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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뉴욕법회설법

 

李 洪 志
2008년 5월 24일, 맨해튼에서

 

(전체 기립, 열렬한 박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뭇 제자: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열렬한 박수) 여러분 수고하였다! (박수)

여러분 정말 수고했다. 당신들은 같지 않은 지역, 같지 않은 국가, 같지 않은 민족에서 왔다. 이 세계 매 한 지역에는 거의 다 대법제자가 있다. 당신들은 모두 대법제자로서 가장 위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당신들은 중생이 구원될 수 있는 희망이다. 당신들이 진상을 알림으로써, 당신들이 세간에서 행하고 행함으로써 많은 사람이 구원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러한 중생들을 대신해서 여러분에게 감사드린다! (뭇 제자들 박수로 경의를 표함)

억만년의 안배가 있었는데 지금은 최후의 시각이다. 비바람 속에서 역사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뭇 신들은 모두 이 일을 보고 있고, 모두 이 일에 관심을 쏟고 있다. 더욱이 최후 이 일보에 와서는 말이다. 대법제자의 행위와 생각을 그들은 모두 자세하게 관찰하고 있다. 초기 그때에는, 이 법이 세간에 전해져 어떠한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이 사전(史前)의 큰 소원을 완성할 수 있을지, 대법제자가 최후의 시각에 자신의 사명을 완성할 수 있을지, 잘할 수 있을지 모두 미지수였다. 또한 해낼 수 있는지 없는지와 삼계(三界)를 남길 것인지 말 것인지 하는 문제가 있었으며, 대법제자가 비록 법을 실증하는 사명이 있지만, 해낼 수 있고 없고는 역시 모두 그 속에 있었다. 기뻐할 만한 것은 당신들이 걸어 지나왔다는 것이다. 이 길에서 여러분이 어떤 비바람을 만났든지 간에, 사실 되돌아 생각해보면 단지 대법제자에 대한 단련(魔煉)에 불과할 뿐이며, 이 과정 중에 당신들을 성숙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제거하여 최후에 원만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신들이 걸어온 길이다. 되돌아보면 역시 이러하다.

특히 박해 이후의 몇 년 동안 당신들이 한 법을 실증하는 이러한 일들 중에서 어떤 구체적인 일들에 부딪혔든지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아무리 큰 마난(魔難)으로, 아무리 큰 고통으로 여기든지 간에 모두 좋은 일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수련했기에 비로소 나타난 것이기 때문이다. 마난 중에서 업력을 없애버릴 수 있고, 마난 중에서 사람 마음을 제거할 수 있으며, 마난 중에서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다. 당신이 중생을 구도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법을 실증하기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혹은 개인의 수련제고를 위한 데서 비롯되었든지 간에, 마난은 같은 것이다. 당신이, 나는 대법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나는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다고 여긴다 해서 이 마난이 마땅히 길을 비켜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사부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이 구우주(舊宇宙)의 세력과 구우주의 생명 그것들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인데, 이것 역시 당신들의 어려움이다. 바로 이러하기에 비로소 그러한 마난이 생길 수 있으며, 이 역시 대법제자가 부딪힌 가장 힘든 일이다. 사람이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생들의 이 일에 대한 부동한 생각과 견해는 모두 당신들이 세간에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데에 어려움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들의 표현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구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미혹 속에 있기 때문이고, 그들이 대법제자들에게 일부 어려움을 조성하는 것은 그들이 진상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천백 년, 억만년, 그가 무엇을 위해서 여기에 왔든지 실은 모두 최후의 이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가 일생일세 혹은 어느 한 가지 일을 잘못했다고 해서 우리가 그를 구도하지 않을 수 없다. 사부가 한 생명을 볼 때는 한 생명의 전 과정을 본다. 역사상 그가 아주 많은 좋은 일을 했으며, 심지어 법을 실증하기 위해서도 많은 업적을 다졌는데, 금생에 잘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를 구도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일부는 몹시 잘못하였다. 그는 기연(機緣)을 잃었으며 기회를 잃었다. 그래서 구도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대법제자로 말하면 역시 미혹 속에서 수련하고 있고, 미혹 속에서 사람을 구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일을 분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마난에 부딪힐 수 있으며, 그러므로 당신들은 무지막지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구도될 수도 없고, 구도 받을 자격도 없지만 당신들은 여전히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 때문에 진상을 알리는 데에 영향을 받지 말고, 진상 알리는 방식에 영향을 받지 말며, 또 당신들의 바른 일처리 방식을 개변하지 말라. 사부가 이 세상에 있음에 부딪히는 마난, 이 압력이 매일 수만 건에 그치지 않지만, 누구도 나를 흔들지 못했고, 흔들리게 할 수 없었다. 내가 하려는 일은 누구도 개변할 수 없으며, 어떠한 방식의 마난에 부딪히든지 간에 역시 개변할 수 없다.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신들은 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도하는 동시에 또한 수련하는 사람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사람의 마음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신이다. 신이 어떻게 수련하겠는가? 신은 수련할 수 없다. 오직 사람 몸을 갖고 있어야만 수련할 수 있다. 그래야만 수련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사람 몸이 있음으로써 수련의 기회가 있게 되고, 제고할 기회가 있게 되는데, 이는 매우 얻기 어려운 것이다. 특히 대법제자는 또 그처럼 큰 사명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수련 중에서 어떠한 마난이 생기고, 어떠한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모두 개변해서는 안 된다.

특히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이 몇 년 동안의 표현으로 보면 사당(邪黨)이 중국인을 박해하고 수련인을 박해하고 있지만, 실제상 세간의 어떠한 일이든 우주의 배후 요소가 없이는, 미시적인 요소가 없이는 모두 이뤄질 수 없으며 존재할 수 없다. 사당(邪黨)의 배후 요소는 바로 그 사악한 생명인데, 표현상에서 붉은 악룡(惡龍)의 형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많은 분자·입자가 있고, 또한 일부 낮은 층의 난귀(爛鬼)의 생명이 있으며, 난잡한 것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구세력은 바로 이러한 것들을 이용해서 대법제자를 교란하고 있다.

최근 뉴욕 플러싱에서 발생한 사당 당도(黨徒)들이 탈당센터의 대법제자를 공격한 사건은 다른 지역에서도 발생했다. 하지만 이처럼 심하지 않았다. 아마 여러분은 보았을 것이다. 표면상 악인들의 생각은 당신을 공격, 당신들을 흩어놓아 당신이 더는 악당탈퇴 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데 있다. 악당은 두려워하는바, 탈당센터는 악당의 눈엣가시이고 살에 박힌 가시이다. 사회적으로 ‘탈당센터’가 있고 ‘중공사당 퇴출센터’가 있어서 마치 가시를 등에 동여맨 듯이 괴로워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이는 사악을 소훼(銷毁)하는 유력한 곳이기에 그것은 두려워한다. 사실 여러분이 바른 면(正面)에 입각해서 본다면 ‘탈당센터’는 어떤 곳인가? 그것은 바로 중생을 구도하는 곳이 아닌가? 사악을 두려워할 것이 없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번 충격·교란이 발생한 후, 늘 일부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는 이가 있고, 또 사람 마음이 너무 많은 이가 있는데, 모두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선과 악 두 가지 표현을 바로 세인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구도될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따로 떼어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방금 말했다. 어떤 생명은 구도 받을 자격이 없다. 당신들은 모든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수 있지만, 거리의 모든 사람이 다 구도되는 것은 아니며, 어떤 사람은 구도 받을 자격이 없다. 관건적 시각에 사람이 마음을 어디에 두는가 봐야 하며, 세인이 이 일을 어떻게 대하는가 봐야 한다. 신은 모든 사람의 반응이 선념(善念)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악념(惡念)에서 나온 것인지를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그 생명을 남기고 남기지 않고를 결정한다. 바꿔 말하면 이 일 자체가 능히 구도될 수 있는 그러한 중생들을 구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법수련·정법과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 어디 우연한 일이 있는가. 이 일 자체가 바로 중생을 구도하고 있지 않은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아주 커서, 사람마다 모두 사고하고 있다. 내가 이전에도 말한 적이 있지만, 중공사당 그것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그것 자신의 번거로움은 그나마 적어진다. 특히 그것이 대법제자에게 어떤 나쁜 일을 했다 하면 곧 그것 자신의 추한 일로·실패한 일로 되는 동시에 대법제자를 도와 일을 이루는 결과로 변한다. 사람 마음이 많은 수련생들, 당신들은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아마 현재 당신들은 명백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당신들은 또 잊어버리고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보지 말라.

결국에는 이 일, 그것은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이 실패했다. 중국대륙에서 그처럼 대법제자를 박해했어도 대법제자는 모두 견정하게 걸어왔다. 하물며 국제사회에서랴? 어찌 악당을 두려워할 리가 있겠는가? 대법제자의 강인한 의지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사람을 때리고 사람을 욕하는 것은 무능함의 표현이다. 이 사회에서 사람을 때리는 것은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악들에게 겁먹지 말고, 또한 당신은 그것들이 속인을 미혹시킨 그러한 거짓말에 미혹되지 말라. 속인은 어떤 생각이 있다고들 말하는데, 속인은 어떤 생각이 있는가? 속인은 생각이 많다. 당신들이 그들을 구도하고 있다. 당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고,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이 알아야 한다.

뭇 신들은 내가 정법 하는 초기에 이런 한 가지 조목을 정했다. 이 사당이 어떤 목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모두 나와 대법제자를 돕도록 했다. 그러므로 중공사당이 어떤 나쁜 일을 하든지 간에 그것이 하기만 하면 곧바로 실패한 일이 되고 추악한 일이 된다. 9년간 발생한 모든 일을 냉정하게 살펴보면 모두 이러하다. 중공사당은 자신도 이 깡패 정권이 세상 사람들 눈에 다른 부류로 보인다는 것을 알고 늘 세인들에게 잘 보이고자 외관을 꾸몄다. 현재는 이 외관까지 모두 부쉈으며 허울마저 모두 찢어버렸다. 그것 역시 위장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공공연하게 하고 있다. 현재 이 깡패 정권은, 국가 정부 전반에서, 줄곧 국외의 영사관에 이르기까지 파룬궁을 위해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큰 국가기관이 당신들을 동반하고 있고, 당신들을 부각시키고 있는데, 여태까지 어디 이런 대단한 일이 있었던가. 위장하지 않은 채 나쁜 짓을 하며 깡패 수단, 비열한 수단을 모두 쓰고 있어 보기에는 아주 사나운 것 같지만, 내가 말하는데, 그것은 회광반조(回光返照)다. (박수) 지켜보라. 자세히 보면 이 연극은 이처럼 연출한 것이다. 이 기간의 역사는 대법제자가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안배한 것인데, 당신들은 왜 이 주역을 맡지 않는가? 왜 사당 문화에 주입된 속인이 무엇이라고 한 말을 첫 자리에 놓는가? 왜 사악의 박해를 그처럼 중하게 보고 있는가? 깊이 생각할 바가 있다. 이러한 말은 만약 99년 박해 이전이라면 사부는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들은 걸어 지나온 대법제자이며, 당신들은 곧 원만에 이를 대법제자이다. (박수)

현재, 전체 정법의 형세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표면 공간을 보면 마치 찌르기만 하면 곧 뚫릴 듯한 느낌인데, 이제 아주 조금 남았다. 사악한 생명도 대량으로 소멸되어 줄어들고 있으므로 지금은 대법제자의 정념이 아주 강한 상황이기만 하면, 사악한 생명은 이미 맞설 능력이 없다. 그것들이 매번 악행을 하는 데는 아주 많은 난귀를 집중시켜야 하는데, 거의 총동원한다. 법을 바로잡고 우주를 정화하기 때문에 그것이 소멸되는데, 사악한 힘은 바로 이렇게 소멸되어 줄어들고, 소멸되면 그것 역시 한동안 잠잠해진다. 매번 모두 이러하다. 그럼 이 정황에서 보면 대법제자는 마땅히 더욱 냉정해야 한다. 수련 중에 이미 가장 어려운 데에서 걸어 지나왔다. 최후의 길을 잘 걸어야 하며 자신이 걸어온 길을 소중히 해야 한다! 쉽지 않다. 당신들은 걸어 지나왔다. 이것은 역사상 유례없는 이런 마난에서 걸어 지나온 것이다. 당신들은 반드시 소중히 해야 한다. 미래의 휘황함은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 세운 위덕이며, 당신들을 기다리는 일체는 가장 좋은 것이다. (박수)

일부 지역에서는 수련생이 적다고 해서, 혹은 일부 지역에서는 수련생 사이에 줄곧 논쟁이 존재한다고 해서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며 심지어 당신 개인 수련의 문제에서 모두 소극적으로 변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은 자신을 망가뜨리고 있다. 당신은 알아야 한다. 나는 줄곧 말했다. 대법제자가 문제를 볼 때는 반드시 반대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삼계는 반대로 된 것이지만 당신들은 올바르게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속인들이 좋지 못하다고 여기는 것이, 여기를 떠나려는 생명으로서 수련인에게는 바로 좋은 것이다. 당신이 속인과 같은 생각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영원히 속인이며 당신은 영원히 여기를 떠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이 부딪힌 마난 그것은 마침 당신이 제고하는 기회이다. 만약 당신이 안에서 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마침 당신이 난관을 넘기고 새로운 상태로 진입하는 기회이다. 왜 이렇게 보지 않는가? 마난에 부딪히기만 하면 밖으로 내민다. 내가 말했다. 설령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문제에서 논쟁이 나타났거나, 혹은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다 해도 모두 당신의 제고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의 제고가 첫 자리이며 당신의 제고가 없다면 아무것도 말할 바가 못 되며 역시 중생 구도를 말할 바가 못 되기 때문이다. 당신의 제고가 없고 당신의 원만이 없다면 당신이 구원한 중생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누가 가지겠는가? 왜 문제를 이처럼 보지 않는가? 물론 속인 중에서 완벽하게 하자면 아주 어렵고, 정말로 시시각각 모두 그렇게 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관건적인 문제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문제에서, 수련 이런 문제에서 마땅히 이렇게 봐야 하지 않겠는가? 당신들 따라오지 못한 모든 사람, 소극적인 모든 사람, 불만이 가득한 모든 사람, 다른 사람에 대해 의견이 몹시 큰 모든 사람, 눈길을 모두 불학회 그러한 사람에게 두는 모든 사람, 당신들은 모두 당신들 자신이 수련하기를 원치 않으며 모두 밖으로 수련하고 있다. ‘불학회’가 잘 수련되고, 그들 다른 사람이 잘 수련되었거나, 혹은 속인이 모두 좋게 변했다 하더라도 당신에게 무슨 좋은 점이 있는가? 당신 자신은 무슨 수확이 있는가? 오, 당신은 사회를 위해 의무를 좀 담당한 것이며 좋은 일을 좀 한 것인데, 단지 이럴 뿐이다. 그것은 수련인이 하려는 것이 아니고 그것은 단지 속인 중에서 좋은 사람에 불과할 뿐이며 원만을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은 반드시 자신이 그 마음을 수련해야 하고, 반드시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하며, 반드시 정념으로 문제를 봐야 한다.

당초에 삼계를 만들 때 바로 반대로 만든 것으로, 여기에는 바른 이치가 없다. 바른 이치가 있다면 석가모니도 올 필요가 없고, 예수도 올 필요가 없으며, 법을 전하는 이 일이 없고, 더욱이 여기의 법을 바로잡는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로 된 이치로서, 행위와 형식 모두가 반대로 된 것이다. 세인이 향기롭다고 여기는 것이 저쪽에서는 구린 것이며, 사람이 좋은 일이라고 여기는 것이 저쪽에서는 모두 나쁜 일일 것이다. 사람이 인정하는 승자란 신이 볼 때 그것은 모두 사람의 감정충동과 욕망으로 다투어 온 것이다. 전쟁으로 얻어온 정권은 신의 눈으로 보면 그것은 강도이다. 인류의 과거는 바로 이처럼 존재한 것인바, 병사를 일으켜 천하를 정벌하고 왕이 된 자가 나라를 다스리는, 바로 이러한 한 갈래 길을 걸어왔는데, 바른 이치가 없었다. 일체가 모두 반대로 된 것이다. 바로 그것이 반대로 되었기 때문에, 비로소 사람에게 수련할 수 있게 하고, 당신에게 이 반대로 된 속에서 바른 면(正面)으로 문제를 보게끔 하며, 당신에게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여기게끔 한다. 물론 이 층 공간의 상태를 교란해서는 안 되며 의식적으로 세인의 상식적인 도리를 위반하는 나쁜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수련함에 당신이 여기는 자신의 고통ㆍ감정의 충격ㆍ心性(씬씽) 교란 등 이러한 일을 좋은 일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은 자신의 이러한 고통이라든가 당신 자신의 마난이라든가를 모두 나쁜 일로 여기는데, 그렇다면 바로 속인이다. 고통은 업력의 빚을 갚는 것이며, 마음에 못마땅한 일은 心性(씬씽)을 제고할 수 있다. 속인으로 말한다 해도 사실 역시 이 이치이다. 모두 업을 없애고 있으며, 업을 없앰으로써 좋은 다음 일생이 있다. 단지 사람이 모를 뿐이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업력을 없애버리고, 수련 중에서 心性(씬씽)이 제고되어 올라와 최후에 원만을 이룬다. 대법제자로 말하면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법리이며,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몇 년이 지나갔는데도 아직도 근본적으로 관념을 개변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해를 수련했는가? 아직도 이처럼 문제를 보지 못하며 아직도 바른 면(正面)으로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이 나에게 쓴 모든 편지와 반영한 정황을 보고 나는 정말로 괴로웠다. 왜 이처럼 세상의 것에 집착하는가? 각지의 ‘불학회’에 대한 집착을 포함하는데, 불학회 역시 다만 대법제자가 법을 실증하는 것을 편리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거기는 본보기가 아니며, 거기는 또한 사부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형식을 소중히 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을 아울러서 법을 실증함을 더욱 잘하도록 할 수 있으며, 지역을 잘 아울러서 중생구도를 더욱 잘하도록 할 수 있다.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방금 내가 말한 이 문제로서, 바로 자신을 수련하지 못하고 안에서 찾지 않는 데 있다. 사부는 혼란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부는 당신들보다 똑똑히 보고 있는바, 어디에 문제가 있다 해도 당신이 나에게 보고할 필요가 없다. 당신이 쓴 것은 바로 온통 당신의 집착과 사람 마음을 폭로한 것이다. 사부는 뭘 하러 왔는가? 사부는 바른 것과 바르지 않은 것을 가장 정확히 보고 있다. 당신들도 알고 있는바 션윈(神韻)을 우리는 무엇 때문에 순선(純善)·순미(純美)하게 공연할 수 있었는가. 1년 남짓 훈련한 아이들이 세계 제일·일류의 국제적인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사부가 이 점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속인은 해내지 못한다. 사부는 법을 바로잡으러 온 것인데, 나 여기마저 혼란한 것이라면 내가 어떻게 법을 바로잡겠는가? 나 여기는 무엇이든 모두 변하지 않을 것이다. 좋고 나쁨을 가늠하는 표준이 나 여기에 있으며, 당신의 일언·일행·일념, 당신의 눈빛 하나하나에 대해 나는 모두 매우 정확하게 당신에게 그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줄 수 있다. 단지 사부는 이렇게 하지 않을 뿐이며, 당신들에게 더 큰 기회를 주려는 것인데, 사람이 수련 중에는 이러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방금 당신들에게 말한 것을 포함해, 역시 당신들에게 경종을 울려주고 있는 것이며, 역시 당신들에게 수련 중에서 걸어 지나온 길을 소중히 하라는 것이다. 쉽지 않다. 대법제자들, 당신들은 가장 어려운 박해 중에서 걸어 지나왔다. 이 영광은 당신들에게 이미 있으며, 다만 어떻게 더욱 잘할 것인가이다.

사실 내가 방금 이처럼 많이 말했는데, 역시 단지 부족한 것을 겨냥해 말한 것이다. 좋은 것을 말하자면 대법제자는 정말로 대단하다. 그처럼 많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으며, 자신을 원만에 이르게 하고, 자신의 위덕을 세웠다. 동시에 또 이 세간의 중생들을 구도하고 있다. 단지 세간의 중생뿐만이 아니다. 표현은 여기에 있지만, 만약 그 생명의 배후에 방대한 우주 중으로 이어진 생명 군체가 있다면 이 일은 너무나도 크다. 그렇다. 생각해 보라. 만약 전반 삼계가 이 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정법 중에서 누가 여기에서 사람이 될 수 있는가? 누가 여기에서 한 생명으로 될 수 있는가?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인간세상은 필경 인간세상이라, 신이 많이 왔다 해도 역시 신의 사회 상태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며, 이는 불가능하다. 일찍이 이 일보를 고려했는바, 왔다면 바로 사람의 상태여야 하고, 그래야 수련할 수 있으며, 미혹 속이라야 비로소 기회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은 안 되고, 어떤 사람은 되는데, 이것이 바로 세간의 상태이다.

방금 내가 왔을 때, 당신들이 션윈(神韻)·페이톈(飛天)예술학교 대법 소제자(小弟子)들의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사실 어찌 이것뿐이겠는가? 각 지역 대법제자가 한 그러한 일은 찬양할 만하고 눈물겹도록 감동적이다. 단지 세간의 영화로 제작하지 않았을 뿐이다. 하지만 우주 중에는 당신들의 영화가 있다. (박수) 당신들의 좋은 일을 모두 빠뜨리지 않고 녹화해서 기재했다. 정말 녹화돼 있다. 모두 기재돼 있는데, 그것은 당신들이 걸어온 길이며, 그것은 당신들의 휘황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괄적으로 이만큼만 말하겠다. 사부는 많은 일을 너무 명확하고 너무 많이, 너무 세세하게 다 말하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당신들 일부 사람은 아직도 이 점에 대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고 있는 것이지 사부가 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여러 차례 말했다.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당신들 자신의 길을 걸어야만 비로소 당신들 자신이 원만에 이를 수 있으며, 당신들 자신의 위덕을 세울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반드시 당신들 자신이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때, 여러 대법일, 심지어 개인이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것까지 모두 사부에게 문의하면서, 아,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고 하는데, 당신은 단번에 이 위덕을 사부에게 준 것이다. 나는 물론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러나 만일 내가 말한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없고, 당신이 한 것이란 다만 나를 도와서 한 것에 불과하며, 당신 자신의 위덕을 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한 그 일체, 위덕은 다만 사부에게 속할 뿐이다. 왜 당신들이 와서 나에게 무엇을 문의할 때면 내가 답변하고 싶지 않은가. 심지어 어떤 때는 내가 당신들에게 보이는 표정마저 좋지 않은데, 나는 당신들에게 깨달으라는 것이다. 자신의 길을 걸으라. 그 기회를 잃지 말라. 왜 이 점을 모르는가? (사부님께서 웃으심) 그러므로 당신들은 늘 나에게 묻고 또 묻는다. 사부는 대법제자가 한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오직 당신들이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이 소원에서 우러나온다면 당신들이 한 일을 나는 모두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아울러 나의 법신이든 신(神)이든 오직 당신이 하기만 하면 당신의 이 일을 더욱 위대하고 더욱 대단하게 이어줄 것이며, 당신을 도와줄 것이다. (박수) 흔히 당신들은 이렇게 문제를 보지 못하고 어려움에 부딪히면 사부를 찾으려 한다. 그 어려움에 부딪혔을 때가 바로 당신들이 제고하고 위덕을 세우며 휘황을 창조할 때이다. 여기까지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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