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보기 작게보기
 

강제로는 사람의 마음을 개변할 수 없다

 

수련자의 확고한 정념(正念)은 일체 사람의 인식을 초월하고 일체 사람의 마음을 초월한 것으로서, 이는 속인이 영원히 이해할 방법이 없으며 동시에 또한 속인에 의해 개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자(覺者)를 개변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악은 나쁜 사람이 수중에 장악한 권력을 이용해 근 2년 간 일을 저질러 왔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비열한 행위를 죄다 사용했고, 고금중외(古今中外)의 일체 가장 악독한 방식을 취하여 대법(大法)과 수련자를 박해했다. 그 목적은 강제적인 수단으로 대법(大法) 수련자의 마음을 개변시켜 수련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있었다. 이것은 헛된 짓이다. 역사적으로 올바른 믿음을 박해한 일체는 지금까지 성공해 본 적이 없다. 이 일체는 단지 사악의 표현을 이용하여 대법(大法)을 확고하게 하고 수련자의 근본 집착을 제거해 버리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으로써 수련자로 하여금 속인과 업력의 속박에서 해탈하게 하는 것이다. 도태되는 사람은 모두 진수(眞修)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악은 이용당하는 이 기간에 비록 일시적으로 행패를 부릴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치욕 속에서 끝장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기필코 정법(正法) 과정 중에서 도태될 생명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게 사악은, 도구로 삼은 나쁜 사람을 이용하여, 각종 형구(刑具)와 방식을 취해 대법(大法) 수련자에게 혹독한 구타와 학대를 가해 왔다. 많은 사람이 맞아 죽고 맞아서 불구가 되었으며 정신병원으로 압송됐지만 그 무엇도 진정한 수련자의 확고한 정념(正念)을 개변시키지 못했다. 가짜 경문을 만들어 내고, 수련생들이 잠을 자지 못하게 하며, 죄를 뒤집어 씌워 모함하고,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등 깡패적인 수단의 협박·기만·강압 하에서 일부 수련생들이 정신이 똑똑하지 않을 때 핍박에 의해 그 무슨 이른바 ‘연공을 하지 않는다’거나 혹은 ‘회개서’와 같은 것들을 썼다. 이는 모두 수련생 내심의 진실한 표현이 아니며 진심으로 원한 것이 아니었다. 비록 그들이 집착이 있고 일시적으로 사악이 틈을 타게 하여 한 수련자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지만, 한 수련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전면적으로 보아야 한다. 나는 이 일체를 승인하지 않는다. 그들이 명백해졌을 때 즉시 새롭게 한 대법(大法) 수련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것이며, 동시에 강압적인 박해 중에서 수련생의 정신을 흐리멍덩하게 했을 때 한 말과 써놓은 일체를 폐지함을 성명하면서 확고하게 수련할 것이다. 전국 각지 수련생들의 성명이 매일 대량으로 나타나므로 강제적인 것과 기만을 통해 대법제자의 정념(正念)을 개변시키려는 최후의 희망은 철저히 파멸되었다. 사악은 이미 더는 대법제자가 수련을 통한 법에 대한 진정한 인식과 착실한 수련 중에서 本體(번티)가 승화된 후 불성(佛性)에 의해 체현되어 나온 확고한 마음을 개변시킬 어떠한 방법도 없다. 이런 상황 하에서 사악의 표현은 이미 완전히 악독한 나쁜 사람이 수중에 장악한 권력을 이용하여 가장 비열한 수단으로 개인적인 분노를 발산하는 것으로 변했다.

지금 정법(正法) 중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사악은 대법제자의 개변할 수 없는 견정한 신념을 보았으며 이에 미친 듯이 완전히 이지(理智)를 상실하였다. 대법제자는 비록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속인의 권력을 중히 여기지 않지만, 사악이 중국에서 결과 여하를 돌보지 않고 이처럼 박해하는 것은, 집권사당과 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완전한 불신임과 정부에 대한 불복종을 초래할 것이며 유언비어를 날조하는 선전도구가 더는 인심을 미혹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악이 대법(大法)을 박해하는 동시에 또한 운동 중에서 그 당의 오늘날 우두머리를 이용해 자신이 당 내에서 그 당과 그 정권을 훼멸시키도록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는 조종당하는 자와 세인들이 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개인적인 분노로 초래한 그 결과 역시 벗어나지 못하는 필연으로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박해 중에서 세인들은 사악한 것이 한 일체를 더욱 똑똑히 보아낼 것이며 대법제자는 더욱 이지적이고 더욱 청성(淸醒)할 것이며 확고함과 수련의 성숙 중에서 위대한 원만으로 나아갈 것이다.

李 洪 志
2001년 3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