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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北京)국제교류회설법

 

李 洪 志
1996년 11월 2일 베이징

 

나는 여러분의 심정을 알고 있으며, 나 역시 여러분을 매우 그리워했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오로지 당신이 잘 수련만 하면 나는 항상 당신들 곁에 있다. 많은 수련생들이 수련을 매우 잘하고 있으며 나 역시 알고 있다. 많은 수련생들이 개오(開悟)하기 전야에 있다.

최근에 나는 많은 수련생들과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법을 얻기란 매우 쉽지 않다고 나는 말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나는 단지 소식을 들었다거나 혹은 친구가 나에게 알려주어서 우연히 이 책을 보게 되었거나 혹은 신문에서 소식을 얻고 내가 오게 되었고 이로써 대법수련의 이 길로 들어섰다고 느낄 것이다. 당신은 매우 간단하다고 보지 말라. 당신은 표면상에서 이 법을 얻은 것이 매우 쉽다고만 보지 말라. 왜냐하면 한 신선이 와서 당신에게 법을 얻으러 가라고 알려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모두 속인의 이러한 형식으로 아주 평범하게 알게 된다. 그러나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은 이 법을 얻기 위해 아주 쉽지 않았다. 아마 당신이 전반생(前半生)에서 겪은 고생은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데, 이것은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이다. 또 당신이 모르는 것도 있다. 아마 당신의 전(前) 몇 세 심지어 더욱 긴 시간에서 모두 이 법을 얻기 위해 고생을 겪었거나 고달픔을 겪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 법을 얻기 위해 더욱 큰 고통을 겪은 적이 있는데, 이는 당신이 모르는 것이다. 장래 당신이 원만을 이룬 후, 당신은 알게 될 것이며 또한 보게 될 것인데, 매우 쉽지 않았다. 이 법을 여러분은 이미 비교적 똑똑히 알고 있다. 무엇 때문에 여러분이 이렇게 수련할 수 있는가? 바로 당신들이 이 법은 일반적인 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과거 불교 중에서 석가모니부처는 많은 것을 증오(證悟)하였으며 그 역시 사람에게 많이 남겨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석가모니부처가 사람에게 남겨준 이러한 것들을 계승하는 과정 중에서 점차 많은 것을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경서 중의 기재도 어떤 사람이 고치거나 바꿨다. 불교 경서의 각종 판본 중에 기재된 동일한 한 가지 일을 모두 같지 않게 썼다. 이 역시 석가모니부처가 전한 것으로 하여금 말법으로 들어가게 한 한 가지 요소이다. 물론 또 다른 원인이 있어 그것으로 하여금 말법시기로 들어가게 했다.

오늘 이 사회는 상당히 복잡하게 되어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수련할 수 없도록 했다. 나는 내가 전한 이 법이 매우 큰 법이라고 말하는데 아마 이 점을 수련생들도 이미 체득했을 것이다. 역사상 체계적으로 진정한 우주의 법리를 사람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사람에게 어떻게 수련하고 어떻게 수련하여 올라갈 수 있겠는가를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 물론 석가모니는 부처이며 그가 말한 것은 불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석가모니부처는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우주의 근본적인 법을 사람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그러므로 석가모니부처는 만년에 “나는 아무 법도 말하지 않았다.”라고 했으며 마지막에 또 제자에게 “계를 스승으로 삼으라.”고 알려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런가? 바로 석가모니부처는 최후 말법시기에 출현될 현상을 알고 있었고 그가 전한 법이 난잡하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의 제자에게 오로지 당신이 내가 말한 이 계율에 따라 수련하면 당신은 수련인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으며 원만을 이룰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므로 그가 진정으로 사람에게 남겨놓은 것은 계율이다.

물론 석가모니 또한 부처이며 그가 한 말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가 한 그런 말을 당신이 그는 법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는 우주의 근본적인 대법이 아니며 최고의 천리(天理)가 아니다. 내가 오늘 여러분에게 남겨주는 것은 이 우주 중에서 속인의 이 단계에서 시작하여 줄곧 최고의 법까지 모두 포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은 『轉法輪(전법륜)』 이 책의 표면에서는 보아내지 못하는데, 수련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한번 펼쳐보고는 끝내기 때문이다. 그가 이 책을 본 후에 “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책이다.”라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볼 때에는 모두 이러한 감각이다. 당신들이 처음 수련할 때 아마 모두 이런 감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두 번째로 보았을 때, 당신은 그가 또 이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첫 번째로 다 본 후 사상 중에서 제기된 문제를 두 번째 보았을 때 모두 해답을 얻을 수 있으며 동시에 당신은 이것은 속인의 책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그에게 이것이 무엇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없다. 그러나 당신이 다시 계속해서 세 번째로 볼 때, 당신은 그가 진정으로 수련하는 책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당신이 만약 네 번, 다섯 번을 볼 수 있다면, 이로부터 이 책은 당신의 일생을 동반할 것이며 당신은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이러한가? 내가 이미 말한 적이 있는데, 속인의 이치로 당신을 지도하여 부처의 경지로 수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내포는 매우 크다. 같은 구절이라도 부동한 층차, 부동한 경지 중에서 같지 않은 감수와 같지 않은 이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 속인의 서적에서는 절대로 이러한 감수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수많은 오묘함이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무슨 신통을 나타내지 않았는데, 심지어 내가 사람들에게 병을 치료해 준 것도 당시 기공의 상황에 부합되기 위해 한 것이었으며, 그렇지 않다면 나는 병을 치료하지도 않는다. 당신이 수련하고자 하므로 당신의 신체가 개변되게 해야 하고 당신으로 하여금 불법신통의 일체를 수련해 내게 하며, 당신의 층차가 끊임없이 제고되게 해야 한다. 당신이 원만을 이룬 이후에 얻는 일체를 포함하여 나는 모두 이 법속에 녹여 넣었다. 당신이 배우기만 하면 당신의 신체는 곧 변하며, 당신이 보기만 하면 당신의 사상은 곧 승화되며, 당신이 수련만 하면 당신은 곧 부동한 경지 중에서 부동한 경지 중의 상태를 얻을 수 있다. 만약 마지막까지 볼 수 있으면, 당신은 곧 이 책의 지도하에 원만을 이룰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책이지만 그의 박대한 내포를 속인은 보지 못한다.

물론 이 속에는 또 한 가지 문제가 존재한다. 이 자리에 앉은 법을 얻은 모든 사람, 대법 중에서 수련하는 모든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당신들은 수련과정 중에서 이미 체득하였고 부동한 경지, 부동한 층차 중에서도 모두 그의 같지 않은 층차의 내포를 감수하였다. 그러므로 나는 방금 이 법 그는 일반적인 법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우주의 특성이다. 나는 우주의 가장 근본적인 것을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 물론 이 일을 매우 크게 하였다. 나는 재차 대법(大法), 대법이라고 강조하여 말했다. 아마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한 내용이 매우 많기에 그를 대법이라고 불렀다고 느낄 것인데 사실 아니다. 내가 말한 이 대법의 함의는 높고도 깊은 것이다.

아주 높은 경지 중에서 수련하는 수련생 그는 어떤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단지 사람만이 대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높은 경지 중의 생명도 모두 배우고 있으며, 이 법은 실로 지극히 크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여기에 앉은 이들은 모두 인연이 있어서 이 법을 얻었다. 나는 여전히 그 한마디 말인데, 사람마다 모두 이 법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이처럼 큰 공원에서 연공하고 있고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지만, 어떤 사람은 좀처럼 보지 못하며 어떤 사람은 왔다 해도 그는 듣지 못한다. 그 역시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사람마다 모두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책을 보기만 하면 좋다고 느끼지만, 어떤 사람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사람이란 다르다. 하지만 이 속에도 역시 이유가 있는데, 내가 방금 말했듯이 이 책은 속인의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미국에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 대법이 무엇 때문에 사람을 지도하여 매우 높은 경지 중으로 수련해 갈 수 있게 하는가? 왜냐하면 이 법을 매우 낮은 층차에서 보면 매 구절마다 말한 것이 모두 이치이지만, 만약 당신이 그의 진실한 정황을 볼 수 있다면 글자마다 모두 부처의 형상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매우 높게 수련할 수만 있다면, 당신의 천목 역시 매우 높게 볼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현상을 발견할 것이다 ―― 매 글자의 배후에 같지 않은 층차의 부처의 층층첩첩의 나타남인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여기에 얼마나 높은 내포가 있는 것인가? 무엇 때문에 같은 말이 부동한 경지 중에서 부동한 상태의 변화가 있으며 부동한 층차 중에서 전체 이 법의 이치가 모두 변했는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책을 속인의 책으로 여기지 말고 반드시 그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과거의 사람들은 부처를 말할라치면 무한히 경앙(敬仰)하는 마음이 일고 매우 수승(殊勝)한 상태 중에서 부처, 보살, 나한을 말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이 부처를 말할 때면 아무렇게나 내뱉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어 아주 일상적인 것 같다. 이는 인류가 신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 이 단계까지 발전하여 조성된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는 사람이 아무렇게나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부처에 대하여 공경하는가 하지 않는가 하는 대사(大事)이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함부로 부처에 대해 농담을 하고 심지어 식사에서도 부처를 비방하는데, 많은 요리의 이름마저도 부처를 비방하고 있다. 무슨 ‘나한재(羅漢齋)’요, ‘불도장(佛跳牆)’이요, 이러한 이름까지 올랐는데, 모두 부처를 욕하고 부처를 비방하는 것이다. 심지어 이러한 음식점 중 어떤 것들은 거사나 화상(和尙)이 운영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부처를 욕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듯하다. 왜 출가인이 수련할 수 없게 되었는가? 그는 어떻게 수련해야 하는가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나한재’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이 나쁜가.”라고 여길 것이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나한, 그는 세간의 일체 색미(色味)집착이 없는 것인데, ‘나한재’란 그 요리는 색미(色味)가 구전(俱全)한 것이다. 당신이 그 경지 중에서 서서 이 문제를 한번 보라. 그를 욕하는 것과 같지 않은가? ‘불도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세상의 이 맛있는 향미(香味)를 맡고 부처조차도 담장을 뛰어 넘어 온다는 것인데, 이것은 부처를 욕하는 것이 아닌가? 부처가 사람의 음식에 집착하겠는가? 나는 오늘날의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실 매우 많은 일이 부처에 대하여 이미 아주 불경한데, 어떤 정도까지 도달하였는가! 부처를 말할 때 사람들은 전혀 정념이 없으며 심지어 감히 직접 부처를 욕한다. 문예작품 중에서도 악독하게 부처를 왜곡하고 있는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인류사회 그는 어떤 모양인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이 책, 이 대법은 내가 전한 것이며 나는 곧 일체 바르지 않은 것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법 중에는 무수한 층의 각 경지의 불·도·신의 법리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이 책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바, 아무데나 던지거나 아무데나 놓지 말아야 한다. 초기 법을 전할 때 나는 이 문제를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강의를 들으면서 엉덩이에 깔고 앉았는데 당시에 당신이 몰랐기에 나무라지 않았다. 오늘 여러분은 모두 수련하여 올라왔으며 이 법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비로소 이 문제를 말하며 여러분에게 이러한 일에 주의해야 함을 알려준다.

말하는 김에 또 한 가지 문제를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우리 많은 사람이 수련을 아주 괜찮게 하였으며 자신도 마치 수련을 아주 잘한 것으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어떤 때 늘 머릿속에서 여전히 일부 문제가 반영되어 나오며 사상에서 일부 속인 중에 집착하는 것, 각종 정(情)의 표현이 반영되어 나온다. 어떤 수련생은 대단히 걱정하고 있다 ―― 내가 도대체 수련한 것이 어떠한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만약 당신이 자신이 수련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당신 역시 수련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고 있다면, 당신 사상 중에서 확실히 이러한 상태가 나타났을 때, 당신은 그것을 걱정하지 말라.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속인사회 중에서 하는 수련은, 만약 당신 속인의 것과 업력을 전부 제거해 버린다면,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단 하루도 속인 중에 있을 수 없다. 속인 사상 중에서 반영되어 나오는 각종 사상을 당신은 모두 견딜 수 없다. 왜냐하면 속인의 일언(一言), 일행(一行), 일념(一念)이 모두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며 아울러 이런 목적은 흔히 모두 사적인 것을 위한 것이므로 당신은 견딜 수 없다. 당신에게 이런 것이 없으면 속인과 접촉할 때마다 곧 다른 사람의 것을 볼 수 있는데, 당신은 결코 견디지 못한다. 당신은 곧 사람의 모든 언행이 매우 강한 집착을 띠고 있다는 것을 감수하게 되어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없게 되고 지낼 수 도 없으며 일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서서히 표면상의 사람의 고만한 것들을 제거해 버리는데, 원만에 거의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전부 제거해 버리게 한다.

그럼 아직 제거하지 못한 고만한, 속인 중에서 생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수련할 수 있게 한다. 당신이 자신의 이러한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을 때, 당신은 이미 진보한 것이다. 당신이 그것을 배척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것들은 당신이 단번에 그것을 제거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수련 중에서 아주 서서히 제거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러한 것을 똑똑히 구별해야 한다. 원만을 이루는 그 날에 이러한 것들을 전부 제거하게 된다.

또 한 가지를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이란 확실히 아주 고생스럽다. 왜냐하면 당신들이 속인 중에서 수련하기 때문이다. 이익과 정(情) 속에서 집착심을 제거할 때, 당신들은 체험할 수 있다. 아직 이 상태 속으로 진입하지 못한 새로운 제자들은 그처럼 큰 저애력을 체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곧 업력이 있으며, 게다가 업력이 조성한 이런 요소가 사람의 수련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체현되어 나오는 것은 일하는 가운데 곤란이 있다든가, 일할 때 마음이 불쾌하다든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순이라든가 혹은 신체적인 불편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시끄러움은 흔히 올 때 모두 아주 갑작스럽고 아주 첨예하다. 당신들은 자신이 수련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가끔은 그 마음을 내려놓기가 아주 어려운 것 같다. 이 점을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여러분은 수련 중에서 그래도 걸어 나가야 한다. 당신이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어쨌든 이러한 일을 겪어야 한다. 끊임없이 당신을 연마(魔煉)시켜 결국에는 역시 이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 법을 듣는 사람, 법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인연이 있을 것이다.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말한 법은 확실히 대단히 높고 당신들에게 남겨준 것도 역시 대단히 높다. 당신들 수련 역시 아주 빠르다. 특히 근간에 법을 얻은 사람들은, 뒤에 온 사람이 앞서는 듯한 느낌이 있다. 내가 이번 미국에 가서 느낀 것이 있다. 중국 대륙, 대만, 국외의 많은 화교, 유학생, 박사, 석사, 고급 지식인 혹은 교수, 과학 연구를 하는 제자들, 이러한 사람들이 층차를 아주 빨리 돌파하고 있다. 물론 그의 학문이 높기에 좋다는 것이 아니라, 근기(根基)가 좋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법을 뒤늦게 얻었으나 일단 법을 얻은 후, 내가 발견하건대 일반적으로 서서히 인식하는 과정이 없다. 이전에는 많은 사람이 모두 인식과정이 있었고 서서히 승화해 올라왔다. 그들은 대부분 이런 인식과정이 없고 얻었으면 그대로 수련했다. 비단 이해가 빠를 뿐만 아니라 즉시 법 속으로 녹아 들어갔다. 이것은 그들이 얼마나 높은 속인의 학문이 있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실질적으로는 근기문제이다. 물론 법을 얻은 사람에게는 인연이라는 요소가 있다.

나는 이 법을 이미 체계적으로 당신들에게 모두 말했고, 전해야 할 것을 완전히 당신들에게 남겨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미 말한 최고의 법리는 아주 높다. 그러므로 내가 재삼 반복해서 말하면 교란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강의하면서 한 글자도 차이나지 않게 똑같이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남겨지는 것이 이미 당신들에게 주어 고정된 이 법을 교란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더는 체계적으로 설법하지 않는다. 만약 특수한 정황이 나타나지 않으면, 앞으로 내가 더 말하는 것은 모두 인류사회가 직면한 일부 문제들과 장래의 일이다. 이 모두가 인간의 일이다. 이 시기의 수련에 관한 것은 이미 모두 기본적으로 전부 원만하게 알렸다. 『전법륜』은 이미 매우 높고 매우 높게 썼다. 나중에 내가 또 일부 것들을 말했는데 장래에 역시 문자로 정리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진정하게 여러분으로 하여금 수련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전법륜』이다. 다른 책은 얼마가 더 나와도 모두 『전법륜』의 보조(輔助)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전법륜』 이 책에 따라 수련해야 한다.

우리 수련생들은 부처에 대한 구체적인 개념, 부처에 대한 인식이 매우 결여되어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이 몇 년간 다만 법을 전할 따름이고 부처의 부동한 경지 중의 정황과 불·도·신과 우주의 정황을 적게 말했기 때문이다. 말하지 않은 것은 내가 전한 이 법이 대단히 크기 때문에 어떠한 구체적인 것도 끼워 넣을 수 없었으며 모두 끼워 넣을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많은 수련생이 이 방면의 이해가 부족하고 부처와 상하 부동한 층차의 중생에 대해 이해함이 아주 적다. 부처, 보살, 또는 부처의 경지, 부처의 세계, 이 방면에 이해가 아주 적다. 사실 정말로 부처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당신들은 사람의 사상으로 이해할 것인데 그것은 부처에 대한 불경(不敬)이다. 장래 수련 중에서 많은 수련생들이 모두 볼 수 있을 것이며 당신들 자신이 이 한 부분을 충족시킬 것이다.

이 우주는 상당히 복잡한 것으로, 그 복잡한 정도는 단지 사람뿐만이 아니고 불·도·신마저도 경탄할 정도이다. 인간이 인식하는 이 우주는 단지 한 층차면(層次面)상의 것일 뿐이다. 내가 이전에 말한 적이 있는데, 인류가 인식할 수 있는 물질표면, 볼 수 있는 가장 큰 입자는 별(星球)·은하계이고, 계측기로 알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는 분자, 원자, 원자핵, 중성자, 전자, 쿼크, 중성미자가 있는데, 더 아래로는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본원물질(本源物質), 생명을 구성한 본원물질과는 거리가 얼마나 먼지 모른다. 무수한 억 배, 무수 무수한 억도 아직 끝이 아니다. 물질이란 그런 정도로 미시적이다. 그러나 물질은 미시적일수록 전반 체적은 더욱 큰바 당신은 한 개 입자만을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의 한 개 입자는 단지 그것 그 체적의 한 점에 불과하나 그것이 오히려 정체(整體)이다. 물질의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그것의 전반적인 그 면이 더욱 크며, 물질이 구성된 입자가 더욱 크다고 하여 그것의 층차면(層次面)이 반드시 더 큰 것은 아니다. 인류는 단지 분자로 구성된 이 공간만을 인식하고도 여전히 자만하여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며 또한 각종 실증과학의 정의(定義)로 자신을 제한해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공기, 물, 강철, 나무, 사람의 인체를 포함해 당신이 생활하는 일체 공간은 모두 분자로 구성된 것이다. 당신은 마치 분자 이 경지의 바다 속에, 분자로 구성된 이 입체화면 속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과 같다. 우주선이 아무리 높게 난다 해도 역시 분자로 구성된 이 공간을 벗어나지 못하며 컴퓨터가 아무리 발달했다 해도 사람의 두뇌와는 비교할 수 없다. 물론 인류사회 역시 돌파가 조금도 없는 것은 아니다. 인류는 이미 분자, 원자, 쿼크 심지어 중성미자까지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과학이 본 것은 단지 입자가 존재하는 한 점이고, 같지 않은 입자가 존재하는 전반적인 면(面)은 보지 못했다. 만약 그 면을 본다면, 사람은 우주의 다른 공간이 진실하게 존재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 원자 그것은 단지 인류가 본 한 개 입자만이 아니다. 그 입자 자체를 말하면, 만약 그것을 확대해 본다면, 한 개 작은 별(小星球)처럼 크게 확대한다면, 곧 원자물질로 구성된 물체상의 그러한 원자로 구성된 생명, 물질, 물, 식물이 존재하는 일체 물질형식을 볼 수 있다. 인류는 이 점을 돌파하지 못한다.

사실 사람은 두 개의 입자 사이에서 생활하고 있는바, 일체를 구성한 것은 분자로서 우리가 눈으로 본 가장 큰 입자 그것이 바로 별(星球)인데, 분자 입자와 별 사이에서 생존하고 있다. 오늘 내가 말하지 않으면 과학자도 인식하지 못할 것인데, 인류는 아직 별 역시 입자임을 생각하지 못한다. 무수한 별로 구성된 것은 더욱 큰 입자로서 그것은 각 은하계이다. 성계(星系)는 또 더욱 큰 우주범위를 구성하는데 그건 아직도 가장 큰 입자가 아니다. 물론 내가 말한 이 개념은 아마 당신의 사상을 단번에 아주 높게 밀어 올렸을 것이다. 만약 당신의 신체가 별과 같은 그 층 입자로 구성된 신체와 같이 크다면, 당신이 되돌아 지구를 보면 분자 같지 않겠는가? 인류의 물질에 대한 인식에 의거해 볼 때, 사실 별은 아주 확실한 한 층 입자이다. 이것은 거시적으로 말한 것이다.

사람은 늘 하늘을 말하는데, 어디가 하늘인가? 어디가 위인가? 이 우주 중에는 전혀 상하, 좌우, 전후의 개념이 없다. 위로 향한 것이 위라면 아래로 향한 것도 위가 아닌가? 이 우주는 둥근데 지구는 거의 중심위치에 있다. 왼쪽이 위라면 오른쪽 역시 위이고, 아래가 위이면 정수리 역시 위이다. 이는 천기(天機)를 말한 것으로, 나는 방금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그의 층차면(層次面)은 오히려 아주 크다고 했다. 사실 한 생명이 더욱 미시적인 속으로 돌아갈 때는 이미 더욱 크고 더욱 위인 곳에 있는 것으로, 바로 하늘에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그의 층차는 더욱 높기 때문이다. 이는 한 가지 아주 홍대(洪大)한 개념인식이다. 나는 방금 우주에 대한 인식 방법을 말했는데 이것은 단지 여러분에게 공간의 인식 방법을 조금 말했을 뿐이다. 아직 더욱 복잡한 것이 있다. 물론 더욱 많은 것은 장래에 당신들이 개오(開悟)한 이후에 스스로 인식하도록 하라.

하늘의 구체적인 것을 인간에게 너무 많이 남겨줄 수 없다. 사실 인류의 실증과학이 만약 매우 높게 발전되거나 혹은 인류의 경지를 초월한다면, 그건 인류에 대해 더욱 위험하다. 인간은 절대 과학기술수단을 통해 부처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으며 이는 절대 허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칠정육욕(七情六慾)의 각종 집착심이 있기 때문이다. 쟁투심, 질투심, 색욕, 이러한 것을 하늘로 갖고 간다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그럼 부처, 보살과 싸울 수도 있는데 정말로 우주대전(宇宙大戰)이 출현할 것이다. 인간 그가 속인의 마음을 가진 채 과학기술을 부처의 경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류의 과학기술은 다만 선천(先天)적으로 정해 놓은 대로 발전하고 있을 뿐이다. 그가 만약 대단히 높게 발전한다면 그 과학기술 자체와 인간은 마찬가지로 훼멸될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이는 내가 본 상황이다.

다음으로, 나는 되돌아 다시 이 공간을 말하겠다. 내가 방금 말한 이런 공간형식은 개괄적인 인식방법이다. 석가모니부처도 그 당시 일정한 범위의 우주에 대한 인식을 말했다. 예컨대 그는 인류와 삼계 내와 삼계 밖의 일정한 범위의 구체적인 정황을 말했는데, 수미산지설(須彌山之說) 같은 것이었으며, 또한 수미산의 존재형식도 말했다. 수미산 사면에 사대부주(四大部洲)가 있으며 양대층천(兩大層天)이 있다. 사실 석가모니부처가 한 말이 중국으로 전해와 중국어로 번역되거나 또는 인도에서 유전되는 과정 중에서 모두 오류가 있었다.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이 수미산의 양대층천(兩大層天)은 전혀 양대층천이 아니었고 두 개 우주의 개념이었으며 이는 소우주와 제2층 우주의 인식이었다.

제2층 우주를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인류가 인식한 이 우주는 수많은 은하계로 구성된 것이다. 이 또한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이 한 층 공간의 구조에서부터 말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들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우주이다. 바로 이 우주인데, 우리 인류는 영원토록 그의 변두리를 볼 수 없다. 이 우주 그것은 천체 중의 유일한 우주가 아니다. 아득한 천체 중에서 역시 가장 큰 한층 입자가 아니며, 여전히 매우 많은 이처럼 큰 우주가 있어서 더욱 큰 우주범위를 이루었으며 역시 외곽이 있다. 그것도 단지 더욱 큰 한 층의 입자를 이뤘을 따름이다. 이 우주는 그야말로 방대하다. 인간으로 말하면 불가사의하게 느껴지지만 신으로 말하면 그건 아직도 한 층 입자의 작디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러나 더욱 큰 부처로 말한다면, 그것이 작기로 정말 무엇이라 할 수 없다. 같지 않은 경지의 사상방법, 사유방법, 관념은 모두 변화가 발생할 수 있다.

방금 전에 나는 석가모니부처가 증오(證悟)한 그 수미산(須彌山)을 말했다. 그것은 우리 인류가 생존하는 이 은하계와 태양계의 북쪽에 있다. 그럼 ‘북(北)’이라는 개념은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우주 중에는 이런 개념이 없고 지구는 또 돌고 있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처의 말에 따라 말하자. 이렇게 말해야만 여러분이 이 개념에 대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처럼 여기를 말하지만 그가 내일은 또 저쪽으로 돌아간다. 석가모니부처의 말에 따르면 북쪽이니, 우리는 그것이 북쪽에 있다고 말하자. 이 수미산(須彌山)은 얼마나 높은가? 수미산은 은하계를 벗어났고 내가 방금 전에 말한 이 우주의 범위, 많고 많은 성계(星系)로 구성된 이 범위를 벗어났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계는 얼마나 큰가? 성계와 성계 사이에는 또 일정한 거리가 있다. 수미산(須彌山)은 이 우주를 벗어났고 제2층 우주의 중심위치에 있는데 곧 이처럼 큰 산이다. 사실 수미산은 세 개 산이 한데 연결된 큰 산이며, 이 세 개 산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아미타불,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다. 아미타불은 이 경지의 제1위 부처이다.

석가모니부처가 증오(證悟)한 것은 사람들의 그에 대한 인식을 훨씬 넘어섰다. 석가모니부처는 하늘과 그의 전세(前世)를 많이 말했다. 그러나 그 자신의 진정한 경험을 전혀 말하지 않았으며 특히 열반 이후의 일을 아는 사람은 더욱 없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부처마다 자신의 세계가 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가 있고, 유리세계(琉璃世界)는 약사불이 주지(主持)하고 있으며 또 연화세계(蓮花世界), 미호세계(美好世界)가 있고, 예수와 원시천존(元始天尊)도 모두 그들의 세계가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은하계 범위에는 이러한 천국세계 100여 개가 대응하고 있다. 부처도 아주 많아서, 석가모니부처는, 여래경지에 도달한 부처는 갠지스 강의 모래숫자와 같다고 말했다. 매 한 여래부처가 한 천국을 주지하고 있는데 당신이 생각해 보라. 이 우주 그는 얼마나 큰가? 그럼 석가모니부처가 최후의 한 개 층차에서 내려올 때는 제6층 우주였다. 이 숫자는 아주 큰 것으로 6층 우주는 6층 하늘이 아니다. 그는 그 곳에 세계가 있는데 대범(大梵)세계라고 부른다. 후에 석가모니부처가 속인사회에 와서 사람을 제도하였고 그는 개오(開悟)한 후 49년 동안 법을 전했으며 돌아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석가모니부처는 자신의 역량, 그가 온 이처럼 높은 층차에 의거해서도 역시 단지 푸왠선(副元神)만 제도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수련자로 하여금 일세(一世)에 아주 높이 수련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그 부처들에게 모두 자신의 세계가 있음을 다 알지만 석가모니부처에게 자신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누가 들은 적이 있는가? 말한 사람이 없다. 석가모니부처가 바로 사바세계(娑婆世界)에 있다고 말하지만 사바세계(娑婆世界)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을 포함한 바로 삼계이다. 그 부처의 세계가 어찌 사람의 세계이겠는가? 누구도 이 문제를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적으로 석가모니부처 그는 평소에 줄곧 대범천(大梵天)에 있는데, 그는 대범(大梵)세계에서 왔기 때문에 그는 그 층의 하늘도 대범천(大梵天)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대범천(大梵天)은 무색계에서 가장 높은 천상(天上)에 있으며, 역시 삼계 내이다. 그는 왜 이곳에 있으면서 가지 않았는가? 대법이 전해지기 전에 그는 여전히 부처의 신도들을 지키고 있었고 2천5백 년 동안 사실 그는 대법이 전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석가모니부처가 온 마지막 층차가 대범(大梵)세계지만 그는 그 곳에 남아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세에 대법이 전해짐을 위해 문화를 다져놓았고 속인 속에서 아주 많은 고생을 했으며, 대법에 동화된 후 그는 더 높은 경지로 갈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해주는 석가모니부처의 진실한 정황이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줄곧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를 말하자면 실로 너무나도 길다. 나는 층층의 우주 부동한 천체를 거쳐 아래로 걸어왔고, 층층마다 환생하였으며 인간세상 속에서 분체(分體)하여 환생했다. 일세 중에 모두 아주 많은 내가 있었는바, 방대하고 복잡하기가 말할 길이 없다. 나는 아주 간단하게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보건대 나는 일체 천체 우주 밖에 있지만, 뭇 신과 부처와 중생은 모두 그 안에 있다.

우주 중에는 성(成), 주(住), 괴(壞)의 문제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는 우주가 존재하는 법칙이다. 우주의 나이는 대단히 많다. 이 우주의 과정 중에서 조기에 생긴 불·도·신의 나이는 모두 무척 많은 것으로, 마치 사는 것마저 조금 싫증이 난 것 같다. 시간이 너무나 아득하여 신들로 하여금 역사를 잊게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과거도 잊어버렸다. 층차가 높을수록 그의 시간은 더욱 느렸고 그의 범위와 체적은 더욱 크다. 성(成), 주(住), 괴(壞)의 개념은 더 높은 경지 속에서 매우 아득하며, 심지어 한 생명인 당신으로서는 전혀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할 만큼  크다. 일체 시간과 우주 범위 밖에 있는 주불(主佛)은, 중생이야말로 우주가 존재하는 의미라고 여겼다. 우주 중에서 부동한 층차의 수많은 겁난이 나타났기 때문에 최고경지를 제외하고 가장 원시적인 우주가 어떤 모습인지를 아는 생명이 없다. 낡은 것을 새것으로 바꾼 이후에는 과거의 일체는 모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주 속의 중생을 남겨야 했는데, 이 문제는 해결하기가 아주 어려웠다.

우주가 생기기 시작할 때 수많은 신들은 우주의 말겁(末劫) 시기에 나타날 문제들을 보았다. 그 신들은 무척 걱정하며 모두 자신을 구원하려고 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그렇게 높은 위덕을 갖추지 못하면 이 일은 막을 수 없고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한 층 한 층이 모두 이 일을 하려고 생각하여 역사상 아주 많은 신들이 왔다.

그러나 우주 중에는 예부터 한 가지 이치가 존재하는데 바로 이 층의 생명은 한 층 더 높은 층에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으며, 한 층 더 높은 층도 그보다 한 층 더 높은 층에 생명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매 층의 신은 자신이 가장 높다고만 알고 있었다. 때문에 서방의 예수는 그의 부친 ―― 여호와가 주(主)라고 말했다. 여호와는 유태인종의 주이고 유태인종을 만든 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유태 백인종과 그의 부동한 층차 생명의 최고였다. 그러나 다른 체계 속에는 또 다른 인종을 만든 주가 있고 아울러 더 높고 더 높고 더 높은 곳에 신과 중생이 또 있지만, 낮은 층의 신과 세인은 이를 모를 뿐이었다. 신도 다만 자신 이 층차의 불법이치(佛理)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이 최후의 결과를 보았을 때, 뭇 신들은 모두 방법을 생각해 우주의 성주괴멸(成住壞滅) 최후단계의 무서운 결과를 해결하고자 분분히 세상으로 내려왔는데 아주 많은 신들이 왔다. 어떤 신은 그의 전반 그 한 층의 우주가 시작하여 끝날 때까지 고생을 하였고, 그리하여 이렇게 큰 위덕을 갖추어 구원할 일을 완성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똑같은 한 가지 문제에 부닥쳤다. 그들 모두 가장 높은 것이 아니어서 더 높고 더 높은 경지에도 문제가 생기면 그들이 원래 있었던 경지도 역시 겁난 속에 있게 된다. 그럼 내려온 뭇 신들도 공이 없이 훼멸되어 이런 결말을 해결할 수 없고 돌아갈 수도 없었다. 실제상 일체가 모두 이렇게 발생했다. 구도(救度)와 위를 향한 정법 중에서 나는 이렇게 온 아주 많은 이들을 법에 동화시킨 후 모두 돌려보냈다.

여러분 다 알다시피, 오늘 내가 말한 이 문제는 상당히 높다. 석가모니부처는 한 마디 말을 했다 ―― 장래 어느 어느 해 이후 그때에 미륵불이 올 것이다. 나는 이 시기에 왔다. 하지만 나는 미륵불의 층차가 아니다.

나는 또 여러분에게 아주 큰 천기(天機) 하나를 말해 주겠다. 이 일을 이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다. 하늘의 부처, 예를 들어 당신들이 알고 있는 여래, 보살은 사실 모두 하나가 아니다. 대략 10년 혹은 10년을 초과하지 않고 하나씩 바꿔야 했다. 지금의 아미타불도 가장 초기의 그가 아니고, 관음보살 역시 가장 초기의 그가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인류 삼계는 대단히 복잡하고, 그들은 또 삼계와 너무 가깝게 있어 아래의 좋지 못한 것들이 그들을 직접 교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 보살이 사람을 제도하는데, 사람은 부처와 보살에게 영향을 주기가 쉽다. 만약 그들이 장기간 제도한다면 그들은 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이 공간은 대략 10년을 전후하여 그들을 하나씩 바꾼다. 그러나 이것이 어떤 세계에서는 아주 긴 시간이다. 더욱 큰 공간 속의 구체적인 공간의 시간은 오히려 아주 빠른데, 10년이면 일부 공간에서는 이미 수만 년의 시간이 흐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태 속에서는 부처, 보살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다. 하늘에는 규정이 있다. 일정한 층차 속에서 무슨 신이든지 일정한 시기가 되면 모두 바꾼다. 목적은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그들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과거에 인간세상의 일부 기록 중에도 이런 기록이 있는데 단지 사람들이 어찌된 영문인지 모를 뿐이다. 여러분은 관음보살이 있음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역사상 부동한 기록이 있다. 예컨대 남해관음보살이라는 보살이 있는데, 묘장왕(妙莊王)의 딸이 관음보살로 수련 성취되었다고 하고, 또 인도의 쌍마동자(雙馬童子)가 관음보살로 수련 성취되었다는 등등등등은 모두 진짜인데, 단지 동일한 생명이 아닐 뿐이다. ‘관음보살’이란 장엄하고 수승(殊勝)하며 대자비한 각자의 원시(原始)형상과 변하지 않는 자비의 명호(名號)이다. 매 번마다 관음보살 하나가 수련하여 올라갈 때, 그녀는 지상에서 그녀의 장래에 자신을 이어나갈 사람을 선택하는데, 그 사람을 도와 그녀 자신과 똑같은 자비를 닦게 한다. 역시 그렇게 높은 층차이고, 그렇게 큰 위덕이며, 그렇게 큰 고생을 겪을 수 있고 그렇게 큰 위력이 있을 수 있다. 그 사람이 원만을 이뤘을 때, 그녀는 그녀를 제도해 올라와 자신을 대체하게끔 했다. 매 한 불·도·신은 모두 이렇다. 과거에 이는 가장 비밀스런 천기(天機)였는데, 오늘 당신들에게 말해 주었다.

나는 왜 당신들에게 말해 주는가? 내가 한 가지 문제를 말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석가모니부처가 미륵불의 명호(名號)를 말한 때부터 2천여 년 동안 이 미륵불도 얼마나 많이 바뀌었는지 모른다! 포대화상(布袋和尙)이 그 중의 한 사람인데, 이것이 바로 왜 미륵과 포대화상을 함께 언급하는가이다. 그러나 미륵불의 형상은 포대화상처럼 큰 배와 크게 웃는 그런 모습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그가 세상에 있을 때의 사람 형상에 불과하다. 부처는 매우 신성하고 장엄하며 모두 매우 젊고 아름답다. 왜냐하면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아름답기 때문이다. 보기에 그 진실한 미륵불은 마치 20세 전후의 모습이고, 관음보살은 17,8세의 모습이며, 대세지(大勢至)는 바로 15,6세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관념은, 40여 세의 사람은 안정적이고 불혹(不惑)의 나이에 닿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들의 모습을 그러한 형상으로 빚었다. 그러나 하늘의 신의 사상은 지혜와 층차의 경지로 결정되는 것이며 신의 자비와 지혜는 나이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속인은 늘 속인의 인식을 사용한다.

그렇다면, 이 일세에 이른 미륵불, 다시 말해서 내가 법을 전하기 시작할 때, 최후의 그 미륵불은 사실 여성이 수련하여 성취한 것이지만 미륵의 형상은 남성이다. 사실 ‘미륵’ 두 글자의 고인도어의 발음이 그 당시에도 그다지 정확하지 못했는데 중국어로 번역되었을 때는 더욱 정확하지 못했다. ‘미래(彌來)’로 발음하는 것이 있고, ‘미륵(彌勒)’이라고 발음하는 것도 있으며 또 다른 발음도 있었는데 장래에 당신들에게 정확한 발음을 알려주겠다. 이번 시기 미륵이 그의 일을 끝마치려고 할 때가 바로 내가 출산(出山)할 때였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이 층차가 아니다. 천체중의 신들은 내가 부처의 법(佛法)·부처의 모습(佛像)으로 각계 중생을 구도하러 왔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며 그들도 미륵이 왔다고 인정했다. 미륵불도 그가 전승한 것을 다 나에게 주었다. 그러나 뭇 신들은 근본적으로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고 다만 하세(下世)하여 사람을 제도하러 왔다는 것만 알 뿐이었다. 동시에 그들이 모두 나에게 절에 가라고 재촉했으나 나는 절에 가지 않았다. 왜 절에 가지 않았는가? 왜냐하면 나는 더욱 큰일을 하려고 하며 더욱 큰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의 사람은 이미 부처를 믿지 않으며 절의 승려, 거사가 너무 적었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과 인류의 총 숫자와 비교하면 실로 너무나 적으며 말법시기에 부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절에서는 세인들을 널리 제도할 수 없으며 더욱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할 수 없다. 일단 절에 들어가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더욱 법을 얻을 수가 없게 된다. 나는 이런 정황을 보았기 때문에 출가하지 않았고, 바로 속인사회에서 대법을 전했다.

물론, 이 속에도 문제가 있는데, 역시 많은 화상(和尙)이 납득하지 못하는 문제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내가 말한 것은 불리(佛理)와 불법(佛法)이지만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법이 아니다. 사실 설령 내가 아니고 다른 사람이 와서 사람을 제도할지라도 역시 석가모니부처의 말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다시 사람을 바꾸어도 석가모니부처가 했던 말은 아닐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법을 말한다 해도 모두 부처 자신이 증오(證悟)한 법리이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화상(和尙)이 가장 내려놓을 수 없는 곤혹은, 그들은 석가모니부처가 유일하게 불법을 말했고 그것이 우주의 유일한 불법이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불법 중의 작디작은 일부분이라는 것을 모르는데,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것은 그가 증오(證悟)한 부분이고, 심지어 석가모니부처도 자신이 알고 있는 법의 전부를 말하지 않았으며, 단지 그가 보기에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그 부분만 남겨주었을 뿐임을 모른다. 사실 석가모니부처가 말한 법도 과거의 육불(六佛)이 말했던 법과 같지 않다. 하물며 내가 이번에 말한 것은 전반 우주의 특성으로서, 불법(佛法) 신법(神法) 도법(道法), 일체 법의 근본적인 것이다.

만약 삼계(三界)와 인류가 정법을 위해 마땅히 있어야 할 작용을 일으켰다면 장차 인류에게는 무량한 복이 있을 것이다. 내가 올 때 아주 높은 경지 중에서 내가 원하는 일체를 만들었으며 인간으로 환생하여 세상에 왔지만, 나의 위덕은 일체 경지를 초월한 밖에서 주재하고 있다. 내가 왔다고 하지만, 나는 삼계의 중생과 얼마나 많은 층의 입자의 간격을 두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우주가 존재하는 가장 본원의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 속에 있지 않다. 나는 일체 우주 지혜를 구성하는 원천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중생은 부동한 층차의 우주 내의 물질로 구성된 것이다. 내가 오지 않았다고 말하면, 나는 사람의 경지에 있지 않지만 오히려 인간세상에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간단하게 개괄적으로 말한 것이다. 장래에 나는 이 일을 헤아려 사람들에게 알려줄 것이지만 더욱 많이는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한 것이 이미 아주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래에 수많은 해가 지난 후 인류는 이 일체를 역시 신화 이야기로 여길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는 한 가지 일은 바로 사람들이 무슨 무슨 의화단(義和團)을 만든다든가 반란을 일으킨다든가 하는, 권력을 빼앗길까 봐 가장 두려워한다. 나는 우리가 절대로 정치에 개입하지 않으며, 절대로 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절대로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만약 리훙쯔(李洪志)가 정치에 참여했다면 오늘날 전한 것은 바로 사법이다. 당신들은 내가 한 말을 기억하라. 역사상에서 나 리훙쯔(李洪志)가 어떻게 이 법을 전했으며 당신들에게 이 일을 어떻게 하라고 했으면, 천추만대로 당신들은 모두 따라서 배워야 하는바 절대로 그로 하여금 빗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내가 당신들에게 남겨둔 형식을 장래에 후세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할 것이다. 여러분 알다시피, 우리는 느슨하게 관리하며 돈을 만지지 않고 직위가 없으며 벼슬을 하지 않는다. 수련하는 사람이 돈을 만지기만 하면 복잡해지며, 명리(名利)는 인간이 수련하는 데 최대의 장애이다.

물론 당신은 속인사회 중에 있으며 당신은 당신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당신이 돈을 벌고 속인의 벼슬을 하며 속인의 장사를 할 수 있는데, 이런 것은 모두 당신의 수련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내가 당신들에게 전해준 수련형식이다. 수련형식 중에는 벼슬을 줄 수 없으며 불법을 돈 버는 데 사용해서는 안 되며, 어떠한 보도소도 돈을 저축하지 않는데, 이것은 수련형식이 결정한 것이다. 이렇게 큰 법을 사람에게 전해줌은 절대로 3년, 5년 떠들썩하다가 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장래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을 것이며, 매우 많고 매우 많은 사람들이 법을 얻을 것이며, 이 숫자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이 법은 다만 인류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중국에만 속하는 것이 아니며, 전 세계에서 더욱 많은 생명에 이르기까지 모두 법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우주의 법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부디 그를 소중히 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이전에 당신들은 무엇인지 몰랐다. 더군다나 나는 초기에 이 법을 전할 때 기공의 형식으로 전했는데, 왜냐하면 사람이 법을 인식하는 데는 과정이 있어야 하고, 갑자기 이처럼 높은 법을 말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왜 오늘날 역사상에 기공이 나타났는가? 바로 내가 오늘날 이 대법을 전할 수 있게 하기 위해 길을 닦아 놓은 것이다. 기공사 자신도 무엇 때문인지 모르며 가짜 기공사는 더욱 모르는데 그런 가짜가 아직도 사회상에서 화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진정하게 길 닦기 역할을 한 그런 기공사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끝마쳤는데, 어떤 이는 누군가가 그에게 나와서 여기까지만 하라고 한 것을 알고 있다. 만약 그들이 나와서 기공을 전하지 않고 기공이 사회상에서 널리 전해지지 않았으면, 내가 오늘날 갑자기 이렇게 높은 법을 말하면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왜 기공이 나타났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대법에 화란을 일으키고 있는 그들에게 좋은 결말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들은 사실 이미 지옥 속에 있다. 단지 그들의 인간세상의 수명이 아직 끝나지 않았을 뿐이다.

대법의 유전과정은 시련을 겪었으며 매우 쉽지 않았다. 이것은 정법이므로 필연적으로 교란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바른 것이 나타나면 일체 부정(不正)한 것과 바르지 못한 것을 모두 건드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아주 순조롭게 전해 내려온 것은 반드시 옳지 못한 것에 부합된 것이며, 그러기에 번거로움이 없다. 마난(魔難) 속에서 정념정행 하지 않으면, 그가 세인에게 남겨둘 참조와 위덕은 없다. 장래에 우리가 어떤 어려움에 부딪히더라도 여러분은 모두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이 우주 중에 마가 존재하는 것을 허용한다. 무엇 때문에 그것의 존재를 허용하는가? 내가 한 가지 이치를 말하겠다 ―― 상생상극(相生相剋)은 우주의 저층, 특히 삼계 내의 이치이다. 왜 상생상극의 이치가 존재하는가? 일정한 우주 개념의 중간 층차에 두 종류의 물질이 존재하고 있는데, 두 종류의 물질은 아래로 분화되면 두 종류의 같지 않은 물질로 변한다. 왜냐하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름답지 못하며 위로 올라갈수록 아름다운데, 아래로 갈수록 더 분화되어 차이가 갈수록 커진다. 그럼 이 두 종류의 같지 않은 물질이 우주 아래로 내려오면, 그 둘의 같지 않음과 차이가 더욱 표현되며, 아래로 내려올수록 차이가 크다. 그런데 더 아래로 내려오면 두 종류의 같지 않은 물질은 대립성을 나타낸다. 더 아래로 내려오면 더욱 뚜렷하게 대립하는데, 이로써 바로 상생상극의 이치가 나타나는 것이다. 더 아래로 내려와 또 태극의 음양학설이 생겼다. 더 아래로 내려와서 특히 인류 이 단계에 이르렀을 때, 상생상극의 이치는 더욱 뚜렷하다. 부처 이 경지에 이르렀을 때, 부처는 실질상 무엇인가? 불타(佛陀)는 바로 우주의 보위자이다. 여래불인 그는 그 세계의 법왕(法王)이며 그의 관리는 어떤 수단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비와 위덕을 사용하고 그의 중생도 모두 그의 그 세계의 표준에 부합되는데 대단히 아름답다. 이 경지 중의 상생상극의 이치 중에서 부처(법왕)와 서로 대응되는 것이 바로 마왕(魔王)이다.

마왕을 말하자면, 여러분은 밀종(密宗)을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밀종은 속인사회 중에서 유전되어서는 안 되며 다만 비밀리에 수련할 수밖에 없다고 거듭 말했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밀종은 정각(正覺)을 닦을 뿐만 아니라 마왕도 닦는데, 부처(법왕)도 닦고 또 마왕도 닦는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회에서 만약 이런 것을 전한다면, 사회상에서 어떤 결과를 조성할 것인가. 바로 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나는 밀종 그것을 사회에서 전해서는 안 되고, 다만 절에서만 닦을 수 있다고 늘 말했다. 무릇 사회상에서 전하는 것은 모두 가짜이며 사기를 치는 것이다. 상생상극이 속인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귀신이 있다는 표현으로서, 바로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며 이렇게 서로 대응되는 이치가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이런 대립성이 있기에 이런 상생상극의 이치가 존재하고, 그것이 속인사회의 이런 상태를 가져다준다. 내가 전한 법을 포함해서, 믿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믿지 않는 사람이 있고, 세인 중에는 좋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 사람이 있으며, 공적(公的)인 것을 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적(私的)인 것을 위하는 사람이 있고, 흉금이 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흉금이 좁은 사람이 있다. 일반일정(一反一正)이 바로 이런 대응관계이며, 이 일체 표현이 바로 인류사회의 상태이다.

속인사회 중의 어떤 일의 표현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한 가지 좋은 일을 이루려고 할 때, 당신은 상응한 크기의 어려움이나 어떤 교란을 돌파해야만 비로소 그 일을 이룰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생상극의 이치가 가져다 준 제약성이다. 바로 이런 이치가 존재하고 마성의 교란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어떤 것을 얻기가 쉽지 않으며, 당신이 일을 완성하려면 노력을 해야 한다. 당신의 노력이나 분투를 거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것을 얻었을 때, 당신은 비로소 그것을 소중히 할 줄 알고, 기쁨을 느낀다. 어렵게 얻어야만 당신은 귀중하다고 느끼고, 승리를 얻은 후의 희열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 상생상극의 이치가 없고 마의 교란이 없어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하기만 하면 성취되고 마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당신이 얻은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귀중하다고 느끼지 않을 것이며, 당신은 승리후의 희열도 없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당신은 사는 것이 무료하다고 느낄 것이고 사는 재미도 없을 것이다. 하기만 하면 이루어진다면 무엇을 해도 모두 의미가 없다. 사람은 사는 것이 재미도 없고 멋이 없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어려움 속에서도 그것이 좋지 않다고만 보지 말라. 그것은 이런 한 가지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왜 어떤 사람은 나에게 말하는가 ―― 사부님은 왜 마를 깨끗이 청리해 버리지 않습니까? 내가 마를 다 청리해 버렸다면 당신은 오늘날 수련할 수 없다. 누군가 당신이 최종적으로 이 법에 대하여 견정한가 견정하지 않은가를 고험(考驗)함이 없고, 마의 교란이 없다면 당신은 어떤 마음들을 제거해 버리지 못하며, 마의 교란이 없다면 업을 소멸할 수도 없는데, 바로 이런 이치이다. 사람과 사물, 생명 자체도 모두 이 두 가지 특성이 존재하며 사람은 바로 불성과 마성으로 동시에 구성된 것이다. 당신이 불리(佛理) 중에서 수련할 때는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있는 것이며, 사람이 자신을 느슨히 하여 어떠한 도덕적 단속이 없을 때가 바로 마성의 대발작이다. 사람이 격동할 때, 미친 듯이 고함지를 때, 화를 낼 때가 바로 마성의 대분출이다. 지금은 만마(萬魔)가 세상에 나와 사회의 각개 영역에서 모두 사람이 마성을 발산하도록 이끈다. 미술작품, 문예작품, 문학작품이 제멋대로이고 정념이 없이 마구 표현하여 마치 미친 듯한데, 요마(妖魔)와 무슨 다를 바가 있는가? 남자가 머리를 길고 괴상하게 길러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무슨 예술가, 음악가의 형상이라고 하는데, 사실은 모두 마성에 이끌린 심리적 변태이다.

도덕의 단속이 있는 사람, 그것이야말로 비로소 불성(佛性)이다. 무엇을 부처수련이라고 하는가? 바로 당신의 마성을 제거하고 모두 불성으로 동화되는 것이다. 내가 방금 전에 말한 것은 대단히 높으며 나아가 매우 구체적이다. 나는 이만큼 이야기하겠다. (장시간 열렬한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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