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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제1기 법회설법

 

李 洪 志
(1998년 3월 29일·30일 뉴욕에서)

 

나는 이 법회에 참가하러 왔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여러분의 체험을 들으려 한다. 당시에 이 회의를 열도록 내가 주장했다. 우리는 아직 전 미국 대법수련생 교류회를 열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여러분이 함께 서로 교류하는 것이 좋고 시기도 적당하다고 느꼈다. 지난번에 내가 미국에 와서 설법하면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1년이 되었다. 이 1년의 수련을 통해 여러분은 모두 제고하고 있다. 특히 여러분은 지난번 설법을 들은 후 모두 자신의 제고에 일정한 촉진작용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아무리 제고되었어도, 교류하면 그래도 좋은 점이 있고 또한 우리 대법을 더욱 널리 선양할 수 있다고 나는 말한다.

널리 선전함을 말하자면 지금 한 가지 그릇된 인식이 있다. 어떤 사람은 사부님께서는 실속 있게 다그쳐 수련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럼 그는 곧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이해하고서 그는 곧 실속 있게 수련을 다그친다. 물론 속인의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속인의 사업과 수련, 이 관계를 여러분은 잘 바로잡았다. 중요한 것은 우리 법을 널리 선전하는 것을 당신들이 중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신들은 법을 얻었지만, 아직도 법을 얻지 못한 사람이 있지 않은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오늘날 인류사회에는 사람다운 사람이 하나도 없다. 무슨 뜻인가? 나는 이 법을 전하기 위해 역사의 매우 멀고 먼 연대(年代)에서 이미 배치하였으며 또한 이렇게 큰 하나의 법, 전체 우주의 법을 전하였다. 지난번에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러분에게 이 우주의 구조를 말했다. 이에 대해 우리 많은 사람이 일정한 인식이 있게 되었는데, 원래 우주의 구조는 이러하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내가 지난번에 당신들에게 말한 우주 구조의 개념을 당신은 크기가 그야말로 대단하다고 느낀다. 그 개념, 그것 또한 전체 천체(天體) 가운데서 한 알의 먼지이므로 이 우주, 그것이 얼마나 큰지를 여러분은 생각해 보라. 이렇게 큰 법이 인류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한 사람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쉬울 것인지 당신은 생각해 보라. 우리 가장 간단한 예를 들어 말해 보자. 용광로의 쇳물에 나무꼬투리 하나가 떨어져 들어가면 순식간에 그것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 이렇게 큰 법으로 당신 한 사람을 받아들여 당신 몸의 업력을 없애주고 당신의 좋지 못한 생각을 없애버리는 등등 등등, 그것은 대단히 쉬운 일이다. 이렇게 큰 위력이 있는데 왜 우리는 이렇게 하지 않는가? 우리는 속인사회에서 이렇게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렇게 수련하는 것은 수련으로 인정할 수 없으며 다시 만들어 내는 것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즉 완전히 당신을 버리고 다시 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이 진정하게 수련해야만 비로소 당신 자신이다. 그러나 수련 중에서 많고 많은 心性(씬씽) 상의 고비가 나타나고, 또 우리 수련생 사이에 대법 일을 잘하기 위한 서로 간의 협력이 잘되지 않아 일어나는 모순이라든가 등등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것은 모두 필연적이다. 다만 당신들이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만약 어떤 법이 전해 나옴에, 만일 그가 마난(魔難)이 없고 그가 후세사람들에게 남겨놓을 위덕(威德)이 없다면 나는 그것을 사법(邪法)이라고 말한다. 그 무슨 위대하다고 할 만한 것이 없고, 축하할 만한 것이 없으며, 후세사람들에게 남겨놓을 위덕이 없으면 그는 필연적으로 이러하다. 그럼 내가 전한 이 법을 당신이 얻었고 당신이 수련할 수 있게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수련하며 그들이 어떻게 법을 얻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나는 방금 한마디 말을 하였다. 인류사회의 모든 사람은 모두 사람이 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당신은 우쭐대지 말라. 당신이 법을 얻지 못하면, 당신이 수련하여 되돌아가지 못하면 당신은 다만 사람이다. 아마 또 아래로 떨어지게 될 것인데, 정말로 사람보다도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홍법(洪法)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이 문제를 나는 이만큼 말한다.

많은 수련생이 모두 내가 좀 높고 신기한 것을 말했으면 한다. 이 마음을 버리지 않으면 원만에 이를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그 어떤 마음도 모두 장애이다. 내가 말한다면, 오늘날의 이 사회의 발전, 그것의 발전과정 전반은 외계인(外星人)의 통제와 추동을 받아 생긴 것이고, 발전한 것이다. 오늘 나는 아직도 이러한 문제를 말한다. 만약 내가 중국 고대의 문화언어로 강의하면 아마 더 투철하게 말할 수 있겠지만, 여러분은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관념이 모두 현대인의 관념이기에 지금의 이런 과학지식 방식을 결합하여 말해야 한다. 실은 아주 낮은 것으로서, 그것의 인식은 아주 낮다. 소위 실증과학이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 물질공간에만 국한되는, 단지 우리 삼계(三界) 내의 한 공간일 뿐이다. 그러나 삼계 내에는 얼마나 되는 층의 물질이 있는가? 많기가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인류는 단지 한 층만 점유했을 뿐이다. 당신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이 한 층뿐이며 곧 이런 범위 내에 국한되었다. 그러나 이 방대한 우주는 사람의 사상으로는 영원히 모두 가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의 사상이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면, 인류의 언어로는 우주의 상황을 형용할 수 없다. 또 그런 언어도 없고, 그런 사유도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분명하게 말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높은 말은 사람의 언어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당신들이 수련과정 중에서 끊임없이 제고 해야만, 비로소 자신이 점차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다. 이 법을 보고 있을 때 법이 당신을 점화하여 깨우쳐 줄 수 있다.

왜 이 법이 그렇게 큰 작용을 할 수 있으며 당신으로 하여금 그렇게 높은 이치를 알게 할 수 있는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책 한 권, 곧 보편적이고 보편적인 속인 중의 책 한 권은, 종이 몇 장을 한데 합쳐 놓아 흰 종이에 검은 글자일 뿐, 그것은 아무런 작용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류의 가장 간단하고 명료한, 인류가 알고 있는 도리를 말해 낼 수 있는바, 다만 이럴 뿐이다. 만약 이 『轉法輪(전법륜)』의 배후에 그의 내포가 없다면 역시 다만 이럴 뿐이다. 왜 당신들이 한 번 또 한 번씩 『轉法輪(전법륜)』을 보면 대단히 높고 대단히 높은 부동한 경지 중의 그런 이치를 보아내고 깨달을 수 있는가? 바로 매 한 글자 뒤에 모두 무수한 층층 첩첩 불(佛)․도(道)․신(神)이 있기 때문인데 얼마나 있는지 헤아릴 수 없다. 우리 이 자리에 앉은 사람이 아무리 높이 수련한다 해도, 당신이 아무리 높이 수련한다 해도, 장래에 당신이 개오해서도 당신은 변두리마저도 보아내지 못한다.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이 책대로 수련한다면 당신이 얼마나 높이 수련할 수 있겠는가를. 당신이 응당 제고해야 할 때 이 글자 배후의 불(佛)․도(道)․신(神)은 모두 보고 있다. 당신이 응당 그 어느 한 층의 이치를 알아야 하고, 그 어느 한 층에 이르렀다면 그는 곧 이 한 글자, 혹은 이 한 줄 글자 배후의 진정한 내포를 당신에게 점화해 주어 당신은 활연히 명백해진다. 실제로 당신이 총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가 의식적으로 당신을 점화하여 깨우쳐 주었기에 당신이 알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속에는 엄격한 요구가 있다. 당신이 그 경지로 수련되지 못하고,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절대로 당신으로 하여금 이 층의 이치를 알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이 층의 이치를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이 경지에 있다.

우리 많은 수련생이 수련 중에서 늘 자신이 표면상에서 제고되는 것이 늦다고 느끼며 수시로 좋지 못한 사상과 심태(心態)가 반영되어 나오기 때문에 매우 조급해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당신은 조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오늘날의 수련형식은 과거의 모든 수련형식과 다 같지 않으면서 또 같기도 하다. 같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떤 소법(小法)․소도(小道)의 길을 걷지 않기 때문이며, 같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법이 다만 우리가 오늘 전하는 이 우주 대법 중에서 가장 낮고 국부적인 일부 수련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대법을 전하고 있는바 그의 위력에서나, 우리가 걷는 길에서나, 사람을 제도하는 방식에서도 제일 좋은 것을 선택하였다. 그럼 이 법, 그가 이렇게 큰 작용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는 방금 책의 배후에는 그의 그렇게 큰 내포가 있기 때문임을 말했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그 불(佛)․도(道)․신(神), 그는 무슨 가짜가 아니라 그는 진짜 불(佛)․도(道)․신(神)이며 그는 바로 이 법 중에서 체현되어 나온 것이다. 그는 그렇게 큰 위력이 있다. 당신이 보면 그는 글자 배후에 있지만, 그가 커지려고 하면 끝없이 커진다. 그러나 그는 곧 이것을 책임지며 그는 바로 법의 한 체현이다. 그러므로 이 법이 한 사람을 받아들이는 것은 너무나도 쉽다. 과거의 모든 법, 모든 수련형식은 다만 우주의 홍대(洪大)한 법 중의 아주 낮은 층차의 그런 몇 가지 형식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비교적 낮은 것이다. 잠시 후에 시간이 되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이 우주의 일정한 층차 중의 구조를 말하겠다.

우리, 먼저 법을 배우는 중요성을 말해 보자. 다시 말해서 법을 배우면 당신으로 하여금 제고되게 할 수 있다. 법의 배후에 내포가 있기 때문이다. 왜 다른 책은 이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이 상태에 도달하지 못하는가? 그것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아무것도 없을 뿐만이 아니라, 개개인 그 자신의 상태도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늘 말하였다. 내가 말하는 그런 좋지 못한 종교의 책, 물론 내가 가리키는 것은 사교(邪敎), 좋지 못한 종교의 책과 좋지 못한 기공 책으로서, 남겨두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의 글자 배후에도 일부 것이 있고 또 그것의 그런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부처가 아니고 도(道)도 아니며 신(神)도 아닌, 모두 부체(附體), 귀혼(鬼魂) 등등 그런 난잡한 것들이다. 사람의 신체는 곧 옷과 같고 사람의 사상은 곧 모자와 같아서, 누가 입고 누가 쓰면 곧 그 사람이다. 왜 이럴 수 있는가? 사람은 바로 이런 정도로 나약해서 누구나 다 사람을 통제할 수 있고 누구나 다 사람을 교란할 수 있다. 사람이 가련하지 않은가? 가련한들 또 어찌하겠는가. 이는 사람 자신이 여기까지 떨어져 왔기 때문이다. 우리 매 한 사람, 이 자리에 앉아 법을 배우는 사람은 사실 모두 쉽지 않다. 당신에게는 각종 교란과 번거로움이 있는 것으로서, 법을 배우려고 하기만 하면 곧 사업이 바쁘다든가 시간이 모자란다든가 하는 등등이다. 당신이 느끼건대 그것은 마치 일종 자연현상인 듯하지만, 실은 모두 여러 면의 원인이 당신을 교란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얻지 못하게 한 것이다. 또 확실히 어떤 사람들은 이 법이 좋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사람이 어떻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의 사상은 아마 그가 아닐 것이며 아마 다른 사람일 것이다. 그밖에 그런 좋지 않은 것이 이 사람을 조종해서 하게 한 말이다. 이런 사람은 우리도 제도할 수 없다. 그럼 기왕 이 사람이 그가 아니라면 이 사람을 그래도 제도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람이 이렇게 나쁜 사상이 있음으로 인해 이용당하고, 그 때문에 직접 대법을 파괴하므로 제도할 수 없다. 또 나쁘기 그지없고 이지를 완전히 잃어버린 사람도 있다. 비록 나쁜 것의 조종에 의해 한 말이거나 일일지라도 그 자신이 이미 자신을 주재(主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법은 곧바로 사람으로 하여금 명백하고도 명백하게 수련하게 하는데, 당신이 명백하지도 못하고 명석하지도 못하면 당신은 외래의식의 통제를 자초하게 되는데, 그럼 우리 이 법을 어찌 나쁜 것으로 하여금 통제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에게는 줄 수 없다.

우리는 수련 중에 많고 많은 곤란을 만나게 된다. 나는 어떤 때 여러분이 수련하면서 많고 많은 고생을 겪는 것을 보는데, 나 역시 매우 괴롭다! 나는 어떤 때 생각한다. 우리 어떤 수련생이 고비를 넘기지 못해 그는 나의 사진을 마주하고서 가엾게도 눈물을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나에게 다시 그를 도와 난을 없애주고 해탈시켜 달라며 빌고 있는 것을. 그러나 당신들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가? 내가 이 난을 당신한테서 물리쳐주면 당신은 제고할 기회가 없어진다. 어떤 난도 다 없이 평온하고도 평온하다면 당신이 그렇게 높은 경지로 승화될 수 있겠는가? 이는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 여러분이 모두 알듯이 사람은 생생세세 모두 매우 많은 업을 빚는다. 마치 예수가 말한 바와 같이 사람에게는 죄가 있다. 빚진 이러한 업, 이러한 죄를 갚지 않고, 당신이 나는 천국에 올라가야겠다고 말하면서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이런 것들을 모두 던져버린다고 곧 천국에 올라가게 되는가?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것이 되겠는가? 절대 안 된다. 그러므로 반드시 자신이 진 빚은 자신이 갚고 이런 업력들을 없애버려야 한다. 업을 없애는 동시에 당신의 心性(씬씽)도 제고되어 올라와 그만큼 높은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그 경지로 승화될 수 있다. 우리로 하여금 그 경지로 승화되게 하는 것이 바로 법(法)이다.

수련 중에서 당신은 허다한 마난(魔難)에 부딪힐 것이다. 오로지 여러분이 참답게 법을 배우면 어떠한 난이든지 당신은 넘길 수 있으며, 당신이 오로지 참답게 법을 배우면 그 어떤 풀기 어려운 마음속의 매듭, 넘기지 못하는 것도 모두 법 중에서 답을 찾을 수 있고, 풀 수 있을 것이다. 이 한 부의 법, 그는 어떻게 사람이 되고, 어떻게 천인(天人)이 되는가를 포함하고 있다. 또 나는 여러분에게 어떻게 해서 불(佛)․도(道)․신(神)이 되고 더욱 높은 경지 중의 신이 되는지를 알려주는데, 그가 당신 마음의 매듭을 풀어주지 못하겠는가? 그가 당신의 사상을 열지 못하겠는가? 그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는가? 다 할 수 있다. 흔히 우리가 장기간 인류사회에서 생활하면서 양성한 각종 관념, 그것을 버리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동(不同)한 영역에 조예가 있어 어떤 성과를 거두게 되면, 그 성과를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당신은 속인 중에서 배운 그러한 소위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관념을 끌어안고 놓지 않는데, 흔히 이러한 것이 모두 일부분 사람을 저애하고 있다. 그리고 또 우리 많고 많은 사람에게는 속인사회 중에서 양성한 각종 습관이나 세력, 혹은 사람이 되는 그런 방식, 사람이 됨에 마땅히 추구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가장 첨예하고, 건드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당신이 한번 건드리기만 하면 그것은 즉시 거절하며 차라리 법을 배우지 않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방법이 없다. 배우는가, 배우지 않는가 하는 그것은 오로지 여러분 자신에게 달렸을 뿐, 어떤 사람이든지 억지로 가서 배우게 할 수 없다.

사람마다 법을 배우는 데는 모두 장애가 있는데 우리는 대략 개괄적으로 말하겠다. 지식인이 법을 배우는 데는 현대과학의 장애가 있다. 나는 과학에 부합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부합되지 않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그에게 심한 장애를 준다. 내가 설법할 때 왜 현재의 과학에 결부시켜 강의하는지를 아무도 모른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내가 당신의 그 껍질을 깨트려야 하기 때문인데, 당신이 법을 얻는 데 장애가 되는 그 층의 껍질을 깨트려야 한다. 어떤 사람은 각종 종교의 영향을 받아 그의 종교 관념에 부합되면 그는 좋다고 하며 와서 배우고, 부합되지 않으면 배우지 않는다. 나는 당신을 제도하기 위해, 당신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도록, 나 역시 종교 중의 것을 말하고, 그것이 패괴되는 과정과 형식을 말했다. 심지어 우리는 평범한 한 사람의 속인이고, 당신은 속인사회 중에서 당신의 일이 있고, 당신의 일을 놓을 수 없어 하기에, 나도 이 법을 최대한도로 속인의 수련에 부합되게 말했다. 실질상 내가 여러분에게 양보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 법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당신으로 하여금 한편으로는 일하고, 한편으로는 수련할 수 있게 한다. 그 외에도 많고 많은 상황이 있다. 사람마다 모두 장애가 있고, 모두 내려놓지 못하는 한 가지 관념이 있거나 심지어 더욱 많다. 사람의 그 어떤 관념도 모두 장애이다. 나는 인류사회가 오늘까지 발전해 오면서 그것이 나타낸 휘황을 반대하지 않으며, 나는 또 인류가 오늘까지 발전해 오면서 인류사회에서 쌓아놓은 경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수련자인 당신들은 반드시 사상적으로 그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보통의 속인, 그들은 이 휘황 속에 있을 수 있으며 그들은 사람의 관념 속에 생존할 수 있으나, 수련하는 사람인 당신들로서는 이런 후천적인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즉 내가 말한 이 이치는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어 수련하라는 것이다. 당신은 속인 중에서 생활하기에 당신은 속인과 같게 사업하고, 학습할 수 있지만, 당신은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나도 당신에게 사람의 관념을 내려놓고, 물질적인 면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말고, 마치 화상(和尙)처럼, 마치 수도사처럼 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수련하게 하였으므로, 당신은 곧 속인사회의 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진정으로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그 마음이다. 사람은 바로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는데, 당신이 그 마음을 정말로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당신은 그 무엇도 잃지 않음을 발견할 것이다. 대법을 배우는 자체가 곧 복을 받은 것인데 어째서 잃을 수 있겠는가?! 실제로 당신이 정말 무엇을 잃게 되었다면 그것은 단지 당신이 내려놓지 못해 조성된 그 마음에 불과한 것인데, 늘 당신의 그 마음을 시달리게 하여 당신으로 하여금 그 마음을 제거하게 한다. 정말로 당신에게 위기가 나타났다면 이런 위기는 당신의 그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당신이 내려놓지 않고 내려놓지 않으면 그것은 어떻게 하는가? 그것은 곧 맞선다. 맞설수록 당신의 처지, 당신의 생활환경은 아마 더욱 좋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정말 그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당신은 아마 일들이 즉시 전화(轉化)되어 오고, 사상이 단번에 홀가분해지며, 신체도 변화되어 온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이 되돌아보면 당신은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정말로 중국 사람이 말한, “고난 속에 광명이 있다(柳暗花明又一村).”는 것처럼 갑자기 또 모두 좋은 일들이 올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좋은 일이 다시 올 때, 당신은 당신에게 돈이 더욱 많아지고, 당신의 복이 더욱 커지며, 곤란이 다시 나타나도 당신은 속인처럼 그렇게 집착하지 않게 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은 아주 담담하게 이 일체를 대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도리어 무엇이나 모두 갖고 있게 되는데 이러면 좋지 않은가? 당신이 꼭 그렇게 고통스럽게 뚫고 들어가서 돈과 사업, 욕망을 움켜잡고 놓지 못해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며, 또한 그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이렇게 사는 것이 좋은가? 실제로 사람이 놓지 못하는 것은 그 마음이다. 사람이 수련한다고 해서 인류사회를, 인류사회의 상태를 잃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인류생존의 상태는 영원히 보존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당신이 가지려 하든지 갖지 않으려 하든지 그것은 모두 여기에 있다. 다만 속인의 그 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자신의 삶이 매우 고달플 뿐이다.

물론 사람 역시 아주 복잡한 것이다. 매 사람의 복의 크기는 그의 전세(前世), 대 전세(大前世), 나아가 더욱 오래고 오랜 부동(不同)한 생존시기와 관계가 있다. 다른 사람이 대단한 사장임을 보고 내가 수련하면 곧 그처럼 이렇게 큰 사장으로 될 수 있겠는가, 내가 내려놓으면 그처럼 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역시 같지 않다. 마치 인류사회처럼 그것은 당신 자신이 지닌 것과 관계가 있다. 당신이 오늘 수련하면, 수련한 그만큼의 복이며, 당신이 수련하지 않아도 역시 그만큼의 복일 것이다. 어디에 차이가 있는가? 차이는 당신의 마음이 가벼운가, 아니면 당신의 마음이 긴장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본래 아주 고달픈 것인데, 당신의 마음이 더욱 고달파지면 곧 당신으로 하여금 잘 먹지 못하고 잘 자지 못하게 한다. 따라서 당신의 신체는 피로하거나, 노쇠하거나, 나빠지거나 하여 속인처럼 많은 질병을 얻을 것이다. 반대로 당신이 그것을 내려놓으면 좀 가난해도 아주 평온해지는데, 실제로 대법을 배운다 하여 가난해질 수 없으며 삶이 오히려 매우 유쾌할 것이다. 내가 보건대 그렇게 계속해서 집착하는 것보다 낫다. 그렇지만 사람은 일을 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수련하는데 여러분이 모두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말하건대 이것은 절대 안 된다. 다만 우리 마음이 어떻게 이 관계를 바로잡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법을 배우는 것이 곧 복이다. 속인 마음을 없앤 후 대법은 제자에게 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것은 큰 사장이 되는 것에 집착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 밖에 우리가 법을 배우는 가운데 문제에 부딪혔을 때, 당신이 풀지 못하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늘 밖에서 구하고 밖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우리 수련생 사이 혹은 책임자 사이에 무슨 번거로운 일이 일어나면 서로들 네가 옳네, 그가 틀렸네, 하며 다툼이 일어나 일종 긴장상태를 조성하는데, 이는 옳지 않다. 대법제자에게 이런 상태가 나타나 마음속에서 이런 일들로 투덜투덜 불평한다면 당신의 마음은 곧 속인 중에 있다. 우리는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모두 법 중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우리 자신을 보아야 하며, 자신의 내심을 보고 내가 어디에서 틀리고 있는가? 오늘 갑자기 발생한 이 문제는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며 자세히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 얼마나 되는 사람들이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진정하게 자신을 생각할 수 있는가?! 물론 우리 많은 사람이 시기마다 모두 이렇게 할 수 있지만, 당신들은 많고 많은 같지 않은 시기마다 모두 이렇게 하지는 못한다. 당신이 자신의 진정한 원인을 찾았을 때, 당신이 그것을 정시하며 그것을 인정할 때, 당신은 그 일이 즉시 변하고 모순도 없어짐을 발견할 것이고, 상대방이 어찌 된 까닭인지 갑자기 당신과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어떤 모순도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되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련하는 사람인 당신에게는 그 어떤 우연한 기회가 존재하지 않고, 또 당신에게 그 어떤 우연한 것이 있으므로 해서 당신의 수련 이 한 갈래 길이 파괴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딪히는 모든 일에서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겨, 자신의 어디에 잘못이 있고 어디가 틀렸는지를 찾을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본다. 당신이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대할 수 있는가 없는가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나의 한마디 말을 기억하라. 당신이 정말로 자신을 수련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다면 당신이 부딪히는 그 어떤 일, 번거로운 일, 당신 마음속으로 불쾌하게 여기는 일은, 표면상 당신이 옳든 그르든 모두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자신이 이런 문제에서 그 동기를 찾는 것을 아주 어려워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만약 수련하는 사람이 단지 표면상으로만 내려놓고 마음속에는 아직도 지닌 채, 한 가지 것을 고수하면서, 당신 자신의 그 가장 본질적인 이익을 다른 사람이 해치지 못하도록 고수하고 있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그것은 가짜 수련이다! 당신 자신의 내심을 움직이지 않으면 당신은 한 발자국도 제고할 수 없는바,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오로지 당신이 진정하게 내심에서 제고 해야만 당신은 비로소 진정하게 제고된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 어떤 일에 부딪히거나 번거로운 일, 내키지 않는 일 혹은 누구와 충돌이 발생했을 때, 꼭 자신을 살펴보아 자신을 찾는다면 당신은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과거 기공수련을 열심히 할 때, 자기 몸의 에너지 장이 외면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이런 일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잘못되어 있어 이 우주특성으로부터 빗나가 있기 때문이며, 주위의 일체가 당신과 모두 조화되지 않음을 발견하는데, 바로 이러한 관계이다. 당신 자신이 그것을 조화롭게 하면 일체가 다 순조롭게 된다. 바로 이러하다.

법을 배우는 중에서 또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어떤 수련생이 법을 배우는데 당신이 그가 정진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니 그도 책을 보았고, 당신이 그가 정진한다고 말하자니 그는 아직 책 한 권마저 다 보지 못했으며 『轉法輪(전법륜)』은 보지도 못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일을 가볍게 보지 말라. 특히 신 수련생은, 당신이 만약 첫 번에 이 책을 완전히 볼 수 없으면 당신은 이후부터 시간이 없고, 기회가 없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설령 당신에게 시간이 있다 해도 당신은 또 보는 것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매 한 사람에게는 모두 사상업력이 있고, 이 사상업력은 모두 이기적이고 나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대법을 배워 이렇게 바르게 하고, 이렇게 잘하며, 그것을 없애버리려 하자, 업력 그것 자신이 겁나서 당신으로 하여금 더 배우지도 더 보지도 못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중도에서 이 책을 놓고 보지 않으면 그 사상업력이 곧 당신을 몰아붙여 당신으로 하여금 다시 책을 볼 기회를 없게 하며, 당신에게 더는 대법 책과 접촉할 기회를 없게 한다. 이것이 곧, 왜 어떤 사람들이 책을 좀 보고, 배울 기회를 찾는 것이 그리 용이치 않은가 하는 원인이다. 그러므로 일단 이 책을 보려면 첫 번에 꼭 끝까지 보아야 하며 단숨에 끝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이 이 한 번에 다 보았을 때, 당신은 당신의 모든 좋지 않은 관념이, 당신의 사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들이 기본상 부서졌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이 다시 법을 배울 때 이 면의 장애가 없다. 그러므로 우리 수련생, 특히 노수련생은 반드시 이 문제에 주의해야 한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배우라고 할 때(그가 보려 한다면) 그에게 한 번에 끝까지 보라고 해야 한다. 만약 그가 첫 번에 끝까지 보지 않고 다시 보지 않을 때 당신이 다시 그에게 책을 보라고 하면 그는 즉시 말할 것이다. 나는 시간이 없어 조금밖에 보지 못했다고. 사실 그 사람은 매우 어리석다. 나는 사람의 신체는 마치 옷과 같아 누가 입으면 곧 누구이고, 이 사상은 마치 모자와 같아 누가 쓰면 곧 누구라고 말했다. 그가 입으로, 나는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그 한마디 말은 업력이 한 것으로서 그로 하여금 보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에게 일을 많이 찾아주어 그로 하여금 책 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데, 이는 법을 배우는 가운데서 쉽게 나타나는 문제이므로 여러분은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외국어판 『轉法輪(전법륜)』이 일으키는 작용은 중국어판이 일으키는 작용과 완전히 같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우리 외국어로 번역하는, 각국의 문자로 번역하는 수련생은 늘 서로 간에 쟁론하곤 한다. 그는, 이러한 뜻이 있는데 당신은 넣지 않았다든가, 그는 저러한 뜻이 있는데 당신은 넣지 않았다든가, 이 단어를 번역한 것이 바르지 않다, 저 단어를 번역한 것이 틀렸다든가, 흔히 모두 이렇게 논쟁하는데,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이 틀렸는가, 틀리지 않았는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당신들은 또한 틀렸다. 왜 틀리지 않았다고 말하는가? 당신이 말한 그 함의는 확실히 당신이 본 것으로서 그것은 속인을 초월한 것이지만 백지 위에 남겨놓은 검은 글자는 속인의 것을 초월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당신은 번역할 때 다만 최대한도로 속인의 이 경지 중의 단어, 원뜻에 부합되게 하면 된다. 그 배후의 내포, 당신이 볼 수 있는 이치, 그것은 배후의 요소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번역 중에서 보편적으로 존재하는 몇 가지 문제이다.

우리 수련생이 끊임없이 제고됨에 따라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에게 똑똑히 말해주려고 한다. 특히 우리 어떤 백인제자, 또 기타 민족의 제자 여러분에게 나는 한 가지 문제를 말하려고 한다. 대법을 수련함에 아주 많은 사람이 어떤 광경을 볼 수 있는데, 우리 수련생 사이에서 그가 수련해 낸 신체 중 많이는 다 불가의 것이 아님을 발견한다. 그중에는 도가의 것도 있고, 신(神)의 것도 있으며, 백인 그 천국의 그런 신의 형상과 같은 신체도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생각하는 어느 한 문은 좋고 어느 한 문은 나쁘다는, 그것은 당신이 속인의 관념에서 인식한 것인데, 위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그럼 왜 우리 제자 중에는 부동한 세계의 그런 신체 형상이 있을 수 있는가? 이는 당신들이 부동한 곳에서 와서, 부동한 인종으로 지상에 전생(轉生)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고층차에서 내려온 생명이라면, 본질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반드시 당신 자신의 원래 세계로 되돌아갈 것을 원한다. 당신이 지금, 나는 사부님의 세계로 가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사람의 사상으로 생각한 것이다. 우리는 여러분이 당신들 당초의 그 소원에 도달할 수 있도록 보장하려는 것이지, 당신의 지금 사람의 소원을 위해서가 아니다. 다시 말해서 이 한 부 법에 동화함으로써 다시 당신들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므로 내가 전한 이 법은, 비록 불가에 기점을 두고 이 법을 강의하지만, 그는 우주 전반의 법이며, 우주의 모든 부동한 층차, 부동한 경지, 부동한 단원세계 중생들의 부동한 층차의 법리가 포함되어 있다.

이 일을 말한 김에, 나는 다시 의미를 넓혀 또 다른 각도에서 공간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나는 방금 사람은 사람마다 온 공간이 다르고, 온 층차도 다르다고 말했는데, 말한 김에 이 우주의 구조를 말하겠다. 내 말은, 우리 이 지구 그것은 거의 우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지구와 같은 이러한 구체(球體)는 다른 곳에 극히 소량 존재한다. 그러나 유독 우리 이곳만은 중심에 위치한다. 그런데 중심위치 그것은 곧 그것의 특수성이 있다. 그러나 우주의 개념에서 말하지 않았다. 예컨대 우리가 일반적인 속인사회에서 속인의 지식을 배울 때, 중심은 가장 높은 것이고 가장 좋은 것이라고 모두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주의 개념 가운데서 지구 이 중심은 가장 좋지 못한 것이다. 무엇 때문인가? 우주는 둥글어서 우주 중의 각종 생명이 모두 아래로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디로 떨어지는가? 우주는 둥근 것이기에, 이 왼쪽이 위라면 이 밑도 역시 위가 아닌가? 이 오른쪽이 위라면(손동작하심) 이 뒤도 위이고, 이 앞쪽 역시 위이다. 그래서 그것의 좋지 못한 것은 곧 아래로 떨어진다. 어디로 떨어지는가? 곧바로 중심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그러나 우주는 매우 복잡하여 중심에 대한 다른 개념도 있다.

이 우주에는 그렇게 많은 층차가 있다. 예를 들면 대략 30억이 채 안 되는 은하계와 같은 이러한 천체가 한 개 우주범위를 구성(構成)하는데 우리는 보통 소우주라고 한다. 또 이러한 소우주가 약 3천 개 있는데 그들 사이는 모두 상당히 먼 거리다. 우리 일반 사람에게는 이런 개념이 없다. 일반적인 신의 개념으로도 이 거리는 역시 상당히 멀며 서로 간에 보지 못한다. 그러나 이 3천 개의 이러한 우주, 그것의 바깥둘레에는 껍질이 있어 제2층 우주를 구성한다. 이와 유사하게 추리해 가면 제2층 우주의 바깥에 또 이렇게 큰 우주 3천 개가 제3층 우주를 구성한다. 이 수(數)의 개념은 대단히 크다. 만약 쌀 한 알로 한 우주를 대표한다면 그것의 배수는 상당히 크게 확대된다. 그럼 3천 개 쌀알이 이미 책상만큼 커지는데, 심지어 이것보다 더 크다. 그럼 3천 개 책상만큼 이렇게 크면 이 극장은 담아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것의 배수는 상당히 큰 것이다. 그것의 체적, 그것의 범위를 말하면 대단히 크다.

그러나 이 우주, 그것은 다만 내가 당신들에게 말한 간단한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우주, 그들도 한 개 입자로 본다. 실질적으로 그것은 확실히 한 개의 입자다. 게다가 그것은 또 우주 중에서 아주 작은 한 개 입자의 형식이다. 그러나 이 외에 천체 전반을 구성하는 매개 입자 속에는 그 천체 개개의 존재형식이 있고, 천체 속에는 또 개개 층차의 하늘이 있다. 그것의 매개 입자 속에는 다 부동한 층차가 있는데, 그것들 안에 있는 생명으로 말하면 곧 다른 하늘이며 다른 층의 하늘이다. 그러나 다른 층의 하늘 안에 또 다른 신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는데 많기가 부지기수이다. 내가 지난번에 미국에 와서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법할 때, 그날 여러분에게 말한 그 개념은 말한 것이 이미 대단히 컸다. 내가 말한 것이 몇 층인가? 나는 일찍이 81층을 말했고, 후에 와서 나는 또 당신들에게 천여 층까지 말했는데, 말한 이 범위가 대단히 컸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당신에게 말한 그 범위가 당신들에게는 크기가 불가사의한 것으로 생각되겠지만 사실 그것 역시 극히 작은 것이다. 만약 그것과 멀리멀리 떨어져서, 그것을 초월해서 돌아본다면 그것 역시 한 알의 우주먼지인 것으로서 이 천체는 이런 정도로 크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우리가 지구에서 발전해 온(발전해 온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사람의 언어로 말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구를 기초로 한 이런 세계, 이런 연대(連帶)를 다만 발전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확대하자. 그렇게 크고 방대한 천체로 확대 발전한 그것은 한낱 한 체계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체계 역시 부지기수인지라, 인류의 숫자로는 가늠하지 못한다. 그럼 그런 천체 중에는 모두 부동한 생명이 있으며 서로 간의 거리는 아주 멀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 우주는, 크기를 당신들 사람의 언어로는 그것이 얼마나 큰지 형용할 수 없다. 그 생명의 차이는 곧 상당히 크다. 인류는 늘 자신들이 발전시켜온 오늘날의 문명을 대단하게 여기는데, 맨해튼은 그런 빌딩이 세계에서 가장 많이 있는 가장 큰 곳이다. 현재의 이 과학기술 발전을 인류는 역시 득의양양해한다. 회상(回想)해 보고서는 고대인은 그래도 현대인보다 못하다고 생각한다. 고대인들은 마차를 몰아야 하고 마차를 타야 했으나, 현대인은 자동차, 기차, 비행기를 모는데, 사람들은 자신의 발전이 아주 휘황하다고 느낀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은 다른 천체, 다른 세계에서 온 것이다. 인류사회에서 발전한 일체의 것은 모두 다른 천체 다른 사회에 있던 것으로서, 사람의 사상 속에 흔적으로, 또는 정보라고도 불리며 남아 있던 것인데, 그것을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 중에서 다시 가장 거친 인류 공간의 물질로 만들어내게 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다른 우주공간 중에는 벌써 있었다.

나는 방금 많은 사람이 모두 머나먼 곳에서 왔다고 말했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들 서로 간의 차이와 특성은 매우 크다. 그렇다면 길고 긴 세월을 지나오면서 생명이 계속해서 그렇게 좋지 않게 변하게 되면(하늘의 말로 하면 좋고 나쁨이 없는, 그들이 늘 쓰는 한마디 말, 늘 쓰는 개념으로 말하면, 곧 그것이 무거워지면), 그것은 곧장 아래로 침적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그렇게 순결하지도 가볍지도 않아 뜰 수가 없으면 그것은 곧 침적하고 만다. 실제로 물질에 변이(變異)가 발생해 이미 불순해진 것이다. 그것은 침적하고, 계속해서 침적하는데, 과거의 이런 발전과정이 곧 이런 한 과정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느려 사람들 자신은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하며, 신(神) 자신 역시 아무런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세월이 아주 느리고 너무 길어서 사람의 시간으로는 계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을 말하면, 공간이 다르면 시간도 다르다. 그 시간은 대단히 복잡한 것으로서 곧 시계 안에 크고 작은 같지 않은 톱니바퀴가 있는 것처럼 거의 이러하다. 사실 비교하면 복잡하기 그지없어 억, 조 배로도 모자란다. 사람의 개념으로는 개괄할 수 없다. 바로 그것은 곧 자신의 주기가 있으며, 그것은 자신의 시간이 있다. 이런 부동한 차이를 갖고 있기에 이 물질이 곧 아래로 침적한다. 사람이 이 지경에 이르면, 사람들은 모두, 사람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다고 느낀다. 사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겠다. 사람의 사상은 확실히 매우 복잡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기나긴 세월을 거쳐 여기로 왔기 때문이다. 기나긴 세월 중 어느 한 층차의 것이든, 그것은 모두 당신들의 생명 중에 보존되어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사람 대뇌의 70%는 쓰지 못하게 되어 있음을 알고 있다. 즉 사람의 지혜가 축소되었다. 만약 사람의 지혜를 전부 열어놓아 신(神)과 같은 그런 큰 지혜이면, 인류사회에 있는 당신의 그런 복잡한 사상은 그렇다면 곧 큰일인즉, 인류사회에 어떠한 변화가 발생할지, 그건 말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 문제를 말한다. 나는 말한 김에 또 한마디 하겠다. 지금 인류의 이런 발전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사람의 탐욕은 끝이 없는 것이라, 높은 경지 중에 이르러서도 그는 여전히 탐욕하고, 그는 여전히 위로 발전하려 하는데 이렇게 함은 실제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사람의 상태를 초월하고, 사람으로서 알 수 있는 일체를 초월하였을 때, 인류로 말하면 극히 위험한 것이다. 인류의 지혜가 봉폐된 것도 사람으로 하여금 그렇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하게 하고 사람에게 그렇게 큰 지혜가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말한 김에 나는 한마디 더 하겠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개개인이 진정하게 자신의 사상을 주의하기만 하면 순간에 곧 변화하며 일 초 동안에 가히 많은 염두가 변해 나옴을 발견할 것이다. 당신 자신도 이 염두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어떤 것은 상당히 괴이한데 바로 당신이 생생세세에서 갖고 온 부동한 관념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 그것이 반영되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모두 사(私)적인 것을 위하고 자신의 이익을 수호하는, 그런 후천적으로 형성된 관념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나쁘게 변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원인으로 말미암아 사람은 다만 아래로 떨어질 뿐 다시 위로 승화하지 못한다. 각자(覺者)․불타(佛陀)신(神)이 와서 사람을 제도하는데, 그들 역시 이런 것을 보았다. 물론 이 안에 또 많고 많은 복잡한 요소가 있다. 신(神)인 그도 누구나 다 제도하는 것이 아니고 모두 자신의 사람을 찾아서 제도한다. 나는 또 한 가지 비밀을 게시(揭示)하였다. 오로지 나만이 이 일체 봉폐를 열어놓고 모든 사람을 제도한다. 우리 여기의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부님께서 자비롭기 때문에 우리를 제도한다고 한다. 사실 많고 많은 것은, 당신들이 알 수 없으며 당신들을 제도함이 그 얼마나 어려운가는 영원토록 모두 당신들로 하여금 알게 할 수 없다. 당신이 생각해 보라. 당신들의 그런 복잡한 관념은 부동(不同)한 층차의 하늘, 부동(不同)한 세계, 부동(不同)한 경지의 그런 일들과 연관된다. 오늘날 우리 중국에 한마디 말이 있는데 어떤 일들을 결정하는 것을 “파평(擺平)”이라고 한다. 당신이 어떻게 이러한 일들을 공평하게 처리하겠는가.

모두 사람을 제도한다고 말하는데,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비로소 그를 제도하여 올라오게 할 수 있는지 누구도 모른다. 대단히 어렵다. 나는 방금 말했다. 각자(覺者)는 모두 자신의 사람을 찾아서 제도한다고. 그는 관계하지 않으며, 되도록 다른 사람과 관계하지 않는다. 그가 일단 연관되었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제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괴로워진다. 왜냐하면, 이 세계가 매우 복잡하여 좋고 나쁜 관념은 일정한 층차에서 모두 변이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의 이런 좋고 나쁜 관념이 없다. 당신이 그의 것을 건드렸을 때 당신은 아마 그의 많고 많은 것에 연관될 것이며 그의 세계는 모두 변이가 발생하여 어떠어떠하다고 할 것인데, 당신이 책임질 수 있는가? 당신은 책임지지 못 한다. 당신이 억지로 하면 당신은 곧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사람을 제도한다 하여도 역시 나쁜 일을 하는 것이다. 당신들이 그렇게 상상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이 일은 하기가 몹시 어렵다. 우리에게 제자 하나가 더 많아지고 수련생 하나가 더 많아지면 나의 이쪽에는 곧 어려움도 한 몫 더 많아진다. 그러나 나는 그래도 제도하려 할 뿐만 아니라 얼마나 제도할 수 있으면 곧 그만큼 제도하며, 되도록 더 많이 제도하려 한다. 당신들에게 간단한 예를 들겠다. 내가 당신을 제도하려 할 때, 당신은 마침 어떤 종교를 믿고 있다. 그 종교는 과거에는 아주 바른 것이었으나 지금 그것은 사람을 제도하지 못하며 일종 정치형식으로 되었다. 그럼 당신을 제도하기 위해 나는 당신에게 그것은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고 알려주는데, 이러면 곧 그 종교를 건드리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것은 곧 방해하고, 파괴하는 일을 하게 되며 심지어 여러 면에서 나쁜 짓을 한다. 이것은 간단한 예를 든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말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 모두 나의 대법제자로서, 과거의 많은 종교를 우리가 그것이 사(邪)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불교․기독교․천주교․유태교를 포함하여 또 일부 교가 있다. 나는 그것들이 역사상에서 정교(正敎)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오늘의 이 역사 시기, 오늘 현대화한 사람의 관념을 가진 사회 중에서 사람들은 이미 사람의 본질과 낡은 관념으로 그것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당신의 관념과 그것의 원래 뜻은 이미 어긋났다. 당신은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당신도 곧 그것에 의해 제도될 수 없으며 그것도 상관하러 오지 않는다. 그러자 반대로 되어 사람이 종교 중에서 자격과 경력을 뽐내며 자신을 추켜올리고 사람들에게 그를 신봉하게 하고 그를 공양하게 한다. 그는 명(名)을 구하고 이(利)를 구하며 심지어 정객(政客)이 되어 버린다. 그럼 여러분 생각해 보라. 고개를 돌려보라. 이 종교는 아직도 정교인가? 나는 불(佛)․도(道)․신(神)이 바르지 않다고 하는 것이 아니며 이 종교를 말하고 있다. 종교는 사람이 인정한 것이며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신은 오히려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다만 사람 마음만 인정한다. 당신의 목적은 비록 부처의 세계로 가고 예수의 세계로 가려는 것이지만 당신이 한 일은 도리어 그렇지 않다. 종교 전반이 모두 이렇게 했는데 당신이 말해 보라. 그것의 가르침이 바른 것인가? 말하기가 몹시 어렵다. 나는 여러분에 대해서 책임지려고 한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줌은 당신이 시간을 놓쳐 잘못될까 걱정되어서이다. 사람을 제도할 수 없는 그 종교에 의해 잘못될까 봐서다.

나는 이번에 여러분과 같이 이 회의에 참가하러 왔기에 무슨 문제가 있으면 그 문제에 대해 여러분에게 말해 주겠다.

방금 내가 수련생들의 발언을 들을 때, 우리 어떤 사람들은 진득하게 있지 못하는데, 그는, 내가 말할 수 있게 수련생들로 하여금 아주 적게 발언토록 하려 했다. 나는, 우리 이 법회는 바로 심득교류회인 만큼 이 일을 교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법이라, 모두 겨냥성이 있고, 목적이 있어야 나는 비로소 말한다. 어떤 문제를 보고 내가 여러분에게 명확히 말하여 제고에 도움이 있게 한다. 물론 수련과정 중에는 또 많고 많은 문제가 존재한다. 내가 재삼 말하는데, 전 세계 어떤 지역에서든지 모두 중국처럼 그렇게, 그런 형식으로 수련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중국사회가 사람에 대한 관리에서는 엄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다. 이렇게 엄한 사회 중에서 우리는 순조롭고도 순조롭게 법을 전해 나올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장래 그 어떤 사회에서도 모두 이 법에 손상을 입히지 않고 유전해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법을 전하는 이 몇 해, 이런 과정 중에서 마땅히 어떻게 해야 했으면 나는 중국에서 모두 그들로 하여금 어떻게 하라고 했다. 문제가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시정(糾正)하여 그로 하여금 순조롭고 건강하게 발전하게 하였다. 다른 나라, 다른 지역에서 여러분도 이렇게 함으로써 이 법으로 하여금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수련생으로 하여금 손실을 적게 받게 하는, 바로 이 목적이다.

수련이란 매우 엄숙한 일이다. 인류사회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발전하였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바, 모든 일이 다 우연한 것이 아니다. 내가 보는 인류사회의 발전은 당신들이 보는 것과 전혀 같지 않다. 우리 사람은 모두 자기 민족을 위해, 자기 지역, 심지어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상 중에서 문제를 고려하며 이런 기초 위에 서서 사고하는데, 그것은 모두 사람의 사상이다. 나는 문제를 이렇게 보지 않는다. 나는 역사를 분석함에 전체 인류의 발전을 보는데, 당신들처럼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사람이 문제를 봄은 아마 반대로 될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이 문제를 보는 출발점은 사람 중에서 행복을 얻으려 하기 때문이다. 신은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 중에서 재빨리 업력을 깨끗이 갚고 당신의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 행복을 누리게 하려 하는데, 이것이 본질적인 차이이다. 그러나 사람은 곧 사람 여기에서 편안하고 편안하게 살려고 생각한다. 물론 법을 얻지 못하면 그는 곧 이렇게 생각한다. 법을 얻으면 관념이 변하게 되는데, 이것은 전혀 같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사람이 고통을 좀 겪고 일부 마난에 부딪힘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무엇 때문인가? 사람이 자신을 수호하려 할 때 생각은 모두 ‘사(私)’에서 나오며 ‘사(私)’를 위한 그런 소원으로서 고통을 겪지 않으려 하고 행복해지려고만 한다.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 보라. 우리 사람들은 모두 행복해지려고 생각하는데, 지금 있는 많은 백인사회를 포함하여 확실히 그의 생활조건은 중국, 아시아 지역 나라에 비해 훨씬 나으므로 그는 이것이 매우 행복하다고 느낀다. 사실 그들에게는 다른 고통이 있다. 속인은 생로병사의 고통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각종 욕망대로 얻지 못할 때 그 정서 때문에 이끌리는 고통은 더욱 괴롭다. 그들은 또 생활에 안식처가 없다고 느낄 수 있으며 왜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사는 것은 고독하고 적막한데, 참기 어려운 적막은 사람의 가장 큰 위험이며 또한 수련 중 가장 큰 한 가지 난이다. 그래서 사람은 고통 중에서, 각개 다른 환경 중에서 모두 사람으로 하여금 수련하고, 제고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생을 겪는다든가, 일부 고통을 당하는 것은 그 무슨 나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의 관념으로 말하면 당신이 고통을 당한 후에는 당신의 업력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당신에게 얼마나 큰 곤란이 발생하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정확하게 대해야 하며 매우 온화한 심태(心態)로 그것을 대해야 한다. 마치 내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과 충돌이 발생하면 당신은 안을 향해 찾아야 하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아야 하며 밖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 그럼 당신의 心性(씬씽)은 실제상 곧 제고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말한 바 있다. 물론 수련계의 말이다. 이 사람이 도(道)를 수련하지 않지만 이미 도(道) 중에 있다는 말이다. 무슨 뜻인가? 이 사람은 속인사회 중에서 생활이 비교적 가난하다. 하지만 늘 어떤 번거로움에 부딪힌다. 그러나 번거로움에 부딪혔을 때 그는 모두 사람과 착하게 지내고 자신의 잘못을 찾는데, 그럼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하게 가장 좋은 사람이다. 만약 그가 이렇게 장기적으로 내려가면, 그가 이렇게 생명의 마지막까지 견지할 수 있을 때 당신은 그가 도를 얻게 됨을 발견한다. 왜 도를 얻게 되는가? 예를 들어 말하면, 여러분이 모두 알다시피 서양의 종교는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전하는 것과 같지 않으며 동양의 수련형식과도 같지 않다. 그는 믿음을 중요시한다. 오로지 주(主)를 믿고 예수를 믿는데(그리스도를 믿음), 신이 말한 대로 하면 곧 천국으로 갈 수 있다는 한 가지 이치이다.

물론 서양종교 그것 역시 수련이다. 무엇 때문인가? 그가 기도할 때 나는 어느 곳에 잘못하였다고 말하고 그런 후에 다음번에 잘하며, 다시 같은 착오를 범하지 않는다. 그는 점점 잘하여 갈수록 좋아지고 갈수록 좋아지며 그는 다시 예전에 범했던 그런 모든 착오를 범하지 않는다. 그가 할수록 잘하지 않는가? 이것이 곧 心性(씬씽) 수련 중에서 제고하는 것이 아닌가? 닦음(修)이란 곧 사람의 마음을 닦는 것이라 그럼 그의 이 마음이 제고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제고가 곧 수련이 아닌가? 그러나 그는 한 가지가 부족하다. 우리의 수련은 성명(性命)이 동시에 제고되고 있지만, 그의 수련은 다만 성(性)만 닦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오로지 그의 생명이 결속될 때 예수그리스도 혹은 그들의 천주, 여호와가 와서 그가 하늘로 올라갈 표준이 되는지, 되지 않는지를 심사하여 결정한다. 된다면 그는 곧 신의 신체를 그에게 만들어주어 그를 하늘로 맞이하여 간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수련과 과거 어떤 옛적 동양수련의 특징은 비슷하다. 당신의 心性(씬씽)이 제고를 얻음과 동시에 당신 자신의 신체도 변화가 발생하고 있으며 고에너지물질로 그를 대체하고 있는데 이것이 곧 우리의 특징이다.

예전에 불체(佛體) 수련을 말하는데 당신이 수련하여 당신의 경지가 끊임없이 제고되면, 당신의 단전(丹田) 부위에 원영(元嬰)이 나타날 수 있으며 원영은 곧 끊임없이 자란다고 한다. 형상을 보면 곧 작은 부처(小佛) 혹은 어린 도사(小道孩)로서 점점 크게 자란다. 최후에 당신 신체만큼 크게 자랐을 때 그는 곧 당신 본래의 육신을 대체한다. 불교, 그것은 열반을 주장하여 신체를 갖지 않는다. 육신이 탈락할 때, 볼 수 있는 사람은 신체 속에서 한 부처가 나타나서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동서양 사람의 개념이 같지 않음은 현재 동서양 문화가 같지 않기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옛적 먼 과거에는 서양에도 도를 닦는 것이 있었고 또 신체를 닦는 것도 있었는데 다만 지금의 서양사람, 그는 이미 그것을 실전(失傳)했을 뿐이다.

나는 이 몇 년 동안 여러 지역에 갔다. 나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산속에서도 그런 백인의 신(神)을 보았다. 이는 모두 지상의 신의 수련에 속한다. 나는 유럽 알프스 산과 미국의 로키 산에서도 보았다. 당신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절대 그 어떤 환희심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간다 해도 그들을 찾지 못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도 감히 당신을 만나지 못한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당신들이 수련하는 것은 대법이어서 더없이 바르고, 더없이 바르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 자신이 더없이 바르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원인은 당신 신체의 표면수련이 비교적 늦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련할 때 당신 생명의 미시적 물질에 일어나는 전화는 매우 빠르다. 왜 이렇게 빠른가? 당신이 선천적으로 내원(來源)한 그곳의 그 신체, 그는 본래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이 하늘이란 개념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인류의 거리 개념과 같지 않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만약 화성에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하늘에 있지 않겠는가? 역시 하늘에 있다. 당신 손이 가리키는, 이 한 치도 안 되는 공간은 하늘이 아닌가? 그것 역시 하늘이다. 당신들이 상상하는 사람의 거리개념의 그 하늘과 같지 않다. 거시적인 데서부터 미시적인 데까지의 물질처럼, 사람 신체의 세포와도 같이 세포는 분자로 구성되고 그다음 아래로는 분자, 원자, 원자핵, 중성자 마지막에는 쿼크에 이르거나 중성미자라도, 그것은 아직 매우 얕은 것인데, 줄곧 미시적인 데로 내려간다면 말이다. 사람의 거리개념으로 본다면 그것은 당신의 신체에서 또는 신체 이외의 어떤 물체에서 그렇게 큰 거리가 없으며 거의 한데 있다. 그러나 그 천체의 범위는 매우 크며 물질이 미시적일수록, 물질의 입자가 미시적일수록 그곳의 전체 면적은 더욱 크다. 그것의 한 개 입자는 매우 작지만, 그것은 무수한 입자로 구성된 정체이며 그것은 곧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사람의 공간범위를 초월한다. 하지만 사람의 이 공간은 보기엔 아주 크지만 실은 조금도 크지 않다.

우리 수련생은 수련 중에서 그 어떤 번거로움에 부딪히든 지 당신이 자기 몸을 점검하고 자신의 원인을 점검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문제든지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문제에 부딪히면 꼭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나는 방금 말했다. 남이 당신에 대하여 어떻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 여기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말한다면 전체 천체는 모두 매우 순응적인데, 당신 여기가 맞지 않는다면, 곧 당신 여기에 맺힌 문제가 있어 당신이 남과 맞지 않는 것이다. 당신이 자신의 원인을 찾을 때 문제는 전환되어 그것이 곧 맞게 되고, 진정되며 여러 사람도 당신과 다시 조화롭게 된다. 곧 이렇게 간단한 예를 들어 이러한 이치를 말한다.

우리 이것은 법회를 열고 있으며 또 발언할 사람이 있기에 나는 이 회의를 계속 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일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말하고 그런 다음 또 여러분에게 문제를 해답해 주겠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우리의 수련은 쉽지 않다. 여러분은 아주 많은 고생을 겪었다. 오로지 정교(正敎) 혹은 정법(正法)수련만이 고생을 겪는다. 만약 매우 순조롭고도 순조롭게 수련하고 어떠한 마난도 없다면 그것을 곧 수련이라 일컬을 수 없고 또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에 이르게 할 수 없다. 이는 절대적인 진리이다.

수련, 이 문제를 담론하는 김에 나는 여러분에게 지금 사회상에 많은 갖가지 종교에 대해 말하겠다. 하지만 내가 성명하는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는 종교가 아니다. 나는 절대 종교를 만들지 않으며 우리 法輪大法(파룬따파) 역시 절대 종교가 아니다. 또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법이 사회상에 전해지고 있음에 이에 상응해서 말하면, 이 우주의 일정한 층차에는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이치가 있다. 다시 말해서 내가 정법을 전하면 상응해 사법도 나오게 되는데, 그것은 상생상극의 이치가 조성한 것이다. 사람이 어느 문으로 들어가는지를 보며, 사람이 무엇을 깨닫는지를 보는데, 사람 자신이 이 지경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곧 사람 자신에게 미혹이라는 장애를 조성하였다. 이 미혹된 상태 중에서 당신이 그래도 정법을 인식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며 당신이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지를 본다. 그러므로 이것이 바로 관건이다. 사실 당신들이 여기에 앉아 법을 얻기는 쉽지 않다. 당신이 여러 면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떤 의식이 당신을 지도하여 얼마나 되는 곤란을 물리쳐서야 비로소 이 법을 얻을 수 있었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또 일부 사교(邪敎)가 유전되고 있는데 이런 사교가 말하는 것은 모두 무슨 세계의 종말이라든가 이런 것을 말한다. 물론 나는 겁난(劫難)이 존재한다고 말했고 불교에서도 이렇게 말했으며 기독교, 천주교, 도가에도 모두 이런 관점이 있다. 이는 우주발전의 법칙이다. 그러나 절대로 이런 사악한 종교가 말하는 것과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도 보았다. 일정한 시기에 확실히 이런 한 가지 일이 존재할 것이지만 그것은 해결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기에서 엄숙히 여러분에게 말할 수 있다. 이른바 1999년에 무슨 지구의 재난이 발생하게 된다든가 혹은 우주가 멸망하게 된다는 이러한 일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왜 난(難)이 있게 되는가? 내가 여러분에게 한 가지 이치를 말하겠다. 예를 들면 인류, 그의 도덕은 쇠퇴하였고 물질이 모두 부패하였다. 다시 말해서 이미 불순하게 변했다. 오늘날의 인류 문화가 혼잡하고, 각종 문화가 혼잡하며, 인종도 갈수록 더 혼잡하다. 그것은 확실히 인류로 하여금 아주 위험한 경지로 미끄러지도록 재촉하는데 이는 확실하다. 그렇지만 나는 말했다. 사람이 안 되기 때문에 비로소 난이 있는 것이라고.

왜 존재하지 않는가? 내가 말한다면 중국 그곳에 지금 1억이나 되는 사람이 우리의 대법을 배우고 있고, 우리, 전 세계 각지에도 수많은 제자가 이 대법을 배우고 있는데 사람 숫자가 이미 상당하다. 만약 이런 사람이 모두 선(善)을 향하고,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된다면, 이렇게 많은 좋은 사람을 두고, 우주 혹은 지구가 훼멸된다면 이런 좋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런 이치가 아닌가? 훼멸하는 건 그것이 나쁘기 때문에 비로소 훼멸되는 것인데, 이렇게 많은 좋은 사람을 어떻게 훼멸하겠는가? 다시 말해서 그 위험, 그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박수) 하지만 나도 여러분에게 말하겠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여기에 앉아 있음은 모두 법을 배우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기왕 이 문제를 말한바, 나도 여러분에게 자세히 말하여 그런 사악한 것과 혼란한 사상을 진일보로 제거하겠다.

여러분은 내가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고 있음을 다 알고 있다. 우리 여기에 앉은 사람은 모두 이 일을 믿는데 당신들은 직접 이익을 얻었으며 당신들은 확실하게 법에서, 이치에서부터 이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나는 단일하게 사람만 제도하려고 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이 일에는 사람을 제도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말한 것이 너무 높아서 우리 여기 앉아있는 어떤 사람은 새로 왔으므로 아마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내가 예전에 이런 문제를 말했다. 나는 전체 우주가 우주특성을 벗어나 [우주특성을 내가 『轉法輪(전법륜)』 중에서 이미 아주 똑똑하게 말했는데 “眞(쩐)․善(싼)․忍(런)”은 우주의 특성이다.] 불순할 때, 우주 중의 중생, 모든 물질과 생명이 순수하지 못하게 변했을 때, 그것은 곧 그 우주특성과 빗나가게 되는데, 즉 법에 빗나가게 된다고 말했다. 우주의 법이 부동(不同)한 층차상의 그 생명에 생활환경을 창립해 주었는데, 그 속의 생명과 물질이 기나긴 세월 속에서 불순하게 변했다면, 그것은 곧 그 매 층 법의 요구에 부합되지 않게 된 것이고, 이것이 곧, 왜 생명이 아래로 떨어져 내려오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부합되지 않은 후에는 곧 아래로 떨어져야 하기 때문인데, 나쁠수록 더욱더 아래로 떨어지며 줄곧 사람 여기에까지 떨어져 왔다. 이것은 아직 최후의 한 정거장이 아니다.

그럼 만약 이 물질에 정체적(整體的)으로, 광범위하게 이러한 문제가 나타난다면 이 위험성은 매우 크지만, 또 쉽사리 알아차리지 못한다. 내가 만약 이 법을 전하지 않고 당신들 여기 앉은 사람들이 이 법을 배우러 오지 않았다면 누구도 인류사회가 오늘날 이미 이런 정도에 이르기까지 패괴되었음을 알지 못한다. 바로 당신들이 이 법을 배워 명백해졌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인류사회를 보면 사람이 이미 이렇게 나쁘게 변한 것을 안다. 그러므로 우주의 이 법을,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말해 들려주었지만, 과거에는 신(神)마저도 몰랐으며 우주에 법이 있음을 중생이 알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다만 우주에 그들 부동(不同)한 층차 상태의 요구가 있음을 알았지만, 구체적으로는 무엇인지를 전혀 몰랐다. 그러한 기나긴 우주과정 중에서 모두 천천히 우주의 법을 빗나갔는데 이 과정을 신들 역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큰 한 가지 일을 하였다. 나는 왜 하는가? 이 속에는 원인이 있는데, 물론 나는 지금 아직 이런 것을 말할 수 없다.

나는 말한다. 내가 하는 이 일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나는 또 비뚤게 나간 일체 생명, 물질 그를 전부 바로잡았다. (박수) 그렇지 않으면 위의 그런 곳은 모두 위험하다. 내가 당신으로 하여금 아무리 잘 수련하게 하더라도 당신 역시 안전하게 있을 곳이 없으므로 모두 해야 한다. 당신들은 이 일 그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지를 모른다. 그러나 내가 비록 이렇게 말했어도 내가 한 다른 일면은 당신들이 보지 못한다. 나는 단지 사람의 형상, 사람의 형체를 갖춘 리훙쯔(李洪志)로 여기에 앉아서 당신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나를 당신들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면 된다. 내가 말하는 것은 결코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다만 설법하고 있으며 이 우주의 이치를 당신들에게 알려줄 뿐이다. 믿는가 안 믿는가, 수련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당신들 자신의 일이다.

여기까지 말한바, 나는 또 내친김에 여러분에게 다시 알려주겠다. 이 우주는 기본적으로 모두 바로잡았다. 유독 인류가 남았고 가장 표면적인 이 층의 물질이 남았을 뿐이나 역시 결속 중이다. 나의 공은 완전히 이 층의 물질을 제약할 수 있으며 그것으로 하여금 분열, 폭발이나 다른 무엇이 발생하지 않도록 완전히 제약할 수 있다. (박수) 그러므로 역사상에서 예언한 그런 현상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나도 이 문제를 말했다. 내가 만약 이 일을 하려고 하는데 당신이 그 어떤 것을 남겨놓자면 나는 곧 그것으로 하여금 좋은 것으로 변하게 해야 한다. 나는 예전에 이 한마디 말을 했다. 내가 말하기를, 마치 썩은 사과 한 알과 같이, 이미 모두 썩었는데 당신이 그것을 남긴다면 곧 나쁜 일을 하는 것이라고. 아주 높은 경지의 생명이 사람을 볼 때 모두 쓰레기와 같으며 그는 사람과 그들을 동류로 치지 않는다. 당신이 그를 남기려고 한다면 왜 그를 남기려고 하는가? 그를 남기려면 당신은 그로 하여금 좋게 변하게 해야 한다. 사람뿐만 아니라 이 속에는 지구상의 물질, 식물, 동물, 많고 많은 것들이 포함되었으며 모두 그 속에 포괄되었다.

내가 오늘날 하는 이 일은 전체 지구의 인류, 물질을 모두 좋게 하려고 한다. 나는 다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타 생물․식물․동물․그것은 법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직접 그것들에 해주고 직접 그것을 다시 만들거나 혹은 동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단독적으로 사람을 가리키는데 지구상의 사람을 모두 좋게 변하도록 하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 불가능한가? 왜냐하면, 일부 사람은 이미 나쁘게 되어 그로 하여금 법을 알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안다 해도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할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는 이미 법을 배울 자격이 없다. 그럼 이러한 사람 숫자 역시 상당히 가관이고 상당히 크다. 어떻게 하는가? 나는 인류 혹은 지구에 어떤 겁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지금 사회상에 치료하지 못하는 많은 질병이요, 각종 자연재해요 하는 그것 역시 다 우연한 것이 아니다. 현재의 과학은, 일체 물체는 모두 산 것으로서, 그것에게는 모두 생명이 존재하는 그 일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오로지 현재의 과학으로 그것 표면의 물리현상만 해석하며 그 생명이 있는 일면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대규모적인 도태가 출현할 것인데 이는 확실하다. 그 좋지 못한 것은 물론 곧 도태된다. 마치 사람의 신체처럼 그것은 신진대사를 하게 되며 좋지 못한 그것은 곧 도태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나타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일은 역조역대(歷朝歷代)에 모두 존재했고 몇천 년래 줄곧 이랬다. 사람은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들여오고 있으며, 신체는 신진대사를 한다. 이 지구 역시 마찬가지고, 인류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출생하는 것, 사망하는 것이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것은 더욱 엄중하게, 대규모로 이러한 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업력이 확실히 매우 큰 사람은 더는 이렇게 계속 생존할 수 없다. 지구를 보전하려는데, 어떻게 보전해야 하겠는가? 마치 당신들이 수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당신들에게 신체를 연화(演化)해 주는 것에 이어 동시에 또 새로운 지구를 제조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새로운 지구를 만들고 나면 우리는 어떤 것을 타고 건너가게 되나? 하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생각이고 사람의 개념이다.

방금 내가 말했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모두 미시적 물질, 미시적 입자에서 끊임없이 더욱 큰 한 층의 입자를 구성하며 줄곧 우리 오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세포와도 같은 ― 분자 이렇게 큰 입자까지를 구성한다. 다시 말해서 분자 이 한 층 입자 이하의 모든 물질은 이미 갱신되었고, 단지 이 층 표면의 이 분자 층, 가장 표면에 있는 것만이 남았다. 그럼 다시 말하면, 분자로 구성된 표면 이하의 미시적 입자로 구성된 부분에서 지구는 이미 새로운 지구이다. 이 층 표면공간의 물질은 좋은 사람에게 남겨져, 그가 새로운 지구로 들어갈 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느 날 갑자기 세계가 변한 것을 느끼게 하거나, 또는 어느 날 아침 일어나 보니 세계 일체가 모두 새롭게 변한 것을 발견하게 할 것이다. 이것 외에는, 사람에게 다른 어떠한 감각도 없다. 느낌상(感觀上) 그것이 변했음을 발견할 수 있을 뿐 아무런 충격도 없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어떤 한 층 물질이든지 모두 그 물질의 표면 이하는 미시적 물질로 구성되었는데, 미시적인 물질이 해체될 때는, 표면 물질 역시 곧 해체되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의 해체는 부지불식간에 일어나는 것으로, 마치 연기가 사라지고 구름이 흩어지는 것과 같다. 그때 사람은 여전히 원래의 곳에 있지만 이미 새로운 지구 위에 있다. 내가 말하는 목적은 여러분에게 알려주려는 것이다. 하나는, 이른바 그런 겁난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하나는 좋은 사람으로 되지 않는 사람은 위험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직접 우리 오늘의 인류에 관련되며 또 우리의 수련문제에 관련된다.

말한 김에 나는 조금 더 말하겠다. 어떤 사람이든 모두 내가 말한 것을 기이한 것으로 삼거나 혹은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환희심이나 각종 집착심을 품고 나가서 마음대로 마구 전하지 말아야 한다. 제자로서 당신들은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함을 안다. 나는 늘 어떤 사람들은 마음속에 무엇을 담아두지 못함을 느낀다. 나는 계속하여 여러분에게 말한다. 사람은 왜 사람인가? 사람을 왜 그가 우둔하다고 말하는가? 하나는 지혜가 작고, 하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면 그의 손발을 써야 하고, 그의 체력을 통해 그는 힘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신은 어떤 때 무슨 일을 함에 그는 손과 발이 필요 없고 그는 사상(思想)으로 곧 할 수 있으며, 그는 생각만 하면 곧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하면 신(神)의 공(功)은 극히 미시적인 데에서 아주 거시적인 입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개 입자는 모두 그 사람 본인의 형상이다. 그가 무엇을 형성하려고만 하면, 그의 공은 얼마나 큰 입자도 다 있어 곧 그 물체의 가장 미시적인 데에서 그것의 각개 층차 및 표면에 이르기까지 동시에 그 물체를 만든다. 그가 생각하면, 그 공은 곧 물체로 하여금 없던 데에서 있는 데로, 또한 매우 빠른 시간장(時間場)을 이용하여 그것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곧 왜 부처가 이처럼 큰 능력이 있고 신이 왜 이처럼 큰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가장 우둔하기 때문에 사람이 무엇을 하려면 자기 자신의 육체노동을 통해야 한다. 고층 건물 하나를 지으려면 수없이 많은 사람이 오르내려야 하는데, 마치 몇백 개 분자가 여기에서 분주하게 오가며, 분주하게 오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가장 우둔한 방식이다. 더군다나 부처가 무슨 일을 하면 사람처럼 사람의 이 시간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가장 빠른 그 공간의 시간으로 하기 때문에 이 공간 중에서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에 곧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인류의 시간장(時間場)에서는 생각하자마자 곧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수련한 층차가 높을수록 능력은 더욱 크며 장악할 수 있는 시공 역시 더욱 많다.

다음으로 문제를 해답하겠다.

제자: 저의 네 살 된 아들은 사부님의 『轉法輪(전법륜)』 및 경문을 읽고 외우기를 매우 좋아하지만, 동작 연마는 싫어하는데 이것을 수련으로 칠 수 있습니까?

사부: 어린이 그는 우리 어른과 같지 않다. 어린이는 놀기를 좋아하는데 이것은 그의 천성이며 집착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는 곧 이렇게 생활하는 것이다. 그럼 어린이에게 법을 배우게 하는데, 만약 그가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아주 좋다. 나는 어린이 보기를 아주 좋아한다. 왜냐하면, 어린이의 사상, 마음과 그의 신체가 참으로 순수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수련한다면 매우 빠른데, 그는 사람의 후천적으로 길러진 그 어떤 집착도 없다. 우리 일부 어린이가 법을 듣고 있을 때, 당신이 보면 그가 한편으로 놀고 한편으로 들어, 마치 잘 들은 것 같지 않지만, 그는 실제로 모두 마음속에 넣었는바, 당신이 그에게 물으면 무엇이나 다 안다. 만약 어린이가 연공할 수 있으면 대단히 좋다. 그러나 너무 어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는 어린이잖는가 곧 놀려고 한다. 어린이는 특수하게 대해야 한다.

제자: 백인에게 홍법(洪法)하는 중, 일부 사람은 예수에 대한 신앙을 버릴 수 없다는데, 이것이 그들이 대법을 수련하는 데 대해 어떠한 영향을 끼친다고 보십니까?

사부: 내가 불이법문(不二法門)을 말한 적이 있기 때문에 만약 전일(專一)하게 대법을 수련할 수 없다면 곧 우리 대법 중에서 원만에 이를 수 없다. 나는 방금 이미 말했다. 전체 우주, 혹은 대단히 큰 범위, 그것이 법을 빗나갔는데, 이 속에는 사람을 포함하는가 하지 않는가? 그 종교는 사람이 조직한 것인가 아닌가? 만약 우주 중생이 법을 빗나갔다면, 법을 빗나간 생명 속에 사람이 줄곧 신앙하는 천국 세계가 포함되어 있는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만약 불(佛)․도(道)․신(神)의 세계도 모두 그 속에 있다고 한다면 여러분 생각해 보라. 이것은 어떤 문제인가? 그 해에 법을 전한 예수든, 석가모니든, 노자든 혹은 여호와든 그들이 법을 전할 그때 우주의 중생과 생명은 이미 벌써 우주의 특성을 빗나갔다.

나는 가장 거칠고 통속적인 언어로 예를 하나 들겠다. 예컨대 그런 부처의 세계, 신(神)의 세계는 금으로 구성된 세계이다. 그러나 기나긴 세월 속에서 그들이 불순하게 변했을 때, 그것은 곧 족금(足金)․적금(赤金)이 아니지만, 여전히 금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18K금․16K금이다. 그럼 오늘 법을 바로잡았기 때문에 곧 순금, 족금, 적금, 24K금이다. 그러나 그들이 남겨놓은 종교 혹은 수련방법은 모두 18K금․16K금으로서 그때에 남겨놓은 것이라, 새로운 신불(神佛) 세계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는데, 그가 그래도 24K 순금의 세계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한 개의 분자라도 되돌아가게 되면 그것의 그 속은 곧 불순해지고, 또 당신은 오염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이치가 아닌가? 그러므로 나는 말하는 김에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현재 세계상의 모든 종교, 모든 정교를 포괄하여 나는 그것을 사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부처가 전한 것이다. 하지만 모두 다시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할 수 없다.

당신이 어느 한 문의 종교 중에서 수련한 것이 아무리 좋을지라도, 당신은 그 해에 불타(佛陀) 혹은 예수가 당신에게 가르친 것에 절대적으로 따라 수련한 것이다. 아무리 높이 수련하더라도 단지 그 해 석가와 예수가 전한 그 최고의 이치에 도달할 수 있을 뿐으로, 다만 16K금․18K금인데, 당신이 그래도 이 족금의 세계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석가 부처와 예수가 그리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전반 우주의 중생이 법을 빗나갔고, 그들은 다만 그중의 한 분자라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치이다. 나는 구체적인 것을 말하지 않겠는데, 문제가 대단히 크다. 그러나 사람은 좀처럼 미혹에 집착하여 깨닫지 못하며 오로지 지금 그가 본 것만 믿는다. 사람은 또 하나 몹시 엄중하고 고질적인 버릇이 있는데, 그는 이성으로 문제를 보지 않고 그는 감정으로 문제를 보기 좋아한다. 오랜 옛적에 전해 내려온 것을 그는 버리지 못하고 던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의 감정을 놓지 못하고 그의 이지(理智)로는 도대체 옳은지 그른지를 분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제자: 백인에게 법을 널리 전하는 중에 무엇을 반드시 주의해야 합니까?

사부: 백인과 우리 황인종의 사유방법은 같지 않기에 그들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 당신은 매우 복잡한 중국의 사유방법과 언어로 그에게 어렵게 굴지 말라. 그는 한 번 보고 이것이 너무나 어렵다고 한다. 이러면 아마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백인으로 하여금 법을 얻게 하려면 먼저 그에게 『法輪功(파룬궁)』(수정본)을 주어 보게 하고, 잘 배운 후에 다시 『轉法輪(전법륜)』을 보게 하면, 그는 비교적 쉽게 배울 것이다. 단번에 『轉法輪(전법륜)』을 보게 되면 대다수 사람은 알아보지 못하여 내려놓기 쉽다. 물론 또 특수하게 좋은 사람도 있어 보기만 하면 봐 내려간다. 또 하나 문제가 있는데 곧 책을 볼 때, 처음 보자마자 반드시 방법을 대어 그로 하여금 단번에 끝까지 보게 해야 한다. 중도에 내려놓으면 시간을 내어 다시 보기는 몹시 어렵다. 당신이 그로 하여금 배우게 하고 보게 하면 그는 보증하고 시간이 없다고 할 것인데, 모두 이러하다. 실은 그 사상업력(思想業力)이 그를 저지하여 그로 하여금 다시 보지 못하게 하는데, 그의 사상업력이 무서워해서다. 이 책을 보면 그의 사상업력을 없앨 수 있다.

제자: 우리는 미국 방송국, 텔레비전 방송국, 신문에 대법을 선전한 적이 있지만, 소식이 없는데, 계속 노력해야 합니까?

사부: 나는 여기에서 여러분과 또 한 가지 이치를 말하겠다. 당신들은 아마 나의 일관적인 방법을 모두 알 것이다. 나는 절대 그 어떤 종교형식을 취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도 속인 식의 명부로 당신들을 하나하나 장(張) 아무개, 이(李) 아무개라고 이름을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형식상의 것도 없고, 사무실이 없으며 또 어떤 유형적인 것이 없다. 어떤 유형적인 것이든 사람으로 하여금 집착하게 할 수 있는바, 모두 수련이 아니다. 단지 돈, 재물, 명리만 내려놓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의 법, 인류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이 법은 그야말로 크다. 그럼 상대적으로 말해서 이렇게 큰 법을 전하자면, 그것에 대한 요구 또한 아주 높다. 당신들은 내가 왜 이와 같은 무형의 길을 걷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의 이 법이 이렇게 커, 반드시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길을 걸어야만 비로소 우리가 이 법을 진정하게 세간에서 유전하는 형식에 부합하여 펼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많은 사람이 와서 법을 전수하였는데, 부처나 서양의 신 예수 그리스도, 심지어 여호와까지도, 그들은 모두 사람을 한데 모아 놓고 그가 잘 배우지 못할까 봐 두려워하고, 그가 떨어질까 봐, 두려워했다. 그래서 그들을 한데 모아서 수련하게 했다. 석가모니는 제자로 하여금 모두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게 하였으며, 예수의 제자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들이 전하는 법이 작기에, 그가 이렇게 요구하지 않으면 그를 제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이렇게 방대한 법이 있으므로, 우리는 과감히 풀어놓고, 당신으로 하여금 무엇이나 다 마음대로 하게 하는바, 바로 마음만을 본다. 나는 한 짝의 큰 문을 열어놓았다고 말했다. 사실 당신들은 아직 모르고 어디에 또 문이 있는가? 하는데, 전부 다 활짝 열어놓았다. 곧바로 사람 마음만 본다!

설령 당신들이 다른 공간, 다른 세계에서 와서 법을 얻는다더라도 당신들 이쪽 사람의 사상은 알지 못한다. 그럼 당신들은 당신들의 세계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는데, 당신들이 생각해 보라. 과거의 그런 방법, 과거의 그런 종교로 당신이 돌아갈 수 있겠는가? 당신은 절대 돌아가지 못한다. 우리 오늘의 이 법은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그를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게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는 우주 대법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속에는 곧 요구하는 것이 있다. 이 법을 세간에서 전함에 반드시 아주 바르게 걸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우리가 걷는 것은 가장 바른 것이다. 우리는 사람에게 명, 리, 정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우리 스스로, 나 여기에서 시작하여 우리 모두 이런 것들을 내려놓는다. 또 이런 것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또 당신이 속인사회 중에서 전하려면, 또 속인사회의 형식에 부합해야 하므로 파괴할 수 없게 한다.

게다가 우리가 법을 전하는 가운데서 어떠한 광고, 텔레비전, 신문선전이 거의 없었고, 대량으로 우리를 추켜올리는 것이 없었다. 이전에 설법할 때에 실었던 모든 보도는 내가 보고 보아도 이런 정신일 뿐이다. 즉 리훙쯔(李洪志)가 왔다는 것이다. 극소수 수련생이 대법을 선전한 적도 있지만 모두 개인적인 행위로서, 개인이 법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이다. 그래서 만약 우리 대법 자체가 어떠한 선전형식을 이용하여 자신을 선전한다면 모두 자신을 더럽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길을 걷지 않는다. 내가 수련생이고, 내가 또 신문사의 기자 혹은 편집인이라고 하며, 내가 법을 선전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개인적인 행위이다. 우리의 법은 이렇게 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개인적인 행위, 개인이 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그 한 마음이며, 개인이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우리 정체(整體)적인 법과 관계가 없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배우고 있는가?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의 법은 좋은, 우주의 법이잖은가. 누가 그를 좋지 않다고 할 수 있는가?! 곧 아무리 나쁜 사람인 그마저도 마음속으로는 탄복한다. 입으로는 반대하지만. 왜 입으로 반대하는가? 그는 알고 있다. 만약 모두 이렇다면 그는 정말 도태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어떻게 하며 이 법을 널리 선전하는가에 대하여 말하면, 그것은 당신들 개인적인 행위이다. 대법 자체는 무슨 형식이 없다. 우리는 한 갈래의 진정한 대도무형(大道無形)의 길을 걷는다.

당신들은 돌아가면 모두 평범하고 평범한 사회 중의 한 분자이다. 우리 여기에서는 다만 여러분의 사람 마음만 볼 뿐 어떠한 계율이 없고 어떠한 형식상의 명령식 규정이 없다. 과거에는 정말 감히 이 길을 걷는 사람이 없었다. 당신이, 그가 말하는 이 종교 저 종교에 관계하지 않고, 당신들은 모두 집에 돌아가 종교형식이나 이런 유위적인 일을 따라 하지 말고, 집으로 돌아가 수련하라고 한다면, 이 종교는 곧 해체되어 버릴 것이다. 감히 절대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법이 그렇게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여기에서는 한다. 여러분은 돌아가서 당신의 사업을 하고 당신의 생활을 개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러분은 마음속에 법을 담아 자신을 수련하고 있으며 진정하게 제고하고 있다. 나는 예전에 말한 적이 있다. 부처와 신, 그들은 속인의 종교를 보지 않고, 그 역시 종교를 승인하지 않으며, 그는 오로지 사람의 마음만 본다고. 종교가 파괴당했을 때 왜 부처는 상관하지 않았는가? 그 교회당이 파괴당할 때 그리스도는 왜 상관하지 않는가? 그것은 사람이 한 것이다. 사람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하려고 한 것이다. 여러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부처를 믿으라고, 절을 짓고 교회당을 지었는데 그것은 사람의 형식이다. 신(神)․불(佛)은 사람의 마음만 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다. 물론 우리는 더욱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며 절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다. 인류사회의 발전, 이 나라가 좋고 저 나라가 좋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그것은 사회발전으로 결정된 것이라 속인이 인위적으로 막지 못한다. 사람은 다만 속으로 온갖 궁리를 다 하여 사람 자신을 위해 분투하고 연구하며 혹은 어떻게 하려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천상이 거기에 이르지 못하면 속인은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인류의 발전은 인류에게 정해준 한 갈래 길이어서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걷는가는 어느 한 걸음도 모두 틀릴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을 초월한 것이다. 왜 사람의 일을 상관하려고 하는가? 어떤 그 종교의 정객은 무슨 독립을 위하고, 영토를 위하여, 심지어는 무슨 지위를 위하여 정치하는데, 더욱 심한 자는 살인을 하고, 테러활동을 한다. 이는 사악(邪惡)이다. 내가 말하면 그는 수련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의 정치를 간섭하지 않으므로 그는 단지 정객일 뿐이다. 불(佛)․신(神) 그가 요구하는 것은 천국 세계인데, 왜 인간의 세계를 다투려 하겠는가? 당신이 말해 보라. 그가 수련인인가? 그는 표준에 부합되는가? 사람은 아직도 이런 사람들을 신으로 삼아 숭배하는데, 사실 어떤 사람은 정말 좋지 못한 사람이라, 지옥으로 떨어져야 한다.

제자: 천만 년래 인류사회의 물질 환경도 사상업을 조성하는 요소의 하나입니까?

사부: 물론 그렇다. 이 물질 환경이 없으면 당신이 곧 업을 빚을 수 없다. 현재 인류의 이 환경이 없으면 좋은 일도 할 수 없으며 나쁜 일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이 환경이 없으면 곧 사람으로도 될 수 없는데, 이는 확실하다. 그러나 인류사회는 또 그 특수성이 있으므로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제자: 미국사회의 마성(魔性)은 미국사람이 법을 얻는 데 주요장애가 됩니까?

사부: 이렇게 말할 수 없다. 나는 미국의 마을과 일부 작은 도시에 이르러 많은 선량한 사람, 선량한 백인이 있음을 보았다. 전 세계 모든 대도시는 모두 비교적 난잡하고 악한 사람과 착한 사람이 마구 뒤섞여 있고 좋고 나쁜 구분이 없다. 종종 특별히 좋은 사람이 있으며 또 특별히 나쁜 사람이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상생상극의 이치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인데 당신은 일률로 논할 수 없다. 그러나 미국은 또 그것의 특징이 있다. 미국은 전 세계에다 현대파 변이인(變異人) 사상을 조성하는 데 대하여 매우 큰 작용을 일으켰는데, 여러 면을 포함해서다. 예컨대 예술이라든가, 문화라든가, 관념이라든가, 각개 영역 이런 현대파의 것은 일종 변이문화이고 사람문화가 아닌데, 이 점은 확실하다. 내가 느끼건대 50년대 이전의 그 미국문화, 그것은 사람의 문화이다. 사람도 비교적 선량하다. 그들 백인 남자는 신사 풍격을 중시하고 아주 문화적이며, 여인도 여인다워 나는 아주 좋다고 느낀다. 지금의 남녀는 마치 모두 같은 개성(個性)인 것 같다. 물론 이것은 내가 미국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방금 말했다. 나는 다만 인류의 변화를 말했을 뿐이다. 오늘의 동양 사람도 상당히 무섭다. 그런 나쁜 사상이라든가, 서로 간에 사람마다 해치고 있다. 사람은 모두 모르며 모두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입으로는 무슨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서로 해치기 시작하였다. 이는 문화 역사가 너무 유구하며 생생세세로 누구와 누가 모두 원한이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은혜와 원한의 시간이 너무 길어서 함께 만나면 아마 모두 보복하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로 해치는데, 서로 잔혹하게 해치고 있다. 당신들이 말하지 않았는가, 미국의 중국 사람은 단결하지 않는다고. 당신들은 누구나 모두 표면을 보고 있지만 사실 내가 본 것은 진정한 원인인바, 바로 이 원인이 조성한 것이다.

제자: 마성(魔性)에 교란당한바, 신체주위나 신체 안을 마구 쏘다니고, 주위 사람의 얼굴까지도 검게, 누르게, 퍼렇게, 창백하게 만들어 마치 마귀 같은데…….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어떤 사람은 그가 대법을 수련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당신이 대법제자라고 말하는데, 나는 당신이 진정한 대법제자인가 아닌가를 보아야 하는바, 당신이 입으로 말해서만 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제자는 반드시 진정하게 수련해야 하며 번거로운 일에 부딪히면 나의 마음에 문제가 있어 조성된 것이 아닌가 하고 자신의 마음을 찾아보아야 한다. 어떤 사람은 책을 한 번 보고 곧 나는 대법을 수련한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일, 저런 일에 봉착했다고 한다. 당신은 머릿속이 온통 속인의 일로 꽉 차, 문제에 부딪히면 당신은 곧 다른 사람과 다투고, 모순에 부딪히면 당신은 원인을 곧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을 나의 제자라고 하는데, 나 여기에서는 승인하지 않는다. 그건 물론 별도의 일이다. 물론 내가 이 쪽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만약 당신들이 자신의 마음에서 문제를 찾는다면 무슨 문제든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당신은, 과거에 일부 사람들이 스스로 많은 난잡한 것을 배워 신체주위를 매우 혼란하게 하고, 정보를 매우 혼란케 하여 늘 두려운 현상을 보게 하거나, 신체에 아주 무서운 반응이 나타나게 하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을 위해 그는 우리 대법을 배우러 왔는데 그는 우리 대법의 위력이 큼을 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것은 유위적인 것으로 구하고자 법을 얻으러 온 것이라, 그러므로 그것은 안 되며 얻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도 반대하지 않는다. 당신이 시작함에 법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기에 이런 마음이 있다. 그러나 일단 배운 후에는 당신은 이 마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면 무슨 현상이나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나는 나의 이치를 여러분과 명확하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轉法輪(전법륜)』 중에서도 매우 분명히 말했다. 꼭 책을 많이 보고 법을 배워야 한다. 책을 보면 당신의 이 문제는 모두 해결될 수 있다.

제자: 저는 늘 자신이 선량하다고 느끼는데, 저는 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은 그런 자비를 수련해내지 못합니까?

사부: 이 문제를 잘 제기하였다. 사실 당신이 쓴 이 쪽지 자체가 하나의 집착심이다. 그러나 당신이 쪽지를 쓴 것이 집착심이라는 말이 아니며 당신은 당신의 자비에 집착하고 있다. 그 물건은 그것이 오라는 생각을 한다 해서 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층차가 제고됨에 따라 당신들의 정(情)이 없어진 그 부분, 그것은 비지 않을 것이며 자비로 대체될 것이고 그것은 차츰차츰 점차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 여기에 앉아있는 나의 이런 많은 제자로 말한다면, 당신들 여기에 있는 많은 사람이 확실히 아주 높게 수련되었는데, 왜 그렇게 높은 자비심이 없는가? 사실 신의 자비는 당신들 지금 사람이 상상하고 있는 자비와는 전혀 별개의 일이다. 나는 예전에 여러분과 여러 번 이 문제를 말했다. 당신으로 하여금 속인사회 중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려고, 당신의 표면상 표현을 너무 특수하게 할 수 없다. 당신이 정말로 그렇게 큰 자비를 표현해 낸다면 당신은 정말로 속인 중에서 생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자비, 당신이 수련해 내는 일체는 모두 당신 생명의 가장 미시적인 곳에서 급속히 발전하고 있고 표면과는 갈라지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미시적인 입자에서부터 줄곧 가장 큰 입자표면인 분자까지로 조성(組成)된 것이고, 분자는 세포를 조성한다. 당신이 끊임없이 수련하여 당신 신체 속의 분자(사람의 언어가 제한되었기에 나는 다만 이렇게 형용할 수밖에 없다.)까지, 당신의 생명의 미시적인 입자가 전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며 법의 표준에 부합되고 있다. 그런 다음 잘 수련되었으면 그것은 곧 한 몫이 건너간 것과 같아 잘 수련되었으면 한 몫이 곧 건너가는데 자비마저도 건너갔다. 그럼 마치 창고와도 같아 당신에게 저장해 두며 당신이 수련한 일체를 저장해 둔다. 만약 당신의 신체표면변화가 너무 빠르면 당신은 도리어 수련하지 못한다. 당신은 무엇을 보나 모두 울려 하고 당신이 조그마한 일을 해도 모두 당신의 잘 수련된 그 면이 따라 하는 것과 같으며 신이 사람의 일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나쁜 일을 해도 신이 하는 것과 같으므로 당신은 곧 아래로 떨어져 내려오게 된다. 우리는 당신으로 하여금 떨어져 내려오지 않게 하려고, 당신이 또 속인 중에서 수련을 유지할 수 있게 하려고, 당신의 잘 수련된 한 몫을 분리하여, 당신의 잘 수련되지 못한 그 부분 그 굵은 입자와 갈라놓아 거기에서 가부좌를 튼 채 움직이지 않는 신처럼, 영원히 유지되게 한다. 반면 당신의 잘 수련되지 못한 그 부분은 모두 사람처럼 늘 속인 중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당신이 끊임없이 밖으로 수련하고, 끊임없이 당신 자신을 원만에 이르게 하여, 가장 표면의 분자까지 모두 원만을 이루게 되면, 모두 동화되고 모두 잘 수련된 것으로서, 그 최후 일보는 바로 원만(圓滿)이다. 우리는 이러한 한 갈래 길을 걷는다.

어떤 수련생은 말하기를, “사부님, 제가 이처럼 수련하는데 저는 왜 얼마나 큰 제고가 있는지 느끼지 못합니까? 어떤 때 사상에 아직도 나쁜 사상 염두가 반영되어 나오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라고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는데, 서두르지 말라. 만약 표면상에서 사람의 것을 모두 없애버린다면 당신은 정말로 수련하지 못한다. 당신에게 만약 사람의 사상이 없다면, 사람에게서 반응해 나오는 일체 사상에 당신은 모두 감응하게 된다. 현대 사람의 일언, 일행, 일념은 모두가 사(私)적인 것을 위한 것이며 심지어 아주 깊은 나쁜 염두인데, 당신은 다 견딜 수 없다. 당신이 어떻게 그 가운데서 생존하며 당신이 어떻게 그와 거래하겠는가? 그러므로 또 이렇게 하지 못한다. 당신은 표면상에서, 예를 들어 말하면 신체 속으로 백 몫을 잘 수련하였다면 당신 표면에서는 다만 당신에게 한 몫을 없앨 수 있다. 그래서 당신은 영원히 표면상에서 진보가 그리 빠르지 못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은 정상적이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하여 당신들은 곧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오, 원래는 이런 일이구나, 그럼 나는 두렵지 않다. 나는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한다면 그것을 하겠다. 내가 말하는 것은 한 가지 법리이다. 당신이 만약 당신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하지 않고, 표준을 좇아 하지 않으면 당신을 또 수련하는 것으로 치지 않는데 곧 이러한 한 가지 관계이다.

제자: 조금만 조심하지 않으면 곧 본래의 모습이 드러나는데요.

사부: 자신을 너무 나쁘게 말하지 말라. 사실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아냄은, 당신이 이미 당신 자신의 그때 사상을 초월하였으며 이미 원래의 당신 자신을 초월한 것이다. 속인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아내지 못하고 자신은 어디나 모두 좋으며 한 떨기 꽃이라고 여기는데, 그렇지 않은가? 당신은 자신을 수련하고, 자신을 검사할 수 있으며, 자신의 부족한 점을 보아내고 있는데, 그래도 당신은 수련하는 사람이 아닌가?

제자: 저는 예전에 두 가지 큰 착오를 범했는데 지난 다음 매우 후회됩니다. 이는 저의 副意識(푸이스), 아니면 저의 정보가 작용한 것입니까?

사부: 만약 우리가 속인 중에서 무슨 좋지 못한 일을 했다면 당신은 당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다. 당신은 또 그것이 主意識(주이스)가 한 것인지 아니면 副意識(푸이스)가 한 것인지 분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통일된 일체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또 이런 것은 모두 당신의 사상업력이 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 역시 자신의 主意識(주이스)가 확고하지 못함으로 인해 조성한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그것을 없애버리기 전에는 곧 당신을 교란할 수 있다. 업력을 없애버리지 못하면 그것의 이때의 표면적인 행위는 모두 당신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 만약 강렬히 배척하며, 똑똑히 분간할 뿐만 아니라 主意識(주이스)가 매우 강하다면, 그것은 다른 한 가지 일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그것을 배척하지 않는 한 모든 행위는 당신이 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수련이란 곧 이런 나쁜 것을 수련하는 것이며 동시에 主意識(주이스)를 강화해야 한다. 예전의 일은, 수련 중에서 가장 좋기로는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좋지 않은 것일지라도 이미 지나간 것이다. 앞으로 잘하라. 집착이 생기지 않도록.

제자: 미국에서 열린 몇 차례 법회를 우리가 녹화했지만, 국외의 육친에게 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사부님의 뜻을 위반하는 것입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말한 우리 이 대법의 수련방법은 한 갈래 가장 좋은 길이며 가장 순수한 길이다. 당신들의 진정한 원만을 보증하고 있다. 나는 정말로 당신들에 대하여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나는 우리 대법 중에서 우리 대법수련에 속하지 않는 그런 것을 모두 청리(淸理)해 버리려고 한다. 설령 내가 말한 것일지라도 국부지역에 대해서거나 어느 한 나라 제자에 대하여 말한 것이어서 다른 지역에 적합하지 않으면 청리해야 한다. 그것이 다만 이 한 지역에서 말한 것일 뿐이고 보편성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라면 역시 청리해야 한다. 목적은 당신들이 진정하게 수련할 수 있으며 어떤 교란도 받지 않게 하는 바로 이런 목적이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우리 현 단계에 오늘 여기에서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가지고 가서 수련생들에게 틀어주면 수련생들에겐 제고가 있고 좋은 점이 있잖은가? 당신들이 녹화했으면 곧 그만이다. 그러나 그 어떤 환희심, 흥분하는 마음을 품고 사회에 가서 이러한 것을 전파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내가 돌아가서 우리 연공장에 혹은 우리나라의 수련생에게 보여주겠다고 말하는데, 역시 안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런 일을 어떻게 장악하는가는, 내가 말한다면 내가, 제자인 당신에게 상세히 알려줄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다 보았거나 혹은 설법 책이 인쇄되어 나오면 곧 그를 지워버리면 된다. 누가 만약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복제하여 주고 이런 것을 틀어주며 이런 것을 전하고 함부로 출판사 혹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제작하게 한다면 곧 가장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럼 내가 말한다면 그는 곧 한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제자: 저는 이전에 수련에 정진하지 못하고 색(色)의 고비 면을 또 몇 차례 넘기지 못했는데 지금 고치면 사부님께서 그래도 가지실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이 한 차례, 두 차례 고비를 넘지 못했다 하여 곧 자신이 더는 수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들 수련이 사실 곧 이러하다. 어떤 사람은 잘 수련하여 이 고비를 넘었고, 어떤 사람은 좀 차이가 있어 이 고비를 잘 넘지 못했으며 심지어 이 고비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가 다른 면의 고비는 또 넘어갈 수 있다. 이처럼 시련을 겪으며 잘 넘기거나 잘 넘지 못하는데, 이것이 곧 수련이다. 개개인의 매 한 고비를 모두 넘길 수 있다면 당신은 더 수련할 필요가 없이 즉시 부처로 되는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그러나 고비를 늘 넘지 못한다면 곧 중시해야 하는바, 장기간 그렇게 내려가면 그것이 그래도 수련인가?

제자: 저는 『轉法輪(전법륜)』을 배우기 전에는 기공으로 병 치료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습니다. 法輪功(파룬궁)을 배운 후 이미 이런 직업을 그만두었습니다. 지금 중의(中醫)와 침구를 배워도 되는지, 그리고 이것을 직업으로 삼아도 되는지요?

사부: 절대 문제없다. 중의는 인류사회의 일종 의료수단이고 사람의 것이며 수련과 충돌이 없다. 기공으로 병 치료함에 대해 말한다면 나는 그것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한다. 내가 보건대 당신이 중의 침구를 배울 수 있다면 모두 문제없으며, 배울 수 있고, 할 수 있다.

제자: 우리 여기 수련생은 숫자가 적은데다가 거처가 분산되어 국내에서 법을 배우는 그런 큰 환경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환경을 더욱 좋게 창조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들은 아는가? 그 해 내가 북경에 가서 법을 전수할 때 제1기 수련반에는 다만 200여 명뿐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것은 1억 인이 되었다. 당신들은 모두 다른 사람에게 법을 알려줄 의무가 있는데 장래에 곧 많아질 것이 아닌가? 환경은 자신이 조성하는 것이다. 사람이 많아 함께 연공하면 확실히 아주 좋다. 하나는 서로 연구 토론하고 서로 증진하며 이런 수련 중의 일들을 같이 담론하면 수련의 신심을 증강할 수 있다. 동시에 집단으로 연공하는 마당의 에너지는 대단히 커서 확실히 사람의 수련에 대해서는 좋은 점이 있는데, 이 점은 틀림없다. 혼자서 수련하는 사람은 아주 바쁘면 곧 쉽게 잊어버리거나 혹은 좀 일찍이 연공하거나 좀 늦게 연공하는데, 어쨌든 비교적 좀 게을러지는바, 이것은 확실하다.

제자: 왜 제가 본 다른 공간의 사람은 모두 서양인의 형상이며 심지어는 날개를 가진 천사(天使)가 있으나 동양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까?

사부: 보았으면 곧 그만이다. 내가 만약 당신에게 투철히 지적하면 나는 당신이 또 다른 집착과 오해가 생길까 두렵다. 우리 수련생, 당신은 당신이 오늘 마치 중국 사람이고 혹은 당신이 스웨덴 사람, 혹은 기타 백인종이라고만 보지 말라. 당신은 아마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우주는 대단히 방대하다. 혹시 당신이 수련된 후에 서양 신의 그 세계와 같은 데로 가게 될는지도 모른다. 혹시 이러한바 나는 긍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집착도 일으키지 말라. 또 그 어떤 환희심과 오해가 있어 이후부터 불가(佛家)의 것을 연마하지 않겠다고도 하지 말라. 당신이 만약 내가 오늘 당신에게 전해준 이 세트의 것을 연마하지 않으면 당신은 그곳으로 갈 수 없다. 당신은 사부님께서 전하는 것은 불가의 것이라고 하며 내일 나는 천주교회에 가서 기도하겠다고 한다면, 당신은 곧 돌아가지 못한다. 나는 내가 불가의 기점에 입각하였고 내가 전하는 것은 우주의 법이라고 말했다. 어느 한 가(家)가 우주법의 범위 내에 포함되지 않겠는가? 곧 이 이치이다. 나의 이 법은 강의하면 할수록 더욱 명백해지지만, 이러면 아마 당신들의 수련에 별로 좋은 점이 없을 것이다. 이 모두는 당신들 자신이 닦고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들이다.

제자: 저는 육친에게 다시는 모(某) 공(功)을 연마하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밤에 꿈속에서 저는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하여 그에게서 머리에서부터 관정(灌頂)을 받아 아주 많은 나쁜 것들이 들어왔는데, 깨어나니 머리가 매우 아팠습니다. 그때부터 늘 머리가 아픈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은 자신을 잘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서 그가 당신에게 관정을 해 준다고 할 때 당신은 반대하지 않았는데, 반대하지 않았으면 곧 요구한 것이라, 당신의 일념지차(一念之差)로 당신은 그가 당신에게 관정해 주는 것에 동의하였다. 교훈을 기억하고 다음번에 잘 파악하면 괜찮으며, 이번은 고험이었다. 당신의 머리가 아픈 감각은 가짜이며 깨달음을 제고하라고 당신을 훈계한 것이다. 꿈속의 고험은 수련이 아니며 이 고험은 이런 상태에서 당신이 수련한 것이 견고한지 아닌지 보려는, 바로 이러한 일이다. 만약 당신이 꿈속에서 모두 매우 단단하게 잘 파악할 수 있다면 당신이 이 한 지경에서, 이 한 문제에서 아주 착실히 수련되었다는 것을 설명한다. 그러나 이것은 당신의 이 한 차례 상황을 가리키는데, 많은 꿈은 모두 꼭 꿈이 아니며 마(魔)가 정말로 왔다면 곧 이렇지 않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이 세계는 더러운 것이고 또 이쪽의 것은 저쪽을 놓고 말하면 그래도 아주 진귀하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해석합니까?

사부: 당신이 이 세계의 것을 원래 그대로 그냥 그 세계로 가져간다면 누구도 가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을 제일 더러운 것으로, 대변보다도 더 더러운 것으로 여길 것인데, 정말 이렇다. 그러나 이 세계의 물질이 그런 연화 과정을 거쳐 그 경지 중의 물질로 승화되었다면 곧 진귀한 것이다. 그것은 이러한 한 층의 관계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물질은 여기에서 내원(來源)되었으나 여기의 물질은 또 위에서 떨어져 내려온 것으로서 곧 이러한 관계이다. 천기(天機)를 다 누설했다.

제자: 수련하여 원영(元嬰)이 출세할 때에 이르면 천목은 그를 다 볼 수 있는데, 중층(中層)에 진입하는 표준은 무엇입니까?

사부: 과거 세간의 일부 수련방법 중에서는 볼 수 있다. 예컨대 과거 도가(道家) 수련에서 그 원영(元嬰)이 7, 8세 어린이만 한 크기로 자랐을 때 그의 元神(왠선)이 곧 들어가서 그를 주재하려고 하며 신체 안에서 뛰어 나오는데, 이것을 원영출세라고 한다. 그는 참지 못하며 그는 너무나 흥분되었다. 그것은 불체(佛體)라, 그는 곧 나와서 활동하고 놀기도 한다. 당신이 신체 안에 원영이 있음을 보았지만 나오지 않으면 그건 원영출세라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 여기에서는 나옴을 모두 허락하지 않으며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방금 말했다. 이 층 공간만 아직 처리하지 않았기에 이곳은 다르며 아주 더럽고 아주 위험하다. 고층공간을 처리하는 과정 중에서 그것은 심지어 아주 많이 뛰어들어왔으며 심지어는 층차가 아주 높은 좋지 않은 것들도 다 있다. 당신이 보건대 거리에서 걷는 어떤 것은 사람이지만 사실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당신이 만약 볼 수 있다면 이 세계를 보라. 외계인(外星人)이 또 아주 많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과 같아서 보아내지 못하는데, 이런 것을 모두 다 처리해야 한다.

중층(中層)에 들어가는 표준은 무엇인가? 당신은 당신이 얼마만큼 높이 수련할 수 있는지를 아는가? 어디가 당신의 중층인가? 당신의 수련을 보증하기 위해 지금 당신에게 이렇게 수련하라고 하므로 당신은 알 방법이 없으며 또 당신으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일단 알게 되면 당신의 집착심, 환희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어 당신이 무슨 일을 할지 자신도 모른다. 과거에 이렇게 수련하여 일부 사람을 망쳤다. 어느 하루 갑자기 자신이 부처형상임을 보고 스스로 밖으로 뛰쳐나가 그는 곧 기공사가 되었다. “나는 부처다.” 하며 그는 곧 그 짓을 한다. 누구에게도 불복하고 사부에게마저도 불복한다. 당신은 당신이 마음을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당신이 현재의 상태하에서, 당신이 일단 이 환경을 떠나 무엇을 보았을 때,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수 있는가? 그래서 여러분이 더욱 빨리 제고함을 보증하기 위해 어떤 사람은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보게 하는데, 개개인의 상황이 같지 않다. 우리 또 매우 많은 제자가 원만의 변두리에 처해 있다. 사실 그는 이미 원만을 이루었는데, 다만 그로 하여금 움직이지 못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그는 매우 많은 일을 알고 있는 듯하고, 어떤 사람은 나와 말하고 있으며 나를 보고 나와 소통하려고 한다. 이는 여태까지는 없었던 현상이며 모두 불가능한 일들인데, 우리 수련생, 어떤 사람은 매우 빨리 수련되었음을 설명한다.

제자: 일부 제자가 늘 다른 사람보다 한 층 높은 체하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그들과 멀리하려고만 생각하는데, 이것은 정상적인 현상입니까? 아직 수련을 잘하지 못한 것입니까?

사부: 이런 것을 다만 정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이런 집착심이 있다. 우리 일부 수련생은 느끼고 있는데, 어떤 사람은 마음을 움직이기만 하면 집착심을 내놓아 사람으로 하여금 견딜 수 없게 한다. 특히 신 수련생의 경우 반응하여 나온 사상이 좀 많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련생이 수련한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가 아직 버리지 못한 마음이 표현되어 나왔기 때문이다. 수련이란 바로 이러하다. 다른 사람에게 좋지 못한 마음이 있음을 보고 곧 다른 사람이 좋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고, 또 한 가지 일을 잘한 것을 보고 곧 그가 수련한 것이 높다고 말할 수도 없다. 전면적으로 이 사람을 가늠해야 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도법(道法)” 경문 중에서 “인위적으로 사악한 마를 자양하였다.”라고 하셨는데 이 ‘사악한 마’는 어떤 것입니까?

사부: 그 마(魔), 그것은 어떤 것인가? 곧바로 마이다. 이 우주는 본래부터 마가 있는데, 당신이 가리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로 心性(씬씽)에서부터 혹은 사상에 반응하여 나오는 마성(魔性)의 것으로서, 사람에게는 아직도 마성이 있음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서 우리 수련생은 서로 간에 어떤 때 다른 사람에게 마가 되어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한 번 어떤 사람의 마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마라고 말할 수 없으며 다만 그가 이런 작용을 일으켰다고 말할 뿐이다. 이 사람은 아마 그래도 꽤 좋으며 여전히 수련할 것인데, 다만 그가 이 일을 잘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에게 한 번 마가 되었을 뿐이다. 또 어떤 사람은 사상업이 비교적 심한데, “도법(道法)” 경문 중에서 가리키는 그 마는 법을 파괴하고 당신의 수련을 파괴하는데, 이런 유(類)에게서 내가 당신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수련 중에서 나타난 일체 상황은 모두 당신과 관계가 있으므로 당신은 수련해야 한다.

제자: 법을 얻은 일면은 어떻게 정법(正法) 합니까?

사부: 당신은 “도법(道法)”, 이 경문을 묻고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당신에게 구체적인 해석을 하지 않겠다. 당신이 “도법”, 이 경문을 어떻게 이해하든지 당신은 빗나가게 이해하지 않는다. 다만 당신이 이해한 정도가 제한되어 있을 뿐이다. 사실 나는 전혀 당신의 사람 이쪽에 써준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이미 수련이 잘된 그 한 면에 써준 것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어느 정도로 알았다면 곧 그 정도로 알면 된다.

제자: 신장(新疆)의 제자는 사부님을 고대합니다.

사부: 나를 오라고 한다. 나는 여러분의 마음을 안다. 여러분 감사하다. 많은 곳에서 모두 내가 왔으면 하는 생각이다. 기회와 연분에 달렸다.

제자: 나는 법을 널리 선양하려고 많이 생각하지만 어떤 때 자신이 잘하지 못할까 봐, 세심하지 못해 대법을 파괴할까 봐 걱정되는데, 어떻게 파악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 자신이 법을 배운 체험을 말하라. 법을 당신 자신의 말로 삼지 말며 법을 곡해하여 말하지 말고 당신 자신의 체험을 말하라. 당신이 법을 파괴할까 두려우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당신이 나는 이 법에서 무엇을 체험하였는데, 어떠하다고 말하라. 당신이 다시 한마디 첨가하여 이 법 속에는 내포가 몹시 큰데, 이는 다만 내가 이 경지 중에서 현존의 체험에 불과하다고 말하라. 이것은 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혹은 당신이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당신이 그로 하여금 스스로 인식하게끔 하라. 이는 모두 법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만약 내가 한 말을 당신의 말로 삼아 다른 사람과 말한다면 무의식중에 좋지 못한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면 어떤 때에 다른 사람도 자신의 관념을 법 속에 넣고 그의 이 구절의 말은 이런 일이며, 저런 일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해석하기만 하면 곧 잘못된다. 그가 바로 법을 함부로 해석하지 않았는가? 사실 법은 매우 깊은 내포가 있으므로 그는 도무지 해석할 수 없다. 당신은 단지 나는 법에 또 이런 내포가 들어있다고 인식하는데, 아직도 더욱 높은 내포가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이는 모두 상관없다.

제자: 무위(無爲)여야 하고 속인의 쓸데없는 일을 상관하지 말아야 하지만, 또 곳곳에서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하는데 관계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합니까?

사부: 내가 법 중에서 말한 한 가지 법리는, 사람마다 자신의 이 한 마음을 수련하여 자신을 좋은 사람, 더욱 좋은 사람으로 변하도록 하며 나아가 높은 경지의 표준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내심에서 찾아야 한다. 당신이 보게 되는 사회 중의 무슨 이런 일, 저런 일을 무엇이나 상관한다면, 아마 잘 상관하지 못하고, 잘못 상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되도록 적게 하고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예컨대 과거에 그 화상(和尙)은 왜 출가했는가? 심지어 그는 솜으로 귀를 틀어막고 온종일 듣지 않고, 아무것도 다 듣지 않겠다면서, 자신이 말을 할까 두려워 입을 틀어막는다. 그는 사람이 좋지 못한 것을 들으면 마치 곳곳에서 모두 업을 빚어내는 것과 같음을 발견하였다.

어떤 것을 나쁜 사람이라 하는지 당신들은 아는가? 나쁜 사람, 그는 왜 나쁠 수 있는가? 바로 그가 두뇌 속에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부어 넣고, 나쁜 것을 너무 많이 배워, 그의 두뇌는 온통 모두 나쁜 것이라, 표현하든, 표현하지 않든 그는 나쁜 사람이다. 그럼 이러한 나쁜 것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곧 들어서 넣은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이나 다 가지려 하지 않고, 그런 좋지 못한 것을 나는 듣지 않으며 보고도 못 본 체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어떤 것이 좋은 사람인가? 온 두뇌에 담은 것이 좋은 것이면 당신은 곧 좋은 사람이다. 당신의 두뇌에 있는 것이 모두 좋은 것이면 당신이 하는 일은 곧 표준에 부합될 것이다. 행위는 모두 대뇌의 지휘를 받으므로 당연히 좋은 일을 한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속인 중의 일을 늘 상관하기 좋아한다면, 인연관계를 볼 수 없기에 잘못 상관할 수 있다. 당신의 사업을 당신이 상관하지 않아서는 물론 안 되지만, 속인사회 중에서 한 사람이 누구를 발로 한번 차거나, 누구에게 한마디 욕을 하거나, 누구와 누가 무슨 모순을 일으켜 다투는데, 당신이 가서 공평치 않다며 피해자를 돕는, 이러한 것에 당신은 마땅히 상관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경찰이 있고 지도자가 있는데, 당신이 가서 상관한다면 당신이 참여하는 것과 같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꼭 맞게 상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의 전 한 세에 그가 한 발로 차는 걸 빚졌다면 사람이 이 세상 여기에서 이 한 발로 찬 것을 갚는데, 당신이 가서 상관하면 그는 갚지 못한다. 사람의 이치로 말하면 당신이 한 가지 좋은 일을 했지만, 이 일 그것을 배치하여 업을 갚게 하는 신이 보면, 당신은 한 가지 나쁜 일을 한 것이다. 수련하는 사람은 속인의 표준으로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뜻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유위(有爲)적인 일을 하지 말라.

그럼 어떻게 곳곳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생각해야 하는가? 내가 최대한도로 속인사회 중에 부합되게 수련할 것을 말했기 때문에 당신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는 것으로, 그렇다면 곧 이익적인 것이 존재하게 된다. 그런데 당신이 아직도 그렇게 이기적이고 무슨 일이 있으면 당신은 모두 우선 자신을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은 곧 안 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필경 아직도 사회의 많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이 사업 중에서 매우 냉담하게 거기에 앉아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사장이 당신을 쫓아내게 될 것인즉, 당신은 여전히 인류사회의 생존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 당신은 사람과 접촉해야 하고 사람을 착하게 대하고 일을 함에 먼저 다른 사람을 고려해야 한다. 오늘날 사회의 어떤 사람은 장사를 하는데, 다른 사람 호주머니 속의 돈을 모두 털어내려고 생각하며 단번에 벼락부자가 되려고 한다. 이 점에서 유럽 백인은 장사를 하는 그들의 심태(心態)가 아주 좋다고 나는 느낀다. 그는 그것을 사업, 직업으로 삼아 성의껏 한다. 하루에 고객이 한 사람 있을지라도 그는 적다고 꺼리지 않는다. 그는 이것이 그의 사업이고 이것이 사람생활 일부분이며, 한 가지 일을 하고 있고, 생활을 유지해 나가며 저축이 좀 있으면 된다고 여긴다. 이것이 사람의 상태이다. 사람들은 지금 벼락부자가 되려는 생각이 강성하기로 이만저만이 아니다. 사람들은 곧 이런 지도사상으로 말미암아 모두 서로 해치며, 마치 다른 사람의 돈을 깡그리 털어내어 모두 자기의 호주머니에 넣을 듯이 한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다른 사람도 고통스럽다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는가? 일을 함에 전혀 남을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인류사회의 변이(變異)된 사상이다. 일을 함에 다른 사람이 감당할 수 있겠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사람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중간을 취하다(取中)” 이 경문의 함의를 더 말씀해 주십시오.

사부: 수련생은 모두 마땅히 명백해야 한다. 바로 당신들이 법을 인식함에 사람의 감정으로, 사람의 생각으로 법을 인식하지 말아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곧 이 이치이다. 예컨대 오늘 한 사람이 나를 취재한다. 그는 곧 예를 들어 말하기를 우주의 안과 밖은 어떠한 것인가? 라고 한다. 나는, 당신이 말한 개념은 사람의 생각이라고 한다. 이 우주 중에는 당신이 말한 그런 안과 밖이 없으며, 이 개념도 없다. 당신이 말한 것은 사람의 사유이며, 사람의 생각이다. 내가 말한 그 뜻은 우리도 한번 사람의 생각을 개변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즉 당신의 평상시 생활 중에서, 법에 대한 인식에서 당신은 정말로 더는 사람의 사상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사람 자신의 내려놓지 못하는, 그런 것을 고수하면서 법을 인식해서는 안 된다. “중간을 취하다(取中)”의 표면 뜻은 극단으로 가지 말라는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큰 부처님의 위덕은 모두 그들 자신이 수련해 낸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 세계에서는 수련하기가 매우 힘든데, 그럼 그들은 모두 인간으로 되돌아와서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사부: 우주 중의 생명은 두 가지 내원이 있다. 하나는 부모가 낳은 것이고, 하나는 곧 우주 물질운동의 작용 하에서 생긴 것이다. 그 경지 중에서 생긴 생명은 곧 그렇게 높은 경지이며, 그는 그 어떤 낮은 층차의 것으로부터 오염되지 않았고, 또 낮은 층차 표준의 요구가 없어, 그는 생기자마자 곧 그 경지의 표준에 부합되었는바, 곧 그 경지에서 생활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외의 것은 수련한 것이다. 내 이것은, 당신들이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 수련에 중점을 두고 한 말이다. 수련하여 올라간 그 한 부분은 우주 중에서 사실 숫자가 가련할 만큼 작다. 다수의 생명이 그 경지 중에서 생긴 것이다.

제자: 많은 수련생이 법을 널리 선전하는 열렬한 마음이 저를 아주 감동케 하지만 저 본인은 늘 냉담합니다. 어떻게 해야만 비로소 이러한 상태를 개변할 수 있습니까?

사부: 이건 나에게 무슨 요구가 없다. 우리 수련생 모두가 반드시 법을 널리 선전하고 이 법을 남에게 전해주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이 열렬한 마음이 없어, 그가 법을 얻고서도 법을 전하는 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 하지 않는 것이다. 당신으로 하여금 반드시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기에 또 당신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말한다. 제자로서 당신은 자비가 있기 때문에, 당신은 다른 사람이 고생하는 것을 보고 남에게 알려주려 하는데, 당신이 남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주고, 그 무슨 도움을 주든지 그에게 법을 전해주는 것만 못하다. 이것은 가장 좋은 일을 하는 것이잖은가.

제자: 음악 테이프를 틀지 않은 상황에서 연공하면 동작속도의 빠르고 느림이 효과에 영향 줄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너무 빠를 수 없고, 아무리 느리더라도 너무 느릴 수 없다. 이 빠름과 느림은 고정된 것이 없으며 반드시 나와 똑같은 모양으로 꼭 같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지 않다. 우리는 기제(機制)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할 때 녹음테이프와 대체로 같으면 된다. 집단으로 연공할 때 동작은 같아야 하고 정연해야 한다.

제자: 원영(元嬰)은 자라서 본인과 같이 큰 다음 더 자라지 않는데, 그 어린이가 수련하면 그가 본인이 자라나기를 기다려야 합니까?

사부: 사람을 어떻게 원영과 비교하는가? 원영 자체는 수련되어 나온 것이다. 우리 많은 어린이가 수련하고 있지 않은가?

제자: 다른 사람의 사상이 늘 저의 머릿속으로 들어올 수 있어 그가 졸리면 저도 자고 싶고, 그가 화를 내면 저도 곧 불쾌해집니다.

사부: 이것은 연공 중에서 나타난 한 가지 상태인데, 당신 신체의 땀구멍이 모두 열려 밖의 정보가 당신에게 감응될 수 있다. 그것은 무슨 공능이 아니고 그것은 단지 수련과정 중 하나의 상태일 뿐이다. 다른 사람의 신체 어디가 아프면 당신도 따라서 아프고, 다른 사람이 어디가 불편하면 당신도 불편하며, 다른 사람이 기쁘면 마치 당신도 따라서 기뻐지는 듯하다. 그것은 실제로 한 가지 당신의 신체가 통했을 때 생기는 일종 상태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빨리 지나가게 되며 당신이 수련한 것이 빠를수록 이 상태가 지나가는 것도 더욱 빠르다.

제자: 듣건대 법을 배운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국내의 한 수련생이 죽었다고 합니다. 죽기 전에 그는 약을 먹지 않는 것을 견지하였습니다. 이처럼 생사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여전히 죽을 수 있습니까?

사부: 한 환자가 마음속으로 나에게 그 병을 없애주기를 바라고 약을 먹지 않는다든가, 혹은 단호하게 자신을 연공인으로 간주하는가는 표면상에서 보아낼 수 있다. 한 속인이 죽을병을 얻고서 그가 죽더라도 약을 먹지 않고 견지한다면 그가 죽겠는가, 죽지 않겠는가? 그는 죽지 않았는가? 마땅히 그가 죽어야 하기에 곧 죽은 것이잖은가. 왜냐하면, 그는 속인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속인, 그에게 마음대로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겠는가? 그는 그가 연공했다고 말하는데, 여러분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않은가. 당신이 오늘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했고 또 책도 보았다고 해서 곧 대법제자인가? 당신은 정진하지 못했고 당신은 진정하게 내가 당신에게 알려준 표준에 따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의 제자일 수 있는가? 당신이 나의 제자인지 아닌지는 내가 당신을 제자라고 승인하는가, 승인하지 않는가에 있다. 다시 말해서 당신 자신이, 한 제자의 표준에 도달했는가, 도달하지 못했는가? 당신이 매일 연공하는 것이 체조하는 것과 같으며, 당신이 비록 책을 보았을지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또 정진하지도 않으며, 또 책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았는데, 당신이 나의 제자일 수 있는가? 그는 여전히 한 속인이 아닌가? 그런 병에 걸린 속인이, 마치 물에 빠져 죽게 된 사람이 목숨을 구하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것같이, 내가 사람의 병업(病業)을 없애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공은 소업(消業)할 때에 약을 먹지 않는다니 그 역시, 연공하면 약을 먹지 않아도 곧 좋아지고 나는 죽지 않을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하며, 공을 연마한다. 그는 속인일 뿐만 아니라 게다가 또 이처럼 강한 집착심이 있는데, 그가 죽지 않을 수 있는가?

대법은 엄숙한 것이며 수련은 엄숙한 것이다. 이렇게 함부로 응당 생명이 결속되어야 할 한 사람에게 생명을 연장해 주고 함부로 속인을 부처로 원만 성취되게 한다면 어찌 될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 그 마음을 수련하는 것으로서, 가장 근본에서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여전히 인정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이 표면상에서 잘했다고 말하는데, 당신 내심에 아직도 당신 자신이 발견하지 못한 그렇게 작고도 작은 집착이 있다면 관(關)을 다 넘은 것으로 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엄숙한 것이기에 본질에서 진정하게 변화를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는 아주 많은 사람이, 많은 암과 기타 불치병에 걸렸던 사람들이 모두 좋아졌고, 그 숫자가 상당한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은 내가 말할 필요가 없는바, 우리 수련생들이 모두 알고 있다.

또 일부 암에 걸렸거나 기타 불치병에 걸렸던 위중한 환자들이 와서 우리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했는데, 그는 여전히 죽었다. 무엇 때문인가? 그는 입으로는, 나는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한다고 말하지만, 그의 사상 중에서 그의 병을 전혀 내려놓지 않았다. 그럼 어떤 사람은 생각할 것이다. 그의 연마는 아주 적극적이었으며, 그도 우리에게 약을 먹지 말라고 알려주었는가 하면, 그도 우리로 하여금 그 병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게 하였고, 또 여러분이 법을 배우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러나 그 자신은 꼭 포기한 것도 아니다. 당신은 그가 마음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는지를 모르는데, 곧 이렇게 복잡하다. 그는 남들에게 마음속에서 내려놓으라고 하고, 그는 사부님은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사부님께 듣게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부를 속이고 있는데, 그의 진정한 목적은, 내가 이런 일을 했으니 사부님께서는 꼭 나를 책임져 달라는 것으로서, 나는 책을 보고 있고, 나는 연공하고 있으며, 나는 또 남들로 하여금 수련하게 했으니 사부님은 꼭 나의 병을 없애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신이 보라. 그는 표면적으로는 약을 먹지 않고, 입으로도 이렇게 말하며, 표면상에서 나의 연공 요구에 따라 했으나 그는 실제로 진정하게 연공인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생각한다. 내가 오로지 이렇게 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꼭 나에게 병을 없애줄 것이다. 그는 여전히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그의 병을 없애줄 것이라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버렸는가, 버리지 않았는가? 여전히 마음속에 파묻고 있고, 감추고 있지 않은가? 그 표면은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닌가? 나를 속이려고? 실제적으로는 바로 자신을 속였다. 그런 그가 그의 병을 낫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흔히 중병을 얻은 사람에게 모두 그에게 기회를 주는바, 늦추고 또 늦춘다. 병원에서 그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날짜는 벌써 지났다. 매우 긴 시간이 지났는데, 반년, 일 년, 몇 년이다. 아직도 그에게 기회를 주며 그가 그 마음을 버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좀처럼 버리지 못한다. 그는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마음속으로 늘 불안해하며 내가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니 나의 병은 아마 없어질 것이고, 내가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니 아마 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신을 전혀 병을 생각하지 않는 진정한 수련제자로 대하지 못한다. 당신들에 대한 나의 요구는 아무것도 없다. 전부 다 풀어놓았으며 단지 사람의 마음만 본다고 이미 말했다. 내가 사람의 마음마저도 보지 않는다면 당신들을 제도할 수 있겠는가? 사실 어느 한 문에서 수련하든지 모두 사람의 마음을 개변해야 한다. 다만 우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일 뿐이다.

제자: 저는 법을 배우면 배울수록 법력이 끝없고 일체가 모두 무변지중(無邊之中)에 있으며 끝에 이를 수 없음을 느낍니다. 이것은 어찌 된 일인지요? 사부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사부: “일체는 모두 무변지중(無邊之中)에 있다.”, 이 역시 일종 고험이다. 일단 원만에 이미 가까워졌다고 느껴지면 이런 감각이 없을 것이다. 당신의 감각은 매우 좋다. 당신이 어떤 감수가 있든지 그것을 상관하지 말라. 어떤 때는 제고되고 승화됨이 아주 빠르다. 그러나 삼계(三界) 이 부분 신체에 진입할 때 곧 몹시 어려운바, 한 걸음 전진하기가 모두 몹시 어렵다. 그야말로 어려운 것은 당신들이 좀처럼 사람의 관념을 버리기 싫어하기 때문인데, 이는 내가 본 한 가지 상황이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늘 시간이 매우 긴박하다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또 대법이 속인 사이에서 아주 널리 전해지며 아주 오래도록 전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충돌되지 않습니까?

사부: 나는 시간이 매우 긴박하다고 말하는바, 나는 내가 사람을 제도하는 것만이 아니라고 했다. 당신들이 원만을 이룬 후를 기다려 나는 또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는데, 당신들에게 말해 줄 수 없다. 나는 인간 세상에서 오래 법을 전할 수 없다. 내가 시간이 매우 긴박하다고 말한다 해서, 당신은 곧 수련을 서두르거나, 또 내가 한 말을 왜곡하지 말아야 하고, 현재의 그러한 사악한 종교가 말하는 그 무슨 겁난과 함께 뒤섞지 말아야 한다. 수련의 시간은 확실히 매우 긴박하다. 무슨 겁난은 없다. 그러나 수련은 끝나는 날이 있다. 진상이 나타나기만 하면 무엇이나 모두 끝나는데, 그러면 곧 당신이 더 수련함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류는 계속 이어질 것이고, 수련은 영원히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후의 수련형식이다.

제자: 속인사회 중에서 생활하며 참답게 일하고 사업, 가정에 대하여 책임지며 조금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집착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사부: 나는 당신의 말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또 당신의 말 속에 또한 매우 중한 사람의 것이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속인사회 중의 이러한 일을 잘하려면 부처의 사상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없으므로 당신은 아직도 사람의 사상이다. 이는 단지 층차 중의 부동한 상황의 표현일 뿐이다.

제자: 미국인 친구들이 『轉法輪(전법륜)』 영어 번역본을 읽기 어렵다고 원망하는데, 사부님께서 대법이 미국사람 중의 전망을 지적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영어 번역본이 읽기 어렵다고 말하는데, 아니다. 내가 말하건대 영어번역본은 아주 잘 번역되었다. 더욱이 미국에서 나온 그 책은 매우 통속적이다. 이 대법의 내포가 대단히 커서 사상이 비교적 간단한 미국사람이 보고 어려움을 느끼는데,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데 습관이 된 젊은 사람들은 어떤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여기 앉은 사람들 누가 『轉法輪(전법륜)』을 보고 그를 쉽게 모두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모두 배울수록 더욱 어렵다고 느낀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당승(唐僧)은 서천에 가서 경(經)을 얻기 위해 11년을 걷고 온갖 고난을 겪었으며, 돌아와서는 또 자신이 번역해야 했다. 오늘날 대법이 여기에 놓여 있는데도, 당신들은 아직도 그가 어렵다고 느낀다. 당신들이 만약 번역한 것이 좋지 못하다고 느낀다면 또 번역할 수 있으며 더욱 좋게 번역할 수 있다.

우리가 중국에서 일부 수련생을 조직하여 이 책을 번역했는데, 영어로 번역하는데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여러분은 서로 쟁론하며 이 원래의 뜻을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번역하여 영어로 보는 사람에게 주려고 생각했다. 그들은 매우 큰 곤란을 극복하였다. 당신들은 마련된 것을 얻고도 어렵다고 느낀다. 만약 정말로 문제가 있다면 스스로 중국에서 번역한 것과 대조할 수 있다. 한 러시아의 유학생이 보스턴에 있는데, 어제 그가 말할 때 내가 거기에서 들었다. 여러분은 그가 한어(漢語)를 배우는 과정 중 학습하는 것이 매우 특이함을 느꼈는데, 이런 현상이 아주 많다. 당신이 심혈을 기울이면 내가 생각하건대 모두 그와 같을 것이다.

대법이 미국사람 중의 전망이 어떠한가에 대해 말한다면?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그 어떤 한 가지 일, 그 어떤 한 생명이 이 우주 중에서 하는 어떤 일이든, 다 그것의 미래를 보아낼 수 있는데, 시작부터 끝까지이다. 공교롭게도 내가 하는 이 일만은 누구도 미래를 보아내지 못한다. 내가 하기 전에는 없는바, 아예 미래가 없다. 장래에 어떠한가에 대해 말한다면 지금 인류사회를 따라 발전해 나간다면 장래의 사람은 모두 마치 마(魔)와 같아 사악하기로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물론 사람이 좋지 못하게 되면 폭력이 충돌한다든가, 천재 인화가 많아진다든가 하여, 서로 죽이고 싸워 업력이 굽이칠 것이다. 그 전망이 어떤가? 대단히 무섭다. 수련을 말한다면, 대법 전망이 미국에서 어떠하겠는가 하는 그것은 곧 미국사람의 법 얻는 상황을 보아야 한다.

제자: 어떤 미국인은 대법 중의 일부 내용이 다른 유관공법을 반대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러면 흔히 일부 문제를 조성하는데요.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렇게 큰 법을 전함에, 이 책 속에는 곧 여러 사람에 대한 많고도 많은 고험이 있는데,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본다. 대법은 사람으로 하여금 함부로 얻게 하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지금은 사교라든가, 가짜 기공이라든가 형형색색, 많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것들은 남의 자제를 망치고, 수련할 수 있는 아주 많은 사람을 마치 종교가 하는 것처럼 끌어들이는데, 또 어떤 것은 자살하는 등 아수라장이다. 나는 말했다. 나는 단지 사람을 제도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다. 내가 만약 이런 좋지 않은 것들을 지적하지 않고, 당신에게 그것이 사(邪)한 것이라고 알려주지 않으면, 당신이 어떻게 교란을 받지 않고, 전일(專一)하게 수련할 수 있겠는가? 내가 어떻게 해야 당신에게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요지를 알려줄 수 있겠는가? 대법 또한 함부로 사람으로 하여금 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그가 이것들에 집착하면 장애가 되어 그는 얻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곧 그만이다. 왜냐하면, 내려놓지 못하고, 전일하게 수련하지 못해 원만을 이룰 수 없으면 또 대법을 파괴하기 때문인데, 이는 그의 개인적인 감정이 그로 하여금 법을 얻지 못하게 한 것이다. 대법은 엄숙한 것으로서 사람마다 모두 법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법을 널리 전하여 연분이 있는 사람, 아직도 법을 얻을 수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두 와서 법을 얻게 할 것이다. 그러나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일부분 사람은 전혀 얻을 수 없으며 그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없는데, 그는 아마 장애가 될 것이다. 장애가 되지 않으면 그는 아직도 연분이 있는 것이다.

제자: 정식 발행한 사부님의 법상(法像) 몇 장에 수인(手印)이 다른데, 그 중의 내포를 우리에게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법회에서 사용하는 이 상(像)을 제외하고 그 어떤 수인을 치는 상을 발행한 적이 없다. 수인은 매우 복잡한 것이다. 마치 내가 오늘 당신들에게 말한 법처럼 이렇게 많은 말과 같다. 운동 중의 수인은 곧 언어이며 연이어 하면 곧 강의한 한 단락의 법이다. 만약 내가 말로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나는 오늘 당신들에게 수인을 해주지 않는다. 바로 그런 이야기는 말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들은 내가 오늘 말한 것이 높다고 느끼는데, 이렇게 생각함은 확실하지만, 그 수인은 이보다 얼마나 더 높은지 모른다. 그건 진상(眞相)을 한 것인데, 이해할 수 있으면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또 별문제가 없다.

제자: 우리는 법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 서양사회에 배치됐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장래에 우리는 합당한 시간에 마땅히 동양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맞습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이민(移民)하여 서양에 왔다면 무엇 때문인지를 나는 아무것도 당신에게 알려줄 수 없다. 지금 당신들이 어디에 가도 다 된다. 당신은 장래에 원만을 이루게 되면 동양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당신이 원만을 이루고도 또 지구에 와서 무엇을 하는가?

제자: 신장(腎臟) 이식을 실패한 후 재차 떼어버린 사람이 기회와 인연이 되어 法輪功(파룬궁)을 배웁니다. 평소에 心性(씬씽) 수련을 부지런히 하여 금세에 수련 원만할 것을 희망하는데 기회가 있습니까?

사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 많은 사람이 수술하는 것을 담론한다. 나의 이 신체는 구성요소가 모자라는데, 그래도 수련할 수 있는가? 라고 한다. 사실 수술이란 사람의 이 공간의 수술일 뿐, 다른 공간의 신체를 털끝만치도 건드리지 못한다. 떼어버린 것도 다만 표면, 이 공간의 것일 뿐이다. 신체 본질의 것은 모두 움직이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그쪽에는 구성요소가 모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들의 수련은 확실하고도 확실하게 또 이 신체에 의거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정말 수련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기적이든 모두 당신에게 일어나게 해줄 수 있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그 표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그 무엇도 당신들에게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수련은 곧 엄숙한 것이다.

제자: 깨달았지만 하지 못했거나, 잘하지 못했으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사부: 깨달았지만 잘하지 못한 것은 뻔히 알면서도 범하는 것이 된다.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한마디 우스갯소리를 했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당신들 많은 사람이 이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고비를 넘을 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데, 이렇지 않은가? 이런가, 이렇지 않은가? (전체 대답: 이렇습니다) 무슨 원인인가? 어떤 사람은 체면을 위해서이고 어떤 사람은 그 정을 내려놓지 못해서인데,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곧 뻔히 알면서도 범하였다. 수련을 하고 있으므로 늘 범해서는 안 되며 여하튼 넘어야 한다.

제자: 사수(死水)에 “眞(쩐)․善(싼)․忍(런)”이 포함됩니까?

사부: 우주는 모두 “眞(쩐)․善(싼)․忍(런)” 특성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신은 그것이 무슨 개념인지 상관 말라. 일정한 개념 중에서 그것은 이렇다. 다른 개념 중에서 그것은 또 다른 한 모양이다. 수련은 흥취, 지식을 출발점으로 삼을 수 없으며 이는 안 된다. 마음을 수련에 써야 한다.

제자: 나한 층차를 초월하는 수련을 하려면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소원을 꼭 품어야 합니까? 만약 이 소원을 품지 않으면 단지 낮은 층차로 수련될 수밖에 없습니까?

사부: 내가 당신의 사상을 이렇게 인도하지 않았고 이런 것을 말하지도 않았는데, 당신은 어느 종교에서 들은 것인가. 무슨 소원을 품는가? 내가 당신에게 알려주겠다. 모두 사람의 정이다. 당신이 제출했으므로 나도 불교도들이 왜 이렇게 말하는지를 좀 말하겠다. 지금 불교에서는 소원을 품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 아닌가? 그것은 유위적인 마음이 아닌가?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닌가? 불교에서는 중생제도 발원(發願)을 말하는데, 그는 그가 중생을 제도하는 소원을 품으면, 곧 그로 하여금 부처가 되게 한다고 여긴다. 이것은 웃음거리가 아닌가? 자신이 진정하게 그 경지에까지 수련해야 하며, 그렇게 많은 고생을 겪고 그런 고심(高深)한 경지에 도달해야만, 비로소 부처가 될 수 있다. 지금 곧 중생을 제도하려 하지만 수련한 것이 아직 얼마 높지도 않은데, 무슨 중생을 제도하는가. 사실 중생을 제도한다는 많은 불교도의 이 말의 함의 속에는 많고도 많은 사람에 대한 정(情), 집착과 과시심이 포함되어 있다. 내 말은 단번에 사람의 마음을 도려낼 수 있다. 사람이 어찌 부처 경지의 그런 중생을 제도한다는 내포가 있을 수 있는가? 사람이 지금 중생 제도를 말하는 것은 곧 과시심과 그 복잡하고 허황한 망상에 빠진 집착심이 아닌가? 이것은 사람에 집착하는 것이고, 정에 집착하는 것이며, 장래에 집착하는 과시적인 그런 마음이 이끈 것이다. 한 불교도에게 말법 시기의 그렇게 높고 신성한 경지가 있을 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중생을 제도함은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며 또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어찌 석가모니가 세상에 내려옴에 얼마나 많은 불(佛)․도(道)․신(神)의 허락이 있고, 또 얼마나 많은 더욱 높은 층차의 불(佛)․도(道)․신(神)의 허락이 있어야만 비로소 그가 내려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는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누가 감히 내려오겠는가. 내려옴은 곧 떨어져 내려온 것과 같은바, 당신이 돌아가려면 당신은 수련해야 하는데, 누가 감히 내려오겠는가? 삼계 또한 누구나 함부로 들어오게 하지 않는다. 당신은 당신이 인류에 의해 오염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데, 당신들 한 사람이 똥구덩이 속에 뛰어들어 간다면, 당신이 말해 보라. 당신이 오염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신은 바로 오염되고 말 것인데, 그렇지 않은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본래는 종교 중의 매우 성스러운 표현으로서 불가의 말이고, 신의 언어이며, 수련 중의 언어인데, 모두 함부로 속인 중에 가져와 제멋대로 말하고 있다. 말하는 것이 마치 한 푼의 가치도 없다는 듯이 하는데, 그것에는 신성한 내포가 없다.

그 밖에 이 나한(羅漢)도 중생을 제도하려는 소원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왜냐하면, 나한은 자각각자(自覺覺者)이기 때문에 나한이라고 한다. 무엇을 자각각자라고 하는가? 그는 다만 자신을 수련하여 삼계를 벗어나고, 원만을 이루면 그는 성공한 것으로 여기고 해탈한 것으로 여기므로, 그는 다른 사람을 제도하려는 소원, 혹은 목적을 전혀 갖지 않는다. 보살은 다만 부처를 협조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살이 자신의 세계로 사람을 제도한다는 말을 하는데, 그(她)에게는 아직 세계가 없다. 그는 부처의 세계에 있기에, 그가 마음대로 사람을 제도하려면 부처가 요구한 것인지를 보아야 하는데, 이 이치가 아닌가? 부처가 사람을 제도하겠다고 말하면 그가 구체적으로 가서 도와주는데, 이러한 관계이다.

제자: 저는 전력(全力)을 다하여 집착심을 내려놓으려 하지만, 내려놓고 내려놓지 못하고는 모두 사부님께서 수고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그럼 곧 내가 수련한 것으로 되지 않는가? 과정은 이렇지만 이렇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사실 당신이 문제를 인식할 수 있음을 발견하고 정말로 그런 응당 있지 말아야 할 집착심을 인식하였다면, 그 순간에 당신은 표준에 도달했다. 사부는 물론 당신한테서 표면의 물질을 없애주지만, 이것도 사부가 어떻게 한 것으로 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 자신이 수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 우리는 응당 어떻게 자비(慈悲)와 무위(無爲)의 관계를 처리해야 합니까?

사부: 나한의 경지, 보살의 경지에 이르렀다면 그는 사람의 정(情)은 없고 자비만 있다. 사람은 정(情)으로 산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곧 정 속에 잠기어 아주 헤어나기 어려운데, 정을 떠나지 못하면 곧 수련할 수 없고, 제고할 수 없다. 무위를 말한다면 이것은 수련 중의 일종 요구다. 우주 중의 무척 높은 경지 중에 도달해도 역시 이런 상태가 있다. 무엇이나 다 알고, 무엇이나 다 하기 싫으며,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데,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놀기보다 더 간단하다.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대학생인 당신에게 아주 간단한 나무토막 몇 개를 여기저기 놓아두고, 그것을 가지고 놀라고 하면 당신은 놀고 싶겠는가? 당신은 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한눈으로 다 볼 수 있는 나무 몇 토막일 뿐인데, 그 무슨 놀 것이 있는가? 당신은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을 것이다. 수련 중에서 무위를 말하는 그것은 당신에게 업(業)을 다시 빚지 말라는 것이다. 정(情)에 들지 않고 무위의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면 곧 자비(慈悲)의 경지 중에 있다.

제자: 저는 한 종합간행물의 과외편집자입니다. 법을 널리 선전하기 위해 우리는 당신의 『轉法輪(전법륜)』 등을 실으려고 하지만 지면이 제한되었기에 우리는 다만 임의로 일부 장(章)과 절(節)을 발췌할 수밖에 없는데요.

사부: 좋지 않다. 하나는 당신들 간행물에 형형색색의 무엇이나 다 있는데, 법을 싣는다면 그다지 적합하지 않다. 그리고 이런 발췌는 실제로 단장취의인바,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없다. 그런 소위 문인들이 쉽게 베껴가서 사람의 어떤 것으로 삼을 수 있다. 그러므로 절대 이런 일을 하지 말고 절대 단장취의 하지 말라.

제자: 노수련생이 연공장에 연공하러 가지 않는데, 사부님께서는 정상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부님께서, 그들을 이런 환경 중에 가서 수련하게끔, 고무 격려하지 않음이 좋습니까?

사부: 당신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들은 아는가? 나는 당신들을 제도함에 또 당신들의 이러한 일을 고려해야 한다. 부동(不同)한 경지의 사람, 부동한 상태의 사람, 당신이 그에게 가라고 하는데, 그러나 당신은 그가 매우 괴로워하는 것을 모른다. 당신들이 말하는 것, 일하는 것이, 그에 대해 말하면 귀찮기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확실히 이런 것이 있다. 이 상태가 아니면서 좀처럼 나오려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면, 나는 그것은 좀 고쳐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이 나와서 연공하면, 당신에게 좋은 점이 있다. 만약, 출근하므로 정말 시간이 없다면 역시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럼 당신이 편리한 대로 하라.

물론 중국에서는 이렇게 하고 있다. 그들은 연공을 아침저녁 모두 나와서 연마한다. 아침 4시에 나와서 하고 저녁 6시에 밥을 먹은 후 밖으로 나가 여러 사람이 함께 집단으로 연공을 하는데, 매일 두 차례이다. 그들은 이렇게 연공하는 것이 매우 좋음을 발견했다. 그러나 외국의 많은 지역에서는 모두 각종 구실을 대며 이렇게 연마하지 않는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내가 이 공을 어떻게 전하라면 당신들은 그렇게 따라서 하라. 보증하고 해로운 점이 없고 오로지 좋은 점만 있을 뿐이다.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연공하여 너무나 지쳤기에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내가 연공하니 온몸이 가벼워져 하룻밤 자지 않아도 피곤한 감이 없고, 온몸에 힘이 솟는다고 말할 뿐이다. 하루 일을 끝냈는데도 마치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듯, 이렇지 않은가? 그러니까, 시간이 없다고 말하거나 혹은 기타 구실로 나와서 연공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모두가 법에 대한 이해가 깊지 못하고 정진(精進)하는 마음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물론 노수련생의 그 상태를 말하면 이것은 엄격한 구분이 있다. 그러나 그 상태에 이르지 못하고도 자신이 그 구실로 나가지 않는다면 옳지 않다. 수련은 자신을 닦는 것이라,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은 곧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제자: 고층공간에는 일찍부터 비행기가 있는데, 고층공간의 사람은 날 수 있지 않습니까? 왜 아직도 비행기를 사용합니까?

사부: 나는 당신들과 말한 적이 있다. 부동(不同)한 공간, 즉 하늘 모든 곳이 곳곳마다 모두 부처이고 모두 신과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생명의 차이는 상당히 큰 것이며 또 인류와 같은 이런 곳도 있지만, 매우 적다. 그러나 외계인과 같은 그런 사람의 지역 또한 특별히 많다. 그는 날아야 하고 그는 비행기에 타야 한다. 나는 당신에게 이 사상을 그런 곳으로 끌고 가고, 호기심으로 끌고 가게 할 수 없다. 그 생명은 몹시 복잡하고 무슨 모양의 세계든 다 있는바, 우주는 매우 번잡하다. 우리 지금의 지구에는 다만 백인종․황인종․흑인종이 있으나, 그쪽에는 녹색과 남색까지도 있으며 또 알록달록한 것도 있다. 그 형형색색 무슨 모양이든 다 있는데, 당신이 상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사람의 이 사상으로 더는 이런 문제를 생각하지 말라.

제자: 法輪功(파룬궁)은 느슨하게 관리한다는데, 이와 유형적인 조직구조는 어떤 관계입니까?

사부: 느슨한 관리는 유형적인 조직구조가 없다. 당신이 오고 싶으면 오고, 오고 싶지 않으면 당신은 가는데, 우리는 또 명부가 없다. 겉으로는 누구도 당신이 누구인지 모른다. 이렇지 않은가? 여러분은 모두 자원하여 배우고 있다. 예컨대 사람들은, 곳곳에서 사부님은 어디에 가셨어요? 하며 물어보고는 모두 와서 법을 듣는데, 이렇지 않은가? 내가 동원령을 내려 여러분에게 모두 미국에 와서 법을 들으라고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전혀 있을 수 없다. 수련하고 수련하지 않고는 모두 자원이다. 일단 속인 중의 관리방식이 있으면 어떤 속인 마음이든지 모두 일어날 수 있고, 집착하여 수련할 수 없고, 난법(亂法)하게 될 것이다.

제자: “불성무루(佛性無漏)” 중의 ‘무루’는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부: ‘무루’란 그것은 과거 불교중의 한 구절 선어(禪語)인바, 바로 불교 중의 수련언어이다. 예를 들면 사람이 칠정육욕, 각종 집착심이 있는데 모두 정 때문에 조성된 것이다. 질투심, 과시심, 증오하는 심리 등 많고도 많다. 어느 한 마음이든지 모두 버려야 하는데, 어느 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남겼다면 이것을 곧 빠뜨림이 있는 것으로 여긴다. 빠뜨림이 있으면 곧 원만할 수 없다. 수련함에 빠뜨림이 없어야 하는데 한 가지 마음도 다 빼놓을 수 없다. 정말 빠뜨림 없이 수련되었다면 그때에야 비로소 진정하게 원만을 이룰 수 있다.

제자: 매 한 차례 새로운 우주가 극히 높고 극히 높은 대각자들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다음 “眞(쩐)․善(싼)․忍(런)”, 이 특성이 변했습니까?

사부: 이러한 문제를 당신들이 다시 제출하지 말고 생각마저도 하지 말아야 한다. “眞(쩐)․善(싼)․忍(런)” 특성은 영원히 변치 않는다. 법이 변치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속의 생명과 물질에 변화가 발생한 것을 가늠해 낼 수 있다.

제자: 法輪功(파룬궁)의 음악이 연공인의 입정(入靜)을 도와주는 외에 또 어떤 특수한 것이 있는지요?

사부: 주요 목적은 사람을 도와 재빨리 입정하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이 음악을 듣고 있을 때, 사상 속에서 속인 중의 그런 서로 쟁탈하는 것, 난잡한 것, 장사가 잘되고 안 되는 것, 돈을 얼마 버는가 하는 일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곧 이런 방법을 취한다. 음악의 방법으로 일념이 만념을 대체한다. 음악의 배후에도 대법의 내포를 첨가해 넣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들을수록 듣기 좋으며 들을수록 편안하다.

제자: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 동시에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사부: 당신이 나의 설법을 들으며 어찌 입정할 수 있는가? 당신의 뇌세포가 대단히 활약하는데, 법을 듣고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입정할 수 없다. 법을 듣는 것은 곧 법을 듣는 것이다.

제자: 어제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사람이 더 수련하면 사부님께서 한 몫의 고생을 더 겪는다고,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 마음속으로 매우 괴로웠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많은 사람을 소개하여 수련의 길을 걷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부: 나는 당신들이 이 문제를 생각하리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신들에게 알려주는데, 이렇게 생각하지 말라. 나는 나의 방법이 있으니 당신들은 이런 일을 상관하지 말라. 당신들은 오로지 수련만 하라. 당신의 인도로 와서 법을 배우는 사람이 많을수록 당신은 공덕이 무량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부를 도와 법을 전하는 것과 같다. 거기까지 생각할 수 있다니, 당신들 사상은 실로 활달하다. 나는 당신들 한 사람이 더 수련하면 나는 한 사람을 더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내가 심려함은 당신들이 상상하는 그런 걱정하는 방식과 같지 않다. 나는 무수한 법신이 있어서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제자: 저는 가부좌를 할 때나 꿈속에서 공중을 나는 감을 느끼곤 하는데, 여태껏 누런 옷을 입은 불가의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제가 정말로 보았는지 보지 못했는지를 모르겠는데요?

사부: 사실은 보았다. 왜 불가의 것이 없는지는 당신이 간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이런 일을 당신이 보았으면 곧 그만이다. 그것에 깊이 상관하지 말고 마음을 당신의 수련에 써야 하는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

제자: 위의 신(神)은 현대의 사람을 이미 사람으로 보지 않는데, 어제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의 사람은 모두 마땅히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부: 오늘의 사람은 확실히 매우 패괴(敗壞)하여 신도 상관하지 않는다. 모든 종교는 다 상관하는 신이 없다. 왜냐하면, 신이 인류를 봄에 너무나 패괴하여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상관하지 않는 것과 당신을 제도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는 별개의 일이다. 그러나 나는 어떠한 생명에도 알려주지 못하는 일이 있다. 나도 그들의 방법과 한가지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 일을 하는 데는 또 더욱 넓은 의의가 있다. 인류사회는 번성하여 퍼져 나갈 것인데, 수련을 잘할 수 있어 원만에 이르면 부동(不同)한 층차의 천국 세계로 가게 되고, 원만에는 이를 수 없지만 당초 인류의 그 표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다음 한 차례 문명 시기의 인류가 된다!

제자: 사부님께서는 “실증(證實)”이란 경문 중에서 우리는 마땅히 “대법은 정확한 것이며 진정한 과학이라는 것을 실증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실증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들은 문화가 있기에 우리는 요해(了解)하지 못하거나 혹은 좋지 않은 사람 앞에서 당신의 체득으로, 당신의 지식으로, 당신의 실제 사업 성과 등등으로 모두 실증할 수 있다.

제자: 저는 폴란드 사람입니다. 저는 폴란드에서 법을 널리 선전하려고 하는데, 어느 때에 폴란드어로 된 자료를 볼 수 있으며 저는 또 어떻게 도와줄 수 있습니까?

사부: 폴란드에도 일부 중국 사람이 있으며 또 배우고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폴란드어로 번역하지 않았는데, 기회와 인연을 봐야 한다. 왜냐하면, 반드시 우리 제자가 번역해야만 비로소 번역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번역하면 그를 번역해 내기가 몹시 어렵다. 나도 당신 같은 심정으로 하루빨리 폴란드어 『轉法輪(전법륜)』이 나오길 고대한다. 만약 당신이 번역할 수 있으면 물론 좋다.

제자: 사람들에게 『轉法輪(전법륜)』, 대법을 소개할 때 척도를 잘 가늠하지 못해 어떤 때는 저도 모르게 일부 비교적 높은 것을 말하여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믿을 수 없게 한 느낌이 드는데요.

사부: 그렇다. 여러분은 반드시 이 점에 주의하라. 아직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에게 당신의 인식에 서서 소개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겁을 먹을 수 있다. 당신은 부지불식간에 아주 높게 말하게 되는데, 그것이 당신의 경지이다. 게다가 당신이 더 깊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 해도 당신은 말 속에서 은연중 내비칠 수 있다. 그것을, 그 본인의 표면사상은 접수하지 못하지만, 그의 그 내면 사상은 접수하는데, 받아내기 어려워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남에게 소개할 때 꼭 『轉法輪(전법륜)』의 가장 낮고 가장 표면적인 이 한 층의 이치를 말해야 하며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가, 어떻게 층차제고에 도달할 수 있는가 하는, 이런 간단한 이치를 말해야 한다. 마치 당신이 한 사람을 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당신이 대학의 이치를 말하고 있는데, 그는 초등학교마저도 다니지 않았다. 그는, “나는 배우지 않겠다. 나는 못 알아듣겠다.”라고 할 것인데, 이런 이치가 아닌가?

제자: 다리가 없고(외다리), 손마저도 없어서(손이 모자람) 가부좌를 틀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동작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수련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말했다. 대법을 수련하는 것은 엄숙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법을 전함은 사람에게 수련하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수련할 수 있지만, 또 사람 마음을 중요시하고 있다. 손이 없고 또 발이 없다고 말하는데 이 한 마음이 있어 수련한다면 당신이 한쪽 발, 한쪽 손으로 해도 내가 생각하건대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 관건은 사람의 마음을 본다.

제자: 정좌(靜坐)하여 입정(入定) 중에 의식상에서 이미 이 신체가 없지만, 빛과 소리가 있는 것이 느껴지는데, 어떻게 더욱 수련해 나가야 합니까?

사부: 당신에게, 정(靜) 중에서 어떠어떠하며 무슨 상태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없다. 우리의, 사람 마음을 중요시하는 수련이야말로 근본이다. 어떤 상태든 집착하는 것은 모두 당신으로 하여금 대단히 높은 경지에 도달할 수 없게 하고, 크게 제약할 것이다. 대법은 무위(無爲)이다. 말하자면 당신이 무엇을 보았다면 이것은 모두 정상적인 현상이며, 무슨 소리를 들었다면 이것도 모두 정상적이다. 그것을 상관하지 말고 또 그것에 집착하지 말라.

제자: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나자면 응당 의념(意念)이 없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로 하여금 날게 하는데 좀 높게 날도록 생각한다면? 좀 멋지게 날도록 생각한다면? 혹은 자세를 바꾸어, 예컨대 누운 것이 앉은 것으로 변하고 얼굴이 아래로 향하든지…….

사부: 날 수 있으면 날아라. 당신이 누워서 날고 앉아서 나는 것을 말하는데 어떻게 날든지 다 마음대로다. 그러나 그것을 일종의 재미로 간주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연출해 달라고 말하는데, 내가 당신에게 무엇을 연출해도 당신은 모두 사람의 사상으로 대하며 허허 웃어버릴 것이다. 당신은 불법 신통의 진정하고도 위대한 의의가 있는 곳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렇게 사용하지 않는다. 당신이 이렇게 할 수 있어도, 그것을 일반적인 재미있는 일로 삼지 말라.

제자: 元神(왠선)이 신체를 떠나 본래는 아주 높게, 아주 멀리 날 수 있었는데 근래에 갑자기 높이 날지 못하는데요?

사부: 아마 당신이 집착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수련 중에서 늘 당신에게 이렇게 하지 않게 한다. 만약 너무 빈번하여 당신의 수련에 영향 준다면 그것은 안 된다. 당신의 수련에서 층차를 제고함이야말로 제1위이다.

제자: 저는 선생님의 法輪大法(파룬따파)를 탄복해 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매일 선생님의 법상(法像) 앞에 과일을 공양해야 한다는데요.

사부: 신(神)이 인간 세상에서 사람을 제도함에 사실 그도 물질을 먹는다. 그러나 사람의 것을 먹지 않는다. 무엇을 먹는가? 여러분이 알겠지만 나는 무슨 물체나 모두 다른 실체가 존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신 그 음식물의 다른 실체를 먹는다. 당신들은 제자이고 나는 사부이기 때문에, 물론 나는 당신에게 사양하지 않는다. 당신이 밥을 먹을 때, 밥을 이쪽에 차려놓을 때, 그쪽에서는 이미 들고 갔다. 그런 유형적인 것에 대해서 말한다면, 나는 당신에게 이렇게 하도록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신이 이 한 마음이 있어, 굳이 이렇게 하겠다면 나도 반대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신의 마음이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절을 하는 것을 말한다면 내가 생각하건대, 당신이 나에게 절을 하지 않아도 당신이 매우 잘 수련했다면 내가 당신을 보기만 해도 기쁘고, 당신이 날마다 나에게 절을 해도 당신이 잘 수련하지 않는다면 내가 당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주 괴로운데, 이 이치가 아닌가? 그것은 다만 형식일 뿐이지만 역시 한 가지 마음의 표현이다.

제자: 제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매우 곤혹스러울 때 저는 힘들여 생각합니다. 이때 저는 하나의 답안을 상상해내게 되고 어떤 때는 또 머릿속에 화면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좋은 일입니까, 아니면 나쁜 일입니까?

사부: 이것은 속인 중에 늘 나타나는 것이다. 속인이 문제를 생각할 때 늘 나타나는 현상이다. 만약 당신이 수련하고 법을 배우는 중에서 아직도 이렇게 한다면, 나는 그것은 최저한 법에 대한 집착이라고 말한다. 사업 혹은 생활 중에서 문제를 생각하는, 그런 것은 사업이다. 그러니 당신도 수련과 갈라놓아야 한다. 수련할 때 당신은 그것을 모두 내려놓고 아무것도 생각해서는 안 된다. 사업할 때 당신이 사업에 투입하는 건 관계없다. 화면과 답안이 출현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공능의 일종 표현이다.

제자: 머리가 언제나 비어 있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과 선종(禪宗)의 비움(空)은 어떤 구별이 있습니까?

사부: 이 구별은 대단히 크다. 당신이 아무리 비워도 당신이 당신의 의식을 다 잃어버리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바,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비움(空)이다. 그러나 선종의 그 비움(空)은 다 없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는 것으로서, 연마하는 것도 그가 아니다. 그는 연공을 하지 않고 다만 정지(靜止)해 있기만 한다. 그러므로 그가 연마한 것은 다른 사람인 副元神(푸왠선)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어제 하신, “지금 지구 위의 사람은 모두 마땅히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하는 것”이란 이 한마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는데요?

사부: 사람의 가장 표면적인 이 껍데기부터 말해보자. 지금의 인류에게는(물론 당신들은 아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수련 중이기 때문이다) 십악(十惡)이 구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또 모두 내력이 있는, 곧 이런 관계이다. 진정한 인류, 과거의 사람은 모두 다른 공간, 곧바로 저승(陰間)에 있음을 나는 발견하였다. 전쟁으로 전사함에 잇달아 속속 세상을 떠났으나 다 위로 전생하지 못했다. 인류는 모두 지금의 내력이 있는 이런 생명에 의해 대체되었다. 그러나 누가 와도 모두 사람처럼 미혹되어야 했으며, 또 마찬가지로 인류사회의 부패에 따라 부패해야 했는바, 곧 이런 관계이다. 감히 천담(天膽)을 무릅쓰고 내려왔기에 비로소 이렇게 고심(高深)한 법을 들을 수 있다. 하지만 또 모두 법을 얻으러 온 것이 아닌, 또 법을 파괴하러 온 것도 있으므로, 나는 다 사람이 되려고 온 것은 당연히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 수련하러 오는 것이 아닌, 전문적으로 대법을 파괴하러 오는 것도 있는데, 이것은 지옥으로 처넣어야 한다. 그리고 또 이미 못쓰게 되어 법을 얻을 수 없는 것 등이 있다. 또 이미 법을 더 얻을 자격이 없는 것도 있다.

제자: 저는 덴마크에서 왔는데 캘리포니아 주에서 다행히도 법을 얻었습니다. 저는 마땅히 덴마크에 돌아가 법을 널리 전해야 합니까? 저는 책임을 다하지 못할까 봐 염려됩니다.

사부: 당신은 이럴 필요가 없다. 우리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법을 얻게 할 때, 흔히 모두 “이 책은 참 좋습니다.”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그 친구는 “그래, 우리 좀 볼까.” 라고 한다. 곧 이렇게 무의식중에 그는 배우게 된다. 모두 매우 간단하다. 간단하지만 오히려 우연하지 않다. 물론 한 가지가 있는데, 당신은 “나는 이렇게 좋다고 느끼는데 당신은 왜 배우지 않는가?”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아마, 어쨌든 배우지 않겠다며, 시간이 없다거나 혹은 내가 보기에는 좋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배우게 한다면 이는 곧 잘못한 것이다. 왜 잘못했는가? 당신은 남에게 억지로 얻게 하고, 얻게끔 사람을 핍박하고 있다. 강요해서는 안 되는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절대로 그에게 법을 줄 수 없다. 그가 스스로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그가 이 법을 떳떳하게 대할 수 있어야 비로소 그로 하여금 보게 할 수 있는데, 이 이치가 아닌가?

제자: “바로 그가 개공개오(開功開悟) 하는 전야의 그 순간에 그 자신의 공의 10분의 8을 그한테서 꺾어 내리는 데 이어, 그의 心性(씬씽) 표준마저도 모두 끊어 내린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나는 이미 이 이치를 말했다. 당신의 그 공을 꺾는 목적은 당신으로 하여금 원만을 이루게 하려는 것이다. 무엇을 원만이라 하는가? 당신 자신이 수련의 표준에 도달하고, 당신의 공, 당신의 복덕(福德) 일체가 모두 원만에 이르는 것이다. 그 부처는 무엇을 요구하면 무엇이 있고, 무슨 능력을 요구하면 무슨 능력이 있는데, 어디에서 오는가? 모두 당신 자신이 치른, 즉 바로 心性(씬씽)과 함께 공존하는 위덕 곧 “공(功)”을 구성하고 원만을 이룬, 심혈(心血)에서 오는 것이다. 당신에게 이러한 것이 없으면, 당신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불체(佛體) 주위에는 동그라미(圓圈)가 있는데, 그 옛날 절 안에 그려놓은 부처는 모두 달(月亮) 속에 앉아 있는 것 같다. 사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그것이 곧 부처 자신의 그 세계이다. 이 세계를 원만에 이르게 해야 한다. 그것을 원만에 이르게 하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오직 공이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그럼 무슨 부처이겠는가? 당신이 사람을 구도(救度)하는 좋은 일을 하려 해도 당신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모두 있어야 한다. 당신은, 반드시 하나의 자신의 세계가 있어야 비로소 무엇을 요구하면 무엇이 있게 된다.

제자: 만약 오늘 이런 대법교류회 같은 것이 없다면 心性(씬씽) 제고를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저는 느끼는데 이것은 정상적입니까?

사부: 교류회는 수련생의 제고와 촉진 작용에 대하여 아주 크게 좋은 점이 있을 수 있으며 동시에 또 법을 널리 선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이런 형식은 아주 좋다. 이는 내가 느끼건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하는바, 확실히 그러한 정진하지 않는 사람으로 하여금 차이점을 찾아내게 하고, 그들을 따라오게끔 재촉한다. 만약 이 회의를 열지 않으면 곧 법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도 옳지 않다. 법이 있음에 배울 수 있다. 법회는 법을 널리 선양함과 촉진 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며 또 역시 어떤 사람은 법회를 통해 법을 얻을 것이다.

제자: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 이 시기에 부동(不同)한 층차 공간의 신이 모두 이 법을 배우고 있다고 하셨는데, 이 층차 중의 고급 생명이 배우는 경문과 우리가 보는 경문이 같은 것인지 대답해 주실 수 있습니까?

사부: 절대 같지 않다. 부동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의 법이 있다. 이 백지에 검은 글자는 사람에게 보게 하는 것인데 같은 한 부의 법이 부동한 층차에 이르면 그의 글자, 내포가 완전히 모두 같지 않다.

제자: 마귀가 전세(轉世)하여 인간 세상을 화란(禍亂)하는데, 고급 생명이 어찌하여 지옥 귀신의 전세를 허용합니까?

사부: 그 귀신도 모두 지옥에 있는 것이 아니다. 부동(不同)한 층차에는 부동한 층차의 마가 있다. 어떤 것은 상생상극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어떤 것은 사람의 업력이 크기 때문에 상응하여 온 것이며, 또 패괴된 구(舊) 세력이 법을 교란하고자 온 것도 있다.

제자: 제가 작년에 기독교(基督)의 세례를 받았지만, 현재 저는 法輪大法(파룬따파)가 비로소 진정한 대법임을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할 것을 결심했는데, 이 두 가지는 어떤 충돌이 있습니까.

사부: 아무런 충돌도 없다. 세례는 사람이 한 것이고 표면적이며 신이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말했다. 신은 사람의 마음을 승인하지, 사람의 그 어떤 형식을 승인하지 않는다.

제자: 당신께서는 우주는 성(成)․주(住)․괴(壞)가 있다고 하셨는데, 왜 나쁘게 됩니까?

사부: 여러분이 알다시피 음식물, 그것은 왜 썩는가? 사람은 왜 늙는가? 철은 왜 녹스는가? 돌덩이마저도 모두 풍화되는데, 곧 이러한 뜻이잖은가. 다만 그것은 더욱 긴 시간이 있을 뿐이다. 시간이 부동하며 상당히 길다. 사람으로 말하면 그것은 불가사의한 것이어서 허물어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는 것 같다.

제자: 최근 두 달 동안에 줄곧 마의 교란에서 벗어나지 못해 귓가에서 더러운 말을 하는 것을 듣게 되고, 꿈속에서 일상생활 중의 좋지 못한 정보의 교란이 있는데요.

사부: 책을 많이 보면 무슨 문제나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내가 방금 책을 많이 보라고 말했는데, 사실 당신이 내가 한 이 말의 함의를 꼭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은 만능이며 못 하는 일이 없다. 당신 자신의 主意識(주이스)를 확고히 함과 동시에 당신의 사상 중의 업력을 없애고 있다. 이런 정황이 나타난 대다수는 사상업이 비교적 중해서다. 그러니 主意識(주이스)를 확고히 함에 특히 주의하라!

제자: 자신이 단독으로 책을 보고 연공하면 문제가 없지만 연공장에 가면 곧 정치학습을 하는 감각이 있는데요.

사부: 아마 당신 마음속에 정치학습에 대한 반감이 있어 반대하는 심리가 너무 강하여 조성되었나? 형식에 있지 않고 내포에 있는바, 그 역시 강렬한 집착심이 아닌가? 역반 심(逆反心)인가?

제자: 法輪大法(파룬따파)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간행물에 실으면 단장취의가 아닙니까?

사부: ‘간단한 소개’ 그것은 나의 법 중에서 발췌해 낸 것이 아닌, 하나의 ‘간단한 소개’이기에 단장취의가 아니며 바로 나의 이 법을 개괄하여 소개한 것이다. 그들은 이전에 이 일을 했다. 그러나 매번 모두 매우 엄숙히 하였으며 그들은 모두 반복적으로 토의해서야 비로소 하였다.

제자: ‘적막(寂寞)은 수련의 가장 위험한 적이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사부: 당신들은 적막이 사람의 일체를 소각한다는 것을 모른다. 과거의 그 화상(和尙)은 수련 중 무엇에 의존했는가? 그는 어떻게 수련 성취할 수 있었는가? 그의 가장 큰 고통은 곧 적막이다. 당신이 말해 보라. 그는 어떤 고생을 겪는가? 참아내기 어려운 적막이다. 과거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는 사람, 그는 어떻게 득도(得道)할 수 있었는가? 세상의 사람은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다.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나, 돈이 없는 사람도 친한 친척과 친우가 있고, 인간 세상의 낙이 있다. 그 화상은 산에서 혼자 고통스럽게 수련하면서, 어떤 사람과도 접촉하지 않는바, 그런 참기 어려운 적막은 사람의 아주 많은 집착심과 각종 욕망을 갈아 없앨 수 있다. 물론 우리는 이 길을 걷지 않고, 우리는 직지인심(直指人心)으로 가장 빠른 길을 걷는다. 당신으로 하여금 몇십 년을 갈아 닦게 하는 것은 내가 보건대 시간상으로 늦다.

제자: 정신병은 수련반에 들어갈 수 없지만, 광상증(狂想症)․강박증(强迫症)․공황증(恐慌症) 등 환자도 모두 정신병 환자에 속하는지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사부: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인류가 정신병이라고 말하는 그 병은 나의 것과 이해가 같지 않다. 내가 말하는 정신병은, 곧 그의 主元神(주왠선)이 신체를 주재하지 않음으로써, 외래의 임의의 일종 정보, 임의의 일종 생명이 그를 통제할 수 있게 되어 이것을 하게 하고 저것을 하게 하는 것인데, 사람의 업력 또한 그를 통제할 수 있어, 이것을 하게 하고 저것을 하게 한다. 그 업력은 곧 그의 머릿속에서 그에게 사람을 욕하게 하고, 일부 나쁜 일을 하게 한다. 사람은 곧 그를 정신병이라고 한다. 나는 정신병자는 전혀 상처와 병독(病毒)이 없음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을 어떻게 병이라고 하는가? 그것은 다만 사람의 비정상적 상태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 이 대법은 사람을 제도하는 것으로서 主元神(주왠선)이 수련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신이 말해보라. 당신 主元神(주왠선)이 책임지지 않는데, 우리가 누구에게 주겠는가? 그러므로 그를 곧 입장하지 못하게 한다. 사람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업력이거나 부체인데, 어찌 그의 업력과 부체를 제도할 수 있겠는가? 바로 이런 관계이다. 그뿐만 아니라 남들은 “당신이 보라. 法輪功(파룬궁)을 연마하더니 연마하여 미쳤다.”고 말할 것이라, 우리에게 아주 큰 손실을 조성할 수 있다.

제자: 연애하면 우리에게 많은 집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마땅히 남자 벗과 그만두어야 합니까, 아니면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고 결혼하고 생육해야 합니까?

사부: 사실 나는 다 말했다. 인류사회는 여전히 번성하여 퍼져 나가야 한다. 만약 우리 오늘의 대법제자가 일억 남짓한 것이 아니라 몇십억이라면 이 문제는 매우 엄중하지 않겠는가? 이 문제가 아닌가? 내가 당신들로 하여금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되게 하라고 하였는바, 사실 당신들도 할 수 있다. 다만 당신들이 자신에 대해 너무 높게 요구할 뿐이다. 물론 나도 너무 높게 요구함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될 수 있는 한 속인에 부합될 수 있어야 한다. 인위적으로 그렇게 하면 사회로 하여금 우리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게 할 수 있으며 법에 일부 손실을 입힌다. 당신 자신이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여 또 그 마음을 참아내는 고통이 나타난다. 정말로 그 경지에 도달했다면 나는 반대하지 않으며 그 경지의 표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될 수 있는 한 자연적으로 되어감에 따르도록 하라.

이 관계를 잘 바로잡도록 하라. 만일 정말로 당신이 모든 정을 모두 버렸다면 당신은 정말로 연애를 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 도달하기 전에는 나는 여전히 인류의 상태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절대로 당신이 결혼했다 하여 당신이 곧 떨어져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제자: 만약 전세(前世)에 동물이었다면 금세에 수련하여 능히 世間法(쓰젠파)를 벗어날 수 있습니까?

사부: 내가 예를 들겠다. 혹시 한 사람이 매우 높은 층차에서 온 것일지도 모르는데 일생일세의 전생(轉生)에 꼭 모두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되고 저것도 되며 어쨌든 전생하여 이 일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이 일보 전에 당신이 또 동물로 전생된 적이 있잖은가. 그렇다고 당신을 동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은 다만 육도윤회 중에 있을 뿐이다. 진정한 생명이 무엇인가가 비로소 가장 관건이다.

제자: 저는 책을 읽으며 법을 배울 때 어떤 때는 깨닫지만 어떤 때는 책을 두세 번 읽어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데요?

사부: 유의적으로 무엇을 깨달으려고 생각하면 보증하고 깨닫지 못한다. 당신은 이 책을 들고 오로지 보기만 하라. 구함이 없으므로 스스로 얻게 된다고 함이다. 내가 어제도 말했는데, 당신이 무슨 문제에 부딪혔다면 당신은 그 관련된 장(章)과 절(節)을 찾아보려고 생각하지 말라. 당신은 펼쳐내지 못한다. 흔히 모두 구하는 것이 없어야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닌가. 손이 닿는 대로 책을 들고 척 펼치기만 하면, 그것은 보증하고 당신이 오늘 얻으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이 말 한마디를 하면, 어떤 사람은 좋다, 나는 이후에 책을 볼 때 곧 마음대로 이렇게 펼치겠다고 한다. 이것 또한 집착인바, 당신은 또한 펼쳐낼 수 없다. 그것은 또 구하고자 하는 것으로서, 단지 모양만 바꾸었음에 불과할 뿐이다.

제자: 우리는 당신과 法輪大法(파룬따파)를 단호히 믿습니다. 최근 대륙에서 일부 번거로운 일이 발생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어떻게 대해야 합니까?

사부: 내가 법을 전하기 시작한 그 날부터 이런 시끄러움이 끝이 없다. 무엇 때문인가? 만약 바른 법이 전해 나옴에 사(邪)한 것의 교란이 없거나, 혹은 사람이 모두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내가 보건대 곧 사람과 같은 수준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럼 곧 사람을 제도할 수 없다. 바로 어떤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기에, 혹은 사(邪)한 것이 바른 법을 보았기에 그것이 교란하려 하는 것이다. 이 법이 비록 전하여 내려왔지만, 그가 세간에서 어떻게 유전되고, 어떻게 사람을 제도하며, 교란에 부딪혔을 때 대법 자체와 내가 어떻게 하며, 걷는 길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하는 이것은 극히 중요하다. 법이 바른가, 바르지 않은가, 법이 사람을 제도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직접 관계되는, 이 이치가 아닌가? 그래서 풍우(風雨)가 줄곧 끊이질 않았다. 우리는 매 일보를 모두 아주 바르게 걸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이 그중의 한 점을 틀어쥐고 여지도 주지 않고 우리를 타격하려 하지만 그는 잘못을 잡아내지 못한다. 우리가 걸은 길은 너무나 발랐다. 그러므로 우리는 곧 이렇게 지나왔다. 이렇게 풍우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위덕을 세웠고, 비로소 후세사람들에게 말할 만한 것, 가르칠 만한 것을 남겨주며, 그가 갖가지 마난을 받으면서 걸어 지나온 교훈과 경험을 후세사람들에게 남겨준다. 그가 비로소 위덕을 구비했는데, 이렇지 않은가?

제자: 사부님께서는 속인 중에서 하는 수련은 되도록 속인 상태에 부합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미국에서는 대외에 법을 널리 선양하려 할 때 등록한 조직이 없으면 어떤 때는 사무 보기가 불편합니다.

사부: 미국에서 대법학회를 등록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 학회를 속인 중의 사업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단지 우리 이 법에 합법적으로 공을 연마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해 주어, 여러분이 합법적으로 수련할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이러한 역할을 할 뿐이다. 이것 자체를 사업으로 간주하여 일해서는 절대 안 된다. 나는 대도무형(大道無形)을 말했고 또 아무 일에나 마음 쓰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다. 바로 오늘 이 큰 법회를 조직하는 것 또한 수련을 결합해 하는 것으로서 비용을 받지 않는, 수련생의 자선성(慈善性) 조직일 뿐, 종교가 아니다.

제자: 저는 혼자 생활하기에 외인(外人)과 접촉이 적으며 식구들은 국내에 있어 남는 시간에 저는 집에서 법을 배우는데, 이런 수련환경은…….

사부: 어떻게 수련해도 다 된다. 오로지 당신의 마음이 시시각각 자신을 수련인으로 간주하고, 배우며 연마하면 모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나와서 수련하면 더욱 좋다.

제자: 사람의 수련과정 전반은 모두 각종 정보의 교란을 배제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부: 만약 당신이 연공할 때, 정말로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거나 혹은 머릿속에 어떤 정보가 있어, 어떤 염두가 당신을 교란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제거해 버려야 한다. 강렬한 것이라면 당신은 그것을 제삼자로, 다른 사람의 사상으로, 당신과 관계없는 것으로 간주하라. 왜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알려주는가? 왜냐하면, 당신 것이라면 그것은 곧 당신의 지휘를 듣기 때문이다. 당신의 팔, 당신의 다리, 당신의 손가락, 당신의 입은 당신이 그것에게 어떻게 움직이라면 그것은 곧 그렇게 움직인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당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의 사상이 입정(入定)하려고 하면, 그것은 그 사상을 조용하지 못하게 한다. 당신이 그것에게 조용해지라고 할수록 그것은 더욱 조용해지지 않는데, 그것이 당신인가? 당신은 그것을 당신이라고 승인할 수 있는가? 그것은 당신이 후천적으로 형성한 관념과 업력이다. 그러니 당신은 그것을 제삼자로 간주하라. 당신은 생각하라. ‘나는 네 생각을 지켜보겠다.’ 이번에 당신이 뛰쳐나와 당신을 정말 분명하게 갈라놓을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과 경계선을 똑똑히 갈라놓은 것과 같으며, 당신 자신이 자신을 찾았기에 이 역시 수련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주 빨리 그것을 소멸해 버릴 수 있다. 당신이 정말 그것을 확실히 갈라놓을 수 있다면 그것은 아주 무서워하는데, 곧 그것을 없애버리게 된다.

제자: 『轉法輪(전법륜)』은 후세사람에게 남겨주는 것인데, 그 위에는 모두 사부님의 사진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또 말씀하시기를 미래의 사람은 사부님의 형상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사부: 『轉法輪(전법륜)』은 후세사람에게 남겨주는 것이 아니다. 미래의 사람은 『轉法輪(전법륜)』이 있었음을 모를 것이다. 그럼 나의 법이 비록 높게 말하고, 아주 많은 천기(天機)를 누설했을지라도, 법을 듣는 사람이 장래에 정말로 원만을 이룬다면, 나는 단지 신에게만 강의해 준 것으로 되지 않는가? 사람은 여전히 모른다. 그러므로 나는 비로소 당신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당신들이 모두 원만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책을 말한다면 처리하기가 아주 쉽다. 우리는 어느 시간에 그로 하여금 한 글자도 없게 하여 모두 백지로 변하게 할 것이다.

제자: 『轉法輪(전법륜)』 판본에 글줄이 빠진 것, 구절이 빠진 것이 있는 현상을 어떻게 대하여야 합니까?

사부: 해적판 『轉法輪(전법륜)』에 이런 일이 비교적 많다. 여러분은 반드시 주의하라. 글자가 빠졌거나, 글줄이 빠진 것을 발견하면 당신이 펜으로 글을 베껴 써넣어라. 금후에 또 글자가 빠졌거나, 글줄이 빠진 이런 책이 있으면 사지 말라. 즉 말해서 원본을 그대로 찍어서 조판한 것은 살 수 있으나 새롭게 다시 조판한 것은 절대 사지 말라.

제자: 어떤 수련생은 일찍이 기공의 각문(各門) 각파(各派)에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현재 대법을 선전할 때, 먼저 그들이 일찍이 어떤 것을 연마한 적이 있다고 소개하며, 이것을 빌어 수련생을 흡인하는데요.

사부: 우리 어떤 사람은 이런 한 가지 속인 마음이 있다. 그러나 당신은 그가 좋지 못하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이틀간 발언에서 나도 발견하였는바, 또 어떤 사람은 늘 자신의 이전의 고만한 것을 말하는데, 총체적으로는 여러분이 말한 것이 모두 매우 좋다. 다만 어떤 사람은 속인의 마음을 나타내려 했을 뿐이다. 대법을 널리 선양함에, 당신은 당신이 이전에 배운 것을 전혀 거론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이미 그것과 칼로 베듯 갈라섰는바, 그것이 당신에게 속하지 않으며, 또 당신이 얻으려는 것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은 두 법문 또는 많은 법문을 선전하고 있는 것과 같지 않은가?

제자: 사부님께서 보도소에는 돈을 두지 않는다는 규정을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미국 이 상업사회에서는 어떤 일도 돈을 움직이지 않고는 할 수 없습니다.

사부: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이 점은 누구도 바꿀 수 없다. 보도소에는 절대로 돈을 둘 수 없다. 현 단계에서 우리가 책을 팔고 돈이 좀 남았는데, 우리는 남은 그 자그마한 돈으로 즉시 일부 일을 하려 한다고 말한다. 원칙상에서 보면 돈을 움직이지 않았으나, 실제적으로는 그래도 움직였다. 장기적으로 이렇게 내려가면 영원히 끝이 없고, 당신은 곧 돈을 저축하고, 재물을 쌓고 있는 것과 같게 된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우리가 법을 널리 선양하는 이런 일들을 하면서 그 사소해서 말할 나위도 없는 것은,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의 능력이 있는 수련생, 아마 그가 도맡을 것이다. 예컨대 오늘 이렇게 큰 회의장소를 위해 우리 한 수련생이, 여러분들로 하여금 법을 얻도록 하려고, 돈을 내는 한 가지 좋은 일을 했다. 그는 아마 얻은 것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곧 그런 뜻을 말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걷는 길은 반드시 발라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 길을 꼭 바르게 걸어야 한다.

제자: 층차가 높을수록 더욱더 본원 물질에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까? 이는 곧 천녀(天女)가 꽃을 뿌리면 보살의 몸을 통할 수 있으나 오히려 나한의 몸은 통하지 못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부: 이런 뜻이 아니다. 당신이 가리키는 것은 물질상(物質上)의 차이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경지상(境界上)의 차이이며 과위상(果位上)의 차이이다. 물론 과위상의 차이는 당신 신체의 과립상의 차이를 조성할 수 있는데, 이 한 점은 확실하다. 그러나 과립의 차이는 선결 조건이 아니며 心性(씬씽)의 고저, 과위의 고저야말로 선결 조건이다.

오늘 질문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다 해답을 했다. 신 수련생은 책을 많이 보아야 하는바, 당신이 배우려 하고 수련하려 한다면 당신은 곧 가서 보라. 우리는 한 차례 법회를 열기가 힘든데, 내가 만약 당신에게 그런 초급적인 것을 말한다면 우리 이 좌석의 이번 법회는 헛되게 연 것과 같고, 여러분은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법회를 여는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더욱 빨리 제고할 수 있게 하고, 하루빨리 원만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또 이 법으로 하여금 더욱 발양광대(發揚光大)하여 더욱더 많은 사람이 법을 얻을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번 법회 후에,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는 마땅히 하나의 대폭의 제고가 있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도 마땅히 법을 얻지 못한 더욱 많은 사람에게 법을 얻게 해야 한다. 내가 여러분에게 알려주겠다. 백인 중에, 또 다른 인종 중에, 제도되어야 할 많은 사람이 법을 얻지 못했다. 물론 이런 일을, 나는 여러분이 억지로 가서 하라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로 할 수 있으면 곧 할 수 있는 정도까지 하라. 법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도한다. 다만 착할 것을 권고할 뿐이고 또 강박하여 그에게 수련하라고 할 수 없는데, 곧 이렇다. 여러분이 더욱 빨리 제고하고 하루 속히 원만 성취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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