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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개 론

 

기공(氣功)은 중국에서 아득히 멀고먼 옛날부터 전해왔으며, 유구한 역사가 있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의 기공수련은 남달리 우월한 조건을 갖고 있다. 정법수련으로서 불(佛), 도(道) 양대가(兩大家)의 기공은 비밀리에 전해오던 많은 대법(大法)을 이미 공개했다. 도가의 수련방법이 매우 독특한가 하면, 불가도 자기의 수련방법이 있다. 法輪功(파룬궁)은 바로 불가기공의 고층차(高層次) 수련대법(修煉大法)이다. 전수반에서 나는 우선 여러분들의 신체를 고층차로 수련하기에 적합한 상태로 조절해 준 다음, 여러분들의 몸에 法輪(파룬)과 氣機(치지)를 넣어 주며, 또 공법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준다. 그 외에도 나의 법신(法身)이 여러분들을 보호해 준다. 그러나 단지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아직 공이 자라게 하는 데에 도달할 수 없으므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고층차상의 수련 이치를 반드시 이해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려는 내용이다.

나는 고층차에서 공을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맥(脈)이나 어느 혈(穴), 어느 갈래 경락(經絡)을 수련하라고 강의하지 않는다. 나는 수련대법(修煉大法)을 강의하는바, 이는 진정으로 고층차에서 수련하는 대법이다. 처음 들으면 허황한 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기공수련에 뜻을 가진 사람으로서 오로지 세심하게 체험하고 깨닫는다면, 오묘함이 모두 그 안에 있다.

1. 기공(氣功)의 연원(淵源)

우리가 지금 말하는 기공은 실제적으로 기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것은 고대 중국인의 단독수련(獨修) 또는 종교 수련에서 온 것이다. 단경(丹經), 도장(道藏)을 모두 뒤지고 대장경(大藏經)을 모두 뒤져보아도 ‘기공’이란 두 글자를 찾아볼 수 없다. 우리 현 인류의 이러한 문명이 발전하는 과정 중에 기공은 종교의 유아기를 거쳐 왔다. 종교가 형성되기 전에도 기공은 이미 존재했다. 종교가 있은 후에는 일정한 종교적 색채를 띠었다. 그  이름을 원래 수불대법(修佛大法), 수도대법(修道大法)이라고 했으며, 또 구전금단(九轉金丹術), 나한법(羅漢法), 금강선(金剛禪)과 같은 여러 가지 이름도 있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기공’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현대인의 의식에 더욱 부합하고 더욱 쉽게 사회에 보급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우리 중국의 매우 순수한 인체수련법이다.

기공은 현재의 우리 인류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상당히 멀고먼 역사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기공은 어느 때에 생겨났는가? 어떤 사람은 기공이 이미 3천년 역사를 갖고 있으며, 당나라시기에 성행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5천년 역사를 갖고 있어, 중화민족의 문화처럼 유구하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출토 유물로 보아 이미 7천년 역사가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 기공은 현대인류가 발명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사전문화(史前文化)다. 공능이 있는 사람이 확인한 바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는 이미 아홉 번 폭발한 이후의 조합체(組合體)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은 이미 여러 차례 훼멸된 적이 있다. 매번 별이 다시 합성, 조합된 이후에 인류는 또다시 번성해서 퍼져나갔다. 현재 우리들은 세계에서 현대문명을 넘어선 수없이 많은 것들을 이미 발견했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에 비추어 보면, 사람은 원숭이에서 진화해 왔으며, 문명도 일만 년을 초과하지 못한다. 그러나 출토 유물로 보면 유럽의 알프스 동굴 안에 25만 년 전의 벽화가 있는데, 예술적 수준이 무척 높아 현대인들로서는 따라갈 수 없다. 페루 국립대학의 박물관에는 큰 돌이 있는데, 그 돌에는 한 사람이 조각되어 있고, 망원경을 들고 천체를 관찰하고 있다. 이 조각은 이미 3만여 년 역사를 갖고 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갈릴레이가 1609년에 발명한 배율 30배 망원경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300여 년 역사에 불과한데, 3만 년 전에 망원경이 어디 있었겠는가? 인도에는 쇠막대기 하나가 있는데, 철의 순도가 99.몇 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현재의 제련기술로도 이처럼 순도 높은 철은 제련할 수 없다니 이미 현대의 기술 수준을 넘어섰다. 누가 이 문명을 창조했는가? 인류는 그때에 아마 미생물이었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이러한 물건을 창조할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것들의 발견은 세계 각국 과학자들의 큰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것을 ‘사전문화(史前文化)’라고 부르게 된 것은 해석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매 시기의 과학수준은 모두 다르며 어떤 시기는 무척 높아, 우리 현대 인류의 수준을 넘어섰다. 그러나 그 문명은 훼멸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는데, 기공은 우리 현대인이 발명한 것이 아니고 현대인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현대인이 발견하고 완성한 것으로서, 바로 사전문화(史前文化)이다.

기공은 중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외국에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기공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서방나라에서는 마술이라고 한다. 미국이나 영국 등에서는 그렇게 부른다. 미국에 한 마술사가 있는데, 실제로 그는 특이공능(特異功能)을 가진 대사(大師)로서, 만리장성의 성벽을 꿰뚫고 나가는 시범을 보였다. 당시 그가 뚫고 나갈 때 자기 몸을 벽에 붙여 흰 천으로 가린 다음 꿰뚫고 나갔다. 그는 왜 그렇게 했는가? 그렇게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가 마술을 부리는 것으로 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우리 중국에 고수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교란을 받을까 두려워 자신을 천으로 감싸고서 들어갔다. 나올 때에는 양손으로 천을 젖히고 걸어 나왔다. ‘전문가는 그 비결을 보고, 문외한은 재미로 본다.’ 그렇게 하여 관중은 마술을 부리는 것으로 여겼다. 그들이 그러한 공능을 마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그들이 그것을 신체수련에 쓰는 것이 아니라, 무대에서 시범공연을 통해 신기함을 자랑하며, 그를 낙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낮은 층차에서 말하는 기공은 사람의 신체 상태를 고쳐서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목적에 도달하는 것이고, 고층차에서 말하는 기공은 바로 本體(번티)를 수련하는 것이다.

2. 기(氣)와 공(功)

우리가 현재 말하는 ‘기(氣)’를 고대 사람들은 ‘기(炁)’라고 불렀는데, 그 본질은 같은 것으로서 모두 우주의 기를 가리키며, 우주 중의 일종 무형무상(無形無象)의 물질을 가리킨다. 그것은 공기의 기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인체는 수련을 통해서, 이런 물질의 에너지를 동원해 인체상태를 바꿈으로써,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기(氣)는 곧 기(氣)일 뿐 당신도 기가 있고 그도 기가 있다. 기와 기 사이에는 제약작용이 없다. 어떤 사람은 기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 하고, 당신도 어떤 사람에게 기를 내보내어 그를 치료해 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설은 아주 비과학적이다. 왜냐하면 기는 전혀 병을 치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공인(煉功人)의 몸에 아직 기가 있으면 그의 신체가 유백체(奶白體)가 아님을 설명하며, 그에게 아직도 병이 있다는 것을 설명한다.

높은 공부(高功夫)를 연마한 사람은 기가 아니라 고에너지덩이를 내보낸다. 이는 빛의 형식으로 표현되는 고에너지물질로서 과립은 매우 미세하고 밀도가 아주 큰데, 이것이 바로 공(功)이다. 이때에야 비로소 속인(常人)을 제약할 수 있고 비로소 다른 사람의 병을 볼 수 있다. 불광이 널리 비치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도다(佛光普照, 禮義圓明)라는 한마디 말이 있다. 그 뜻은, 정법 수련자는 그의 몸에 지닌 에너지가 매우 커서 그가 지나가는 곳, 즉 그의 에너지가 덮인 범위 내에서는 일체의 비정상 상태를 바로잡아 정상 상태로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예컨대 사람의 신체에 병이 있다는 것은 곧 신체 상태가 비정상임을 말하는데, 이런 상태를 바로잡아 주면 병도 곧 없어진다는 것이다. 좀 더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공(功)은 바로 에너지다. 공은 물질성이 있어서 연공인은 수련을 통해 그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체험하고 관찰할 수 있다.

3. 공력(功力)과 공능(功能)

(1) 공력은 心性(씬씽)에 의하여 수련해 낸 것이다.

진정으로 사람의 공력의 층차를 결정하는 공은 연마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德(더)’라는 이 물질을 전화해 온 것이며 心性(씬씽)수련으로 닦아낸 것이다. 이 전화과정도 속인들이 상상하는 안정설로(安鼎設爐), 채약연단(採藥煉丹)하는 것처럼 연마해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공은 몸 밖에서 생기는데, 心性(씬씽)을 제고(提高)함에 따라 인체의 하반부에서 시작해  나선형으로 위로 올라가며 자라는데, 완전히 몸 밖에서 형성되며 그 다음 머리 위에 공기둥을 형성한다. 공기둥이 얼마나 높은가에 따라 곧 이 사람의 공이 얼마나 높은가가 결정된다. 공기둥은 아주 은폐된 공간에 있기 때문에 일반사람은 쉽게 볼 수 없다.

공능(功能)은 공력으로 가지(加持)한다. 공력이 높고 층차가 높은 사람은 공능이 크고 운용도 자유자재하며, 공력이 낮은 사람은 공능이 작고 운용할 때도 자유자재하지 못하거나 심지어 운용할 수 없다. 공능 그 자체는 한 사람의 공력의 크기, 층차의 높이를 대표하지 못한다. 한 사람의 층차의 높이를 결정하는 것은 공력이지 공능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잠가져(鎖)’ 연마하는데, 그의 공력이 아주 높다고 하더라도 공능은 많지 않을 수 있다. 공력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며 이는 心性(씬씽)을 닦아 나오는 것으로서, 가장 관건적인 것이다.

(2) 공능은 연공인이 추구할 것이 아니다

모든 연공인은 모두 공능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신통(神通)이란 것은 사회적으로 매우 매력이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모두 공능을 좀 갖추려고 한다. 하지만 心性(씬씽)이 나쁘면 이러한 공능을 갖출 수 없다.

어떤 공능은 속인에게도 있을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천목(天目)열기, 천이통(天耳通), 사유전감(思維傳感), 또는 예측공능 따위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능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점오(漸悟)의 상태에서 모두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공능은 속인에게는 있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실공간의 일종 물체를 다른 종류의 물체로 바꾸어 놓는 그런 것은 속인에게 있을 수 없다. 큰 공능은 후천적인 연마로 나온다. 法輪功(파룬궁)은 우주의 원리에 따라 발전해 온 것으로서, 우주 중에 존재하는 공능은 法輪功(파룬궁)에 모두 포함되어 있는바, 연공인이 수련을 어떻게 하는가에 달렸다. 공능을 좀 얻으려는 생각이 그리 틀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나치게 강렬한 추구는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므로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낮은 층차에서 얻은 조그마한 공능은, 속인들 앞에서 재간을 피우고 속인 중 강자가 되는 것에나 쓰일 뿐, 별로 쓸모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바로 心性(씬씽)이 높지 않다는 것을 말하므로 공능을 주지 않는 것이 옳다. 공능을 만약 心性(씬씽)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준다면 나쁜 일을 하는 데 쓸 수 있다. 心性(씬씽)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그가 나쁜 일을 하지 않는다고 보증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무릇 드러내놓고 시범을 보이는 공능은 모두 인류사회를 개변하는 데 쓸 수 없으며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개변할 수도 없다. 진정으로 높은 공능은 드러내놓고 시범을 보이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데, 그 영향과 위험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바로 어떤 고층건물을 무너뜨리는 시범 같은 것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특별히 큰 공능으로 말한다면 특수한 사명을 지닌 사람만이 사용하는 것을 허용할 뿐, 그렇지 않은 경우 사용을 허용하지 않으며 또한 내놓지도 못한다. 왜냐하면 상사(上師)에게 통제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 속인들은 종종 기공사에게 한사코 보여 달라고 하면서, 그를 핍박해 내놓아 보라고 한다. 공능이 있는 사람은 모두 공능을 내놓고 보여주기를 싫어한다. 그것은 내놓도록 허용되지 않은 것인데, 일단 내놓으면 사회상태 전반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진정한 대덕지인(大德之人)이라면 그의 공능을 내놓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기공사는 시범을 보일 때에 심정이 몹시 좋지 않아, 그는 돌아간 후에 한바탕 크게 울고 싶어 한다. 그에게 공능을 보여 달라고 핍박하지 말라! 그가 공능을 내놓는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한 수련생이 잡지 한 권을 가져왔는데,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크게 반감을 느꼈다. 그 뜻은, 국제 기공회의를 여는데, 공능이 있는 자는 공능을 내보이고 시합에 참가하라, 공능이 센 사람이면 누구든 오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읽은 후 마음이 며칠 동안이나 괴로웠다. 이것은 내놓고 시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내놓으면 후회하게 된다. 속인이니까 그는 세상에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중시하게 마련이지만 기공사는 곧 자중(自重)해야 한다.

공능을 가지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연공인의 사상 경지와 추구를 반영하는데, 추구하는 사상이 깨끗하고 바르지 못하고, 확고하지 못하면 높은 공능을 얻을 수 없다. 여기에는 한 가지 원인이 있다. 당신이 아직 개오(開悟)하기 전이라면 당신은 사물을 봄에 좋고 나쁨을 오로지 世間法(쓰젠파)의 시비 표준에 따라 볼 수밖에 없는데, 당신이 일의 진상을 보지 못하고 그 일의 인연관계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때리고 욕하며 괴롭히는 것은 필경 인연(因緣)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당신이 이를 꿰뚫어 보지 못하면 오히려 일을 망치게 된다. 속인 사이의 은혜와 증오, 시시비비는 세간의 법이 관할하고 있기에 연공인은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아직 개오하기 전이기 때문에 당신의 눈앞에 보이는 일의 진상은 당신이 본 것과 같지 않을 수도 있다. 누가 누구를 주먹으로 한대 때렸다면 바로 그들은 ‘업(業)’을 청산하는 것일 수 있는데, 당신이 상관한다면 그들이 ‘업’을 청산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업’이란 인체 주위에 있는 검고 검은 물체이며 그것은 다른 한 공간의 물질존재로서, 이것이 병이나 재앙으로 바뀔 수 있다.

공능은 사람마다 다 있지만, 문제는 끊임없는 수련을 통해 더 개발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공인으로서 만약 공능만 얻고자 추구한다면 안목이 낮아지고, 사상이 불순해진다. 그가 공능을 얻어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그 속에는 모두 사심이 포함되어 필연적으로 연공을 방해하며, 그 결과 공능을 얻을 수 없게 된다.

(3) 공력의 파악

어떤 연공인은 연공한 시간이 길지 않은데도 다른 사람의 병을 치료하려고 하며 영험한가를 알아보려고 한다. 공력이 높지 못한 사람으로서 당신이 일단 손을 내밀어 시험을 하면 곧 환자 몸에 있는 많은 검은 기(黑氣), 병기(病氣), 더러운 기(濁氣)를 자기 몸에 끌어들이게 된다. 당신이 병기(病氣)를 방어할 능력이 없고 몸에 또 보호막이 없으므로, 환자와 한마당을 형성하는데, 공력이 높지 못하면 방비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매우 괴로운 감을 느끼게 된다. 만일 당신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온몸에 병이 생긴다. 때문에 공력이 높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병을 봐줄 수 없다. 공능이 나오고 일정한 공력을 구비해야만 기공으로 병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비록 공능이 나와서 병을 볼 수는 있지만 층차가 매우 낮을 때에는 사실 자신이 축적한 공력으로 병을 보며 자신의 에너지로 병을 보는 것이다. 공은 바로 에너지이며 영체(靈體)로서, 축적하기가 매우 힘들기 때문에 공을 내보내는 것은 곧 자신을 소모하는 것이다. 당신이 공을 밖으로 내보내면 머리 위에 있는 공기둥(功柱)의 높이는 곧 줄어들고 소모되는데 이는 매우 가치 없는 짓이다. 그러므로 나는 공력이 높지 못할 때 다른 사람의 병을 보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당신의 수법이 아무리 높아도, 역시 자신의 에너지를 소모하는 짓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공력이 일정한 정도에 도달하면 각종 공능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공능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것도 매우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천목(天目)이 열렸다면 보지 않으려 해도 안 되며 늘 사용하지 않으면 닫히기 쉽다. 보는 것도 늘 보아서는 안 되고 또 너무 많이 보면 에너지가 많이 새나간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영원히 사용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만약 영원히 사용하지 않는다면 수련은 해서 무엇 하겠는가? 문제는 어느 때에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다. 오로지 일정한 정도까지 수련하여 스스로 보충할 능력을 구비했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다. 法輪功(파룬궁)을 일정한 정도까지 수련하면, 공을 아무리 내보내도 法輪(파룬)이 자동적으로 연화(演化), 보충할 수 있으며 자동적으로 연공인의 공력수준을 유지하고 한시도 줄어들지 않게 한다. 이것이 法輪功(파룬궁)의 특징이다. 오로지 이때가 되어야만 비로소 공능을 사용할 수 있다.

4. 천목(天目)

(1) 천목 열기

천목의 주통로는 앞이마 한가운데와 산근(山根) 사이에 있다. 속인이 육안으로 사물을 보는 것은 바로 사진기의 원리와 마찬가지로, 거리의 원근과 광선의 강약에 따라, 유리체 또는 동공의 크기를 조절하여 신경세포를 통해 대뇌 후반부의 송과체(松果體)에 영상이 나타나게 해서다. 특이공능(特異功能)의 투시는 곧 천목을 통해 송과체가 직접 밖을 내다보게 한다. 일반인의 천목은 열려 있지 않아 주통로 부위의 틈새가 아주 좁고 아주 어두우며, 안에는 영기(靈氣)가 없고, 빛이 나지 않는다. 일부 사람은 막혔으므로 보지 못한다.

우리가 천목을 여는 데는 첫째, 외부의 힘을 통하거나 또는 스스로 수련을 통해 통로를 여는 것이다. 개개인의 통로 모양은 같지 않아 타원형, 원형, 마름모꼴, 삼각형이 있는데, 잘 연마할수록 더 둥글게 닦인다. 둘째는 사부(師父)가 당신에게 눈을 하나 주는 것으로서, 만약 혼자 수련하는 경우라면 스스로 닦아야 한다. 셋째는 천목 부위에 정화지기(精華之氣)가 있어야 한다.

보통 우리가 물건을 보는 것은 두 눈을 통해 보는데, 바로 이 두 눈이 우리가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를 막아버리고 그것이 병풍처럼 가로막기 때문에, 우리는 다만 우리 이 물질공간의 물체만을 볼 수 있다. 천목을 연다는 것은 바로 이 두 눈을 피해 보는 것을 말한다. 아주 높은 층차에 이른 후에는 진안(眞眼)도 수련해 낼 수 있다. 곧 천목의 진안으로 보거나 또는 산근(山根) 부위의 진안으로 볼 수 있다. 불가에서는 땀구멍 하나하나가 모두 눈이며, 온몸이 모두 눈이라고 한다. 도가에서는 매 혈위(穴位)가 모두 눈이라고 한다. 그러나 주통로는 천목에 있기에, 반드시 먼저 그것이 열려야 한다. 전수반(傳授班)에서 나는 개개인 모두에게 천목을 열어주는 것을 넣어 주었다. 개개인의 신체소질이 다르므로 나타나는 효과도 같지 않다. 어떤 사람은 어두운 동굴을 보는데 마치 깊은 우물과도 같다. 이것은 바로 천목의 통로가 검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본 것은 하얀 통로인데, 만약 앞에 물체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면 곧 천목이 열린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물체가 회전하고 있는 것을 보는데, 이것이 바로 사부가 넣어 준 천목을 여는 그것으로서, 천목을 꿰뚫은 후에야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천목으로 하나의 큰 눈을 볼 수 있는데 부처의 눈이라고 여기지만, 실제적으로는 그 자신의 눈으로서, 이것은 흔히 선천적 근기(根基)가 비교적 좋은 사람이다.

우리들의 통계로는 매 차례 전수반에서 천목이 열리는 사람은 절반 이상이다. 천목이 열린 후, 이와 관련된 한 가지 문제는 心性(씬씽)이 높지 못한 사람은 그것으로 나쁜 일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나는 당신의 천목을 직접 혜안통(慧眼通) 층차에 열어준다. 다시 말하면 고층차로 열어주어 당신으로 하여금 다른 공간의 광경을 직접 보게 하며 연공 중에 나타나는 물체를 보게 하여 당신이 그것을 믿게 함으로써 당신의 연공 신심을 북돋워 준다. 금방 연공을 시작한 사람은 心性(씬씽)이 아직 속인을 초월하는 높이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속인을 초월하는 것을 구비하게 되면 좋지 못한 일을 하기 쉽다. 예를 들어 우스갯소리를 하나 하자. 당신이 거리를 가다가 복권을 파는 것을 보면, 아마 그 일등상은 틀림없이 당신이 모두 뽑아갈 것이다. 바로 이런 뜻을 말하는데, 이렇게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의 원인은, 우리 여기에서는 천목을 대대적으로 열어주는데, 만약 모두 낮은 층차로 열어준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사람마다 모두 인체를 투시할 수 있고 모두 벽을 사이에 두고 물건을 볼 수 있다면, 내가 말하겠는데, 그것이 인류사회이겠는가? 속인사회의 상태를 심하게 교란하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으며 역시 그렇게 할 수 없다. 게다가 이는 연공인에게도 좋은 점이 없으며 연공인의 집착심을 키워 줄 뿐이다. 그러므로 당신에게 낮은 층차로 열어주지 않고 직접 고층차로 열어준다.

(2) 천목의 층차(層次)

천목은 여러 가지 층차가 있다. 그 층차가 같지 않음에 따라 보는 공간도 같지 않다. 불교에서는 ‘5통’이 있다고 하는데, 육안통(肉眼通), 천안통(天眼通), 혜안통(慧眼通), 법안통(法眼通), 불안통(佛眼通)이다. 매 한 층차를 또 상, 중, 하로 나눈다. 천안통 이하 층차에서는 우리가 있는 이 물질세계만을 볼 수 있다. 혜안통 이상 층차에서야 비로소 다른 공간을 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투시공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는 것이 매우 정확하여 ‘CT’스캐닝보다 더 또렷하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여전히 우리의 이 물질세계로서, 아직 우리들이 존재하는 공간을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아직 고층차 천목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의 천목 층차가 얼마나 높은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정화지기(精華之氣)의 많고 적음과 주통로의 넓고 좁음, 밝은 정도, 그리고 통로가 막힌 정도에 따라 결정된다. 천목이 얼마나 환하게 열리는가는 내부의 정화지기가 관건적인 요소다. 여섯 살 이하 어린이는 천목을 열기가 아주 쉬운데, 손을 댈 필요도 없이, 내가 말만 해도 그는 곧 열린다. 어린이들은 선천적으로 물질세계의 불량한 영향을 아주 적게 받았고, 자신도 무슨 나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선천적인 정화지기가 잘 보존된 까닭이다. 여섯 살 이상 어린이는 천목을 열기가 점점 어려워지는데, 그것은 나이가 많아짐에 따라 외계에서 받는 영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특히 불량한 후천적 교육과 방종(放縱)으로 나쁘게 변하면, 그의 정화지기가 다 흩어져버리는데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틀림없이 모두 흩어져버린다. 정화지기가 모두 흩어져버린 사람은 후천적으로 연공을 통해 점차 보충할 수 있으나, 상당히 긴 시간을 거쳐야 하고 고생을 많이 해야 한다. 그래서 정화지기는 극히 진귀한 것이라고 한다.

나는 사람의 천목을 천안통 층차로 열어주는 것을 주장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연공인의 공력이 크지 않을 때에는 연공으로 축적한 에너지가 투시할 때 쓰는 에너지보다 많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기(靈氣)를 많이 잃으면 천목은 도로 닫힐 수 있는데 일단 닫힌 후에 다시 열자면 쉽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에게 천목을 열어줄 때 보통 혜안통 층차로 열어준다. 보이는 것이 또렷하든 그렇지 못하든 수련자로 하여금 다른 공간의 물체를 볼 수 있게 한다. 선천적 조건의 영향을 받아 어떤 사람은 아주 또렷하게 보고, 어떤 사람은 본 물체가 사라졌다 나타났다 하고, 어떤 사람은 또렷하게는 보이지 않지만, 최소한 빛을 볼 수는 있게 한다. 이는 연공자가 고층차로 발전하는 데에 좋은 점이 있다. 또렷이 보이지 않는 것은 연공을 통해 후천적으로 보충하면 된다.

정화지기가 부족한 사람이 천목으로 본 광경은 흑백이고, 정화지기가 비교적 많은 사람이 천목으로 본 광경은 천연색이며 더욱 또렷하다. 정화지기가 많을수록 선명도가 더욱 좋다. 그러나 사람마다 모두 같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천목이 태어나서부터 열려있고, 어떤 사람은 꽉 막혀 있다. 천목이 열릴 때의 광경은 마치 꽃봉오리가 피어나는 것처럼 한겹 한겹 열린다. 가부좌하고 있을 때 시작에는 천목에 빛이 있음을 발견하는데, 처음에는 빛이 그다지 밝지 않다가 나중에 붉게 변한다. 어떤 사람의 천목은 아주 굳게 봉쇄되어 있어, 열릴 때에는 반응이 아주 격렬할 수 있다. 주통로와 산근부위의 근육이 조여들면서 마치 그곳의 근육이 한데 엉켜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감을 느끼며, 관자놀이와 앞이마가 부어오르고 아픈 감이 있는데, 이것은 모두 천목이 열릴 때의 반응이다. 천목이 쉽게 열리는 사람은 우연하게 어떤 것을 볼 수 있다. 전수반에서 어떤 사람은 무의식중에 나의 법신(法身)을 보았는데, 그가 의식적으로 보려할 때는 또 없어졌다. 사실은 눈으로 본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 본 그런 상태를 시종 유지하면 점점 또렷하게 볼 수 있다. 만일 자세히 보려하면 실제로는 눈이 움직이고 시신경(視神經)이 작동하게 되므로 곧 보지 못하게 된다.

천목의 층차가 같지 않기에 보는 공간도 같지 않다. 어떤 과학연구 부서에서는 이런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어떤 기공실험(氣功試驗)이 예정한 효과에 도달하지 못하고 심지어 상반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예를 들어 어떤 부서에서 특이공능의 측정방법을 만들었는데, 기공사에게 밀봉한 함 속에 무엇이 있는가를 맞혀보게 했다. 기공사의 천목 층차가 같지 않음에 따라 대답한 결과도 각각 달랐다. 그런 까닭에 측정자는 천목은 가짜로서 사람을 속이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와 같은 측정방법이라면 오히려 천목 층차가 낮은 사람이 투시하는 것이 효과가 좋다. 왜냐하면 그의 천목은 천안통의 층차까지만 열려있기 때문에 물질공간의 사물을 관찰하는 데에만 적합하다. 그러므로 천목을 모르는 사람은 그의 공능이 제일 높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물체든, 그것이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다른 공간에서는 다른 모양으로 나타난다. 컵 한 개를 예로 든다면 그것을 만들어 낼 때, 그것의 영체가 동시에 다른 한 공간에 존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영체가 존재하기 전에는 또 다른 물건일 수도 있다. 천목 층차가 제일 낮으면 보이는 것은 컵이고, 한층 높아지면 보이는 것은 다른 공간의 그 영체이며, 또 좀 더 높으면 보이는 것은 그 영체 이전의 물질형식이다.

3) 요시(遙視)

천목이 열린 후에 어떤 사람은 요시가 나타나는데 천리 밖의 물체를 볼 수 있다. 사람마다 모두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이 있으며, 이 공간 안에서 그는 마치 우주의 크기와 같다. 그의 특정한 공간 안에 그에게는 이마 앞에 거울 하나가 있는데, 우리의 이 공간에서는 볼 수 없다. 이 거울은 사람마다 모두 있으며, 다만 연공하지 않는 사람의 이 거울은 엎어져 있고, 연공하는 사람의 이 거울은 점차 뒤집힌다. 뒤집힌 다음에는 곧 그가 보려는 물체를 비추어 볼 수 있다. 그의 특정한 공간에서 그는 무척 크며, 몸집이 아주 크기 때문에 이 거울 역시 대단히 커서 무엇을 보려고 하면 거울은 곧 비춰 줄 수 있다. 그러나 비춰 주어도 그는 아직 볼 수 없다. 영상이 거울에 한순간 머물러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울은 뒤집힐 줄 아는데, 비춘 물체를 당신에게 한 번 보이고는 또 뒤집어지고 재빨리 또 뒤집어지면서 쉴 새 없이 뒤집힌다. 영화필름은 매초에 24프레임이어야만 연속동작을 볼 수 있다. 거울이 뒤집혀 돌아가는 속도는 이보다도 더 빠르므로, 연속적이고 아주 또렷하게 보인다. 이것이 바로 요시(遙視)이다. 요시의 이치는 이처럼 간단하다. 이것은 모두 비밀 중의 비밀인데, 나는 몇 마디 말로 그것을 설명했다.

(4) 공간

공간은 우리가 볼 때 아주 복잡하다. 현재 우리 인류는 인류가 존재하는 공간만을 알 뿐, 다른 공간은 아직 탐측해 낼 방법이 없다. 다른 공간에 대해 우리 기공사들은 벌써 몇십 가지 층차의 공간을 보아냈으며, 이론상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과학적으로는 아직까지 실증할 방법이 없다. 어떤 것은 당신이 비록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는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우리 공간에 반영되어 왔다. 예를 들면, 세계에는 버뮤다 제도라는 곳이 있는데, 사람들은 마의 삼각지대라고 부른다. 어떤 배는 그곳에 가기만 하면 사라지고, 어떤 비행기는 그곳에 이르러 사라졌다가 여러 해가 지난 후에 다시 나타나기도 했다. 누구도 이 원인을 해석할 수 없었는데, 누구도 현재 인류의 사유 이론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그것은 다른 공간으로 통하는 통로이다. 그것은 우리 이 문과 같은 그런 문이 아니고 음양이 어긋나 있는 상태로서, 만일 배가 이 음양이 어긋나 잘못 열려있는 문을 만나면 쉽게 빠져 들어간다. 사람이 이 공간 차이를 느끼지도 못하는 순간에 곧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과 우리의 시공(時空)은 차이를 이정(里程)으로 표시할 수 없다. 10만 8천리라는 그 먼 거리도 여기에서는 한 점에 불과하며, 바로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 존재한다. 배가 들어가서 흔들리는 그 잠깐 동안에 음양이 어긋남이 또 생기는데 세상에서는 이미 몇십 년이 지나갔다. 왜냐하면 두 공간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매 공간에는 또 단원세계(單元世界)가 있다. 마치 우리가 그리는 원자 구조도처럼 하나의 공(球)의 그 중간이 한 가닥 선으로 연결되었고, 이리저리 서로 뒤엉킨 것이 모두 공이며 모두 연결선으로 되어 있어 매우복잡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4년 전, 영국공군의 한 비행사가 임무수행 중에 폭풍우를 만났는데, 그는 경험으로 한 폐쇄된 비행장을 찾았다. 비행장이 눈에 띄었을 때, 갑자기 다른 광경이 나타났다. 한순간에 구름 한 점 없는 만리창공으로, 마치 다른 세계로 뚫고 나온 것만 같았다. 비행장의 비행기는 누런 색칠을 했고, 지면에는 분주히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그는 매우 이상하다고 느꼈다! 착륙을 하였는데도,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고 관제탑에서도 그와 연락하지 않았다. 그는 하늘이 맑아진 것을 보고 그만 돌아가려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올랐다. 비행장을 떠나 그가 아까 비행장이 보이던 그만한 거리에까지 날아오르자, 갑자기 또 폭풍우 속에 휘말려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던 끝에 겨우 되돌아왔다. 그가 상황을 보고하고 비행기록도 써냈지만 상관은 믿지 않았다. 4년 후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그 비행사는 마침 폐쇄된 그 비행장에 가서 방어임무를 수행하도록 명령받았다. 그는 대뜸 4년 전의 광경이 지금과 꼭 같았음을 생각해 냈다. 우리 기공사들은 이것이 어찌된 일인지 다 알고 있다. 그는 바로 4년 후의 일을 먼저 앞당겨 한번 해보았던 것으로, 그가 바로 거기에 앞당겨 가서 먼저 한번 출연했던 것이다. 첫 막이 아직 시작되기 전에 그는 먼저 한 막에 출연했고, 되돌아와서 순서대로 다시 출연한 것이다.

5. 기공치료와 병원치료

이론상 기공치료와 병원치료는 전혀 같지 않다. 양의사는 속인사회의 수법으로 병을 본다. 비록 화학실험이나 X-선 검사 등 수단이 있기는 하지만, 모두 이 공간의 병소만을 관찰할 뿐, 다른 공간의 정보는 볼 수 없으며, 병을 초래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볼 수 없다. 만약 그의 병이 비교적 가벼우면, 약물로 병의 근원(서양의학에서 말하는 병독, 기공에서 말하는 업)을 없애거나 또는 쫓아버릴 수 있다. 병이 매우 중한 상황 하에서는 약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으며, 만약 약의 양을 늘리면 사람 또한 견뎌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병은 모두 世間法(쓰젠파) 내에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대단히 커서 世間法(쓰젠파)의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

중의(中醫)는 중국의 전통적인 의학으로서 인체가 수련해 낸 특이공능과 갈라놓을 수 없다. 고대에는 인체수련을 매우 중시했는바, 유가·도가·불가와 유학을 배우는 학생들을 망라하여 모두 가부좌를 했다. 가부좌는 일종의 공부(功夫)로서 오래도록 하면 비록 연공을 하지 않더라도 공과 공능이 나올 수 있다. 중의의 침구(針灸)는 어찌하여 인체의 경락에 대해서 그처럼 뚜렷하게 알아냈을까? 혈위(穴位)와 혈위는 왜 가로로 연결되지 않는가? 왜 교차로 연결되지 않는가? 무엇 때문에 세로로만 연결되었는가? 어떻게 그처럼 정확하게 그려냈는가? 현대에 특이공능을 가진 사람이 눈으로 본 것과 중의학에서 그려낸 것과는 일치한다. 원인은 바로 고대의 명의(名醫)들이 일반적으로 모두 특이공능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역사상의 이시진(李時珍)·손사막(孫思邈)·편작(扁鵲)·화타(華佗)는 실제로 모두 특이공능을 가진 기공대사들이었다. 중의학은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면서 공능부분을 잃어버리고 수법만을 보유했다. 과거 중의사는 눈(특이공능을 포함)으로 병을 보았고, 후에 또 맥을 짚는 방법을 총괄해 냈다. 만약 중의학이 병을 보는 방법에 특이공능 방법까지를 더한다면, 외국의 서양의학은 여러 해가 더 지나도 중국의 중의학을 따를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기공치료는 병을 초래하는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한다. 나는, 병은 곧 ‘업’이고, 병 치료는 곧 업을 없애는 것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공사는 병을 치료할 때 검은 기를 내보내야 한다면서, 기를 내보내고 보충하고 있는데, 극히 얕은 층차에서 그는 검은 기를 내보냈지만 검은 기가 생기는 근본적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검은 기는 다시 오고 병도 재발한다. 실제적으로 검은 기가 그의 병을 조성하는 것이 아니다. 검은 기의 존재는 단지 그를 괴롭게 할 뿐이다. 그의 병을 조성하는 근본원인은 다른 공간에 하나의 영체가 있기 때문이다. 많은 기공사들이 이런 일을 잘 알지 못한다. 그 영체는 몹시 사납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움직일 수 없으며, 그것을 건드리지도 못한다. 法輪功(파룬궁)이 병을 보는 것은 바로 그 영체에 손을 써서 병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것을 빼내어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병이 있던 부위에 덮개를 씌워 다시 침입해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기공은 병을 볼 수 있으나 속인사회 상태를 교란할 수 없다. 만약 이를 광범위하게 응용한다면 곧바로 속인사회 상태를 교란하게 되므로 이는 허용할 수 없고, 효과 또한 좋지 않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무릇 기공진료부, 기공병원, 기공건강센터를 차린 것을 보면, 그를 설립하기 전에는 치료효과가 괜찮을 수 있었지만, 일단 개업하여 병을 보기 시작하면 그 효과는 일락천장인바, 바로 속인을 벗어난 법으로써 속인사회의 직능(職能)을 대체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필연적으로 속인사회의 법과 마찬가지로 낮아진다.

특이공능은 인체를 투시할 수 있는데, 조각조각 나누어 볼 수 있고 한층 한층 볼 수도 있으며, 연부 조직이나 신체의 어떠한 부위도 볼 수 있다. 지금의 ‘CT’스캐닝도 비록 아주 똑똑히 볼 수 있으나 그것은 어쨌든 기계를 쓰는 것이기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필름을 많이 쓰며 아주 느리고 돈도 많이 든다. 사람이 특이공능으로 보는 것보다 편리하거나 정확하지 못하다. 기공사는 눈을 감고 한번 훑어보기만 하면 환자의 어떠한 부위도 직접 똑똑히 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높은 과학기술이 아닌가? 이것은 현대의 어떤 과학기술보다도 더 높은 과학기술이다. 그런데 이런 높은 수준이 중국 고대에 있었으며, 고대에 이미 있었던 높은 과학기술이다. 화타는 조조의 뇌에 종양이 있는 것을 보아내고 그를 수술해 주려 했다. 조조는 받아들일 수 없어 자기를 해치려 한다고 여겨 화타를 잡아들였는데, 조조는 결국 뇌종양으로 죽었다. 역사상 아주 많은 중의(中醫) 대가들이 모두 특이공능이 있었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이 지나치게 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데서 오히려 옛날의 오랜 전통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의 고층차 기공수련은 바로 전통적인 것을 새롭게 인식하고 실천 중에서 그것을 계승 발전시켜, 인류사회에 복을 마련함에 다시 쓰자는 데 있다.

6. 불가기공(佛家氣功)과 불교(佛敎)

우리가 불가기공에 대해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한 가지 문제를 연상한다. 즉 불가(佛家)는 부처가 되는 것을 수련하는 것이기에, 곧 불교 중의 일을 연상한다. 나는 여기에서 정중히 밝히는바, 法輪功(파룬궁)은 불가기공이며 정전대법(正傳大法)으로서, 불교와는 관계가 없다. 불가기공은 불가기공이고, 불교는 불교다. 비록 수련의 목적은 같지만 걷는 것은 한 길이 아니고, 한개 법문(法門)이 아니며 요구하는 것도 다르다. 내가 여기에서 ‘불(佛)’ 자를 제시하는바, 나는 고층차에서 공을 가르치고 있으며, 다음에도 말하겠지만 그 자체는 어떠한 미신적 색채가 없다. 어떤 사람은 ‘불’ 자만 들으면 그야말로 큰일이나 난 듯이 여기면서 당신이 미신을 선전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아니다. ‘불’은 본래 범어(梵語)로서 인도에서 전해 왔는데, ‘불타(佛陀 Buddha)’라고 두 글자로 음역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타’를 생략하고 ‘불(佛)’이라 불렀는데, 중국말로 번역하면 곧 ‘각자(覺者)’로서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이다(『사해(辭海)』를 보라).

(1) 불가기공

현재까지 전해진 불가기공(佛家氣功)은 두 가지다. 한 가지는 불교에서 분리되어 나온 것으로서, 그는 수천 년의 발전 가운데서 허다한 고승(高僧)들이 나왔다. 그들이 수련과정에서 아주 높은 층차까지 수련했을 때, 상사(上師)가 그들에게 일부의 것을 전수하여, 더욱 높은 층차의 진수를 전해 받게 했다. 이런 것을 이전에 불교에서는 모두 단독으로 전했다. 고승이 죽을 때가 가까워서야 비로소 한 제자에게 전해 주었고, 불교 이론에 따라 수련해 전체적으로 제고하게끔 했다. 이런 기공은 보기에는 불교와 밀접히 연계되어 있다. 훗날 승려는 절에서 쫓겨났는데, 예를 들어 ‘문화대혁명’과 같은 시기에 이러한 공법은 민간에 전파되어 민간에서 대량으로 발전했다.

다른 한 가지도 역시 불가기공으로서, 이런 불가기공은 역대로 모두 불교에 들어가지 않고 줄곧 민간이나 깊은 산 속에서 조용히 수련했다. 이런 공법은 모두 독특한 데가 있다. 불가기공은 모두 좋은 제자를 선정할 것을 요구하는바, 진정하게 고층차로 수련할 수 있는 능력을 구비한 대덕지사(大德之士)여야 한다. 이런 사람은 상당히 긴 기간을 거쳐야만 세상에 한 사람 나온다. 이런 공법은 공개할 수 없고, 心性(씬씽)이 매우 높기를 요구하며, 공(功)이 자라는 것도 매우 빠른바 이런 공법은 적지 않다. 도가(道家)도 마찬가지여서, 같은 도가공(道家功)도 곤륜파·아미파·무당파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개개의 파에는 또 같지 않은 법문(法門)이 있고, 매 공법의 차이가 매우 커 한데 뒤섞어서 연마할 수 없다.

(2) 불교

불교는 2천여 년 전에 석가모니가 인도 고유의 수련을 기초로 해서 증오(證悟)해 낸 일련의 수련법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바로 ‘계(戒)·정(定)·혜(慧)’ 세 글자다. 계(戒)는 정(定)을 위한 것이다. 불교는 연공을 말하지 않지만, 실제적으로는 연공하는 것으로서, 그가 정(定)하여 거기에 앉는 것이 바로 연공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으면, 우주의 에너지가 그의 몸에 집결해 연공하는 작용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불교의 계는 곧 속인의 모든 욕망을 끊어버리는 것이고, 속인의 모든 집착을 버리는 것이며, 이로써 청정무위(淸靜無爲)의 상태에 도달해 곧 정(定)하게 되는데, 정 중에서 끊임없이 층차를 제고한 다음 개오개혜(開悟開慧)하여 우주를 인식하고 우주의 진상을 본다.

석가모니가 처음 법을 전수할 때에는 하루에 세 가지 일만 했다. 즉 설법(주로 나한법을 전수)을 하여 제자들로 하여금 법을 듣게 하고, 다음은 바리(鉢:사발)를 들고 다니며 탁발(밥을 빌다)하고, 그 다음은 가부좌하여 실속 있게 수련했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뜬 후, 바라문교(婆羅門敎)와 불교는 투쟁을 했고, 그 이후 이 두 종교는 합병하여 힌두교(印度敎)가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인도에는 불교가 없다. 그 후 발전하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대승불교(大乘佛敎)가 생겨나 중국 내지(內地)로 유전되어 온 것이 바로 지금의 불교다. 대승불교는 석가모니만을 조존(祖尊)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아미타불과 약사불 등 여러 부처를 믿고 많은 여래(如來)를 믿었다. 계율도 많아지고 수련목표도 높아졌다. 석가모니는 당시에 소수의 제자에게 보살법(菩薩法)을 전수했는데, 후에 그것을 정리하여 발전한 것이 바로 지금의 대승불교로서 보살계를 닦는 것이다. 지금 동남아 일대에서는 아직도 소승불교(小乘佛敎)의 전통을 지키고 있으며, 신통을 운용해 법사(法事)를 한다. 불교 변천 과정 중 한 갈래는 중국 티베트(西藏)로 들어왔는데, 장밀(藏密)이라 하고, 다른 한 갈래는 신강(新疆)을 거쳐서 한인지역(漢地)에 전해 들어왔는데 당밀(唐密) (회창년간에 불교를 없앨 때 없어졌다)이라고 한다. 또 다른 한 갈래는 인도에서 요가공(瑜伽功)을 형성했다.

불교에서는 연공을 말하지 않고 기공도 연마하지 않는데, 이것은 불교의 전통적인 수련방법을 수호하기 위해서이고, 역시 불교가 2천 년 이래 쇠퇴하지 않고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다. 바로 그가 외래의 것을 접수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신의 전통을 지켜나가기가 쉬웠던 것이다. 불교의 수련방법도 완전히 같지는 않다. 소승불교에서는 자신의 제도와 자신의 수련에 치중하고, 대승불교에서는 자신을 제도하고 남도 제도하며 중생을 제도하는 데로 발전했다.

7. 정법(正法)과 사법(邪法)

(1) 방문좌도(旁門左道)

방문좌도를 기문수법(奇門修法)이라고도 한다. 종교가 있기 전에 벌써 여러 문파의 기공이 존재했다. 종교 이외에 공법이 허다하게 민간에서 유전되었는데, 대부분은 일련의 완전한 수련체계를 이루지 못했고 완전한 이론도 없었지만, 기문수련법은 계통을 완벽하게 갖춘 특수한 강화 수련방법이 있어 민간에서도 계승하여 전해 왔다. 이런 유형의 공법을 통상 방문좌도라고 부른다. 왜 방문좌도라고 하는가? 글자로 보면 방문(旁門)이란 바로 별도로 있는 옆문이고, 좌도(左道)란 바로 우둔한 도이다. 사람들은 불(佛)·도(道) 양가(兩家)의 수련방법은 모두 정법이고, 기타 공법은 모두 방문좌도 또는 사법(邪法)이라고 여긴다. 사실 이런 것이 아니다. 방문좌도는 역대로 모두 비밀리에 수련하고 단독으로 전수하므로 사람들에게 내놓고 보일 수 없었다. 일단 전해져 나오면 사람들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자신들도 이 공법이 불가도 아니고 도가도 아니라고 한다. 그의 수련방법에는 엄격한 心性(씬씽) 요구가 있어, 그는 우주의 특성에 따라 수련하고 선(善)을 행하며 心性(씬씽)을 지키는 것을 말한다. 방문좌도 중의 고인(高人)들은 모두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으며 어떤 독특한 기능은 아주 대단하다. 나는 기문(奇門)의 고인(高人) 세 분을 만나서 그들의 것 일부를 전수 받았는데, 불·도 양가(兩家)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것들을 수련하는 과정은 모두 비교적 어려웠고, 연마해 낸 공 역시 아주 독특했다. 이와 반대로 지금 전해지는 일부 소위 불도(佛道) 양가 공법 중의 어떤 것은 心性(씬씽)요구가 엄격하지 않아 수련해 낸 것도 높지 않다. 그러므로 각 가의 공법을 변증법적으로 보아야 한다.

(2) 무술기공(武術氣功)

무술기공은 멀고 오랜 역사연대를 거쳐 형성된 것으로서, 한 세트 완전한 이론체계와 수련방법이 있어서 독립적인 체계를 형성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그것도 역시 단지 내수(內修)공법의 가장 낮은 층차에서 나타나는 공능의 체현일 뿐이다. 무술수련 중에 나타나는 공능은 내수공(內修功)에서도 나온다. 무술기공의 수련 역시 기의 연마(練)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돌을 깰 때, 처음에는 먼저 팔을 휘둘러 기를 모으고, 시간이 길어지면 기는 곧 질적인 변화를 일으켜 에너지 덩이를 형성하는데, 일종 빛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정도에 이르렀을 때, 공(功)이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공은 고급 물질이기 때문에 그는 영성(靈性)을 갖고 있고, 대뇌사유의 통제를 받으며 다른 공간에 존재한다. 격타할 때에 기를 모으지 않아도 생각만 하면 공이 온다. 수련에 따라 공은 끊임없이 강해지고 과립(顆粒)은 미세하게 변하며 에너지는 더 크게 변해 ‘철사장(鐵砂掌)’, ‘주사장(朱砂掌)’과 같은 공부(功夫)가 나온다. 영화나 텔레비전, 잡지에서 보면 근년에 ‘금종조(金鐘罩)’, ‘철포삼(鐵布衫)’이란 기능이 나타났는데, 이는 무술과 내수를 함께 수련해 형성한 것으로, 내외를 겸해 수련해서 나온 것이다. 내수(內修)를 하려면 곧 德(더)를 중시해야 하며 心性(씬씽)을 수련해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그의 공부(功夫)가 일정한 정도에 이르면, 공을 체내에서 체외까지 방출하는데, 밀도가 크기 때문에 보호막을 형성한다. 무술기공을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내수와 가장 구별되는 점은, 무술은 맹렬한 운동 중에서 연마하고 입정(入靜)이 없다. 입정하지 않기에 기가 피하로 가고 기가 근육을 뚫고 들어가며, 단전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명(命)을 닦지 않으며, 명을 닦을 수도 없다.

(3) 반수(返修)와 차공(借功)

어떤 사람은 기공을 연마하지 않았는데도,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공을 얻고 에너지도 작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병을 보아줄 수도 있어 사람들도 그를 기공사라 부르는데, 그는 남을 가르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아예 공법을 배운 적이 없거나, 배운 몇 가지 동작을 스스로 고쳐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쳐 준다. 그런 사람은 기공사라고 할 수 없다. 그는 남에게 물려주고 전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가 가르치는 것은 확실히 고층차로 수련할 수 없으며, 기껏해야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할 뿐이다. 이런 공은 어떻게 오는가? 우선 반수(返修)를 말하겠다. 이른바 반수는 일부 心性(씬씽)이 극히 높고 대단히 좋은 사람, 흔히 나이가 많아 50세 이상인 사람에게 온다. 그에게 새로 수련하라고 하면 시간이 없고, 성명쌍수(性命雙修)의 높은 사부를 만나기도 어렵다. 그가 연공하고자 하면 상사(上師)는 곧 그의 心性(씬씽)의 기초 위에 그에게 매우 큰 에너지를 가해 주어, 위에서 아래로 거꾸로 수련하도록 하는데, 이렇게 하면 수련이 무척 빨라진다. 상사는 공중(空中)에서 연화하여, 체외에서 끊임없이 그에게 에너지를 보내준다. 특히 그가 병을 보거나 기의 마당을 구성할 때, 상사가 보내주는 에너지는 마치 도관으로 그에게 보내주는 것 같기에, 어떤 것이 어디서 오는지 그 자신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반수(返修)이다.

또 한 가지는 차공(借功)이다. 차공은 연령의 제한이 없다. 사람은 主意識(주이스) 외에 또 副意識(푸이스)가 있는데, 흔히 副意識(푸이스)는 主意識(주이스)보다 층차가 높다. 어떤 사람은 副意識(푸이스)의 층차가 아주 높아 각자(覺者)와 연계(聯繫)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연공하려 하면, 副意識(푸이스)도 그 층차를 높이려고 즉시 대각자와 연계해서 공을 빌려 온다. 그에게 공을 빌려준 뒤, 역시 하룻밤 사이에 공이 오는데, 공을 얻은 후부터는 사람의 병도 보아주고 환자의 고통도 제거해 줄 수 있다. 그는 보통 기의 마당을 구성하는 방법을 쓰며, 또한 단독으로 사람에게 에너지를 넣어 주고 사람에게 일부 수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다.

흔히 이런 사람이 있는데, 처음에는 아주 괜찮아서 공이 있고 명성도 매우 크며 명리(名利)도 함께 얻는다. 명리가 차지한 머릿속의 비율이 아주 커져서 연공을 하겠다는 생각을 능가하면 이때부터 공(功)은 아래로 떨어지는데, 공이 갈수록 작아져서 마지막에는 아무것도 없다.

(4) 우주어(宇宙語)

어떤 사람은 갑자기 일종 언어를 말하는데 그런 언어를 비교적 유창하게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인류사회의 언어가 아니다. 무엇이라고 하는가? 우주어라고 한다. 이른바 우주어란, 그것은 그다지 높지 않은 그 생명체의 일종 언어에 불과하다. 지금 국내에 기공을 연마(練)하는 사람들 중에서 그런 상황이 적지 않게 나타났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몇 가지 서로 다른 언어로 말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인류사회의 언어 역시 매우 복잡하여 천여 종이 있다. 우주어를 공능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없는가?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의 공능이 아니고 외계에서 당신에게 주는 공능도 아니며, 어떤 외래 생명체가 조종하는 것이다. 그 생명체가 온 층차는 조금 높아, 적어도 우리 인류보다는 약간 높은데, 바로 그가 말하는 것이다. 우주어를 말하는 사람은 단지 스피커의 작용을 할 뿐이다. 대다수 사람은 그 말의 대체적인 뜻이 무엇인지 그 자신도 모른다. 오직 ‘타심통(他心通)’ 공능을 구비한 사람만이 대체적인 뜻을 감지할 수 있다. 그것은 공능이 아닌데도 많은 사람이 말하고 나서는 우쭐거리며 공능이라 여겨 대단하게 생각한다. 실제로 천목 층차가 높은 사람은 관찰할 수 있는바, 그의 사(斜) 선 위쪽에 틀림없이 한 생명체가 있어서, 그것이 말하고 있으며 말하는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한다.

그것이 그에게 우주어를 가르쳐 주는 것과 동시에 공도 일부 전해 주지만, 그는 그때부터 그것의 손아귀에 통제된다. 그렇다면 정법이 아니다. 그것이 좀 높은 공간에 있다고만 보지 말라. 그것이 정법수련을 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도 수련자가 어떻게 해야 병을 제거하고 신체를 건강하게 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 그래서 그런 방법을 채용하여 말을 통해 에너지를 방출한다. 그 에너지는 흩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아주 작아 일부 작은 병에 대해서는 조금 효과가 있을 수 있으나 큰 것은 안 된다. 불교에서 말하기를, 하늘의 사람들은 고생이 없고 모순이 없어 수련할 수 없으며, 연마(魔煉)할 수 없으므로 층차를 제고(提高)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므로 곧 방법을 강구해서 사람을 도와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의 조그마한 제고를 얻으려 한다. 이것이 바로 우주어다. 우주어는 공능이 아니며 기공도 아니다.

(5) 정보부체(信息附體)

정보부체 가운데서 위해(危害)가 비교적 큰 것이 저령부체(低靈附體)인데, 이것은 모두 사법(邪法)을 수련(修練)하여 초래한 것이다. 그것이 사람에 끼치는 해악은 대단히 커서 부체(附體)를 당한 사람의 결과는 아주 무섭다. 어떤 사람은 연공(練功)을 얼마 하지 않고도, 오로지 사람의 병을 보아 줄 생각만 하고 돈을 벌 생각이나 하면서 늘 이런 일만 궁리한다. 본래 이 사람은 아주 괜찮았거나 또는 사부가 이미 책임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병을 봐주고 돈을 벌 궁리만을 하자 잘못되어 이것을 초래한 것이다. 그것은 우리 물질공간에 있지는 않으나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존재한다.

한 연공인이 갑자기 천목이 열리고 공이 있음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실은 부체가 그의 대뇌를 주재하여, 그것이 본 영상을 그의 대뇌에 반영한 것인데, 그는 자신의 천목이 열린 것으로 여기지만 실은 전혀 열리지 않았다. 부체는 무엇 때문에 그에게 공을 주는가? 무엇 때문에 그를 돕는가? 우리의 이 우주에서는 동물이 수련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인데, 동물은 心性(씬씽)을 지키지 않아 제고해 올라갈 수 없으며, 그것이 정법을 얻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몸에 붙어 인체의 정화(精華)를 얻으려 한다. 우주에는 또 한 가지 이치가 있는데, 잃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명리에 대한 당신의 욕구를 만족시켜 주며, 당신이 돈을 벌게 하고 이름을 날리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당신을 공짜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얻으려 하는데, 바로 당신의 정화를 얻으려 한다. 그것이 당신을 떠나갈 때면 당신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아 매우 허약해지거나 또는 식물인간으로 변해버린다! 이는 心性(씬씽)이 바르지 못한 데서 온 것이다. 일정압백사(一正壓百邪)라, 당신의 마음이 바르면 사(邪)를 초래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정정당당한 연공인으로서 그 어떤 난잡한 것들도 모두 거절하고 정법수련만 해야 한다.

(6) 정공(正功)도 사법(邪法)을 연마해 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비록 배운 공이 정법이지만, 자신을 엄격히 요구하지 않고 心性(씬씽)을 중시하지 않으며, 연공(練功)할 때에 좋지 않은 생각을 한다. 이것은 바로 비자각적으로 사법을 연마(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참장공(站樁功)을 연마(練)하거나 가부좌를 연마(練)할 때, 사람이 거기에서 연공(練功)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생각하거나 명리를 생각하며, 어느 누가 나를 좋지 않게 대하는데 내가 공능이 나오면 그를 혼내주겠다는 생각을 한다든가, 또는 이런 공능, 저런 공능 따위를 생각하며 일부 좋지 않은 것들을 공에 끼워 넣는다면, 실제적으로는 사법을 연마(練)한 것이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것으로서 일부 나쁜 것을 초래할 수 있다. 예컨대 저령(低靈) 같은 것들을 그가 초래하고서도 모른다. 그가 집착심이 너무 강하기 때문인데 얻으려는 마음을 품고 도(道)를 배워서는 안 된다. 그의 마음이 바르지 못하면 사부도 그를 보호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연공인은 꼭 心性(씬씽)을 굳게 지켜야 하고, 마음이 바르며, 얻고자 하는 것이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문제가 생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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