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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법회 설법

 

李 洪 志
(1998년 8월 22, 23일)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수,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나는 우리 여기에 자리한 사람 중에 싱가포르 수련생도 있고, 또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고 중국과 기타 나라의 여러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이번 법회의 목적은 전반적으로 상호 간의 교류를 통해 차이점을 찾아 여러분들로 하여금 되도록 빨리 층차(層次)를 제고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많은 수련생은 장기간의 수련으로 법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 많은 체득과 깨달음이 있으며, 각 방면에서 스스로 감수한 것도 많아졌기 때문에, 많은 수련생이 나를 만나려고 한다. 당신들 중 많은 사람이, 그 당시 내가 중국에서 꾸린 학습반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에 속하며, 많은 사람이 스스로 배우는 데에 속한다. 이렇게 되니 나를 만나려는 마음이 아주 간절하다. 나도 여러분들의 심정을 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왔다. 또 다른 많은 사람도 이러한 생각이 있으며 또 오고 싶어 한다. 당신들의 심정을 나는 잘 이해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당시는 내가 몸소 법을 전할 때였는데, 그렇다면 법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면 지금은 법이 이미 전해졌고 책은 사회에서 광범위하게 유전되고 있으며 우리 수련생들은 모두 다 책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모두 다 법을 배울 수 있고 수련할 수 있으며 효과는 내가 그 당시 법을 전하고 친히 학습반을 꾸릴 때와 똑같으므로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는 당신들의 수련환경이 어떻게 하면 안정되고, 당신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면 되도록 빨리 제고하게 하느냐 하는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하다. 여러분들은 법 학습을 통해, 수련을 통해 이 또한 명백해졌다. 사부가 진정으로 당신들을 관할하고 당신들을 위해 책임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제고에도 모두 다 체계적인 배치가 있고 개인마다 체계적인 수련의 길이 있다. 여러분들이 나를 만나려다 보면 이 마음이 동요되어 안심하고 수련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나를 찾아 도처로 다닐 것이므로, 또한 당신들의 수련 과정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법은 이미 전해졌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당신들의 제고, 당신들의 수련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제고하지 못하고 수련하지 못한다면 내가 전한 이 법은 곧 아무것도 아니다.

이미 당신들의 수련하는 이 일이 제1위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어떠한 일도 이것을 교란해서는 안 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려는 것은 바로 수련 중에 마음을 안정시켜 수련하고, 어떤 속인의 마음에도 영향을 받지 말라는 것이다. 만약 당신들이 진정으로 수련을 위해, 자신의 경지를 제고하기 위해 차이점을 찾거나 싱가포르 수련생들의 수련 정황을 보고 그들의 체득을 듣고서 자신을 어떻게 제고할 것인가를 다그치려는 이런 생각이라면 나는 대단히 기쁘다. 물론 여러분들이 사부를 만나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없지만, 당신들은 이 사람의 정이 너무 심하지 말아야 한다. 어쨌든 속인의 마음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곧 속인의 정(情), 속인의 마음으로 나를 대할 것이며 속인의 생각으로 법을 대할 것인바, 이는 곧 당신들의 제고에 엄중한 장애를 조성하므로 우리 여러분들은 이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많은 사람이 여기에 오기가 쉽지 않고, 어떤 사람은 일이 아주 바쁜데도 시간을 내어 특별히 싱가포르에 오는 어떠한 상황이든 다 있다. 기왕 왔으니 마음을 안정시키고 싱가포르 수련생들은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제고했는지를 좀 들어봄으로써 외지에서 온 수련생들은 그것을 한 차례 경험으로 삼자.

나는 원래 이번 법회에 참석하러 왔으며 여러분의 말을 들어보러 왔다. 하지만 필경 우리 많은 수련생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아주 많다. 대법이 세상에서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새로운 수련생, 새로운 제자가 입문하고 있는데, 그럼 그에게는 필연코 이런저런 문제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무슨 문제든지 모두 다 책 속에서 답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일부 수련생들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아 늘 물어보고 싶어 하므로 나는 여러분에게 이런 기회를 한번 주겠다. 이번 회의가 열리는 이틀 동안, 나는 많이 말하지 않을 것이며 주로 여러분의 말을 듣겠다. 내일 오후에는 내내 여러분의 문제에 해답해 주겠다. 여러분은 수련 중의 문제를 많이 제출할 수 있으며 내가 여러분에게 해답해 주겠다. 왜냐하면, 모두 이틀이지만 내가 생각해 보기엔 반나절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우리 수련생들은 또 발언을 준비해야 하고 또 다른 활동도 있다. 우리 이 법회를 원만히 열어나가도록 노력하자. 이렇게 큰 규모의 법회는 싱가포르에서 처음이고, 또 그렇게 많은 외지 수련생이 왔으므로 여러 방면으로 준비하는 일도 쉽지 않은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더 많이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알고 잘할 것이다.

다음은 내가 여러분에게 지금 우리 대법의 전체적인 형세를 좀 말하겠다. 과거에 내가 중국에서 법을 전할 때는 마침 중국이 개혁개방의 시기였다. 사람들의 사상이 경제발전 그러한 상태로 전환되고 있는, 바로 그런 시기에 내가 이것을 말한다는 느낌이 있었다. 많은 사람은 장기적으로 형성된 사상관념으로 인해 그들이 이해하는 데에는 한 과정이 있어야 했다. 한동안의 법 공부를 통해 그들은 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 나는 후에 발견했는데, 특히 근래의 신 수련생들은 법을 얻는 과정에서 앞사람을 추월한다는 느낌을 조금 받았다. 그는 감성인식 상의 장애가 없이 단번에 받아들이며 바로 수련에 돌입하는데, 인식과정이 없었다. 내가 배울 수 있는가? 배우고 싶은가? 혹은 이 이치 속에 말한 것이 맞는가? 그는 이런 것이 없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이런 수련생들이 비록 나중에 법을 얻었지만 나는 그들에게 누락이 없음을 발견하였는데, 그는 스스로 노력하여 아주 빨리 따라왔다.

내가 느끼기에 전체적인 대법 형세를, 즉 법 인식이 갈수록 깊어지고 법에 대한 이해도 갈수록 깊어져 정말 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같다. 이것은 그 당시 사람의 이런 감정, 사람의 사유로 이 법을 대하는 것에 비하면 아주 큰 변화로서, 확실히 대단히 큰 변화가 있어 그 당시와는 이미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면 다시 말해서 당신들은 진정으로 모두 다 법 안에서 수련하고 있고, 보통사람의 그런 정(情), 보통사람의 그런 감은대덕(感恩戴德), 보통사람의 그런 각종 관념으로 이 법을 생각하거나 가늠하지 않았는바, 이런 것이 갈수록 적어지고 있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우리의 법은 속인사회 이곳에서 갈수록 순수해지고 있다.

무엇을 일러 법을 원용(圓容)한다고 하는가? 아마 우리 많은 수련자는 아직 모를 것이다. 이렇게 큰 법이 우리를 제도할 수 있고, 우리로 하여금 부동(不同)한 층차(層次) 부동한 경지로 수련하여 갈 수 있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하는 것을. 그런데 어찌하여 또 사람이 그를 원용해야 하는가? 사실 우리 여러분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속인사회 역시 이 끝없는 우주 대법의 제일 낮은 한 층차의 체현이고, 속인사회 속의 일체 표현형식 역시 이 법이 준 것이며 창조한 것이다. 수련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러한 환경을 이용하여 수련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속인사회는 비록 부동한 층차에서 볼 때 모두 그것이 나쁘다고 하지만 그것도 필경 법이 창조한 한 층차이고 한 경지이다. 그러면 우리는 수련 중에 어떻게 이 층차에서 벗어나고 어떻게 속인사회 속의 각종 행위관념에서 벗어날 것인가 명확해지면 당신들은 곧 이런 장애를 돌파할 수 있고 또 승화해 올라갈 수 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수련 속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속인의 것을 만약 당신이 내려놓지 못한다면 당신의 수련을 엄중하게 가로막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도덕의 타락과 인류 도덕관념의 추락은 이미 이 층차의 법이 이 층차의 중생에게 창조한 일체를 모두 변하게 했다. 그러면 사람은 속인사회에도 어떤 진리표준이 있다는 것을 알기가 매우 어렵다. 이 표준이 없다면 사람은 무슨 짓이든 모두 하려고 하고 무슨 짓이든 모두 할 수 있으며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사회의 도덕과 관념의 부패를 촉진한다. 속인사회에서 각종 좋지 못한 현상과 각종 범죄가 나타난다.

당신들은 법을 원용하기 전에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들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한편으로 법을 원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당신들은 필경 속인사회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당신들은 또 이 일체보다 높아야 한다. 그렇다면 당신들 자신이 어떻게든 진정으로 법을 이해할 수 있고, 법 속에서 수련할 수 있으면 정정당당하고 진정한 수련인이 된다. 이렇다면 여러분들은 바로 법을 원용하고 있는 것으로서, 바꿔 말하면 당신 역시 법을 수호하고 있는 것이다. 매 한 명 수련생의 속인사회 속에서의 표현은 모두 法輪大法(파룬따파)의 형상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우리 모두 잘못했다면 틀림없이 대법에 먹칠하는 것이고 동시에 우리 역시 법을 원용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법을 수호하고 법을 수호해야 한다는데,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나쁘다고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특히 어떤 사람이 우리 대법에 대해 비방하거나 우리를 공평치 못하게 대할 때 우리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서 흔히 분개하고 불평하며 어떤 수단을 취해 그에 대처하려고 한다. 그가 우리를 나쁘게 대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그를 대한다면 우리는 곧 속인과 자신을 혼동한 것과 같다. 역시 그와 똑같아진다.

사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법을 수호하는 것은 폭력과는 다르다. 선과 악 두 면은 사람 자체에서 동시에 존재한다. 우리는 악의 일면을 배제하고 선의 일면만으로 법을 수호해야 한다. 남들이 우리를 나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에게 우리가 어떻게 좋은지를 알릴 수 있고, 오직 선한 일면으로 그에게 이치를 말해야 한다. 흔히 속인들은 늘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그는 곧 부정적인(負) 방법을 취하려 한다. 그러면 어떤 과격한 행동이나 혹은 어떤 폭력을 취하는데 우리를 놓고 말할 때 이런 것은 모두 안 된다. 나는 항상 한마디 말을 하는데, 만약 한 사람이 어떠한 관념도 없이, 개인의 이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남이 좋아지도록 남에게 그의 부족함을 말해주거나, 혹은 그에게 어떤 것이 바른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이 선(善)의 힘은 매우 큰데, 속인사회의 사람들은 흔히 남에게 좋은 일을 말할 때에도 자기의 관념을 갖고 말하며, 심지어 손해를 볼까 두려워, 자기의 그 심리를 보호한다. 많고 많은 방면의 것이 안에 섞여 들어있기 때문에 그가 한 말은 듣기에 말의 뜻이 변했고 깨끗하지 못하며 흔히 감정까지 섞여 들어간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선한 마음에서 출발하여 어떠한 개인의 관념도 섞지 않았다면 당신이 한 말은 정말로 사람을 감동케 할 것이다.

내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바로 우리가 속인사회에서 어떻게 법을 원용하는가 하는 것이며, 어떻게 하면 이 법이 손실 받지 않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많은 사람이 일부 사회 속의 부동(不同)한 정부의 공무 부서에 우리의 이치를 말했는데, 나는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만약 그가 들었다면 그는 좋은 사람 중의 하나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 다만 그가 듣지 않으려고 할까 염려된다. 만약 그들이 정말로 우리의 법을 이해하려고 하여 그가 가서 책을 본다면, 그가 법을 보고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그는 우리가 어떤가를 알 것이다. 흔히 우리를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은 모두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우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일체는 모두 공개적이고, 남들에게 보여주기 곤란한 어떠한 것도 없으므로 우리가 걷는 이 길은 매우 바르다. 나는 항상 말한다. 바로 우리가 걷는 길이 매우 바르기 때문에 속인사회의 일체 바르지 못한 것, 좀 바르지 못한 것, 심지어 좀 완벽하지 못한 것들이 모두 우리를 그들의 장애로 여길 것이다. 우리가 매우 바르기 때문에, 어떤 것은 그것의 부족함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곧 우리에게 일부 좋지 않은 작용을 일으킬 것인데, 이는 필연적이다. 만약 올바른 것이 전해져 나오는데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아주 바르지 않을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박수)

다른 한 방면에서 말하면, 우리의 법은 속인사회에서 전해지기 때문에,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부서로부터 마구 공격을 받게 되거나 우리에 대해 제멋대로 정의를 내리거나 우리에 대해 일부 터무니없는 수단을 취하거나 하는데, 이런 문제는 우리도 우리 자신의 한 방면에서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들이 나타나는지, 우리 자신 혹은 우리의 보도소, 연공장 혹은 우리의 모 수련생들이 한 것이 부족해서가 아닌가? 우리가 부딪히게 되는 어떠한 일이든 모두 우리 자신이 이 방면에서 한번 가늠할 수 있다면, 나는 이 사람을 정말 대단하다고 말하는데, 원만의 이 길에서 어떠한 장애도 당신을 가로막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어떠한 일에 부딪히면 모두 밖을 본다. 당신은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가? 마음속에 일종의 공평치 못한 느낌이 들어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데, 이것이 모든 생명의 가장 크고 치명적인 장애이다. 과거 일부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련해 올라가지 못한다는데, 어떻게 수련해 올라갈 수 있는가? 이는 제일 큰 장애로서, 누구도 모순 속에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받은 고통과 당한 불행을 자신에게서 찾고, 자신의 어느 곳이 잘못되었는지를 찾는다는 것은 정말로 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누가 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길에서, 수련하는 이 길에서, 당신의 영원한 생명에서, 당신을 가로막을 어떠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정말 이러하다. 우리는 모두 사상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치 앞에서 비록 우리 마음속이 어떤 때에는 명백하다 하더라도 또 넘어가지 못한다. 그러나 필경 우리는 마음속이 명백하므로, 어느 것이 올바른 것이고 어느 것이 잘못된 것인가를 안다. 한 번 잘못하고 두 번 잘못하다 보면, 우리는 이후에 잘할 수 있게 되는데, 당신이 어떻게 자신을 알고 어떻게 정확하게 자기를 향해 자신의 원인을 찾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전에 우리 많은 수련생이 외부의 사람과 일부 모순이 발생하거나, 혹은 사회의 사람이나 어느 부서에서 우리를 공평치 못하게 대하면 우리는 언제나 모두 자신의 이 방면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방면을 강조했다. 어떤 것은 매우 나빠, 그것이 마구 파괴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그것이 비록 나쁘고, 그것이 비록 마의 표현이지만, 그것이 어찌 우연히 나타났겠는가? 그의 나쁜 일면을 이용하여 우리로 하여금 자신의 나쁜 면을 보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늘 말하는데, 두 사람이 모순으로 부딪치게 되면 당신들은 서로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 두 사람 쌍방 간에 모순이 발생하면 자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설사 제삼자로서 이 문제를 보게 되더라도 당신은 마땅히 자신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는 그것이야말로 제고 속에서 돌비맹진(突飛猛進)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들도 알겠지만, 생명은 부동한 층차의 미시적인 물질로 구성된 것이며 어떤 것은 매우 미시적이다. 우리 수련은 극히 미시적인 상태 다시 말하면 당신 생명의 본원 속에서 당신을 개변시키고 있으며 부단히 당신을 개변시키고 있다. 그런 연후에 표면으로 돌파하고 끊임없이 표면으로 돌파하여 끊임없이 표면으로 당신을 개변한다. 만약 줄곧 표면까지 전부 개변이 끝나면 당신은 원만을 이룬 것이다. 우리가 걷는 것은 바로 이런 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 표면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법에 의해 동화되기 전까지, 당신은 모두 부동한 상태의 속인의 행위, 속인의 사상, 속인의 작법이 있을 수 있는데, 이것은 틀림없다.

우리 일부 수련생들은 나를 찾아와서 “사부님 저는 이렇게 오랜 시간을 수련하여, 자신 또한 법에 대한 인식이 어떤 때에도 일반 신 수련생들의 상태와는 같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되어 사상 속에 아직도 나쁜 관념이 반영되어 나옵니까?”라고 한다. 이것은 우리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마다 모두 생각하는 문제이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은 수련과정 중 생명의 가장 근본에서부터 시작하여 당신이 개변된다. 당신의 제일 표면에 도달되기 전까지는 줄곧 속인의 사상이 존재한다. 그것은 어떤 좋은 점과 어떤 나쁜 점이 있는가? 좋은 점은 당신이 속인 속에서 이런 수련환경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당신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제고되고 더욱 빨리 제고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나쁜 점은 바로 당신이 좀처럼 자신이 도대체 어느 경지에 있는지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한 기간 당신이 수련을 아주 잘했을 때, 법에 대한 이해도 아주 좋을 때, 책도 모두 외울 수 있을 때, 즉 이런 경지에서 표준에 도달했을 때, 즉시 당신과 격리하며 바로 당신의 잘 닦지 못한 그 일부분과 격리한다. 당신은 갑자기 “나는 왜 법리에 대한 이해가 또 잘되지 않을까? 나의 사상이 어찌하여 또 나쁘게 변했을까?” 하는 이런 생각이 날 것이다.

사람이 속인 중에서 수련할 때 당신의 잘 닦은 그 일부분은 이미 정정당당한 신의 일부분이다. 그렇다면 신은 속인과 동일한 속인사회 중의 행위가 있으면 안 되며, 이것은 절대 허용할 수 없는 일로, 일단 있으면 곧 떨어지게 된다. 우리는 당신이 속인사회 속에서 수련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또 당신으로 하여금 떨어져 내려가지 않도록 당신이 그 한 층 표준에 도달하기만 하면 곧바로 격리하는데, 잘 닦은 그 일부분이 영원히 그곳에 앉아 움직이지 않게 하고, 어떠한 생각도 떠올리지 않게 하며, 어떤 사람의 행위에도 참여하지 않게 한다. 이렇게 당신이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한다. 당신은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끊임없이 제고할 수밖에 없다. 나는 여기에서 또 다른 이치를 말하는데, 바로 우리는 수련 중에서 끊임없이 미시적인 데서부터 자신을 개변하여 줄곧 당신의 표면으로 돌파해 나아간다. 당신의 표면에 이르기까지 완전히 동화되면 당신은 바로 원만이다.

그러면 우리는 수련 과정 중에 있고 원만에 도달하기 전이라면 늘 속인 속의 사상과 속인 속의 표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어떤 때에는 사상이 마치 갈수록 나빠지는 것 같은 문제를 또 발견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많은 나쁜 것이 모두 뿌리가 있기 때문인데, 제일 큰 한 층 입자 속에만 있지 않고, 부동한 입자 속에도 모두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도 생각해 보라. 우리는 수련 중 끊임없이 표면을 향해 돌파해 나아가므로, 당신의 미시적인 입자 속의 나쁜 것은 끊임없이 청리되고, 청리되고, 청리되는바, 남는 것은 바로 제일 표면의 것이다. 제일 표면의 것이 바로 제일 나쁜 것이다. 그러나 또 한 가지가 있는데, 제일 나쁜 그것이 바로 제일 약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당신이 수련 중 자신을 단속할 수만 있으면, 당신은 그런 나쁜 것을 쉽게 억제할 수 있고, 그런 연후 수련 속에서 당신의 사상 속 각종 관념을 포함하여, 그것을 없앨 수 있다.

내가 말한 이 이치를 여러분들은 알아들었을 것이다. “오, 알고 보니 이렇구나. 사람은 수련 속에서 시종일관 모두 나쁜 것이 존재할 수 있구나. 이후로 나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을 것인데 무섭지도 않다. 그것이 어떻게 생각하고 싶으면 어떻게 생각하라.” 안 된다!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신 자신이 표면에서 자신을 단속하지 않으면 당신은 또 수련하지 않는 것과 같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내가 말한 이것은 우리 수련생들의 정체수련(整體修煉) 중 상태를 말한 것으로, 말이 나온 김에 한 일부 문제이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이 대법은 속인사회에서 유전되고 있는데 무엇 때문에 이런 형식을 취하는가?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가 관리하는 것은 느슨하여 어떤 명부(名冊)가 없으며 장(張)아무개 이(李)아무개 하는 것도 없다. 당신이 누구이며, 나이는 어떻고, 어디에서 사는지, 이런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수련만 하면 나는 곧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수련의 것은 속인사회 이 층 공간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므로, 표면의 형식은 다만 형식일 뿐 아무런 쓸모가 없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지 않는데 당신의 이름만 적는다면 그것은 숫자만 모으는 것이지 수련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속인사회의 어떠한 표현형식도 전부 던져버렸다.

우리는 다만 사람의 마음만 보기 때문에, 당신이 수련만 하면 나는 곧 당신을 책임진다. 당신이 수련만 하면 당신은 바로 우리의 수련생이다. 당신이 연공 중에 있으면, 우리 보도원은 여러분들을 조직하여 법 공부를 할 것인데 바로 그러하다. 우리는 어떠한 속인사회의 그런 행정 조직기구가 없고, 돈을 모으지 않으며, 물건을 모으지 않는다. 여러분들이 여기에 온 것도 모두 자비(自費)로 온 것이며 나 리훙쯔(李洪志)도 당신에게 돈 한 푼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여러분은 어떠한 일도 모두 자의적으로 하고, 모두 자의적으로 여러분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는바, 우리의 일체는 모두 느슨한 관리에 속한다.

내가 왜 이렇게 하는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내가 오늘 전하는 법이 지극히 커서, 그것은 당신의 수련을 부동한 경지, 부동한 층차까지 도달하게 할 수 있다. 이것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니다. 이렇게 큰 대법이 전해지는데, 그것이 사람을 개변하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을 되돌아 상승시키지 못한다면, 이 법은 전해지거나 전해지지 않거나 모두 쓸모없다. 나는, 이는 우주의 진리이고, 우주의 법이므로 그는 필연코 수련하는 사람들 속에서 매우 강렬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 우리 매 사람 모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 것이므로, 내가 당신들에게 어떠어떠하게 하라고 알려줄 필요도 없다.

석가모니 부처가 그 당시 법을 전할 때 100여 가지 계율이 있었는데, 들리는 바로는 지금 대승불교에는 200여 가지 계율이 있다고 한다. 그의 목적은 당신을 단속하여 이 표준에 꼭 부합하게 하려는 것인데 이렇게 해야만 된다. 우리는 오늘날 계율이 없고, 완전히 개방적이며, 어떠한 형식도 보지 않고 사람의 마음만 보는데, 바로 우리의 법이 이렇게 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각도에서 말한다면, 속인사회의 어떠한 표현형식도 이 법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대법 유전에 알맞은 진정한 형식을 채용했다. 어떤 형식인가? 바로 “대도무형(大道無形)”이다. (박수) 우리는 진정으로 “대도무형”의 한 갈래 길을 걷는데, 이야말로 진정으로 우리 이 대법에 어울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당시 내가 법을 전하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줄곧 모두 이렇게 온 것이다.

우리에게서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여러분들이 책을 보고 여러분들이 같이 모여 연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역시 완전히 자의적이고 느슨한 관리라, 당신이 오고 싶으면 오고, 오고 싶지 않으면 그만이다. 나는 이런 것이 매우 좋다고 말하는데 어떠한 유형적인 것도 사람의 마음을 바꾸지 못한다. 그가 배우고 싶어 하지 않는데 당신이 기어이 그를 끌고 온다면, 그는 배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는 이해 못 하는 것에 대해 이러쿵저러쿵하며 내부에서 파괴 작용을 할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걷는 것이 지극히 바르기 때문에, 일체 바르지 못한 것들이 우리를 보면 모두 눈에 거슬릴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결점・약점이 모두 폭로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날 그 기공은 속인사회 속에서 특히 중국이란 그곳에서 각양각색으로 매우 많았다. 나는 우리 대법이 전해진 후부터 특히 이 몇 년 내에 많은 가짜 기공이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한다. 무엇 때문인가? 우리 정법이 전해지자 이 사(邪)한 것, 악한 것, 거짓된 것들이 모두 밝은 대낮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박수) 그렇다면 그것은 자연히 소리 없이 사라질 것이다. 많은 다른 공법을 연마하던 사람이 잇따라 와서 대법을 배웠다. 우리가 사람들을 끌어오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모두 법을 인식할 수 있었으며, 좋다는 것을 알았다. 한 갈래 바른길임을 알았기에 그가 배우는 것이다.

다른 한 방면에서 여러분들은 생각해 보았는가. 정법이 전해져서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여 부동한 층차 중으로 가게 하는 데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바로 당신이 어떤 법으로 수련해 올라 왔는가 하는 것으로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만약 이 법 그가 바르지 않다면 당신은 자연히 수련해 올라올 수 없다. 만약 이 법에 그렇게 큰 위덕(威德)이 없다면, 다시 말해 그에게 이렇게 큰 법이 없다면, 당신도 그렇게 높은 층차로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 만약 이 법이 그렇게 크지 않고, 그렇게 좋지 않은데, 정말로 당신을 그 층차로 올라가게 한다면, 그것은 바로 전체 우주를 망치는 것과도 같다. 당신이 올라갔지만, 당신 역시 자신이 그 속에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당신은 그 속에 있는 위대한 각자를 볼 것인데, 그 위덕이 정말 형용할 수 없으므로,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어떻게 올라왔는가? 하며, 여기에 있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스스로 내려갈 것이다. 그러면 속인사회 속에서 우리 이 대법이 어려움에 부닥치면,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우리의 법을 원용할 수 있으며, 우리 법에 위덕을 수립할 수 있다. 속인사회 속에서 대법을 반대하는 어떠한 표현형식에도, 우리는 모두 똑같은 표현형식으로 그것을 대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선한 일면으로 일체를 원만하게 잘 처리했다. 우리는 법에 대해 수많은 부동한 고험을 감당했는바, 우리 이 법이 자신에게 위덕을 건립하게 한 것이 아닌가? 걷는 것이 바를수록 이 법은 더욱 위대해지는바, 당신들은 이 법 안에서 수련하고 있으므로 더욱 대단할 것인데, 이런 한 층의 관계가 아닌가? 그러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딪히게 되는 어떠한 문제이든 모두 정반(正反) 두 방면에서 보아야 하고, 자기에게서, 자신에게서, 우리 내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어떠한 일에 부딪히든 모두 우리 자신의 내부에서 원인을 찾고, 자신의 부족함을 찾아야 한다.

나는 늘 한 가지 이치를 말하는데 어떤 사람은 번거로움에 부딪히면 그는 그 번거로움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남이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는가? 어찌하여 안 되는 걸까? 사실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는데, 남이 당신에게 잘 대해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우주의 법은 모두 아주 순리적이다. 만약 당신 자신이 틀어졌다면, 당신은 주위의 일체가 당신에 대해 모두 틀어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원인을 찾아내어 순응하면, 당신은 그 일체가 또 잘 돌아가는 것을 발견할 것인데 흔히 이러하다.

또 한 방면으로는 우리가 많은 곤란과 부족함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은 걸을수록 더욱 바르므로, 형세는 더욱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현재 법 공부하는 사람이 이미 매우 많아, 국내외 수련생이 이미 1억을 넘었는바, 바로 이렇게 사람이 많다. 아울러 우리 대법제자들에게는 뛰어난 특징이 있는바, 일단 수련했다 하면 이것이 진리임을 알고, 그는 바로 끝까지 수련하는데, 바로 이 점이 수련에서는 매우 귀중하다. 이는 역사상의 어떤 학설, 어떤 수련과도 같지 않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있다면, 그는 이미 한 가지 사회 현실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우리에게 어떤 좋지 못한 것이 없다면 나는 형세가 더욱더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 法輪功(파룬궁)은 이전에 중국 기공과학연구회의 한 분회(分會)에 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기공과학연구회, 그것이 과학 연구를 하지 않고, 또 공법의 연구 혹은 그 자체에 대해 인식도 하지 않고 오직 돈만 벌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각종 공파를 이용하여 돈을 벌고 있으므로, 우리는 1996년 3월경에 탈퇴했다. (박수) 탈퇴 이후 그들은 우리에 대해 공격을 가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것을 상관하지 않고, 본 척도 하지 않았다. 이것을 여기서 말하지는 않겠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자기의 길을 걸어야 하고, 한 갈래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걸어야 할 길을 걸어야 한다. 사회에 대해서 책임지고, 동시에 수련하는 제자에 대해서도 책임져야 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많은 군중, 이렇게 많은 사람, 그리고 여러분 모두는 사회에 좋은 점이 있는 사람으로, 나 리훙쯔(李洪志)를 포함하여, 우리 자신은 무엇을 얻겠다는 어떠한 생각이 없다. 나는 정부에 번거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국외에서 거주하고 있다. (박수)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수련하고, 모두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그 누구도 이 1억이라는 사람을 정부와 대립 면으로 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점을 나는 여러분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어떻게 하든 모두 우리 자신의 길을 걸어야 한다. 원래 계획은 말을 그렇게 많이 하려 하지 않았다. 다만 여러분들과 대법의 형세, 우리는 어떻게 수련할 것인지, 수련 중 대법에 대한 인식 이러한 문제를 말하려고 했다. 또 한편으로 말을 하는 김에 수련 중의 일을 말했다.

그러면 나는 말하는 김에 또 한 문제를 말하겠다. 많은 사람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나는 사진 찍는 문제에 대해 말하겠다. 예전에 여러분들은 나를 볼 기회가 매우 적어 늘 나의 사진을 한 장 찍으려고 하거나, 사부와 한 장 찍으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수련하는 마음이면 나는 반대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당신이 속인의 마음을 품고 있었다면 나는 매우 괴로울 것이다! 또 하나는 여러분들이 사진을 찍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 좋지 못한 모습을 많이 찍는데,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좋지 못하다. 당신도 나의 제자이기 때문인데, 당신이 사부를 어떻게 그렇게 찍을 수 있는가? 여러분들은 이 회의가 끝나고 돌아가서 다른 지역 수련생에게 말해도 되는데, 당신들이 찍은 그 좋지 못한 사진들을 모조리 태워 버려라. (박수) 필름마저도 함께 태워 버려라. 만약 당신들이 정말로 사진을 찍고 싶다면 나는 당신들에게 찍을 기회를 줄 것이다. (박수) 나는 그만 말하고 내일 오후 여러분의 질문에 해답하겠다.

여러분들은 해답할 문제를 적은 쪽지에 글자를 너무 많이 쓰지 말라. 보는데 매우 번거롭고 시간을 지체한다. 당신은 글 앞에 서두를 적지 말라. 당신은, 사부님 저는 당신이 얼마나 보고 싶었습니다, 혹은 사부님 당신의 말씀이 아주 좋은데, 나 또한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렇게 서두를 적지 말라. 당신은 바로 사부님 나는 어떠어떠한 문제가 있으며 어찌어찌 된 일입니다. 라고 하면 나는 당신에게 해답해 주겠다. 간결해야 내가 보기 편하고, 시간도 지체되지 않아 해답하기도 빠르다. 자 그럼 다음에 여러분들과 같이 수련생들의 발언을 듣겠다. (박수)

우리는 오늘 오후, 여러분들에게 법을 해석해 주겠다. 문제가 있는 사람은 쪽지를 올려도 좋다. 그럼 문제 해답을 시작하겠다.

제자: 우리가 법회에서 녹화한 테이프와 설법녹음을 국내에 전해도 됩니까?

사부: 원칙상 문제가 없다. 그러나 당신들은 늘 어떤 물건들을 전하려고 하는데 이 마음을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많은 환희심과 그렇게 많은 집착심이 있는가? 이 모든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있는가? 자신이 보는 것은 괜찮지만 복제하면 안 된다.

제자: 당신께서는 “뿌리를 캐다” 경문 중에서 ‘나는 당신들에게 사람과 결별(決裂)하라고 하였는데 당신들은 나를 따르지 않는다. 매 한 차례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만약 기회를 잃으면 도달하는 층차에 영향을 줍니까?

사부: 엄중한 고험을 마주하였을 때 이 속에는 여러 방면의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단지 이런 형식뿐만이 아니며, 우리 수련생들로서는 근본적으로 모두 한 차례 최대의 고험이다. 사람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는지 없는지, 이것은 원만을 이룰 수 있는지 없는지의 극히 관건적인 중요한 한 걸음으로, 반드시 이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우리 수련생들은 이런저런 각양각색의 고험에 부딪히게 된다. “기회를 잃었으니 원만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는, 아마 기회는 또 있을 수 있지만 내 생각에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있기는 매우 어렵다. 그것은 각종 기연(機緣)이 한 곳에 맞춰져 비로소 이런 기회가 마련되기 때문이다. 사실상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든지 관건적인 시각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역시 안 된다. 다시 말해서 바로 이런 뜻이다. 내가 당신은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데, 사부님 나는 어떤 난(難)이든 모두 넘길 수 있으니 사부님은 다 배치만 해주세요, 그러면 나는 좀 일찍 수련하여 올라가겠습니다. 관건적인 시각에 이르렀을 때 당신은 여전히 안 된다. 말로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하게 착실히 수련하는 과정에서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느냐를 보아야 한다.

제자: 사부께서 다시 한 번 眞(쩐)・善(싼)・忍(런)이 부동한 층차(層次)에서 파생되어 나온 기타 법리를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사부: 해 줄 수 없다. 무엇 때문에 안 되는가? 천리는 절대 사람에게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아직도 사람으로서 수련하기에, 당신들 잘 닦은 그 일부분은 이미 명백해져 말할 필요가 없으나, 당신 사람 이곳은 늘 호기심을 안고 문제를 생각한다. 설령 더욱 높은 것을 깨달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사람에게 말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깨달은 고층차 중의 이치를 다시 당신의 입으로 남에게 말할 때, 당신은 그 의미가 변하여 매우 평범하고 평이한 이치로 변한 것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고층차의 이치는 수련 중에서 오직 마음으로 느낄 뿐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제자: 어떻게 해야 사부님께서 설치한 난인지, 아니면 사악한 마의 교란인지 구별할 수 있습니까?

사부: 어떠한 일이든 모두 고립된 것은 없다. 한 수련자를 말할 때, 당신이 수련하는 이 날부터 시작하여 당신의 길은 이미 개변되었는바, 어떠한 우연한 일도 섞여 들어온 것이 없다. 하지만 어떠한 난이든 출현할 때는, 모두 우연이란 상태로 표현되어 나와야 한다. 그래야만 당신을 고험할 수 있고,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도록 촉진할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차이점을 찾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말 마가 있는 것이 아닌가? 있다. 하지만 역시 고립된 것이 아니고, 그것이 나쁘므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럼 튀어나오고 싶으면 튀어나와라. 우리는 그것의 나쁜 그 일면을 이용하여 우리 수련생들을 고험한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우리 극소수 수련생들이 세상을 떠났다. 어떤 이는 원만을 이룬 사람이고 어떤 이는 파괴한 사람이므로 나는 이 방면에 대한 입장을 표시하지도, 말하지도 않겠다. 그러나 그것의 출현은, 나는 우리 수련생에게는 생사고험이라고 여긴다. 당신의 몸에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거의 당신 몸에 떨어진 것 같은, 당신의 느낌은 보증하고 이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바로 생사 고비의 고험이다. 한 사람이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그는 절대 원만을 이룰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마다 모두 한 차례 생사 고비의 고험을 겪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은 길고 긴 수련의 세월 속에서 기초를 다져놓았기 때문에 이미 점차적으로 이 점에 도달했다. 집착심이 적을수록 내려놓은 것이 많은 것으로서, 당신은 일체가 모두 아무렇지도 않음을 발견하는데 사실 당신은 이미 이 조건을 구비했다. 그렇다면 관건적인 시각에 일부 고험이 나타날 것인데, 마치 우리 지난번에 북경에서 발생한 일처럼 당신이 이 한 걸음을 걸어 나올 수 있는지, 혹은 수련생이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당신이 계속 수련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본다. 여러 방면에서 각종 고험이 모두 당신을 고험하고, 당신이 걸어 나올 수 있는지 본다. 사망한 사람이 꼭 마가 아닐 수도 있고, 그 또한 모두 부처가 아닐 수도 있다. 어떤 것은 아마 그가 원만을 이뤄야 하는데, 그를 이용하여 당신들을 한번 고험해 본 것이거나 또 그가 바로 마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 일을 통해 우리도 그것을 이용하여 당신이 계속 수련하는지 안 하는지, 당신이 내려놓고 걸어 나오는지를 보는데 모두 다 지극히 중요하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우연은 없고, 발생한 일들은 모두 당신에 대한 직접적인 고험이다.

제자: 사람이 어떻게 이미 법을 얻은 일면(一面)을 이용하여 사악한 마의 일면과 싸워 이길 수 있습니까?

사부: 한 올바름이 모든 그릇됨을 물리친다(一正壓百邪). 사악한 마의 교란은 우리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자신이 잘해내면 바로 그것을 싸워 이기는 것으로 사부도 책임질 것이다. 당신이 직접 마와 겨룬다면 현재는 안 된다. 내가 전 한 시기에 여러분들에게 그 ­­­­정진요지­­­­ 한 편을 쓴 목적은 당신들의 이 일면에 쓴 것이 아니고 당신들의 잘 닦은 그 일면에 쓴 것이다. 관건적인 시각에 그쪽 일면도 일을 책임진다. 당연히 그는 당신들과 같을 수 없고 어떠한 일이든 모두 당신들과 같이하게 되면 이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으로, 신은 절대 사람과 동일한 일을 할 수 없다. 그 마가 파괴하는 정황에서 그가 이렇게 하도록 허락한다.

제자: 선생님께서 ‘나는 眞(쩐)・善(싼)・忍(런) 안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사부: 나는 너무 높이 말하고 싶지 않고, 나에 대해서도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바로 일부 수련생들의 마음이 늘 자신이 없어 하므로 내가 당신에게 내막을 알려 줄 뿐이다.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역시 간단하다. 그러나 당신에게 확실히 말해줄 수는 없다. 우주는 중생들을 위해 창조된 것으로, 이 우주는 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가 바로 眞(쩐)・善(싼)・忍(런)이다. 그러나 부동한 층차 중의 眞(쩐)・善(싼)・忍(런)은 부동한 층차의 법을 파생하여 부동한 층차의 생명들에 환경과 각종 각양의 요구를 개창해 낼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법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복잡한 바로 이런 관계이다.

제자: 과학의 기점은 이미 잘못되었고, 우리는 과학을 가르치는 교사인데, 어떤 합당한 태도를 취해야 합니까?

사부: 지금의 과학은 외계인이 인류에게 강제로 넣어준 것이다. 어떤 한 역사시기의 사람에게도, 어떤 한차례의 문명시기의 사람에게도, 다 이러한 과학이 출현한 적이 없었다. 전체 사회가 다 이끌려 움직이고 있고, 사람마다 모두 안으로 파고들며, 학부모들은 모두 아이가 대학에 가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이는 역사상에서도 종래로 없었던 일이다. 신이 인류사회의 발전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고대 중국처럼 한 신을 아래로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종이를 만들게 하고, 또 한 신을 보내 나침반을 만들게 한다. 그가 이 일을 완성하여 여러 사람이 이용하게 하면, 사회 전체를 움직일 필요가 없고, 또 이러한 무슨 과학이 필요하지도 않게 된다. 모두 안으로 파고들어 이런 변이된 생명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역사상 종래로 없었던 일이다. 그러나 지금 그것은 이미 현재 사회 속에 현실로 되었는바, 당신이 생존하려면 당신은 이 현실에 부합해야 한다. 생존을 위해 지금은 이럴 수밖에 없다. 수련생으로서 각 업종의 어떤 일을 하든지 당신들은 당신 자신의 일을 계속해야 한다. 당신이 교사로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면 당신은 곧 과학을 가르쳐야 한다. 문제는 당신이 어떠한가에 있지 않으며, 내가 말한 것은 한 가지 이치로 당신들에게 진실한 일체를 알려주는 것이다.

내가 예를 들어 말하면, 이 외계인 그들을 청리할 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인류를 변이시켰고 너희가 만든 이 한 세트는 인류사회를 심각하게 파괴하였으며 사람의 사상을 변이시켰다.” 그것들은 이치에 맞지 않게 나에게 반문하기를, “그런데 당신은 아직도 우리를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하며 한마디 말을 했다. “나 역시 차를 타고, 나도 현대적인 공구를 이용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 말을 타고 길을 가려고 해도 이런 환경이 없다. 모두 너희에게 파괴당했는데 그렇지 않은가?!” 우리 역시 그것을 아쉬운 대로 참고 견딜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여러분들은 현재 오직 이렇게 하라. 미래의 과학은 아마 이렇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과거 과학이 내린 정의가 지금 모두 서서히 무너지고, 많은 일은 전혀 해석할 수가 없게 된 것을 발견했다. 새로운 천체의 변화가 끊임없이 발견되고, 생명 존재의 비밀이 끊임없이 밝혀지고 있다. 나는 과거의 과학이 바로 동요(動搖) 속에 있다고 말한다.

제자: 사람은 복잡하고 난잡한데, 오직 모든 파생 물질을 닦아 없애야만 자기의 본래 경지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사부: 사람이 방금 태어나서는 매우 순결하여 후천적으로 형성된 어떤 관념이 없다. 당신이 아직 사회를 접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아이 보기를 매우 좋아한다. 그는 매우 단순한데 그가 좀 까불어도 괜찮은바, 아무것도 없고 아무 생각도 없다. 사람은 후천적으로 생존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많은 관념을 점차 형성했다. 유위(有爲)로 많은 나쁜 일을 하는데 목적은 자기를 위해서였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형성된 각종 생각은 모두 선천적인 본성과 서로 대립적이다. 다시 말하면 사람이 복잡하게 변하여 당신의 순결한 마음, 사상이 갈수록 후천적인 각양각색의 불순한 것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본래의 경지로 돌아가려면, 당신은 후천적으로 형성된 나쁜 것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사람의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경지의 것이, 당신이 돌아갈 그 경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모두 청리해 버려야만 당신은 그 정도로 깨끗해질 수 있다. 사상이나 心性(씬씽) 중에서, 당신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 중에서, 생명을 포함하여, 모두 이렇게 깨끗함에 도달해야 한다.

제자: 여래불인 석가모니 부처에게는 사바세계가 있고 석가모니 부처는 또 대범(大梵)세계에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바로 그렇다. 불교 중에서 석가모니 부처가 사바세계에 있다고 하는데, 이것도 진실한 정황이다. 석가모니 부처는 제6층 우주에서 세간에 내려와 사람을 제도했는데, 그의 최후의 자기 세계는 바로 대범세계이다. 대범세계에서 내려와 사람을 제도하면서 그는 다시 돌아가지 않고 줄곧 삼계에서 그의 제자를 지켜보고 있는데, 2천여 년 내내 그의 제자들을 지켜보고 있다. 그의 제자들은 오가며 전생하는 중에 끊임없이 층차와 경지를 제고하며, 그들의 위덕을 쌓고 있다. 기다리고 있다가 최후에 법을 바로잡을 때 법에 동화되면 바로 원만을 이룬다. 사바세계는 바로 삼계이다. 그리하여 불제자들은 그가 줄곧 사바세계에 있는 것을 보았으므로 석가모니 부처가 사바세계에 있다고 했다. 그 대범세계를 말하면 그것은 그가 온 맨 마지막 부처 세계이다. 사실 그에게는 이 한 세계뿐만이 아니라, 부동한 더욱 높은 고층차에도 그의 세계가 있다. 당신들은 사람의 사상으로 천상의 일, 부처의 일을 생각하려 하지 말라. 영원히 생각해 낼 수가 없다. 지금 당신들에게는 사람의 사상만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들에게 지식을 연구 토론하지 말라고 하는데, 영원히 명백하게 연구토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 이 부분의 사상이 매우 저능하기 때문이다.

제자: 육도윤회라 하는데 무엇 때문에 육도입니까?

사부: 불교에서 과거에 무슨 수라도(修羅道)니, 무슨 축생도(畜生道)니, 인도(人道), 천도(天道)니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다. 그것이 무슨 도(道)일지라도 모두 삼계 이내의 사람, 동물, 식물과 삼계 내 다른 공간 생명 간의 윤회이다. 사람이 세간에서 행한 선악에 의해 이러한 인과관계가 조성되고, 이에 근거하여 산생된 것이 보응(報應) 혹은 복보(福報) 혹은 악보(惡報)이다. 바로 당신이 악한 짓을 많이 했다면 아마 축생도(畜牲道)로 전생하거나 지옥으로 내려갈 것이다. 좋은 일을 많이 했다면 당신은 천도(天道)에 태어난다. 여기에서 하늘(天)은 삼계 이내의 부동한 층차의 하늘(天)이고 역시 삼계 이내에 속하는 것이며 역시 윤회에 들어가는 것이다. 혹은 사람 속에서 복을 누리고 관리가 되어 부자가 되는 이 모든 것은 좋은 일을 하여 얻은 것이다. 이것을 복보(福報)라고 부르며 또 선보(善報)라고도 부른다.

제자: 어떤 소장은 맡은 시간이 매우 길지만, 속인의 관념을 내려놓지 못하여 유의적으로나 무의적으로(有意無意) 이미 연공장의 새로운 수련생들에게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부: 이것 역시 사실이다. 우리 어떤 연공장의 극소수 보도원은 잘하지 못하는데, 이런 문제는 마땅히 거울로 삼아야 한다. 내가 쓴 ­­­­정진요지­­­­의 많은 편이 모두 그들에게 쓴 것인데, 그들은 오히려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 명의 보도원으로 말하면 역시 매우 수고스럽게도 여러 사람을 도와 일을 해야 한다. 그러나 흔히 어디에 차함이 있는가? 바로 그의 일을 그의 수련과 결합할 수 없어서 그는 어떠한 모순에 부딪히고 어떠한 저항력에 부딪혀도 그는 법에서 가늠할 수 없으며 자신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를 볼 수 없다. 나 자신이 어디를 잘못하여 수련생들의 비협조를 조성한 것이 아닌가? 혹은 여러 방면에서 저항력을 조성한 것이 아닌가? 이 점을 다수 보도원이 모두 이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우리의 법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다주었고 많은 신수련생이 법을 얻는 데에도 장애를 조성하였는데 마땅히 깨어나야 한다.

우리 어떤 보도원은 수련생을 대하는 태도가 매우 거만한데 이는 우리 대법 속에서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여러분들 생각해 보라. 오직 이 법을 배우면 나의 제자이다. 당신도 나의 제자이고 그도 나의 제자인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를 대하는 태도가 그렇게 거만한가? 우리는 착한 마음씨를 말하고 선심(善心)으로 남을 대한다. 나는 늘 이런 말을 하는데, 한 사람이 자신의 어떠한 관념도 가지지 않고 남과 말하면서 남에게 그의 결점을 지적하거나 그에게 무엇을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 당신 자신의 어떠한 요소가 없이,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심지어 당신 자신을 위해서 아무런 보호도 하려 하지 않으며, 당신이 정말로 선의로 남을 좋게 하려 한다면, 어떤 사람이든 그는 정말로 당신의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우리 많은 사람이 일을 할 때에 이것에 의거하지 않고 명령과 강제에 의거하는데,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은 우리 법 중의 것이 아니다.

제자: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 법에 동화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데,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그릇된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인 그에게는 속인의 마음이 있으며, 그가 원만에 이르지 못하는 한 그에게는 곧 속인의 마음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 점을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겠는데, 우리가 수련자라도 좋고, 직장인이라도 좋은데, 가장 잘 표현되어 나올 수 있는 것이 바로 그가 버리지 못한 그 집착심으로서, 속인 중 내려놓지 못하는 그 마음이 유난히 표현되어 나올 수 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바로 그가 잘 닦아 없애버린 마음은 이미 없어져 더는 표현되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남은 마음은 더욱 돌출되어 나와 우리 사람마다 모두 볼 수가 있다. 하지만 나는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이 사람을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그는 이미 상당히 좋아졌지만, 그의 아직 없애지 못한 마음이 작용을 일으켜 일에 영향을 주고, 수련생에게 영향 줄 수 있는데, 그 표현을 많은 사람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문제를 보고 사람을 가늠할 때 속인처럼 보지 말라. 하지만 또 우리 자신이 잘 닦았다고 느끼지 말고 아직 제거하지 못한 마음이 있는데도 자신을 늦춰 버린다면 이는 안 된다. 일단 모순을 발견하면 꼭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나는 나의 모든 제자가 이후의 모순 속에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혹은 법 공부 중에, 우리 제자 중에서 어떠한 모순이 발생할지라도 당신들은 모두 응당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의 어디가 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사람마다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며 당신의 이 마음을 닦아야 한다. 당신 자신이 당신의 마음에 공력을 들이지 않고 당신이 밖으로 공력을 들여 다른 사람의 결점을 찾는다면 당신은 어떻게 제고하겠다는 말인가? 남은 모두 좋아지는데, 당신은 남의 결점이나 지적하고 있으면, 그는 닦아서 올라가고 당신은 계속 이곳에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어떠한 모순이 발생하여 마음속이 편치 않을 때, 당신은 바로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원인은 보증하고 당신 이곳에서 생긴 것이다. 과거에 불교에서는 부처가 마음속에 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것이 마치 마음속에 부처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는데,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바로 이런 뜻이다. 당신의 마음을 닦고, 당신의 마음 닦음에 공력을 들여, 당신 자신의 약점과 결점을 찾아 그것을 뿌리째 뽑아내라는 것이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영원히 원만을 이루지 못한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마음에 공력을 들이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자신 여기에 공력을 들이지 않는가? 내가 당신들을 가장 빠르게 제고되게 하는 방법은, 바로 당신들 상호 간의 모순 속에서, 당신들의 약점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일단 모순에 부딪히기만 하면, 오히려 그것을 밀어내고 다른 사람의 결점을 지적하며 자신을 보지 않는데, 그러면 어찌 닦을 수 있겠는가? 이것은 당신들이 제고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므로 당신들의 관념은 반드시 바뀌어야 할 것이다. 우리 수련생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관하여 말한다면 정말로 일부 사람들은 心性(씬씽) 표현이 낮다. 이런 사람은 우리가 그를 도울 수 있으면 지적해 주어야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진정한 제고는 역시 그 자신에 의거해야 하며, 그 자신이 법을 배우지 않으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반대로 말한다면, 제고는 그 자신의 일이며, 그가 뒤떨어지고 그가 제고하려 하지 않고,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는 것 역시 그 자신이다.

제자: 신의 일면과 사람의 일면, 主元神(주왠선)과 副元神(푸왠선) 사이의 관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사부: 속인은 신의 일면이 없다. 오직 우리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에게만 있고, 그것도 우리 대법의 이런 수련 형식 속에서만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생명의 가장 본원에서 시작하여 당신을 개변시키는데, 우리는 거꾸로 수련하기 때문이다. 이런 방식은 비교적 빠르고 속인사회에서 수련할 수도 있고, 최대한도로 속인의 상태에 부합하는 동시에, 또 직접 이 복잡한 환경 속에서, 사람의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이 제일 빠르다. 그렇다면 우리 대법 중에서 미시적인 부분이 이미 법을 얻었고, 이미 표준에 도달한 그 일부분 입자, 미시적인 입자 물질로 구성된 신체는 이미 신의 일면, 부처의 일면, 도의 일면에 속한다. 사람의 일면을 말한다면 바로 당신이 지금 보는 당신 자신이다. 만약 당신 표면상의 신체 이 일면이 최후 원만에 이르면, 최후의 수련 중에서 모두 개변될 때 당신 사람의 일면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사람의 일면이 존재하지 않으면, 모두 다 신의 일면에 동화된 것으로 당신도 원만을 이룬다. 당신 신체의 변화 형식에 따라 철저하게 깨닫는 이런 상태를 가져올 것이고, 당신에게도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전혀 상상할 수 없고, 당신의 사상으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얼마나 위대(偉大)하고, 수승(殊勝)하며, 장관(壯觀)인 한 장면인가. 이 元神(왠선)과 副元神(푸왠선) 사이의 관계, 이것은 내가 인체구조를 말할 때 이미 말했다. 이것으로 나는 시간을 점용하지 않겠으니 가서 책을 더 보라.

제자: 악념(惡念)이 나오는 순간 이미 악업(惡業)을 짓는 것이 아닙니까? 선념이 나오는 순간 선업을 쌓은 것입니까?

사부: 아니다. 나는 방금 이 문제를 말했다. 업은 다만 우리 속인사회, 다시 말해 세간에서만 표현되는 것이다. 어떠한 물질이든 모두 정반(正反) 두 방면이 존재하는데, 부처가 있으면 마가 있고, 사람이 있으면 귀신이 있으며,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고, 믿는 이가 있으면 믿지 않는 이가 있으며, 지지하는 이가 있으면 반대하는 이가 있다. 사람도 남자와 여자가 있다. 일체 모두 상대적으로 존재하고 모두 음(陰)과 양(陽) 이런 관계가 존재하는데, 곧 상생상극의 관계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나쁜 일을 할 때 그는 분명코 악업을 짓는다. 그가 낸 생각 역시 악념(惡念)이다. 불교에서는 선업(善業)과 악업(惡業)은 구분이 있다고 했다. 나는 사람이 말한 선업 속에도 정・반 두 면이 같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할 때 나는 역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불교를 우리는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말법시기의 불교이기에 우리는 말하지 않겠다. 역사상 비교적 좋았던 시기의 그 불교를 말하면, 그것은 한 수련 단체였다. 모두 선심으로 이 수련 단체를 보호했다. 누가 와서 그것을 파괴하고 공격하면, 그것도 일부 상응한 방법을 취해 자신을 보호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에게도 부정적(負) 일면이 존재하게 되는데, 즉 악의 일면이다. 당신이 나의 절을 파괴하려고 하면 나는 아마 당신과 목숨을 걸 것이고, 당신이 나의 승려, 제자를 해친다면, 나는 당신에게 악하게 나올 것이다. 바로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일에도 부(負)적인 일면이 있는바, 그것 역시 악의 일면이다. 그러므로 엄격히 말하여 그것이 말하는 선업과 악업은 전면적이지 않다.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정반(正反) 이 두 가지 물질의 정확한 표현과 그것의 진실한 반영을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인데, 우리는 제일 좋은 그 한 부분, 보건대 사람에게 가장 의미 있고, 수련자에게 직접 공으로 전화되어 가장 좋은 이로움이 있는, 그것을 우리는 德(더)라고 부른다. 사실상 그것은 정말 바로 그 德(더)이고 또 우리가 늘 말하던 德(더)이다. 업(業)을 놓고 말할 때, 악업과 소위 그 선업 속의 악, 악의 일면의 것, 부(負)의 일면의 것을 우리는 모두 업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부르면 비교적 정확하다. 사람의 사상이 생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하여 말하면, 만약 한 속인이 사상을 움직여 한 가지 나쁜 생각이 나와, 어떤 나쁜 일을 하려 했지만, 행동하지 않았고 또한 나쁜 후과(後果)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업을 짓지 않는다. 하지 않았으면 업을 지을 수 없으며, 하였다면 업을 지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업력은 신체와 신체 주위의 마당에서 반영된다. 하지만 사람이 나쁜 생각을 하면 자신의 사상 중에도 사상업이 생긴다. 이것이, 왜 우리 수련하는 사람이 사상 중에 사람을 욕하거나, 반대하거나, 믿지 않거나, 혹은 자신의 수련에 대하여 동요하거나 등등 등등이 나타나는 이유인데, 당신을 교란한다.

가부좌할 때 허무맹랑하고 난잡한 생각을 하여 당신의 사상을 교란하는 이것은 바로 이런 것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매우 정확하게 당신에게 그의 이 이치를 말해주는 것이다. 과거의 승려, 내가 고대의 그 승려들을 보면, 그는 기본적으로 절 안에 머무르면서 복잡한 사회를 접촉하지 않는데, 그러면 그의 사상은 매우 단일하게 조성된다. 또 그는 항상 선정(禪定) 중이며 출정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매우 단일하게 조성되고,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고 하는 어떠한 염두도 움직이지 않을 수 있어 사상업력의 생성과 교란을 줄이게 된다. 그러므로 과거에 그들은 항상 선정(禪定)에 들고 폐관(閉關)을 하는데 그것의 실제 목적은 정수(靜修)이다.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려 있기 때문에 그 한 법문이나 혹은 그 한 천국세계의 사부가 그를 관장하는데 그가 정수(靜修)하는 중에 그의 사상업력을 없애줄 것이다. 이 한 점을 나도 당신들에게 해준다. 당신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제자: 사상업을 배제하지만 지속하는 시간이 깁니다.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더욱 잘 없앨 수 있습니까?

사부: 어떻게 그것을 더욱 잘 없앨 수 있는가? 이 말은 바로 지름길로 갈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을 찾으려는 생각이다. 어떤 상태든 모두 고립된 것이 아니다. 업은 당신 자신이 지은 것이며 그것을 닦아 없앨 때 고생을 한다. 동시에 고생 속에서 제고하고 또 당신이 견정한가를 고험한다. 만약 단번에 없애 버린다면 당신은 닦을 것이 없다. 당신이 착실하게 진정으로 당신 자신을 개변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절대 안 된다. 당신들이 만약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채 천국세계에 간다면, 당신은 그 위엄 있고 위대한 각자가 그곳에 앉아있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두려워할 것이다. “아이참, 나는 닦은 것이 모자라니 나는 여기에 머물 수 없겠구나.” 하며 당신은 여기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당신 스스로 아는데, 우리의 매 한 걸음 수련은 반드시 모두 착실하게 닦아야 한다.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절대 안 되며, 관을 넘을 수 없다.

그럼 사상업을 배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 주겠는데, 사람의 사상관념은 일생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생생세세 쌓여 내려온 것이다. 그것은 표면뿐만 아니라 당신 신체의 매우 깊은 부위에도 있으며, 표면에만 그치지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하는 중에 바로 그것을 약하게 하여 없애는데,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만에 이르기 전까지, 당신의 사상에는 또 업력이 생성되고 이런 것이 또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 자신이 방법을 생각해내어 그것을 억제하고 극복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당신이 자신을 느슨하게 하면 그것은 수련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상업이 사람에게 미치는 교란은 매우 심각하다. 사상업력이 크면 사람으로 하여금 연공하지 못하게 한다. 책을 많이 보면 책 속에 법이 있으므로 법 안에서 나는 당신의 일체를 돕고 업력을 소멸할 수 있다.

제자: 마난(魔難)이 왔을 때 心性(씬씽)을 지키지 못하면 그 다음번 마난이 또 올 때 먼저 왔던 것보다 커집니까?

사부: 이 문제는 이미 ­­­­전법륜­­­­에서 말했다. 바로 우리 자신이 수련과정 중에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 사부가 당신의 제고를 위해 당신에게 설치해 준 관을 넘지 못하고 장기간 그곳에 지체하고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수련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당신이 이 한 난을 건너가지 못하면 다음 한 난이 올라와 당신을 제고하게 한다. 그럼 이 난을 당신이 넘지 못했는데 다음 난이 또 오면, 두 개의 난이 하나로 합쳐지는데, 당신이 어떻게 넘겠는가? 깨닫지 못할수록 더욱 넘으려 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다음의 난 하나가 또 올라와 이런 넘을 수 없는 막다른 관이 된다. 근본적인 개변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정말로 넘기가 매우 어렵다. 이 난은 쌓일 수도 있는데, 이것이 많이 쌓이면 당신은 어떻게 넘을 것인가?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자신을 연공인으로 대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 병 치료를 위해 대법에 들어왔다. 대법을 인식하는 데는 어차피 과정이 있게 마련이므로, 우리는 반대하지 않는다. 후에 그는 “아” 하며, 대법은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지만,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병이 있는 신체로는 수련할 수 없고 공이 나올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오, 그럼 나는 생각을 하지 말고, 또 사부님을 찾아 병을 치료해 달라고 하지 말며, 나 역시 병 치료할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하며 알게 된다. 그러나 그는 수련만 하면 사부님께서 꼭 병을 치료해 준다는 것을 안다. 그의 마음속은 아직도 그 점을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개변인가? 아니다. 표면상의 화려함 그것은 가짜다. 사람이 만약 본질에서부터 자신을 개변하지 못하면 표준에 도달할 수 없다. 각자(覺者)인, 고급 생명은 아주 똑똑하게 볼 수 있는바, 이 점은 조금도 감출 수 없다. 그가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해, 끝까지 그러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은, 단지 그것으로 하여금 더욱 은밀하게 변하도록 할 뿐이다. 그러나 그의 수련을 책임진 사람은 아주 똑똑하게 보고 있는바, 그렇다면 그는 누구를 속이고 있는 것인가? 자신도 속이고 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 마음을 내려놓고 진정으로 수련하는 사람의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가 내려놓지 못하면 이 문제는 길게 끌 것이고 늘 이 난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이 문제는 아주 엄중한데, 줄곧 이런 수련생이 있다.

제자: 수련하는 사람은 재물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德(더)를 지키기만 할 뿐, 德(더)를 쌓지는 않는다고 하는데, 사부님의 경문 ‘부유하면서 德(더)가 있다(富而有德)’는 정진하지 못하고 있는 제자에 대한 제일 낮은 요구 표준입니까?

사부: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떠한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당신이 어떠한 물건이 없다는 것과는 다르다. 당신이 재물을 바라고 돈과 재물에 집착하는 마음을 없앤다는 것은 당신이 재물이 없다는 것과는 동일하지 않다. 德(더)를 지키되 德(더)를 쌓지 않음은, 우리는 수련하는 사람이라 금생의 시간이 매우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도처로 다니면서 좋은 일을 하는 이런 유위적인 일이 어찌 당신의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진정한 수련으로 될 수 있겠는가?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직 빨리 수련하여 자신을 근본적으로 개변해야만 당신은 원만을 이룰 수 있다. 그리고 속인사회 속의 수많은 일은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고, 그 은혜와 원한마저도 역사상에서 쌓여 내려온 것이어서 당신이 본 것은 표면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신은 그것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므로, 당신이 관여하면 잘못된다. 그러나 속인은 잘못 관여해도 관계가 없는데, 속인은 다만 속인사회의 이 한 층의 이치에 부합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라, 더욱 높은 표준으로 요구해야 한다. 당신이 잘못 관여하는 것은 작은 일이 아니며 당신은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면 당신은 공이 떨어지고 층차가 내려간다. 그럼 당신이 늘 이렇게 한다면 어떻게 원만을 이룰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德(더)를 쌓고 德(더)를 쌓는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오직 수련만 하면, 당신이 수련 중에서 필요로 하는 일체 물질은 당신이 고생스럽게 수련하며 대가를 지불하는 속에서 모두 전화될 수 있다. 부족한 물질은 모두 보충할 수 있으므로 당신이 이렇게 할 필요가 없는바, 오직 사람 마음만 본다.

진정한 수련은 바로 사람의 마음을 보는 것이고 오로지 당신의 마음이 부처 쪽에 있기만 하면, 당신의 마음이 수련표준에 도달한 마음이기만 하면, 일체 일들을 모두 당신에게 해줄 수 있다.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사람, 내가 보았을 때 당신은 뼈마저 모두 검은데 당신은 한 속인으로서 어떻게 자신으로 하여금 본질적 변화를 일으키게 할 수 있는가.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당신은 얼마나 많은 德(더)를 쌓고, 얼마나 많은 좋은 일을 해야 생생세세 당신이 한 그 일들을 개변할 수 있겠는가? 당신은 전혀 개변할 수 없다. 德(더)를 쌓는 것은 수련이 아니다. 해낼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신은 단지 시간을 다그쳐 재빨리 수련할 수밖에 없다. 오직 당신의 이 한 마음을 보는지라. 당신이 수련만 한다면 우리는 일체 문제를 당신에게 모두 좋은 일로 전화시키며, 나쁜 일을 좋은 일로 전화시켜 줄 수 있다. 당신이 빚진 어떠한 업력도 모두 당신이 갚아야 하지만, 우리는 당신을 위해 이 일들은 모두 처리해 줄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생생세세 아주 많은 생명을 죽였거나 아주 많은 생명을 해쳤을 텐데, 당신은 모두 갚아야 한다. 당신은 한 생, 또 한 생 그 목숨을 갚아야 한다. 당신이 이렇게 계속 전생하며 명을 갚아도 당신은 모두 갚을 수 없는데, 무슨 수련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당신이 해친 생명을, 당신이 원만을 이룬 후 당신의 세계가 원만에 이를 때, 그것들을 제도하여 당신 세계의 중생으로 삼는다면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닌가? 즉 빚을 갚은 것이지만 누가 당신에게 이런 일들을 해주겠는가? 오직 당신을 제도하는 사람만이 당신들에게 이런 일들을 해줄 수 있다. 당신을 제도하는 사람은 또 이런 능력이 있어야 하고 당신이 진 업은 당신이 갚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갚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부처가 되지 못한다면 이 일체는 모두 당신의 업력이므로 영원히 갚을 수 없다. 바로 이런 관계이다. 즉 당신의 많은 일을 당신은 상관하지 말고 당신은 오로지 수련만 해라, 사부가 모두 해줄 것이다.

제자: 어떤 수련생들은 일부 법을 파괴하는 것을 듣고 믿었지만, 지금은 후회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도 원만을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수련하는 이 길에서 사람마다 모두 매 한 관을 아주 잘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모두 착오를 범할 수 있다. 당신이 매 한 관을 모두 잘 넘는다면, 나는, 당신은 수련할 필요가 없이, 원만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어떤 관은 당신이 잘 넘었고, 어떤 관은 당신이 잘 넘지 못했지만, 당신은 후회하며 다음에 그것을 잘하려고 노력한다. 바로 이렇게 잘 넘기거나, 잘 넘기지 못하여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것이 바로 수련이다. (박수) 그러나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겠는데, 당신은 기뻐하지 말라. 당신은 ‘오, 그렇다면 내가 잘 넘기든 잘 넘기지 못하든 아무튼 나는 이렇게 천천히 하면 바로 수련이다.’라고 하면 안 된다! 당신은 반드시 정진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태만하고, 정진하지 못한다면, 이 마음을 나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당신은 반드시 당신을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기고 이 문제를 엄숙하게 대해야만 당신은 하루빨리 층차를 제고할 수 있다.

제자: 전수제자(專修弟子)들이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드리는데 수련에 영향을 줍니까?

사부: 나는 방법을 취하여, 되도록 당신이 영향을 받지 않게 할 것이다. 우리의 아주 많은 사찰의 승려, 도사 혹은 기타 종교의 인사가 대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이런 이치를 말하겠는데, 우리는 어떤 종교에도 관심을 두지 않고 어떤 속인의 사회형식에도 관심을 두지 않으며 우리는 다만 그것을 속인의 일로 여길 뿐이다. 이미 부처마저 상관하지 않고, 부처마저도 제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다른 속인사회 형식이 아닌가? 나도 그것을 한 가지 직장일로만 여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으며, 우리는 무조건 사원에 가서 화상(和尙)를 개변시켜야 한다고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오직 사람의 마음에만 관심을 둘 뿐, 당신이 어느 경지 어느 층차 어느 사회 계층의 사람인지에 상관하지 않고 오직 사람의 마음만 본다. 어떤 사람은 우리가 그 높은 관리로 하여금 배우게 하면, 후에 그가 매우 많은 사람을 배우게 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나의 뜻은 이렇지 않다. 그가 명령하여 남들로 하여금 배우게 한 것은 진심으로 법을 얻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나도 싫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 어느 계층의 사람이든지 나는 사람의 마음만 본다. 당신이 종교에 있는 사람이라도, 나는 사람의 마음만 본다. 모두 중생이고 누가 닦을 수 있으면 나는 그를 책임진다. 닦지 않으려면 그만두어도 된다.

과거에 종교에서도 이러하였고 부처도 종교를 승인하지 않았으며 종교는 사람이 지어낸 이름이다. 석가모니가 초기에 그의 승단을 건립하여 수련하는 형식도 그는 종교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부처도 오직 사람의 마음만 볼 것이고 사람이 지키는 이 형식을 보지 않을 것이다. 지키는 자체도 모두 집착이고 모두 속인이 내려놓지 못하는 것일 뿐 진정한 부처수련이 아니다. 그러면 부처가 되려고 수련함에 일단 그가 닦기만 하면 어떤 사람이든 나는 모두 그에 대해 책임질 것이다. 나는 모두 그를 중생으로 여기고 제일 순정한 그 마음, 진정으로 수련하여 선해지고자 하는 그 마음, 나는 이 점을 보아서 나는 곧 그에 대해 책임을 질 것이다. 아침일과(早課)나 저녁일과(晩課)를 지키는 데 대하여 말한다면, 과거의 경을 읽거나 경을 낭독하거나 성경을 읽는 경우에 대하여 나는 한 명의 거사 혹은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만두고 전일한 마음으로 대법을 수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엄숙하다. 그러나 출가인 혹은 성직자라면 그는 잠시 가서 하라. 나는 그것을 다만 당신의 직장일로 여길 것이다. 본래 관리하는 신불(神佛)도 없지만, 일정한 층차에 도달하면 당신들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므로, 나는 제일 편리한 문을 열어 오직 사람의 마음만 본다. (박수)

제자: 제자들이 원만에 이르러 올라간 후에도 사존(師尊)의 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또 사람의 사상으로 신의 상태를 생각했다. 내가 알려주겠는데, 그때에는 당신은 당신의 제자가 있게 되어 당신의 설법을 듣는다. 당신이 수련한 역사과정은 장래에 당신 미래의 위덕(威德)을 수립하는 위대하고 장엄한 법이 될 것이다. 당신은 표면적으로는 속인의 사회에서 아주 평범하게 수련하지만, 당신이 모르는 그 일들이 모두 기록되어 있다. 당신이 느낄 수 있든 느낄 수 없든, 모두 기록되어 있다. 그럼 그것은 모두 당신 자신이 건립한 위덕이다. 사실 부처도 부처 세계에서 설법한다. 그의 그 한 경지 속에서 중생들이 응당 준수하고 따라야 할 이치 외에도 그는 주요하게 부동한 천국세계의 부처가 수련한 이야기를 한다. 사람 마음을 감동케 한다. 천국 세계의 중생들도 들으면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매 한 사람의 수련은 꼭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제자: 집안의 속인이 대법을 공격하는 책을 사서 그것을 없애버리려 합니다. 그러나 그중에 사부님의 사진이 대량으로 실려 있습니다.

사부: 없앴으면 없앤 것이다. 우리 이 책도 백지에 검은 글자인 한 권의 책이다. 만약 나의 법신(法身)이 위에 없다면 그것 역시 인쇄 잉크로 찍어 낸 것이고 그것의 배후에 내포가 없다. 태워버렸으면 태워버린 것으로 바로 이런 뜻이다. 물론 저쪽의 것은 태워버릴 수 없다. 속인의 불이 어찌 그것을 태울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괜찮다.

제자: 사부님께서 이렇게 많은 법리를 말씀하셨는데, 어디에서부터 닦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부: 아마도 신 수련생이라 좀 막연하여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것 같다. 사실 매우 간단한데 어떠한 규정이 없다. 책만 보면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고, 갈수록 점점 명백해질 것이다. 대법에 대해 감성적 인식에서 차츰 이성적 인식으로 진정하게 승화되면서,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당신이 반드시 그 구체적인 것으로 시작하여 닦으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먼저 인(忍)부터 닦을 것인가 아니면 선(善)부터 닦을 것인가 이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당신은 일마다 모두 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수련도, 단번에 먹어서 뚱보가 될 수 없듯이, 하루 만에 성불할 수 없는바, 이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오로지 책을 보면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제자: 저는 사람이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도록 자신의 어투와 선심(善心), 그리고 이치를 수련해 내지 못한 것을 고뇌하고 상심하는데, 저는 마땅히 어떻게 해 나가야 합니까?

사부: 억지로 하지 말라. 당신은 어떤 상태에 기어코 도달하려 하는데 할 수 없다. 사실 일체가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말은, 당신이 남의 약점을 지적할 때 가능한 한 그렇게 하라는 것인데, 다만 이런 한 가지 이치를 말했을 뿐이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효과가 좋을 것이다. 당신이 정말로 일체를 내려놓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진정으로 그러한 순선(純善)에 도달하기는 역시 매우 어렵다. 당신의 사상은 끊임없이 정화되는 중이기 때문에, 당신의 정화되지 않은 사상은 당신의 말 중에서 모두 따라 나오며, 각종 정보도 모두 따라 나올 수 있는데, 조금도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한 말은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지게 하는데, 틀림없이 이러하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이 끊임없이 수련함에 따라 역시 이렇게 자신에게 요구하면 아마 일 처리를 갈수록 잘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 당신에게 선한 마음이 많아지면, 상대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속인을 초월하게 된다. 속인을 초월한 후에 당신이 하는 말은 비록 그다지 순정하지는 못할지라도 역시 작용을 일으킬 것이며 사람을 감화시킬 것이다.

제자: 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경우인데요, 듣는 말에 의하면, 기독교 천국에는 오직 백인만 있다는데 만약 그녀가 죽으면 그녀의 元神(왠선)은 어느 층차, 어느 천국에서 안식합니까?

사부: 그녀가 닦은 종교는 헛되이 닦은 것과 같고 그녀는 속인과 같다. 그녀의 선한 마음은 다만 복으로 보답 받을 뿐 여전히 속인의 이 경지 중에서 윤회할 것이다. 바로 이러하다.

제자: 현법지허(玄法至虛) 속의 허계(虛界)는 眞(쩐)・善(싼)・忍(런) 속에 있습니까?

사부: 일체는 모두 우주의 법리 속에 있다. 과거 도가(道家)에서 허(虛)를 말한 것이 비교적 많았는데, 첫째 그것은 사실 한 경지 상태의 체현이다. 천지개벽 시는 태허(太虛)라 부르는데, 이 천지개벽은 매 신(神)의 눈에 같은 한 층차로 나타나지 않는다. 천체 속 부동(不同)한 세계, 부동한 우주의 갱신 과정을 모두 천지개벽이라 부른다. 도가는 이를 제일 높은 경지로 여긴다. 둘째는 수련 상태 속에서 이 허(虛)는 바로 당신 사람의 일면을 내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은 사람을 가장 실제적인 것으로 보므로, 主元神(주왠선)은 일체를 버려 사람을 허(虛)하게 만든다. 副元神(푸왠선) 수련을 식신사(識神死) 원신생(元神生)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副元神(푸왠선)을 元神(왠선)이라 불렀다.

제자: 우리가 잘 닦은 부분은 분리된다는데, 어떤 상황에서 이 부분이 사라지게 됩니까?

사부: 당신들이 잘 닦아 놓은 그 일부분들은 일단 표준에 도달하면 곧 넘어간다. 넘어가는 속도는 매우 빠르고 미시적인 당신의 생명을 구성하는 그 일부분은 그야말로 로켓보다 더 빠르게 돌비맹진(突飛猛進)한다. 그러나 흔히 일단 사람에 이르러서 삼계 내의 물질로 구성된 신체의 이 일부분에 이르면, 단번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늦추어져 한 걸음 나가기도 매우 어려운데, 바로 사람이 실제로 집착을 내려놓기가 몹시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분리할 때 감각이 있을 수 있다. 어떤 감각인가?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법을 아주 잘 외웠는데, 왜 갑자기 잊어버렸는가? 또 어떤 사람은 매우 잘 닦아 상태가 좋다고 느끼고, 본 것도 분명했는데, 갑자기 잘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내가 떨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바로 그 순간 표준에 도달한 것을 분리했다. 그러면 남은 이 일부분은 아직 잘 수련되지 못한 것으로, 잘되지 않는 느낌이 들 것이다. 대법수련은 바로 이렇게 수련하는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외국에서 설법하신 녹음테이프 혹은 녹화테이프를 얻고 싶은데 어찌하여 이렇게 어렵습니까?

사부: 어찌하여 이다지도 집착하는가? 너무나도 집착한다. ­­­­전법륜­­­­ 책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다. 사실 내가 말한 것은 모두 ­­­­전법륜­­­­ 속에 있는 것으로, 단지 각 지역 수련생들의 상태에 따라 구체적으로 말한 것뿐이다. 이것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내려놓고 착실하게 수련하라. 주요하게는 ­­­­전법륜­­­­이다. 보조적으로 기타의 것을 본다. ­­­­정진요지­­­­로 말하면, 우리 보도원, 소장으로서는 항상 기억해야 할 것이므로, 항상 보아야 한다.

제자: 우리가 수련한 공이 신체의 매 하나 세포 속에 저장되고, 줄곧 극히 미시적인 상태의 물질 본원의 미립 성분 속에까지 저장된다면, 이 공의 물질은 물질 본원 미립보다 더 작은 것이 아닙니까?

사부: 당신들의 공이 어느 정도 미시적인 데에 이르렀는가 하는 것과 당신들이 수련한 층차는 상보상성(相輔相成)하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경지로 수련되었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과위이다. 당신의 과위에서 얻은 것이 무엇이면 그것은 바로 무엇이다. 그러나 당신보다 높이 닦으면 그의 공, 그의 과위는 분명코 높을 것이며, 그의 공은 당신의 공보다 미시적이고 강대할 것인데, 이것 역시 확실하다. 일체 모두 당신의 과위에서 오고 일체 모두 당신의 위덕(威德)이며 일체 모두 당신이 일생 동안 수련한 증거이다.

제자: 먼저 우주가 있었습니까, 아니면 불법이 먼저 있었습니까?

사부: 불법(佛法)이란 부처가 우주대법(宇宙大法) 중에서 바르게 깨달은 법을 말하는데, 우주가 없으면 어디에 부처와 불법이 있겠는가? 최종적인 우주의 구성을 당신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당신들이 아무리 높이 수련하더라도 당신들은 모두 알 길이 없다. 그러므로 지식을 갈구하는 그 마음을 멈춰야 한다.

제자: 사람이 원만을 이루기 전에 공(功)과 心性(씬씽)표준의 10분의 8을 꺾어 그 자신의 소우주를 충실하게 하는데, 이때 그의 心性(씬씽)을 어떻게 가늠합니까? 그 원래의 10분의 2만 있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원만을 이룬 일체는 모두 心性(씬씽)의 증거이다. 원만을 이루기 전의 공기둥은 진정한 과위라 볼 수 없으며 주로 心性(씬씽) 표준을 대표한다. 원만을 이룬 후 그가 얼마나 높은 心性(씬씽) 표준이 있으면 바로 그가 있는 과위의 표준으로, 보살이면 보살이고 나한이면 나한이며, 부처면 부처인데, 바로 이런 표준이다. 자신이 원만을 이룬 일체는 그의 위덕을 가늠하고, 과위는 그의 일체를 증명한다. 어떤 수련방식이든지 거의 모두 이렇게 닦은 것이다. 오직 이 우주 중의 생명이라면 이 일을 더는 걱정하지 말라. 누구든 이렇게 수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상에 올라가서 아무것도 없다면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제자: 어떤 사람이, 사부님께서 하루 반 만에 ­­­­전법륜­­­­을 읽는다는 것은 너무 느리다고 하셨다고 합니다.

사부: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 나는 너무 빠르다고 생각한다. (박수) 내가 여러분들로 하여금 시간을 다그쳐 책을 보라, 책을 보라 하니, 그는 단번에 그 극단으로 달려갔다. 보고⋅보고⋅보고⋅보고, 목숨 걸고 보니, 매개 글자를 어떻게 읽는지도 모르는데, 그럼 당신은 무엇을 보는가? 당신은 법을 배우고 있지 않은가? 법 공부⋅법 공부, 그 공부를 당신은 어디에 놓았는가? 당신이 본 것이 무엇인지 당신마저 모르는데, 어떻게 수련한다는 말인가? 당신은 반드시 당신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당신이 읽은 것이 무슨 글자이고 표면상에 어떤 뜻인지를 당신은 모두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어찌 법 공부라 하겠는가? 그러려면 그것을 읽어 뭘 하겠는가? 책을 가져다 이렇게 한번 넘기면 끝나지 않는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제자: 앞의 4개조 공법을 연마할 때 매 조 공법이 끝난 후 제인(結印)을 유지하거나 풀거나 하는데, 연후 다시 제인을 해야 합니까?

사부: 공법과 공법 사이에 이어서 한 번 제인하고 풀 필요 없이 이어서 두 번째 공법을 하면 된다.

제자: “도법(道法)”, 이 경문은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사부: 바로 그렇다. 그것은 내가 당신들로 하여금 점차 그를 인식하게 했기 때문이다. 당신의 아직 잘 닦지 못한 이 일면에 바로 써준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이 얼마나 높이 인식했든지 당신은 모두 잘못 인식하지 않았으며 다만 인식의 높낮이가 같지 않을 따름이다. 얼마나 인식했으면 그만큼 인식한 것이다. 내가 당신에게 철저하고도 명백하게 알려주고자 했다면 나는 이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마음 놓고 천천히 배우고 천천히 인식하라. 당신들만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고, 모두가, 전 세계 모두가 다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제자: 개오(開悟) 전과 개오 후 알게 된 법리에는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사부: 眞(쩐)・善(싼)・忍(런)은 구별이 없다. 그러나 개괄적으로는, 개오 후 아주 많은 세부적인 법리와 당신이 있는 층차를, 당신 층차 이하의 각 층차 중의 이치를 포함하여, 활연히 알게 될 것이다. 내가 당신들에게 보여준 이 법은 개괄적으로 쓴 것이다. 그 진정한 법리를 당신들이 보려면 당신은 원만에 이를 때를 기다려야 한다.

제자: 보호되어 남겨진 신들은 모두 우주 중에 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과거에 무엇 때문에 그들은 알지 못했습니까?

사부: 우주 법의 진실한 체현은 우주 중생으로서는 알 수 없다. 과거의 우주에 법이 있다는 것을, 과거 우주의 어떤 층차의 중생도 몰랐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이 법은 사람의 언어로 말해낸 것으로서, 법의 진실한 체현인 그 일면의 구체적인 표현과는 같지 않다. 장래 당신들이 원만을 이룬 후에라도 법의 존재형식은 볼 수 없다. 이 우주에 있는 아주 많은 오묘한 비밀(奧秘)은 우주 생명으로서는 알아서 안 되는 것이지만, 방대한 우주 중의 일체 정경은 당신들로 하여금 충분히 살맛이 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눈을 뜨고 속인사회의 형상을 보게 되면, 당신도 경탄을 금하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그런 고층차에서 보는 그 중생⋅만물, 우주의 구조, 그런 웅장한 정경, 그것은 그야말로 형용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부의 것, 즉 우주 근본의 것은 중생들로 하여금 알게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 높은 위덕(威德)이 없어서다. 그것은 당신의 수련한 층차에 의해 한정된다.

제자: 의도적으로 잃지 말아야 하고, 의도적으로 얻지 말며, 모든 일을 순리에 따라 하는 것이 더욱 높은 법리의 표준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까?

사부: 원칙상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당신들이 할 수 있게 된 것은 心性(씬씽)이 그 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인이 바라는 것은 속인보다 높게 자신을 자제하는 그런 방법이다. 수련 속에서 내가 꼭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내가 오늘 당신한테 이렇게 닦으라면 어떤 사람은 꼭 독특하게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벽곡(辟穀)을 한다. 혹은 그는 하루를 엉망진창으로 남자는 남자 같지 않게, 여자는 여자 같지 않게, 몸가짐에 주의하지 않고 제멋대로 한다. 일단 수련을 생각하면, 그는 과거의 수련형식을 떠올린다. - 수련을 생각하기만 하면 그는 장삼풍(張三豐)을 떠올려 지저분해진다. 이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알려주는데, 당신들의 수련은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의 형식에 부합해서 하는 수련이다. 당신들이 속인사회에서 하나하나가 모두 지저분하다면 속인사회의 이 한 층의 법리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나는 당신들 앞에서 종래로 그런 적이 없다. 나는 매번 설법할 때마다 여러분들도 알다시피, 모두 단정하게 차린다. 내가 당신들에게 보여 주었듯이 여러분들도 반드시 이 방면에서 주의해야 한다.

제자: 우주의 성(成)・주(住)・괴(壞) 규율은 사부님의 무량한 지혜로 우주 중에서 더욱 완벽해질 수 있습니까?

사부: 이 문제를 말한 것은 역시 매우 높다. 우리 法輪(파룬)의 특성이 자동으로 일체 표준적이지 못한 것을 수리 복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끊임없이 일체를 원용(圓容)하는데, 정법(正法)의 목적은 바로 이를 더욱 아름답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제자: 가부좌(靜坐)를 끝낸 후 즉시 잠을 자도 괜찮습니까?

사부: 영향 주지 않는다. 자면 자는 것이다. 한밤중에 일어나 가부좌하여 연공이 끝난 후 바로 자면 매우 달콤하게 잘 수 있다.

제자: 만약 표면상에서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진수(眞修)하던 한 사람이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었다면 그 사람을 마로 여겨도 됩니까?

사부: 나는 이 일을 가리키지 않고 나는 당신의 이 문제에 직접 대답하지 않겠다. 생로병사(生老病死)는 인류사회에 이렇게 존재한다. 수련하는 사람인가 아닌가? 원만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가 없는가? 이 일은 지금 이 시기에는 표면에서 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 내가 방금 말한 한마디는 중대한 문제 앞에서 끊임없이 사람의 마음을 보고자 함인데, 어떤 사람이 연공 중에 사망했다면 당신이 어떻게 하는가를 본다. 그가 원만을 이뤘을 수도 있고, 또 그가 마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다 고립된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이용하여 수련생의 마음을 보고 관건적인 시각에 당신이 수련을 계속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이 일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원만의 경지에 도달하여 수련생들에게 이런 조건을 창조하는 이런 사람이 있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원칙상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또 이렇게 파괴하는 것도 있으며, 바로 이런 교란으로 관건적인 시각이 되면 당신에게 한번 나타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볼 수 있는데, 관건적인 시각이 되면 그것을 이용하여 사람의 마음을 본다. 당신들이 계속 수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는데, 수련은 아주 엄숙한 것이다.

제자: 불(佛)・도(道)・신(神) 중에서 신(神)의 개념은 무엇입니까?

사부: 여러분도 알다시피 부처의 천룡팔부(天龍八部) 호법 중에는 아주 많은 신(神)이 있는데, 이들은 신으로서 이는 불교 중에서 인식한 것이다. 그럼 이 우주 중의 신은 이들뿐만 아니라 부동(不同)한 경지에 모두 부동한 천신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직접 우주중생들을 장악하고 관리하는데, 부동한 층차에 모두 있다. 그런데 부처는 특수한 신으로 그가 닦은 것은 자비(慈悲)이고, 선(善)으로서 그렇게 형성된 신인데, 이것이 바로 부처이다. 그러나 도(道), 그가 수련하는 것은 진(眞)으로, 그는 眞(쩐)・善(싼)・忍(런)의 진(眞)을 기점으로 한다. 그러므로 수련을 해도 그는 중생을 널리 제도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일체를 오직 진(眞)으로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도(道)요, 진리의 대도(眞理大道)이다. 그렇다면 실제 그들도 모두 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신 속에는 또 방금 내가 말한 이 우주중생의 일체 사물을 관리하는 신이 있고, 또 부처(佛)와 도(道) 같은 신이 있다. 그렇다면 또 부동(不同)한 차이가 있는 각양각색의 아주 많은 고급 생명도 있다. 내가 대체로 개괄하여 말한 것은 불(佛)・도(道)・신(神)이다.

제자: 만약 수련할 수 있는 시간이 결속되었으나, 일부분 사람들이 아직 개공 개오하지 못했다면, 그들이 닦아낸 그 부분의 공도 10분의 8을 꺾습니까?

사부: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지 못한 이는 이 문제를 논할 여지가 없다. 수련하여 원만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그의 어떤 세계를 원만하게 하는 문제를 논할 여지가 없다. 원만을 이루지 못한 이는 이런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주요한 마음을 모두 없앴다면 당신의 선천(先天) 이하의 그 층차로 갈 수 있다. 또 계속 수련하고 싶다면 그의 선천적인 일체를 봉하여 저장했다가 전생한 후 내세에 이어서 수련할 수 있다. 또 다시는 수련하지 않으려는 것이 있다. 다시는 수련하지 않으려 한다면 그가 수련한 것을 복덕으로 전화시켜 다음 한 세에 그가 향수해야 할 복(福)으로, 돈으로, 명리로, 관직으로 변하게 하는데, 아주 가능하게 이럴 수 있다.

제자: 분자는 원자로 구성되고 원자는 분자 속에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원자의 전체 구조가 분자보다 크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사부: 분자는 독립된 한 개 입자가 아니라 그것은 군체(群體) 이며, 현재 과학의 언어로 말한다면 군체로 존재한다. 그러면 다시 말해서 그것은 그 경지(境界) 중 허공에 분포된 일체이다. 이 일체는 사실 한계가 있고 그것은 범위가 있는데, 바로 원자가 존재하는 범위 그것의 체적은 분자가 존재하여 분포해 있는 체적보다 훨씬 크다. 원자가 분자 속에 있다는 것 이것은 현재의 과학기술 수단으로 인식하였지만 사실상 이런 개념이 아니다.

제자: 眞(쩐)・善(싼)・忍(런)의 불법이 이 대우주의 법이라면 또한 다른 대우주 중의 법(法)이기도 합니까?

사부: 그렇다. 사실 이 우주가 얼마나 큰지, 당신의 개념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당신이 말한 그 우주에 얼마나 큰 범위가 있는지를 당신의 사상은 영원히 알 수 없다. 당신에게 그렇게 큰 용량이 없기에 당신도 말해 볼 뿐이다. 일체는 모두 眞(쩐)・善(싼)・忍(런)으로 구성된 것이다.

제자: 眞(쩐)・善(싼)・忍(런)이 어떻게 기타 우주의 이치를 파생하였습니까?

사부: 기타 우주 역시 이러한 이치이다. 동일한 경지 중에서는 그것이 아무리 먼 우주이든 모든 우주는 다 같이 이 한 층 천체(天體)의 眞(쩐)・善(싼)・忍(런) 법리에 부합하고, 모두 동일층 표준 이치에 부합한다. 당신이 상상한 이 우주가 얼마나 크든지 그것은 모두 그 경지 중의 한 개 입자이다. 그러므로 이 한 개 입자가 이 경지 중에 존재하려면, 이 경지 중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리고 그 표준 또한 이 한 층에서의 법의 구체적인 체현이다.

제자: 가없는 위덕(威德)은 모두 고생하여 바꿔온 것입니까, 아니면 선천(先天)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사부: 선천(先天)이 있으면 바로 이 경지 중에서 생긴 것으로 그는 바로 이렇게 높은 경지이며 그는 곧 이렇게 높은 생명인데, 마치 사람의 경우와도 같다. 당신이 바로 사람 중에서 생겼다면 그 태어난 아이는 자라면 사람이지 절대 다른 동물이 아니다. 우주 중에는 수련하는 많은 대각자(大覺者)가 있는데 아주 대단하다. 또 수련해 올라온 이도 있다.

제자: 전에 아주 많은 사람에게 무상으로 책과 녹음테이프를 나눠주었는데 어떤 이는 연마하지 않습니다. 이 책과 녹음테이프를 회수해야 합니까?

사부: 그가 정말로 연마하지 않는다면, 회수하면 회수하는 것이다. 회수하기가 쉽지 않으면 아마도 장래에 어떤 인연 있는 사람이 그의 집으로 가서 보고 가져갈 수 있다. 회수하기 힘들지 않다면 당신이 가서 회수하라. 당신 자신이 스스로 파악하여 마음대로 하라.

제자: “시간과의 대화”에서 말한 ‘인류를 파괴하는 더욱 미시적인 물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이 어떻게 이해해도 다 되는데, 당신이 다 잘못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알려주는데, 이 방대한 천체가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형상이 있는 신은 존재하지 않게 되고, 모두 형상이 없는 생명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는 모든 천체에 모두 분포되어 있는데, 나는 그를 물질이라 부르지만, 그는 곧 신으로서 그는 어떠한 형상도 다 취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형상을 취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그는 바로 이렇게 존재한다. 그런데 우주가 만약 나빠지게 되면, 어떠한 물질이든 모두 정반(正反) 양면이 있는데, 모두 나빠지게 되면, 정면적인 것도 쓸모가 없게 되지만, 부면적인 것은 더욱 쓸모가 없게 된다.

제자: “마음을 닦고 욕망을 끊으며 지혜를 밝혀 미혹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修心斷慾,明慧不惑乃自負).”는 이 말 속의 자부(自負)는 자신이 책임진다는 뜻입니까?

사부: 그렇다. 수련은 당신 자신이 해야 하지 않는가? 바로 이 뜻이다. 당신 자신이 수련해야 한다. “수심단욕(修心斷慾)”은, 당신의 心性(씬씽)을 닦고 당신이 세간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 이것을 구하고자 하고 저것을 구하고자 하는 일체 욕망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당신이 닦지 않으면 누가 당신을 위해서 닦아주겠는가? 내가 닦은 것을 당신이 닦은 것으로 칠 수 없는바, 바로 이런 뜻이 아닌가? “명혜불혹(明慧不惑)”은, 당신이 이런 것을 닦아 버릴 때면, 당신은 법에서 더욱 높은 이치를 볼 수 있고, 당신은 더욱 높은 층차를 얻을 것이며, 최후에는 원만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는 낮은 것에 이끌리지 않고, 더는 속인의 마음에 이끌리지 않아야 하는데, 이런 일들은 모두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뜻이다.

제자: 삼계(三界) 내의 신은 원자 물질로 구성되었습니까?

사부: 어느 경지이든지 그 경지의 표준에 부합해야 한다. 그러나 삼계 내의 어떤 신은 그들이 머물러 있는 경지의 층차를 초월한다. 내가 말한 그 신체는 원자로 구성된 것이지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원자 외곽의 원자는 절대로 아니다. 이 우주는 매우 오묘하다.

제자: 안건을 처리하려면 조사를 하고 증거를 취해야 하는데, 상대방이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태도를 엄하게 하면 우리가 수련하는 眞(쩐)・善(싼)・忍(런)과 모순되지 않습니까?

사부: 상대방이 사실을 말하지 않으면 당신은 그로 하여금 사실을 말하게 해야 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일이고 직책이다. 말해주는 어투가 엄해야 하지만 당신은 화를 내서는 안 되고 또 사람을 욕하지 말아야 하며, 손으로 사람을 때려서는 더욱 안 된다. 우리가 안건을 처리할 때 외국과는 얼마간의 차이점이 있다. 외국은 증거를 중요시하는데, 우리는 어떤 때 증거가 없어도 그로 하여금 말을 하게 해야 한다. 아무튼, 잘 파악하고 연공인의 표준으로 잘 파악하라.

제자: 무엇 때문에 쉽게 법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인생에 성공하지 못한 인사들입니까?

사부: 당신이 어떻게 아는가? 우리 법을 얻은 제자 중 아주 많이는 큰 회사 사장이고, 아주 많이는 사회 각 계층의 매우 높은 사람들이다. 우리 대법제자 중에는 젊고 잘 교육받은 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사회의 높은 계층 고급간부나 고급관료도 아주 많다. 우리 이 자리에 있는 아주 많은 사람이 큰 회사 사장들로서 아주 잘 수련하고 있다. 의사가 아주 많고 변호사도 있다. 우리 여기에는 금융계 인사, 정부의 고급인사, 상공계 인사가 있는데, 법을 얻은 사람이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를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 주겠는데, 수련함에 우리는 똑같이 대하지, 절대 무슨 명망이 있다고 해서 우리 대법이 그를 기다리는 이런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제자: 사부님께서 입으신 가사(袈裟)는 어떤 의미와 작용이 있으며, 유래는 어떠합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석가모니가 이 세상에 계실 때 거느리던 제자는 모두 이런 의복을 입었다. 한지(漢地) 승려는 기후의 영향으로 중국의 민족 의복인 백성의 옷을 입었다. 사실 현재의 승려들이 입은 것은 당대(唐代)와 송대(宋代) 시기의 백성들 옷인데, 다만 색상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거 사람들은 현란한 색상을 좋아했다. 후에는 그것을 일종의 집착으로 여겨 승려도 그런 회색도 아니고 흙의 색도 아닌 그런 색상의 의복을 입었다. 진정한 천상의 불문(佛門) 제자와 부처도 내가 입었던 이런 의복을 입는데, 단지 그것의 질감이 같지 않고 또 맨발이며, 어깨 하나를 드러내 놓는다. 우리가 닦는 것은 부처(佛)이므로 당연히 불가 의복을 입기 좋아하는데, 바로 이 뜻이다. 그러나 도(道)를 닦는 사람에게 당신이 이 의복을 입으라고 주면 그는 절대로 입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제자: 저의 모친은 84세로서 혼자 생활을 하면서 거의 밖에 나가지 않습니다. 매일 식사시간을 제외하고 시간만 나면 연공하고 법 공부하는데, 心性(씬씽)을 제고할 기회가 없습니다.

사부: 노인은 노인의 수련생태가 있다. 그녀에게 난이 없다고 하는데, 그곳에 앉아만 있어도 그녀로 하여금 10년 전 8년 전 과거에 화를 냈던 그런 일들이 생각나게 하는바, 그녀에게 꼭 생각이 일어나게 하여 그녀가 마음이 움직이는가, 화를 내는가를 본다. 어떤 사람은 그곳에 앉아 화가 나서 어찌할 바를 몰라 한다. 바로 그녀에게 무엇이든 다 빠짐이 없게 한다. 나는 아무튼 그녀로 하여금 반드시 닦게 해야 하고, 현재의 우리 일부 수련생들을 포함한 젊은 사람, 나이가 많은 사람도 이런 일을 만나게 하는데, 그녀로 하여금 그런 화가 나는 일들을 생각나게 해서, 그녀가 화를 내는지, 내지 않는지를 본다. 옛날 옛날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그녀로 하여금 생각나게 하는데, 아무튼 그녀가 어떻게 대하는가를 본다.

제자: 6일 전 사부님과 우리가 함께 법 공부를 하고 문제에 해답해 주시는 꿈을 꾸었는데, 사부님께서 입으신 옷은 어제 오전의 작은 모임 때에 입으셨던 옷과 같았습니다.

사부: 바로 당신이 앞서 본 것이다. 이런 일들을 사실 나는 모두 당신들에게 덮어 감추어, 당신들로 하여금 이런 일에 공력을 들이지 말고 당신들로 하여금 이런 일에 마음을 쓰지 말게 하며, 당신들로 하여금 적게 감수케 하여 당신들이 빨리 수련하도록 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은 이런 문제를 날마다 물을 것인데, 얼마나 물을지 모른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이고 저것은 어찌 된 일인지, 이 우주의 오묘함은 실로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대단히 많다.

제자: 사람의 강한 의지와 인내력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놓고 말하든, 우리 사람 신체 표면을 놓고 말하든, 만약 속인사회에서 세파에 많이 시달렸다면, 그는 아마 별로 개의치 않을 것이고, 또 겪은 일이 많았다면 곧 강해지므로 그는 개의치 않을 것이다. 수련 중에도 사람으로 하여금 강해지게 할 수 있다. 경지를 제고하면 인내력도 향상한다.

제자: 우리는 수련과정 중 각종 나쁜 것을 모두 닦아 깨끗이 없애야 합니까?

사부: 반드시 이렇게 해야만 한다. 우리 어떤 수련생은, ‘사부님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이다지도 나쁜데, 우리가 부처의 그 경지로 닦아낸다 하여도 우리가 정말 속인 시절의 이 일체를 잊을 수 있습니까?’ 하며 생각을 하는데, 당신이 속인 중에서 부처는 어떤 상태인가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사상, 당신의 사상 구조, 사유 방식을 포함하여 모두 개변해야 한다. 속인 이 층차의 정(情)의 제약과 기타 각종 속인 경지 속 물질의 사람에 대한 제약이 없다면, 당신은 이 환경을 벗어난 것으로서 이런 상태도 없게 된다. 그러면 수련되어 올라간 후 당신의 사람 표면형식의 이 점은 단지 기억으로 남을 뿐, 그때의 사상은 이미 승화되어 부처의 사상, 신의 사상, 도의 사상 경지로서, 당신의 제일 좋은 부분이다. 사람의 가장 표면의 것, 심지어 이 기억마저도 당신은 움직이고 싶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회상하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제자: 새로운 우주가 구성된 후에도 부동(不同)한 층차의 마는 계속 존재합니까?

사부: 이 점을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주는데, 만약 오직 긍정적인 것만 있고 부정적인 것이 없다면 어떠한 생명도 모두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당신이 무슨 일을 하거나 하기만 하면 곧바로 되고, 무엇을 갖고자 생각하면 곧바로 가지게 되어 어떤 일을 해도 곤란이 없다면, 당신은 일체를 모두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곤란을 겪고 얻은 그 행복한 느낌이 없을 것이며, 승리 후의 희열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도 아무렇지도 않고, 아까울 것도 없어, 사람 사는 재미가 없을 것이다. 사람의 속인사회에서의 다툼은 그에게 사는 재미를 느끼게 한다. 그가 죽은 뒤 다시 음미해 보면 여전히 재미있게 느껴지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다. 그러나 부동한 층차에도 부정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이 점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닦아서 나온 것이 아니라 법이 배치한 것이다.

제자: 입정할 때 일부 보고 싶지 않은 사물이 나타나면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보았으면 본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보고 싶지 않은데도 보았다.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 그 또한 당신을 해치지 못하고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순리에 따르고 상관하지 말라. 더욱이 속인 이 일보에서 시작할 때에 당신의 천목이 볼 수 있는 것은 틀림없이 모두 낮은 층차의 것이며, 몹시 나쁜 것들이어서 무섭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많이 보고 법 공부를 많이 하여 빨리 닦으면 이 층차를 아주 빨리 돌파하게 되어 다시 보게 되는 것은 이것들이 아닐 것이다. 다시 보게 되면 좋은 것을 볼 것이다.

제자: 가족들이 다른 공법을 연마할 때 저 자신은 단체 연공장에서 유난히 괴롭습니다. 때로는 어떠한 광경을 보는데 그것은 예측 작용이 있습니까?

사부: 보았으면 본 것이다. 그것을 마음에 두지 말라. 설사 곧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보았더라도, 내 생각에 당신은 그것에 신경 쓰지 말라. 당신의 心性(씬씽)을 지키고 수련하라. 다른 사람이 당신의 수련을 교란하거나 당신 가족이 다른 공법을 연마하는 것에 대해서라면 이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교란이 없다. 그러나 당신이 느낀 교란은 아마 당신을 고험하는 것일 수 있으며, 당신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는 것이다. 우리는 정법, 대법을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것도 당신을 교란할 수 없다. 우리 자신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다면 그것은 바로 心性(씬씽) 문제이므로 그러면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날 수 있다.

제자: 저는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한 지 몇 개월이 되는데, 아주 좋다고 느낍니다. 저는 모모 교(敎)에 귀의했는데 지금 진퇴양난의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부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수련은 자기의 일이다. 당신이 어떻게 수련하고 싶으면 당신은 그렇게 수련하라. 당신이 종교에서 수련하고 싶으면 당신은 거기에서 수련하고, 당신이 대법(大法)을 수련하고 싶으면 그러면 당신은 대법(大法)을 수련하라. 이 한 걸음은 반드시 자신이 내디뎌야 한다. 나도 당신이 진퇴양난인 것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이 한 걸음을 어떻게 내딛는가를 보아야 한다. 당신이 무엇을 배우려 하는가는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나 역시 많은 이치를 분명하게 말했다. 삼계 내에는 지금 상관하는 바른 신(正神)이 없고, 사람을 제도하는 바른 신이 없다. 이 점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알려줄 수 있다.

제자: 저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항상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데, 이것을 집착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집착이라고 할 수 없다. 시간이 아주 긴박한데, 낮은 아주 바쁘므로 저녁에 시간을 좀 내어 연공하려는 생각은 아주 좋다고 나는 말한다. 절대로 당신이 연공한 것으로 인하여 당신의 신체가 손실을 받거나, 잠이 부족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은 연공을 끝낸 후 잠을 자면 더욱 깊게 잘 수 있으며, 정신이 더욱 좋아짐을 느낄 것이다. 틀림없이 이러하다.

제자: 기독교와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만이 유일한 신(神)이라고 여깁니다. 어떻게 그들로 하여금 신은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믿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그것은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우리도 이치를 말했다. 사실 구약전서와 신약전서에서도 신은 예수 하나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했다. 적어도 예수 이전에 또 여호와 신이 있었다. 이 신구약전서 중에서도 다른 천신(天神)들을 말했다. 고대 그리스 때도 많은 신이 인류 중에서 법을 전했다. 이것은 그들 자신이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려있다. 사실 불교에서도 부처님은 석가모니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석가모니도 아미타불이 있고 또 원시육불(原始六佛)도 있으며 여래는 항하의 모래알 수만큼 많다는 등등을 말한 적이 있다. 그리고 또 무수한 대보살이 있다. 그러나 어떤 승려들은 부처님은 다만 석가모니 부처님 하나만 있다고 하는데, 그들 현재의 사상은 어찌 그 정도로 좁아졌는지? 오로지 석가모니만 부처라고 여긴다. 법은 그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그들에게 알게 하라. 배우고 싶은가 아닌가는 모두 그들 자신에게 달려 있다. 만약 그들이 기필코 그들 자신의 인식을 고수하려고 한다면 그들 마음대로 하게 두라. 우리는 선을 권하기만 할 뿐, 절대로 사람을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을 여러분들이 기억해 두어야 한다.

제자: 사람의 공은 다 자신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여 사람이 빌어서 나온 가짜 부처가 사람의 공을 가져갈 수 있습니까?

사부: 그것은 사람의 공을 가져갈 수 없다. 그것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은 보통 사람의 기(氣)이다. 바로 이런 뜻이다. 그것은 어떤 에너지도 가져갈 수 없다. 그러면 그것은 어떻게 하여 가져갈 수 있는가? 그것은 속인이 빌어낸 것이라 사상 경지가 바로 속인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물건을 훔치려고 하는가? 바로 그에게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제자: 수련해 원만을 이룬 후 다른 세계로 가는 제자들은 배 안에 있는 法輪(파룬)을 갖고 갈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수련만 해라. 당신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당신도 알 수 없다. 당신은 정진만 해라. 당신이 생각할 것은 당신이 어떻게 원만을 이루느냐 하는 문제이다. 이것이 가장 큰일이다. 되도록 빨리 수련하여 되돌아가는 그것이 당신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다른 것은 모두 생각하지 말라. 나, 이 사부는 반드시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줄 것이다. (박수) 새 우주든 미래의 일체든, 누구를 위해 개창하는가? 중생들을 위해서가 아닌가? 그렇지 않은가? 그 부모님들은 늘 가장 좋은 것을 아이들에게 주려고 한다. 특히 장래에 그를 더욱 좋게 하려고 한다. 다 이러한 마음이다. (박수)

제자: 원만에 이르러서는 다만 찰나 사이에 완성되는데, 그렇다면 사부님의 지령(指令)이 있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곧 원만을 이루려 할 때 바로 당신과 접촉하기 시작하며 많은 일은 직접 당신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그것은 그야말로 어떤 사람들이 자칭 원만을 한 것과는 다르다. 무릇 자칭 원만을 이루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원만을 이루지 못한 것이다.

제자: 서양 사람에게 홍법할 때 종교문제를 물으면 어떻게 합니까?

사부: 그에게 책을 보여 주라. 그에게 책을 보여주기만 하라. 종교문제는 내가 책 속에서 명확하게 썼다. 그가 물어본다면 우리도 책에 따라 말하면 된다. 이것은 문제가 없다.

제자: 저는 가부좌할 때 아주 고통스러운데, 이것이 좋은 일인지 아니면 저의 업력이 커서 마땅히 응보를 받고 응보를 당해야 하는 일인지 여쭙습니다.

사부: 아니다. 가부좌할 때 아프지 않은 사람이 없다. 과거에 우리 많은 사람, 곧 체조하는 사람, 무용하는 사람, 혹은 원래부터 다리를 틀 수 있는 사람들은 일단 다리를 틀려면 금방 틀어진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그때 당신들은 수련하지 않았다. 수련을 시작한 후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 당신은 아프기 시작한다. 당신이 다리를 틀 수 있다 하여 절대 연공으로 소업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수련이 당신들의 제고를 도와야 한다.

제자: 제가 침대에 누워서 손을 아랫배 부위에 놓으면, 자신이 마치 물결처럼 밖으로 확산하는 것을 느끼는데, 저는 이러면 사법을 연마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됩니다.

사부: 당신은 당신의 신체가 미시적인 데에서부터 표면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느낀 것이다. 바로 내가 조금 전에 말한 것으로, 우리는 당신을 미시적인 데에서부터 표면에 이르기까지 줄곧 개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주 민감한 사람들은 느낄 수 있다. 당신이 느끼게 되는 것은 아주 조금이다. 아주 많고 많은 것은 여전히 느끼지 못하는데, 어떤 느낌은 대단히 고통스럽다.

제자: 청소년 시기에 마난이 비교적 많았는데, 법을 얻은 후 이 마난들이 수련에 도움이 됩니까?

사부: 어떤 것은 도움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모두 법을 얻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이 사람이 법을 얻어야 한다고 정해졌다면 그의 일생이나 심지어 세세생생 이 일을 위해 고생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오늘날 법을 쉽게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생생세세 모두 다 이 법을 얻기 위해 고생을 했는데, 진정으로 법을 얻을 시기가 되어서는 그는 오히려 얻으려 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애석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이것을 위해서 온 것인데……. 그럼 당신이 말해 보라. 이것이 애석하지 않은가?

제자: 법을 방금 배웠을 때에는 꿈속에서 위험을 만나면 늘 사부님의 이름을 불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근래에는 자꾸 잊어버리고 자신이 그들과 오고 가며 싸우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이런 현상은 비교적 적으며 매우 보기 드물다. 그러나 아주 특별한 사람도 있다. 한 기간 시간이 지나가면 바로 좋아진다. 당신이 그것을 아랑곳하지 않으면 괜찮아진다. 아무튼, 한 기간 시간이 지나가면 좋아질 것이다. 일단 일이 있기만 하면 사부를 부르는 것, 그것 또한 집착이 아닌가? 그리고 꿈속의 일도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한 가지 상태 중의 체현이다. 과거에 도가의 수련 방법 중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특별히 내외겸수의 것에, 즉 내공도 수련하고 또 무술도 연마하는 바로 그런 공법에 비교적 많다.

제자: 우울증과 정신장애가 있었던 사람이 만약 진정으로 수련한다면 원만에 이를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진정으로 수련한다면 원만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면 공공장소에서 연공하지 말라. 당신을 위해서이고 법을 위해서이다. 만약 당신이 잘 파악하지 못하고 법에 손실을 조성한다면 당신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좋기는 집에서 연마하라. 당신이 수련만 하면 당신이 어디에서 연공하든 나는 다 당신을 책임질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반드시 정신이 맑고 관을 넘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제자: 전반생을 되돌아보니 후회와 자책이 느껴집니다. 法輪大法(파룬따파) 제자로서 마땅히 이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라. 지나간 것은 지나가도록 하라. 나는 당신이 수련하는 이 마음만 본다. 다른 문제는 사부가 당신을 위해서 한다. 지나간 것인데 당신이 그것을 늘 생각한다면 또한 장애와 집착이 형성된다. 더는 신경 쓰지 말라. 다시 면모를 바꾸어 환골탈태하면, 당신은 바로 새로운 사람이 된다. 바로 이렇게 하는 것이다. (박수)

제자: 저는 ­­­­전법륜­­­­ 책을 볼 때, 때로는 얼굴은 단지 껍질일 뿐이라고 느껴지며, 얼굴 안이 책을 보는데, 이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사부: 바로 당신의 元神(왠선)과 당신 신체의 미시적인 그 일부분 그쪽이 비교적 강해서다. 이것도 좋은 일이다.

제자: 心性(씬씽)과 경지(境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며, 둘 사이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부: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되면 그것이 바로 당신 心性(씬씽)이 처한 표준이며 역시 당신의 경지이다. 이 경지 속에서 발산한 어떠한 사상이나 염두는 모두 다 이 한층 心性(씬씽) 표준에 부합되는 것이다. 그러나 속인 중에서 수련하므로 우리는 또 완전히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미시적인 데에서부터 표면에까지 이렇게 개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표면상 사람의 여기가 여전히 사람의 형상일 때, 마음은 아직 속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최후 원만에 이를 때까지 계속해서 이 일체에 개변이 일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수련 중에서 반드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고 心性(씬씽) 상에서 속인을 초월해야 한다.

제자: 만약 매일 아침에 포륜(抱輪)을 두 시간 반 하고, 저녁에 가부좌를 두 시간 반 하면, 매일 연공하는 시간이 과다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시간이 있어 많이 연공한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는다. 연공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당신의 책보는 시간을 빼앗는다면, 나는 옳지 않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책을 보고 법을 공부하는 이것은 제1위의 것으로서, 여기에는 당신을 본질상에서부터 진정하게 개변되도록 보장할 수 있고, 승화되게 할 수 있는 근본적인 요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공은 원만의 보조수단이다. 당신은 연공을 첫 번째로 놓고, 책 보는 것을 두 번째로 놓지 말아야 한다. 이러면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 당신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다. 당신이 어떻게 연공을 하겠는가? 설령 자동으로, 그것이 자동으로 이렇게 위로 솟구칠지라도 올라가지 못한다. 당신의 心性(씬씽) 표준이 거기에 도달하고, 법 공부와 책을 보는 것을 통해 당신이 법리상으로 명백해지면, 공은 순식간에 올라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연공 시간을 과다하게 늘리는 것을 강조하지 않는다. 바로 이런 뜻이다. 그러나 연공은 반드시 해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어떤 공법은 副元神(푸왠선)이 나가서 연공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副元神(푸왠선)은 살해당한 후 또 환생했습니다. 그 신체는 主元神(주왠선)이 수련합니까, 아니면 副元神(푸왠선)이 수련합니까?

사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나는 항상 이런 한마디 말을 한다. 인류 이 한층은 당신이 한눈에 바라볼 수 있지만, 당신은 그것에 얼마의 공간이 있는지를 알아보기가 몹시 어렵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다른 또 한 공간의 시간장(時間場)에서 이 일체를 완성한다. 다른 공간의 시간장 속에도 또 다른 공간의 시간장이 있는데, 그것은 거기에서 일체를 완성한다. 물론 다 副元神(푸왠선)이다!

제자: 우리 번역팀은 사부님의 경문을 영문으로 번역하였습니다. 일부 서양 수련생에게 보여주려고 하는데?

사부: 번역한 어떠한 것이든지, 그것을 드러내어 세상에 공포하거나, 혹은 책으로 인쇄하여 수련생에게 전하여 보여주려고 할 때 모두 다 연구회에서 본 후 결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많은 문제가 우리의 전체 대법 일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중대하므로 반드시 그들에게 보라고 해야 한다. 특별히 설법 녹음은 아주 많은 것이 내가 말한 후 더는 보편적인 효과가 없다. 발표하려면 반드시 내가 다시 정리해야 하고, 그것을 책과 같이 여러분들이 다 볼 수 있게 고쳐야 하며, 수련생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고 제고를 얻게 할 수 있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지 이러한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 이 점은 이미 매우 명확하다. 무슨 일을 하든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대법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또 그 일이 전체 대법과 관계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엄숙하게 이 문제를 대해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 “법 중에 용해되자”에서, 더는 많은 시간을 내서 토론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사람들은 독서회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합니다.

사부: 단체로 책을 보고 법 공부하는 것과 혼자서 책을 보고 법 공부하는 것을 결합해야 하는데, 모두 다 필요한 것이다. 한쪽의 극단에서 또 한쪽의 극단으로 가지 말라.

제자: 부동(不同)한 경문을 외울 때, 부동한 난이도(難易成度)를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은 착각입니까?

사부: 내가 쓴 그것은 어떤 것은 이해하기가 그다지 쉽지 않은데 이 점은 틀림없는 것이다. 왜 이렇게 쓰는가? 역시 목적이 있다. 어느 정도까지 이해할 수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 이해하라. 그러나 당신이 어떻게 이해해도, 이해가 어긋나지 않으며 인식하는 정도가 부동(不同)할 뿐이다.

제자: 경문을 외우기 위해 저는 외워 쓰는 습관이 있습니다. 외워 쓴 경문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이런 일을 할 때 수련인의 심태가 있어야 하며, 사부와 법을 공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태워 버려라. 속인의 이 불(火)은 영원히 신(神)을 태우지 못하므로 필요 없으면 태워 버리면 끝이다. 이 역사시기는 하나의 특수한 시기이기 때문에 바로 이렇게 한다. 그러나 대법의 책은 절대로 태울 수 없다.

제자: 노 제자는 늘 사부님을 보고 싶어 하는데, 이는 집착입니까? 사부님을 만나면 또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리며 말을 못하는데, 이것도 집착입니까?

사부: 마음속에 나를 만나려고만 하는 집착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대다수는 당신이 대법을 수련했고 사부가 전해준 이 법이 당신을 구도했기 때문에 이러한 각도에서 나를 만나려 하는 것이다. 나를 만난 후 또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 자신의 개변과 당신 자신의 몸에서 발생한 변화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당신은 표면상에서 보지 못하지만, 당신의 잘 수련된 그 부분, 혹은 당신의 元神(왠선), 혹은 당신의 미혹되지 않은 그 일부분은 다 볼 수 있다. 일단 나를 만나기만 하면 그들은 다 정신이 깨어난다. 그가 정신을 조금 차리기만 하면 당신 사람 이쪽은 아주 약하게 변한다. 그러면 당신 이쪽의 울음을 표면에서는 왜 그러는지 알지 못하지만, 당신의 그쪽 일면은 내가 당신에게 해준 일체는 어떠한 말이나 방법으로도 내게 다 갚을 수 없음을 알게 되어서인데, (박수) 마음속에 감사드릴 방법이 없는 그런 상태이다.

제자: 결가부좌할 때 아주 고통스러운 것은 그래도 참을 수 있지만, 신체의 어떤 부위가 수시로 강하게 떨려서 정공할 때 입정할 수가 없는데요?

사부: 결가부좌는 아무래도 고통 과정이 있다. 특히 우리 어떤 사람들은 종래로 다리를 틀어본 적이 없고, 더욱이 신체 표면의 물질 구조가 적응하지 못하는데다가 또 업력이 아래로 소멸되기 때문인데, 당신으로 하여금 아주 고통스럽게 한다. 당신이 나는 반 시간 동안 다리를 틀 수 있다고 한다면, 반 시간을 초과한 후에는 당신은 또 대단히 아플 것인데, 이는 틀림없다. 고통에 이어 짜증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므로 과거의 수련하는 화상(和尙), 그를 당신은 가부좌하고 있는 것으로만 보지 말라. 그도 心性(씬씽)을 제고하고 있다. 그러나 단지 그가 제고한 心性(씬씽)이 우리처럼 이렇게 직접적이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그것이 천천히 오게 되며 수련도 천천히 된다. 마음이 고통스러울 때면 업력은 당신으로 하여금 다리를 내려놓게 한다. 그러나 의지가 견정해 다리를 내려놓지 않으면, 당신의 心性(씬싱)은 제고되는데, 이 역시 일종의 마난 중 제고이다. 어떤 때에는 극심한 고통이 나타날 수 있고, 또 속이 메스껍거나 구토가 나타날 수 있는데, 심할 때에는 아주 격렬하다.

제자: 어떤 수련생은 이미 최후의 질주단계에 들어섰다고 여기며 법을 다그쳐 배워야 한다고 합니다.

사부: 나는 최후의 질주단계라고 말하지 않았다. 법을 다그쳐 배워야 한다고 해서 사직(辭職)하여 집에 있다면, 그것은 법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나는 말한다. 누가 이렇게 선전하고 누가 이렇게 한다면 바로 법에 대해, 그 자신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것이다. 무슨 사직이며, 어떤 일을 다 하지 말라고 누가 당신에게 이렇게 가르쳤는가? 당신이 법을 파괴하고 있지 않은가? 나는 사람도 법을 원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법을 원용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법은 당신을 제도할 수 있는데, 이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가서 법을 원용하는가? 사람이 속인사회 이 한 층차에서, 모두 아주 잘못하고, 속인사회 중에서 하는 것이 속인과 같다면, 사람들은 모두, 당신이 보라, 이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들은 이렇다고 말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모두 다 매우 잘하여, 연공인의 표준으로 자신을 요구할 수 있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는 제자라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들이 보면, 어, 이 사람들은 다 法輪功(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인데 정말로 좋다. 어디에 두어도 마음이 놓이며 어디에서나 다 좋은 사람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法輪功(파룬궁) 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좋고, 이 대법은 정말로 좋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속인의 이 한 형식 속에서 대법을 원용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표현이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법을 원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당신도 법에 먹칠하고 법을 파괴하고 있다. 법은 당신을 제도할 수 있는데 당신은 또 법을 파괴하다니, 어떻게 이 관계를 바르게 놓는가? 어떻게 당신을 헤아려야 하는가? 수련은 그야말로 엄숙한 것이다. 온몸에 업력이 가득한 사람이 원만에 이르도록 수련하려면 당신이 엄숙하지 않고서 되겠는가?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이 일보다 더 위대하고 더 엄숙할 수 있는가?

제자: 지식인이 ­­­­전법륜­­­­을 통독할 때 적응하지 못하는데, 늘 대학 교과서 문장의 풍격과는 다르다고 느낍니다. 개인의 연분이나 업력과는 어떠한 관계가 있습니까?

사부: 이것이 바로 이런 지식인들이 법을 얻는 데에 장애이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을 떨쳐버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가 생성한 관념이 그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문학이 형성한 관념, 그것을 나는 신 팔고문(新八股)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어휘에 정의를 내려 거기에 고정하자 더욱 깊은 내포는 없어져 버렸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백화(白話)로서 인간의 천박한 언어이다. 게다가 정의를 내리고 나서부터는 단지 아주 간단한 것만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법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했다. 어떤 사람은 사부님의 책은 현대어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나는 현대어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적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당신들은 한 문제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법은 부동한 층차의 생명에 생존 조건과 환경을 개창(開創)해 주었는데, 인간의 언어와 문자도 포함한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의 인류 문화 역시 법이 인간에게 개창해 준 것이다. 그럼 이왕 이러하다면, 이 우주 대법을 인간의 언어 표준에 국한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단지 인간의 언어문자와 어법을 이용하여 법을 표현할 뿐이다.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대해서는 그것은 우리가 편리한 바에 따르고, 내가 더욱 깊은 내포를 어떻게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다면, 나는 바로 그렇게 그것을 이용한다. 그래서 나는 현대어법을 완전히 벗어나 전혀 그것의 규범에 따르지 않았다. 나의 설법을 포함하여, 그것의 규범언어에 따라 하지 않았다. 이래야만 법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일이다. 법(法)은, 이렇게 큰 우주 법은, 인간의 어법으로 국한할 수 없다. 나는 단지 인간의 언어를 이용했을 뿐이다.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대해서는 어떻게 배열해도 다 되며, 다만 어떻게 법을 표현할 수 있고,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으면 그렇게 배열했다. 법은 또한 미래 인류에게 새로운 언어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줄 것인데, 일체는 모두 다 가장 좋은 상태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는 틀림없이 익숙하지 못할 것이다.

제자: 다리에 원래 상처를 입은 적이 있는데, 이미 결가부좌에 도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근래 어떤 원인인지 모르겠지만 아무리 해도 결가부좌를 할 수 없습니다.

사부: 사실 당신은 어떤 원인이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하나는 법 공부에 정진하지 못했거나, 혹은 어떤 방면에서 잘못했음에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거나,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닌가? 만약 당신이 오늘 일을 아주 잘하고 법에 부합한다면, 당신은 원래 10분밖에 할 수 없던 가부좌를 틀림없이 20분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다 이러한 체득이 있다. 사정은 또 절대적이지 않다. 다만 최근 한 시기 당신이 큰 업을 소업해야 할 때 이런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제자: 일부 정보를 받았는데, 각자(覺者)에게서 온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사유에서 온 것인지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어떤 정보를 받았든지 그것에 신경 쓰지 말라. 당신이 중요시하면 바로 그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방법을 바꿔 당신을 교란할 것이며 방법을 바꿔 당신에게 정보를 주어 당신을 교란한다. 당신에게 이런 능력이 있으나 잠가두지 않았는데 그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당신은 잘 파악해야 한다. 어떤 정보든지 신경 쓰지 말라. 들었다면 들은 것이고 보았다면 본 것이니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 당신은 대법으로 수련해 나아가라. 이치는 이미 다 글에 썼는데 당신은 또 무슨 정보를 상관하는가. 가짜 정보에 당신이 한번 속으면 당신은 바로 떨어지는데, 바로 이렇게 쉬운 것이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이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제자: 고층공간에서 생긴 생명이 떨어진 후 또 수련해서 돌아간다면, 원래와 어떠한 구별이 있습니까?

사부: 고층 생명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 떨어진다면 바로 떨어지는, 어찌 그렇게 간단한 일이겠는가? 다만 이런 현상이 존재할 뿐이다. 수련해서 돌아간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이며, 더욱이 당신이 글자 몇 개를 쓴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일과는 다르다. 당신은 당신들이 법을 어떻게 얻었는지 아는가? 당신들은 지구로 환생해 와야 하고, 또 당신들은 그 시기에 출생해야 하며, 또 당신을 제도하는 사람의 출생에 맞춰야 하고, 당신은 또 사람을 제도하는 대각자(大覺者)를 만날 수 있어야 하며, 이 법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매우 어렵다. 정말 법을 얻었다 해도 또 수련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당시 석가모니의 제자 중에도 석가모니가 말한 법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던 이가 있었다. 낮에는 여기에서 법을 듣고 출가하지만,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저녁에 가사를 벗어 던져버리고 도망가는데, 이런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부처가 세상에 계시지 않고,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간 후, 사람들은 갈수록 이것이 진리임을 알고 비로소 소중히 여기기 시작했다. 참으로 수련해서 올라갈 수 있다면 구별이 없다.

제자: “상사는 깨달음에 의거하여 원만을 이룬다.”와 “진상이 일단 나타난다.”의 구체적인 내포를 삼가 해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부: “상사는 깨달음에 의거하여 원만을 이룬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 주겠다. 이 자리의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두 깨달음에 의거한다. 나는 당신들에게 진상을 보여주지 않았다. 당신들에게 어떠한 마음이라도 생길까 봐 염려되어 이렇게 했다. 견지해 나갈 수 있는 사람, 수련해 나갈 수 있는 사람, 부단히 정진하고 있는 사람, 나는 그들이 정말로 대단하다고 말한다. 장래에 수련해 올라간다면 누구든 당신에게 탄복할 것이다. 이것을 일컬어 깨달음에 의거하여 원만을 이룬다는 것이다. 신통이 크게 나타나 무엇이나 다 볼 수 있다면 수련하기에 늦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다 열렸다면 당신이 수련한 것은 수련으로 치지 않는다. 만약 내가 미혹을 조금 타파해 주면, 그렇게 아주 높은 층차에서 온 사람, 그에게 미혹을 조금만이라도 타파해 주면, 그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이 어느 층차에서 왔든 이렇게 해야 한다. 진상이 일단 나타나면 수련하기가 쉽지 않다. 사람에 대한 요구가 아주 높아질 뿐만 아니라, 수련방식도 엄격해지고, 제고도 이렇게 빠르지 않을 것이다.

제자: 계란을 깨는 것을 살생이라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라. 사실 나는 조금 전에 이 이치를 아주 분명하게 말했다. 당신은 사람의 생활을 하면서 고기를 먹지 않는데, 집안사람들은 고기를 먹으려고 한다. 당신은 수련하지만 집안사람들은 수련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하여 수련할 수 있으므로, 시야를 큰 곳에 두고 정정당당하게 수련하라. 이런 일들은 모두 처리하기가 쉽다. 당신이 채식한다 하여 성불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것은 우스운 소리다. 그것은 단지 한 가지 마음을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서, 바로 고기에 집착하지 않고, 육식에 집착하지 않는, 바로 이 한 마음이다. 그러나 사람은 얼마나 많은 마음을 제거해야 하는가. 단 한 가지 마음을 제거했다 하여 어떻게 성불할 수 있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속인사회에서 정상적으로 수련할 수 있게 하는 이 점에서 우리는 가장 편리한 한 법문을 열었다. 계란을 먹고 싶을 때 당신이 먹을 수 있으면 먹어도 된다. 그러나 출가승은 이 계열에 속하지 않는다.

제자: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욱 빨리 아주 깊이 숨어있는 집착심을 제거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을 일깨워 줄 것이다. 당신이 그때에 가서 제거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나는 반드시 당신을 일깨워 줄 것이며, 모든 마음을 다 당신을 위해 폭로해 줄 것이다. 내가 당신을 일깨워 주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당신을 일깨워 주게 한다. 모순이 발생할 때 당신의 그 일부분을 타격할 수 있는데, 그때 당신이 또 밖으로 찾을까 봐 걱정이고, 또 그 마음들을 생각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다. 반드시 당신에게 일깨워 줄 것이므로 이 점은 마음을 놓아도 된다.

제자: 제자들은 언제든지 사부님을 따라가려고 하는데, 원만 장거(壯擧)의 그 순간을 알 수 있습니까?

사부: 마땅히 원만을 해야 할 제자는 빠뜨리지 않을 것이다. 수련만 하고 무엇이든 다 관여하지 말라. 내가 당신들에게 그 나한의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왜냐하면, 두려워하는 심리나, 기뻐하는 심리로는 원만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 당신이 수련 성취하여 더욱 높은 경지의 원만을 이루려면 요구도 더욱 높아진다. 마음을 다 내려놓아라. 당신이 만약 그 순간에 정말로 이런 잡념이 생긴다면 당신은 정말로 원만을 이룰 수 없게 되는데, 바로 당신을 잡아당긴다.

제자: 사부님의 설법은 갈수록 명백해져서 깨달을 필요가 없는데, 이것을 수련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한 말을,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이 모두 똑같이 듣는다고만 보지 말라, 사람마다 매 사람의 부동한 층차에 근거하여 이해하고 있다. 절대로 같지 않다. (박수) 내가 당신들에게 한 것은 여전히 그 말이다. 비록 그렇게 높은 이치로 말한다 해도 단지 그의 표면만을 개괄적으로 말할 뿐, 실질적인 것은 당신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알게 되면 수련하기가 매우 어렵다. 내가 말한 것은 여전히 한 가지 이치일 뿐, 진상은 당신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여전히 미혹이며, 믿는 것과 믿지 않는 것이 여전히 함께 존재한다.

제자: ­­­­전법륜­­­­을 통독하는 일을 매주 세 번 편성하면, 서로 토론할 시간이 없는데, 이래도 괜찮습니까?

사부: 괜찮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내어 무엇을 토론하려는가? 통독하라. 시간을 다 법 공부에 사용하라. (박수) 물론 당신들이 시간을 내서 체득을 말하는 것도 필요하다. 매일 연공이 끝난 이후 서로 조금 토론하는 것도 괜찮다.

제자: 문화 정도의 고저에 따라 이해 능력에 차이가 있습니까?

사부: 조금 차이가 있다. 글을 모르면 책을 볼 수 없다. 당신이 글을 온전히 알지 못해도 책을 보는 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현대인은 모두 지금의 이 과학이 만들어낸 것이기에, 나도 현대과학・현대문화에 결합하여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당신은 용어의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차이점이다. 그래서 배우려면 조금 힘이 든다. 하지만 심혈을 기울인다면 아무것도 뒤처지지 않는다.

제자: 애정이 줄곧 저를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남자 친구와 다툴 때면, 저는 즉시 그와 헤어져야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나 또 자신이 도피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만약 그와 화해한다면 이것은 애정에 대한 집착입니까?

사부: 이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속인사회를 떠나기 전에, 당신이 원만을 이루기 전에, 당신에게는 줄곧 정(情)이 존재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속인사회의 수련을 보증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당신에게 정이 있으므로 해서 이 마음 역시 정에 끌려 움직이고 있는데, 당신이 할 수 있는 데까지 되도록 그것을 억제하고, 되도록 연공인과 같은 상태를 유지하며, 속인처럼 그렇게 멋대로 무엇을 하고 싶다고 해서 무엇을 하면 안 된다. 최소한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속인과 같지 않은 점이다. 물론 당신이 친구를 찾으려 하거나, 결혼을 하려 하는 데에는 역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인데, 바로 이런 관계이다. 우리는, 최대한도로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하여 수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나는 친구를 찾고 싶지 않고 나는 이 한평생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개인의 문제이다.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도 당신에게 강요하지 않는바, 일체는 바로 모두 이러하다. 그러나 제자로서 반드시 자신의 순결을 지켜야 한다.

제자: 친구가 개인의 사적인 문제를 물어볼 때 제가 거짓말을 해도 됩니까?

사부: 말하고 싶지 않으면 되도록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는다. 되도록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아무튼 이런 일들이므로 당신은 어떻게 최대한 속인 중에서 수련하는데 부합할 수 있고, 또 연공인의 표준에 부합할 수 있다면 당신은 바로 이렇게 하라.

제자: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상황에서 불필요한 번거로움을 덜기 위한 거짓말은 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인간 세상의 문제는 아주 복잡하다. 각종 복잡한 환경이 조성한 그 문제 또한 극히 복잡하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수련하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당신이 정말로 살인 방화하는 것을 피하고자 거짓말을 했다면 그것도 당신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신은 어떻게 이 관계를 잘 배치해야 하는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연공인으로서 또한 어렵지 않다. 사실 우리 많은 일은 말하기 싫으면 말을 하지 않는다.

제자: 수련을 일 년 했는데 아직도 결가부좌를 하지 못합니다. 가부좌를 틀지 못할수록 조급해집니다.

사부: 괜찮다. 정말로 다리를 틀지 못하더라도, 다리를 틀지 못한다고 하여 당신에게 원만을 이루지 못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당신은 다리를 틀어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농담이 아니다. 수련인이 수련을 괜찮게 했음에도 다리를 틀지 못한다면 위의 보살도 입을 가리고 당신을 보고 웃는데, 정말이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 말라. 천천히 언젠가 다리를 틀 수 있다. 나는 종래로 시간이 모자란다고 한 적이 없다.

제자: 무엇 때문에 연공하거나 법 공부할 때 허리 부위가 뜨거워집니까?

사부: 사람이 수련 중에서 각종 상태는 그야말로 천만 종류에 그치지 않는다. 각종 상태가 모두 나타날 수 있다. 당신이 매 한 가지 상태를 모두 나에게 물어본다면 당신은 수련해 나갈 수 있겠는가? 당신은 여전히 수련하는 사람인가? 이런 일들은 신경 쓰지 말라. 자연스러움을 따르라. 수련하는 사람은 추운 것도 두렵지 않고 더운 것도 두렵지 않으며 바람이 불어도 당신을 아프게 하지 못한다.

제자: 부부 사이가 좋고 안 좋고는, 하늘에서 정한 것입니까?

사부: 이것은 하늘이 정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업력윤보가 있어서 업력이 촉성한 것이다. 부부간은 절대다수가 모두 전생으로 다음 생의 부부인연이 조성되는데, 다수가 이렇다.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제자: 대법을 수련하면서 관음보살을 공양할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은 책을 보라. 이 문제는 당신에게 해답하지 않겠다. 많은 수련생이 나에게 묻는다. 사부님,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에 오지 않습니까? 사부님, 당신은 무엇 때문에 우리 지역에 오지 않습니까? 내가 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들이 법에 대해 일정한 인식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숙해진 다음 내가 가면 당신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 (박수) 만약 내가 갔는데 당신이 나에게 무엇이 法輪功(파룬궁)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헛되게 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바로 조금 전의 이 문제는, 우리는 시간이 매우 긴박한데 당신은 책을 보지 않고 나한테 관음보살을 공양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다? 나는 이 법을 당신에게 헛되게 말한 것이다. 이런 이치가 아닌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나는 이 법 중에 있지 않다.”라는 한마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그것이 어떤 잘 이해 못 할 것이 있는가? 나는 우주 밖에 있을 수 없는가? (열렬한 박수)

제자: 어느 날 새벽 3시가 좀 넘어서 제가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데 아주 먼 상공에서 저를 향해 오는 것이었습니다. 저와 몇십 미터 떨어졌는데 긴장하자 없어졌습니다.

사부: 이 우주를 다른 공간에서 보면, 모든 물체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존재 방식도 우리처럼 이렇지 않다. 그것의 시간장의 구성과 우리 이 공간의 시간도 절대로 같지 않다. 그러므로 당신이 이 공간의 일체 개념으로 해석해도 통하지 않는다. 당신이 이것을 본 것은 좋은 일이다.

제자: 어떤 수련생들은 스스로 혼자서 ­­­­전법륜­­­­ 2권을 복사하거나 인쇄해서 연공장에서 유포하고 있습니다.

사부: ­­­­제2권­­­­은 나중에 우리가 줄곧 출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제2권­­­­ 속에 불교에 대해 그것의 아픈 곳을 찔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되도록 그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아무튼, 다시 출판하지 않았다. 우리 자신들이 한 권을 얻어서 혼자만 보면 괜찮다. 당신이 몇 권을 인쇄하여 도처에 전하고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이러면 안 된다.

제자: 이전에 고쟁(古箏)을 연주할 때면 향을 피웠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사부: 그러면 하라. 이것은 수련이 아니다. 향을 피우고 그 고금(古琴)을 치는 것은 중국 고대에 이미 금기서화(琴棋書畵)와 같은 그런 아담한 흥취이다. 이것을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천천히 당신의 수련층차의 제고에 따라 당신은 일체 속인의 마음이 다 비교적 담담해지며 갈수록 담담해진다. 그러나 현재는 어떠한 일도 강요하지 말라.

제자: 어떤 사람은 토론을 적게 하고 법을 많이 배우는 것이 바로 ­­­­전법륜­­­­ 등을 연속적으로 낭독하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저는 이것을 단편적인 이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 사실 바로 법을 많이 읽고 많이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다가 힘들어지면 여러분들은 멈추고 조금 휴식하고 자신의 성과를 말하는, 이것은 괜찮은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법이 좋고 안 좋고를 담론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많은 시간을 당신 자신을 말하는데 낭비하지 말아야 하며 법을 많이 보아야 하고 책을 많이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사람은 마치 용기와 같아서 무엇을 담으면 바로 그것이다. 당신이 담아둔 법은 바로 법에 동화된 것이며, 당신이 흙을 담으면 바로 흙이다.

제자: 제5조 공법은 매우 긴 시간을 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데, 어떻게 시간을 파악합니까?

사부: 절대적인 제한은 없다. 자신의 능력에 근거하여 하는데 구체적인 제한은 없다. 이 5조 공법을 균형 있게 다하려면 시간은 좀 길어진다. 그러나 당신이 아직 이 점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도중에 좀 휴식하고 다시 이어서 해도 괜찮다. 그러나 당신 자신은 자신에 대해서 높게 요구해야 하며 되도록 견지해야 한다.

제자: 수련시간이 아주 긴박한데 어떻게 하면 연공과 법 공부 시간을 잘 안배할 수 있습니까?

사부: 어떠한 비례는 없다. 법 공부 시간이 매우 긴박하다는 것은, 나는 단지 당신들에게 정진하라는 것이다. 이후에 어떻게 될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나도 당신에게 말해 준 적이 없으니, 배우고 수련만 해라. 연공과 법 공부 시간의 비례는, 바로 당신이 법을 많이 배워야 하고 연공은 아침저녁으로 연마하면 된다. 그럼 어떤 사람들은 밤중에 일어나서 정공을 하는데 그것도 괜찮다.

제자: 집에서 연공하는 것과 단체 연공하는 효과는 같은 것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여전히 왕복 한 시간 반을 운전하여 매주 단체 연공에 참석할 필요가 있습니까?

사부: 집에서 연공하는 것과 밖에서 연공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집에서 연공하면, 당신의 연공을 촉진하는 외부요인이 없어 밖에서 연공할 때만 못하다.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들이 다 가부좌를 하고 있고 다리가 몹시 아픈데, 여러분들이 모두 다리를 내려놓지 않는 것을 보면 당신도 다리를 내려놓기가 좀 쑥스럽다. 그러면 당신으로 하여금 연공하는 시간을 연장하게 한다. 매 사람의 일거일동이 모두 다 대법 중의 제자와 같다. 우리 이 환경은 극히 진귀한 것으로서, 어떠한 인간 세상의 환경도 우리 여기처럼 이렇게 순정하지 못하다. 이것은 집에서는 얻을 수 없다. 어떤 때 집에서는 비교적 마음대로 하게 된다. 좀 많이 연마하거나 좀 적게 연마하거나, 정진하거나 정진하지 않거나, 조금은 마음대로 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정말로 자신의 수련을 잘 장악할 수 있다면 그것은 똑같다. 바로 당신에게 아직 속인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당신은 자신을 그렇게 잘 장악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여러분들에게 나와서 연공하라고 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늘 홍법, 홍법 하고 말하며, 더욱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려고 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 많은 사람의 연공 장면은 바로 가장 좋은 홍법이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것을 한번 지지해 주지 않는가? 그것을 한번 원용하지 않는가? 물론 집이 먼 사람들은 오기가 불편하면 당신은 집에서 연공하라. 장래에 사람이 많아지면 집 근처에서 연공장 하나를 꾸리면 더욱 편리하다.

모든 쪽지를 여러분에게 다 해답해 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대수인(大手印)을 치라고 한다. (박수) 이 열렬한 박수를 보면 나에게 수인을 쳐 달라는 생각이다. 그렇지요? 좋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세트의 대수인을 쳐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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