언급하셨는데, 스승님께서 당시 만들어낸 원인과 목적을 조금이나마 알려줄 수 없습니까?

사부: 우리 모두 웃었다. 그것은 내가 설법하는 목적과 아주 멀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식을 추구하고 있고 허망한 생각을 한다. 사람이 허망한 생각을 할수록 사상은 청정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당신이 속인 속에서 집착하고 있는 그런 것들을, 당신은 내려놓지 않을뿐더러 계속 나에게 물으며 법 속에 넣어 함께 뒤섞는데, 나는 바로 당신들의 이런 면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마음을 수련에 써야 한다. 물론 문제가 제기되었으니 나는 당신에게 좀 말해주겠다.

역사상 오늘날과 같은 이런 과학 상태는 없었으며 부동한 시기의 인류에게는 부동한 시기의 발전방식이 있었다. 그 시기의 사람은 밤이 사람에게 불편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달을 만들어 올려보냈는데, 그것은 지구가 밤일 때 빛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이것은 수련과 무관하다. 내가 당신에게 말해주기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말하면 어떤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될 수 있는데, 내가 말한 것은 곧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함부로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그런 일들을 나에게 말하게 하지 말라.

제자: 의념(意念)의 속도는 빛의 속도보다 빠릅니까?

사부: 이 점은 확실하다. 사람의 의념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당신의 층차가 높을수록 당신은 곧 당신 이하 층차 중의 모든 공간을 관통할 것이다. 내가 한 이 말을 여러분은 똑똑히 알아들었는가? 당신의 층차가 높을수록 당신의 공이 당신 이하 층차의 어떠한 공간을 관통할 때, 당신 이하의 임의 공간의 시간적 제약도 받지 않으며 아울러 공은 의념이 지휘하는 것이다. 당신은 이 환경 중에서 생존하므로 당신의 길을 걷는 속도, 당신 차의 속도, 일체의 일체 모두가 이 공간 시간의 범위 이내에서 제한되고 있다. 사람이 내보낸 의념은 사람의 공간에서 아주 빠르다.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이 공간의 제한을 벗어난다. 그렇다면 그의 의념은 대단히 빠르다. 한편 우리는 또 사람의 공과 사람 신체가 지닌 일체 능력은 모두 당신 사상의 제약을 받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바로 당신의 의념이 도착하면 당신의 공도 바로 도착하는, 바로 이렇게 큰 능력이 있다. 내가 아주 높은 경지로 수련된 사람을 잠가놓지 않는다면 정말로 하늘땅이 뒤집어지는 그런 일도 아마 한순간의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개오에 도달하기 전에, 지상에서 수련할 때, 절대로 당신을 개방하여 이렇게 수련하게 할 수 없는데, 그것은 절대 안 된다. 능력이 작으면 괜찮다. 이 공간도 이 공간의 신이 관리하고 있으므로 그는 이 일체를 제약할 수 있으며 당신은 하늘을 뒤엎을 수 없고 땅도 뒤엎을 수 없다. 하지만 당신의 능력이 더 크면 안 된다. 사부도 관여할 것이다.

제자: 우리 이 우주 중에서 어떤 물질의 속도가 가장 빠릅니까?

사부: 당신은 과학을 묻고 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의 추구하는 이 마음을 만족케 해 주자니 당신의 집착을 충족시켜 주는 것과 같고, 알려 주지 않자니 당신은 제출하였다.

이 공간에는, 바로 지금 사람이 알고 있는 이 속도보다 더욱 큰 에너지가 있지만, 사람은 발견하지 못했고 또한 이용할 수도 없다. 무엇이 가장 크고, 가장 작은가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인식에서 출발한 인간의 공간과 시간장(時間場) 범위 이내의 인식이다. 이 우주 중에는 인간이 인식하는 크고 작다는 이 개념이 없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리킨 우주 중에서 어느 것이 속도가 빠른가 하는 그것은 층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층차가 아주 높은 신이 한 말의 속도는 때로는 아주 느리게 말한 속도이지만 그것 역시 당신의 사유 속도보다 빠르다. 내가 지금 여기에서 한 말, 바로 조금 전에 내가 당신은 집착이라고 한 이 말이 금방 지나갔지만 한 공간 속에서 그것은 이미 몇백 년을 흘러간 것인즉 바로 이렇게 큰 차이가 있다. 우주는 너무나 방대하여 시간장의 부동(不同)함이 우주의 복잡한 공간을 구성하였다.

사실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것이 가장 빠른 것이다.’라는 말의 내포를, 당신, 사람으로서는 영원히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의 개념, ‘우주 중에서 어떤 속도가 가장 빠른가?’ 하는 것은 모두 인간의 사상이고 인간의 인식이다. 우리 현재의 이 공간을 포함하여 이 시간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전법륜』에서 지금 보는 그 성체(星體)는 우리 이곳과 15만 광년의 거리가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단지 현재의 과학으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도록 말했을 뿐인데, 사실상 또 그런 것이 아니다. 왜 그런 것이 아닌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부동한 공간에는 부동한 시간이 존재하고 우리 지구 범위 이내에는 시간장이 있는데 일체 모두가 이 시간의 범위 이내에 국한되어 있다. 사람이 만든 위성이 일단 우리 대기층을 벗어났을 때 그것은 바로 다른 시간인데, 절대로 지구의 시간과 같은 시간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성구를 지날 때는 또 그 성구의 시간장이 있다. 천체가 점점 더 커질수록 그것의 시간・속도의 차이는 점점 더 커진다.

은하계 중에서 발생한 일을 당신이 15만 광년 후에야 비로소 볼 수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어쩌면 3년이나 2년 뒤에 당신은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무엇 때문인가? 빛의 속도도 시간장에 의해 통제되기 때문이다. 부동한 시간장을 관통할 때 빛의 속도는 ‘쏴-, 쏴-, 쏴-’ 바로 갑자기 빨라졌다 갑자기 느려졌다 하고 변하는데, 우리 지구 여기에 도착할 때 또 지구의 시간장에 부합하여 아주 느리게 변한다. 당신이 인류가 인식한 이 시간장으로 우주의 시간을 가늠하면 전혀 가늠할 수 없다. 인류의 진리에 대한 인식, 물질에 대한 인식, 생명에 대한 인식, 우주에 대한 개념, 아주 많은 사물에 대한 인식도 정확한 것이 아닌바 우리 인간의 발전을 포함해서다.

제자: 불가의 대각자들은 어떻게 우리 이 우주의 빛을 설명합니까?

사부: 빛만 보아서 뭘 하는가? 빛에는 아주 많은 종류가 있어 층차마다 다르며 빛을 방출하는 상황・목적도 같지 않은바, 인간의 사상으로 인간보다 높은 일을 생각하지 말라. 나는 당신이 수련하고 싶으면 책을 많이 보고 법을 많이 배워야 당신이 깨닫지 못한 것, 당신이 알지 못한 것을 장래에 법 안에서 모두 볼 수 있다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나는 어떠한 물체이든 모두 에너지가 있다고 말한바, 분자마저도 에너지가 있다. 인간들이 분자에 에너지가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인류 자신도 분자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느낄 수 없다. 에너지가 있는 물건이면 빛이 존재하며 에너지가 존재한다. 사소한 일을 크게 보지 말며 무엇이든 별것 아닌 일에 크게 놀라지 말라. 대법제자들의 위덕이 일단 펼쳐지면 그것이야말로 위대하고 찬연한 것이다.

제자: 사부님의 경문을 신문에 실어 홍법해도 됩니까? 또 사람들이 경문의 함의를 곡해할까 봐 걱정됩니다.

사부: 그럴 것이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기는 이렇게 하지 말라. 무엇 때문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우리의 가장 좋은 홍법 방식은 바로 여러분이 단체로 연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다만 연분이 있는 사람을 빼놓지 말라고 말했을 뿐이다. 내가 말한 홍법은 전 인류가 모두 와서 법을 얻으라는 것이 아닌바 절대로 이런 개념이 아니다. 나는 연분이 있는 사람에게 와서 법을 얻으라고 말했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투철히 말해도 괜찮겠다. 우리가 줄곧 채용한 홍법 방식은, 당신들이 밖에서 연공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바로 사회상에서 우리 대법의 책을 서점에서 판매하게 하는 것이다. 나의 법신은 연분이 있는 사람에게 그 책을 사게 할 것이고 연분이 있는 사람이 보면 그는 와서 배울 것이다. 우리가 또 밖에서 연공하는데, 그러면 법신은 그에게 연공장을 찾아가서 법을 얻도록 배치할 것이다. 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그를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연공하게 하거나 우리 수련생을 찾을 수 있도록 한다. 우리는 이 일을 이렇게 배치한다.

당신들은 더욱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아주 많고 많은 방법을 채용하였다. 이는 수련생의 성심임을 나는 보았다. 당신들이 한 것도 모두 아주 좋지만 모두 자발적인 개인 행위이므로 내가 그것을 된다, 안 된다 하지는 않지만, 내가 대법 속에 남겨놓은 홍법 방식은 바로 이것이다. 곧 우리가 밖에서 단체로 연공하고 법회를 열며, 서점에서 책을 판매하게 하는 이것이다. 연분 있는 사람은 책을 사 본 후 수련하려고 그 자신이 주동적으로 찾아와서 배우는 이러한 것이다. 물론 우리 수련생이 때로 개인적으로 신문에 실어 다른 사람이 좀 알도록 하는, 이것 역시 아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을 수 있게 하므로, 나도 이런 형식을 부정하지 않는데, 연분 있는 그런 사람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준 가장 좋은 홍법 형식은 바로 단체 연공과 법회라고 했다.

제자: 저는 홍법을 수련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일부분으로 여기고 있지만, 사부님께서는 홍법은 원만과 무관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 홍법과 원만은 당연히 다른 개념의 용어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홍법 일을 하는 사람, 당신이 만약 그것을 일로 여기면서, 비록 항상 노력하고 마음을 써서 하더라도 평소에 아주 적게 책을 보고 또 연공할 시간이 없다면, 이런 일은 반드시 법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로 당신이 당신의 수련과 당신의 일을 결합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신이 일할 때 아주 집착하여 부딪힌 번거로움을 자신의 心性(씬씽)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하는 방식이 법, 혹은 수련인의 표준에 부합되는가 하고 당신이 이렇게 안을 향하여 자신을 찾지도 않고 이렇게 보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다만 속인의 일일 뿐이고 다만 속인이 대법의 일을 하는 것에 불과한데, 적어도 수련인의 표준에 따라 하지 않은 것이다. 수련은 일과 결합해야 한다. 당신이 일함에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혀도 당신은 모두 자신의 心性(씬씽)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이 자신을 볼 수 있고,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나 자신이 왜 이럴까?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혹은 나의 출발점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혹은 어떻게 된 것인가? 하고 이렇게 생각한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은 평소에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할 수 있고 자신을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당신이 매 일념마저 모두 느슨하지 않고,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면 당신은 바로 수련 속에 있는 것이고, 당신의 일은 법과 결합한 것이 아닌가? 원만에 관해서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의 수련 정도가 원만의 그 경지까지 수련되었는지를 보아야 한다. 사람마다 그는 매일 모두 수련하고 있지만, 그가 원만에 이를 수 있는지 없는지는 그가 원만의 정도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제자: 저는 매일 『전법륜』을 보지만 어떤 내용은, 예를 들어 “축유과”・“벽곡”・“기를 훔치다”・“기를 채집하다”를 저는 일반적인 이해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말한 것이 비록 그런 일을 예로 들어 말하기는 했지만, 내가 말한 것은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말한 것은 법리이다! 그 배후의 내포는 무궁무진하여 이 우주가 얼마만큼 크면 이 법도 그만큼 크다. 나는 다만 사람의 가장 일반적인 행위, 가장 천박한 언어, 가장 낮은 사람의 형식으로 이 법을 말한 것에 불과하며, 목적은 당신들로 하여금 알게 하려는 것이다. 그 배후의 끝이 없는 내포를 깨달아야 하므로 여러분은 절대 골라서 보지 말라. 법을 볼 때 매 한 편도 빠뜨리지 말고 끝까지 보아야 하는데, 반드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 그의 연관성은 당신의 수련에 대하여 지극히(極大) 좋은 점이 있으며 그 법은 연관되어 있으므로 당신은 그렇게 골라서 보지 말라.

제자: 연공인의 주위 환경 중에 있는 일체 사물은 모두 사부님께서 연화(演化)해 낸 것이 아닙니까?

사부: 주위의 환경은 연화해 낸 것이 아니다. 당신들 수련 과정 중에 주위에서 발생한 일체 일들은 모두 당신 자신의 선천적인 인연에 의해 조성된 것이다. 바로 당신 자신의 업력의 응보이며 또 과거에 좋은 일을 한 응보가 있는데 일체 모두가 당신의 선과(善果)・업과(業果)이다. 나는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내가 연화해 낸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관을 넘는 동시에 또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업을 갚고 있는 것인데, 이 점은 분명하다. 아주 많은 수련생이 꿈속에서, 혹은 정공을 연마하는 중에서 본 그것 역시 모두 연화해 낸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은 것이 진실한 체현인데, 다만 당신이 느끼기에 그다지 똑똑하지 않을 뿐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사부님의 수련과 관련 있는 일부 일들을 원만을 이룰 수 있는 제자들에게 알려주실 수 있는지요.

사부: 당신이 원만을 이룬 후에는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원래의 계획은 나의 이 정황을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려고 하였다. 현재의 정황에서 볼 때 이 일은 갈수록 불가능하게 되었다. 왜 불가능한가? 장래에 사람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를 알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므로 나는 사람에게 나의 정황을 남기고 싶지 않다. 당신들에 대해 말하면 오로지 당신이 원만을 이루면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다. 그때에 당신은 모든 언어를 다 써도 당신의 사부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박수)

나는 당신들만 위해서가 아니라,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온갖 걱정을 다 했으며 나는 모든 생명을 위해 거의 나의 일체를 소모하였다. 물론 이런 소모는 당신들이 이해하는, 그런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늘 말하지만, 나는 당신이 수련하여 제고할 수 있고 수련 중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법 속에 압축해 넣었다고 했다. 당신들이 비록 부동한 경지에 있지만 모두 내가 한 말이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당신이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무엇이든 모두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이 얻은 그것에는 나의 얼마나 많은 것이 그 속에 용해되어 들어있는지를? (박수) 물론 나는 나 자신의 일을 말하고 싶지 않은데, 나는 다만 당신들에게 내가 사부로서 이 일을 하고 있으므로 당신들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을 뿐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잘 수련하여 이 기회와 인연을 놓치지 말라.

제자: 어느 때에나 우리는 서양 사람들이 번역한 대법을 얻을 수 있습니까?

사부: 『전법륜』이 곧 나올 것이다. 불어로 된 것을 곧 출판사에 넘겨 인쇄하기 시작할 것이며, 영문으로 된 것은 이미 있고, 독일어로 된 것은 현재 이미 서점에 있는데, 매우 많은 서점에 있는 것 같다. 기타 언어, 이탈리아와 스페인어는 번역 중에 있는 것 같고, 러시아어로 된 것도 있는데 이것이 서양언어로 된 책이다. 또 기타 언어로도 번역하는 사람이 있다. 이 일은 나로서도 확실히 아주 조급하지만, 흔히 그는 모두 여러 면의 기회와 인연이 성숙하지 않았고 또한, 당신들이 의식하지 못한 각 방면의 교란이 더해지기 때문에 줄곧 늦어지고 있다.

제자: 기왕 心性(씬씽)수련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면 왜 사부님께서는 책에서 또 수련의 층차 및 신통을 언급하셨습니까?

사부: 아주 많은 것이 신수련생들이 제기한 문제인데 그래도 책을 좀 보고 제기하라! 수련과 부처의 능력은 갈라놓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내가 이런 것을 말함은 다만 이치상, 법리상 개괄적으로 말함으로써 당신으로 하여금 알게 한 것뿐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수련자로 하여금 기타의 것을 알 수 있도록 하려는 바로 이 목적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 안 된다면서 당신들에게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는 불법수련과 갈라놓을 수 없다. 당신들이 추구하는 것과 마땅히 명백해야 할 법리와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그는 불법의 또 다른 일면의 체현이다. 당신이 불법 신통의 성스러움을 보지 못하는 것은 당신이 사람의 관념을 가지고 책을 봄으로 말미암아 조성된 것이다. 당신은 어느 것이 당신의 입맛에 맞는다고 느끼면 그것을 보면서, 당신 속인의 사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당신은 보지 않거나 심지어 받아들이지 않는데,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당신이 제고되지 못하는 원인이다.

제자: 왜 동성애는 도덕적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까?

사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동성애가 사람의 행위인가? 하늘이 남자를 만들고 여자를 만든 목적이 무엇인가? 후대를 번성케 하기 위함이다. 그 남자와 남자, 여자와 여자 그것을 한번 생각만 해보면 곧 그가 옳은지 그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작은 일에 그릇되면 그가 잘못되었다고 말하지만, 큰일에 그릇되면 그것은 바로 사람의 도덕규범이 없는 것이고 사람이 될 자격이 없는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왜 오늘날의 사회가 이러한가를 알려주겠다. 이것은 사람을 단속하는 정법(正法)이 없어서 조성된 것이다. 이 대법(大法)은 바로 가장 난잡한 환경 속에서 전하는 것인데, 모든 종교가 다 사람을 제도할 수 없을 때, 모든 신이 다 손을 떼고 상관하지 않는 이런 상태에서 전한다. 법의 힘이 크기 때문에, 가장 좋은 시기에는 오히려 이렇게 큰 법으로 전할 필요가 없다. 가장 나쁜 시기라야 비로소 법의 위력이 체현될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원인도 있다.

제자: 왜 동성애를 하는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여깁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내가 오늘 이 법을 전하지 않으면 신이 우선 소멸할 대상이 바로 동성애자이다. 내가 와서 그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신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동성애가 근거를 찾았다고 하는바, 그는 고대 그리스의 문화 속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 중에는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왜 없어졌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왜 없어졌는가? 그것은 바로 그것이 그 정도로 타락하였기 때문에 바로 훼멸된 것이다.

신이 사람을 만들 때 사람에게 사람의 행위・생활 방식을 규범화했는데, 사람이 이 범위를 벗어나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들은 사람의 외형을 가졌다. 그렇다면 신은 당신들이 존재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으므로 훼멸해 버리려고 한다. 세계상의 전쟁・역병(瘟疫)과 천재인화(天災人禍)가 왜 나타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바로 사람에게 업력이 있기 때문이며 사람으로 하여금 소업하게 해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장래에 더 아름다운 역사 시기에도 지구에는 전쟁・역병과 천재인화가 존재할 것인데,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업하게 해 주는 한 가지 방법이다. 어떤, 죄를 지은 사람은 육신의 사망과 고통을 통해 그의 업력을 없앨 수 있고, 후에 그가 다시 환생하면 업력이 없는데, 그의 생명은 정말로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롭게 환생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지은 업이 너무 커서 그의 생명의 본질에까지 미치게 되는데, 모두 훼멸될 것이다. 동성애는 신이 사람에게 준 규범을 스스로 위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 인류사회의 도덕규범을 파괴하고 있으며, 특히 아동에게 미친 영향은 장래 사회를 마치 마귀같이 만들게 할 것이다. 바로 이 문제이다. 그러나 그런 훼멸은 한번 훼멸하면 없어지는 그런 것이 아니라, 층층이 없어진다. 우리가 보기에는 아주 빠른 속도로 소멸하지만, 그러나 그의 그 시간장에서는 오히려 극히 길어, 한 차례 한 차례 극히 고통스럽게 훼멸되는데, 아주 무서운 일이다. 사람은 마땅히 밝고 정정당당하게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자신의 마성(魔性)을 방종(放縱)하여 하고 싶은 대로 해서는 안 된다.

제자: 저는 정과를 얻고 싶어 목표를 나한 과위에 정했습니다. 홍법을 포함하여 주동적으로 나와 인연이 없는 사람을 도와주지 않았는데 잘못한 것입니까?

사부: 잘못한 것이다. 이는 당신 표면 사람의 사상이다. 당신들은 아는가? 당신들 사람마다 어디까지 수련하고, 당신이 얼마만한 감당 능력이 있으며, 당신에게 얼마나 많은 德(더)가 있고, 당신이 얼마나 큰 물질적인 기초가 있어야 하는지를 나는 모두 당신에게 아주 잘 배치하였다. 당신은 스스로 자신에게 수련의 이 길을 배치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성립될 수 없으며 또 인정하는 사람도 없다. 당신은 왜 당신을 나한이라는 이 위치에 정하였는가? 바로 당신이 법에 대하여 현재 단지 이런 정도로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많은 집착심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바, 당신의 법에 대한 이해가 이런 정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당신은 이렇게 인식한 것이다. 장래에 당신이 법에 대한 이해 정도가 높아지고, 당신이 대법 책을 본 횟수가 많아지면 당신의 이 생각은 틀림없이 바뀔 것인바, 당신은 자신이 제기한 문제를 제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고 생각할 것인데, 그때에 당신이 느끼기에 얼굴이 붉어질 것이다. 현재 나도 당신에게 그것은 현재 다만 당신의 현재 기초를 대표한 것이라고 알려줄 수밖에 없으므로 나도 당신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방법은 잘못된 것이다. 자신에 대해 느슨히 하면 내려놓고 싶지 않은 집착심이 당신으로 하여금 정진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제자: 저는 막 입문했을 때는 아주 몰두하기도 하고 정진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갑자기 법에 대하여 의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여러 번 잘못을 저지르고 관을 넘지 못했는데 이는 사상업력이나 마의 교란이 아닙니까?

사부: 나는 왜 당신들로 하여금 반본귀진(返本歸眞)하라고 하는가? 귀진(歸眞)은 어떤 목적인가? 바로 당신이 진정한 당신 자신의 그곳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아주 많은 집착심과 각종 관념이나 칠정육욕(七情六慾)이 있는데, 모든 사상은 다 당신의 머릿속에 있지만, 이는 모두 당신이 아니다. 나는 이 문이 전부 열렸다고 말했다. 바로 당신들의 마음을 보고,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는데,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아직도 반본귀진하려는 이러한 사상과 이러한 염두가 있는지 없는지 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다. 당신들의 사상을 교란하는 모든 것은 아마 모두 다 당신이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속인의 이익 속에서 그가 내려놓지 못하거나 그가 그 사상이 자신인지 아닌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그가 나쁜 사상도 자신으로 여긴다면 우리는 절대로 더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사람이 그 좋지 못한 사상을 이미 자신으로 간주했기에 우리의 이 일체를 그 좋지 못한 사상에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제자: 『전법륜』에서 대각자는 자신의 특성에 따라 우주를 구성한다고 하셨습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보았는데,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일체 우주의 방대한 천체 속 부동한 경지의 우주 중에서 발생한 일을 포함한다. 이 천체는 대단히 큰 것으로,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려는 전체 천체가 아니다. 대각자들은 부동한 층차의 천체 속에서 우주 대법의 부동한 법리를 깨달았는데, 동일한 층차의 대각자들도 깨달은 것이 서로 다르다. 방대한 천체 속의 부동한 크기의 우주 중에서 어떤 것이 부패하였을 때, 높게 깨닫고・바르게 깨달은 대각자가 다시 그 한 층의 우주를 새롭게 만들지만 무수하고 부동한 층차의 우주를 포함한 광대(曠大)하기로 비할 바 없는 천체 전반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제자: 『시간과의 대화』 경문에서 언급하신 신(神)은, 신의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그와 불도(佛道)의 구별, 그와 원시신(原始神)과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부: 우주 중의 일체, 속인의 능력을 초월한 것은 모두 신이다. 공기 중에는 미시적이고도 방대한 생명이 부지기수로 분포되어 있는데 모두 형상이 없는 신이다. 바로 이런 개념이다. 신에게는 부동한 경지(境界)가 있으며 또 부동한 종류가 있다. 불(佛)은 신이 아닌가? 도(道)는 신이 아닌가? 그들을 모두 신으로 통칭한다. 단지 그들은 자신이 수련한 특징과 외형, 그리고 자신이 형성한 독특한 것이 있기에, 그를 도(道)라 부르고, 그를 불(佛)이라 부르며, 그를 신(神)이라 부를 뿐이다. 우주의 일체는 모두 사상이 있는 것이고, 생명이 있는 것인데, 당신이 그를 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당신이 말해 보라. 어떤 공간 속의 시간은 이 공간 속의 일체 물질이 발생하는 변화를 모두 엄밀하게 통제하고 있는데, 그가 신이 아닌가? 그는 그가 통제하는 범위 이내의 모든 생명의 사상을 알 수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말을 하고 싶으면 말을 할 수 있고, 그가 인간의 형상으로 뭉치고 싶으면 인간의 형상을 뭉쳐낼 수도 있는데, 그가 신이 아닌가? 인간은 시간을 단지 일종 개념으로 여기는데, 태양이 떠오르고 저물어 감을 인간들은 시계에다 점 몇 개를 그려 구분 짓고, 몇 개 숫자를 넣고서는 이를 바로 시간이라고 한다. 이것이 시간의 속인사회 속의 그런, 태양이 떠오르고 저묾을 포함한, 표현형식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태양이 떠오르고 저물며, 지구가 태양을 에워싸고 도는 것마저도 모두 이 공간의 시간이 한정한 것이고 배치한 것으로 편차가 나타나지 않는다.

제자: 저는 원만을 이루기로 뜻을 세웠는데, 일단 스승님께서 법 전수를 끝내시면 저는 여전히 스승님 법신의 보호를 받습니까?

사부: 사실 나는 이미 법(法)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는바, 내가 체계적으로 법을 전한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나는 현재 다만 법회에 참석한 김에 당신들에게 일부 문제를 해답하는 것이다. 보도소장(站長)은 늘 한 가지 생각이 있다. 내가 좀 높게 말했으면 하고, 당신들에게 좀 더 많이 말했으면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나의 법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오늘날은 당신들이 수련하여 제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법신이 상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법신이 상관하지 않을 때에는 당신들은 이미 원만을 이룬 것이다.

제자: 막 법을 얻은 일부 신수련생들이 스승님의 1998년 이전의 북미설법 녹음・비디오를 많이 듣거나 보고 싶어 하는데 괜찮습니까?

사부: 내가 제일 처음 미국에서 설법한 책이 지금 있으므로 당신이 가서 책을 보면 당신이 법을 인식하는 데 대하여 아주 좋은 점이 있다. 반대로 당신이 비디오를 보면 당신에 대한 겨냥성이 없을 것인데, 나는 당시에 법을 듣고 있는 수련생들의 그 구체적 정황에 따라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책은 보편성을 가지고 정리를 거친 것이다. 그리고 내 설법의 가장 큰 특징을 당신들도 비디오에서 모두 보았을 것이다. 나는 말하고, 말하고, 말하다가 갑자기 화제를 바꾸어 또 다른 문제를 말하는바 당신들은 아마 모두 이런 감각이 있을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말하고 말하다가 나는 수련생들이 모두 알아들었음을 발견하는데 내가 끝까지 말하지 않았어도 알아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말하지 않고 바로 다른 문제를 말한다. 나의 비디오에서 항상 이런 일이 나타나기에 당신이 비디오를 보는 것은 여러 면에서 책보다 좋지 못할 수가 있음에 반하여 책은 당신에게 더 좋을 것이다. 바로 이런 뜻이다. 책과 비디오가 동시에 존재하면 교란을 조성하기 때문에 각 지역에서 설법한 책이 출판되면 그 설법의 모든 녹음이나 비디오는 반드시 없애버려야 하는데, 이는 대법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내려놓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정이다.

제자: 저와 제 아내는 모두 대법을 수련합니다. 몇 개월 전에 우리 두 사람은 연이어 아주 아름다운 한 마리 큰 새를 꿈속에서 보았는데, 이 새는 나의 몸속에 들어온 후 사라졌고 나의 아내는 그 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는 무엇을 설명하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사부: 그냥 새일 뿐이다. 당신들이 세세생생 전생하는 중에서 설령 아주 높은 층차에서 내려온 신일지라도 아마 금생에는 사람으로 전생했을 수 있으며 내생에는 동물로 전생할 수 있는바, 인류사회는 바로 이러한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수련을 시작할 때 제일 처음 본 것이 있다면, 아마 당신들의 원모습이거나 가장 최초에 있었던 곳의 영상, 혹은 사람형상, 혹은 동물 혹은 이것 혹은 저것일 것이다. 천상의 새도 신(神)이다.

제자: 수련인이 보약을 먹을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책을 보지 않았다. 틀림없이 책을 보지 않았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수련하는 사람의 신체에 병이 있으면 공이 나올 수 없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순정하지 못한 신체로는 수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수련할 때 당신의 신체를 정화하여 절대적으로 순정한 정도에 도달한 연후에야 공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는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진정으로 수련하고자 하는 사람을 위해 신체를 정화해 줄 것인데 그러한 신체는 바로 병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부처 경지의 그런 신체에 도달하려 하는데, 당신이 보약을 먹고 도달할 수 있겠는가? 틀림없이 도달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먹어서 뭘 하려는가? 이런 것들은 또 맛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맛보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바로 당신의 신체를 갈수록 정화해 갈수록 가장 정상적이고 가장 좋은 상태에 도달하게 할 것인데, 그것은 약을 먹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약을 먹는 것은 수련에 대해서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고 여기는 것으로, 당신이 바로 당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바로 이런 이치가 아닌가?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데,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당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할 수 있겠는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한약이든, 양약이든 모두 약인데 이 점은 확실하다. 당신의 목적은 건강한 신체를 가지는 것에 불과하지만, 우리의 수련은 이것을 아주 멀리 초월한 것이다. 바로 이런 관계인데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제자: 우리는 중국 제자인데 아직 다섯 명이 각종 원인으로 오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오지 못하게 된 원인은 마의 교란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사부님께서 배치한 것입니까?

사부: 바로 당신들 다섯 사람을 포함하여 나도 당신들을 오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가? 내가 방금 말했다. 예전에는 내가 법을 전하는 것이 제일 중요했지만, 오늘날은 당신들의 수련・제고가 제일 중요하다. 마음을 모두 수련에 놓고 착실하게 수련하는 이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사람 마음이 들떠서 나를 찾고 싶어 하며 법을 듣고 싶어 여기저기로 쫓아다니면서……, 당신의 수련에 좋은 점이 전혀 없으며 좋은 점이 하나도 없다. 싱가포르에서 법회를 열 때 국내의 아주 많은 사람이 가려고 하였다. 후에 내가 총회에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아래에 통지해 알려주라고 했다. 각지의 보도소로 하여금 수련생들이 절대 함부로 다니지 말도록 통지하게 했다. 이는 좋은 점이 없다고 말했다. 본래 법신이 이 기간에 당신들에게 질서 있는 수련을 배치했는데, 당신들은 오히려 그것을 혼란케 했다. 아마 틀림없이 이 기간의 수련을 거쳐서 당신들의 일부 집착심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인데, 이 방면에서 마땅히 제고해야 할 것이 모두 흩트려진 것은 바로 이런 원인이다. 당신들이 집착으로 기필코 무엇을 하려고 하다 성사시키지 못한 것을 모두 마의 교란이라고 하지 말라.

제자: 나의 남편은 연공을 하지 않았지만 『전법륜』을 한 번 보고 스승님께서 설법하신 비디오를 보았는데, 그의 천목이 열리고 또 요시공능도 있습니다.

사부: 이는 그의 연분이나 근기가 괜찮아 조성된 것일 수 있는데, 한 번 보자 바로 열린 것이다. 그가 배우거나 배우지 않거나 수련하거나 수련하지 않거나에 대하여 말하자면 사람마다 이 복잡한 사회 환경 속에서 모두 아주 복잡하게 변한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당신들 매 사람은, 모두 역사상 인간 세상으로 오기 전에, 당신들의 심령 깊은 곳에다 오늘날 법을 얻을 수 있는 종자를 심었다. 인류사회에서 나는 여러 차례 당신들을 찾아서 이미 당신들에게 수기(授記)를 한 적이 있는데, 이런 것이 모두 강렬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두가 당신들의 속인 중 집착심을 약화할 수 없었으며, 당신들로 하여금 그 당시 당신들이 법을 보자마자 “어이구! 나는 수많은 해를 기다렸는데, 바로 그를 얻으러 온 것이다.” 하도록 할 수 없었다. 아주 많은 사람이 이미 이런 감각이 없어 수련하는 둥 마는 둥, 그다지 정진하지 못했다. 인연이 있어 법을 얻었지만, 그는 또 그런 여러 가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는 각종 정황이 모두 있는데, 인연이 다하면 모든 것이 끝난다.

제자: 사부님께서 만(卍)자 부호를 말씀하실 때 ‘여래를 배로 초월하면 두 개가 있다.’고 하셨는데 이 속에서 여래를 배로 초월한다는 것은 공기둥(功柱)의 높이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사부: 그것은 心性(씬씽)과 위덕을 가리키는 것으로 공이란 다만 일종 표현이다. 여기에서 공기둥을 가리켰다고 해도 되지만 반드시 원만을 이룬 후의 그 공기둥이어야 하며, 바로 원만을 이룬 후의 공기둥이 여래의 공기둥보다 배로 높아야 함을 말한다. 수련과정 중의 공기둥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 그것은 미정이기 때문이다. 아직 원만을 이루지 못했을 때 당신의 다른 부분의 것은 다만 에너지의 일종 존재형식일 뿐이다. 그러나 어떤 점에서 말하자면 당신의 수련 과정 중의 층차와 心性(씬씽)을 대표하고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싱가포르 법회에서 제자들이 손뼉 칠 때 대부분 두 손을 합장하여 뜻을 표했지만, 예전의 설법에서는 대부분 한 손으로 뜻을 표하셨습니다. 이 속에는 어떤 심층적인 함의가 있습니까?

사부: 내가 제자를 대할 때는 한 손이다. 그러나 한 가지가 있는데, 나는 여러분들의 그 순정한 마음과 끊임없이 정진하는 그 상태를 보았을 때 나는 정말로 아주 기쁘고, 좋아서 두 손을 쓴다. 일반적인 정황 하에서 사부는 제자들에게는 모두 한 손을 쓴다.

제자: 『전법륜』을 외우면 主元神(주왠선)이 대법을 영원히 가지게 된다는데, 원만을 이루었거나 원만을 이루지 못했거나 모두 똑같다고 합니다.

사부: 누가 법을 기억하기만 하고 원만을 이루려 하지 않겠는가? 책을 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원만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닌가? 당신이 『전법륜』을 외울 수 있으면 제고에 좋은 점이 있다. 당신 신체의 미시적인 그 부분과 당신 사람의 가장 표면이 모두 외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외우든지 아무리 익숙하게 외운 사람이라도 어느 시기에는 갑자기 또 외우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의 주요한 그 부분, 외운 그 부분을 표준에 도달한 후 바로 당신과 갈라놓기 때문에, 당신은 갑자기 어이구! 나는 어찌하여 또 외우지 못하는가 한다. 이미 표준에 도달한 그 부분은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표면은 또 완전하게 외우지 못하고 또 잊어버리는데 어떤 때에는 많이 잊어버리고 어떤 때에는 적게 잊어버리는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우리 많은 사람에게 또 이런 상태가 있는데, 바로 한 차례 한 차례 그의 귀가 영통해지고 한 차례 한 차례 천목으로 보는 것이 아주 분명해진다. 어느 때 보는 것이 분명한가? 가장 잘 보이는가? 바로 그가 이 단계에서 아주 잘 닦았을 때로 아직 갈라놓기 이전이다. 곧 표준에 도달할 때에 똑똑히 볼 수 있고 귀도 영통해지며 신체감각도 민감하다. 일단 갈라놓으면 그는 또 안 됨을 발견하고 내가 떨어져 내려간 것이 아닌가? 어찌하여 모두 안 되는가? 라고 하는데, 떨어져 내려간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잘 닦은 그 부분을 이미 갈라놓았기 때문이다. 남은 이 부분은 아직 잘 닦지 못한 그 부분인데, 그렇다면 이어서 다시 수련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단계적으로 민감함이 나타나는 이런 상태이다. 이런 정황은 오직 대법 속에서 수련해야만 있을 수 있다.

제자: 수련한 층차가 높을수록 잠이 적습니까?

사부: 그렇지 않다. 이런 정황은 당신 사상 자체의 입자 변화, 제고와 관계가 있다. 그러나 단계적이다. 내가 방금 말한 문제에서도 이 면의 것을 포함하고 있는데, 당신의 잘 수련한 그 부분이 갈라지면 당신 표면은 바로 정상적인 표현으로 되는데, 당신이 원만을 이루기 전까지 줄곧 당신은 이런 상태이며 이는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처럼 생활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사람 일면은 점점 약해질 것인데, 더 나아가 자신에 대한 요구를 높이면 아마 당신은 속인 속에서의 표현이 점점 좋아질 것인데 바로 이렇다.

제자: 시간이 아주 긴박한데 결가부좌를 계속 틀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 수 있습니까?

사부: 조급해하지 말라. 또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나는 여태껏 무슨 시간이 모자란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신에게 빨리 수련하라고 했는데, 당신은 오로지 연마만 하라. 그러나 당신 자신은 자신에 대해 엄격히 요구해야 함을 알아야 하는데 바로 이렇다. 절대로 다리를 틀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튼 아주 적고 아주 적다. 또 어떤 元神(왠선), 그는 천상에서 인간의 형상이 아니라 다른 신의 형상이므로 다리를 틀지 않는바 아마 또 이런 요소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말하는데, 당신은 사람 몸이 있고 육신이 있기 때문에, 극히 특수한 이를 제외하고 나는 모두 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우스갯소리 하나 하자. 우리 자리에 있는 많은 사람이 확실히 아주 잘 수련했는데 당신들이 다리를 틀지 못하면 천상의 그 보살들이, 저 수련하는 사람 좀 보세요, 아직도 다리를 틀지 못하네 하고 입을 가리고 웃는다.

제자: 사부님께서 집착의 개념을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어떤 원인이 사람으로 하여금 우주의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 때문에 이 공간은 미혹된 것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한 속인으로서 속인사회 공간에서 본 것이나 접촉한 것, 속인 속에서 배운 지식은 모두 당신을 한정시키며 당신을 봉폐한다. 당신이 이 공간에 대한 지식, 이 공간 안의 일체에 대한 인식이 점점 똑똑해지거나 점점 명백해질 때, 당신은 바로 점점 자신을 봉폐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도, 속인 이 공간에서 진리라고 여기는 것은 사실 그것은 아마도 잘못된 것이고 반대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만약 속인사회 속에서 인식한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으면 당신은 우주의 진상을 볼 수 없다. 특히 우리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더욱 많은 이익을 얻기 위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을 나는 통틀어 그것을 집착이라고 부른다. 이 집착들은 마치 강대한 자물쇠처럼 당신들을 잠그고 있다. 당신은 전진하는 길에서 자물쇠마다 그것을 다 열어야 하는데, 열지 못하면 그것이 당신을 잠그고, 미혹시키고 있어 당신은 진상을 볼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당신이 반본귀진하려 하는 이 길에서 이 자물쇠들을 열지 못하면 당신은 건너갈 수 없는데, 이것이 바로 관(關)이다.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일체가 바로 당신의 장애이며, 수련 속에서 부딪히는 이 고비들 역시 사실은 당신 자신의 난(難)이다. 내가 그것을 이용하는 목적은 바로 당신이 집착하고 있는 자물쇠를 열어 당신들로 하여금 진상을 보도록 하는 것이며 당신들의 사상으로 하여금 승화되게 하는 것이다.

제자: ‘집착을 모두 내려놓았다’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바로 속인 공간에서 내려놓지 못하는 각종 마음을 내려놓았다는 것인데, 당신들의 오늘날 수련방식은 과거에 있었던 수련방식과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아주 많고 많은 사람이 와서 배우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러면 그것은 일종의 사회형식을 형성할 것이며 장래에는 또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런 사회형식-수련하는 단체를 형성하여 사회에서 아주 큰 영향을 일으킬 것이다. 만약 사람마다 모두 열린 상태에서 수련하고 신처럼 오간다면 그렇다면 전체 사회형식은 바로 변화가 발생할 것인데 그것은 사람 사회와는 같지 않고 신의 사회와 같을 것인바 이러면 안 된다. 인류사회는 바로 이러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수련하는 환경을 이용하여 그 속에서 수련한다. 우리는 이 환경을 파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우리는 수련 중에 또 이 환경에 부합해야 하는바, 이는 당신이 이 환경에 부합하지 않으면 당신은 수련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오늘날 채용한 형식도 이러한 것이다. 현재 1억이 넘는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고 있는데 모두 출가하여 수도사가 되고 모두 승려가 된다면 그것은 안 된다. 그렇다면 장래에 수련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면 이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여러분이 모두 다 와서 수련한다면 누가 당신을 먹여 살리겠는가? 이는 안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될수록 속인사회에 부합해야 하며 우리는 속인 이런 사회형식을 이용하여 수련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에 부합해야 한다.

당신들은 모두 일거리가 있어야 하고 모두 환경, 나아가 가정이 있어야 하고 또한 수많은 속인사회의 친척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여러 분야는 모두 우리가 속인사회에 부합할 수 있는 형식의 체현이다. 동시에 그들은 또 우리에게 수련할 좋은 기회를 창조해 주고 수련하는 환경을 제공해 주는데, 이는 당신들이 바로 속인 속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그럼 기왕 속인사회에서 수련한다면 물질, 이 방면의 접촉에서 물질에 대한 소유가 있을 수 있는데, 이 면에서 우리도 될수록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하여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 점은 당신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바, 바로 당신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들의 마음은 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은 아주 많은 돈이 있을 수 있고 가정이 있을 수 있으며 재산이 있을 수 있는데, 아주 많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마음을 내려놓아야 하는바,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수련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에서 가리키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았다 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을 무조건 내려놓아야 비로소 내려놓았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만약 당신이 물질상의 것을 모두 내려놓았지만, 당신이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하고 아주 아쉬워서 떼어놓지 못하며, 또한 늘 생각이 나서 때로는 이 때문에 수련에까지 영향을 받는다면, 나는 그것은 내려놓은 것이 아니며 그것은 강제로 내려놓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물질을 표면적으로 아주 담담히 보는 그것은 형식이다. 내가 보았을 때 진정하게 수련해 올라올 수 있는 원인은 바로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발생하여 이 마음이 표준에 도달하고 사람의 사상 경지가 표준에 도달해야 비로소 진정으로 닦아 올라온 것이다. 우리는 물질상의 것을 아주 담담히 보아서 당신이 재산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 관건은 당신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지 없는지, 제고하여 올라올 수 있는지 없는지 하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극히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모든 수련형식도 속인 속에서 수련할 수 있게끔 배치한 것으로서, 어떻게 하면 당신으로 하여금 정진하게 할 수 있고, 어떻게 하면 공이 내려가지 않게 할 수 있느냐 하는 여러 면의 배치가 모두 우리 오늘날 이런 수련형식에 부합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 당시 법을 전하기 시작하였을 때 그 신들이 모두 말하고 있었는바 이는 ‘고덕대법(高德大法)’이라고 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아주 좋다고 여겼다.

제자: 대법을 널리 전하는 방식은 유럽인들에게 부합해야 합니까?

사부: 한 수련자로서 이 법을 얻은 후 어떻게 그로 하여금 널리 알려지게 하고 더욱 많은 사람이 와서 배우게 하겠는가 하는 그것은 아주 좋은 소망이다. 유럽에서든 동양에서든 당신이 어떻게 전하든지 연분이 없는 사람은 배우기가 몹시 어렵다. 무엇을 연분(緣)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가? 연분 이 문제를 나는 이미 말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연분 있는 이 사람을 찾아야 하는가? 내가 신문에 실어 누가 연분 있는 사람인지를 찾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모두 분명해야 하는바 우리, 심지어 수련생마다 자기 마음속으로 아마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그에게 ‘法輪功(파룬궁)’이란 세 글자를 말하거나, 당신이 『전법륜(轉法輪)』 세 글자를 말하면 그는 곧바로 진동을 느끼거나 흥분을 느끼면서 즉시 그는 배우려 한다. 이는 바로 연분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당신이 아무리 말해도 그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그는 아마 틀림없이 인연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널리 전하느냐 하는 것과 널리 전하는 방식에 대해 말하자면, 사실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우리 수련생들이 공공장소에서 연공을 하는 것으로서, 연분이 있는 사람들이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우리 대법 책을 부동한 민족, 부동한 국가의 서점에서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나에게는 무수한 법신이 있으며, 그는 누가 연분이 있고, 누가 마땅히 법을 얻어야 하는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만약 서점 안에 우리 책이 있고 공원 안에 우리 연공하는 수련생이 있다면, 그는 연분 있는 사람을 찾아 그 사람을 데려다 이 법을 찾게끔 한다. 이러한 환경이 없으면 어려워진다. 그가 무슨 방법을 쓰든지 그는 책을 찾을 수 있으며 연후에 책을 보고 그는 좋다고 느낄 것이다. 그는 연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좋다고 느낄 것이고, 그는 가서 찾을 것인데 찾아보니 우리 공원 안에 연공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 내가 이 법을 전하기 시작하여 줄곧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주 많은 사람이 모두 이렇게 얻은 것이다. 그리고 아주 많은 사람이 우리 수련생의 말을 통해 그가 좋다고 느껴서 친척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였다. 자신이 나쁘다고 느끼면 친척들에게 절대 오지 못하게 할 것인데 바로 자신이 좋다고 느꼈기 때문에 친척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였다. 그리하여 친척들은 좋다고 느끼며 그는 또 다른 친척, 친구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였다. 그 자신의 체험을 통해 수련생 자신이 그의 느낌을 말함으로써 사람에게 진동 작용을 일으켰다. 그는 자신의 친척들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며 또 자신의 친구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이므로 그의 친구들은 믿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믿었다면 그도 와서 배우며 그도 마찬가지로 느낌이 있을 것이다. 이는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직도 소수의 사람은, 우리 수련생들이 신문이나 잡지에 실은 문장을 보고 법을 얻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 법을 얻은 사람들, 내가 어제 말한바, 나도 이런 방식을 반대하지 않지만, 그것은 어떤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가? 바로 상사(上士)가 올 수 있고 하사(下士)가 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는 사람 중에는 부동한 목적을 품은 사람, 각종 심리상태의 사람들이 모두 있는데, 어떤 사람은 한동안 연마하다가 가버린다. 그러면 그는 아마 하사(下士)로서, 그는 얻고 싶지 않거나 얻지 말아야 할 사람인바, 흔히 모두 이러한 것이다. 수련생 자신이 신문에 한 편의 문장을 싣거나 소식을 내보내는 것 역시 좋은 일이라,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필경 연분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올 수 있게 하고, 상사(上士)도 신문을 보고 오게 하기 때문인데, 그것도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주요하게는 바로 두 종류 방식이다. 하나는 우리 서점에 책이 있고 연공장이 있어 법신이 그를 데리고 와서 찾게 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법회와 우리 수련생 자신의 감수를 통해 친척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주요하게는 이 두 종류의 방식에서 온 사람이 비교적 많으며 질이 높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을 채용하는 데 대해서는 동양이든 서양이든 내가 보기에 주로 이 두 방식이다. 우리 초기 많은 지역은 사람들이 法輪功(파룬궁)에 대해 인식이 아직 없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 줄 때, 신문이나 잡지 같은데 문장을 써서 발표했는데, 이렇게 하는 것 역시 곧 법을 널리 전하고 있는 것으로서 이 점은 분명하다.

제자: 저는 백인입니다. 당신의 경우에 고험에 부딪혔을 때 이 고험을 받아들입니까, 아니면 그로 하여금 지나가게 합니까?

사부: ‘당신의 경우……’ 그렇다면 바로 나를 가리킨 것인데, 그렇지요? 한 가지 문제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문제를 아주 잘 제기했는데 나는 이 문제도 응당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말할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대법을 수련하든, 나에게 얼마나 많은 수련생, 제자가 있든, 당신들은 모두 수련하는 사람으로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바 당신들은 모두 수련하고 있다. 수련을 잘하든 못하든, 정진하든 정진하지 못하든, 층차가 높든 높지 않든 당신들은 모두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하여 수련해야 하고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 그러나 나는 수련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이 점을 당신들 여러분은 반드시 명확하게 분간해야 한다. 나에게는 나 자신의 난이 없으며 또한 당신들처럼 수련할 요소가 없다. 당신들에게 알려줄 것은 내가 당신들을 제자로 여기고 이끌기 때문에 나는 바로 당신들을 제도하고 있고, 당신들을 도화(度化)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이 점에서 볼 때 나와 당신들은 다르다. 당신들이 부딪힌 일체의 번거로움을 당신들은 모두 그것을 수련으로 여겨야 한다. 그것은 필경 수련이기 때문이다. 만약 나 여기에서 번거로움이 나타났다면 바로 대법에 대한 교란이며, 바로 대법에 대한 파괴이다. 왜 이렇게 보는가? 이 우주는 선천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내가 이 일을 하는 목적은 법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우주 중생은 이미 법을 벗어났으므로 반드시 법을 바로잡아야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항상 하는 한마디는 바로, 이는 만(萬)년이 지난다 해도 만날 수 없는, 천지개벽 이래 있어 본 적이 없는 일로 우주 대법을 인간 세상 전반에 전하는 것인데, 과거에는 신마저도 법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생명은 갈수록 불순해졌다. 일체가 모두 변이(變異)되었는데 계속 이대로 나가면 眞(쩐)・善(싼)・忍(런)의 최고 기점마저 모두 변이될 것으로 이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주 중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나는 되도록 원시적인 생명을 보존하려 하는바, 멸망하는 이런 종류의 형식이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한다. 나는 이 일념을 움직여서 바로 내려오게 되었다. (박수) 그렇다면 이미 내려왔으니 나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아름다우며 당초보다 더욱 완미(完美)한 일체를 가진 이런 종류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알다시피, 法輪(파룬) 그는 움직이며 도는 것인데, 당신들이 본 그 法輪(파룬), 그는 다만 法輪(파룬)의 한 표면형식일 뿐이다. 그는 또 법의 일면이 있는데 당신들은 볼 수 없다. 그는 끊임없이 돌면서 자동으로 기제(機制)를 수리 복구하여 일체를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좋은 상태로 돌아가게 한다. 일체 물질・일체 생명이 모두 이렇게 미시적인 곳에서 표면에 이르기까지, 일체는 모두 돌고 있으며 운동하고 있다. 나는 이 일체를 만들고 회복시킬 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원용(圓容)하게 하고 있다. 나에게는 수련이란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이 일을 하여 해결하려 하는 것은, 우주생명이 불순해진 후에 형성된 그 악한 세력이 일으킨 저애(阻礙) 작용이며, 동시에 또한 속인사회의 중생 자신들이 조성한 업력이 나에게 가져다준 어려움이다. 나는 늘 한마디 말을 했는데, 나는 예수가 왜 인간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석가모니 부처가 왜 반드시 열반해야 했고, 노자가 『5천언』을 남기고 총총히 가버려야 했는지 알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세상에 와서 세세생생 환생함에 당신은 이미 얼마나 많은 생(生)이 있었고, 얼마나 많은 세(世)가 있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당신은 매 한 생, 매 한 세 모두 남에게 아주 많은 빚을 졌고 많고 많은 좋지 못한 일을 했다. 일부 사람들은 부동한 층차에서 내원(來源)하여 지구로 환생해 왔는데, 그렇다면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씩 떨어지고 있을 때 모두 잘못된 일을 한 것인즉, 다시 말해서 그들은 부동한 고층 공간 안에서 모두 머문 적이 있다. 왜 그 공간에서 머물 수 없었는가? 그것은 그곳에서 그가 나쁜 일을 했기 때문에 떨어진 것이며, 또다시 좋지 못한 일을 하여 또 떨어졌다. 그렇다면 천상에서 그런 좋지 못한 일을 하여 진 빚은 바로 신에게 진 것이다.

한 사람이 천상으로 돌아가려 한다면 천상의 신이 모두 허락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사부가 없고 책임지는 사부가 없으면 당신에게 하늘만큼 큰 재간이 있다 해도 영원히 돌아가지 못한다. 당신이 지상에 왔어도 진정하게 사람을 제도하는 그런 사부가 와서 책임지지 않으면 영원히 되돌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비록 진정하게 사람의 업을 갚았다 해도 천상에서 진 빚은 갚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는 이것들을 상관하지 않고 사람을 제도하기 위해 대자비를 베풀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 몸에 묶인 그 풀 수 없는 업력의 매듭을 풀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 우주 중에는 하나의 이치가 있는데, 잃지 않는 자는 얻지 못하고 얻으면 바로 잃어야 하는바, 빚진 것은 바로 갚아야 하는 이것은 절대적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는 이치이다. 그런데도 당신이 이 사람을 풀어 준다면 그럼 이 사람이 진 빚은 누가 갚는가? 그리하여 자연스럽게 그런 빚 장부, 모든 빚이 바로 예수의 몸 위에 떨어지게 되었다. 당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벗어나게 하였다면 당신이 그들을 대신하여 갚아라. 풀 수 없었던 모든 매듭, 빚진 일체는 제도 받는 사람으로서는 전혀 풀 수 없는 것들로서 모두 예수의 몸에 묶였던바, 그가 지상에 있었기 때문이다. 부동한 층차의 업과 빚이 모두 있는데, 바로 인간 이곳의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후에는 어느 정도에까지 이르렀는가? 그가 제도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그의 몸 위의 매듭은 점점 많아져서 전혀 풀어낼 방법이 없었다. 그도 매듭을 푸는 이런 일들을 할 여력이 없다. 최후에 예수는 이 사람들을 제도하였지만, 자신의 사람 몸은 여전히 풀려나지 못했으므로, 예수는 할 수 없이 이 신체를 포기함으로써 그들을 대신하여 이 빚진 업을 갚은 것이다. 아주 많은 생명의 업력, 아주 많은 분노와 한(恨)이 모두 예수의 여기에 떨어졌다. 좋다, 내가 뭇 신도를 대신해 갚아주자고 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아주 고통스럽게 죽었다. 모든 매듭이 다 육신에 묶였으므로 육신이 사망하자 모두 풀려났다. 이 신체를 벗어버리자 예수도 곧 풀어졌다. 이것이 바로 예수가 왜 꼭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으며, 왜 사람들이 일컬은, 예수가 사람들을 대신하여 수난을 당했는가 하는 원인이다.

여러분이 보았듯이 아주 많은 사람이 와서 모두 이 법을 배우고 있는데 장래에는 더욱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들이 알다시피 수련하려면 이 일들은 모두 사부가 와서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또 다른데, 예수나 석가모니나 그들은 필경 작은 범위의 각자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주 중에 있지 않기 때문에 부동한 층차, 부동한 천체 우주 중의 부동한 생명의 일들을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사람을 제도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중에 포함된 한 층의 생명이며 내가 제도해야 할 한 층의 생명이다. 사실상 나 자신은 결코 난이 없으며 나는 결코 수련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 이곳에서 부딪친 번거로움은 속인 이쪽에서는 아주 적게 체현되지만, 이쪽에서 체현되는 것도 있는데, 다수는 모두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속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처럼 그렇게 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풀 수 있지만 어려움이 너무나 크다. 이는 당신들 어떠한 생명도 상상할 수 없다. 나는 최대한도로 나의 모든 일체를 포기할 수 있으므로 나는 이 일체를 해결할 수 있다. (박수)

방금 이 문제를 언급한 김에 나는 다시 한마디 더 말하겠다. 나의 신변에는 항상 일부 수련생들이 나를 따라다니고 있고, 각 지역에도 일부 책임자・소장(站長)이나 기타 책임자들이 있는데, 당신들이 한 가지 명백해야 할 것은 당신들이 부딪친 일체 일들은 모두 고비를 넘고 있는 것이지만 당신들은 사부를 대표할 수 없다. 어떠한 일에서나 당신들은 모두 내가 이 일에 참가하였음을 알아야 하며 당신들은 바로 나의 각도에 서서 이 문제를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들이 예전에 소홀히 한 문제이다. 나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했다는 그것은 바로 이 법을 겨냥한 파괴이다. 그러므로 이는 당신들이 관을 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는 절대로 사부가 수련하거나 사부가 관을 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곧 진정으로 법과 우주를 겨냥한 파괴이므로 동등하게 대할 수 없다. 이 점을 반드시 명백히 밝혀야 한다. 내가 문제를 처리할 때 나는 그것을 진정한 마로 여기고 대처할 것이지만 그러나 당신들은 안된다! 당신들이 부딪힌 어떠한 일이든지 모두 당신들 수련과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당신들은 모두 그것을 수련으로 여겨야 하며 모두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는 전혀 다른 것이다.

제자: 유럽인들은 입정(入靜)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 같이 보이는데 무엇 때문입니까?

사부: 사실 동양인과 유럽인은 같다. 속인사회 속에서 수련하여 진정으로 고요해질 수 있으면 그의 층차는 이미 아주 높다. 이는 당신이 속인사회에서 직업이 있고 속인 일을 해야 하는 각종 방면의 일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문제를 고려하고 싶지 않아도 그 문제가 스스로 모두 당신의 사상 속에서 작용을 일으키며 자동으로 모두 생각하게 하므로 당신은 고요해질 수 없다. 우리는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하고 끊임없이 집착심을 포기한다. 당신의 집착심이 갈수록 적어질 때 당신이 자연스럽게 갈수록 고요해지고 갈수록 고요해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층차의 체현이다. 당신은 나는 처음부터 꼭 고요한 정도에 도달하겠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현실적이지 못한 것으로 어떠한 방법을 채용해도 도달할 수 없다. 우리에게 극히 특수한 정황이 있는 사람, 곧 인간 이쪽 면은 지극히 약하지만, 저쪽 면은 지극히 강해 그는 반절 정도는 명백하고 반절 정도는 명백하지 않은 상태에 처한 이런 극히 특수한 사람은 일정한 고요함에 도달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은 제외한다. 그가 주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인간이 아닌 신의 그쪽 면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은 제외한다. 그러나 나머지 사람은 모두 시작하자마자 고요해질 수 있는 정도에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종을 구분하지 않는바 유럽인과 동양인은 똑같다.

고요해질 수 없다고 당신은 조급해하지 말라. 연공할 때 당신은 다만 신체가 편안하게, 느슨하게 될 수 있게 하며 당신은 되도록 자신이 함부로 생각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면 된다. 정말로 방법이 없고, 그것이 아직도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있으면, 이것저것을 생각할 테면 생각하라 하고, 당신은 이것저것 생각하는 이 사상을 남이라고 여기라. 당신은,‘너는 생각해라, 나는 너를 보고 있을 것이고 네가 생각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겠다.’라고 말하라. 그러면 이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좋은 점은 당신 자신이 그것은 자신이 아님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으로 바로 이 점이 지극히 진귀하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억제하여 그것이 생각하지 못하게 한다면 이는 수련인이 할 수 있는 표준에 도달한 것이다. 신체가 느슨해진 후면 제일 좋은 연련(演煉)상태에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사상이 고요해질 수 없으면 가장 좋은 연련상태로 들어갈 수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미시적인 데서부터 시작하여 수련하므로 우리의 미시적인 그쪽은 고요한 것이다. 그쪽에서 시작하여 그 면이 갈수록 고요해지고 갈수록 수련이 잘 되었을 때면 표면상에서는 제약을 받는 것이 갈수록 약하게 된다. 표면상에서 좋지 못할수록 표면상에서는 오히려 갈수록 약해지는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우리 아주 많은 사람이 아주 오랫동안 수련하면서 사상 중에 아직도 좋지 못한 사상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데, 당신이 그것을 억제하려면 바로 억제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비록 갈수록 좋지 못하고 갈수록 표면화되지만, 그것은 오히려 갈수록 약해지는데, 그것에 뿌리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 서양의 한 연공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올바른 것을 구별하며 생활해야 합니까? 우리는 마땅히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합니까?

사부: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렇다. 내가 말한 자연스러움에 따르라는 말도 부동한 상황에서 한 것이고, 또한 당신들에게 모든 일을 다 자연스러움에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회사에 출근할 때 사장은 당신에게 봉급을 줄 것인데, 당신은 일하는 중에 흐리멍덩한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정말로 이 봉급을 받을 자격이 없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모두 마땅히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 주는데, 그 자연스러움에 따르라는 이 말은, 어디에서 말하는가를 보아야 하는데, 수련 중에서는 자연스러움에 따라야 하지만, 우리는 또 인위적으로 자신의 좋지 못한 그 일면을 억제해야 하며 또 노력하여 닦아야 하는데, 이것마저도 또한 그 자연스러움에 따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우리 여러분도 모두 이렇게 수련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련 중에서 이미 아주 명확하게 주동적으로 자신이 수련함을 알고, 생활 중에서 우리는 되도록 속인사회 형식에 부합해야 하므로, 속인의 직장 일과 당신의 수련을 구분해야 하고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 직장은 직장이고 수련은 수련이다. 그러나 이런 점이 있는데,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에 대한 높은 표준의 요구가 직장 일을 하는 데에 체현되어 나올 것이며, 사회 중에서, 가정 중에서, 부동한 사회 환경 중에서 체현되어 나올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어디에서나 모두 좋은 사람인지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것인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우리가 말하는 자연스러움에 따르라는 그 개념은 과거에 말한 것과는 같지 않다. 일체에 모두 관여하지 않고 거기에 앉아서 마치 출가한 사람처럼 하는 그것이 자연스러움에 따르는 것인가, 그런 것이 아니다. 절대로 그런 개념이 아니다.

만약 당신이 어떤 번거로움을 만났으면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우리 자신은 우선 나 자신이 무얼 잘못하여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수련하는 사람이 만약 여기에 도달할 수 없다면 발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마다 어떤 번거로운 일에 봉착했을 때면, 모두 우선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을 돌아보아야 한다. 나는 항상 이런 이치를 말하는데, 바로 우주 중의 일체는 모두 평온한 것이다. 당신 자신이 잘못을 저질러 틀어짐이 생기고, 다른 사람과 틀어지고, 주위의 일체가 모두 잘 되어 가지 않는 것 같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긴장이 생겼다. 이때 스스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고, 당신이 자신의 잘못된 곳을 바로잡아주면 일체가 평온해지고 또 꼬인 것이 풀어짐을 발견할 것이다. 나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무슨 쟁론함을 주장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에게 정말로 번거로움이 나타났고, 보기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불공정하게 대하고 있다면,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아마 당신이 전생에 다른 사람에게 진 빚일 수 있으므로, 좀 참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한 속인으로서도, 두 사람이 서로 대립하면 나중에는 기분 나쁘게 헤어지고 모순이 생겨 두 사람은 뒤틀린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모순의 시간이 길어지면 갈수록 풀기 어려워져 최후에는 원수가 된다. 우리는 그것을 참고 양보할 수 있으며, 그것에 관여하지 않고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 중국에는, 한 걸음 물러서면 가없이 넓다는 한마디 말이 있다. 당신이 여전히 앞으로 밀치고 맞서면 당신은 정말로 길이 없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서 마음을 내려놓고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 이러면 당신은 정말로 가없이 넓고, 또 다른 광경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런 일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속인과 똑같이 쟁론하고 똑같이 다투며 똑같이 모순 속에서 작용을 일으킨다면, 나는 그러면 속인과 똑같다고 말하는데, 이렇지 않은가? 실제로 바로 이런 것이다.

제자: 우리가 어떻게 해야만 자신의 층차를 알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주관적으로 말하면, 초기에 나는 당신들이 자신의 층차를 알게 되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이렇게 큰 법 속에 용해되는데, 내가 예를 들자면 마치 용광로의 쇳물처럼 만약 나무 부스러기 하나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당신은 그것의 그림자조차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렇게 큰 법이 사람을 용해하므로 당신 신체의 업력・사상업력・각종의 것들은 일순간에 모두 없어질 것이다. 만약 우리가 완전히 이렇게 해준다면 당신은 수련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내가 다시 생명을 만드는 것과 같으므로 당신이 수련했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렇게 할 수 없으며 당신 스스로 수련하게 하고, 당신 스스로 자신을 개변하게 해야 한다. 이 법 그는 아주 크다. 수련과정 중에서 당신이 오직 착실하고도 착실하게 자신을 하나의 수련자로 여겨 수련하고 당신이 끊임없이 책을 본다면 당신은 끊임없이 승화・제고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우리의 보조수단인 연공을 더하면 당신의 제고 속도는 아주 빠른바 이것이 바로 가장 빠른 일종의 수련형식이다.

초기에 내가 만약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이 어떤 경지에 있는가를 알게 한다면, ‘아! 내가 이렇게 신통한가! 내가 이미 이렇게 수련하였구나.’ 하고 당신의 마음은 잘 파악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의 신체 주위에 발생한 진실한 변화를 보게 한다면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는 속인의 칠정육욕, 각종 집착심을 지닌 것으로 당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왜냐하면, 당신 속인의 사상은 아직 아주 강하므로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너무 일찍 알게 할 수 없는바, 바로 당신이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하고 제고하게 하여 가장 빠른 속도로 제고토록 보장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사(上士)는 도를 들으매 깨달음에 의거하여 원만을 이룬다. 이것이 바로 가장 대단한 것이다. 또한, 가장 빠른 것이고 정말로 가장 빠른 것이다.

우리 일부 제자들의 정황은 다 달라서 어떤 사람은 열린 상태에서 수련하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바로 절반 닫힌 상태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그는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비교적 똑똑하게 보는데, 일체를 다 알고 있다. 이는 소수의 상황으로서 다수는 잠겨서 수련한다. 오로지 책을 보고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은 끊임없이 자신을 제고하게 되고, 당신은 끊임없이 천기(天機)를 깨닫게 되는데, 이 법리 자체만 해도 충분히 당신들로 하여금 신심을 충만케 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사회의 사람은 속인사회 중의 이른바 각종 가짜 현실에 의해 너무나 깊게 미혹되고 너무나 심하게 집착하여 완전히 스스로 헤어나기 어렵다. 법과 그 개인적 이익의 집착 사이에는 항상 대결이 발생하고 있으며, 심지어 그는 법을 포기하더라도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런 일들도 말하기가 몹시 어렵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사회는 이미 이러한 사람이 본성을 알지 못하고 사람의 표준을 알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좋지 못할수록 우리 수련에 가장 좋은 수련환경을 제공해 준다. 복잡한 환경일수록 고인을 수련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런 이치이다. 몇 년 전 중국에서 많은 기공사가 나타났는데 속인 중의 사람들은 ‘아, 대단합니다. 기공 대사님, 정말로 능력이 있군요.’라고 모두 그들에게 아주 탄복하였다. 그가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 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데, 심지어는 금전도 있다. 물질 이익에 대한 추구도 갈수록 심각해져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내려오고, 공도 없이 철저히 끝장났는데, 그의 사부마저 그에 관여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예전에 그들의 수련은 모두 속인이 모르는 환경하에서 수련했기 때문이다. 산속에서나 사람이 모르는 환경 중에서나 사찰에서나 기타 종교의 그런 형식 중에서 수련하여 그는 속인사회의 현실과 복잡한 이익에 접촉되지 않았고, 이런 큰 염색 독(缸)을 지나오지 않았다. 일단 사회와 접촉하면 복잡한 사회에 의해 오염될 것이고, 최후에는 속인과 같이 명리를 추구하는 속인으로 변하고 만다. 왜냐하면, 그들의 수련방법은 속인 중에서는 쓸모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이 큰 염색 독 속에서 수련하고 있고, 접촉하는 일체는 모두 이런 것인데, 우리가 만약 탈태하여 나올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대단한 것이 아닌가?! 당신은 왜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 아는가? 이는 당신이 높게 수련됨을 촉성하는 가장 기본적 보증인데, 바로 이 속에 그것이 너무나 난잡하다는 것이다. 당신이 만약 나올 수 있고, 설령 당신이 오늘 수련하고 싶다고 말하며, 마음을 조금 움직이기만 해도 당신은 대단하다. 이런 하나의 환경 중에, 고생 중에 잠겨있으면서도, 당신에게 아직도 이런 마음이 있을 수 있다니 말이다.

표면상, 형식상의 고생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정하게 마음을 에고 뼈를 깎는 고생이란 그 마음을 버리고 집착을 내려놓을 때 가장 고생스러운 것이다. 이 복잡한 환경은 당신이 고층차로 수련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조건이 되었다. 그럼 반대로 말하면 이 대법도 오직 이런 가장 좋지 못한 형식하에서만 비로소 그 위력을 나타낼 수 있다. 좋은 사회 환경 중에서는 이 대법이 필요 없다. 그렇다면 좋은 환경에서는 역시 법을 바로잡을 필요가 없고 세간에는 다만 예수와 석가모니여래 법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현재의 종교는 말법시기에 들어갔으며 모든 종교가 사람을 제도할 수 없게 되었는가? 사람들은 부처에게마저 감히 욕을 하고, 예수상조차도 발아래에 딛고 오줌을 싸는 이런 때인데, 당신이 여전히 그에게 이 법을 배우게 하고, 그를 제도하기는 이미 불가능하다.

제자: 저는 정성을 들여 수련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하면 대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사부: 나는, 매 사람의 사상에는 속인사회 중에서 모두 많은 관념이 후천적으로 형성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속인사회의 가짜 현실의 지식을 받아들여 당신으로 하여금 이 속에 미혹되고 더욱 깊이 미혹되게 한다. 당신의 사상 중에서 각종 관념과 각종 고정적인 사상이 형성되는데, 모두 당신의 법 얻음을 저애하는 요소이다. 당신 머릿속에서 생긴 의문은 당신이 속인의 현실 중에서 인식한 것으로 법을 가늠하여 조성한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의문이 나타난 것이 아닌가? 분명코 이러하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은 속인의 지식, 속인의 사상으로 형성된 관념을 가지고 법을 가늠하는데, 속인은 바로 가장 낮은 층차가 아닌가? 속인은 바로 미혹 중에 있지 않은가? 그에게 뭐가 있어서 우주의 진리와 비교할 수 있는가? 모두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 이 대법은 또 속인의 가장 낮은 형식에 입각하여, 인간의 언어로써, 가장 낮은 표현 형식으로 그를 말하므로, 보기에 마치 아주 표면적인 것 같다. 그러나 당신이 배워 나아가기만 하면, 그는 배울수록 높고, 배울수록 깊어서 헤아릴 수 없으며, 멀어서 미치지 못하는 것을 당신은 발견할 것이다. 하지만 속인의 지식은 이런 내포가 없다. 만약 당신이 자신의 그 믿지 않는 것과 의문을 모두 당신의 사상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대단히 착각한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속인 중에서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으로서, 당신 자신은 그것을 자신으로 여기지만 그러나 그것은 결코 당신이 아니다.

제자: 저는 연공하기 전부터 이미 천목이 열려서, 점치기에 의지하여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입니다. 저의 일을 포기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만약 연공하지 않고 속인이라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나는 수련하는 사람에게 법을 말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사람마다 모두 와서 대법을 수련하라는 것이 아닌바, 당신이 느끼기에 수련할 수 있으면 당신은 수련하고, 당신이 느끼기에 수련할 수 없으면 수련하지 않아도 된다. 아마 장래의 인류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런 종류의 점을 치는 소도(小道)나 풍수 보는 것이 존재할 것이며, 심지어 사람에게 어떤 방법을 취하여 병을 치료하는 이것도 아마 존재할 것인데, 옛날부터 전 세계에 모두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한 수련자로서 당신이 앞으로 보게 되는 것 또한 갈수록 높아질 것이고, 당신이 한 말의 에너지도 갈수록 커질 것이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점을 보아주면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인간의 일은 어떤 때에는 안정적이지 못한 것이어서 아마 이렇기도 할 것이고, 아마 이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이 사람이 믿고 굳게 믿는다면, 그 자신도 그것의 작용을 가중시킬 수 있다. 당신은 에너지가 있어서 당신이 한 말은 아마 그 불안정한 요소를 정(定)해지게 할 것인데, 본래는 마땅히 그렇지 않아야 할 것이었다. 당신이 본 것은 결코 실질적인 것이 아니고 그와 다른 인연관계가 있는데, 당신이 얘기하여 정(定)해지게 된다면, 당신은 나쁜 일을 한 것으로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업력은 수련 중에서 당신에게 가외로 더해진 것인데, 당신의 고비, 당신의 난은 이미 여기에 배치되어 있다. 당신으로 하여금 한 고비, 한 난을 넘게 해야 하는데, 당신이 가외로 더하여 들어온 난은, 당신으로서는 넘을 방법이 없다. 영향이 크거나 결과가 좋지 못한 심각한 일을 했다면 그럼 당신은 이 고비를 넘어가지 못할 것이고, 당신은 수련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수련하는 사람은 수구(修口)를 말하는데 이 점을 당신은 전혀 해내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직접 당신이 본 것을 당신의 입으로 말한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천기를 누설하는 것이며, 또한 무책임하게 함부로 속인에게 말하는 것인데, 이래서 되겠는가? 이것은 더욱 안 된다.

그 외에 내가 또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무릇 점을 보는 것은 자신의 요소 외에, 절대다수는 모두 외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그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한 생명에 대하여 말한다면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수련할 방법이 없다. 나는 여기에서 다만 사람에게 이 일의 이치를 알려줄 뿐, 내가 속인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수련하려 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나는 당신을 책임져야 한다. 당신이 만약 이렇게 한다면 당신에게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코, 그렇다면 나의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다만 수련하는 사람에게 도를 말하고 법을 말할 뿐이다. 수련할 수 있으면 수련하라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 대하여 책임져야 한다. 우리 또 바꾸어 말하면, 한 대법제자로서 어쨌든 당신으로 하여금 생활할 수 있게 해야 하는바 당연히 이러해야 한다.

제자: 저는 어떻게 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릴 수 있습니까?

사부: 두려움도 집착이다. 그것은 당신의 의지가 강한가, 그렇지 않은가의 문제이므로 마땅히 극복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연공만 하면 잠을 잔다고 말한다. 그것도 당신 자신의 의지로 그것을 극복해야 하는데 그것들은 비록 마는 아니지만 그것들이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마의 역할을 할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돌파하지 못하면 그것이 당신에게 작용을 일으킨다.

제자: 저는 아직 아랫배 부위의 法輪(파룬)이 돌고 있는 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사부: 사람마다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민감한 사람은 에너지가 움직이면 “아, 어찌하여 이렇게도 강렬한가?”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뱃속에서 천지가 뒤집혀도 그는 감각이 없다. 사람마다 신체 정황이 다르므로 누구의 층차가 높고 낮음을 감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절대 감각으로 볼 수 없다.

제자: 저의 천목은 줄곧 열리지 않는 것입니까?

사부: 당신은 추구하고 있는가? 당신이 만약 수련성취 했는데도 열리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기엔 그것은 잘못되어가고 있다. 당신의 뜻은 당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열리지 않을 것인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당신이 그것을 추구하는 이런 사상이 있다면, 설령 조금이라도 있다면 당신으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없다. 볼 수 있어도 당신으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마음을 제거하지 못했고, 당신이 그 집착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 집착을 포기하고 그것을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때가 되면 당신은 어떤가를 보라.

백인 수련생 그는 또 동양 수련생과 다르다. 왜냐하면, 동양, 특히 중국 그것의 문화 연원(淵源)은 비교적 깊기 때문이다. 그것은 5천 년・6천 년의 문화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이전 한 시기의 사전문화(史前文化)를 계승했기 때문에 그것의 뼛속에・세포 속에 모두 아주 깊은 문화의 내포가 있다. 그러나 백인사회의 문화는 건립된 지 2천 년일 뿐이기 때문에 그것의 미혹은 아주 쉽게 타파된다. 타파되면 그는 거의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은 어디가 다른가? 당신이 그에게 왜 그런지 알려주면 그는 생각하기를, “아 이것은 맞는 말이다. 그럼 그것은 또 왜 그런가?”라고 한다. 당신이 또 그에게 왜 그런지 알려주면 그는 또 “아, 왜 그런 것이 또 왜 그런가?”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당신은 그에게 끝까지 풀어주어야만 그를 전부 열어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왜 우리 백인 수련생 중 많은 사람이 배운 후에 어렴풋이나마 볼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바로 이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속인사회의 표면의 것에 의해 봉쇄된 것이 아주 적은바, 다만 그 이치일 뿐이다. 속인의 이치가 그를 속박하고 있으므로 이치를 타파하면 속인 중에는 그를 속박하는 것이 더는 없다. 바로 이런 뜻이다. 물론 모두 다 이런 것은 아닌데 감성적인 인식과 이성적인 인식은 또한 다르다. 만약 진정하게 법을 마음속까지 배울 수 있고 수련 중에 진정하게 법을 인식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것은 시작할 때의 감성 인식과는 또 다른 것으로서 이성(理性)적으로 승화하여 법을 인식할 수 있다.

제자: 출가인에게 어떻게 홍법합니까?

사부: 나도 늘 출가인을 생각하고 있다. 특히 지난 2년 동안 나는 그들에 대해서 늘 아주 조급해했다. 석가모니, 예수 이런 대각자가 창립한 수련이기 때문이다. 계승하여 수련하는 제자가 있는데 어쨌든, 그들은 불문(佛門)의 제자로서 나는 늘 그들을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말법시기 이 시점에 이르러 종교 중에는 진정하게 수련하려는 사람이 확실히 많지 않다.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발견하였다. 허다한 출가인들 그는 종교를 지키는 것이지, 신불(神佛)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그의 마음은 수련에 있지 않으며 그는 완전히 종교의 형식을 지키고 있는데, 그리하여 이 집착이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종교 형식 외에는 불법(佛法)이 없으며 그 외 것은 모두 사문왜도라고 여기는데, 이것은 그들이 법을 얻는 것을 심하게 저애하는 가장 큰 요소이다. 그러나 또 진정한 사상이 있는 사람도 있다. 진정하게 이치상에서 일체를 가늠할 수 있는 이런 사람도 있는데 대단하다. 그는 나의 책을 보고 있는데, 다 보고 나면 그는 이것이 무엇인지 안다. 왜냐하면, 사람은 모두 불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마치 그 전기와 같이 양극이 부딪치면 “팍” 하고 연결이 된다. 그에게 불성이 존재하지 않으면 연결되지 않는다. 이 불꽃이 튀지 않으면 전기가 통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어떤 출가 제자는 곧 다른바 나는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출가한 목적은 수련을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오히려 이런 정념(正念)이 없다. 물론 나는 종교 중의 일을 많이 말하지 않겠다. 이것은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이다. 만약 당신이 그의 거사이거나 당신이 그의 친구이거나 친척이라면 당신은 그에게 말해 줄 수 있는데 그가 수련하고 싶으면 수련해도 되고 수련하고 싶지 않으면 그만둬도 된다. 우리는 “당신이 와서 수련하라, 당신이 수련하지 않으면 정말로 애석하다! 반드시 나와 함께 가야 한다!” 하며 억지로 사람을 끌어서는 안 된다. 마음이란 인정(人情)으로 개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움직여야만 하는 것이다.

제자: 사찰에서 고정적인 직책이 있는 승려는 어떻게 실속 있게 수련해야 합니까? 환속해야 합니까?

사부: 전혀 환속할 필요가 없다. 왜 환속할 필요가 없는가? 내가 말하는 불이법문(不二法門) 문제는 주로 우리 현재의 수련하고 있는 법에 대하여 말한 것이다. 과거에는 불경의 매 한 글자의 배후에 모두 부처의 형상이었다. 현재는 당신이 펼쳐보아도 당신은 보아낼 수 없으며 석가모니와 예수 이 몇 개 이름의 배후에도 모두 그들의 형상이 없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책은 사람을 제도하는 능력이 없으며 단지 흰 종이에 검은 글자일 뿐이다. 또 법사(法事)를 하는 것도 역시 일종의 종교 형식일 뿐으로 나도 그것을 속인의 직장 일로 여길 뿐이다. 사실 많은 화상(和尙)이 이미 자신의 이런 종류의 형식을 직장 일로 여기고 그들도 자신이 출근하고 봉급을 받고 있다고 여긴다. 중국 대륙의 화상은 과장급, 처장급으로 봉급을 받는데 듣자하니 또 국장급도 있다고 한다. 그들이 석가모니 원래의 것을 개변하였지만 사람들은 모두 석가모니가 전한 법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이 지경에 이르면 물론 석가모니도 관여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일체는 이미 이러한 것으로 나는 그것을 직장 일로 여길 뿐이다. 그가 경을 읽거나 법사를 해도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가 대법을 수련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형식에 구애되지 않는다. 나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이라고 했다. 속인 중의 어떠한 형식도 모두 이렇게 큰 법에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느슨하게 관리하며 사람의 마음만 본다. 당신이 수련하면 나는 당신을 책임진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책임은 속인이 보아낼 수 없기 때문에 속인사회의 어떠한 형식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우리가 기왕 형식이 없다면 그럼 속인 중의 일체를 나는 모두 그것을 직장 일로 여기는데 나는 다만 이렇게 볼 뿐이다. 화상인 당신이 법사를 하고 싶으면 법사를 해도 되는바, 아무튼 당신은 자신이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음을 알면 된다. 정진에 노력을 많이 기울여야 하는데 바로 이렇게 대하는 것이다. 다른 종교도 역시 마찬가지다.

제자: 청정심(淸淨心)이란 모든 집착을 모두 제거해야 하는 것으로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것을 모두 없애야 합니까?

사부: 진정하게 청정심 상태에 도달했을 때에는 이러한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속인 중에서 수련하므로 단번에 당신으로 하여금 해내라고 한다면 당신은 즉시 성불하므로 불가능하다.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당신은 수련과정이 있어야 하고, 심후(深厚)한 사상 기초가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은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심화하여, 자신을 제고하고, 더더욱 제고함으로써 점차 도달하는 것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정말로 단번에 도달하라고 하면 당신은 아마 놀라서 감히 수련하지 못할 것이다. 당신 사상은 아직 그렇게 높지 못하고 속인 중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천천히 자연적으로 당신이 그다지 심혈을 기울이지 않아도 그는 역시 도달할 수 있다. 오로지 당신이 수련만 하고 책을 보기만 하면 도달할 수 있다. 법리는 당신의 일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억지로 하는 것도 유위(有爲)이다. 당신은 다만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겨야 하는데, 이 점은 명확하다. 여러분이 자신의 마음을 닦고 되도록 좋지 못한 일을 하지 않으면, 이것은 유위라고 하지 않으며 이는 가급적 당신의 선천적 본질에 근접하는 것이라고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과학이 종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과학연구의 일을 반드시 잘해야 하는데 이런 상태는 늘 매우 모순됩니다.

사부: 나는 과학이 종교라고 했고 이미 아주 자세히 말했다. 그것이 왜 종교인가? 또한 완벽한 종교인가? 그것은 德(더)를 말하지 않고 또 신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이 신의 존재를 볼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은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응보가 있고 좋은 일을 하면 복된 보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누가 착한 일을 하면 복된 보답을 받고, 나쁜 일을 하면 악한 보답을 받는다며, 신이 존재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곧장 과학의 이론으로 당신을 부정하고 당신을 공격할 것이다. 심지어 정교일지라도 그것은 역시 공격하는데 인류의 도덕을 파괴하는 것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사람이란 심리상의 속박이 없으면 어떠한 나쁜 일이든 모두 감히 하는데 그렇다면 이 점을 놓고 말할 때 이 과학 그것이 바른 것인가 아니면 사(邪)한 것인가. 그것은 바로 사한 작용을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현재의 사람은 왜 도덕적으로 이렇게 심하게 타락했는가? 바로 사람에게 바른 신념이 없는 것으로, 특히 서양인 당신들이 실제 진정하게 믿는 것은 종교가 아니고 당신들의 과학이다. 당신들 사상의 깊은 곳에서 생각해 보라. 당신들로 하여금 가장 믿게끔 하는 것은 정말로 과학이다. 무엇이든 당신에게는 모두 부차적인 것이 되었고 그 과학이 바로 아주 중요한 것으로 되었는바, 내가 당신들에게 말해 줌은 그것이 수련 중에 장애이기 때문이다.

듣기로는 로마 교황청이 과거에는 사람이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을 인정하지 않고 천주(天主)가 흙으로 만든 것이라고 여겼다. 현재는 로마 교황청도 인정한다는데,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됐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므로 그는 이미 그들의 주(主)를 부정하였다. 이 과학 그것은 얼마나 큰 힘이 있는가? 현재의 사람은 모두 믿고 있다. 나는 인류의 어떠한 한 가지 일, 큰 것에서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바, 나는 예부터 지금까지 인류 발전 중의 일체를 똑똑히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속인 중의 일에 속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말하는 것은 모두 당신들 수련과 관계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이 인식한 거의 모든 기점 즉 물질・우주・생명에 대한 인식의 기점에는 모두 착오가 있다. 호주 상공의 그 구멍, 바로 남극 상공에 나타난 오존(Ozone)층의 뚫어진 구멍을, 현재 과학은 산업 폐기가스와 냉방장치에 사용되는 프레온(Freon)이라 부르는 것 등의 폐기가스에 의해 조성된 것이라 하며, 이것 때문에 오존층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우주 중의 일체는 모두 생명이 있으며 모두 살아있다. 방대한 기체(氣體), 당신은 그것을 볼 수 없고 층층 층층 얼마나 있는지를 당신은 헤아릴 수 없지만, 그들은 모두 생명이며 모두 신이다. 현대 과학이 가져온 산업이 인간의 생존환경을 심하게 파괴하고 있는데, 이 점은 아주 확실하다. 남극 상공의 구멍은 정말로 그 기체가 파괴되어 조성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신을 파괴할 수 없다. 그 구멍은 왜 유럽이라는 이 공업이 발달한 지역에서 나타나지 않는가? 왜 반드시 사람이 없는 남극에서인가? 이는 신이 지구에 폐기가스・유독가스가 너무 많은 것을 보았기 때문인데, 몸소 창문 하나를 열어 이 폐기가스를 내보내고 다시 닫는 것으로서, 전혀 현재 과학이 인식한 그런 것이 아니다.

현재 인류의 발전은 이미 과학이 모든 영역을 조종하는 데로 진입했다. 그러므로 현재 인류는 그것을 벗어날 수 없고, 그것은 이미 인류사회 발전의 현실이 되었다. 당신은 그것에 따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서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당신은 과학연구를 잘해야 한다. 이것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고 한 사람 혹은 한 민족 혹은 한 나라가 벗어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기왕 직업인만큼 당신은 그것을 잘하고 당신의 직책을 다하며 당신의 직장 일을 잘해야 하는바 다만 이럴 뿐이다. 당신은 당신이 과학 때문에 어떠어떠하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과학은 이미 빈틈없이 인류의 일체 영역을 점령하였다. 인류의 일체는 거의 모두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사람들이 이렇다 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수련인으로서 나는 다만 당신에게 이 이치를 알게끔 하려는 것이고, 결코 당신으로 하여금 지금의 인류사회로서는 이미 벗어날 수 없게 된 이 현실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며 당신으로 하여금 직업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과학은 종교일 뿐만 아니라, 완벽한 종교라고 말한다. 그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먼저 물질적으로 인식하게 한 다음, 당신을 정신적인 신앙에 도달하게 한다. 반면 진정한 종교는 당신으로 하여금 이치상으로 알게 하고, 당신의 사상 중에서 그것을 진정으로 알게 하여 최후에는 무형에서 유형에 도달하게 한다. 최후에는 물질상에서도 그것을 진정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되어, 원만을 이룬 후 천국으로 돌아간다. 그것은 이런 과정이다. 과학 그것은 반대로 된 것이다. 그것은 물질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람의 정신을 이끄는 반면, 종교는 정신상의 인식에서 물질적 변화를 이끈다. 내가 이 이치를 말하는 것은 당신으로 하여금 그것을 알게끔 하려는 것이다. 기왕 그것이 이미 사회의 현실로 되어버렸다면, 나는 이미 인간이 생존을 의지하게 된 과학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고 나는 단지 현재의 과학이 존재하는 진실한 정황을 말할 뿐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인과(因果)관계와 자비심에 대하여 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자비를 언급하니 나는 당신의 사상을 바로잡아 주고자 한다. 내가 당신에게 무엇이 자비인지 알려주겠다. 사람들은 속인사회 중에서 자신이 편안하게 지내고, 재해가 없으며, 난이 없고, 온종일 아주 편안하며, 유유자적하고, 돈도 부족하지 않으며, 필요한 것이 다 있다면 사람은 하느님(上帝)이 사람에게 자비하다고 느끼고 사람에게 아주 잘 대한다고 느낀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하느님은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정말로 이렇다면 그것은 당신에게 아주 좋지 못하게 대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이치는 모두 반대로 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람이 세상에 살면 사회와 왕래가 있어야 하는데 그렇다면 사람은 업을 지을 것이다. 예수는 사람에게 죄가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죄가 있으므로 비로소 속인 이 공간에 떨어져 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에서 세세생생 모두 업을 짓고 죄를 짓고 있는데, 당신이 편안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업을 갚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업을 갚지 않고 거기다 금생에 진 업을 더한다면 다음 생에는 당신은 인체마저도 얻지 못하고, 당신은 아마 더욱 좋지 못한 것으로 전생할 것이다. 당신이 거듭 업을 지으면 당신은 지옥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고, 더 아래로 떨어지면 바로 훼멸돼 버리는데, 그렇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이 이치로 보았을 때 하느님이 당신을 어떻게 대해야만 좋은 것인지. 이것이 바로 인과(因果)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한 자비에 대하여 어떻게 보는가? 만약 한 사람이 정말로 괜찮다면 이 일생 중에서 그는 허다한 마난(魔難)에 부딪힐 것이다. 이런 마난을 만나는 목적은 그로 하여금 그가 예전에 진 업을 갚게 하고 이 일생에 다그쳐 재빨리 다 갚게 하려는 것이다. 인체를 가진 이 일생에서 빚을 다 갚고 천국으로 가 영원히 복을 누리도록 하려고 속인 중에서 그는 고생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어느 것이 진정한 자비인가? 부처가 문제를 보는 것과 사람이 문제를 보는 것은 절대로 다르다. 속인은 부처가 그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복을 누리게 하면 이것이 바로 부처가 그에게 자비를 베풀고, 신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었다고 여긴다. 반대로 그가 고생하면 그는, ‘아이고,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돌보지 않는가? 나는 실의에 빠진 사람인데!’ 하고 하늘과 땅을 원망한다. 하느님은 오히려 당신을 돌보면서 당신에게 업을 갚고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영원히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은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자비이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신들은 수련하고 있는데, 나는 왜 당신들의 모든 고생을 다 제거해 버리지 않는가, 당신들이 고비를 넘을 필요도 없고 당신들을 위로 올려다 놓으면 끝이 아닌가, 이것은 얼마나 자비한가! 이러면 안 된다! 당신들이 진 빚은 당신들 자신이 갚아야 한다. 빨리 갚고 빨리 갚아야 내가 빨리 당신들을 제도할 수 있는, 이런 이치가 아닌가? 나는 다른 각도에서 무엇이 자비인가를 말했다. 법은 당신들에게 말해 주는 것이지 속인에게 말해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영원히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속인은 영원히 미혹 중이며 그는 이런 이치를 알 수 없는데,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인간이다. 그러나 당신들 수련생은 바로 수련생이며 수련하는 사람과 속인은 영원히 다른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한 가지 알려 줄 수 있는 것이 있다. 천하의 일은 우연한 것이 없는바, 신은 거기에서 지켜보고 있다. 이 공간에는 윤회전생을 책임지는 신이 있고 사회 안정을 책임지는 신이 있으며, 사회체계를 배치하는 신이 있고 지구 안정을 조종하는 신이 있으며, 공기・각종 공기 성분을 책임지는 신이 있고 또 부동(不同)한 신이 지구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가 하며 지켜보는 신도 있다. 이 속에는 어떠한 신도 모두 있는데 그가 이 일을 관여하지 않겠는가? 마음대로 속인사회 중에서 어떤 것이 나타나게 한다 하여 바로 어떤 것이 나타날 수 있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제자: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는 고층 공간에서 이 두 종류 물질 중 어느 종류가 더욱 眞(쩐)・善(싼)・忍(런)에 근접합니까?

사부: 이렇게 이해할 수 없다. 전체 우주는 모두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자. 이 두 종류의 물질은 모두 眞(쩐)・善(싼)・忍(런)이 우주 중에서 육성한 것이다. 만약 이 우주 중에 바른(正) 일면만 존재한다면, 생명에 대해서 말할 때 너무나 가련하여 그는 행복이 없고 또 고통도 없어서 사는 것이 조금도 재미가 없다. 마난이 있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그가 행복을 얻었을 때 소중히 하고, 귀중히 할 줄 알며, 비로소 살맛이 남을 느낀다. 그러므로 우주 중에는 바른(正) 일면이 존재하고 또 생명에 부(負)적인 일면이 존재하도록 배치하였고 동시에 또 생명에 소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제자: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한 후 대법을 보호하는 것에 대하여 말할 때 나는 피가 끓는 열정을 느낍니다. 사부님께 여쭙겠습니다. 이런 상태가 맞습니까?

사부: 맞지 않는다. 맞지 않는다. 여러분은 부디 주의하라! 내가 방금 말한 이 문제는 바른(正) 일면이 있고 부(負)의 일면도 있다. 부의 일면이 아래로 와서는 악한 일면이며, 바른 일면이 아래에 와서는 바로 선한 일면이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절대로 속인사회의 사람이 하는 것처럼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우리는 반드시 모두 선한 일면으로 작용을 일으켜야 한다. 석가모니 부처는 중생에게는 모두 불성이 있다고 말하였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중생은 한편으로 또한 모두 마성도 있다. 곧 마성과 불성이 한 생명 중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사람이 화를 내고, 격렬하며, 이지(理智)가 없는 상황은 바로 마성이다. 사람이 이지적이고, 온화 선량하며, 자비로운 상태의 것은 바로 불성이다. 두 종류의 부동한 성향은 부동한 상태에서 체현되어 나올 것인바 우리는 영원히 선한 일면을 사용해야 한다. 텔레비전 방송국이 이전 한 시기에 우리에 대해 사실에 어긋난 보도를 한 것에 대해, 우리가 그들을 찾아갔을 때 여러분은 모두 아주 이지적이고 선의적으로 그들과 말했다. 그 당시에 간 사람들은 아주 많았는데 사람이 많다 하여 반드시 좋지 못한 것은 아니다. 태도상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선악이 구별되는데, 완전히 온화하고 선량한 태도로 이치를 말하고 국가정치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공공시설도 파괴하지 않으며 여러분은 모두 수련인답게 그들과 더불어 우리의 도리를 말했다. 그들은 매우 감동하였다. 이런 사람들을 본 적이 없다. 반대로 인류사회는 왜 폭력이 있는가? 속인은 어떤 문제를 설명하려 하거나 어떤 이치를 따지고자 할 때 가두시위를 택하는데, 폭력을 휘두르고, “와-.” 소리 지르며 심지어 무력까지 사용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마성의 일면이 존재하는 속인이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단지 선한 일면을 사용할 수 있을 뿐 악한 일면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속인은 선과 악 두 방면을 모두 사용하는바 속인은 이치를 말하면서도 폭력을 쓴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는 때리려 하고 욕을 하려 하는데, 속인은 선과 악 두 면이 모두 있는 것이다.

제자: 스승님께서는 우주를 청리할 때 지구로 도망쳐온 외계인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들의 존재형식은 부체(附體)입니까, 아니면 다른 어떤 형식입니까?

사부: 내가 우선 외계인은 어찌 된 영문인가 좀 말하겠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이 지구가 이 우주 중에서 생명이 있는 유일한 성구(星球)는 아니며 지구도 이 한 차례만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 지구 이 위치에 이전에 이미 이전의 지구가 있었던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전의 그런 지구는 폐기하기도 하고, 어떤 것은 폭파해 버리기도 했는데, 여러 차례 존재한 적이 있으며, 이 숫자는 이미 상당히 많다. 매 한 차례 이 지구가 최후의 단계에 있을 때에는, 모두 생명이 가장 부패하고 물질이 불순하게 되었을 때로, 더 놔둘 수가 없었다. 전체 지구가 하나의 업력구(業力球)로 변했다면 도태시켜 버려야 했다. 생명은 전생(轉生)하는 것인지라 전생하여 흙·돌・식물・물질로 되는데, 무엇으로 전생되더라도 그는 업력을 지닌 채 가게 된다. 도처가 모두 업력으로 덮이면 바로 업력구로 변하게 되고, 그러면 바로 도태된다. 지구에는 그래도 좋은 사람이 좀, 아주 적게, 극소수가 있는데, 그들을 골라내어 삼계 중의 다른 별에다 갖다 놓는다. 그러나 이 지구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미 얼마나, 몇 번이나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매 차례 모두 남겨놓은 사람이 있다. 그래서 기나긴 세월 동안에 이렇게 남겨진 생명 또한 많아졌다. 매 한 시기 신이 사람의 형상을 만듦에 모두 같지 않게 했으므로 차이가 매우 컸다. 그리고 또 일부는 다른 성구에서 생기게 된 것인데, 이것이 바로 외계인이다.

그것들은 그런 역사적 기록처럼 되었던바 마치 한 페이지의 역사가 남겨놓은 흔적을 거기에 놓아둔 것처럼 단지 이런 작용을 할 뿐이다. 그것은 그 당시 지구 말기에 남겨놓은 것으로 그것은 그 당시의 기술을 가지고 그 성구로 갔으므로 출발점이 비교적 높다. 긴긴 세월 중에서 그것들이 장악한 우주의 상황은 이미 현재의 지구인을 매우 멀리 초월하였다. 그것의 신체는 다른 공간에 진입할 수 있고, 다른 공간마당에서 다른 공간마당의 상태에 적응할 수 있는, 이미 이런 정도에 도달하였다. 그것이 타고 날아다니는, 사람들이 비행접시라고 부르는 그 비행기구는 또 다른 공간에 들어갈 수 있고, 다른 시공에서 비행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아주 빠른 시공에서 다닌다면 들어간 지 조금만 되어도 아주 멀리 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그것의 속도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자면 불가사의한 것이다. 사용한 연료는 전혀 현재 과학이 인식하는 그런 종류의 물질이나 기술이론 개념이 아니다.

아득한 세월 중에서 이런 외계인들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끊임없이 변이되었다. 이 우주 중에는 정말로 이런 종류의 생명이 존재하는 그런 비정상적인 사회관계가 나타났다. 탐욕과 욕망이 그것들로 하여금 그것들의 곳에서 정말로 별들의 전쟁 같은 일을 발생케 하였다. 아직 인류까지 위협하지는 않는데, 인류에게 그들을 위협할 능력이 없으므로 그것들이 인류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그것들에 위협이 된다면 그것들은 바로 인류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외계인은 인류를 타격하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인류의 신체가 가장 완벽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것들은 인체가 맘에 들어 인체를 절취하려 했다. 인류의 모든 영역을 과학으로 충실하게 하고 사람으로 하여금 과학을 굳게 믿고 의지하게 하였다. 사람의 사유와 행동 방식을 완전히 그것들에게로 동화되게 하고, 그때에 이르러 그것들이 사람의 元神(왠선)을 바꿔 버리면 바로 그것들이 되므로, 결국 인류를 대체하게 된다.

말하자면 길다. 서양사회에서 산업혁명이 나타날 때부터 시작하여 그것은 전면적으로 왔다. 그 초기 이전부터 그것들이 왔지만, 그것은 조종하지는 않았다. 백인사회가 산업사회로 진입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들이 전면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이 지구를 점령하기 위해 충분한 준비를 했으며 체계적으로 배치하였다. 그것은 인간들로 하여금 과학을 창조하게끔 하려는 것인데, 이 과학은 외계인이 만들어 낸 것이다. 그것의 목적은 인간을 통일시키고 인간의 이 사상을 간단하게 변화시켜 마치 기계처럼 규범화하는 데에 있다. 지식도 장래에 그것들이 쉽게 인간을 조종하고 대체할 수 있게 통일하려 한다. 또한, 그것들은 또 몇 개 민족을 선택하여 그것들이 장래 인류를 전면적으로 조종하는 선도로 삼았다. 일본은 기술상에서 그가 이끈 선도이고, 미국은 지구의 오래된 모든 문화를 파괴하는 선도인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보수적인 나라의 문화마저도 그것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며 전 세계는 모두 미국의 현대문화에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영국은 초기 기계제조 방면에서 선도이고, 스페인은 혼혈 인종의 선도이다. 혼혈 인종은 외계인이 인간을 신에게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뿌리 없는 인간으로 변하게 하였는데, 마치 인간들이 오늘날 식물을 교잡시키는 것과 같이 되어버렸다. 남미인・중미인・멕시코인과 동남아 일부 사람들은 모두 인종이 뒤섞이게 되었다. 이 일체는 모두 신의 눈을 벗어나지 못한다. 외계인 그것은 이미 사람을 관리하기 위해 상당히 충분한 준비를 하였다.

컴퓨터를 조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사람마다 번호를 매겼다. 물론 우리 수련생은 이런 문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일단 법을 얻으면 나는 그것들이 점유한 그 한 층의 신체를 청리해 버린다. 그것들은 사람의 신체 안에다 이미 그것들의 한 층 신체를 형성했는데, 아주 무서운 것이다! 사람들이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배운 것은 전부 다 그것들이 가져다준 과학이며, 현재 인류가 사용하고 있는 일체는 모두 무소부재한 과학이 조성한 것이다. 컴퓨터상에서・기술상에서 오는 인간사상의 영감은 어떻게 하여 날아가듯 빠르게 발전하는가? 이는 외계인이 인류를 조종하여 형성한 그것들의 그 한 층 신체가 한 것이다. 바로 그것들의 기술・과학이 인간 신체 안에다 형성한 이 한 세트의 것이 인간의 사상을 조종하여 이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컴퓨터의 발달은 매우 심각하다. 그것은 인간의 기술이 아니다. 인류가 만약 장기적으로 이렇게 나아간다면 곧 외계인이 인간을 대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외계인도 필경 속인, 이 삼계 내의 생명인데, 그것이 감히 이렇게 하는 것 역시 다른 원인이 있어서다. 역시 우주의 법이 빗나갔기 때문에 나타난 것인데, 신이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고층 생명과도 관계가 있다. 이 일을 전환하려면 반드시 위에서부터 시작하여 전환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들에게는 이런 관념, 즉 사람은 안 되는, 도덕마저 부패하여 다 안 되는, 바꾸었다면 바꿔버린 아무튼 도태되고 말 것들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부처가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은, 여래와 보살이 인류에게서 가장 가깝고, 가장 낮은 한 층의 부처이기 때문이다. 이 한 층 부처보다 층차가 아주 높은 부처가 여래부처를 되돌아보면 역시 속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닌바, 보기에 좋지 않으니 훼멸시켜버리고 다시 만들자 하는 바로 이런 개념이다. 그들의 머릿속의 자비는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부처에 대해서다. 그렇다면 더욱 높은 층차의 신, 그가 되돌아본 그 인간이란 전혀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서, 미생물보다도 더 못하다는 이런 이치가 아닌가? 어떤 사람은, 사부님 당신이 우리를 제도하는데, 당신은 마땅히 이렇게 제도해야 하고 저렇게 제도해야 한다고, 아직도 말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바, 부처가 당신을 제도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인이 박이여 괴롭다는 말인가? 이런 것이 아니다. 부처는 인간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며 당신들에게 자비를 베풀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다. 인간은, 어찌어찌 제도 받겠고, 어찌어찌 수련하겠다고 생각하며 고르고 있다. 인간은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외계인은 바로 이런 정황이다. 위에서 그것들을 청리하고 있고, 청리하니 그것들이 알고는 여기로 도망쳐 왔는데, 이 몇 년 동안에 특별히 많다. 그러나 그것들은 내가 이 일을 하는 데에도 체계적인 배치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바, 그것들은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그것들은 그것들이 한 일체의 나쁜 일을 모두 갚아야 한다. 이 점은 분명하다. 이 우주의 이치는 어떠한 생명에 대해서도 모두 절대로 합리적이므로 그것들이 한 일체는 그것들이 갚아야 한다. 그것들의 생명을 최후에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대해서 말하면, 이후에는 절대로 더는 외계인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외계인 속에 정말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의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 전생될 수 있다. 그러나 좋지 못한 생명은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일체 생명이 한 일체는 모두 자신의 장래 위치를 배치하고 있는바 모든 사람을 포함해서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 역시 모두 자신의 위치를 배치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대다수의 외계인 그것들이 도망쳐온 것은 목숨을 건지려고 온 것인데, 최후에는 그것들도 이미 그것들이 도망가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외계인은 지구의 사람과 통혼(通婚)을 하고 있다. 하지만 정당한 통혼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들과 결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들은 농촌 여성을 잡아서 그것들의 후대를 남기려 한다. 또 어떤 것은 속인 중에 숨어 있다. 그것들은 어떻게 숨어도 숨지 못한다. 방대한 공(功)은 미시적인 데서부터 오는데, 스테인리스・철・나무・인체・물・돌・공기・식물・동물・물질 등 일체를 막론하고 모두 미시적인 데서부터 표면으로 오고 있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들이 어디로 도망가겠는가? 일체에 두루 퍼져 모두 표면상으로 돌파하고 있으므로, 그것들도 보았는데, 피할 곳이 없으며 숨을 곳이 없다. 그것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달라붙지는 않지만, 그것들, 어떤 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변하여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는데, 당신은 그것들이 누군지도 모른다. 어떤 것은 숨어서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수량은 이미 상당히 적으며 아주 적다. 과거에는 그것들이 숨어 있을 수 있었는데, 그것들의 비행접시는 날아서 다른 공간으로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공간도 이미 전부 다 해결되어 모든 방대한 공이 다 여기로 지나가고 있으므로 그것들도 숨지 못한다. 그것들은 단지 이 공간의 어느 산 동굴 속이나 바다 밑으로 숨으려 하지만, 그곳 역시 숨을 수 없다. 아무튼, 그것들이 직면한 문제는 바로 이러한바, 일체 생명은 이 일 중에서 모두 자신의 자리로 배치되고 있다.

제자: 속인사회의 과학은 잘못된 것인데 우리는 속인 지식의 주입을 거치지 않고 직접 수련에 진입할 수 있습니까?

사부: 우리가 다른 각도에서 말하면 지식 면에서 제고를 얻을 수 있다. 나는 법을 말할 때 여러분으로 하여금 알게 하려고 나도 현대인의 관념으로 설법하였다. 그것은 지식 상에서도 인간의 사유의 길을 열어줄 수 있고 법을 얻는 데 대해서도 좋은 점이 있다. 만약 문화수준이 아주 낮다면 내가 말한 현대의 명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현대의 이런 과학이 가져온 문화가 없다면 나는 고대 언어로써 설법할 수 있으며 오늘날의 이런 방식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는 필경 이러하므로 당신들이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해서 해도 상관이 없는바, 현재는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어른이나 어린이를 막론하고 당신들은 어떤 위치에서도 마땅히 당신의 일체를 잘해야 한다. 학생이면 당신은 공부를 잘해야 하고 직장인이면 당신은 직장 일을 잘해야 한다. 당신들이 특수한 형식을 만들어 낸다면 당신들의 수련형식은 아마 그에 따라 변화가 발생할 것으로 곧 생활과 수련에 곤란을 가져올 것이다. 비록 외계인은 목적에 도달하기 위해 인간에게 그것들의 과학을 가져다주었지만 신은 일체를 파악하고 있고 또한 반대로 그것들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 우리는 수련에 많은 시간을 쓰고 속인 중의 일에는 적은 시간을 써야 합니까?

사부: 이런 개념이 아니다. 당신은 되도록 속인의 일하는 시간에 맞추어 당신의 직장 일을 완성해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아무리 바빠도 당신은 연공을 하고 책을 볼 시간이 있어야 하는바, 바로 이렇다. 내가 생각하기에 한 사람의 정진하는 제자로서 당신은 마음을 마땅히 여가를 많이 내어 수련하는 데 두어야 한다.

제자: 우리는 특별히 복잡한 환경을 찾아서 수련해야 합니까?

사부: 그럴 필요가 없다. 늘 인위적으로 무엇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이 수련의 길을 배치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인위적으로 이렇게 저렇게 하려 하지 말라. 당신들의 길은 내가 배치하는 것으로 당신들의 수련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해야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하라. 중국에서 어떤 사람들은 연공을 하기 시작한 후부터 갑자기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본래 마땅히 모양새를 가다듬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여 사람다운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 그러나 그녀(그)는 지저분하고 심지어 수치마저도 모르는데, 이러면 안 된다. 이는 당년의 장삼풍(張三豐)이 수도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오늘날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최소한 사람다운 모습이어야 한다. 신은 사람보다 높으므로 마땅히 더욱 잘해야 하고 어느 방면에서든지 모두 더욱 잘해야 한다. 연공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 종일 지저분하고 더러워서는 안 된다. 어떤 점에서 말한다면 당신은 대법의 형상을 파괴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이번 회의에서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고 또한 동시에 책임자들에게 통지하는데, 여러분은 옷차림을 단정히 해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흉하지 않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중국의 경제도 현재 이 몇 년 동안 또한 괜찮으므로 좋은 옷을 입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말하는 것은 결코 꼭 좋은 옷을 입으라는 것이 아니며 적어도 당신은 차림새에 신경을 좀 쓰고, 옷을 좀 정결하게 입으라는 것이다. 우리가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하고 있음을 기억하라. 이 문제는 별다른 문제가 아니다. 수련 문제에서, 우리는 자신이 자신의 수련환경을 배치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 네 살 어린아이가 천목이 열려, 法輪(파룬)과 사부님의 함자가 빛을 뿌리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때로는 제멋대로 하며 어른이 제 뜻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큰 소리로 울어대고 떼를 쓰므로 마음이 소란스럽고 아주 괴롭습니다.

사부: ‘마음이 소란스러워 아주 괴롭다’, 당신 스스로 이것을 써낸 것이 아닌가. 당신이 아주 괴롭다, 아주 괴롭다는 것은 바로 당신의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그 아이가 당신을 도와 제고시켜 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제자: 두 살 되는 어린이가 法輪(파룬)을 보고는 아주 흥분해서 “法輪(파룬).”이라고 말하고 스승님의 법상(法像)을 보면 “사부님.”이라고 말하며, 항상 바닥에 앉아서 합장하고서 “연공.”이라고 하고, 때로 스승님의 녹음을 틀어놓으면 그 아이는 바로 “사부님 말씀을 듣자.”고 말합니다.

사부: 그렇다면 이 아이는 아주 보통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겨우 두 살 남짓이기 때문인데, 이런 아이들은 아마 법을 얻으러 왔을 것이다. 우리 4・5세, 5・6세 되는 어린이 제자, 어린이 수련생 중엔 수련을 잘한 아이들이 아주 많은데, 참 신기하다. 그들 어떤 아이들은 아주 신통한데, 이 부분 사람들이 비교적 많다. 어느 집 사람들이 미래에 법을 얻을 것인가를 위의 신은 아주 분명하게 보며, ‘아, 이 집 사람들이 법을 얻겠구나.’ 한다. 그가 배치하여 전생하게 할 수 있는데, 법을 얻을 수 있게끔 전생시킨다.

제자: 병원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해 업력이 더 큰 것이 아닙니까?

사부: 속인사회의 병원, 질병을 치료하는 부문으로 말하자면 병기(病氣)는 조금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연공인으로서 당신이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우리 연공인과는 관계가 없는바, 이런 것은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

제자: 병원에서 병리해부를 하는데 연공인에 대하여 좋지 못한 작용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만약 당신의 직업이라면 당신은 하라. 관계없다. 왜냐하면,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다. 우리가 수련한다는 이유로 속인사회의 일체 형식을 모두 개변시킨다면 이것은 안 된다.

제자: 입으로는 사람을 욕하지 않으나 마음속으로 욕을 한다면 역시 德(더)를 잃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어떤 사람은, 나는 수련을 아주 잘했으며 표현도 아주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마음속의 집착은 조금도 내려놓지 않았는데 그것을 수련한다고 할 수 있는가? 그것은 거짓이 아닌가? 그러므로 본질적인 개변이야말로 진정한 개변이다. 표면적인 것은 모두 형식이다. 당신이 입으로 욕을 하고, 안 하는 그것은 형식이며, 당신의 마음이 개변되었느냐 하는 그것이 바로 진정한 것이다. 당신 마음속으로 욕을 하는 그것은 당연히 마음이 개변되지 않은 것이다. 德(더)를 잃느냐, 잃지 않느냐 하는 것은 작은 일이다. 대법은 속인의 德(더)를 보호하려고 전해진 것이 아니다.

제자: 어떤 수련생들은 독이 있는 동물 등, 생물을 무서워하는데 이런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원만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두려운 마음을 제거해 버리면 된다. 그러나 우리 많은 사람이 꼭 그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며 모두 다 그런 물건이 더럽다고 꺼린다. 이런 더러움은 그 대소변을 보았을 때의 그런 더러움이 아니며, 이런 것은 좋지 못하다고 여기는 그러한 더러움이다. 미래의 세계・미래의 우주에는 이런 생물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주의 초기에는 이런 독을 지닌 것・악한 것이 없었다. 후에 왜 나타나게 되었는가? 원인은 생명의 업력이 갈수록 커지고, 갈수록 좋지 못하게 됨에 따라, 우주도 갈수록 난잡해지고 산생된 좋지 못한 것도 역시 많아졌기 때문에 서서히 갈수록 독이 있게끔 변하였던바 바로 이런 발전과정이다.

제자: 『깨달음(悟)』, 이 경문 중 ‘둘둘이 잇따라 온다(倆倆相繼而來).’의 ‘둘둘(倆倆)’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이것은 중국 고대의 어법이다. 중국 고대의 어법은 문제를 설명함에 문자가 간결하면서도 설명하는 의의에는 또 깊이가 있고, 함유된 내포 또한 큰바, 가장 좋은 문자이다. 과거의 사람은 천상의 말, 천상의 문자라고 말했다. 현재 인류 도덕이 부패하여 어쩔 수 없이 백화문을 사용하였다. 그렇다면 이 ‘둘둘이 잇따라 온다.’ 그것을 해석하려면 세 명이 함께, 두 명이 함께, 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과 상의하여 이 법은 아주 좋다고 하여 우리 둘이 가서 수련하자, 저 사람도 좋다고 느끼고 그도 온다, 그는 또 그의 가족들에게 알려주어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온다. 그러면 여러분이 삼삼오오 모두 온다. 백화문으로 말하다 보니 나는 이렇게 많은 여러 마디 말을 사용하였다. ‘둘둘이 잇따라(倆倆相繼)’ 온다는 것을 사용하여 이러한 네 글자로 전부 개괄하였다. 바로 이런 뜻이다. ‘잇따라(相繼)’라는 것은 바로 부동한 시기에 속속히, 연이어서, 지속해서 온다는 것이다. 이 잇따라 라는 것도 해석하려면 역시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제자: 서적, 잡지, 간행물을 경영하는 대법제자가 대법의 서적을 원가로 들여와서 소매가로 판매할 수 있습니까?

사부: 예전에 나는 혼자 이런 일을 생각하였다. 중국에 최근 퇴직한(下崗: 실제로는 바로 실업이다) 근로자들이 비교적 많기 때문인데, 그중에 극소수의 우리 수련생이 있다. 후에 나는 생각했다. 그들에게 法輪大法(파룬따파) 서적을 판매하라고 할 수 없을까? 이렇게 하면 그들의 생활문제를 해결해 줄 뿐만 아니라 또 수련생이 책을 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어떤 수련생들은 이미 이렇게 하였다. 후에 내가 자세히 생각해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 왜 잘못되었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대법은 우리를 제도할 수 있는데, 이렇게 신성한 대법으로, 우리가 그를 가지고 돈을 벌다니 자신을 어느 위치에 두었는가? 대법을 어느 위치에 두었는가? 이것은 극히 부당한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하지 못하게 했다. 그렇다면 왜 사회에서는 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나는 속인사회를 이용하여 법을 전했기 때문이다. 속인사회도 법의 가장 낮은 한 층차 중의 체현 형식이므로 그리하여 그것의 각종 업종은 이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이는 잘못이 없다. 만약 우리의 책에 배후의 내포가 없다면 흰 종이에 검은 글자로서 그것은 한 권의 책에 불과하다. 배후의 내포가 있기 때문에 법의 역할을 한다. 속인 사회의 서점이나 책 상인이 하면 그것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곧 속인사회의 이 층 법에 부합한 것이다. 우리 제자로서는 확실히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가 법을 이용하여 돈을 벌고 책을 사는 대다수 사람은 또 모두 우리의 제자들인데 이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

만약 당신들 자신이 바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편리한 조건을 이용하여 대법의 서적을 경영하는 것은 특별히 대법을 위하여 차린 것이 아니며 일찍부터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나도 당신이 이렇게 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은 필경 이 이전에 이미 서적을 취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이 법에 대하여 끊임없이 인식함에 따라, 나는 당신에게 이를 취급하는 새로운 방법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제자: 스승님을 만나보려고 일체를 돌보지 않다가 가족들과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맞는 것입니까, 틀린 것입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중국대륙에서 온 사람이라면, 아마 틀림없이 당신에게 오지 말라는 것일 수 있으며, 또 아마 틀림없이 나의 법신이 당신에게 오지 말고 당신이 안심하고 수련하라는 것일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중국대륙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면 당신 자신은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있다. 아마 당신이 확고한지, 확고하지 않은지를 볼 것인데 일체가 모두 가능하다. 이것은 당신 자신이 깨달아야 한다.

제자: 수련은 시간을 다그쳐서 해야 함을 아는데 또 아이를 갖고 싶습니다.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하라고 말했다. 수련하는 모든 젊은 제자들이 현재 몇천만인데, 여러분이 모두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속인사회에 대한 파괴가 아닌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줄 수 있는바 적어도 당신은 속인사회의 형식에 부합하여 수련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나는 이 평생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하며 나는 결심을 이미 내렸다고 한다. 나도 반대하지 않는바, 그렇다면 당신은 그렇게 수련하라. 다만 당신의 생활이나 다른 면에서 지나친 부담과 모순을 조성하지 않는다면 나도 관여하지 않는다. 인간 세상의 일은 당신 자신이 결정하고 당신 자신이 하라. 만약 아이가 있으면 수련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가 보기에 그렇지 않을 것이며 이것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제자: 원만의 형식에는 몇 가지가 있습니까? 모두 本體(번티)를 가지고 갑니까?

사부: 이 문제는 내가 이미 말했다. 다만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 사람만이 신체를 가지고 간다. 다른 곳으로 가는 사람에 대하여 말한다면 당신들 허다한 사람들이 부동한 층차 부동한 경지에서 법을 얻으러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위로 신체를 가지고 돌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신불(神佛)들은 당신들이 이상한 것을 가지고 돌아오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므로 그의 그곳에서는 전혀 없으며 원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그의 수련한 전체의 그 한 세트의 것은 파괴될 것이다. 주의하라. 당신이 어디에서 왔든지 나는 다만 당신들의 원래의 것을 새롭고 가장 바른 법을 사용하여 당신들을 동화시켜 준다. 당신들이 수련한 표면적인 것을 나는 모두 당신들에게 움직이지 않게 함으로써 당신들이 틀림없이 원래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부처(佛)이면 당신은 바로 부처이고, 당신이 도(道)이면 당신은 바로 도이고, 당신이 신(神)이면 당신은 바로 신이다. 당신의 형상과 당신 과거의 모든 일체는 다 변하지 않는다. 과거에 과위가 없는 이들에 대해서라면 이번을 통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과위를 얻게 할 수 있으며 그런 후에 어느 곳에 가야 하면 당신이 그 어느 곳에 가도록 배치한다.

제자: 나는 연공할 때 늘 일종의 고정적인 대법 음악이 아닌 것이 들리는데, 다른 공간의 정보가 교란할까 봐 걱정입니다.

사부: 다른 공간의 음악은 우리 수련 음악과는 다른 것이다. 그러나 다른 공간에는 확실히 미묘한 음악이 있는데, 들었으면 들은 것이니 그것에 관여하지 말라. 그것은 다른 공간의 소리이다. 또 걱정도 하지 말아야 하는바 음악 자체 그것은 결코 수련을 대표하지 않는다. 당신들이 대법을 수련할 때 내가 당신들에게 이 음악을 들으며 연공하라고 하였다. 목적은 당신들 사상이 아직 입정(入靜)에 도달할 수 없을 때 일념으로써 만념을 대체하는 데에 있다. 곧 당신이 음악을 들을 때 당신 머릿속에는 허튼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며 오직 그 음악만 들을 것이다. 이러면 당신들이 연공함에 좋은 점이 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 연공음악이어야 한다.

제자: 저는 신체적으로 어떤 교란을 만났는데 언어와 그림이 있습니다. 반년이 되었는데도 줄곧 돌파하지 못했습니다.

사부: 당신이 만약 진정한 수련자라면 당신이 처음 대법에 진입했을 때에 어떤 생각이든지 내려놓아야 한다. 당신은 아무것에도 관여하지 말라. 당신 자신은 명확해야 하며 당신은 이 일을 해결하기 위해 수련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 법을 전한 목적은 사람을 제도하고 수련하게 함으로써, 사람으로 하여금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지, 결코 속인 신체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엄숙한 것이다.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진정하게 수련하고 있음을 확고히 해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의 어떤 문제이든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다. 그러나 다만 속인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왔다면, 그렇다면 우리는 해결해 줄 수 없다. 다시 한마디 하면, 법은 수련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法輪功(파룬궁)은 병을 치료하지 않음을 알고서, 그렇다면 나는 병을 치료하지 않겠다,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나도 병을 치료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겠으며, 또 다른 사람에게 나의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마음속에는 내가 연공만 하면 사부님께서 반드시 나의 병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있다. 당신이 보라. 그의 마음속에 있는, 아직도 내가 연공을 하기만 하면 사부가 반드시 병을 제거해 줄 것이라는 생각을. 그의 마음속에는 그런 조그마한 것이 여전히 깊게 숨어있는데, 그는 아직도 내가 그의 병을 관리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한다면 그는 아직도 그의 병에 집착하고 있다. 그가 진정으로 내려놓고 전혀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에 관여하지 않으면 당신이 보기에 어떻게 되겠는가? 추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는다고 한다. 어떤 수련 형식・수련 방법이든 모두 이러하다. 속인사회 중의 것은 어떤 것이든 당신은 모두 노력과 집착을 통해야 얻을 수 있으며 심지어 더욱 집착하고, 추구해야만 한다. 그러나 바로 다른 공간의 이치는 반대이며 거꾸로 되어 있다. 당신이 얻고자 노력하고, 집착으로 하고자 한다면 곧 아무것도 없다. 바로 당신이 내려놓고 그것에 관여하지 않을 때, 당신은 비로소 얻을 수 있는데, 그래서 구함이 없어야 스스로 얻게 된다고 한다.

제자: 사부님이 싱가포르 법회에서 대수인을 하실 때 어떤 사람은 편안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미묘하다고 느끼고, 어떤 사람은 마음이 슬프고, 상심하고, 눈물을 흘립니다. 이는 수련한 층차와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별로 차이가 없다. 기본적으로 차이가 별로 없다. 사람마다 감수(感受)와 깨달음(領悟)이 모두 다르다.

제자: 수련 원만하면 모두 무사(無私)・무아(無我)의 경지에 도달하는데, 그럼 왜 여전히 부동한 층차가 있습니까?

사부: 이렇게 말하자. 초과나한(初果羅漢)으로 수련되어도 원만인바, 자신의 해탈에 도달할 수 있으면 되니, 보도중생(普度眾生)을 생각할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을 상관할 필요도 없으며, 수련자 스스로 노력하여 도달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초과나한(初果羅漢)이다. 만약 당신이 보살의 과위에 도달하려고 한다면, 설령 초과 보살이더라도 당신은 반드시 수련 중에 대자비를 수련해야 하고 대자비심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자신이 해탈하는 것을 제외하고 또 다른 사람을 도와 해탈시켜야 하며, 당신이 해내든 해내지 못하든 당신은 이 마음이 있을 것이므로 중생을 보면 정말로 다 고생스럽고 중생을 보면 눈물을 흘리는데, 꾸며낸 것이 아니라 진실한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 심념(心念)도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수련 중에서 이런 상태가 늘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그것은 나타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이 부처로 수련되고자 할 때면 당신의 자비심은 변하는데, 당신은 절대로 보살처럼 그렇게 중생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는 않을 것이며, 자비심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중생의 인연관계에 더욱 명백해지며 더욱 큰 지혜로 일체를 보게 된다. 그렇다면 여래부처보다 아주 높은 층차로 수련된 부처가 뒤돌아 한 번 보면, 이런 종류의 자비심이란 무엇인가? 그는 속인에 대한 부처의 자비도 집착이라고 여긴다. 그는 다만 그의 아래에 있는 뭇 신(神)・뭇 부처(佛)・부처세계의 중생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만, 오히려 사람에 대해서는 자비가 없다. 이것은 그가 자비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지가 그만큼 높다는 것을 말한다. 아래의 생명에 대해서 말하면, 너무나 작아 미생물보다도 못하다고 여기고, 저능한 사람은 아예 아무 쓸모도 없는 생명으로 여긴다. 더욱 높은 경지의 부처에 도달하면 뒤돌아보고, “아, 이 여래불 역시 모두 속인이구나. 이 사람들이 아래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한다. 그는 사람을 무엇으로 보는가? 사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흙 속에서 왔다 갔다 꾸물거리는 것이 마치 극히 미시적인 생물과도 같다. 그렇다면 더욱 높고 더욱 높은 경지의 부처, 당신이 만약 그런 상태에 도달하려면 당신은 그 경지에까지 수련해야 한다. 나는 다만 그의 한 가지 가장 간단한 표현 상태를 말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런 것만이 아니다.

진법(眞法)은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아직도 사람의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동한 경지는 생명에 부동한 상태를 가져다주며, 생명의 물질신체에도 끊임없는 변화를 준다. 만약 부처의 신체가 원자로 구성된 것이라면 부처보다 높은, 더욱 높은 부처와 신의 신체는, 그것은 아마 중성자로 구성된 것에 해당할 것이다. 더 위로 가면 아마 중성미자・쿼크일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미시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더욱 미시적이고, 더더욱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된 신체는? 보건대, 에너지가 더욱 크다. 물질의 입자가 작을수록 그것의 밀도는 더욱 크기 때문에, 그러므로 보기에 그것은 대단히 섬세하고 광택이 있다. 우리가 사람의 신체를 보면 그래도 땀구멍을 볼 수 있지만, 만약 신의 신체를 본다면 땀구멍이 없다. 당신이 보는 삼계 내의 인간보다 한 층 높은 신체의 생명 역시 삼계 내의 부동한 층차의 천인(天人)인데, 당신이 그들의 신체를 보면, 사람에 비해 그야말로 너무나도 매끄럽고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의 입자는 세상 사람의 입자보다 작고 밀도는 크다. 다시 말해서 그는 끊임없이 승화함에 따라 일체 표면 형식도 승화하고 있는바 경지의 승화가 선결 조건이다. 원만에는 같지 않은 경지가 있다. 당신이 어느 층차에까지 수련되었는지에 관계치 않고, 당신 층차 이하는 당신에게는 모두 미혹이 없으며, 일체가 다 눈 아래에 있는바, 이 모든 진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당신 층차보다 높은 일체는 곧 영원히 미혹으로서 당신은 영원히 알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증득한 과위이다. 당신이 대가를 치른 만큼, 당신이 수련한 만큼, 당신은 그만큼 얻는다.

제자: 수련은 엄숙한 것임을 압니다. 그러나 다른 일면에서 고생을 낙으로 삼고, 즐겁게 수련함에 잘못이 있습니까?

사부: 잘못이 없다. 만약 당신이 수련 중에서 언제나 즐거움을 유지할 수 있고, 어떤 곤란을 만나도 모두 이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하며 모두 정말로 당신이 대단하다고 탄복할 것이다. 그것은 해내기가 몹시 어려운바 어떠한 곤란 앞에서도 마음이 모두 움직이지 않고 즐겁게 대하기란 몹시 어렵다. 그러나 우리가 번거로운 일에 봉착하지 않고 관을 넘는 일이 없을 때, 장기적으로 낙관적인 태도나 자비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그것은 수련인으로서 평소에 마땅히 구비해야 할 가장 좋은 자세이다.

제자: 연공인은 결혼한 후 부부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우리는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 것을 말하므로 전업으로 수련하는 출가제자가 아니면 당신은 속인 상태에 부합하여 생활해야 한다. 우리는 속인 중의 물질 형식을 결코 그렇게 중요하게 보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개변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人心)이다. 사람의 마음이 개변되지 않으면 일체는 모두 거짓이다. 당신은 표면상으로 나는 아무것도 없다고 하지만, 당신 마음속으로 내려놓지 못한 염두는 이런 것들에 대해 꿈틀꿈틀 요동치는데, 아무 소용도 없다. 당신이, 내 마음속에는 생각이 없으며, 이러한 것은 인간의 것을 유지하고, 인간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한다면, 나는 당신이 잘못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당신이 고심(高深)한 경지로 수련되었을 때 이런 것은 모두 포기해야 한다. 이 기간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당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나는 『전법륜』 중에서 이미 아주 분명하게 말했고 그 상태도 이미 설명하였다.

왜 당신이 수련 중에서 이렇게 할 수 있는가? 우리 이 한 법문, 내가 오늘 전하는 이 대법은 의도적으로 복잡한 속인사회에서 전하기 때문인데, 이래야만 더욱 높은 층차의 사람으로 하여금 돌아가게 할 수 있다. 만약 이 속인사회의 복잡한 정도가 부족하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에게 그렇게 큰 난이 없고 그렇게 큰 교란이 없다면 더욱 높은 층차에서 내원(來源)한 당신들은 영원히 돌아갈 방법이 없다. 법이 크고 또 속인사회 속에서 전하므로 우리 이 법은 바로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사회 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편리한 조건을 제공한다. 당신의 미시적인 데에서, 당신 생명의 본원에서 시작하여, 곧 당신 생명을 구성하는 본원 입자에서 시작하여 당신 신체를 개변시키고 있는데, 마치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안에서 밖으로 확장되고 있다. 당신이 오직 수련하고자 하고, 당신이 오직 표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즉시 나무의 나이테와 같이 밖으로 확대되는데, 표면에 이르기까지 줄곧 확대되어 마치 나무껍질에 이르게 된 것과 같게 되면 모두 변하는데, 당신은 곧 원만을 이루게 된다. 나무껍질에 이르기 전, 다시 말해서 당신 신체의 가장 표면인 이 층 물질신체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표면상 물질신체에는 여전히 속인의 사상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분명히 속인 중의 각종 욕망이 있을 것인바, 속인 중의 색(色)・정(情)・각종 집착이 있을 것이다. 속인처럼 그렇게 강하지는 않지만,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수련 중에 속인의 환경에 부합할 수 있도록 보증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신들에게 남겨둔 것이다. 그러나 수련이 잘된 그 일면은 속인 표면의 신체에 이끌려 속인의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의 수련 잘된 그 일면이 표준에 도달하면 즉시 그를 갈라놓는다.

갈라놓은 후에는 어떤 좋은 점이 있는가? 사람의 표면, 이 면이 속인 중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어떤 일을 하든, 수련이 잘된 일면인, 그는 거기에 앉아서 전혀 움직이지 않고, 염두를 움직이지 않으며, 사상을 움직이지 않고, 신체를 움직이지 않으며, 무엇에든 모두 참여하지 않는다. 이는 사람이 어떤 속인의 일을 할 때, 신의 그 일면으로 하여금 전혀 참여할 수 없게 하고, 반면 사람의 수련되지 않은 이 일면으로 하여금 하도록 함으로써, 오직 당신이 제고 중에 떨어지지 않고 끊임없이 제고할 수 있도록 보증한다. 반대로 말하자면 만약 우리가 속인사회 중에서 표면에서부터 종심(縱深)으로 개변하는 것을 선택했다면, 그러면 당신은 전혀 속인사회 중에서 수련할 수 없다. 당신의 속인사회 중의 일체 행위는 모두 신이 하는 것과 같고, 변화된 신체는 곧 신의 신체와 같은데, 모두 속인의 일을 하고 있다. 당신은 전혀 수련할 수 없다. 신이 속인의 일을 하다니, 이 어찌 된 일인가. 신에게 속인의 정이 있다는 이것은 절대로 허락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대로 당신 생명의 본원에서 시작하여 당신을 개변시키는데 그러면 끊임없이 표면으로 확산, 확산, 확산한다. 당신이 원만하기 전까지 당신은 표면상에서 줄곧 속인 중의 생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데, 다만 갈수록 담담해지고 갈수록 담담해져, 최후에는 무엇이든 다 담담해져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데, 곧 원만에 근접한 것이다. 당신 전체가 줄곧 표면에까지 확산되었을 때, 당신은 바로 속속들이 원만에 이르는데, 그 한순간 아주 자연스러우며 아무런 진동도 없다. 과거의 수련원만은 진동이 있었다. 한 사람이 원만을 이루면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는 해일이 일어나며, 아주 큰 범위에 걸쳐 지진이 발생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원만, 그는 진동이 없으므로, 그는 또 더욱 많은 사람이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는데 적합하며 속인사회를 교란하지 않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원만을 이룬다면, 내가 보기에 이 지구는 전혀 감당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러 방면에서 모두 속인 사회에서의 수련에 적합하도록 배치하였다.

그렇다면 수련이 안 된 그 일부분이 아직 당신의 표면으로 발전해 오기 전까지는, 당신이 속인의 마음이 없다고 해도 나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 자신이 억지를 부리는 것이다. 당신들은 높은 표준으로 엄격하게 자신에게 요구하고, 연공인다워야 한다. 한편으로는 되도록 속인사회의 형식에 부합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한 이것은 또 오직 이 한 가지 일만 말한 것이 아니며, 부부생활도 간단하게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이 문제에서 당신들은 자신이 가장 편리한 방법을 취할 수 있으며, 당신이 나는 어떻게 해야 좋다고 느끼면 그렇게 해도 좋다고 말한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속인의 마음이 아직 있고, 또한 매우 강렬하여 아직 결혼하고 싶고 또 배우자도 찾고 싶으며, 또 그 처녀를 좋아하거나 그 총각을 좋아하는 이 마음이 있어 당신이 이렇게 했다면, 바로 당신은 아직 그 한 단계까지 수련하지 못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이렇게 해도 된다. 당신이 오늘 단번에 무엇이든 모두 내려놓을 수 있다고 말하지 말라.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즉시 부처가 되는데, 그럼 당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고 당신은 바로 부처이다. 그러므로 수련 그것은 천천히 닦는 것이며 점진적 과정이다. 내가 비록 이렇게 말했지만, 당신이 생각하기에, 아, 사부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수련이 잘 되기 전까지는 표면상에서 모두 속인의 칠정육욕이 있으므로 나는 이렇게 해도 된다고 말하는데, 안 된다! 당신에게는 비록 있지만, 나는 당신에게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서 하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당신이 엄격하게 수련인의 표준으로 자신에게 요구하지 않으면 당신은 수련하고 있지 않음과 같다. 그것은 바로 이런 변증법적인 관계이다.

제자: 백인 수련생으로서 일체 시간을 이용하여 법을 듣고자 하는데, 아직 동시통역 녹음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전법륜』을 읽은 것을 녹음해서 들을 수 있습니까?

사부: 이는 효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왜 좋지 않을 수 있는가? 왜냐하면, 내가 말한 법은 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으로 아직 원만을 이루기 전이라 당신이 한 말 속에는 각종 속인의 정보가 들어 있는데, 당신이 이렇게 방출해낸 것을 당신 자신이 다시 회수하여 이렇게 반복적으로 교차 오염시키는 것은 좋지 않다. 당신이 책을 본다면 그것은 별개의 일이다. 지금 우리는 동시통역을 더빙하는 중인데, 다그치고 있어, 곧 나오게 될 것인바, 이 문제는 머잖아 해결될 것이다. 아무튼, 나는 당신에게 이 이치를 말해 주는바 곧 당신이 한 말은 자신이 가진 모든 속인의 각종 마음・각종 사상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법은 그가 작용을 일으켜야 하므로 표면의 이치만 들어서는 무엇인가를 드러내지 못한다. 당신 입으로 다시 말해 낸 것은 당신의 이 경지의 인식인데 그렇다면 당신은 되돌아와 다시 들어도 당신은 영원히 당신 이 한 경지의 인식이다. 동시통역은 다르다. 나의 목소리도 거기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인데, 소리는 비록 작고 통역 소리는 크지만, 실질적으로 그는 통역하고 있을 뿐이며, 진정한 것은 내가 말하고 있다. 수련생은 알아들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내가 설법할 때 지닌 일체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런 뜻이다.

제자: 세 살에서 다섯 살 되는 여자아이를 모두 합쳐 세 번 만났습니다. 제가 자는 둥 마는 둥 얕은 잠을 자고 있을 때, 그 아이는 베개를 딛고 한편으로 뛰면서 웃고 있었습니다. 法輪(파룬)에서 나온 영해입니까?

사부: 이런 상황은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러나 또 그것은 절대적으로 좋은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영해는 아주 작은 것이다. 우리 매 한 사람의 과거 배경은 모두 극히 복잡하다. 그러므로 이 방면에 관여하지 말라. 또 아마 당신이 예전에 데리고 온 것이거나 다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아무튼 여자애라니 아마 좋은 일일 수 있다. 그 아이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당신은 수련에만 전념하라.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하게 말해주지 못한 것 같다. 어떤 사람은 아직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예를 들어 말하겠다. 그러나 반드시 이 상황인 것만은 아니다. 우리 어떤 사람들은 내려와서 환생할 때 그의 이전의 아이도 따라서 내려왔다. 그러나 그 아이는 환생하지 않고 저쪽에서 따라다니고 있다. 또 어떤 사람은 전생 전세의 아이가 있는바, 그는 이 생에 환생하였지만 그 아이는 그 세(世)에 환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아주 영기(靈氣)가 있어서 항상 따라다니는데, 또 이런 상황일 수도 있다. 어느 상황이든지 다 있다. 당신이 정법을 얻었기 때문인데, 만약 당신과 인연관계가 있다면 우리는 모두 당신을 위해 이 일체를 배치할 것이며, 모두 당신을 위해 이 일체를 적절하게 배치할 것이므로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제자: 저는 온갖 애를 다 써서 궁리해도 제출할 문제가 없는데, 수련을 아주 잘못…… 한 것이 아닙니까?

사부: 우리 수련을 잘한 일부 노수련생은 나를 보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데, 나도 그가 말을 못해 끙끙 앓으면서 답답해하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이 가득했는데, 일단 나를 만나고 나면 그는 아무 말도 없다.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 때문인지 알려주겠다. 당신들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나를 만났을 때 다 이렇다. 나를 만나서는 할 말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끊임없이 수련하노라면, 당신들의 수련으로 명백해진, 수련이 잘 된 그 일부분을 당신들에게서 격리하여 잘 수련되지 못한 그 일부분과 갈라놓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신의 잘 수련되지 못한 이 부분이 늘 명백하지 않아 곧 문제가 있는 것으로 느껴, 물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나를 만나고자 하여, 사부를 만나고 보면 당신의 수련 잘된 그 일부분도 깨어나기 시작하는데, 그가 깨어나게 되면 당신 속인 이쪽은 완전히 이끌려간다. 당신들이 여기에 앉아서는 왜 좋지 못한 생각이 없고 이렇게 상서롭고 화목한가? 바로 당신들의 수련이 잘된 그 면이 깨어났기 때문에, 전체 신체가 곧 수련 잘된 그 면에 이끌려 간 것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수련이 잘된 그 일부분이 만약 표준에 부족하다면 수련이 잘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서 그는 무엇이든 다 안다. 다만 수련이 잘되지 않은 그 부분만이 알지 못할 뿐이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그때에 당신은 더 묻고 싶지 않은 것이다. 어떤 문제든 물을 것이 없이 다 알며 아주 명백해진 것이다. 일단 나를 떠난 후라면 그는 또 관여하지 않고 그는 또 정지하여 움직이지 않으므로 당신 이쪽은 또 명백해지지 않는다. 조금 전에 내가 왜 사부님께 묻지 않았지! 이런 상태가 아닌가? 사실은 이런 것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책을 많이 보고 책을 많이 보라. 반드시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이는 우주의 법이다. 옛적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어떤 법문이든, 속인사회에서 유전되는 법은 모두 여래 경지 또는 여래 이하의 속인 중에서 유전하는 법이었다. 이렇게 큰 법을, 우주의 부동한 생명에 부동한 생존환경을 창조하고 전체 우주를 육성한 이런 대법을, 단지 당신이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해서 그 높은 내포를 보아내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나 당신이 과위에 도달했다면 당신이 수련 원만하여 알게 되는 일체는 모두 그 속에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책을 많이 보라. 물론 우리 노수련생들은 이미 알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 곧바로 가서 책을 보면 틀림없이 해결할 수 있다. 그러면 잇따라 새로운 경지 중에서 더욱 높은 새로운 문제가 나타날 것인데 당신이 또 책을 보면 그는 또 당신에게 해결해 준다. 그리하여 잇따라 당신은 또 이 경지 중에서 문제가 있는데, 그러면 당신은 또 가서 책을 보고, 그는 또 당신에게 해결해 준다. 바로 이렇게 끊임없이 수련하고 끊임없이 승화하는 것이다. 문제가 있으면 이 법이 당신에게 해답을 해주므로, 당신 자신이 평소 생활 중에서 엄격하게 당신에게 요구하고 끊임없이 제고하면 당신은 바로 용맹정진 중인 것이다.

제자: 명리정(名利情)의 근원은 이기심(自私心)입니까?

사부: 명(名)과 이(利) 이런 것은 모두 이기심이다. 정(情)은 내가 과거 설법 중에서 이미 말했다. 그것은 우리 이 층(層)의 인류 공간과 삼계 내에 가득 차 있다. 삼계 내의 어떤 생명이든 모두 벗어날 수 없는 것으로서 모두 그것의 제약 중에 있다. 사람은 바로 이 정(情) 속에 있는데, 당신이 그것에 집착할 때일수록 이 정의 힘은 더욱 커지며 더욱 작용을 일으킨다. 특히 사람이 가족을 잃었을 때나 젊은이들이 실연을 당했을 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의 힘은 더욱 커진다. 그것은 삼계 내의 것인데, 수련하는 사람인 당신은 반드시 그것을 떨쳐버려야 하고, 이 정을 내려놓아야 하며, 그것을 초월해야 한다. 이 이(利)와 명(名)에 대하여 말하자면 이런 것은 사람이 중하게 여기는 것인데 사실 역시 내원은 정(情)이다. 명(名)이 있다면, 자신은 바로 명(名)이 가져다준 행복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오오, 기쁘구나,’ 명과 이를 추구하는 것은 바로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족하면 기뻐하지 않겠는가? 당신이 기뻐하는 것은 또 정이 아닌가? 그리하여 그것은 당신에게 기쁨과 영예를 가져다줄 수 있는데 이것은 바로 정이 아닌가? 당신은 이익상에서 만족을 얻으면 당신은 또 기뻐하지 않는가? 역시 정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바로 이 정을 위해서 살고 있다. 속인 중에서 당신이 기뻐하거나 기뻐하지 않거나, 무엇을 반대하거나 반대하지 않거나, 당신이 무엇을 가지려고 하거나 가지려고 하지 않거나, 당신이 어떤 상태에 도달하려 하거나, 당신이 무엇을 보면 좋고 무엇을 보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당신이 어떻게 하려 하고 어떻게 하지 않으려고 생각하는 일체가 모두 정이다. 사람은 바로 정을 위해서 살고 있다고 말한다. 인류사회에 정이 없을 수 있는가? 인류사회에 만약 정이 없다면 사람 사는 것은 재미가 없고 정말로 재미가 없다. 사람은 마땅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

사심(私心) 문제에 관하여 내가 조금 전에 당신에게 이 이치를 말했을 때 당신들은 모두 손뼉을 치면서 마음속으로 아주 기뻐했다. 미래의 우주는 멸망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내가 말했을 때 당신들은 모두 기뻐했다. 왜 이럴 수 있는지 여러분은 아는가? 어떤 사람은, 사람이 자신을 위하지 않으면 천벌을 받는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좌우명으로 삼는다. 사실 당신들은 아직 모르는데, 이 사(私)는 아주 높은 층차에까지 관통되어 있다. 과거, 수련하는 사람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다.’, ‘나는 무엇을 하겠다.’, ‘나는 무엇을 얻겠다.’, ‘나는 수련하고 있다.’, ‘나는 성불하겠다.’, ‘나는 무엇에 도달해야 하겠다.’고 말하는데 사실 모두 그 사(私)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것은 당신들이 진정으로 순정(純正)하고, 무사(無私)하여, 진정한 정법정각(正法正覺)으로 원만(圓滿)을 이루는 것인데, 그래야만 비로소 영원한 불멸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 준다.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당신들은 우선 다른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돈만 주면 기뻐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돈을 주었을 때 다른 사람은 이로 인하여 불행을 당하지 않을까 경제적으로 쪼들리지 않을까 혹은 어떠할까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내게 무엇을 주는 것만 기뻐할 뿐,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른다. 다른 사람이 나를 잘 대해주면 우리는 기뻐하기만 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극히 고통스러운 중에서 어쩌지도 못하면서 또 당신에게 좋은 말을 하고 있는데, 당신은 오히려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바, 어떤 일이든 다 있다. 바로 당신들은 오늘의 수련에서 시작하여 어떤 일을 하든, 모두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제자: 『제2권(卷二)』에서 바닷속에도 사람이 있고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부: 그렇다. 어떤 이들은 우리 이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이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지 않다. 바닷속에 사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와 동등한 층차에 존재하는 다른 공간에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바,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 있고 또 당신들과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그를 사람이라고 해도 되고 그를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된다. 그는 일부 정(情)은 있지만, 속인의 욕망(慾)은 없으므로 그의 하반신은 물질형(物質型)이며 상반신만이 인간형(人型)이다. 그리하여 그는 떠서 날아다닌다. 바닷속의 대다수 사람은 과거에 지구의 다른 한 시기에 도태된 사람에 속한다. 또 어떤 이들은 바다 밑(海底)의 사람으로서 사람과 비슷한데, 상반신은 사람이며 하반신은 물고기인 이들도 있고, 상반신은 물고기이고 하반신은 사람인 이들도 있다. 또 대륙판 아래에도 과거의 사람이 있는데, 바로 과거에 도태된 사람으로서 그는 올라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세상에 의해, 곧 지구에 의해 도태되었기 때문인데, 그들 중 일부분은 그렇게 큰 죄업이 없음에도 그는 곧 땅속으로 뚫고 들어갔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된 것으로, 그도 나오지 않으며 바로 그 속에서 생존하고 있다. 그러나 그 숫자는 아주 적다. 흔히 그들은 모두 사람보다 좀 능력이 있는데 사람처럼 이렇게 미혹되지 않는다. 됐다. 당신은 더는 호기심을 갖지 말고 이런 일에 관여하지 말라. 왜냐하면, 당신의 수련과는 별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제자: 장래에 새로 출판할 일본어 대법 책을 정식으로 발행한 후, 구판 번역문에 착오가 있는 책을 어떻게 처리합니까?

사부: 그에게 착오가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번역이 부적절했거나 단어를 사용할 때 아직 정확하지 못했다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역시 처리하지 말고 그냥 두라. 왜냐하면, 어떠한 종류의 판본(文本)도 중문을 조금도 빗나가지 않게 번역해 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또 여러 종류의 판본(文本)이 있는 것은 오히려 좋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이 보니 아, 이런 뜻이 있구나, 아, 저런 뜻이 있구나, 알고 보니 그는 이런 것이구나, 그렇다면 내가 보기에 좀 좋은 점도 있다. 이런 것이다.

제자: 담이 작은 것은 집착심입니까 아니면 생리적인 원인입니까?

사부: 담이 작은 것은 역시 이 우주 중의 그런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에 당신으로 하여금 두렵게 하는바 그것을 바로 두려움이라 한다. 당신이 두려워할수록 그것은 더 작용한다. 당신이 의지로써 극복해야 하는바 이것은 당신의 의지 문제이다. 또 수련 중에서 돌파해내야 한다.

제자: 연공할 때 항상 수련과 홍법, 사부님의 말씀과 관련되는 것을 생각하는데 맞습니까?

사부: 어느 한 시기의 상태인바 장래에는 좋아질 것이다.

제자: 다른 사람이 대신하여 살생하면 업력은 여전히 나의 몸에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이런 직업의 일을 한다면 나는 이런 장소에서 이 문제를 말하고 싶지 않다. 나는 경문 두 편에서 이미 이 문제를 말했으며 이미 그것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말하자. 당신들이 알다시피 당신들은 세세생생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해쳤겠는가? 사람마다 모두 아주 많다. 만약 법이 작다면 당신들은 금생에 수련성취 할 수 없는 것이며 당신들은 매 일생 모두 빚진 명(命)을 갚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일생에 수련성취 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곧 그들도 보아낸바 살생한 것은 명(命)으로 갚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날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살생한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들이 진 빚, 곧 그것들을 고통스럽게 한 그 일부분을 당신들이 소업하고 고통 속에서 갚는 것 외에, 절대다수는 내가 당신들에게 없애주어야 하며, 남은 것은 당신들이 갚아야 하는데, 당신들이 능히 이 관을 넘을 수 있게 한다. 동시에 당신들이 해친 일부 생명은, 당신들이 미래에 원만을 이룬 세계에서 당신 세계의 중생이 될 것이므로, 바로 이 일을 좋은 일로 변하게 한 것이다. 만약 피해를 본 생명 그가 ‘아, 내가 장래에 부처님의 세계에 간다.’는 것을 안다면, 그는 목을 내밀고 당신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할 것이다. 그는 기뻐하면서 당신에게 자신을 죽여 달라고 할 것이다. 물론 그것은 과위가 없는 것으로, 그것은 그 세계에 가서 중생이 되고, 당신의 부처세계에 가서 백성이 되거나 동물이 되거나 꽃이나 새가 되는데, 아무튼 부동한 생명에 따라 부동한 배치가 있다.

그러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어떤 사람은 아마도, 아, 그렇다면 나는 살생해도 문제가 없겠구나 하며 반면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여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면, 당신이 살생한 것은 당신이 장래 영원히 갚아도 다 갚지 못하지만, 당신은 그래도 다 갚아야 하는, 바로 이렇게 큰 업을 빚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극도의 고통 중에서 당신의 빚 갚음은 거의 끝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무서운 일이다. 어제 어느 수련생이 사부님이 지옥은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 이 장소가 이처럼 신성한데 그런 것을 말하는 것은 아주 무서운 일이다. 물론 나에게는 무서워할 어떤 것도 없다. 그러나 일부 사람에게는 아주 무서운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생각하기에 조금 전에 내가 직접 정면(正面)으로 당신에게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이미 똑똑히 말했다고 생각한다.

중국에 한 수련생이 있는데 의학박사 과정으로 그는 마침 해부 실험을 하고 있었다. 실험을 다한 후 그는 곧 박사학위를 받게 될 것으로, 곧 무슨 시험이든 다 합격할 것인데, 아직 얼마간의 실험을 해야 했다. 1천 마리인지 5백 마리인지 실험용 작은 쥐를 해부하고 나면 그는 바로 박사학위를 받을 것이었다. 나중에 그는 그의 지도교수에게 그렇게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있는데, 나는 살생은 업을 짓는 것임을 알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는 그의 지도교수에게 나는 살생할 수 없으므로 나는 학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만약 생사 이 관을 넘지 못하면 그는 원만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을 결단코 한 번만이라도 아프게 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생사를 내려놓은 것으로 쳐줄 수 없는데. 그것은 다만 형식일 뿐으로 나는 중하게 보지 않으며, 나는 당신의 마음을 보고 진정하게 해낼 수 있는가 없는가를 본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세상을 삶은 단지 명리를 위해서일 뿐이다. 그가 박사학위를 받고 나면, 장래 좋은 직장과 전망(前程)이 있을 수 있고, 그의 봉급도 자연적으로 많을 것인데, 그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보통사람보다 높을 것이고 일반 사람보다 높을 것이다. 사람은 바로 이것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가 이것마저도 가지지 않는다면, 그는 이것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한 젊은이로서 이런 것마저도 가지지 않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바로 생사마저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사람은 바로 이런 것을 위해서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 그가 이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수련의 경지가 사실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에 대하여, 그들의 이런 상황에 대하여 내가 말하는데, 이왕 정을 내려놓을 수 있고 명리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렇다면 살생할까 봐 두려워하는 그 자체도 내려놓아야 하지 않는가? 이것은 최후의 집착을 내려놓은 것이 아닌가? 내가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뜻이다. 만약 그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고 또 생사관도 넘기지 못한다면 이 일체를 내려놓을 수 없는데,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므로 모든 살생한 것을 장래에 자신이 끝없이 갚는 중에 갚아야 하는바 바로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법리・이치는 내가 당신들에게 분명히 말해 주었지만 어떻게 하느냐는 역시 자신이 가늠해야 한다. 대법의 원칙을 말해주었고 살생할 수 없음을 말했다. 당신이 오직 수련하고자 한다면 살생을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법은 더욱 높은 경지에서 원용하는 것이며, 법은 또 부처의 그 경지 중의 이치를 체현하였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해친 그 부분의 생명은, 원만을 이룬 당신들 미래의 세계에서 중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이 원만을 이루지 못한다면 일체는 모두 영(零)이다! 모두 자신이 갚아야 하는바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러므로 나는 고층차의 법을 말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바로 내가 지금 말해도 많은 사람은 내가 말한 이치를 진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법은 모두 속인 중의 이치보다 높은 것으로 당신이 고금중외의 서적을 다 뒤져보아도 찾을 수 없고 다른 어떤 경서 중에서도 당신은 찾지 못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두 듣고 싶어 하는데 부디 지식으로 여기지는 말라. 나는 당신이 지식을 요구하는 그 마음을 만족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제도하고 있고 설법하고 있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항상 ‘우리(我們)’라는 이 단어를 사용하시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나는 현대 중국대륙의 어휘를 사용한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신들은 모두 대법 중의 일원인데 그렇다면 역시 대법의 한 분자이므로 나는 당신들을 ‘우리’라고 말했다. 나는 당신들이 듣고서 아마 자신을 진정한 수련 중에 놓을 것으로 생각했다. 바로 이런 생각이다.

제자: 한 사람이 어떠해야 비로소 정신병에 걸렸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정신병은 바로 자신이 자신의 신체를 주재할 수 없는 것으로 대단히 취약하여 일단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면 아무것도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主意識(주이스)가 마치 잠든 것처럼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고 단번에 이 신체를 놓아버리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때 사람은 바로 속인이 말하는 정신병 상태가 나타난다. 무엇 때문인가? 당신의 主意識(주이스)가 이 신체에 관여하지 않으므로 곧 당신은 이지적이지 못하다. 그렇다면 당신의 각종 업력으로 구성된 사상과 당신의 후천적으로 형성된 각종 관념이 신체・입・눈, 당신의 일체를 주재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바로 헛소리를 하고, 미친 짓을 할 것인데, 어떠한 속인의 규범적인 행위도 없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정신병이라고 한다. 내가 말하건대 정신병은 병이 아니다. 어떠한 병의 상태도 없는바, 바로 그의 주사상(主思想)이 너무 취약한 것이다. 또한, 선천적인 것도 있는데 태어나서 그의 주사상이 약하므로 이 신체는 항상 다른 사람에 의해 통제되고, 항상 다른 사람에게 통제되도록 내맡긴다. 또 더군다나 각개 공간의 강렬한 정보의 교란 때문에 바로 이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짓이든지 다 할 수 있게 한다. 이 대뇌 그것은 이미 갖추어져 있는 기계이므로 누구든 조종할 수 있다. 당신이 조종하지 않고 포기하면 다른 사람이 와서 조종하는데, 그것은 사람의 규범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의지가 반드시 강해야 하며 의지가 반드시 확고해야 한다.

제자: 어떤 사람은 원만할 때 本體(번티)도 전화시키지 않고, 또 원영도 수련해 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부: 내가 말했지만, 우리 대법 제자 중에는 많은 사람이 같지 않은 층차에서 왔는데 그렇다면 아마 부동한 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어떤 상태인가를 관여하지 말라. 오직 당신이 수련만 하면 나는 틀림없이 당신으로 하여금 당신 자신이 가장 만족해하는 상태에 도달하게끔 할 것인데, 사람마다 모두 다 이렇게 한다. 내가 당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 바로 이 우주를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박수)

제자: 『전법륜』을 읽을 때 불(佛)・도(道)・신(神)의 뚜렷한 점화가 느껴진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착실하게 수련하는 과정 중에서 법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사부: 바로 당신이 깨달을 수 있으면 점화가 필요 없다. 당신이 자각적으로 이 점을 해낼 수 있다면 자신이 도를 깨달은 것이므로 이것은 대단히 좋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정말로 깨닫지 못하는데 또 그를 보니 될 성싶은 사람이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그에게 한마디 일깨워 주는 것이다.

제자: 최근 들어 늘 아주 좋지 못한 심태가 드러나고 선념(善念)이 없으며 사유도 아주 산란한데, 제가 정말로 이렇게 심각하게 떨어진 것입니까?

사부: 자신에 대해서 느슨히 하면 업력은 미친 듯이 날뛴다. 만약 당신 이쪽이 강해지면 그것을 억제할 수 있다. 억제하였을 때 내가 보니 당신은 정말로 괜찮고 수련하는 사람이라, 그렇다면 바로 책임져 주어야 하며, 당신에게 이런 것을 아래로 소멸시켜 주어야 하는 바로 이런 한 층의 관계이다. 하지만 당신 자신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당신은 아, 내가 그것을 억제만 하고 사부님께서 나를 위해 소멸시켜 준다면, 나는 바로 억제하겠다고 한다.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말한 병이 있는 그 사상처럼, 당신은 내가 당신을 소업시켜 줄 것을 바라고 당신이 비로소 연마한 것이기에 역시 안 된다! 아무튼 어떠한 일도 당신이 집착해서는 안 되며 정념(正念)이 있어야 한다.

제자: 공원에서 단체 연공할 때 스승님의 연공동작 비디오를 방영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환경이 허락되고 또 정부가 간섭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비디오를 방영할 때에는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해야 한다.

제자: 수련한 지 일 년 남짓 되었는데, 수련할수록 취약해지는 것 같고, 작은 집착에도 마음이 아주 심하게 파동을 칩니다.

사부: 아마 당신 자신이 갈수록 민감하게 변하여, 자신이 수련을 잘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할 수 있는데, 이 마음도 갖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되,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마다 수련 과정 중에 모두 잘못할 수 있고 모두 넘기지 못하는 관이 있다. 만약 관마다 당신이 모두 순조롭게 넘길 수 있다면 이 사부인 내가 배치를 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므로 관마다 넘기기가 매우 어려운바, 당신은 넘기도 하고 넘지 못하기도 하며, 잘 넘기기도 하고 잘 넘기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잘 넘기지 못하면 당신은 고통스러워할 줄 알고, 당신은 수련을 잘하지 못하면 자신을 뉘우칠 줄 알아 다음번에는 잘 수련한다. 그러면 다음번에 또 넘길 때 바로 이런 상태 중에서 넘어가거나 넘어가지 못하거나 자신이 자신을 검토하며, 끊임없이 이렇게 하고 있는바, 당신은 바로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매 한 관을 다 잘 넘길 수 있다면 당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고, 어떤 관도 당신을 가로막지 못한다면 당신은 바로 원만을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돌려 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가 잘 넘기든 잘 넘기지 못하든 다만 우리는 수련만 하면 된다고 했다 하여, 당신이 이후 자신을 느슨하게 하고 잘 넘기지 못하고서도 개의치 않는다면 당신은 또 수련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자: 어떤 것을 원만을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까? 속인처럼 죽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부가 배치한 것입니까?

사부: 원만에는 여러 종류의 형식이 있다. 여러분 알다시피 석가모니 부처는 열반을 말하는데 그것은 최대한도로 사람의 집착심을 버리게 하는 것이다. 그의 한 법문은 인체(人體)마저도 가지지 않으므로 당신도 신체에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바 바로 이렇게 수련한다. 티베트의 라마교에서는 홍화(虹化)를 말하는데, 바로 원만에 이르고자 할 때 거기에 앉아 있다. 만약 당신의 모든 신체가 다 잘 수련되었다면 원만에 이르는 그 순간에 바로 한 갈래 붉은빛으로 신체를 변화시키고서 그 자신 元神(왠선)이 수련된 불체(佛體)를 가지고 간다. 그러나 잘 수련된 불체는 속인 측면의 물질을 지니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보지 못하고 다만 빛만 볼 수 있는데, 빛 그림자는 올라가 버린다. 그런데 수련이 조금 부족한 사람은 그의 신체를 완전히 홍화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그가 홍화될 때면 순식간에 한 사람의 신체가 “쏴” 하면서 한 자 크기의 완정한, 그와 모양이 똑같은 한 자(尺) 크기의 사람으로 변하는데 신체의 크고 작음이 아주 균일하다. 바로 그의 수련이 아직 부족하여 전부 홍화되지 못해서다.

또 다른 상태가 있다. 중국의 도가에서는 원만을 이룰 때 ‘시해(屍解)’를 말한다. 무엇을 시해라고 하는가? 고대 중국에는 많은 사람이 대도(大道)를 수련했다. 대도 수련법은 수련 성취한 후에도 신체를 가지는데, 신체를 가진다 해도 육신은 속인의 신체가 아니며 이미 완전히 고에너지물질로 전화되었는바, 그는 이미 그의 도체(道體)가 되었다. 그의 시해 방법은, 바로 그 자신이 이미 수련되어 원만에 이르렀고, 그의 신체 역시 완전히 수련된 것을 안다면 그는 인간 세상을 떠나려고 할 때 어떻게 떠날 것인가? 많은 수도하는 사람이, 그가 속인 중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소원을 원만을 이룬 후에 해결한다. 불문에서는 이렇지 않다. 그가 원만을 이루는 중에 해결한다.

시해는 바로 그가 떠난 후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찾지 않게 일종의 거짓 죽음을 표현하는 것인데, 실제로 그때에는 하늘로 올라가고 땅으로 들어가는 것을 모두 할 수 있었다. 떠나갈 때가 되면 그는 가족들에게 알리는데, 그는, 내가 곧 원적(圓寂)할 것이며 이미 수련이 다 되어 나는 곧 갈 것이니 나에게 관 하나를 준비해 달라고 말한다. 마침내 그 시각이 되면 그는 바로 침상에 누워 잠시 후 숨을 거둔다. 가족들이 보니 죽었으므로 그를 관에 넣어 매장한다. 실질상으로는 그가 ‘장안법(障眼法)’, 이 신통을 사용한 것이다. 그 날이 지난 후 그의 가족들이 본 그는 그의 진신(眞身)이 아니다. 무엇인가? 그는 지물화성(指物化成)한 것이다. 그는 신발 하나 혹은 빗자루 하나 혹은 막대기 하나 혹은 그 검(劍)을 자신의 형상으로 변화시키는데, 지물(指物)하여 형상화한 것이다. 어떤 말이든 다 할 줄 알아서 그의 가족들과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기에 누워서 잠시 후 죽는데 나를 관에 넣으면 그만이다. 실제는 그 나무 혹은 그 빗자루 신발 한 짝일 수도 있다. 진인(眞人)인 그는 이미 떠나갔으며 멀리멀리 갔다. 가족들은 그를 묻어버린다. 실제로 묻어버린 후 두 시간이면 그것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그것은 또 신발 한 짝, 혹은 죽간 하나, 혹은 나무 한 토막이다. 이것을 바로 시해라고 부른다. 어떤 사람이 다른 지방에서 돌아와 말하기를, “어이, 당신 집의 누구누구누구를 아주 먼 지방에서 봤는데, 내가 장사를 할 때 우리는 또 이야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의 가족들은 “아니, 이미 죽었다.”고 한다. 그 사람은 “나는 그를 보았고, 그는 죽지 않았으며, 나는 확실히 그를 보았고 또 그와 이야기를 하였으며 또 함께 밥까지 먹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은 이상하다. 그는 확실히 죽었는데 라고 말한다. 가족들도 그가 수도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면 파헤쳐보자고 한다. 관을 보니 신발 한 짝만이 그 속에 있었다.

도가에서는 또 일종의 형식이 있는데 백일비승(白日飛升)이라고 한다. 백일비승이란 바로 그의 신체가 완전하게 수련되었고, 그는 수련원만 전 세간에서의 소원도 풀었으므로, 어떤 할 일도 없어 이제 떠나야 했다. 이때에 천문(天門)이 열린다는데, 곧 삼계 내의 대문이 열리는 것이다. 연후에 어떤 이는 천신(天神)이 나타나서 그를 마중하거나 용(龍) 또는 학(鶴) 등등이 있는데, 그는 타고 날아가 버린다. 혹은 하늘 수레(天車)가 와서 그를 싣고 간다. 이런 종류의 일은 고대에는 아주 많았는데 이런 백일비승도 있다. 우리 이 한 문 法輪世界(파룬쓰제)로 가는 데는, 나는 백일비승 이런 방법을 취하려 한다. 또 어떤 법문은 신체를 원하지 않으므로 당신이 그에게 신체를 주면 그의 전체 세계의 것은 완전히 다 흐트러진다. 마치 열반한 석가모니에게, 당신이 그에게 신체를 주면 그는 열반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그렇게 하면 전체 법문을 다 흩트려 놓은 것이 아닌가? 그의 세계는 다 계(戒)・정(定)・혜(慧) 이 요소로 구성된 것이므로 그는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 많은 사람이 속인의 사상으로 ‘아, 이 백일비승이 얼마나 좋은가? 사람으로 하여금 내가 날아간다는 것을 좀 보게 하자.’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속인의 마음으로 신의 일을 생각하는데, 이것은 절대로 안 된다. 곧 원만을 이룰 때면 제 나름의 원만 방법이 있다. 그러나 우리 이번의 원만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 나는 믿지 않는 사람에게 반드시 한 차례 심각한 교훈을 남겨줄 것이다. 그러므로 미래의 나의 제자의 원만은 아마 틀림없이 인류사회가 다 영원히 잊지 못할 한 차례 장관일 것이다. (박수)

얘기는 이렇게 했지만 어떤 마음이든 다 내려놓아야 하며, 이런 일을 상관하지 말라. 오로지 수련만 해라. 당신이 수련 성취하지 못하면 무엇이든 다 영(零)이다.

제자: 『전법륜』 책 중에 부동한 글자의 배후에는 부동한 불(佛)・도(道)・신(神)이 있습니까?

사부: 그렇다. 이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책을 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보고 이해했다. 아! 명백해지자마자 신체는 갑자기 한번 진동하거나 한번 뜨거워지거나 하는데, 그것은 단지 하나의 미약한 감각에 불과하다. 사실 그때 신체의 변화는 극히 강렬한 것이며, 그쪽 면에서는 어디나 다 솟구치고 있다. 당신이 또 한 층차를 제고했기 때문에, 신체는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부동한 형식의 변화가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 사찰 안의 그 불상은, 머리 위에 머리 네 개가 생기며, 혹은 머리 네 개 위에 또 머리 세 개가 생겨나며, 머리 세 개 위에는 머리 하나가 생겨난다. 사실 이것은 부처의 일종의 부동한 층차 중에서 나타나는 법상(法像)의 표현형식이다. 다시 말해서 부동한 층차에서 신체 상태의 변화는 모두 상당히 강렬한 것이다. 위대하고 장엄하며, 또 위엄이 있고 오묘무궁(奧妙無窮)하다. 그러므로 당신들에게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원인이 있는 것이다. 당신들은 속인의 이 마음이 있기 때문에 속인의 마음으로 가서 이해할 것이며 심지어 이로 인하여 비정상적으로 될 것이므로 다 안 된다.

제자: 악수나 신체의 접촉은 업력의 전달을 초래할 수 있습니까?

사부: 진정한 수련인이라면 당신의 느낌 감각이 아무리 영민해도 그는 당신에게 어떤 상해도 입힐 수 없다. 당신이 수련하는 신체는 모두 공인데 공보다 낮은 것을 두려워할 수 있는가? 그는 당신과 큰 경지와 층차의 차이가 있으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사람과 사람 간의 악수나 속인과 속인간의 접촉이나 악수는 확실히 업력으로 하여금 일종의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적어도 묻거나 옮는다. 이 점은 분명하다. 현재 여러분은 모두 악수한다. 악수하는 것은 서양 백인사회에서 전해온 것이다. 동양인은 과거에 악수하지 않고 만나면 포권(抱拳)을 하는데 역시 아주 좋은 것이다. 여인들은 그렇게 포권을 하지 않는바, 예쁘지 않으므로 그녀는 이렇게 오른쪽 배 앞에서 포권을 하되, 몸을 한쪽으로 살짝 젖히고 다리를 한번 굽힌다. 서양 문예부흥 이후에 비로소 악수가 나타난 것 같다. 과거에는 그도 악수하지 않았으며 그는 그의 예절이 있었는데 또한 다른 것으로, 어떤 것은 이렇고 어떤 것은 저렇고, 아무튼 각양각색으로, 각종 예절이 다 있다. 악수는 후에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허스(合十)가 있지 않은가? 불문의 예절이다.

제자: 수련한 지 1년 남짓 이래로 나에게 번거로움을 조성해 주는 사람이 아주 적습니다. 이렇게 나아가면 한 더미의 큰 집착심을 어떻게 제거하겠습니까?

사부: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모두 부동한 상태가 있는 바, 혹은 이렇거나 저렇거나 …… 여러 면의 요소가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부디 이런 것에 집착하지 말라. 정말로 난이 오는 그 날 당신은 또 넘기가 쉽지 않아 하며, 난이 없으면 당신은 또 그리워한다. 모두 원인이 있는 것이며, 사실 어떤 사람은 또 확실히 그렇게 많은 난이 없는데 이 점도 분명하다.

제자: 우리 연공장에는 몇십 명이 있는데 대부분 사람의 안색이 좋지 못합니다. 우리는 착실하게 수련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사부: 일부 연공장은 매우 비정상이다. 수련생 중에서 일부 어떤 골목소식을 전하면서 난오(亂悟)하고 있다. 본래 이것은 내가 말한 법과 아무 관련도 없는 일로서, 그는 한바탕 난오(亂悟)하고 또 수련생을 데리고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다. 또 법을 논의하는데, 이 법은 어떠어떠하고 이 단락은 어떠어떠하며 저 단락은 어떠어떠하다고 한다. 인간이 법을 논의할 자격이 있는가? 적어도 당신은 아직도 사람의 생각이 있으므로 그렇게 하면 틀린 것이다. 우리는 대법에 따라 수련하는데, 읽고(讀) 보며(看) 단체 연공을 한다. 많은 시간을 들여 법을 읽고, 법을 보며, 적은 시간으로 자신의 체득을 말한다. 혹은 당신들이 연공을 끝낸 후 서로 좀 말하는 것은 모두 괜찮다. 당신이 수련시간이나 법을 읽는 시간을 점하여 체득을 담론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좋지 못하다. 어떤 사람이 하는 일부 말은 모두 각종 사념(私念)을 띠었고, 각종 정서를 지니고 있으며, 심지어 말하는 것은 법과 모두 다른 별개의 일인데, 당신은 바로 수련생을 빗나가게 이끈 것이고 심지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은 모두 속인의 사상이 있다. 우리 수련생 중에 노수련생이든, 신수련생이든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말해 내도록 할 수 없으며, 또 당신으로 하여금 글자 표면보다 높은 이치를 말하게 할 수도 없고 또 알게 할 수도 없다. 당신이 논한 것은 필경 모두 글자 표면, 표면의 이치이다. 왜냐하면, 천법(天法)은 속인 중에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 그가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고 그가 어떻게 그런 난잡한 것을 깨달아냈는지 모르겠다. 그러므로 주의해야 한다!

제자: ‘인(印)’의 번역문은 무엇입니까? 왜 ‘제인(結印)’이라고 해야 합니까?

사부: 부처는 인(印)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그것은 바로 불법의 장엄한 체현으로서, 고인도에서 번역해 온 개변하지 않은 한 고유명사로서 인(印)이라고 한다. 제인(結印)이나 대수인(大手印)이나 소수인(小手印)이나 그것은 법상(法像)과 법어(法語)의 또 다른 장엄한 표현이다.

제자: 저는 수련한 지 곧 1년이 되는데 아직도 法輪(파룬)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부: 이렇게 말하자. 만약 당신 자신이 조금도 변화가 없고, 법이 당신에게 가져온 변화를 체험하지 못했거나 당신이 속인 상태를 초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거나 깨달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면, 나는 믿지 않는다. 당신이 수련인이라면 말이다. 당신이 기필코 보아서 체현해 내고, 혹은 속인이 보는 것처럼 똑똑하게 이렇게 실제로 체현해 낸다는 것은, 내 생각에 아직 안 된다. 당신들 자신의 조건에 근거하면, 속인 사상의 상태가 같지 않고 장래에 원만을 이루는 것도 같지 않기에 매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같지 않으며, 이 일을 하는 자체가 절대로 천편일률일 수 없다. 의도적으로 法輪(파룬)을 보려고 하는 이 마음을 제거하지 못하면 보지 못한다.

제자: 더욱 고층차의 부처가 인류를 보았을 때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쭙건대, 사부님께서는 왜 우리를 제도하십니까?

사부: 우주의 법은 우주 중의 전체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부동한 층차의 생존 환경을 창조해 주었다. 그렇다면 이 생존환경 중에는 반드시 중생이 있어야 한다. 속인도 이 법이 전체 우주에 창립해 준 부동한 층차 중의 가장 낮은 한 층차이다. 그렇다면 내가 서 있는 각도에서는 전체의 법과 전체의 우주를 고려해야 한다. 내가 말을 분명하게 했는가? (박수) 그러므로 나의 각도에 서서, 생명에 대해서나, 바른 것(正)과 부정적인 것(負) 두 방면의 생명에 대한 인식은, 당신들과 모두 다르다. 이것은 당신들이 이해할 수 없다.

제자: 끊임없이 법을 배움에 따라 머릿속에 있는 일이 갈수록 적어지며 심지어 어떤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이것은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약해진 것입니까, 아니면 수련이 빗나간 것입니까?

사부: 아니다. 내가 또 당신에게 알려주는바 이것은 아주 좋은 현상이다. 왜 아주 좋은 현상이라고 말하는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속인사회에서 두뇌의 반응이 아주 민첩한 것은 자신의 이익이 손실 받지 않도록 지키기 위해서이므로 이 방면의 사상 반응은 아주 빠르며, 기억력도 좋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움직이는 이 부분 두뇌는 좋은 것이 아니므로 곧 그는 업을 지을 것인데 너무 발달하여 당신의 수련을 교란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리는 방법을 취하여, 먼저 당신 이 부분의 두뇌를 억제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을 먼저 잠가 놓고 잘 조정을 하고 나서, 당신으로 하여금 수련인처럼 사유할 수 있는 그 부분 사상으로 대체하고, 이 부분 사상을 발달하게 한다. 그런 후에 간사하고 교활한 그 부분을 잘 조정하고 나서 점차 개방하면 그때에는 당신이 자신을 잘 파악할 수 있다. 당신 자신의 그 좋지 못한 사상이 의식도 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발달하였기 때문에, 문제를 생각하기만 하면 그 부분 두뇌 속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 부분 두뇌는 여러분의 수련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므로 많은 사람에게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는데,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당신이 늘 잘 사용하는 것,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 하는 것이나, 다른 사람을 해칠 수 있는 이런 사상이 너무나 발달한 이 뇌세포 그것을 모두 봉폐하여 조정하므로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나 일시적이다. 봉폐한 후 또 당신을 위해 처리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발달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을 정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당신 정념(正念)의 사상세포(思想細胞)로 하여금 발달하게 하는데, 바로 이렇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한마디 속어로 형용하여 말하면 비교적 적합할 텐데, 정정당당하게 부처를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머리가 간사하고 교활해서는 안 된다!

제자: 다른 사람의 체득을 들으면 자신도 깨우침을 받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깨달은 것보다는 견실하지 못합니다.

사부: 그렇다. 그것은 당연하다. 당신 자신이 깨달은 것은 주로 자신이 수련해 낸 것이므로 그것이 가장 견실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을 들을 때 당신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귀감이므로 촉진이 된다. 그러므로 역시 좋은 점이 있다. 법회는 자주 열릴 수 없으며, 우리의 법회는 법회로서 좋은 점이 있다. 체득을 얘기함도 너무 빈번하게 하지 말고 정력을 법공부와 책 보기에 두어야 한다.

일부 제출한 문제는 비교적 낮은 것, 중복되는 것이고, 또 일부 문제는 책을 보면 해결할 수 있는 것이므로, 그들은 모두 골라 뺐다. 시간 관계상 우리는 해답하지 않겠다. (열렬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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