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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캐나다법회 설법

 

李洪志
2005년 5월 22일 토론토에서

 

(열렬한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수) (뭇 제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99년 7.20 이전에 우리 토론토의 법회를 바로 여기에서 열었다는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열렬한 박수) 당시 사악한 중공의 탄압박해가 시작되려고 할 때 나는 여러분에게 한마디 말을 했었다. 하나가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만 가지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다(一個不動能制萬動)! 라고. (열렬한 박수) 물론 어떤 수련생들은 이해할 수 있었고, 어떤 사람은 곧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아무것도 실행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사부님 웃음) (뭇 사람 웃음) 움직이지 않는 것이란, 바로 견정(堅定)한 정념과 바른 신념(正信)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지,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는 책임과 마난(魔難) 중에서 자신을 제고하는 수련의 길을 모두 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찌 될 말인가? 어떻게 하든지를 막론하고, 수련이기 때문에 매 개인은 모두 같지 않은 인식을 하고 있으며 또 속인 중에서 같지 않은 정도의 집착을 가지고 대법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도 있다. 수련과정 중에 많은 사람 마음 역시 제거하기가 몹시 어려우며, 이 때문에 법에 대한 이해 상에서, 인식 상에서 같지 않음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한 차례 마난 중에서 또한 대법에 대한 수련생들의 같지 않은 인식이며, 집착심의 다소(多少)를 충분히 표현해내었는데, 박해 중에서 각양각색의 표현 상태를 여러분 역시 모두 보게 되었다. 이 한 차례 박해는 우리에게 강제로 강요된 것이며, 이는 승인할 수 없다. 그러나 박해 중에서 역시 수련 중의 부족(不足)을 확실히 보게 되었고, 대법제자의 대단한 일면 역시 보게 되었다. 사부를 따라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으며 박해 중으로부터 걸어올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대단한 것이다! (열렬한 박수)

나는 이전에 대법제자의 수련에 만약 이번의 박해가 없었더라면 대법제자의 수련에는 다른 일종의 방식이 출현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이미 지난 일이며, 다시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 무슨 큰 의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록 이러하더라도 이러한 상태 속에서 진정한 대법제자들이 법에서 자신을 견정(堅定)히 할 수 있고 자신을 제고할 수 있으며 박해를 반대하는 중에서 중생을 구도할 수 있으며,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것이다. 여러분은 이 한 차례 박해가 얼마나 사악하고 얼마나 엄혹하며 얼마나 비열한가를 보았다. 그것은 역사상 신불(神佛)제자에 대한 종전의 박해와는 같지 않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역사상 어떠한 박해든 모두 공개적이었지만, 오늘날 중공사당은 이미 인민을 박해한 역사상 각종 사악한 경험과 깡패 수단을 구비하였기 때문에 이 한 차례의 박해, 사악한 탄압의 수많은 수단은 모두 암암리에, 은밀한 상태 하에서 진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인(世人)들로 하여금 이 일을 알게 하고, 사회의 경악을 불러일으키며, 이 한 차례 박해에 대한 세인들의 분개(憤慨)를 불러일으키거나 혹은 대법제자에 대한 성원을 일으키는 것은, 마치 모두 하기가 몹시 어려운 것 같은데, 사악이 진상(眞相)을 덮어 감추고 있으며, 게다가 박해 수단이 아주 사악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모두 이제껏 없었던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공사당(中共邪黨)이 백 년 넘게 이미 경험하며 구비해온 가장 사악한 것으로서, 그것들은 그것들의 박해 죄행(罪行)을 극히 은밀하게 덮어 감추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해진 이 한 차례 마난(魔難)은 역사상 있어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박해가 시작될 때 그것들이 채용한 방식은 공개적이었으며,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사악한 기세로 대법제자들을 압도하려고 망상하였다. 사악한 세력, 썩은 귀신, 악당(惡黨)은 해내지 못했다. 나중에 그것들은 시간이 길어지면 곧 국제사회의 중시와 중국 민중들의 반감을 일으켜 사회상의 광대한 민중들이 곧 대법제자를 성원하려 하고 곧 반(反) 박해를 성원하고자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그것들은 곧 이 한 차례 박해를 점차 비공개적인 박해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한편으로는 표면상으로 보기에 중공사당이 또 승리한 것 같고, 다른 한편으로는 또 사람들에게 일종의 표면적인 평온함을 주고 태평한 양상을 꾸미면서, 암암리에는 오히려 여전히 음험하고 악독하게 대법제자를 박해하였다. 심지어 후기에 와서는 중공 일언당(一言堂)의 라디오방송, TV, 신문마저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탄압박해의 수단은 오히려 느슨한 적이 없었다. 이는 역사상 이제껏 있어본 적이 없었던 민중에 대한 깡패정부의 박해수단이었다. 여러분 보다시피, 전 세계 각 나라의 주류 매체들은 이러한 정황 하에서 대다수가 대법제자들이 박해받고 있는 정황을 모두 보도하지 않았으며, 죄악 속에서 침묵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바로 중국이 현재 전 세계의 경제시장으로 되어 많은 나라가 모두 이 투자환경을 탐내고 있다. 결코, 중공에게 그 무슨 대단한 자원이 있다거나 혹은 중공이 좋게 변하여 중국의 환경을 바꾸었다거나 혹은 중공사당에게 무슨 좋은 수단이 있어서 전 세계의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매우 간단하다. 왜냐하면, 바로 중국인들이 중공에 의해 가난해지자 가난이 두려워져서 돈을 많이 모으려고 하기 때문이며, 게다가 중국인들이 근면한 까닭에 일을 비교적 오래 하고 안정적이다. 바로 이 한 점이 투자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세계상의 많은 민족의 사람들은 그가 일단 돈을 좀 벌기만 하면 그는 곧 그만두며 돈을 다 쓴 후에야 다시 직장을 찾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공에 의해 가난해지자 가난이 두려워서 돈을 많이 모으려는 중국인들의 이러한 특징, 오로지 돈만 모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을 하던 시종일관 모두 해나가려고 하는 바로 이 한 점이 안정된 노동력이 필요한, 특히 안정적인 기술 인력을 필요로 하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중공사당 역시 중국인들의 이 심리를 거머쥐고 또 중국인들을 이용하고 있으며, 뿐만 아니라 투자자들의 자금, 대량의 재력·물력·인력을 이용하여 인민을 탄압하고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였다. 이로 인해 전 세계 많은 나라는 경제적인 이익을 위하여 이 한 차례 박해에 대하여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박해 중에서 우리도 보았다시피 인류사회가 선양(宣揚)하는 어떤 것도 모두 믿을 만하지 못하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인권(人權)을 말하고 있고, 국가들은 신앙의 자유를 치켜세우고 있으며, 심지어 전 세계 사람들은 마치 모두 이런 것들을 인류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조건과 사람의 가장 중요한 권리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공이 극히 사악하고 극히 엄중하게 중국인과 인권 및 신앙의 자유를 짓밟고 박해하고 있을 때, 전 세계의 수많은 정부와 매체는 오히려 잠잠할 뿐 소리를 내지 않았다. 다시 말해서 이익 앞에서는 무슨 신앙의 자유며, 인권은 모두 한 푼의 가치도 없게 변했다. 무슨 인간의 양심이라는 것도, 우리는 이 시기 인간의 이른바 양심 역시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단지 일부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얻은 이익을 수호하기 위하여 선양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법(大法), 이는 당신들이 수련 중에서 인식해낸 우주의 진정한 진리이며, 영원히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어떠한 정황 하에서든지, 어떠한 환경 하에서도 모두 수호해야 할 바른 이치이며, 어떠한 환경 하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따라야 하는 것이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오로지 수련자들이 정념만 충족하면 모두 그 속에서 제고를 얻을 수 있으며, 계시(啓示)와 도움을 얻을 수 있고, 이로부터 정념을 강화시켜 어떠한 속인의 수단과 사악의 유혹에도 교란 받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주의 법칙이자 신(神)에 대한 사람의 바른 믿음(正信)이며, 이것이 바로 수련인이 승화하는 중에 진리가 표현되어 나오는 것이며, 속인이 허풍 치는 이른바 속인의 이익을 수호하는 어떠한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다시 말해서 이 일체는 모두 속인을 초월한 것이다. 그러므로 대법제자들은 이번 박해 중에서 비로소 걸어 나올 수 있었다.

사실 전 세계의 많은 정부와 거의 모든 대형 매체가 태도를 밝히지 않은 데에는 이 두 가지 원인 외에도 또 하나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있다. 바로 구(舊) 우주 중의 구세력의 요소가 전 세계에서 법을 얻지 못한 기타 사람들을 격리시켜 그들로 하여금 이 일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것인데, 목적은 이런 부분적인 지역에서 대법제자들로 하여금 ‘고험(考驗)’ 받게 하자는 데 있다. 세인들이 참여한다면 대법제자에 대한 ‘고험’은 곧 그토록 사악한 정도에 도달하지 못하며, 그것들이 대법제자에 대하여 배치한 이 엄혹한 이른바 마난 중에서 그들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보려는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그것들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다.

어떻든지 간에 이 한 차례 박해 중에서, 나와 대법제자들은 이 한 차례 박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였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한 차례 박해를 전반적으로 부정하는 중에서, 사부인 나의 요구에 따라 당신들 특유한 수련인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대법제자로 말할 때 자신의 책임 중에서 이 일체를 잘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정진(精進)이다. 이전에 나는 여러분과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말하기를, 수련이란 과거의 어떤 수련인에게도 모두 마찬가지로 하나의 몹시 어려운 수련상태가 있는데, 바로 간고하고 장기적인 고험이다. 더욱이 속인 현실의 이익 중에서 수련하는 이것은 사실 너무나도 어렵다. 여러 면의 이익이 모두 수련인을 유혹하고 있어 조금만 주의하지 않으면 당신의 사상, 당신의 인식, 심지어 사람 마음까지도 모두 물결 따라 표류하는 사람으로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종류의 수련방식은 매우 어렵다. 어려우므로 오늘날 대법제자로 말하면, 또 다른 한 방면으로부터 그가 높이 수련할 수 있음을 체현해내었다. 환경이 어렵지 않으면 수련자의 사람 표면, 이 사람의 생명주체에 대한 직접적인 고험에는 곧 그토록 첨예함이 없게 된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종교이든, 과거 역사상의 각종 수련방식이든, 그것들은 모두 사람의 가장 표면·진정한 이 사람을 겨냥하여 수련 중에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사람의 主元神(주왠선)이 수련 성취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 다수는 장기적인 입정(入定) 중에서 수련하였다. 정(定) 중에서 연화되어 나온 집착심을 제거할 때 표현되는 각종 상태는 오직 수련인의 副元神(푸왠선)에 대해서만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나 속인 사회 중에서 대법제자들의 이러한 수련형식은 수련자들로 하여금 제거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는 속인의 각종 집착심, 사람의 이익에 대한 표면적인 각종 유혹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되게 하였다. 이리하여 수련인의 표면수련에 대한 중시(重視)를 촉성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또한 표면적인 사람 일면의 개변이 관건 적이었는데, 즉 수련 중의 가장 어려운 중점(重點)이 되도록 하였다. 게다가 선결 조건은 구도와 제고의 목표가 바로 사람의 주체(主體)라는데 있다. 이렇게 되어 사람의 진정한 수련이 또한 제1위가 되었으며, 수련의 방식 또한 사람의 표면에 대한 직접적인 고험을 구성하였다. 그러나 副元神(푸왠선)과 전반 인체의 기타 생명체에 대한 고험은 그처럼 직접적인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미혹을 타파한 같지 않은 상태 하에 있으나, 이 사람은 오히려 직접적인 현실이익의 고험 중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의 수련특징이다. 무엇 때문에 나는 줄곧 “사람이 정말로 신(神)으로 수련 성취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했는가. 바로 “형식상 정말로 사람이 수련하고 있다”라는 뜻인데, 왜냐하면 인체(人體)가 수련 중의 주체(主體)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 한 부의 대법이 전해진 초기에 수많은 신(神), 그들도 모두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당신은 사람을 너무나 중시한다고 말했다. 말인 즉, 당신이 우리를 중시하지 않고 사람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과거에 누가 사람을 인정했는가? 사람은 그토록 집착하고, 행위는 그토록 저열(低劣)하며, 이성이 똑똑하지 못한데, 당신은 왜 사람을 제도하고자 하는가? 물론 수많은 원인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데, 이전에 내가 당신들에게 설법할 때 이미 언급한 적이 있다. 저층의 신(神)은 인류 표면의 진실한 정황을 모르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이처럼 기나긴 세월 중에서 겪은 바가 너무나 많으며, 사람의 표면은 윤회전생 중에서 또 그토록 많고 그토록 많은 것들을 견뎌왔다. 정법은 중생을 구도하고 있는데, 이러한 생명을 제도하지 않을 수 있는가? 대법이 우주 중에서 정법 하는 것은 과거의 그런 일종(一種)의 수련이 오직 어떤 일종(一種) 혹은 일정한 범위의 생명에 대해서만 책임지는 이런 일종의 표현이 아니다. 정법은 신(神)이 만든 사람 주체상의 모든 생명의 존재방식을 포함하여 구도할 수 있는 모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토록 긴 세월의 고난을 지나왔는데, 구도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삼계의 주체는 사람이 아닌가? 삼계 내의 중생을 모두 구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종류의 수련 방식과 사람이 역사의 이처럼 긴긴 세월 중에서 다져놓은 그 기초, 감당한 그런 고난들은, 사람으로 하여금 예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위덕(威德)을 구비하도록 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명 역시 가장 대단한 것으로, 우선으로 구도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사람 이곳을 정법의 기점으로 삼는다면, 우선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 이 부분의 생명을 해탈시키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또 이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역사상에서 곧 오늘의 이 일체를 보았고, 삼계 형성의 초기에 곧 사람의 가장 표면적인 사람의 형체에서 시작하여 계속하여 장래 정법시기에 필요한 생명과 조건을 배치하였으며, 동시에 이러한 생명으로 하여금 긴긴 세월을 걷는 중에서 거대한 위덕을 구비하도록 하였다. 다시 말해서, 사람의 표면 역시 간단하고도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 저능한 행위와 저능한 지혜는 사람의 경지와 삼계의 환경에 사람을 만들 때의 표준이 더해져서 제한된 것이다. 단지 현상으로부터는 투철하게 보아내지 못할 뿐이다. 왜냐하면, 층차가 높은 요소일수록 인체 표면상에서 발견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더욱 발견하기 어려움으로써 사람의 진실한 정황을 같지 않은 층차의 생명에 대해 말한다면, 이 진상은 줄곧 은폐된 것이다. 모든 일체의 신이 삼계와 우주의 관계에 대하여 모두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은 역사상 인류사회에 남겨진 허다한 문화와 예언에 대해 알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일은 심지어 삼계에 근접한 신조차 모르고 있다. 이것은 매우 기괴한 현상이 아닌가? 무엇 때문인가? 그들은 왜 모르고 있는가? 인류 역시 역사의 일부 철리(哲理) 중에서 일부 바른 이치를 인식할 수 있으며 특히 인류 역사상 남겨진 매우 정확한 그러한 예언들을 그 신들이 어떻게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인류 사회와 삼계 중에는 아주 많은 미혹이 있으며, 많은 미혹은 신이 모르는 것이다. 또한, 인류의 시간과 허다하고 허다한 신의 시간은 무척 크고 무척 많은 차이가 있다. 사람을 하나의 입자라고 말할 때, 그럼 사람을 초월하는 더욱 큰 입자의 신을 체적으로 비유한다면 그는 인류사회의 긴 역사를 관찰할 수 있고 알고 요해(了解)할 수 있으나, 역시 아주 제한적이다. 만약 이 체적이 인류의 이 입자보다 작거나 혹은 분자 입자보다 작은 신이라면, 그의 시간은 곧 아주 빠르다. 그래서 허다한 생명, 그는 삼계의 근본 역사와 삼계가 존재하는 목적, 생명이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아예 모른다. 신은 진정으로 사망할 수 없지만, 그 역시 그의 그 경지 속에서 재생(再生)될 수 있다. ‘재생(再生)’이라고 하는 이 단어로 형용하자. 그 역시 우주 중의 과거에 존재했던 성주괴멸(成住壞滅)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치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어서 새로 환생하는 것과 같다. 우주를 만들 때의 법리 중에, 한 바퀴 돌고 다시 시작한다(周而復始)는 원칙을 정하였기 때문에 신의 경지 중에도 이 상태가 있다. 다만, 신은 그의 그 시간에서 지극히 길게 나타날 뿐이다. 아울러 신의 재생 과정은 그 자신도 다 아는바, 사람과는 같지 않은데, 재생(再生)이다. 죽는 것을 말하자면 아주 두려운 것으로, 내생이 있는지 없는지, 이는 모두 미혹 속에 있는 것이며,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한다. 그러나 신의 상태 하에서 신은 알고 있다. 다만, 재생 중에 이전의 기억을 씻어버릴 따름이며, 재생할 때 이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게 하는, 단지 이러한 일종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이 일체는 그들로 말한다면 멀고도 멀어 마치 생명의 종결이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재생 과정 중에서 이전의 일을 그는 모두 모른다. 긴긴 세월 속에서 우주의 모든 신이 삼계 내의 역사를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정법을 포함하여, 또 모든 신이 다 어찌 된 일인지 아는 것이 아니며, 심지어 모두 정법의 매 일보를 다 이해하고 모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각계 중생 역시 단지 정법이 그의 눈앞에 곧 다가올 때라야만 그는 비로소 볼 수 있고, 정법이 다가오지 않았을 때는 그도 볼 수 없다. 그 때문에 우주의 중생들로 하여금 이번 정법 중에서 부동한 표현이 있게 하였다. 바른(正) 인식, 반면(反)적인 인식, 소극적인 인식 바로 이러한 일종 상태이다. 우리는 오늘날 인류사회의 사람들이 표현해낸 모든 상태를 보았는데,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는데, 상계(上界)의 정황과 대체로 비슷하다.

99년 7·20이전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중에서 각계 중생과 뭇 신들은 모두 어떠한 상태였는가? 그들은 모두 “아이고, 대법은 정말로 좋구나. 이렇게 좋은 법을 사람들에게 전하다니 너무나 애석하구나. 게다가 사람들이 가장 좋지 않은 시기에 전하다니.”라고 말했다. 그럼 또 일부는 이러한 시기에 전해져야만 비로소 대법이 더욱 대단함을 체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럼 또 일부 생명은 리훙쯔(李洪志)는 자비하니 일체 좋지 못한 것들을 모두 그에게 밀어주어 그로 하여금 죄업을 없애버리게 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 기회를 빌려 나쁜 짓을 한 것이다. 그러나 눌려 내려온 죄업은 하늘과 같이 컸고, 많은 신은 이런 정황을 보고 모두 ‘이런 정황 하에서 그가 여전히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였다. 모두 다른 생각과 인식을 품고 있었지만, 그 당시 총체적으로 말하면 정면 작용을 일으킨 이가 여전히 주도(主導)적이었다. 그러나 99년 7.20 박해가 시작되자, 그들의 생각은 또 변하였고, 많고 많은 각계 생명은 모두 소극적으로 관망하는 태도를 품고 썩은 귀신들이 악을 행하고 박해하는 것을 보고도 상관하지 않았는데, 마치 당신이 되는지 안 되는지 보겠다는 것 같았다. 당신이 만약 된다면, 와 정말 대단하다, 나도 당신에게 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구세력(舊勢力)·구(舊) 생명에게 건드려진 후 조성된 저애력과 세간에 충만 된 사악한 기세를 보고 중생들은 각자 사념(私念)을 품었다. 다수는 아마 이 일은 성공하기가 몹시 어려울 것이라고 여겼으며, 만약 안 된다면 그럼 나도 연루될 수 있다고 여겨, 이 때문에 태도를 표시하지 않았다. 각계 중생은 거의 모두 이런 상태였다. 우주의 법은 바로 각계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에 대해 요구가 너무 높아선 안 된다. 모두 그렇게 바르다면 우주도 정법할 필요가 없다. 바로 이렇고, 안 되기 때문에 비로소 이런 상태가 나타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이번 정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신(神)의 표현이었다.

물론, 전반 정법의 형세가 끊임없이 앞을 향해 추진됨에 따라, 세상과 전반 삼계 내의 형세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여러분이 본 오늘날 세인의 그 표현은 천상(天上)과 아주 비슷하다. 다른 한 방면에서 말한다면, 만약 아주 많은 세인의 생명이 천체에 대응되고 그의 내원(來源)이 있다면 그럼 여러분 한번 생각해보라. 그것은 이 시각 상계(上界)의 상태와 직접 연결된 것이 아니겠는가? 물론 사람 표면은 똑똑하지 못하다. 현재 많은 사람이 지금 모두 나서려고 한다. 왜냐하면, 수많은 각계 중생, 각계의 왕이 모두 대법(大法) 정법(正法)이 반드시 성사되는, 막을 수 없는 추세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을 다투어 태도를 표시하고 앞을 다투어 어느 정도 표현하고자 한다. 구(舊) 우주 최후의 요소는 일찍이 이 일보를 보았다. 우주 중에는 허다한 더욱 높은 최후의 생명이 아직도 있으며, 비록 구세력의 요소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지만, 그것 역시 구(舊) 생명이며, 그것도 그것이 변이된 후의 관념을 품고 있다. 대법제자들에 대하여 그것은 과거 우주의 선천적인 부족함과 변이된 특성을 안고 그 일체를 수호하고 있다. 대법제자에 대하여 그것들은 이런 박해가 그들을 수련시킬 수 있다고 여겼으며, 그것들의 관념은 저애 작용을 일으켰다. 또한, 그것들은 표면 세간과 각계의 간격을 조성하였으며, 또 세인들의 법에 대한 인식을 방해하였다. 그것들은 이런 상태에서 걸어나가야만 비로소 되며, 하계(下界)의 중생과 세인들은 이런 정황에서 태도 표시를 해야만 비로소 남겨질 수 있다고 여겼다. 이런 상태에서의 선택은 이 생명이 대단함을 표현해낸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정법의 상태가 이를 필요로 하는지 않는지를 인식하지 못했고, 가장 관건적인 것은 미래의 우주가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정법 중에서는 또 이런 부면(負) 적이고 반대(反)의 요소를 승인하지 않는다. 게다가 이 시기에 한 생명의 정법에 대한 태도야말로 비로소 지극히 관건 적이며, 중요한 것으로, 그중에는 이른바 정법을 좌우지 한다는 최후 최고의 이런 생명을 포함한다.

정법(正法), 이는 일체 생명의 장래에 관계되며 단지 대법제자, 세인 혹은 각계 중생만 겨냥한 것이 아니다. 정법의 홍대(洪大)함에서 누가 제외될 수 있겠는가? 동시에 정법에 대한 태도, 그것이 가장 중요하므로 누구도 중생이 무지한 정황 하에서 정법 자체(本身)와 대법에 대하여 죄를 범하도록 봉폐시킬 권리가 없다. 애초부터 구세력, 이런 요소의 교란은 나타나지 말았어야 했다. 어떠한 요소의 교란도 없이, 중생들이 완전히 통제당하지 않은 상태 하에서 이 일을 보고 이 일에 대해 태도를 표시하는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진실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배치는 그것들이 누구를 좋은 생명으로 배치하고 싶으면 그를 좋게 배치하고, 그것들이 누구를 나쁜 일을 하도록 배치하고 싶으면 그에게 나쁜 일을 하도록 배치하도록 표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중생 자신의 진실한 표현이란 말인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정황에서 볼 때 우주 중 최후의 구(舊) 요소는 여전히 미래에 필요로 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을 교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본 세간 생명의 표현은, 비록 구세력의 좌우 하에 있지만, 각계 중생, 뭇 신도 모두 점차 대법을 인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런 인정은 또 진정으로 대법과 정법, 대법제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접수가 아니라 정법의 성공이 온 천체(天體)를 홍관(洪灌)시킨 기세가 그로 하여금 어찌할 도리가 없게 한 것이다. 물론 또 상당히 많은 일부분은 정말로 명백해졌는데 그것은 그들이 이런 정법의 추세와 미래의 일체가 반드시 이루어짐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일체를 세간 사람들은 물론 똑똑히 알지 못한다. 그들은 단지 중공 깡패 정권의 박해에도 놀라 쓰러지지 않는 것만 보았을 뿐이며, 일종 사람의 인식을 표현하였는데, 바로 “와! 法輪功(파룬궁)은 대단하다. 파룬궁은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렇게 사악한 중공사당에 탄압당하고도 없어지지 않았으며, 반대로 갈수록 흥성해지는구나. 그러나 중공은 도리어 法輪功(파룬궁)을 박해하는 중에 자신을 무너뜨렸으니 역시 法輪功(파룬궁)은 대단하다!”라고 한다. 그리고 대법제자가 표현해낸 정념의 자질은, 중국인을 놓고 말할 때, 마치 중화민족의 도덕이 되돌아 승화하는 일종 희망을 보게 한 것과 같았다. 탐관오리, 사회 범죄는 중공 통치 하의 사회에서 이미 걷잡을 수 없이 난잡해졌다. 거기에 또 정법 초기 중국인으로 하여금 법을 인식하고 법을 얻게 하려고 그 당시 중국인의 사상을 열어놓아, 중국인들로 하여금 아주 총명하게 변하도록 했었다. 그러나 이 총명은 이 한 차례 박해 속에서 그가 법을 인식하는 데 사용할 수 없었고, 오히려 범죄에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이 몇 해 동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중에, 眞(쩐)·善(싼)·忍(런)을 타격하고 사악한 것을 선양하며, 중생의 범죄방식도 지극히 음험하고 복잡하게 변하도록 하였다. 중국의 현실 정황을 겨냥하여, 중공 깡패 집단은 어떠한 방법도 아예 없다. 그것들 자신이 만들어낸 죄악, 사회의 복잡함을 마주하고 그것들은 전혀 돌이킬 힘이 없다. 

내가 조금 전에 말한 이 말들은 바로 내가 오늘 또 이곳에 앉아 여러분에게 설법하기 때문이다. (열렬한 박수) 시간은 이미 5~6년이 지나갔고, 내가 오늘 이곳에서 설법하니, 아마 여러분의 심정 역시 같지 않을 것이다. 그 당시에 이곳에 앉아서 법을 들었던 수련생들은 아마도 느낌이 더욱 다를 것이다. 우리는 이 사악하고 잔혹한 박해 속에서 대체로 걸어 나왔다. 왜냐하면, 정법 중에서 사악한 중공사당의 요소는 대량으로 급속하게 쾌속으로 소훼(銷毁)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바로 사(邪)이고, 바로 악(惡)이며, 바로 나쁜 것(壞)이다. 그것이 존재하기만 하면, 그것은 여전히 나쁜 일을 한다. 이 때문에 중국 그곳에서 중공사당의 사악한 요소는 비록 민중과 세간의 수많은 세인에 대한 억제가 비록 모두 제거되고 있고 완화되고 있으며, 감소하여 큰 작용을 일으키지는 못하지만, 그러나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것을 철저하게 모두 깨끗이 제거해야만 이 한차례 박해도 결속된다. 중공사당, 이런 사악한 요소는 반드시 신(神)에 의해 정법 중에 청리(淸理)되어 버릴 것이다! (열렬한 박수)

중공사당 역시 자신이 곧 무너지게 될 것임을 보았고 또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보았다. 많은 사람은 모두 퇴로를 남기고 있으며, 많은 사람은 모두 이 한 차례 박해에서 자신이 저지른 죄행을 덮어 감추고 있다. 물론 더욱 많은 사람은 그 사악한 중공사당 조직을 탈퇴하려고 한다. 이 일체는 사악한 당(邪黨) 그 사당(死黨)으로 하여금 절망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였다. 특히 이 탈당은, 그것들이 놀라 살이 떨리게 하였다. 대세는 이미 지나갔고, 그것들은 이 일체가 안 됨을 이미 보았다. 속인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중국 사회와 민족이 어떻게 될까 걱정하든지 막론하고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다. 자고이래로 신(神)은 모두 인류의 어떠한 한 민족, 어떠한 한 사람에 대한 통제를 느슨히 한 적이 없다. 신이 이 사회를 혼란하도록 하면 이 사회는 혼란해지고, 신이 사람에게 미치라고 하면 미쳐야 하며, 신이 어느 사회를 안정되게 하면 이 사회는 안정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의 커다란 중공사당 진영(陣營)도, 그것으로 하여금 해체되라고 하면 며칠 만에 모두 해체된다. (박수) 신이 필요로 하는가, 필요로 하지 않는가에 달렸는데 바로 이렇지 않은가?

인류사회 이 일체는 모두 정법을 위하여 창립된 것이고 오늘날 모든 일체 역시 모두 나의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 당신들은 기억하라, 당신들이야말로 오늘날 인류사회의 풍류 인물들이고, 당신들이야말로 중생들이 가장 주목하는 생명이며, 당신들은 또 인간세상의 매 한 사람 미래의 생명을 결정하고 있다! (박수) 때문에 중생을 구도하며 당신들 자신을 잘 수련하는 이 일은 여러분으로 말한다면, 대법제자로 말한다면, 지극히 중요한 것이다. 단지 당신 자신, 이 생명의 원만뿐만 아니라 또한 중생을 위한 것이며, 당신들에 대한 보다 많은 생명의 기대를 위한 것이다! 나는 이만큼 말하겠다. (장시간 열렬한 박수)

현재는 바로 여러분이 지금 하는 일 때문에 나는 기타 내용을 너무 많이 말하여 당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것을 희석시킬 수 없다. 지금 하는 일이 아주 중요하므로 더 말하지 않겠다. 여러분 감사하다! (열렬한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