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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공능(功能)인가?

 

공능(功能)은 신통(神通)이라고도 하는데 현대인은 초능력(超能力)이라고 부른다. 공능이란 사실 생명의 본능이다. 층차가 높을수록 본능은 더욱 충분히 발휘해 낼 수 있으며, 반대로 층차가 낮을수록 본능을 발휘하기 어렵거나 혹은 충분히 발휘하기 어렵다. 근본적인 원인은 우주의 최고층에서 우주의 최저층에 이르기까지, 더 아래로 내려갈수록 생명과 그것이 존재하는 경지에 포함된 일체 물질의 비중이 더욱 크고, 입자 과립이 더욱 크며, 생명의 중력 부하도 더욱 크기 때문이다. 더 아래로 내려갈수록 생명의 본능(공능)이 물질 자체에 의해 억제됨이 더욱 많고 더욱 무거우며 더욱 작용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곧 층차가 낮을수록 능력이 더욱 작아지는 원인을 조성한다. 인류공간에 이르면, 생명의 일체 본능은 이미 모두 덮어 감추어져 본능(공능)은 작용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으려면 완전히 물질로 구성된 육체노동으로써만 비로소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인류는 물질에 의해 완전히 매몰되었기 때문에 우주의 진상도 볼 수 없다. 그래서 인류의 공간은 미혹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수련인에 대하여 말한다면 수련한 층차가 높을수록 능력이 더욱 크다. 이는 우주의 층차를 더욱 많이 돌파할수록 생명이 물질에 대한 중력 부하가 더욱 작고 더욱 가벼우며 본능(공능)이 더욱 강하고, 풀려나오는 능력이 더욱 많고 더욱 전면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설법 중에 말한 적이 있다. 대법(大法) 수련에서 공능이 가장 전면적으로 나오는 것은, 대법제자는 더욱 높은 층차까지 수련할 수 있기 때문이며, 돌파한 층차가 높을수록 물질로부터 풀려나오는 것이 많아져 본능(공능)을 충분히 체현해 낼 수 있다. 대법제자는 정법(正法) 중에서 이미 충분히 공능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예컨대 정법 중에서 정념(正念)이 아주 순수할 때면 공능의 운용(運用)이 아주 전면적이다. 또한 많은 제자들은 모두 정념(正念) 중에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으며, 거의 무엇을 쓰려고 하면 무엇이 있다. 예컨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사악한 나쁜 사람을 그 자리에 고정시키려 한다면, 다만 한 마디 “꼼짝 마(定).”하고 말하거나, “거기서 움직이지 마.”라고 하거나, 한 무리 나쁜 사람들을 가리키기만 하면 틀림없이 움직이지 못한다. 나중에 “풀려라.”라고 생각하기만 하면 곧 해제된다. 사실 인성이 없는 그러한 사악한 무리들, 예컨대 사람을 때려죽이고 여성 대법제자를 강간하는 짐승보다 못한 나쁜 인간 혹은 그러한 우두머리의 사악한 무리들을 의념(意念)으로 지휘할 수 있다. ―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면 사악한 나쁜 사람은 곧 무엇을 할 것이다.

층차는 心性(씬씽)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 다시 말해 공능을 사용할 때 정념(正念)이 강해야 한다. 마음속에 사악에 대한 두려움이 있거나, 공능을 운용할 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을지 없을지 의심하는 등 불량한 심리는 모두 공능의 효과에 영향을 주거나 혹은 교란할 수 있다.

원만(圓滿)은 대법제자의 수련 결속이며, 정법(正法)은 대법제자의 사명이다. 원만이란 대법제자를 두고 말한다면 단지 회귀(回歸)하는 시간의 문제지만, 정법은 미래에 남겨주는 것이다. 부동한 층차의 중생이 보게 될 우주의 미래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가상이다. 현재 인류의 매 하루는 모두 대법(大法)의 요구에 의해 배치된 것으로, 인간 세상에서 대법제자의 표현은 바로 역사에 남겨주는 것이다. 미래의 부동(不同)한 역사시기의 우주 중에서 만일 대법(大法)을 파괴하는 일이 나타나거나 생명이 부동하게 표현될 때, 대법(大法)이 어떻게 정법(正法)하며, 어떻게 일체를 원용불파(圓容不破)하게 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대법제자가 하고 있는 일체는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며, 지금의 삼계(三界) 내의 일체 역시 모두 대법(大法)을 위해 존재한다. 대법(大法)이 마난(魔難) 중에서 일체를 원만하게 했을 때, 대법(大法)을 박해한 사악은 모두 결속 짓게 될 것이다.

李 洪 志
2001년 6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